소설리스트

57. girls night (57/123)


#57. girls night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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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후욱, 등 쪽으로. 등이 말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어깨 펴세요. 그대로 고개 내려 시선만 배꼽으로 둡니다. 좌골 바닥에 붙이는 것 잊지 마시고, 천천히 호흡 들이켭니다. 열까지 하나, 둘, 셋…….”

저녁 마지막 타임 수업을 진행하는 재인의 눈길이 자꾸만 중앙에 자리 잡은 외국인을 향했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신기해서가 아니었다. 수강생이 강사를 바라보는 건 당연하지만, 유독 그 외국인은 관찰하는 듯한 묘한 시선으로 재인을 흘끔거렸다.

오늘 신규 등록했다는 외국인은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늘씬한 미인이었다.

요가를 계속해 왔던 건지 자세가 좋아 재인이 따로 지적할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통 집중하지 못하고 재인만 흘끔거리다가 시선이 맞닿으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마치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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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열. 호흡 마무리하면서 수업 마치겠습니다. 건강한 저녁 보내세요.”

두 손을 모아 인사하는 것으로 수업을 끝냈다. 수강생들이 일어난 자리에서 요가 매트를 걷어 내던 재인이 문득 뒤돌아보았다.

역시, 사람들과 함께 수련실을 나서던 외국인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인은 제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그 시선이 조금은 끈적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고 밝혔던 사람 중에는 여자도 더러 있었다.

어차피 요가원 회원과 사적으로 친해질 일은 만들 생각이 없던 그녀였다. 그랬기에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초기에 차단하는 재인의 철벽이 발휘됐다.

입꼬리를 끌어 올려 눈인사만 건네는 것으로 인사를 마친 재인이 강의실 정돈에 집중했다. 야근을 마치고 아래에서 기다릴 태서를 생각하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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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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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서 씨, 난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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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 괜찮습니다.”

불만 가득한 표정의 태서가 맞은편에 앉은 앰버를 쏘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화의 곁에 앉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곱도리탕에 고정된 그녀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요가원이 끝날 시각에 맞추기 위해 오랜만에 비서진을 닦달하며 일을 마무리 지었다.

재인이 내려오자마자 차에 태워 집으로 가서 품에 안고 물고 빨 생각이었다. 정말, 온종일 그 생각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광 빌딩 앞에 도착한 태서는 입구 쪽에서 얼쩡거리는 앰버를 발견했다. 발견하자마자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잘근 물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나. 한국에 있다고 해도 앰버가 대체 왜 여기에.

미간을 찌푸린 채 차에서 내렸다. 건물 계단을 흘끔거리는 앰버에게 헛짓하지 말고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생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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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서, you’re such a……!”

 
앰버가 뛰어들다시피 태서를 향해 돌진하더니 그의 목을 휘감았다. 방심하고 있던 태서가 휘청하며 중심을 잡는 사이 앰버는 손을 뻗어 태서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미쳤냐고 소리 지르며 앰버를 떼어 내려던 때였다. 태서는 남광 빌딩 입구에 선 재인을 발견했다.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태서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재인의 뒤에 선 상화가 한 발 나서며 손가락질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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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강태서 씨! 우리 재인이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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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재이니!”

 
상화의 목소리에 미친 사람처럼 태서의 목에 매달려 있던 앰버가 갑자기 소리 지르며 뒤돌았다.

그러더니 재인을 향해 뛰어갔다. 상화가 어쩔 틈도 없이 재인에게 달려든 앰버는 예뻐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재인을 제 품에 꽉 죄듯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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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서 첫 여자 친구! 태서 재수 없어도 버리지 마!”

 
태서가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재인에게서 앰버를 억지로 떼어 냈다.

그런데 앰버는 굴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재인과 태서를 둘 다 안고 방방 뛰어 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고 휩쓸리는 재인을 보호하기 위해 태서가 완력을 써서 앰버를 밀어내자 앰버는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상화를 안고 뛰어 댔다.

재인을 꼭 안고 저를 미친 사람 보듯 하는 태서를 향해 환호를 퍼붓는 앰버는 감격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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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태서 여자 친구 내 눈으로 확인한 기념으로 우리 쏘주 한잔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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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분 진짜 한국어 패치 제대로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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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나 한국어 제대로야! 쌍화 원장님, 맛집 어디야? 빨리빨리!”

 
대학에서 태서를 만난 뒤로 함께 사업을 해 왔음을 밝힌 앰버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상화와 쿵짝이 맞아 꺅 꺅 소리를 질러 대더니, 어느새 넷은 근처 식당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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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있어도 행복해 보이는데, 우리는 그냥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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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태서 씨 친구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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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닙니다. 동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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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같이 일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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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동업자죠.”

태서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앰버를 노려봤다. 앰버는 상화와 나란히 앉아 맥주에 소주를 마는 중이었다. 상화에게 황금 비율을 배우는 앰버는 진지해 보였다.

어디서 이야기가 새어 나간 걸까. 장 실장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거기서 말이 샜을 것 같지는 않은데.

태서의 매서운 눈빛을 알아챈 앰버가 생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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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가 무서워하는 건 너지만, Ted가 싫어하는 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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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뉴욕에서 줄곧 태서를 지원해 온 테드는 사실 E&K에 소속된 직원이었다. 대외적으로는 태서의 비서실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은 천재 해커였다.

불우한 집안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해커 짓을 하면서 장난만 일삼던 테드는 어느 날, 카페에서 마주친 태서의 노트북을 훔쳤다.

그리고 그 노트북으로 태서의 대학원 수업 관련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뒤늦게 제 노트북을 훔쳐 한 학기 성적을 엉망으로 만든 범인을 잡았지만, 그 천재성을 알아본 태서는 테드를 고소하는 대신 선처하고 제가 만든 회사의 정직원으로 고용했다.

마음이 여렸던 테드는 그 후 태서에게 충성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앰버와도 자주 보게 되었는데, 테드는 여자를 싫어했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여자와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았고, 그래서 여자 앞에서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어색해했다.

앰버는 테드의 그런 점을 귀여워했다. 그녀가 귀여워할수록 테드가 괴로워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번에도 테드는 앰버의 괴롭힘을 못 이기고 결국 실토한 모양이다. 태서의 수상쩍은 지시를 종합해 본 앰버가 재인에 대해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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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좀 괴롭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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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짓도 안 했어. Ted도 곧 한국 온다면서? 되게 들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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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테드가 누구예요?”

가만히 둘의 대화를 살피던 상화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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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쌍화 원장님! Ted 되게 귀여운데, 다음에 소개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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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부탁이니까 가서 네 애인이나 괴롭혀.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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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you,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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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의 태서가 벌떡 일어나며 재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앰버가 팔을 뻗어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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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가려면 태서 혼자 가. 난 오늘 Jane이랑 친구 첫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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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마음대로 재인 씨가 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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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 원장님도 친구! 재이니도 친구! 나 왕따 당하느라 girls night 한 번도 못 해 봤어. 태서는 하기 싫으면 가. 우리끼리 밤새도록 신나게 놀 테니까. 넌 남자라 원래 안 끼워 주려고 했어. 끼고 싶으면 카드나 내놔.”

재인은 어느새 편하게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태서가 허탈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살면서 제 편이라고는 엄마와 상화, 태서밖에 못 가져 봤다던 재인이었다. 그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일은 응원해 줘야 마땅했다. 앰버가 좀 시끄럽고 과격하기는 해도, 나쁜 애는 아니니까.

오늘도 단둘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는 그른 모양이다. 태서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재인의 손을 쥐며 한숨을 삼켰다.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앰버의 방해로 인한 화가 풀린다는 게 어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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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인이 지금 이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뭐 어떤가.

태서가 피식 웃으며 수다를 늘어놓는 세 여자를 위해 손을 들었다. 술과 안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때맞춰 주문하는 것이 오늘 그의 역할임을 모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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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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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 만난다고 나갔어요. 다 늦게 애한테 관심 있는 척하지 말아요. 아니지, 당신은 애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강선 그룹 사돈 자리에 관심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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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 아트 센터라도 부지런히 찾아가서 임 관장 눈도장 찍게 하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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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당신은……!”

분노에 차서 뭔가를 쏟아 내려던 승희가 입을 딱 다물었다. 태서의 경고가 생각난 탓이었다. 요 며칠 그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녀라고 강선 그룹 사돈 자리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지난 20여 년간 떠들고 다닌 약혼이 엎어졌을 때 날아들 비웃음과 비아냥거림은 생각만 해도 모멸스러웠다.

하지만, 그 애송이 놈이 제 치부를 알고 있다. 증거까지 틀어쥐고 있으니 발뺌도 어렵다. 최 비서와는 오랜 세월 조심스럽게 재단 사무실과 차 안에서만 관계를 지속해 왔는데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잠시 최 비서를 의심해 봤지만,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최 비서는 지승희의 눈짓 하나에 무릎도 꿇는 인간이었다. 함부로 다른 생각을 할 만큼 간이 크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곁에 두고 귀여워할 개를 고를 때, 승희는 길들이기에 적당한 놈을 찾기 위해 애썼다.

주인을 우습게 볼 만큼 과하게 똑똑하거나 일시켜 놓고 답답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아야 했고, 온전히 저만 바라보도록 기댈 구석이 없어야 했다.

저들 관계가 진짜 사랑이라 믿는 순진한 최 비서가 돈이나 협박에 넘어갔을 리는 없다. 결국, 태서가 가진 증거의 출처를 찾아내지 못한 승희는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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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서 군, 마음에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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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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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유리, 더 좋은 곳으로 시집보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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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시간에 재단 회계나 똑바로 봐.”

유리가 제 입으로 강선 그룹 예비 며느리라고 떠들고 다닌 것이 20년이 넘었다. 지승희 역시 강선 그룹의 안사돈이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던 건 마찬가지였으니, 지금 와서 더 좋은 혼처가 나타날 리 없다.

하지만 더는 이 결혼을 성사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약점을 들어 협박하며 뻣뻣하게 구는 모양새로 보아하니 강태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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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약혼이지, 정식으로 약혼식을 올린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유리한테 흠이 될 것도 없어요. 그간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데 파혼 좀 하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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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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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유리가 사랑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것뿐이야! 빈껍데기만 붙잡고 사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내가 아니까!”

결혼 전에 윤세나를 만났고, 그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들킨 이후 거의 20년간 들어왔던 빈껍데기 타령이었다. 대훈이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승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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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날고 기는 강선 그룹이라지만 애 행복이 먼저여야지! 나는 우리 유리, 다른 곳에 시집보낼 테니 그리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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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당신이야말로 애보다 본인이 더 소중한 사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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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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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앞세워 본인 원하는 걸 갖는 건 당신이 잘하는 거잖아. 엄마라는 사람도 그러는데, 나라고 못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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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그게 아빠가 돼서 할 말이야?”

승희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소리 질렀지만, 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재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 스민 조소를 승희가 알아챌 리 없었다.

남편의 무관심과 냉정함에 분노를 느낀 승희가 소파 팔걸이에 내려놓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잘 다듬어진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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