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쉬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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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쉬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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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쉬운 남자
2022.09.27.
인사를 건네듯 스쳤던 입술이 다시 찾아와 머문 것은 잠시였다. 이내 맞물려 포개어진 입술이 서로를 머금었다.
그것만으로도 재인은 숨이 가빴다. 몽롱하게 피어오른 열기에 남자의 체향이 섞여 어지러웠다. 시간과 공간이 이지러졌다.
정중하고도 부드러운 입맞춤이 격정적으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두서없이 탐하는 그의 욕심이 뜨겁고도 집요하게 이어지다 젖은 소리를 내며 아쉬운 듯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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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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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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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호흡 역시 불안정했다. 재인이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코끝을 맞댄 채 서로를 응시했다. 키스만큼이나 진득하게 이어지는 눈 맞춤에 목이 탔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이 온몸을 타고 울려 퍼졌다.
재인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태서가 다시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슬쩍 뒤로 밀었다.
말은 없었다. 그저 눈빛만으로 허락을 구하듯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느릿하게 코를 비벼 왔다. 그러고는 눈을 내리뜨며 재인이 깨물고 있던 아랫입술을 빼내어 문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각도를 비틀어 다가온 그였다. 재인은 태서에게 차근차근 삼켜졌다.
무례할 예정이라던 남자답게 이번에는 조금 거칠고 급했다. 천천히 음미하듯 재인을 어르다가도 무작정 성급해졌다. 그때마다 젖은 숨이 열기를 더하며 넘나들었다.
커다란 손이 재인의 목 뒷덜미를 받치며 머리카락 사이로 스미듯 닿아 올 때는 소름이 돋았다. 더. 더.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긴 재인이 태서의 셔츠 자락을 구겨 쥐었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텅 비워지고, 마침내 남은 것은 탐날 만큼 빛나는 단 하나였다.
오직, 강태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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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톰하게 부푼 입술 위를 벗어나지 못하던 입맞춤이 자리를 옮겨 가며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태서의 입술은 재인의 동그란 이마, 작은 코, 따끈한 뺨, 감은 눈 아래를 배회하다 다시 붉은 입술을 찾았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마침내 조금씩 멀어지는 그의 눈동자에는 미련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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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려고.”
재인의 뺨에 닿은 커다란 손이 조금 떨렸다. 하지만 태서는 지금 재인에게 향하는 제 떨림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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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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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서가 자신을 올곧게 올려다보는 재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다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손안에 폭 감싸인 작은 얼굴이 고와 눈을 뗄 수 없다.
태서는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윤재인에게서 절대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만하기도 했다. 처음 가져 본 이성을 향한 강한 호기심이 그저 신기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재미있었다.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두었더니 결국 삽시간에 이 지경이 되었다.
이제 달콤함을 알아 버렸다. 윤재인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품 안의 재인을 보면 볼수록, 태서는 그녀와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억울했다.
하지만 괜찮다. 앞으로는 함께하면 될 테니까.
자신을 담은 새까만 눈동자를 내려다보던 태서의 입꼬리가 그린 듯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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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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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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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같았습니까?”
키스 전에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린 재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자 곱게 접힌 눈가에 다시금 태서의 입맞춤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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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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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큰일이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어쩌면, 더.”
이마와 콧잔등까지 버드 키스를 뿌려 대며 대답하는 남자를 살짝 밀어낸 재인이 다시금 태서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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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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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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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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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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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같이 미쳤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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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짧게 웃음을 터뜨린 태서가 재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이렇게나 앙큼하고
이렇게나 똑똑하고
이렇게나 아름다우며
이렇게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어떻게 내게 손을 내민 걸까.
태서가 웃으며 재인을 끌어안자 재인이 순순히 안겨 왔다. 고운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뺨을 비볐다. 태서는 폐부 가득 재인의 향기를 꾹꾹 눌러 채우며 눈을 감았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순응, 상상해 본 적 없는 맞물림에 지금 태서는 눈이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이성의 끈을 다잡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대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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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행사고 뭐고.”
겨우 꺼낸 말이 우스웠는지, 재인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 내어 웃었다. 태서는 제 가슴에 번지는 간지러움에 황홀한 통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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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여기에서 키스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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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칼같은 거절에 태서가 잘 빠진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춰 오는 재인을 보자마자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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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인데, 점수 잃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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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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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해 주셨잖아요. 구경하고 싶어요.”
사르르, 웃는 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서가 사르르, 녹았다. 지고도 기분 좋은 건 강태서 인생에 처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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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이 마음에 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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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고 있으니 시카고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나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화가의 작품 제목은 <온>이었다.
따뜻하다는 뜻인지, 켜져 있다는 뜻인지, 무언가가 왔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불빛이 어룽지는 도시의 밤, 세차게 나부끼는 눈보라가 연상되는 그림이었다.
붓이 아닌 나이프만으로 거칠고 대범하게 표현했는데 묘하게 따스한 느낌이었다. 곧 있을 자선 경매에 올라올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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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크리스마스에 추위 말고 뭐가 더 있습니까.”
불퉁한 태서의 말에 재인이 눈을 치켜떴다. 살포시 가늘게 뜬 눈으로 태서를 쏘아보면서도 입매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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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고향 흉보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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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밀레니엄 파크 트리를 봤는데, 뉴욕 록펠러 센터의 트리보다는 규모가 작더군요. 아이스 링크 주변으로 사람만 엄청나게 많고.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추워서 호텔 안에서 꼼짝도 하기 싫은 걸 겨우 참고 찾아갔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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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랑 같이 보셨구나.”
정곡을 찌른 재인의 짐작에 태서가 쿡쿡, 낮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게. 당신이랑 봤다면 그 매섭던 추위도 아름답게 기억했을 텐데.
태서는 지난날 보았던 밀레니엄 파크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수많은 사람 사이에 윤재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각, 같은 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끔찍하게만 여겨지던 추위와 몰려든 인파로 인한 짜증을 조금은 부드럽게 떠올리게 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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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중요한가요. 사실 저는 밀레니엄 파크의 트리보다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조곤조곤 말하는 재인을 바라보던 태서가 슬쩍 손을 뻗었다. 허리 뒤로 마주 잡고 있던 재인의 두 손을 풀어내어 그중 한 손을 제 손에 쥐는 동작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그제야 재인의 눈동자가 그림이 아닌 태서를 향한다. 그저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짜릿하게 퍼지는 간지러움에 태서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윙크하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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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타워 앞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더 좋아해요. 혹시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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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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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그런데 워터 타워랑 어우러진 모습이 예뻐요. 과하지 않은 조명으로 꾸민 게 조금 로맨틱한 느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카고에 있을 때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거기에 갔었어요.”
재인이 싱긋 웃고는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서 역시 그림을 바라보며 워터 타워 앞의 트리를 바라보고 있었을 그녀를 상상했다.
아마도 그 곁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함께했으리라.
그러기를 바랐다. 부디, 그녀가 크리스마스에 외롭지 않았기를. 혼자인 게 서럽게 느껴질 날마다 그녀의 곁에 좋은 사람이 있었기를. 태서는 제 생에 단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었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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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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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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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요. 내 사람이 되면 뭐든, 사 줄 거라고.”
태서의 말에 미소를 지워 낸 재인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또다시 태서를 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한참,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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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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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싫어요.”
재인이 뒤늦게 보여 준 미소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태서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제가 잠시 떠올린 우울함이 그녀에게 번진 걸까. 괜한 염려에 그의 고개가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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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유는 없구요. 그냥……, 시간이 될 때 와서 감상만 할래요. 갖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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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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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더 소중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요.”
재인의 말을 곱씹던 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태서 역시 무언가를 소유할 때는 오래도록 고민하곤 했다. 그는 함부로 제 것을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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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그림, 조금 있다가 경매로 나올 겁니다. 다른 사람이 사 가면 어쩌려고요. 보고 싶을 때 감상 못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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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재인의 시선이 제 손을 꼭 잡은 태서의 크고 따뜻한 손에 머물렀다. 그러고는 이내 조금은 짓궂게 미소 지으며 태서와 눈을 맞춰 왔다.
지금 여기서 또다시 입을 맞추고 싶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태서가 근지럽게 느껴지는 어금니를 혀끝으로 지그시 누르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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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서 씨가 사요. 사서 집에 걸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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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큼한 대답에 태서의 턱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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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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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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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태서 씨 집으로.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여자, 이러다 사람 잡겠다.
재인을 한참이나 응시하던 태서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근처의 사람들이 다 돌아볼 정도였다.
낯설었다. 윤재인을 향하는 제 욕심도, 앞서 달려 나가는 마음도, 그리고 이 매력 넘치는 사람도.
커다란 풍선을 삼킨 듯, 제 안에서 자꾸만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면서 심장을 누르고 폐를 밀어내는 것만 같다.
태서는 지금, 이 순간 재인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또 동시에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었다.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던 태서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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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윤재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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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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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썸 같은 거 모릅니다. 더군다나 키스까지 한 사이에.”
관계를 확실하게 하려는 태서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에 일말의 주저가 내비쳤다. 태서는 참을성 있게 재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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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태서 씨는 어떤 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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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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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부터 하고 여쭤보는 건 조금 우습지만. 더 알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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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물어봐요. 그리고 알아내요.”
그러려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네. 덧붙인 태서의 말에 재인이 소리 내어 웃었다.
태서는 재인이 말을 돌린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간단했다. 태서가 느끼기에는 분명히 재인 역시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감정을 속이는 것에 익숙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태서는 순간순간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하는 재인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짓말에 서툴다는 것을 파악했다.
무엇보다 태서는 재인이 그녀의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바랐다. 누군가에 쫓기듯 급하게, 혹은 하기 싫은 것을 참으며 억지로 저에게 오기를 바라지 않았다.
물론 기다려야 하는 태서 입장에서는 속이 탈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윤재인을 놓치기 싫은 강태서가 을이었다.
그는 제게 온전히 와 줄 재인을 기다리면서 그녀의 접근 의도를 알아내고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줄 생각이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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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키스는 오늘만이에요. 다음부터는 허락받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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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X신으로 압니까. 그런 걸 허락받고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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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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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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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쉬운 여자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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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쉬운 남자라서. 윤재인 씨한테.”
귓가에 속삭인 본심에 재인이 맑게 웃었다. 태서가 재인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음 작품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트 센터 안의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 대든, 두 사람에게는 오직 서로만 보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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