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유혹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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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유혹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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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유혹의 기술
2022.08.26.
플러팅. 명백한 유혹이었다. 무슨 경고가 이렇게나 자극적인가. 그리고 경고하는 태도는 또 왜 이렇게나 관능적이란 말인가.
자신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남자를 가득 담은 재인의 새카만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놀라 동그란 눈만 깜빡이는 재인을 바라보던 태서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주먹을 더 꽉 쥐었다.
알 수 없는 열기가 자꾸만 눈앞의 여자를 향해 터져 나가려 한다. 참아야 할 때였다. 아직은, 아직은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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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그렇게 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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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강태서 씨를 어떻게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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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잡아먹으려는 맹수 보듯 보는데.”
정말이지 딱 맞아떨어지는 비유였다. 재인은 어지러울 만큼 치명적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유혹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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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인 씨는.”
재인의 심장이 쿵, 쿵, 거칠게 뛰었다. 겨우 내뱉는 숨이 크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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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섭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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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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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힐까 봐……?”
말려들면 안 돼. 이렇게 시작하기도 전에 질 순 없어. 관계의 주도권을 쥔 건 내가 되어야 해. 윤재인, 정신 차려. 첫 번째 목표는 조유리의 파혼이야. 그러니 그냥 한두 번 만나고 말 사이가 되어서는 안 돼.
재인이 몇 번이나 되뇌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리고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겨우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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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한테 수작 부리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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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 수작이라…….”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유혹에 능한 남자를 이길 수를 떠올리려 노력하는 재인에게 태서가 싱긋이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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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씨가 잊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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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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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난 적 있지 않으냐며 먼저 수작 부린 거, 윤재인 씹니다. 내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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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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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신선하다더니, 재인 씨도 신선하네요. 서툴게 느껴지는 건 의도한 겁니까?”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 태서가 양쪽 손을 다 주머니에 넣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새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 사이로 웃고 있는 그가 환하게 빛났다.
다 들켰다. 모든 수를 읽히고 말았다. 재인은 제가 상대를 너무나 얕잡아 봤음을 인정했다. 하긴, 태어나 누군가를 유혹해 본 적이 있었어야지. 잘난 남자를 상대로 얼굴만 믿고 들이댔다.
어리석음을 깨닫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재인은 머플러 속에 얼굴을 묻은 채 웃었다. 부끄러움에 차마 태서를 마주 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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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요. 내 사람 될 생각 없으면 눈 마주치지 말라는 거. 다음에는 각오하고 말 걸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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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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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인 씨, 잘 가요. 메리 크리스마스.”
차마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답해 주지 못했다. 재인은 태서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제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간지럽게 느껴지는 두 뺨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그녀의 어깨 위로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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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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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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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재인이 소스라치게 놀란 눈으로 상화를 바라보았다. 상화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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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정신을 어디 빼놨어? 몇 번이나 불러도 못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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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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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알 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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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인은 그제야 제가 점심을 먹던 중임을 깨달았다. 태서의 생각으로 꽉 찬 머리를 저어 생각을 흩뜨리는 그녀를 보며 상화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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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따가 경찰서 가는 것 때문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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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그냥 생각할 일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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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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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좀…….”
태서와 저녁을 먹은 지 이틀이 지났다. 재인은 요즘 틈만 나면 자신을 바라보던 강태서의 눈을 떠올렸다.
강태서는 정중하고도 장난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다가도 순간적으로 재인을 긴장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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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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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날, 카페에서 남자를 발견했을 때 재인은 분명히 유혹할 작정으로 아는 체했다. 보통 남자가 아니니 접근부터 쉽지 않을 거라고 여겼기에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가 가진 매력을 총동원하여 꼬셔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유혹은 고사하고 먹고 싶던 냉면과 만두를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추위도 잊고 그와 함께 걸었다. 그때까지는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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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 사람 될 생각 있으면, 또 내 시야에 들어오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나랑 눈 마주치지 않게 잘 숨어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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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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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번 손에 들어온 건 안 놓칩니다. 엄청 집요하게 굴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식으로 반응해 올 줄은 몰랐다. 선을 긋는 것과 동시에 선을 넘어오라고 유혹하는 강태서라니.
재인이 목적을 잊고 느슨해진 사이, 강태서는 그녀의 고의적인 접근을 읽어 냈다. 그러고는 되레 재인을 유혹했다. 동시에 위험성을 미리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완전히 허를 찔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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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섭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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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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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힐까 봐……?”
먹잇감을 두고 입맛을 다시는 육식 동물 같던 남자의 눈을 기억한다.
남자는 세련되고도 능숙하게 재인을 대했다. 과하게 질문을 퍼붓지도 않았고 대화 내내 적당하게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불시에 거리를 좁혀 재인에게 경고한 것이다.
각오하고 덤비라고.
그 위험천만한 도발에 응하고 싶은 욕구를, 재인은 겨우 참았다. 반격은커녕 옴짝달싹 못 하고 두근거리던 자신을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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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지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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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도대체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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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리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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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 어디 갔어. 뭐 알아듣게 말을 해. 그리고 건드려선 안 될 건 건드리는 거 아니거든? 윤재인, 너 내 말 듣고 있어?”
계속 남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매력 넘치는 남자였다. 재인은 살면서 남자 때문에 겪었던 수많은 위험을 떠올렸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적도 있으니 말은 다 했다.
잡아먹힐까 봐 무섭냐고 물어보는 남자의 눈빛은 그야말로 맹수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눈빛을 바꾸는 건지. 정중하다가도 장난스럽고, 그러다가도 또 위험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엔 아쉽다. 아직 제대로 해 보지도 못했다. 방법을 바꾸든 어떻든, 일단은 준비가 필요했다. 재인이 고민 끝에 핸드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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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좀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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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슨 공부? 지난번에는 칵테일 바에 가겠다고 일찍 퇴근한다 그래 놓고 그날 하루만 그러고 말더니.”
재인은 포털 사이트를 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해 보았다. 그 모습을 흘끔거린 상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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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기술? 얘가 누굴 유혹하려고 이런 걸 검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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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둬서 나쁠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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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는 살짝 웃어 주면서 윙크만 해도 여기서부터 한강 너머까지 남자들이 줄을 설 거다. 뭐 하러 이런 걸 검색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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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제대로 된 남자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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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인, 설마 관심 가는 남자라도 생겼어?”
관심이 간다. 재인은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요 며칠 그 남자에 관한 생각뿐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도 모르는 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재인을 본 상화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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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미친. 진짜라고? 어떤 사람이야.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데 윤재인이 유혹의 기술을 검색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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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얼굴만 믿고 들이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너도 알잖아. 내가 연애는커녕, 남자랑 썸 한번 타 본 적이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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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알지. 썸이 다 뭐야. 평생 남자를 원수 보듯 해 온 너인데.”
남자한테는 철벽 치며 거절의 말만 해 왔다. 그런데도 좋다는 남자들은 많았다. 그것도 끔찍해서 더욱더 차갑게 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투가 점점 건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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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부라도 좀 해 볼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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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런 게 공부한다고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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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떡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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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책을 사냐. 글로 배울 게 따로 있지. 좋아. 내 필살기를 알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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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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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꼬시거든? 너, 몰라?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세 남자에게 둘러싸여 있던 거 기억 안 나? 날 믿어.”
투지를 불태우는 상화를 보며 피식 웃은 재인의 시선이 제 발목으로 향했다. 요가 슬랙스 아래로 드러난 발목에는 손가락 길이만큼의 흉터가 옅게 남았다.
8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다친 발목에 철판과 철심을 박았다. 그리고 다시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며 남은 흔적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큰거리고 쑤시는 발목이 재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남자 때문에 죽을 뻔하지 않았냐고.
재인은 그때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크게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유혹의 필살기를 선보이는 상화를 향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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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에서 요구하는 특별 분양에 대하여 조합 측에서 전면 거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를 중재하기 위해 우리 강선 건설에서는 TF를 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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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우리가 끼어들 부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합과 시에서 결정 내릴 사항인데 왜 우리가 나서서 돈 쓰고 사람 써 가며 중재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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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로 골머리 앓다가 손 턴 건설사가 벌써 다섯입니다. 강선 건설에서 화미 아파트 재건축에 지금까지 들인 공이 얼맙니까. 이러다가 손해만 보고 물러나는 여섯 번째가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화미 아파트의 재건축을 맡을 건설사를 결정하는 입찰이 코앞이었다.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건설사는 강선 건설을 포함하여 총 네 곳이었다.
강남에서 제일 큰 규모의 재건축 사업이 될 화미 아파트의 재건축이 업계에 화두로 떠오른 것은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었다.
업계 1위의 강선 건설이 달려든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로 인해 진척은 영 지지부진했다.
태서는 한 달 전, 본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화미 아파트 문제를 떠맡게 되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시달리는 중이었다.
골치 아픈 문제를 두고 각 부서의 장이 목소리를 높이는 회의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회의에 집중해야 하는 때였지만 회의를 주관한 태서는 회의 자료 한구석에 동그라미만 그려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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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현양 건설 쪽과 조합원 측의 만남이 잦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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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정보를 들고 와요. 현양이 지금 화미 아파트 재건축에 돈을 쏟아부을 여력이 있겠습니까? 성하 신도시에 새로 분양한 아파트도 부실 공사로 난리 난 마당에…….”
이맛살을 찌푸리던 황 부장이 슬그머니 태서의 눈치를 보았다. 말을 뱉어 놓고 보니 본부장인 태서의 처가가 될 수도 있는 현양 그룹을 비난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태서는 회의 시작 이후로 말이 없었다. 짙은 눈썹에 힘을 준 채 회의 자료만 응시할 뿐이었다. 별 반응 없는 태서를 확인한 황 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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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더는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죽 쒀서 개 주는 꼴 되기 딱 좋습니다. 일단 입찰받으려면 시와 조합을 중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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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현양 건설처럼 조합원을 공략해야 한다니까요? 아무리 조합 쪽 여론이 우리에게 우호적이라고 해도 안심하면 안 됩니다. 다명 건설 보십시오. 2년 전에 입찰받았다가 조합의 등쌀에 삽도 한번 퍼 보지 못하고 나자빠지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심기 불편해 보이는 태서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도 점차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인상을 쓰고 자기 의견만 내세우는 가운데 태서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였다.
태서는 펜촉으로 책상을 토독, 두드리다가 다시금 서류 한구석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은 며칠 전 그를 바라보던 재인의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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