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범죄자 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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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범죄자 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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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범죄자 수배
2023.05.16.
베티와 나는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했다. 베티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으아, 아무리 예상했어도 주인님은 진짜 너무 빠르시네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이시지?”
“생각보다 요한이 빨리 눈치챘던 것 같아.”
계획에 빈틈은 없었다.
상대가 요한이라 더 철저하게 세웠다.
요한이 쉬이 돌아오지 못하는 외부 일정인 것을 확인했고, 요한을 방심시켰으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요한이 내 방에 안전을 이유로 기사를 세워뒀길래 요정의 힘을 이용해 모두 잠재우기까지 했다.
‘미리 준비한 위조 신분증에 도주로까지.’
며칠 동안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운이 나쁘게 작용했을 뿐.’
요한이 너무 빨리 눈치챈 데다가 눈치채자마자 나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실행력도 어마어마했다.
‘새삼 요한이 대단하게 느껴지네.’
그동안 요한을 상대하며 장렬하게 무너졌던 그의 적들 입장이 이해가 될 정도다.
“으으, 저도 블란쳇 가문 사람이지만 정말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검문하고 다니네요. 저기를 뚫고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베티가 창밖으로 돌아다니는 기사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얼핏 봐도 기차 전체를 다 뒤진 다음, 인근까지 싹 다 수색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바깥에서 우물쭈물했었으면 기사들에게 바로 붙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숨어 있는 것도 잠시뿐이야.’
바깥을 다 뒤지고 나면 건물 안으로 수색 범위를 넓히기 시작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이럴 때를 대비해 일부러 구석진 골목에 있는 여관을 몇 주 전부터 장기로 예약해 두었다는 거다.
‘건물을 수사한다고 해도 가장 후순위겠지.’
그래도 여관을 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늦는다.
“베티 네 위장 기술로도 쉽게 걸릴까?”
“다른 기사들이라면 한두 번 정도는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제는 그렇게 속였다고 쉬이 도망칠 순 없을 것 같아요. 저 기사들 틈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하는데…….”
베티의 갈색 눈동자가 독수리처럼 빛났다.
“아직 기차에 파견된 인력이 있는지 수색에 공백이 있긴 한 것도 같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가 빠르게 기사들로부터 빠져나갈 도주로를 찾아내는 것 같았다.
‘진짜 프로 같네.’
나는 베티에게 물었다.
“길이 좀 보여?”
“어렵겠지만 해야죠. 부디 거리에 주인님만 안 계시기를 빌면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수사망이 좀 더 꼼꼼하게 좁혀졌다.
요한은 제국의 지도를 뚫어져라 보며 도주로를 살폈다.
‘에스텔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석은 없어.’
다행스럽게도 에스텔은 마력이 잘 통하지 않는 체질이다.
‘그게 요정이라서인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에스텔은 이동 마법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멀리 이동하기 위해선,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몇 가지 없었다.
그중 가장 효율적인 게 기차다.
한번 출발하면 세우기 쉽지 않을뿐더러, 신분을 위장한 채 이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급하게 숨는 두 여자를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위 기차를 다 수색했지만,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수색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 모양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지…….”
“멀리는 못 갔을 거다.”
요한이 무심하게 지도를 내려다봤다.
“기사단이 기차역 주변 도주로를 막아뒀다. 아직 신호가 오지 않았으니, 도망치지 못했을 거고.”
이런 사태를 대비해 이 근방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 주변 마을에 묵는 외부인을 체크해. 유동인구가 많으니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함께 움직이지.”
요한의 눈에는 에스텔이 숨어 있을 장소가 대략적으로 보였다.
‘모두 차단하고 있다.’
기사단이 거미줄처럼 도주로를 좁히는 한편, 남은 공간을 요한이 나서서 헤집는다.
‘에스텔, 이제 짧은 외출도 끝이야.’
요한이 곧 마주칠 에스텔의 얼굴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성국으로 떠날 때 배웅하러 나왔던 에스텔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게 마지막 이별이라고 나왔을 그녀를 생각하면, 아직 속내가 뒤틀렸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내게 말했어야지.’
에스텔이 울면서 말했다면 요한은 어쩔 수 없이 약해져 또 들어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을 것처럼 괴롭지만 그녀의 곁을 몇 달 동안 비워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에스텔은 실수했다.
멋대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도망갔으니 이제 요한은 더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다.
에스텔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아마 똑똑한 그녀도 도망치기 전에 어느 정도 예상했으리라. 전혀 예상 못 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를 먼저 배신한 건 너야.’
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람들을 검문하던 블란쳇 기사단이 요한에게 경례했다.
“아직 발견된 것은 없습니다.”
“조급하게 처리할 거 없다. 늦어져도 좋으니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해. 여기서 확실히 잡아낼 수 있도록.”
블란쳇 공작가가 범죄자를 색출하기 위해 나섰다는 이야기가 먼저 돌아서인지, 수색하는 사람들에게서 반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들 주위에 흉악한 범죄자가 있을까 공포에 떨고 있는 눈치였다.
요한은 이런 분위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공포가 강해질수록 에스텔은 더 숨어들기 어려울 테니까.
그렇게 기차역 근처의 여관을 돌고 있던 순간이었다.
“주군.”
기사 하나가 급하게 요한을 찾았다.
“최근 기차역 근처에 방을 예약한 외부인의 목록입니다. 주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장기 투숙객까지 모두 긁어왔습니다.”
목록을 보던 요한이 한 이름을 가리키며 물었다.
[캐리 마리아, 장기 투숙, 여자 2명.]
“이 자매는 왜 표시해 뒀지?”
“아. 그것이 이 자매가 장기 투숙객으로 쭉 예약해 둔 것과 달리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려 표시해 뒀습니다.”
“잘했다.”
하필 표시된 여관의 지역이 구석지다는 점이 요한의 마음에도 걸렸다. 요한도 도망친다면 이런 허름한 여관에 묵었을 테니까.
‘그래야 목격자를 최대한 줄일 수 있지.’
화려한 여관을 골라봐야, 붙잡히기 더 수월할 거고.
“일단 여기로 가보지.”
요한은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3층 정도 되는 높이인데, 금방 무너질 것처럼 오래되어 보였다. 슬쩍 훑어봤는데도 벌레가 나올 것처럼 열악했다.
‘아무리 위장으로 묵는 곳이라지만 이딴 숙소에 있다니.’
요한이 미간을 좁혔다.
“저, 블란쳇 공작님께서 이 누추한 곳에는 무슨 연유로…….”
“범죄자를 수색하러 왔다. 캐리 마리아라는 자가 지금껏 온 적이 없다고?”
“아! 그 손님들 말씀이시군요. 마침 오늘 들어왔습니다.”
영문을 모르고 끌려왔던 여관 주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당장 공작님께서 오셨다고 불러올까요?”
“아니. 직접 가지.”
요한이 여관에 들어가 쭉 훑어보는 사이 레이몬드가 여관 주인에게 경고했다.
“오늘 일에 대해 쓸데없이 떠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예, 옙!”
여관 주인은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하자 바짝 긴장했다.
“주군. 여관 주위에 기사를 배치해 뒀습니다.”
레이몬드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있어.’
코끝으로 달콤한 체취가 느껴졌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가슴이 뻐근해졌다.
[305호.]
요한이 방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에스텔. 나야.”
그때 기다렸다는 듯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에스텔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
겨우 찾았다. 짧다면 짧았을 그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너무 길었다.
“맞아, 외출은 즐거웠어?”
요한이 겨우 숨을 몰아쉬며 피식 웃었다.
“그딴 편지 하나 놓고 외출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잖아.”
그렇게 막 요한이 문고리를 잡고 열려던 순간이었다.
덜컥, 잠겨 있다.
요한은 짜증스럽게 문고리를 쥐었다. 붉은 눈동자에 파괴적인 빛이 감돌던 순간이었다.
“싫어! 들어오지 마!”
안에 있는 에스텔이 절박하게 외쳤다.
“내가 왜 요한을 떠났는지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알아.”
“아직은, 보고 싶지 않아. 나한테 시간을 더 줘. 부탁할게.”
에스텔의 목소리에선 묘한 물기가 어려있었다. 안에서 에스텔이 겁에 질려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요한은 문고리를 살짝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그럴 거면 미리 말했어야지.”
요한이 스산하게 웃었다.
“이미 도망친 이상 넌 거래할 자격을 잃었어.”
“들어오면 미워할 거야.”
흠칫 굳었던 요한은 이를 꽉 깨물었다.
“미워하든 상관없어.”
콰드득, 문고리가 강제로 뜯어지는 소리가 나며 박살 났다. 요한은 무성의하게 부서지는 나무문을 보며 냉소했다.
‘이딴 문이 보호해 줄 거라 믿었나?’
아무래도 그의 부인은 순진한 만큼 그를 너무 착하게 보고 있던 모양이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몰라서 자꾸 자극할 걸지도?
요한이 막 문을 걷어차며 들어선 순간.
-싫어! 들어오지 마!
“…….”
-내가 왜 요한을 떠났는지 모르겠어?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 위에 놓여진 녹음 마도구에서 익숙한 에스텔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아직은, 보고 싶지 않아. 나한테 시간을 더 줘. 부탁할게.
“하, 하하…….”
-들어오면 미워할 거야.
하필 그것은 요한의 선물이었다.
성녀 행세하던 가짜를 상대할 때 쓰라고 에스텔에게 주었던 물건.
‘문고리를 돌린 순간 발동하게 설치해 뒀나?’
요한이 성큼성큼 방에 들어가 마도구를 들었다. 마도구를 쥐고 있던 요한의 손아귀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싫어! 들어오지 마!
요한은 마도구를 보며 광소했다.
-내가 왜 요한을 떠났는지 모르겠어?
***
덜컹, 마차가 거친 길에서 흔들렸다.
‘……요한.’
나는 창문에 자연스럽게 걸쳐져 있던 나뭇가지를 통해 방 안의 상황을 들여다봤다가 강제로 깨어났다.
‘뭘 바랐던 걸까.’
마차를 몰고 있던 베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요정의 능력이란 건 정말 대단하네요. 마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이렇게 다 통하다니.”
“그렇게까지 엄청난 건 아냐.”
“그래도요. 여관에서 탈출하는 것부터 그 철통같은 기사들의 보안을 다 넘어가는 것까지 다 요정의 능력으로 됐잖아요.”
처음 여관을 잡자마자 내가 확인한 것은 여관 근처에 나무가 있느냐였다.
다행히 여관 뒤쪽으로 큰 나무들이 구석구석 놓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베티와 여관으로 들어간 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나무를 통해 빠져나왔다.
물론 빠져나온 뒤에도 기사들의 철통같은 감시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블란쳇 공작가의 기사가 대단하다 해도 모든 순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난 나무 주위를 지날 때 저택에서 사람들을 재웠던 것처럼 기사들의 주위를 흩뜨려놓았다.
‘그렇게 빈틈을 노려서.’
우리는 요한의 치밀한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왔다.
이제 움직일 곳은 기차역과 정반대인 항구 방향이었다.
“페스칼로스 숲이 보여요.”
“너무 걱정하지 마. 나무들이 도와줄 거야.”
“마님 곁에서 제가 진짜 다양한 경험을 한다니까요.”
베티가 마차를 몰며 고개를 흔들었다.
항구로 가는 직진 코스에, 금지된 숲이었던 페스칼로스 숲이 있었다.
이게 바로 나의 플랜B다.
페스칼로스 숲은 정화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이 드나들지도 않고, 험난해서 뚫고 가기도 어렵다.
하지만 난 나무들에게 도움을 청해 마차가 달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혹시 몰라 플랜B도 세워서 다행이지.’
페스칼로스 숲에 도착하자, 나무들이 내 부탁에 따라 알아서 스르륵 뿌리를 움직여 길을 닦아주었다.
“저, 그런데요. 마님.”
“왜?”
“방에 마님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둔 이유가 뭐예요?”
“시간을 끌려고?”
“그렇지만 그걸로 시간을 크게 끌 수 있었을까요?”
아마 끌 수 있었을 거다.
요한이 내 부탁을, 내 말을 들어주었다면.
‘하지만 들어주지 않았지.’
망설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요한은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이미 도망친 이상 넌 거래할 자격을 잃었어.’
예상했던 대로인데 마음이 씁쓸했다.
“하긴. 큰 도움은 안 됐네.”
그렇게 우리는 페스칼로스 숲을 지나 항구에 도착했다. 그사이 항구에선 블란쳇 공작가에서 내린 수배가 퍼져 있었다.
[범죄자: 베티 블로뉴.]
죄목은 공작 부인 납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