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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무도회의 파트너 (96/182)


96화 무도회의 파트너
2022.11.01.



 
나는 요한과 함께 황궁으로 들어왔다. 내가 처음 연회에서 봤던 황궁은 일부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엄청 큰걸.’

귀빈들이 머무는 별궁은 본궁보다 크기가 작은 데도 압도하는 느낌이 있을 정도였다.


‘아마 이런 걸 노린 거겠지.’

황실의 귀빈은 대체로 황가에 버금가는 권력자들이다.

그러니 황실은 자신들의 권세를 자랑하며 감히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 터다.


‘나야 황실과 대적할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

황실 귀빈으로 온 이사벨라 왕비님이 나를 만나러 티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물론 다른 로이엄 귀족들도 함께.


“블란쳇 공작 부인,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다시 얼굴 봐서 좋네요.”

로이엄 왕국 출신 귀부인들이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이사벨라 국왕 대리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들은 대로 몹시 아름다우십니다.”

“맞아요. 어쩜 이리 아름다우신지…….”

나는 생긋 웃으며 그들을 환대했다.


“과찬이세요. 그런데 다이아나는 보이지 않네요?”

“그 아이는 저를 대신해 다른 제국 귀족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무래도 사냥 무도회 열리기 전이 아니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서 말입니다.”

황실 귀빈으로 모인 사람들은 축제가 시작되기 전 티파티를 통해 교류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정식으로 데뷔를 안 해서 입지가 애매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원칙적으로는 참석하기 어렵지만 참석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다.


“국왕 대리님은 가지 않으셔도 되나요?”

“제가 이곳에 오겠다는데 누가 무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눈을 뜨자, 다른 귀부인들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로이엄 국왕 대리님의 말씀이 맞지요, 블란쳇 공작 부인께서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로이엄 국왕 대리님을 오래 봐왔지만 이리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처음 보네요. 신기해라.”

“쓸데없는 소리.”

이사벨라 왕비는 고개를 저으며 뒤에 있는 시녀를 바라봤다.


“공작 부인이 온다기에 저번에 관심을 보였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시녀가 선물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고대 신화를 담은 고풍스러운 태피스트리가 펼쳐졌다.


“다른 그림이 있다더니 전부 맞춰서 오셨네요.”

태피스트리가 꽤 길다 싶더니, 신화 속 이야기가 다 나와 있었다.


‘천사가 성국을 수호하기 위해 성황에게 축복을 내리는 장면까지 다 있네.’

이사벨라 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전대 블란쳇 공작 부인께 받았던 태피스트리입니다. 물론 이대로는 아니었고, 이 마지막 조각은 우연히 얻게 된 것이지만요.”

고대 신화는 많은 예술가가 사용하는 주제다. 하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신화를 담은 그림일수록 가치가 높다.


‘이렇게 배경이 자세한 그림도 오랜만에 봐.’

천사에게 축복을 받는 성황 그림은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다. 다른 귀부인들이 태피스트리를 보며 감탄했다.


“신성 태피스트리를 선물로 주시다니, 저건 로이엄 국왕 대리님이 가장 아끼는 것인데…….”

“정말 부럽습니다. 블란쳇 공작 부인. 국왕 대리님, 제게도 태피스트리 안 주시는 겁니까?”

“어허. 왜 그러나, 자네들. 블란쳇 공작 부인께서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지 않나.”

나는 감사의 말은 전하며 태피스트리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성황 근처에 나무들이 있네.’

왜인지 그 나무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사벨라 왕비가 에메랄드 귀걸이 하나를 태피스트리 위에 올렸다.


“전대 공작 부인께서 제게 보답으로 주셨던 선물입니다. 블란쳇 공작가에서 필요한 물자를 수급해 주다 친교를 맺게 되면서 제가 받았던 물건이지요.”

“그런 귀한 물건을 왜……?”

“이 귀걸이는 제게도 귀한 물건이 맞습니다.”

이사벨라 왕비는 그리운 듯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의 죽음 이후 버거워하던 제게 처음으로 도움을 주셨던 전대 블란쳇 공작 부인께서 주신 선물이니까요. 하나, 왜인지 이 물건을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선명한 에메랄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한의 어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구나.’

페트리샤도 그렇고, 이사벨라 왕비도 그렇고. 이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에메랄드 귀걸이를 손에 잡은 순간이었다.

찌릿.

손끝에 묘한 전류가 타고 흘렀다. 갑자기 태피스트리 근처의 나무 뒤로 이상한 글자가 보였다.

안개처럼 휘어져 있는 글씨라 나는 주의 깊게 그 글씨를 들여다봤다.


‘이시…… 도르?’

저번에 검은 넝쿨로 변했던 요정 이름이다.


‘왜 그 요정의 이름이 여기에 있지?’

귀부인들이 사교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많은 영식이 스텔라 성녀에게 기사 맹세를 하려 한다지요?”

“이번에 청혼을 하려는 영식도 나왔습니다. 성녀라고 결혼을 하지 못한단 법은 없으니 말이지요.”

나는 귀부인들의 대화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 채 계속 그 이름을 바라봤다. 내 마음의 동요를 눈치챈 나무들이 웅성거렸다.


-이시도르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지?

-그 요정에게 아무래도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째 익숙하기는 한데 어디서 들었는지 왜 자꾸 기억이 안 나는지 원…….

-그 요정을 노린다는 추한 놈을 우리가 알아내야 하는데. 분명 그놈이 네게 저주를 건 놈들일 텐데! 빨리 이뤄지는 게 없으니.

-마지막 요정인 너마저 잘못되면 우리는 또 어찌…….

-이 자식들아, 자꾸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 그러다 말한 대로 이뤄지면 어쩔 것이여!

나무들의 말에 천천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단 뭐라도 나왔으니까요.

-그래, 우연히 전대 블란쳇 공작 부인이 저런 걸 찾아뒀으니 얼마나 다행이느냐.

-그런데요, 이게 정말 우연일까요?

요한의 어머니는 고대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고대 신화 태피스트리를 가진 게 이상한 점은 아니다.


‘왜인지 우연이 아닌 것만 같은데…….’

그때 다른 귀부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블란쳇 공작 부인, 혹시 피곤하신가요?”

“아, 아니에요. 제가 잠시 태피스트리를 감상하다가 정신을 놓고 말았네요.”

본래라면 예법에 조금 어긋난 모습이지만, 이사벨라 왕비의 최측근들답게 오히려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왕 대리님의 선물을 그리 좋아하시다니, 제가 다 뿌듯한걸요. 국왕 대리님, 좋으시겠어요? 저 마지막 태피스트리를 구하느라 연합 왕국 전체를 한 번 더 헤집으셨지 않습니까.”

“큼큼, 조용히 하게.”

이사벨라 왕비는 차를 마시며 말을 돌렸다.


“그래서 스텔라 성녀님이 어떻게 되었다고?”

다른 귀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카를로스 황태자가 스텔라 성녀님과 파트너가 되었다는군요. 듣자 하니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라 연인 사이라고까지 합니다.”

“얼마 전에는 두 사람이서 오붓하게 황궁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다른 귀족들이 목격했다고 하고요.”

“제가 들어보니, 과거에 두 사람이 서로 알던 사이라던데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녀가 황태자와 그렇게 깊은 사이였다고? 언제부터?’

어쨌거나 두 사람이 만난다면, 내게는 좋은 일이다.


‘이제 성녀도 요한한테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는 않겠지.’

이사벨라 왕비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스텔라 성녀라. 이번에 정화 의식을 제대로 치르는지 지켜봐야 할 듯싶군. 이번에도 그때 했던 것처럼 ‘실수’를 저지를지.”

“예, 잘 지켜봐야지요.”

다른 귀부인들도 성녀가 미르유의 가짜 임신을 얘기해 준 일을 기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봐선 어지간한 모습으로는 완전히 뒤집긴 어려워 보이네.’

물론 성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정화 의식에서 무엇을 하려는 걸까?’

 

***

요한은 블란쳇 공작가의 가신들과 함께 습격의 배후를 논의했다.


“단서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금지된 마법에서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다니.”

“주군께서는 따로 발견하신 게 없을 정도니.”

블란쳇 공작가의 가신들은 요한의 마법 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블란쳇 공작가 전체를 노리고 한 공격일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배후에 규모가 큰 집단이 있는 게 틀림없을 터인데…….”

“주군. 어떤 식으로 조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가만히 얘기를 듣던 요한의 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황실과 성국을 중심으로 수상한 낌새가 보이지 않는지 주시해라. 그동안 보내던 첩자의 수도 두 배로 늘려.”

요한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두통에 눈썹을 설핏 찡그렸다. 가신들은 요한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느끼고 알아서 몸을 사렸다.


‘나조차도 처음 보는 형태의 흑마법진이었어.’

에스텔을 집요하게 공격하려 들었던 그 흑마법진을 부순 이후부터 요한의 흑마력에 이상한 변화가 생겨났다.


‘그 기운은 도대체 뭐지?’

흑마법진엔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힘이 담겨 있었다. 요한은 배후를 찾기 위해 그 미지의 힘을 따로 모아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알아내 보려 해도 어떤 종류의 힘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평범한 힘은 아니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 퍼졌다.


‘다행이다. 이제 도망칠 수 있지?’


‘이거 가지고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다시 이 목소리다.’

그 흑마법진을 파괴한 이후 이 목소리가 자꾸만 들리기 시작했다.


‘내 어린 시절과 관련된 것 같은데. 그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지?’

회의가 끝난 뒤에 나가지 않고 남은 에리히가 요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주인님께 마님의 병에 대해 전해 드릴게 있습니다.”

“뭐지?”

“어쩌면, 그동안 신전에서 받았던 성녀의 치료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의 눈빛이 금세 살기를 머금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신전에서 마님이 쓰러지시면서 그때 벌어졌던 일입니다. 시몬 추기경이라는 자가 마님을 치료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마님을 치료하기 위해 신성력을 불어넣던 중 갑자기 두려운 무언가를 본 것처럼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들어온 성녀를 꺼림칙한 눈으로 봤습니다. 마님의 병과 성녀의 치료, 그 사이에 숨겨진 뭔가가 있는 듯싶습니다.”

에리히는 시몬 추기경과 접선해서 상황을 더 조사한 뒤 보고하려 했다. 하지만 시몬 추기경이 신전에만 틀어박혀 따로 만나기 어려웠다.

결국 에리히는 요한에게 먼저 보고하여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하기로 결정했던 거다.

에리히의 보고를 들은 요한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길쭉한 요한의 검지가 의자의 팔걸이를 톡, 톡 두드렸다.


“에리히, 성국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상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블란쳇 공작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라.”

에리히는 절도 있게 가슴팍에 제 주먹을 두드렸다.


“명심하겠습니다.”

요한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조사는 다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역시 주인님께 말씀드리는 게 정답이었어.’

그때 요한이 나가려던 에리히를 불러세웠다.


“너는 이번 습격에 성국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은 어찌 생각하나?”

“성국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흑마법사는 성국과 가장 대립하는 존재였다. 에리히조차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에리히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성국을 심중에 두고 계십니까?”

“가보거라.”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리히는 이미 그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범인이 성국일지 모른다?’

에리히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요한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님의 저 모습은…….’

리베르탄 공작가에게 복수하던 그때 그 모습이었다.

***



“블란쳇 공작님, 어서 오십시오.”

“호위로 따라올 것 없다.”

요한은 에스텔이 기다리는 황궁으로 바로 움직였다.


‘에스텔.’

흑마법진을 보며 뭔가 짚이는 게 있어 보였던 에스텔이 떠올랐다.


‘리베르탄 공작가에서 저주를 받으면서 봤던 건가?’

가신들은 블란쳇 공작가에 대한 협박으로 에스텔을 노렸다 생각하지만, 요한의 감은 에스텔 그 자체를 노렸다고 짚어내고 있었다.


‘왜 에스텔을 노리는 거지?’

에스텔의 생명이 위험하단 생각만으로 속이 뒤틀렸다.


‘무슨 속셈이든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 복도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순백의 실크 드레스를 입은 성녀 스텔라가 요한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성녀는 사르르 미소를 지으며 요한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요한. 여기서 또 뵙네요.”

요한은 갑자기 앞에 나타난 성녀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저 여자는 또 뭔데 여기에서 저런 수작질을.’

요한은 저 짜증 나는 얼굴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살의에 물든 붉은 눈동자가 성녀를 향했다.


‘성녀는 아직 황제가 기대하는 정화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

여기서 성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황제와 틀어지게 된다.


‘이미 황제의 권위로 성녀를 쳐냈으니.’

성녀는 요한을 보며 수줍게 두 손을 모았다. 그녀가 푸른 눈동자를 굴리며 보드라운 입술을 달싹였다.


“공작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스텔라가 아주 살짝 처연하게 속눈썹을 떨다가 다시 우아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폐하께서, 제 후견인 요청을 거절하셨어요.”

“아마 폐하가 아니었더라도, 내가 거절했을 거다.”

성녀의 후견인 제도는 일반적인 후견인 제도와 다르다.

고귀한 성녀는 그 위치답게, 그 귀족가에서 제일 높은 여성으로 우대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성녀의 후견인이 되었을 경우 요한은 부인인 에스텔 대신 공식 석상에서 무조건 성녀를 에스코트해야 했다.

성녀의 반려가 된 것처럼.


“성녀의 후견인 제도는 다른 후견인 제도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그, 그랬나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짓을 저지른 거지?”

솔직히 요한은 아직도 성녀 스텔라 때문에 에스텔이 불안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너 때문에 내 부인은 모욕당할 뻔했다. 물론 피곤한 일도 생길 뻔했지.”

그때 스텔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그 사이로 가벼운 물기가 어렸다.


“세상에…… 전 그런 줄 몰랐어요.”

“그저 몰랐다?”

“전 인연이 있던 블란쳇 공작님이 제 후견인이 되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인데.”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요한을 바라보던 스텔라가 다시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후견인 제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나 봐요. 심려 끼쳐드려 죄송해요.”

어쩐지 애쓴 티가 묻어나는 우아한 미소. 그 모습은 성녀의 체면을 지키려 하지만, 여린 속내를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요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수작이지?’

성녀가 우아하게 몸가짐을 다듬은 채 요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그녀가 가련한 목소리로 요한에게 달싹였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났네요.”

“…….”

“성녀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공작님께는 못난 모습만 보여드리는 것 같아요.”

성녀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하얀 목선을 드러냈다.


“공작님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속세에서의 제가 생각나서일까요, 저도 한때는 귀족가의 레이디였거든요.”

살랑살랑 요한에게 가까이 다가간 스텔라가 순진하게 배시시 웃었다.


“그래서 더 공작님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가 봐요.”

어떠한 의도도 없어 보이는 맑은 얼굴, 비밀을 말하듯 나긋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래서 그런데, 이번 사냥 무도회에서 제 파트너가 되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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