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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완벽한 결혼식 (73/182)


73화 완벽한 결혼식
2022.08.12.



 
미르유는 아침 일찍 잠에서 일어났다.


‘완벽해.’

사실 그녀는 이사벨라 왕비의 허락을 받고도 쉽게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성녀의 말과 달리 미르유는 실제로 임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축복한 일이에요. 누가 의심하겠어요?’


‘하지만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그 전에 아무 사고나 입어서 유산한 것처럼 하면 되죠. 그동안 가짜 흉터로 미르유가 했던 것처럼 하면 돼요.’

성녀의 말대로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미르유의 임신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모두 성녀의 축복이 붙은 이 엄청난 결혼식에 끼어들고 싶어 난리였으니까.

사교계의 귀족들, 이름난 명사들도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원했다. 협찬을 해주지 않는 테밀러 상단주조차도 투자하겠다는 명목으로 거금을 들여 은백조 웨딩홀과 결혼식 비용을 지원해 줬다.


‘내가 은백조 웨딩홀에서 결혼을 하게 되다니.’

제국에서 가장 이름 높은 웨딩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숲에 위치해 있어서 신부라면 누구나 꿈꾸는 웨딩홀이었다.

예약을 매번 받는 것도 아니어서 로이엄 왕비도 은백조 웨딩홀을 예약해 주진 못했다.


‘마침내 내 행복을 되찾았어.’

이사벨라 왕비와 헤센은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더 지극정성으로 미르유를 돌봐주었다. 다이아나 역시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앞으로 계속 날이 이어지겠지?’

장미와 우유로 가득 채운 욕조에서 목욕하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예전에 골라두었던 웨딩드레스는 목을 가리는 디자인이라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새롭게 맞췄다.

신부를 위해 특수 제작된 다이아몬드 귀걸이에 팔찌까지 그녀의 결혼식은 더욱 근사해졌다.


“세상에, 성녀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런 걸까? 오늘 영애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네요.”

“쥬티 영애는 원래 아름다우셨어요. 그러니 로이엄 왕세자님께서도 첫눈에 반하셨겠죠.”

신부 대기실에 오는 하객마다 아름다운 미르유의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그동안 수수하고 가녀리게 다녔던 미르유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 훨씬 더 극적이기까지 했다.


“미, 미르유. 결혼 축하한다.”

쥬티 남작가가 찾아오자마자 미르유의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었다.


“어서 와요.”

사람들은 미르유가 가족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미르유는 자신의 눈치를 보는 쥬티 남작가가 같잖았다.


“그거 봐요, 다 제가 알아서 할 거랬잖아요. 꼭 이렇게 결과를 봐야겠어요?”

“그래, 그때 널 믿고 기다렸어야 했는데. 역시 내 딸이야.”

쥬티 남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오자, 미르유는 그의 정강이를 발로 툭 찼다.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요?”

“그러면 뭘…….”

“전 이제 로이엄 왕비가 될 사람이에요. 상황 파악 좀 해야 하지 않아요?”

미르유가 으스대듯 제 배를 쓸어 보였고, 침묵하던 쥬티 남작이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너를 사생아라고 무시해서 미안하다. 너무 흥분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구나.”

“그게 끝?”

“여보, 당신도 미르유한테 사과해. 로이엄의 축복을 임신한 미르유의 마음이 아프다잖아.”

쥬티 남작 부인은 황당한 듯했으나, 제 딸을 데리고 입술을 깨물며 미르유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미안하다, 미르유. 너를 걱정해 준다고 했는데 무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어.”

“어휴, 아직도 그딴 소리예요?”

미르유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남작 부인과 딸을 쫓아냈다. 다음으로 찾아온 건 다이아나였다.


“다이아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가족들과 대화는 잘했어요?”

“그럼요. 좀 피곤하긴 했지만…….”

다이아나가 피곤한 듯 웃는 미르유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미르유 새언니, 결혼 축하해요. 드디어 우리가 가족이 되네요.”

“그러게요, 가족.”

미르유는 애틋하게 제 배를 바라봤다.


“제 아이에게 좋은 가족을 선물해 줄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던 다이아나가 미르유에게 말했다.


“새언니의 결혼 축하 선물은 장차 나올 아이를 위한 것으로 골랐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드릴게요.”

“뭘 그런 것까지…….”

“공주인 제가 이렇게 아이를 신경 쓰면 모두가 더 아이를 축복해 줄 테니까요.”

미르유는 다이아나의 말에 볼을 붉혔다.


“고마워요. 이 아이도 이렇게 좋은 고모가 있다는 걸 알면 바로 나오고 싶어 할 거예요.”

다이아나는 헤센을 만나러 떠났고, 미르유는 다시 엄선한 하객들에 둘러싸였다.

완벽한 결혼식이다.

***

미르유의 결혼식은 점심에 시작했다.

나 역시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내 치장을 돕던 베티가 투덜거렸다.


“하객이라서 더 예쁘게 꾸미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더 꾸미면 그 여자 같은 건……!”

“더 꾸미지 않으면 내가 밀릴까?”

“당연히 아니죠! 누더기를 입고 나가도 마님이 더 아름다우실 거예요!”

화장을 도와준 베티는 액세서리를 가지러 잠시 나갔다.


“오늘은 진짜 시간이 중요해요.”

그 틈에 나는 나무들과 대화했다.


“저번처럼 갑자기 이런 거 안 돼요. 알았죠?”

-허허,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래, 아가. 이번엔 절대 실수 같은 거 없을 거다. 네 요정의 힘이 회복돼서 이젠 나무들도 조종할 수 있잖니. 다 잘 될 거란다!

끼이익-


“베티, 왔어?”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보이는 건 베티가 아닌 요한이었다. 요한이 베티가 가지러 갔던 보석함을 들고 나타났다.


“요한 어디 갔던 것 아니었어?”

최근 요한은 바빠서 자리를 자주 비웠다. 그래서 오랜만에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요한에 대한 내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러 미르유 생각에 집중하면서 결정을 미뤄두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기가 무섭게, 요한은 얼굴만으로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중요한 일인데, 딱 맞춰서 돌아와야지.”

“결혼식장에 같이 가게?”

요한이 결혼식장에 오게 되면 계획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아니, 안 가.”

보석함을 화장대에 올려둔 요한이 내 뒤에 서서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따로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지?”

“응. 하지만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만, 말하기 싫은 걸 캐물을 정도는 아니야.”

요한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은근한 손길로 머리를 손질해 줬다. 파란 장미와 리본으로 장식하는 모습은 베티보다 훨씬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난 이따금 목덜미와 귓가에 자연스럽게 스치는 그의 살갗이 신경 쓰여 움찔하게 됐다.


“이렇게 하면 끝.”

요한이 보석함에서 물방울 귀걸이를 꺼내 귀에 매달아줬다.


“마음에 들어?”

거울로 너머로 요한이 보였다.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의 시선은 내 안쪽을 파헤치고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몹시 강렬했다.

왜인지 모르게 입안이 바짝 말라 침을 삼켰다.


“응, 예쁘네. 머리 이렇게 다듬어주는 언제 해봤대?”

“오래전에?”

요한은 픽 웃으며 대답했다.


“맨날 머리를 엉망으로 하고 다니던 누이가 있었거든.”

가족 얘기다.


‘이렇게 가족 얘기를 해준 건 처음인데.’

왜인지 모를 기대감 때문인지, 가까이 붙어서 달싹거리는 요한의 숨결 때문인지 나는 무척 긴장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누이? 가족 이야기야?”

“응. 지금은 볼 수 없는 내 가족들.”

“아…….”

“나중에 얘기해 줄게. 지금은 나보단 네가 더 시간이 없잖아?”

나는 자연스럽게 내 머리 부근에 턱을 기대는 요한을 보며 안정감을 느꼈다.


‘이제 그를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때 요한이 기습하듯 내 볼에 입 맞췄다.


“……!”

갑작스러운 접촉에 내가 토끼처럼 눈을 뜨자, 요한은 장난스럽게 입매를 들어 올렸다.


“이제 익숙해져야지.”

“말을 안 하고 하니까 그렇지.”

낮게 깔린 목소리에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요한의 엄지가 은근하게 내 입술 부근을 문질렀다.


“그럼 말만 하면 마음대로 해도 되겠네?”

“뭐, 뭐?!”

“네 말대로 아주 잘해볼게. 이제 키스한다.”

뭐, 뭐?!

하지만 요한은 예고와 달리 뒤에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요한이 배부른 맹수처럼 낮게 깔린 웃음소리를 냈다.


“장난인데.”

이제 난 그의 품에 안길 때마다 든든함과 익숙한 설렘을 느끼게 됐다. 요한을 팔꿈치로 툭 치자, 요한이 두 손을 들며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내일 널 데리고 갈 곳이 있어.”

“어딘데?”

“네가 좋아할 만한 곳. 거기서 단둘이 데이트 좀 하려고.”

나는 심장이 콩닥거리는 게 부끄러워서 일부러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내가 좋아할지 어떻게 알아?”

“다 알지.”

요한은 오만하게 웃었다.


“네 일인데 내가 왜 몰라.”

 

***

결혼식이 시작했다.


“신부 입장!”

미르유는 쥬티 남작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식장에 들어섰다.

은백조 웨딩홀은 명성만큼이나 훌륭했다. 하객들은 웨딩홀의 접대에 흡족해하며 화기애애하다가 등장한 미르유를 보고 박수를 쳐줬다.


“정말 너무 아름답군요.”

“쥬티 영애가 저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흉터가 없군요.”

미르유는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곱고 매끄러운 목을 완전히 드러냈다. 사람들은 깨끗한 미르유의 목을 보며 성녀의 축복을 떠올렸다.


“로이엄 왕세자도 그렇고, 너무 좋은 선남선녀로군요.”

“성녀님의 축복을 받은 결혼식이라…… 너무 부러워요. 저도 저런 결혼식을 할 수만 있다면.”

미르유를 에스코트던 쥬티 남작이 미리 서 있던 헤센에게 건네줬다.


“잘 부탁하네.”

헤센은 대답하지 않고 미르유를 에스코트해서 움직였다.


‘이상하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데다 멋대로 고개를 돌릴 수 없어서 미르유는 헤센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헤센도 나처럼 긴장한 걸까?’

확실히 결혼은 인생의 중대사이니만큼 긴장해서 쥬티 남작의 말을 잘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르유는 먼저 헤센에게 옆으로 걸어가고 있는 헤센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헤센, 너무 멋있어요.”

“……미르유도 아름답습니다.”

헤센의 대답을 듣자, 미르유는 안심이 됐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붉은 길의 끝, 로이엄 왕국에서 직접 초빙한 추기경이 둘의 주례를 봤다. 주례사가 둘의 결혼에 대해 축사하며 마지막 맹세를 물었다.


“신부 미르유 로이엄, 평생 신랑인 헤센 로이엄을 따르고 부부로 살 것을 맹세합니까?”

“네.”

드디어.


“신랑 헤센 로이엄, 평생 신부인 미르유 쥬티와 부부로 살 것을 맹세합니까?”

미르유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환히 웃었다.

하지만 헤센은 추기경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랑의 침묵에 식장이 무거워졌다. 공기 중으로 하객들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초조해진 미르유가 소곤거리듯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헤센?”

“…….”

그때 아무 말 없던 헤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미르유를 바라봤다.


“미르유,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당연히 사랑하죠. 왜 그래요?”

그제야 미르유는 헤센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 것만 같았다.


‘왜지?’

 

 
헤센의 얼굴이 이상했다.

원래도 동화 속 왕자님처럼 찬양받던 외모는 결혼식 날이라서인지 유독 근사했다. 하지만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입매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면 나한테 숨기고 있는 걸 다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 와중에도 미르유를 바라보는 주황색 눈빛은 따듯했다.


‘아닌가?’

등줄기가 싸늘했다. 절박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미르유는 왕자님처럼 큰 헤센을 언제나 파악하기 쉽다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만은, 가장 중요한 오늘만은 이상할 정도로 헤센의 마음을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에스텔이 헤센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 거야.’

하지만 미르유는 마음이 불안할수록 더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르유가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헤센도 알잖아요. 내가 당신한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숨기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다 처리했다. 흑마법으로 속이던 흉터도 성녀의 축복으로 완전히 정리했다. 당연히 흑마법의 매개가 되었던 금반지도 처분했다.


‘증거 같은 건 없어.’

헤센이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네, 그런 거예요. 너무 걱정 말아요, 내 사랑.”

헤센이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이자, 미르유는 겨우 안심했다.


‘감히 내 결혼식을 망치려 해?’

결혼해서 로이엄 왕비가 되기만 하면, 바로 자리를 잡아서 에스텔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찾아내리라.

그 순간, 헤센이 반지 상자를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반지 상자가 열려 반지가 바닥을 뒹굴었다.

미르유가 자기도 모르게 바닥을 뒹구는 두 사람의 결혼반지를 바라봤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헤센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사랑을 믿을 수 없습니다.”

“헤센…….?”

“더 이상, 당신의 추악한 거짓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미르유는 한순간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죄송합니다, 하객 여러분.”

뒤돌아서는 헤센의 눈동자에 경멸이 서렸다. 헤센은 뒤의 하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결혼식은 무효입니다. 이 여자는 귀족이라며 저를 속인 쥬티 남작가의 사생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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