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왜 내가 했다고 생각해요? (60/182)


60화 왜 내가 했다고 생각해요?
2022.06.28.



 
나는 다이아나 공주의 초대장을 만지작거렸다.

로이엄 왕국의 인장을 금으로 박아넣은 고급 초대장. 이 초대장은 그 자체로 날 귀빈 대접하겠단 의미를 지녔다.

거울 너머 빗질하는 페트리샤를 보고 물었다.


“페트리샤, 아직 답신은 없죠?”

“예. 아무래도 마님께서 거절하실 거란 생각은 못 했던 모양입니다.”

“웬만해선 로이엄 왕국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난 그 초대를 거절했다.

그것도 아주 예의 바르게, 문제의 여지가 없도록.


‘거긴 미르유의 약혼자 집안이잖아.’

친한 친구라는 나디아 영애한테 거짓말을 한 걸 보면, 거기에도 이상한 소리를 해뒀을 게 뻔했다.


‘사서 고생하는 취미는 없거든.’

딱히 좋은 일을 겪을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참, 저번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되고 있어?”

“아, 미르유 쥬티 양 얘기군요. 당시 만났던 이들의 이름을 확인했으니, 조만간 답신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미르유 소식을 듣자마자 상황 파악에 나섰다.


‘리베르탄의 입양아가 착하고 힘 약한 가문의 아가씨를 괴롭혔대.’

‘온갖 패악질을 부리던 것도 모자라 가문을 들먹이며 협박까지 했다더라.’

‘그 아가씨는 그 입양아에게 잊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대.’

바로 알 수 있는 건 뜬소문 같은 이야기들뿐이었다.


‘미르유가 얘기했다는 걸 확실히 확인해야 해.’

그래서 난 사교계에 아는 게 많은 페트리샤에게 부탁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한 몸 바쳐 마님의 명령을 완벽히 수행하겠습니다.”

“……그럴 필욘 없는데.”

“그러면 영혼까지 바쳐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페트리샤의 청록색 눈동자가 비장하게 빛났다.

솔직히 페트리샤에게 부탁할 때도 뭔가를 기대하고 부탁하진 않았다. 에리히와 베티에게도 부탁했으니까.

하지만 페트리샤에겐 뭔가 달랐던 모양이다.


‘이제 저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구구절절 사과하는 페트리샤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내 시중도 맡겼다.

오늘 내 머리를 페트리샤가 빗질해 주는 것도 그 이유다. 긴 백금발을 쓸어내리는 페트리샤의 손이 묘하게 들썩였다.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없는데.’

가끔씩 콧노래도 불렀다 멈추기까지 했다.


‘알수록 참 신기한 사람이야.’

페트리샤가 지그재그로 땋은 머리에 장미를 장식해 주었다.


“오늘 참석하신다는 장소의 분위기에 맞춰 가볍게 꾸며봤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렇게 땋은 건 처음 해보는데, 너무 예쁘네.”

페트리샤는 무표정하게 끄덕였다.

언제나 같은 표정인 페트리샤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

오늘 나는 모르스 부인의 살롱에 방문했다.


‘규모가 꽤 있네.’

연합 왕국 파티에서 알게 된 나디아 영애의 모친의 살롱으로, 오늘 이곳에서 모임이 열린다.

살롱 모임은 사교계에 입문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곳이었다.

보통 살롱 모임에서 사교계 인사들과 친분을 다지기 때문이었다. 초대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고, 텃세가 심해서 문제지만.


‘나디아 영애가 저번에 내게 빚을 졌으니, 웬만하면 내 편의를 봐주겠지.’

여러 가지로 볼 때 굉장히 괜찮은 상황이다.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나디아 영애가 모친을 데리고 나를 마중 나왔다.


“안녕하세요, 블란쳇 공작 부인. 저희 어머니세요.”

“안녕하십니까, 데펩의 시스티나 모르스입니다.”

모르스 부인은 나디아를 똑 닮은 이지적인 귀부인이었다. 모르스 부인이 나디아를 보며 얕은 한숨을 쉬었다.


“저번 파티에서 제 딸아이가 부인께 큰 무례를 저질렀다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부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이미 다 잊은 일인걸요.”

모르스 부인의 눈에 고마움이 스쳤다.


“오늘 살롱에는 처음 오시지요? 제가 공작 부인께 소개를 드려도 괜찮습니까?”

그걸 위해 왔는데 당연하지!

내 끄덕임에 모르스 부인은 우아하게 살롱 모임의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모르스 살롱은 알아본 대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성별이나 나이를 크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르스 부인은 차근차근 살롱에 참석한 사람들을 인사시켜 주었다. 다들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것처럼 눈을 끔뻑였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

살롱 주인인 모르스 부인이 소개해 줘서인 것 같았다.


“곧 다 같이 차를 마시며 새로운 주제에 대해 토론할 거예요. 부인께선 이번 모임이 처음이시니, 편하게 즐겨주시면 됩니다.”

그때 2층에서 보고 싶지 않은 뒷모습이 보였다.


‘짧은 은발?’

체구부터 머리 스타일까지. 그와 뒷모습이 너무 똑같았다.


‘리안드로 펠시스가 왜 여기에…….’

나는 모르스 부인을 보며 물었다.


“펠시스 공자께서 이 모임에 자주 오시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회원인 펠시스 후작 부인을 대신해서 참석하신 거예요.”

그거라면 다행이다.

어차피 이번 모임은 가벼운 자리라, 토론만 가진 뒤 집으로 가도 된다.


‘여차하면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도 꽤 있고.’

리안드로 때문에 좋은 기회를 피하는 게 어쩐지 억울하기도 했다.


‘모르는 척 무시하다 가자.’

내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건지, 모르스 부인은 2층으로 가지 않고 1층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다행히 마지막 시간인 토론 시간까지 리안드로를 마주치지 않았다.

모르스 부인이 이번 토론 주제인 고대 신화에 대해 얘기하려 할 때였다. 살롱 경비원이 모르스 부인에게 급히 달려왔다.


“부인, 밖에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비원은 모르스 부인에게 귓속말했다. 모르스 부인의 얼굴이 살짝 희게 질렸다.


“……이렇게 갑자기요?”

“예. 워낙 급한 볼일이라 미리 말씀을 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이건.”

벌컥-!

한 여자가 성급하게 들어왔다.


“제가 모르스 부인을 직접 뵙고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모르스 부인도 제 사정을 듣고 나면 이해해 주실 겁니다.”

로이엄 왕국인 특유의 갈색 피부, 포니테일로 초콜릿색 머리를 묶은 여자였다.


‘다이아나 공주?’

대강의 인상착의를 외워두었기에 한 번에 알아봤다.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더니…….’

다이아나 공주는 들판을 뛰어 달리는 야생마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모르스 부인이 껄끄러운 목소리로 다이아나 공주에게 지적했다.


“로이엄 공주님. 살롱 주인인 제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오시다니요.”

하지만 다이아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르스 부인. 급한 문제를 처리해야 해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제 살롱 모임에서 말입니까?”

“예. 정확히는-”

다이아나의 날 선 주홍색 눈동자가 주변을 훑다 멈췄다.

정확히 나를 보고서.


“거기 숨어 있었군.”

다이아나가 짓씹듯 중얼거렸다.


“새언니, 들어와요. 역시 제 예상대로 팔자 좋게 피해 다니고 있었어요!”

“다이아나, 너무 소란 피우면 안 돼요.”

열린 문 사이로 다이아나의 일행이 들어왔다.

긴 밀색 머리카락, 흰 피부에 색소 옅은 헤이즐넛 색 눈동자.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몸에 수수한 이목구비, 특이하게도 목에 걸고 있는 금반지 하나.

처음에는 그녀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미르유 쥬티?’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괜히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칠 수도 있잖아요.”

힘없이 내리뜬 눈, 입가에 짓는 서글퍼 보이는 미소, 일부러 올린 듯한 목소리, 차분한 말투.


‘왜 껄끄럽지?’

미르유가 내 앞과 달리 리베르탄 공작가 사람들 앞에서 착한 모습만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건 그때의 모습과도 너무 달랐다.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옷을 걸친 것처럼.’

미르유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에스텔.”

“걱정 마세요, 새언니. 저만 믿어요.”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온 다이아나가 못마땅한 듯 내 위아래를 훑었다.


“안녕하십니까, 블란쳇 공작 부인. 저는 다이아나 로이엄입니다. 제 새언니에게 하실 말씀 없나요?”

“글쎄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아직 나는 미르유에 대해 다 파악하지 못했다.


‘성급히 대답하면 상황이 꼬일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이아나에게 물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렇게 나오신다는 건가요?”

다이아나는 이를 아득 갈며 미르유를 가까이 당겼다.


“미르유 언니를 보고도, 뻔뻔하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죠?”

미르유는 눈물을 삼키는 것처럼 호흡을 떨었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에, 에스텔. 반가워.”

“미르유 언니도 말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잖아요!”

나야말로 미르유가 뭔 말을 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미르유는 다이아나의 기대에 부응해 주지 않았다.

파리하게 떨리는 손으로 목의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리던 미르유. 그녀가 울먹거리며 다이아나의 팔을 잡아당겼다.


“……다이아나, 그만 해요.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요.”

“미르유 언니.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다이아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설마 미르유 언니를 앞에 두고도 자기 잘못을 모르는 척하려는 거예요? 귀족 영애라면 흉터가 얼마나 심각한 건지 뻔히 다 알면서…….”

“흉터요?”

“그래요! 흉터!”

미르유를 감싸 안은 다이아나는 악을 지르듯 소리쳤다.


“당신이 미르유 언니의 목에 칼로 그어버린 그 흉터!”

“…….”

“언니는 아직도 목을 가리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도 못해요.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어요!”

고요한 살롱 내부에 울분에 가득 찬 다이아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숨소리도 내지 않던 살롱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미르유는 불안한 듯 손을 떨며 목의 리본을 움켜쥐었다.


“에스텔,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아.”

미르유가 겨우 용기 낸 것처럼 입을 열었다.


“네가, 진심으로 그때 일을 사과해 주기만 한다면, 나는 다 잊을 수 있어.”

미르유의 눈가에서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 것처럼 아롱거렸다.


“너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미안해.”

미르유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미안하다고?”

“그래, 미안해. 네게 그런 슬픔이 있는 줄 몰랐어.”

내 빠른 사과에 모두가 충격에 빠져 조용해졌다. 다들 내가 악을 쓰든 뻔뻔하게 나오든 부정할 것이라 예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이미 흐름은 내가 가해자인 것처럼 되어버렸어.’

아무런 증거도 없이 결백을 주장해 봐야, 나만 우스워질 뿐이다.


‘일단 상대를 마구 자극한다.’

얼이 빠져 나를 멍하니 주시하던 다이아나가 내게 버럭 소리쳤다.


“지금 사람들 앞이라고 말뿐인 사과로 끝내려나 본데, 그딴 수작이 먹힐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본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잖아요. 이딴 사과 받자고 미르유 언니가 용기 내서 온 줄 알아요!”

다이아나가 날 위협하듯 다가왔다. 내가 앉아 있는 것 자체도 짜증 나는지 목소리가 더욱 격렬해졌다.


“똑바로 다 털어놔요, 당신이 저지른 악행! 당신이 미르유 언니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부 다 털어놓고 사죄하라고요!”

“…….”

“왜, 미안하다더니 그건 또 못하겠어요?”

건수라도 잡았다는 양 비죽 입꼬리를 올리는 다이아나를 보며, 내가 차분히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제 잘못이 뭔데요?”

“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네요.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다이아나가 애틋하게 미르유의 어깨를 토닥였다.


“새언니, 힘들어도 조금만 더 용기를 내주세요. 사람들 앞에서 보여줘요, 저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미르유는 가녀린 손가락 끝으로 리본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에스텔이 용기 내서 사과해 줬는데-”

목을 감싼 리본이 느슨해졌다.

슬그머니 드러나는 살갗 위로 칼로 그은 듯한 투박한 자상이 은근히 드러났다.


“저, 정말로 흉터가…….”

“블란쳇 공작 부인이 저질렀다는 그 소문이…….”

그 흉터를 본 순간 나는 눈을 크게 깜빡였다.


‘잠깐만 그러면.’

아까 전부터 계속 찜찜했던 게 확실해졌다.


‘그렇게 됐던 건가?’

그사이 미르유가 리본을 다 내리지 못하고 목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다이아나는 미르유를 껴안으며 서럽게 소리쳤다.


“어디 한번 이 흉터를 보고도 말해봐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그 순간 한 남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미르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며 물었다.


“쥬티 영애, 도대체 어떤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리안드로였다.

***

리안드로는 미르유를 흉터를 보며 침음했다.


‘누가 봐도 깊게 찌른 흉터다.’

저 정도 흉터라면 죽이려고 했다고 봐야 했다.


‘과거부터 이런 악독한 짓을…….’

그 지독한 악랄함에 리안드로는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았다.

피해자인 미르유가 울고 있는데도 에스텔은 무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분홍빛 백금발을 장미로 장식한 화려한 모습으로.

리안드로가 에스텔에게 부탁했다.


 


“블란쳇 공작 부인, 당장 쥬티 영애께 사죄하십시오.”

“방금 내가 한 것은 사과가 아니었나요?”

“지금 당신의 말장난을 받아줄 상황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덕도 없는 겁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에스텔이 미르유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내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거야 저 흉터에 대한 진정한 참회 없이 무성의한 사과였으니-”

“그렇지만 저 흉터는 내가 만든 게 아닌걸요.”

일순, 살롱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왜 내가 했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다이아나가 쏘아대는 얘기만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다이아나가 거칠게 반응했다.


“사과로 안 통하니 변명할 마음인가 본데요.”

“죄송하지만, 내가 사과한 건 흉터에 대한 게 아니었어요.”

“뭐라고요?”

“그건 미르유한테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에스텔이 미르유를 감싸 안는 것처럼 다가가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금반지 잘 어울리네.”

미르유가 이해하지 못해 넘어가려 하자, 에스텔이 지나가듯 한마디를 덧붙여줬다.


“네 어머니께서 보시면 기뻐하시겠어.”

그 순간, 미르유의 입매가 미세하게 굳었다.


“…….”

“다행이야, 미르유! 둘만의 비밀이라 생각해서 고민했는데.”

에스텔은 미르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떨어져서 생긋 웃었다.


“역시 넌 참 착하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리안드로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겁니까?”

“수작이라니요.”

에스텔은 긴장으로 굳은 미르유의 리본을 상냥하게 정리해 줬다.


“다들 오해하시고 계셔서 말씀드려요. 제가 말하려던 건-”

“잠깐!”

미르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여기서 그만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미르유는 에스텔이 정리해 주던 리본을 꽉 당기며 애써 웃었다.


“에스텔과 제 사이에 오해도 있었던 것 같고…….”

다이아나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에스텔을 노려봤다.


“새언니, 뭐가 무서운 거야? 저 여자가 협박한 거 맞지?”

“제가 그런 무서운 짓을 할 리 없잖아요.”

에스텔이 미르유를 보며 속상하다는 듯 물었다.


“미르유는 어떻게 생각해?”

에스텔의 시선이 미르유의 목에 걸린 금반지로 향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거지만.’

처음엔 단순히 미르유가 하고 온 목걸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리본을 푸는 와중 기이할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 금반지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저 금반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요정인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저 반지는.’

미르유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일 거다.


“네 금-”

“다이아나, 가요! 저 너무 힘들어서…….”

다이아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르유에게 물었다.


“새언니, 우리 용기 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갑자기 왜 또 숨으려 하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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