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내가 본 네가 진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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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내가 본 네가 진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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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내가 본 네가 진짜 같다
2022.05.27.
악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도대체 그 쿠키가 뭐기에?”
“원래 가치는 상대적인 법이다. 넌 고작 그딴 쿠키를 대가로 받아서 뭐 하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요한은 악마에게 픽 웃었다.
“협상은 결렬이다.”
“이봐-!”
악마는 요한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계약에서 상대를 멋대로 구속할 수 있는 조항은 없었다.
악마의 형상이 빠르게 사라졌다. 혼돈의 근원인 악마가 사라진 제단 위에 피안화가 피어났다.
‘악마가 에스텔이 준 쿠키를 요구했다.’
에스텔에게 비밀이 있다. 어쩌면 시한부 외에도 뭔가가…….
찌릿-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두통에 요한이 이를 꽉 깨물었다.
‘뭔가를 잊은 것 같은데.’
시간이 만찬 전임을 확인한 요한은 블란쳇의 비밀 고문실을 찾았다.
비밀 고문실은 블란쳇 내부에서 처벌할 죄인을 가두는 곳이다. 당연히 반역죄로 끌려가지 않은 리베르탄의 사용인들도 있었다.
“일어나.”
요한이 벽에 매달린 죄수를 깨웠다.
“브, 블란쳇 공작님……?”
이 죄수는 리베르탄 공작 부인의 최측근으로, 에스텔을 모셨다던 하인이다.
“에스텔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다.”
“에스텔? 리베르탄에 입양되셨던…….”
“그래. 네가 모셨던 그 에스텔 아가씨.”
요한은 딱딱하게 물었다.
“에스텔의 몸에 옅은 흉터가 있었다. 네 아가씨의 몸에 상처가 나는 걸 방관했지?”
“흉터가…… 있었습니까?”
죄수의 눈이 점점 흐릿해지고, 나오는 말도 어눌해졌다.
“아, 흉터. 말도 안 되는 흉터로 온 사용인을 들볶았던 일인가?”
“똑바로 말해.”
“흉터…… 에스텔 아가씨가 사소한 상처로 온 집안 사람들을 괴롭히고 패악질을 부렸습니다.”
요한의 거친 손길이 죄수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사소한 상처에, 흉터가 진다고? 그렇게 패악질을 부렸는데 흉터가 남아?”
“사실입니다! 치료는…… 일부러 치료도 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에스텔 아가씨는 자기가 불리할 때마다 상처를 냈어요!”
잠잠했던 죄수가 몸을 마구 뒤틀며 소리쳤다.
“주인님과 주인마님께 죄책감을 씌우기 위해서겠지요! 그래서 다들 에스텔 아가씨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요!”
쾅! 요한이 벽에 죄수의 머리를 박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입조심해.”
“불쌍한 주인님, 주인마님, 우리 아가씨. 어쩌다 그런 가짜를…….”
“우리 아가씨라고?”
요한은 죄수의 눈동자를 자세히 확인했다.
눈동자가 초점 없이 몽롱했다.
“……예, 우리 사랑스러운 예스텔라 아가씨. 그 가짜 아가씨가 우리 아가씨 걸 다 빼앗았어요.”
“그래, 가짜가 어떻게 빼앗았단 거지?”
요한은 강압적인 손길을 유지한 채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네가 솔직히 말하면 네 예스텔라 아가씨께 큰 도움이 될 거다.”
“그건…….”
하지만 죄수에게서 유의미한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갈수록 일관되지 못한 이야기만 나왔기 때문이다. 죄수가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얘기하던 진술은 하나뿐이었다.
에스텔은 리베르탄 공작가에서 사랑받았으면서, 패악질을 부리며 사람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들은 에스텔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진짜인 우리 예스텔라 아가씨의 자리를 차지한 주제에!”
“입 다물어.”
요한은 귀가 썩을 것 같아 죄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 죄수뿐만이 아니다.’
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죄수들과 우리 측 첩자의 진술과도 비슷해.’
하나쯤은 다른 진술이 나올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그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정말 그 흉터조차 에스텔, 네 악행이었다고?’
모든 사람이 에스텔을 깎아내렸다.
‘참 이상하지.’
본래의 요한이라면, 그들의 평가에 따라 판단했을 거다. 그게 합리적이니까.
당시의 사람들과 주변 정황을 따져보면, 그게 진실이니까.
비밀 감옥에서 나온 요한이 검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본 네가 더 진짜 같다.”
리베르탄의 처형일이 가까워졌다.
이제 리베르탄의 처형은 2일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그들을 그리 쉽게 보내지 않고 처형대에서 빼돌려 고통스럽게 할 생각이지만-
‘이대로 괜찮은가?’
요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
나는 가만히 서서 에리히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상처가 아니면 의미 없으니까요.”
솔직히 에리히의 슬픔 따위 내 알 바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해.’
피가 흐르는 손을 뒤로 숨긴 에리히의 모습 위로 어린 내가 겹쳐졌다.
리베르탄에서 학대받고도 학대인 걸 부정하던 어린 나, 사랑받고 싶어서 내 잘못이라 여기던 그때의 어린 에스텔.
‘성녀에게 소리칠 만큼 흉터가 의미 있던 거겠지?’
그래서 말해버렸다.
모두가 부정해도, 그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상처는 상처라고.
본인이 기억하는 한 그 고통과 고통을 견디던 순간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고.
그때 갑자기 덤불 사이로 아름다운 푸른색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났다.
에덴 로즈였다.
‘난 지금 꽃 같은 거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왜 에덴 로즈가 갑자기 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아가, 해냈구나! 장하다!
-그래. 그렇게 요정의 힘을 쓰면 되는 거다!
나무들은 축제라도 벌일 것처럼 환호했다.
그와 달리 에덴 로즈를 보고 충격받은 에리히는 한 줄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눈가를 붉히며 울고 있는 에리히는 물의 요정처럼 청초했다.
“제가 마님께 저질렀던 모두 무례, 함부로 마님을 단언하고 몰아붙인 모든 것을 사죄하고 싶습니다.”
그다음에는 무릎까지 꿇으며 참회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사과를 드린다고 해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죄드립니다.”
이런 참회를 바란 적 없는데.
“저한테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난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에리히가 어떤 것을 사과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과를 받아줬다 일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솔직히 남작님께서 전에 하셨던 말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닌걸요.”
“아닙니다. 저는…….”
“남작님의 마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바람이 불자 등 뒤에 있는 장미 덤불 이파리들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흩날리는 긴 머리를 살짝 귀 뒤로 정리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제가 리베르탄의 딸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지금 블란쳇 공작 부인이라고, 제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고요.”
“마님…….”
“남작님께서는 남작님의 일을 하신 것뿐이에요. 외부인이 들어오면 경계하고 견제할 사람은 꼭 필요한걸요.”
에리히가 슬픔 가득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가만히 내 두 눈을 마주 본 에리히는 상처 난 두 손을 보여주었다.
“마님. 본래 여기엔 제가 과거 모시던 주인에게 버림받아 얻게 된 흉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제 피는 멎은 상태였다.
그래도 얼마나 깊게 찔렀는지 손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제 사라졌지만, 마님 덕분에 전 이 상처 없이도 제 스스로를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이 흉터에 감히 당신을 담고자 합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를 취한 에리히가 내게 기사의 자세를 취했다.
“당신께 제 충성을 바치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에리히는 내게 제 손을 내밀었다.
“지금 남작님께서 하신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아무리 봐도 그는 내 말에 너무 크게 휘둘려 버린 거 같았다. 사람은 급히 한 선택을 후회하게 마련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요한을 모시는 한, 저도 당신이 충성을 바쳐야 할 사람이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결심은 확고합니다.”
에리히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감히 제 주인님을 배신하게 되더라도, 전 당신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불명예스러울지라도 당신께 저를 전부 바치고 싶습니다.”
미소 짓고 있는 에리히는 평소 내가 알던 에리히와 완전히 달라 보였다.
‘분위기도 달라 보여.’
마주친 청회색 눈동자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나는 에리히의 손에 천천히 내 손을 얹었다.
“좋아요.”
화상 흉터가 짓물러진 다친 손 위로 하얗고 보드라운 내 손이 무척 대비되어 보였다.
“마이 레이디.”
에리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기사의 맹세를 했다.
“당신께 제 심장을, 영원한 맹세를.”
***
리안드로는 완전히 망가졌다.
그는 블란쳇 공작저를 습격했던 대가로 다리와 팔을 다쳐야 했다.
다행히 펠시스 후작가에서 거금을 들여 신관을 부른 덕분에 몇 주만 요양하면 낫는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에 박힌 의문은 더 깊어졌다.
리안드로가 누군가를 보듯 창밖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왜 날 거부하는 겁니까?”
리안드로는 에스텔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그녀의 기사다.
“당신을 위해 목숨도 걸 수 있는데.”
에스텔은 리베르탄 공작 부부보다 더한 악녀였다. 그런 악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기사는 리안드로 자신뿐이다.
“악녀인 당신마저도 책임지려 애썼는데.”
물론 상황이 어렵긴 했다.
악마답게 요한이 신전의 인준까지 받은 결혼 계약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안드로는 그딴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당장은 진짜 부부 행세를 하고 있어도, 요한은 에스텔을 기만하다 버릴 게 분명했다. 에스텔은 리베르탄의 딸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공작 부부를 처형시킬 리 없다.’
모친인 펠시스 후작 부인은 망연자실한 리안드로를 보고 속상해했다.
멀쩡한 황실 기사단장이던 리안드로는 신관의 치료로 상처가 다 나아도 침대에서 도통 일어나질 않고 있었다.
“불쌍한 내 아들, 왜 아직도 이 꼴이야. 정말 그 여자 때문에 그런 거니?”
펠시스 후작 부인이 분기에 차 아들에게 사교계에 가득한 에스텔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여자는 너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천박하게 모든 의상실의 드레스를 사고, 보석상을 털어가며 사치나 부리고 있더구나.”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어쩌면 그토록 사치가 하고 싶어서 자작극을 벌여가며 멀쩡한 헤텔 백작가를 없애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리안드로가 두 눈을 부릅떴다.
펠시스 후작 부인은, 에스텔 얘기에 격하게 반응하는 아들을 보고 더 속상해져 소리쳤다.
“친한 귀부인이 말하길, 그 여자가 모든 여자를 질투해서 블란쳇 공작도 모자라 오르테카 재상까지 독점하려 했다던데.”
“…….”
“황태자 전하도 그렇고, 왜 그딴 여자 때문에 이 어미를 이토록 슬프게 해.”
하지만 리안드로에게 모친의 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요한 블란쳇 공작-!’
격분한 리안드로가 침대 손잡이를 콰득 부수었다. 푸른 눈동자에 형형한 살기가 돌았다.
‘넌 도대체 얼마나 더 그녀가 죄를 짓게 할 셈이냐.’
***
에덴 로즈가 피었단 소식에 블란쳇 공작가는 발칵 뒤집혔다.
요한 역시 나와 만찬을 마친 뒤 정원에 나와 에덴 로즈를 확인할 정도였다.
“……정말 에덴 로즈야. 어떻게 에덴 로즈가.”
“나도 모르겠어. 행운이 따랐나?”
베티는 에덴 로즈의 개화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이거 보세요! 이제 누가 뭐라 그래도 마님께서 진정한 블란쳇 공작 부인이시라니까요.”
“그 정도야?”
“그럼요. 블란쳇 공작가에서 에덴 로즈는 그야말로 가문의 상징인걸요. 블란쳇 공작가에서만 피는 꽃이었잖아요.”
그래서인지 사용인들이 더 날 싸고돌았다. 물론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도 에덴 로즈가 피어난 이유를 잘 몰랐으니까.
나는 손등을 보며 나무에게 말했다.
“솔직히 에덴 로즈가 어떻게 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의식적으로 사용한 게 아니라서…….”
-걱정 마라. 한 번에 성공했다는 게 중요하지.
-그래, 앞으로 그 에덴 로즈를 돌보며 요정의 힘을 계속 연습해 보렴.
“……또 갑자기 뭔 일이 생기진 않겠지요?”
나무들이 잠시 침묵했다.
-요정의 힘이 기적의 힘이라지만 설마 그러겠니.
-그래. 일어나지 않은 일로 벌써 걱정하지 마라. 가만 보니 넌 너무 걱정이 많아.
확실히 나무들의 말대로 이변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내 할 일을 계속해야지.’
드디어 오늘 페뉼라 남작의 금고를 열어볼 예정이다.
‘나무가 말해준 요정과 관련된 보석도 경매에 가서 확인해야 하고.’
도망갈 길을 마련하려면, 이래저래 나가서 할 일이 많았다.
문제는 뭘 해도 철저한 요한한테 숨기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베티의 도움만으로는 저택 전체를 속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문제를 에리히가 다 해결해 주었다.
“마님. 나가실 길을 다 준비해 뒀습니다.”
솔직히 에리히가 내게 충성을 바치긴 했어도, 이렇게 날 위해 해줄 줄 몰랐다. 심지어 그때 에리히가 했던 말은 하나였다.
‘그래서, 지금 마님께 필요하신 게 무엇입니까?’
나가는 이유조차 물어보지 않고 에리히는 모든 걸 바로 준비해 주었다.
“다만 6시간 안에 돌아오셔야 주인님께 걸리지 않으실 듯합니다. 걸리셨을 때를 대비해 이유를 마련해 놓긴 했으나…….”
“고마워, 에리히 경.”
서로 합의한 호칭을 부르자, 에리히는 눈매를 어색하게 문지르며 말했다.
“아닙니다. 마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쁠 뿐입니다.”
그렇게 나는 베티와 함께 제국 은행에 가서 은행 금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금고에는.
“진짜 많이 해먹었구나. 나 같아도 포기 못 하겠다.”
“……저도 웬만한 양에는 익숙한데……. 어떻게 보면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 남작.”
정말 어마어마한 금화가 있었다!
‘이 정도면 도망 자금으로 충분하겠어.’
페뉼라 남작 본인이 도망자 신세여서인지 금고는 열쇠를 가진 누구든 꺼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덕분에 난 쉽게 금화를 수표로 바꿔 경매장에 갈 수 있었다.
시간제한이 있어서 아슬아슬하지만, 내 외출 목적을 다 달성할 수 있을 듯싶다.
‘그 보석은 얼마쯤 하려나.’
요한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도 썼다. 그러고는 내 자리에 앉아서 경매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베티가 경매 순서를 확인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왜 저기에-’
상대도 나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레이디 에스텔.”
리안드로가 엄숙한 얼굴로 뒤돌아서려는 내 손목을 잡아챘다.
‘어, 어떻게 알아본 거야?’
황태자도 그렇고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어떻게 이렇게 바로 알아보는지 알 수 없다. 내 위장이 그렇게 허술한가?
리안드로는 슬픈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 경매에는 무슨 죄를 지으려-”
그때 리안드로의 푸른 눈이 내 팔찌에 꽂혔다. 요한이 선물해 준 팔찌였다.
“세간의 말이 다 맞았군요.”
이를 아득 간 리안드로가 내 팔찌를 멋대로 투둑 끊어냈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정도라는 걸 모르게 되었습니까? 레이디,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질 셈입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내게 윽박지른 리안드로의 푸른 눈동자가 갑자기 아련해졌다.
“지금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제 손을 잡고 당장 여기서 나가-”
“싫어요.”
나는 리안드로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함부로 제 몸에 손대지 말아요.”
“이건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책임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왜 당신이 날 책임진다고 하는 거냐고요.”
리안드로는 가만히 있는 날 찾아와 매도하고 강압적으로 끌고 가려 했다.
“리안드로 펠시스 경.”
푸른 눈을 똑바로 마주 본 내가 피식 웃었다.
“부디 착각에서 좀 깨어나시는 게 어때요?”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