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공평하게 싸가지가 없어요 (49/182)


49화 공평하게 싸가지가 없어요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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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토 신관이 애절한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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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라…… 그건 너무 슬픈 말이에요.”

스텔라가 베르토 신관의 두 손을 붙잡으며 요한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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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블란쳇 공작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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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성녀로서의 네 판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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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블란쳇 공작님께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저 부탁드릴 수 있을 뿐이죠.”

일순 방 안의 빛이 스텔라에게 쏟아진 듯했다.

요한에게 자비를 구하는 스텔라는 성서 속 성녀처럼 완벽했다.

신을 모시는 이들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았을 광경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베르토 신관조차 위기감을 잃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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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은-”

요한의 냉소가 성녀의 분위기를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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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대답을 할 줄 모르나?”

요한은 무섭게 굳은 얼굴로 스텔라를 응시했다.

주위가 온통 요한의 기운에 짓눌렸다. 요한의 옆에 있던 에스텔 역시 긴장한 얼굴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스텔라의 반응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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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잘못이에요.”

스텔라가 울 듯 말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안쓰럽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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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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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

베르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에스텔은 그런 스텔라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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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 몇 마디 하고 끝이야?’

저 신관은 스텔라를 대변할 정도로 최측근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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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그래도 구하려고 더 노력해 봐야 하지 않나?’

요한이 이번 일을 문제 삼는다 해도 정도가 있다. 성녀 정도 되는 위치면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스텔라는 어렵사리 베르토 신관의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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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욱하여 여기까지인가 봐요. 당장의 저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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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 그러면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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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님, 제 마음의 준비는 다 되었어요.”

등진 스텔라를 바라본 베르토 신관의 눈동자에 절망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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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베르토 신관을 벌하시어요.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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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네 결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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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변의 다른 신관들이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르토 신관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요한이 우아하게 일어나 베르토 신관의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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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가 내 마음대로 하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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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은 제 책임입니다.”

베르토 신관은 두 눈을 감으며 비장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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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숨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블란쳇 공작님께서도 그 정도면 만족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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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착각을 하는 거지?”

요한은 픽 웃으며 발로 베르토 신관의 무릎을 꽉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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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네 목숨값 같은 걸 내가 받아봐야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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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윽-!”

무릎을 밟힌 베르토 신관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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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서 하나 말해주지.”

요한이 베르토 신관의 뒤통수를 붙잡아 자기를 올려다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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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가가 복권되면서 내가 만든 새 가훈이 있다. 들어본 적 있나?”

요한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 베르토 신관을 조롱하듯 그의 앞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죽음을 각오한 듯해 보였던 베르토 신관도 막상 죽으려니 겁이 나기는 한 모양이었다. 베르토 신관이 기절할 듯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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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더라도 겨울을 잊지 말라.]”

단검이 빠르게 베르토를 향해 휘둘려졌다.

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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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베르토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피가 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검에 잘려나간 베르토의 갈색 머리카락이 한발 느리게 공중을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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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무슨…….”

베르토가 급히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더듬거렸다. 손에 옅은 피가 묻어났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단검은 베르토의 머리카락과 볼을 가볍게 그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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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죽지 않았어?’

베르토는 놀란 눈으로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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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을 스쳤는데…….’

요한 블란쳇 공작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단검을 든 채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포에 휩싸인 베르토는 그 얼굴만 봐도 기절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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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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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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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숨값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딸꾹질을 시작한 베르토에게 요한이 나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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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에 돌아가서 전해. 지금 누구와 거래하고 있는지 기억하라고.”

베르토 본인이 신전에 돌아가 블란쳇 공작가에 보낼 보상을 마무리 지으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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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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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고할 혀가 없게 될 거다.”

베르토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뒤를 돌아 천천히 에스텔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신관들이 베르토 신관에게 급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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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베르토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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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겨우 살았어…….”

요한은 에스텔에게 다가가 자상하게 뭔가를 물어보았다.

에스텔이 그 얘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대조될 정도로 달달한 분위기가 흘렀다.

숨을 돌린 채, 제 갈색 머리칼을 움켜쥔 베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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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짜라는 소문은 거짓 같은…….’

그 순간 베르토의 눈에 스텔라 성녀가 들어왔다.

베르토에게 다가와 위로해 줄 줄 알았던 스텔라가 멍하니 블란쳇 공작 부부를 보고 있었다.

요한이 에스텔을 끌어안은 채 사용인들을 향해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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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나가게 안내해.”

명백한 축객령.

요한의 시선이 오도카니 선 성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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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성녀는, 다시 안 봤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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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님. 이번 일은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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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내 눈에 거슬리게 했다간.”

요한이 살기 어린 눈으로 스텔라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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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라도 죽여버릴 줄 알아.”

 

***

원래 이 이후엔 성녀 일행을 위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고치고 쫓겨난 탓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그사이 난 오랜만에 나무들을 보러 가려 했다.

요한이 날 걱정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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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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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잘했는지, 발목 진짜 멀쩡해.”

심지어 몸에 활력이 돌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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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신성력이 대단하긴 해.’

왜 많은 신관이 보물처럼 성녀를 모셨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발목 치료하고, 이 정도 컨디션 회복하자고 성녀를 부르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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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프고 말겠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요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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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따로 할 일 있지 않아?”

당장 요한은 신전 측에서 오늘의 무례를 발뺌하지 못하게 바로 공식 서한을 넣을 게 뻔했다.

요한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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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정원을 돌고 나서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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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저의 정원이 얼마나 안전한데. 요한은 요한의 일을 하러 가.”

요한은 조금 뒤 만찬에서 다시 만나자는 내 말을 듣고서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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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요한이 더 안 떨어지려고 한단 말이지.’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았지만, 요한 몰래 일을 꾸미기가 더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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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나보다 일이 더 많을 텐데.’

도대체 언제 일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혼자가 된 걸 확인한 난 나무들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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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무님, 원하시던 대로 거름은 마음에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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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잘해주지 않아도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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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우리는 진짜 예전처럼 방치되어 있었어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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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올라오면서도 계속 눈치 줬으면서.”

나무들은 모르는 척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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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 놈이 우리 아가에게 그런 걸로 눈치를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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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꼬장꼬장한 나무가 있다니! 나무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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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 놈인진 몰라도 지금 자수하면 우리가 불명예를 좀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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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 같이 말하고 계셨던 거 알거든요?”

당시 나를 걱정한 나무들 모두 일어나 대기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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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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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괜찮아요. 저한텐 아무것도 아닌데요.”

솔직히 나무들이 해주는 일에 비하면 더 해줘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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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저 정원 좀 돌아보다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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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요정의 힘을 써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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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 날 때마다 써보려고요.”

요정의 힘은 요정마다 달라서 나무들도 잘 알 수 없다고 했다.

현재 난 무의식적으로 요정의 힘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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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라고 했지.’

그래서 나무들이 정원을 이용해 보라며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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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돌보며 아끼는 마음을 주는 거랬나?’

사실 아끼는 마음과 요정의 힘이 어떤 관련이 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들이 쓸데없는 조언을 해주진 않았을 테니, 꾸준히 연습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내 요정의 힘이 어떤 건지 알게 되면, 나도 나만의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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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덤불 근처를 한번 조심스레 어루만져보렴.

무성한 덤불에 초여름의 장미가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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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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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집중해서!

나는 조심스레 장미 봉오리를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내 손등 위로 연두색 나뭇잎 문양이 떠올랐다.

그때 건너편에서 신관들이 화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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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성녀님을 이리 홀대하다니! 역시 블란쳇 공작가는 신조차 무시하는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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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성황 폐하께 아뢰어 블란쳇 공작이 더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직 안 돌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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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요한이랑 있을 때랑 다들 태도가 너무 다른데.’

심지어 여긴 블란쳇 공작가의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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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신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스텔라 성녀가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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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성황 폐하껜 비밀로 해주세요. 아마 제가 겪은 일을 알면 슬퍼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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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 그런 수모를 겪으셔 놓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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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 가짜와는 태도 자체가 다른 아량이십니다.”

나는 덤불 사이에서 고개를 쏙 빼내 그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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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도 공작이지만, 그 가짜는 도대체 무얼 믿고 그리 성녀님을 괄시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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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께서 뭘 그리 잘못했다고. 오히려 며칠 쉬기만 하면 나을 조그만 상처를 성녀님께서 몸소 오셔서 치료해 주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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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블란쳇 공작도 그 가짜 때문에 더 성녀님을 함부로 대한 것 같던데…….”

익숙한 얘기들이라 별생각도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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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도 다 똑같이 생각하고 있네.’

특이한 점은 베르토 신관이 가만히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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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토, 자네가 가장 심하게 겪지 않았나? 뭐라도 말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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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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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토 신관님은 쉬게 두세요. 저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로 고생하셨는데…….”

근처에 있던 다른 신관이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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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립니까! 성녀님께서 자책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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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성녀님을 오라 가라 한 것도 모자라 공작이 그렇게 움직이게 조종한 가짜가 문제이지요! 신의 벌을 받아도 모자란…….”

나는 신관들의 험담을 하나하나 귀담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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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마침 조금 있다가 만찬에서 요한을 만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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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기억해 뒀다가 말해줘야지.’

그때 짐승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크와앙-!

신관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크게 놀랐다. 몇몇은 뒤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신관들이 공포에 질려 마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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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저, 저 삿된 마물은 도대체…….”

내가 공작령에서 봤던 흑표범 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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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착했구나.’

에리히가 흑표범 마수를 끌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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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분들께선 왜 아직 저택에서 나가지 않고 여기 계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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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녀님께서 잠시 다리가 아프시다고 하시어서…….”

신관은 대답하면서도 흑표범 마수를 연신 힐끔거렸다. 흑표범 마수는 신관을 금방 씹어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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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그 삿된 마물을 당장 치우지 않을 것이오? 위, 위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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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블란쳇 공작저입니다. 제가 손님분들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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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지 않은가!”

흑표범 마수는 입을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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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세요, 여러분.”

스텔라가 침을 꿀꺽 삼키며 신관의 앞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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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께서 기르시는 것이니만큼 안전할 거예요.”

스텔라는 흑표범 마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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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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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왁!”

흑표범 마수는 스텔라의 말이 짜증 난다는 듯 크게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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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스텔라가 깜찍하게 눈을 질끈 감으며 주저앉았다. 다행히 흑표범 마수가 덮치기 전 에리히가 목줄로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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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에서 나가면 더 겪으실 일 없을 겁니다.”

스텔라는 흐트러진 금발과 베일을 정리하며 청초하게 에리히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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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녀로서 도움만 받고 넘어갈 수는 없어요.”

치맛자락을 조심스레 펼치며 일어선 스텔라가 에리히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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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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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가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에리히가 까칠하게 말했다. 난 그런 에리히를 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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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쟨 정말…….’

나뿐만 아니라 공평하게 싸가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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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왠지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스텔라가 에리히의 손을 붙잡았다. 흰 신성력이 에리히의 장갑 아래에 스며들었다.

에리히가 움찔하며 손을 확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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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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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성녀인 저는 타인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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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스텔라에게서 떨어진 에리히는 짜증스럽게 제 장갑을 벗었다.

에리히의 청회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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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흉터가, 전부…….”

아무래도 저 아래엔 화상 흉터가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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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가 말한 가족이 에리히였구나.’

오빠라고 얘긴 했어도 그게 에리히가 맞는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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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가 맞았구나.’

어쩐지 내게 보내던 에리히의 적의가 좀 이해가 가는 기분이다.

에리히는 다른 쪽 손에도 흉터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멍하니 스텔라를 보았다.

스텔라가 에리히를 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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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 보답이 도움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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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께서는 확실히 아량이 넓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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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도움을 받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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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성녀님께 감동받은 것처럼 보입니까? 정신세계가 다른 분답게 눈도 이상하시군요.”

에리히가 이를 꽉 깨물며 품에서 날카로운 검을 꺼냈다. 그리고 제 손등을 쑤셔 상처를 냈다.

콱!

기껏 새 살이 돋아난 손 위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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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손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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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성녀님 때문입니다.”

에리히가 스텔라를 보며 다른 쪽 손에도 상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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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의 오지랖은 매달리는 신도들한테나 해주지 그랬습니까. 저처럼 필요 없는 사람 말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베티가 험담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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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걘 원래 성격이 더러워요. 제 오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요. 진짜…… 싸가지가 아주.’

베티야. 네 말 아주 정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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