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진짜 복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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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진짜 복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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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진짜 복수 대상
2022.05.13.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그때처럼-’
요한은 에스텔의 트라우마를 봤던 그날이 떠올랐다.
길고 흰 속눈썹을 내리뜬 그녀가 아픈 듯 미세하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에스텔!”
요한은 더 참지 못하고 가제보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자 에스텔이 막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지금 네 앞에 누가 있는지 알겠어?”
“그야……. 요한?”
에스텔은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얼버무리려 했다. 그는 애써 상처를 계속 감추려는 에스텔이 애틋해졌다.
“그래, 네 옆에는 내가 있어. 잊지 마.”
그 순간 수정구슬에 스파크가 튀며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변에 마구 피안화가 피어났다.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없어.’
하지만 딱 한 가지 상황일 때는 가능했다.
‘이 마도구는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물건이야.’
특히 갑자기 피어난 꽃이 피안화란 사실이 더욱 그 가정에 근거를 더해주었다.
피안화는 죽음의 꽃이다.
신과 정반대인 혼돈을 상징하는 꽃.
‘에스텔이…… 산 사람보다는 죽은 자에 가깝다는 건가?’
요한이 슬픈 눈으로 에스텔을 보며 말했다.
“……에스텔.”
현재 에스텔은 수정구슬이 검은색으로 물들 정도로 아픈 상태였다. 그토록 죽음에 가까운 몸 상태면서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멀쩡히 움직이는 게 기적인데.
“내가 고장 낸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에스텔은 요한을 보고 상황을 대강 눈치챈 듯했다.
‘……이미 불치병인 걸 알고 있을 테니, 눈치챘겠지.’
주치의 헨리 한슨은 에스텔에 대해 말했다.
‘대개 잠자는 공주는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례도 있습니다. 처음 전 마님께서 고통이 없는 잠자는 공주인 줄 알았습니다만…….’
‘지금 부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건가?’
‘간혹 아픈 티를 내시는 걸 봐선, 예. 그러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잠자는 공주는 그야말로 몸 안이 망가지는 병이다.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마님께서는 스스로의 아픔을 참는 데 익숙하신 것 같습니다. 주인님께도 계속 숨기시려 했으니까요.’
수정구슬로 확인까지 한 이상 헨리 한슨의 진단은 정확했다.
‘에스텔은 지금도 고통을 참고 있어.’
그런데 요한에겐 그녀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아마 에스텔 역시 제 절망적인 상황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이 꽃이 아주 마음에 들어. 요한의 눈동자 같아.”
그녀는.
“조금 슬프거나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게 요한의 진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우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아.”
-그를 위로하려 했다.
‘정말 주제넘게도.’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화가 날 정도로 사랑스러운지.”
“내가 사랑스러워?”
요한이 에스텔을 벽에 가두었다.
에스텔이 토끼처럼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를 자극하는 표정이다.
“넌 미치게 사랑스러워.”
“…….”
“그게 날 돌아버리게 해.”
요한의 과격한 말에 에스텔이 놀랐다.
긴장으로 에스텔의 숨소리가 떨렸다. 희고 긴 속눈썹이 나비처럼 흔들렸다.
요한은 광기 어린 시선으로 에스텔의 구석구석을 모두 살폈다.
‘이대로 네가 죽는다고?’
크롤린 마물 떼 속에서, 요한은 무리해서 에스텔을 구해냈다.
그 결과 요한은 새로운 대가를 바치기 전까지, 전처럼 마법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면 진짜 날 살려줄 거야?’
하지만 에스텔은 더욱 요한에게서 더 멀어져 갔다.
‘왜 그렇게까지 날 살리고 싶은데?’
요한이 천천히 에스텔의 이마와 콧잔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그녀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누가 놓칠 줄 알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요, 요한?”
“공작저에 돌아가면 정원 가득 네가 원하는 꽃을 심어. 그리고 꽃이 가득 피어난 정원에서 같이 있자.”
“이제 공작저로 바로 돌아가?”
“아무래도 여기서는 치료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놀란 에스텔을 보며, 요한이 자상하게 웃었다.
‘내가 널 살릴 거야.’
어떻게든 살려내고 말 거다. 무슨 수를 써서든.
***
요한은 바로 3일 뒤 공작저로 올라갈 것이라 전했다.
원래 블란쳇 공작령으로 내려와서 하려고 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벌어진 일이었다.
‘일이 정말 많이 보인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요한은 할 일이 정말 많아 보였다.
특히 마법이 잘 통하지 않아 이동 마법을 탈 수 없는 나 때문에 일이 더 늘었다.
그사이 나는 며칠 안 남는 시간 동안 베티와 블란쳇 공작성을 돌아다녔다.
내가 쉴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해뒀다더니 정말 준비한 게 많았다.
“마님, 이건 주인님께서 마님이 오시면 마음껏 고르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신 겁니다.”
“이만큼?”
방 한가득 바다를 건너온 드레스들로 채워져 있기에 물었다.
그러자 공작령의 전담 시녀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렇게 된 방이 10개 정도 더 있습니다. 모두 최상급 드레스로, 언제든 마님의 치수에 맞춰 수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10개나?”
“죄송합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블란쳇 공작령 근처부터 수도까지 다 뒤져도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전담 시녀는 내 반응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여긴 것 같았다.
“주인님께서 유명 의상실에 전부 예약을 잡아두었기 때문에, 이번부터는 마님의 수준과 취향에 걸맞은 옷들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 요한은 드레스를 비롯해 보석, 유명 미술작품에 조각품까지 준비해 두었다.
정말 완벽하게 준비해 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요한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게 돈 버는 일이었다더니…….’
진짜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나 보다.
하지만 요한의 과소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작저로 올라가면, 부인의 치수에 맞춘 새 드레스들이 채워져 있을 거야.”
“……그 정도면 수도에 소문이 자자하겠네.”
이 정도로 의상을 구매하면 당연히 사교계에 잔뜩 소문이 퍼진다.
‘다들 뭐라고 떠들고 있을지가 보인다.’
가장 좋은 평가가 리베르탄의 가짜가 팔자 폈다 정도일 거다.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마.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맞아, 중요한 건 그런 소리가 아니지.”
“이번에 올라가면 널 치료할 고위 신관이 와 있을 거야.”
고위 신관이란 말에 난 크게 놀랐다.
“고위 신관이면……?”
“추기경이 올 가능성이 가장 높지.”
요한은 신전과 매우 사이가 나쁘다.
블란쳇 공작가의 멸문에 신전이 개입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른단 말이야?’
그것도 나를 위해서.
심지어 고위 신관인 추기경은 성국과 제국을 통틀어 총 세 명밖에 없다.
“도대체 어떻게 부를 수 있었던 거야?”
“신전이 요구하는 걸 들어줘야 했지. 마침 내가 신전에서 필요로 하는 지역을 넘겨줄 수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얘기가 쉽게 풀렸어.”
요한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얘기했다.
‘평범한 곳으로 고위 신관급 인물이 움직일 리 없어.’
아마 그 외에도 큰돈을 들이거나 했을 거다.
‘아, 뭔가 돈이 아까워.’
내 돈은 아니었지만, 아프지도 않은 날 위해 그 정도나 썼다니 무척 아까웠다.
요한이 내 반응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전에서 고위 신관이 오는 데 문제 있어?”
“아니. 그런 거 없어.”
리베르탄에 신관들이 자주 오긴 했지만,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었다.
‘신성력으로 날 치료하는 일도 없었고.’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리베르탄이랑 친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 부분을 누구보다 거슬려 할 사람이 요한이라, 마음을 놓기로 했다.
“요한이 나 때문에 너무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 정도는 무리도 아냐. 그리고 신성력도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돼.”
요한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하게 웃었다.
“참, 헤텔 백작가에서 몰수한 재산은 전부 네 몫으로 돌렸어. 네 방에 재산 목록을 정리해서 뒀으니 시간 나면 한 번 봐.”
“헤텔 백작가의 재산이 전부 나한테 왔다고?”
“당연히 네 거지.”
“하지만 헤텔 백작가 아직 재판 중인 거 아니었어?”
황실 재판이 열려서 그들의 죄질에 대해 심판하고 있다 들었다.
“재산에 대한 권한 박탈은 그보다 먼저 판결 났어. 그래서 네 이름으로 돌려놨지.”
판결 결과, 헤텔 백작가는 완전히 귀족 명부에서 제명당했다.
백작 부부는 죄질이 무거워 종신형을 받았고, 딸들은 이름을 빼앗긴 채 돈 한 푼 없이 평민으로 쫓겨났다.
‘요한이 말했던 대로야.’
“그러면 난 다시 일하러 가볼게.”
요한은 내 볼에 입술을 맞추고 다시 일하러 떠났다.
난 방에 올라가 요한이 말해준 문서를 확인했다. 정말 헤텔 백작가의 재산이 전부 내 것이 되었다.
“……이렇게 내 재산이 되어도 되나.”
헤텔 백작가가 가난한 백작가긴 했어도, 백작은 고위 귀족이다.
헤텔 백작 부인이 지참금으로 들고 온 재산까지 내 몫이 되어서 생각보다 재산 규모가 컸다.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주인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는데요.”
베티가 내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마님이 하고 싶은 데 사용하세요. 그 사람들이 보낸 편지를 보니까 반성할 마음도 없어 보이던데.”
헤텔 백작 일가가 보낸 사죄 편지였다.
아무래도 나한테 용서만 받으면, 어떻게든 활로가 열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애초에 리베르탄에 페뉼라 남작이랑 엮여서 나오기 힘들 텐데.’
나는 헤텔 백작가의 재산 목록 중 헤텔 영지에 대한 문서를 보았다.
‘진짜 지독하게 뜯어먹었네.’
헤텔 백작가 사정이 급하긴 정말 급했던 모양이다. 나는 헤텔 영지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베티, 혹시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
“부탁이라뇨. 당연하죠.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유능한 베티는 보통 시녀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었다.
“그러면 여기 돈이랑 보석은 팔아서, 백작령에 있는 고아원과 빈곤층을 위해서 기부해줘.”
“……기부요?”
“후원 형식이 더 좋겠다. 헤텔 영지뿐만 아니라 많이 힘든 곳도 추려서.”
베티가 잠시 눈을 깜빡였다.
“마님을 위해서 쓰시지 않고요?”
“이게 나를 위해서 쓰는 거야.”
내가 선량해서 기부나 후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헤텔 백작가의 재산들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들이라 내가 요한에게서 도망칠 때 사용하기 어려웠다.
‘나한텐 페뉼라 남작이 은행에 보관해놓은 돈이면 돼.’
눈시울을 붉힌 베티가 물었다.
“그러면 마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까요?”
“생각해 보니 후원을 오래 진행하려면 재단이 있는 게 좋겠구나. 금방 설립할 수 있을까?”
“물론이에요. 돈이 없어서 망해가는 재단을 하나 사서 진행하면 되거든요.”
“베티, 너 되게 잘 아는구나.”
베티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첩자 일 하려면 이 정도는 다 꿰고 있어야 해요.”
첩자의 기본 소양에 많은 게 포함되어 다행이다. 잘못했다간, 허튼 데 돈을 낭비했을 수도 있으니까.
“다행이네. 그러면 기부와 후원을 진행할 때 익명으로 해줘.”
“……마님의 이름이 아니라, 익명으로 하라고요? 도대체 왜요?”
“음, 그거야 받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나를 미워했다.
아마 내가 뭘 해도 무슨 수작을 부린다며 싫어할 거다.
‘나만 미움받는 거면 상관없지만.’
내 후원을 받은 이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게 분명했다.
“마님. 그럴 리가 없어요. 설령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어도 마님의 진심을 알아줄 사람들이…….”
“부탁할게.”
변하지 않는 내 의견에 결국 베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마님. 하지만 마님, 그래도 꼭 힘내셔야 해요.”
고개를 끄덕인 베티는 내가 시킨 일을 처리하러 떠났다.
헤텔 백작가 일을 정리하고 있다고 느낀 사이.
벌써 블란쳇 공작저로 올라갈 때가 되었다.
***
요한은 나를 위해 무슨 물약을 준비해 주었다.
“이걸 마시면 부인도 문제없이 이동 마법진을 이용할 수 있어.”
“그런 것도 있어?”
“나만 가능하지.”
요한이 준 물약을 바로 마셨다.
‘으으. 쓰잖아.’
웬만하면 이동 마법을 쓸 일이 없게 해야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동 마법진으로 움직였다.
이동 마법진은 공중에 여러 겹의 붉은 마법진이 가로로 빛기둥처럼 뻗은 모양새였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마법진의 붉은 글자들이 연기처럼 일렁였다. 글자들이 뭉개지며 새로운 글자가 되었다.
“조심해?”
“조심하라고?”
그때 내 옆에 선 요한이 물었다. 그 질문에 내가 더 당황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
“방금 조심하라고 말했어.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다시 눈을 깜빡거리자 방금 전 글씨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아니. 내가 잠깐 뭘 착각했나 봐.”
나는 요한에게 웃어 보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잠시 날 응시하던 요한이 말했다.
“그래. 눈 감았다 뜨면 바로 블란쳇 공작저에 도착해 있을 거야.”
요한의 안내를 따라 붉은 마법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마법진 안은 요한이 말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바로 이동될 거라고 했는데?’
주변이 온통 캄캄했다.
그때 어둠이 내 몸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팔다리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내 몸이 사라졌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려던 순간.
-너무 걱정 마, 아가.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주변이 환해졌다.
-네가 행복할 수 있게, 너를 끝까지 지켜줄 테니.
사라져 갔던 내 몸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하지만 들려온 것은 대답이 아닌 웃음소리였다. 나까지 슬퍼지는 웃음소리였다.
***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 목소리는 뭐지?’
나무와 대화할 때와는 달랐던 것 같은데.
‘자꾸 내가 모르는 일이 생겨서 답답해.’
공작저 도서관에서 흑마법에 대해 알아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본격적으로 뭔가를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내가 비틀거리자, 요한이 바로 옆에서 나를 잡아주었다.
“역시 마법을 쓰면 문제가.”
요한이 미간을 찡그리자, 나는 그를 보며 생긋 웃었다.
“이렇게 요한이 잡아주니까 좀 괜찮은 거 같아.”
“얼른 공작저로 들어가서 쉬자.”
이동 마법진을 통해 공작저에 도착한 우리를 에리히가 맞이했다.
“주인님.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내 다친 발에 잠깐 시선을 주던 에리히가 요한에게 보고했다.
“신전에서 보낸 사람이 막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가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는 게 모양새가 좋겠지.”
요한이 날 보자마자 내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갈래.”
“너도?”
“그렇게 중요한 자리라면, 나도 같이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를 불길함이 계속 느껴졌다.
결국 요한은 내 의사를 들어주었다. 난 요한을 따라 정문으로 나갔다.
정문에는 금장식이 호사스럽게 장식된 순백색 마차가 서 있었다.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마차에서 신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잡아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여자가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아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차림새부터 다른 신관들과 달랐다. 순백의 하얀색 수녀복이지만, 어깨와 목선을 드러내어 드레스처럼 보였다.
그래서 여자는 신을 모시는 신관보다는 고귀한 공주님 같았다.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여자가 얇은 팔목으로 반짝이는 금발을 살포시 정리하며 수줍게 웃었다.
맑은 푸른 눈동자가 바로 요한을 향했다.
“아.”
긴 속눈썹이 떨리며, 청순한 얼굴 위엔 발그레한 홍조가 돌았다.
곧장 인사할 줄 알았던 여자는 다른 남자 신관의 뒤에 부끄럽다는 듯 숨으며 다가왔다.
남자 신관들은 그녀를 보호하듯 둘러싼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마침내 우리 앞에 도착하자, 남자 신관 뒤에 있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블란쳇 공작님. 저는 성국의 성녀 스텔라라고 합니다.”
스텔라가 생긋 웃으며 수녀복을 드레스처럼 들어 올려 인사했다.
“저를 애타게 찾으셨다고요?”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예스텔라 리베르탄.’
요한의 진짜 복수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