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나를 더 욕심내 (46/182)


46화 나를 더 욕심내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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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가 이런 말을 해버렸단 사실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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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정말 내 거예요?”

하지만 요한은 당황하지 않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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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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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난 한 번도 요한이 내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애초에 내가 무언가를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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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봐야 진짜가 될 수는 없으니까.’

요한이 긴 속눈썹을 살짝 내리뜨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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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난 네 거야.”

요한의 엄지가 내 손목 부근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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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 것이듯.”

솜털이 바짝 섰다. 그의 큰 손이 천천히 내 손을 감싸고 여린 손가락 안쪽을 살며시 쓸었다.

상상을 자극하는 몸짓이다.

묘한 열망을 품은 붉은 눈동자, 그윽하게 깔려 아득하게 느껴지는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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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생각했어야지.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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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한이랑 입장이 다르기도 하고.”

아직 손만 잡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요한이 내 온몸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붙잡으며 그의 손에서 내 손을 쏙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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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욕심내는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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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욕심을 내면 안 되지?”

요한은 아무렇지 않게 툭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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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욕심내.”

그 순간 마주친 붉은 눈동자가, 나를 불태우는 화염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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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가 욕심을…….’

요한은 당연히 내가 욕심내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를 파멸시킬 사람이니까.

하지만 요한은 내 마음속 빗장을 부숴버리는 것도 모자라, 존재도 모르는 속마음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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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돼?”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부진 손가락이 내 눈가를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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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허락받지 말고 멋대로 굴어. 나빠 보여도 상관없고, 피해 끼칠 것 같아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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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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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걸로 네가 미워지지 않거든.”

요한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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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럴수록 네가 더 좋아지는 거 같아.”

온통 거짓투성이인 와중에 내게 닿는 요한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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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네가 너무 예쁘거든.”

 

***

다행히 요한이 날 씻겨주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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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내려갈 때 요한이 다친 발을 씻겨주는 조건이 생겼지만.’

나는 베티의 목욕 시중을 받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요한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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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들어주지만, 결국 자기가 원하는 걸 얻는단 말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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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 발 씻겨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나도 모르게 발을 보다가 망측한 상상을 하게 됐다. 요한이 내 발목을 꽉 잡고, 천천히 입술을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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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생각해!’

내 목욕시중을 들어주던 베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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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물 온도가 너무 뜨거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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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괜찮아!”

이건 다 요한이 자꾸 이상한 말을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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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검진받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좀 긴장했나 봐.”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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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내가 요정이란 걸 알아내 버릴지도 몰라.’

나무는 그걸 밝혀낼 방법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마법이란 분야가 원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학문이다 보니 안심할 수 없었다.

그때 나무가 먼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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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네가 말한 그걸 하는 날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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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그동안 나는 가능하면 요한 앞에서 나무들과 대화하지 않으려 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요한이 눈치챌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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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할 수 있어.’

어느덧 목욕 시간이 끝나고, 요한의 실험실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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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들어갈게.”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이 나를 맞이하였다.

그는 평소와 달리 흰색으로 된 코트에, 제복 모자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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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모자 같기도 하고?’

내가 그의 모자를 보자, 그가 제복 모자를 살짝 벗으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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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새로운 모습 때문인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요한은 눈꼬리를 접으며 곧바로 그런 나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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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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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자가 신기해서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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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마음에 안 들었어?”

요한이 아쉽다는 듯 입꼬리를 내리자, 왠지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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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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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면 됐어. 이번에 할 검진을 보조하려면 잠시 쓰고 있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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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같은 것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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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봬도 마도구야.”

요한은 내게 눈을 찡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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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취향에 맞춰서 다른 걸로 바꿀 수도 있는데, 원하는 거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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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그런 거 없어.”

요한은 ‘아쉬운데’ 하며 모자를 다시 썼다. 그리고 나를 연구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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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같지가 않네.’

연구실에 자주 가본 것은 아니지만, 연구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다.

오히려 연구실보다는 정원처럼 보였다. 그늘진 곳곳에 우아한 가시나무들이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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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연구가 내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른 거 같아. 막 실험 도구 같은 게 있을 줄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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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쪽에 가면 그런 곳도 있어.”

이 연구실, 내 생각보다 많이 큰가 봐.

가시나무길 끝에 가니, 흰색 가제보가 보였다.

우아하게 음각된 흰 대리석 기둥.

그 위에 있는 고풍스러운 문양의 글라스로 이루어진 반원형의 지붕이 올려져 있었다.

정중앙에 세워진 기둥 위에 올려진 투명한 수정구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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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수정구슬이 마도구 같은데.’

특히 저 수정구슬을 중심으로 기둥 아래에 검은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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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했던 대로만 하면 돼.’

일전에 주치의 헨리 씨가 진찰하던 마도구가 망가진 적 있었다.

그때 나무가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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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신의 핏줄이라 혼돈의 일부인 마력이 담긴 것들을 본의 아니게 망가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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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네 힘이 회복될수록 더 그러겠지.

분명 이번 검진도, 요한이 마법을 쓰는 게 아닌 이상 마도구를 사용할 거다.

딱 봐도 저 수정구슬을 이용해서 측정하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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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뜨리거나, 수치가 이상하게 나오면 곤란해.’

그래서 대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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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할 때 요정의 힘을 사용해 보렴. 사용하고 있는 중에는 마도구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외부로 빠져서 감지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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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요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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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방법은 쉬지 않고 계속 우리랑 대화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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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한다고 요정의 힘이 사용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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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의식적으로 너는 요정의 힘을 쓰고 있다. 물론 큰 부담은 없지만.

요한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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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긴장하지 마. 하나도 아프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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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그때 발목 근처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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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언제 옆에 나타났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크르릉-

윤기 나는 검은 털, 위협적인 덩치와 발톱을 가진 흑표범 마수였다. 붉은 눈동자가 딱 보기에도 마물에 가까웠다.

여러 마리의 흑표범 마수가 우아하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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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험실을 지키는 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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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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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과 동물의 변종이지. 그래서 길들이는 게 까다롭지만 불가능하진 않았어.”

저번에 습격받은 마물이 떠올라서 나는 요한의 손을 꼭 붙잡았다. 요한은 그게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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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을 별로 좋아하진 않아. 물리지 않게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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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있어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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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한테 공격하면 죽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마.”

괜히 손을 뻗어서 물리지 말아야지.

그때 유난히 덩치가 큰 마수 하나가 바로 내 앞에 다가왔다. 이마에 별 같은 무늬가 있는 게 이 흑표범 마수의 대장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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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려는 거지?’

갑자기 흑표범 마수가 거대한 몸을 넙죽 엎드렸다. 심지어 나를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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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듬어달라고?”

그러자 흑표범 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크기가 크다 해도, 고양이를 닮은 맹수가 그러고 있으니 아주 귀여웠다.

내가 조심스럽게 흑표범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어주자, 흑표범 마수가 기분 좋다는 듯 눈을 감으며 갸릉거렸다.

이마와 목 뒤를 긁어주자 아예 바닥에 배를 드러내며 엎드렸다.

마수는 ‘더 쓰다듬어줘! 더 긁어줘!’ 외치듯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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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길들여진 애들이라 착하네.”

나는 몸을 숙여서 녀석의 배를 긁어주고, 별 모양 같은 이마에 뽀뽀도 해주었다. 그러자 흑표범 마수는 기분 좋다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내 볼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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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앙-”

내가 한 녀석을 아주 귀여워 해주자, 옆에 있던 마수도 슬쩍 내 무릎에 손을 얹었다. 자기도 봐달라는 뜻 같았다.

다른 마수들도 내게 다가온 두 녀석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내게 다가와 턱을 부비었다.

요한이 ‘저런 놈들이 아닌데……’ 하고 중얼거리다가 내게 눈웃음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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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이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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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한이 얘들을 기르는지 알겠어. 애교가 정말 많다.”

손을 멈추자 무릎에 앉아 있던 녀석이 더 긁어달라는 듯 머리를 내 팔에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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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얘들 이름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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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없어. 마수들은 이름 짓는 걸 싫어…… 하지만 부인이 지어주는 건 좋아할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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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다시 마수를 바라보자 마수가 귀를 쫑긋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 모습이 마치 ‘전 그런 적 없는데요?’ 하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요한은 마수의 부드러운 털에 중독된 나를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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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으면 저택에도 한 마리 데려갈까?”

방금 전까지 긴장하고 있었는데 흑표범 마수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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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한 마리만. 있으면 좋을 거 같아.”

이제 정말 검진해야 할 때가 됐다.

나는 애교 부리는 마수들을 뒤로한 채 수정구슬 앞에 서서 손을 올렸다.

위이잉-

수정구슬에 검은 무언가가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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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망가질 건가 봐!’

이제 검은색이다! 다급히 나무들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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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망가지려고 해요. 빨리 아무 말이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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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 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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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차피 전 지금 긴장돼서 아무 말도 생각 안 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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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러면 약속대로 하마. 큼큼.

헛기침한 나무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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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저번에 공작성 내려가기 전에 우리한테 비료를 미리 둘러준다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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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약속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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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원사 그놈이 비료를 뿌려주긴 했는데 충분히 뿌려주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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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가 여름의 축복을 너에게 써줘서 힘들어져 그런 건 아니다.

나무의 목소리가 점점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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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무슨 대가를 바라진 않는다. 그냥 쓰던 비료 계속 써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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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면, 바로 정원사한테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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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안 그래도 너 힘든 시기인데. 우리가 그 비료 같은 거 덜 뿌린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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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해드린다고요.

아무 말이나 해달랬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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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블란쳇 공작가에서 쓰는 건 다른 귀족가에서도 다 쓰는 거다, 더 좋은 게 있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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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부담일까 봐 마음이 안 좋.지만.

귀에서 계속 들리는 잔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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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요! 해드린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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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우리 아가가 공작 부인이 되었어도 힘든 거 다 안다. 우리 그렇게 인간사에 무지한 나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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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원하는 대로 해드릴 테니까…….

그때 멀리 떨어져서 가제보 바깥에 있던 요한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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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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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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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앞에 누가 있는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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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요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한은 튀어나온 목울대를 꿈틀거리며 나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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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 옆에는 내가 있어. 잊지 마.”

요한이 너무 애틋하고 슬퍼 보여서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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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말을 했나?’

파지직-

내가 잡고 있던 수정구에 가벼운 정전기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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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수정구를 놓자, 눈에 보일 정도로 전기가 오르며, 방 전체까지 번졌다. 심상치 않은 쿵쿵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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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한테 신경 쓰느라 정신없어서 나무들이랑 대화하는 걸 놓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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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잠깐 대화를 놓친 걸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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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우리도 모른다.

나무들은 무책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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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말했잖니. 가능한 한 요정의 힘을 소모하게 하는 방법이지만, 네 상태가 많이 나아져서 알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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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요…….

마도구는 엄청 비싸다.

요한 같은 거물이 실험실에 둔 물건이라면 아마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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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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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요한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사이 수정구슬이 놓여진 기둥뿐만 아니라 가제보 주위에 처음 보는 흰 꽃이 주변에 마구 자라났다.

곧이어 흰색 꽃잎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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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화?’

어떻게 저 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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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되게 많이 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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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

피안화를 본 요한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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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아픈 곳은 없지만, 요한의 눈빛이 너무 참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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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게 무슨 불길한 징조 같은 거야?”

일부러 아픈 척이라도 해줘야 하나.

그때 요한이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는 눈동자를 또르륵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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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별일 아닌 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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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불길한 징조 같은 거 아니야. 가끔 저렇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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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장 낸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나는 웃으며 피안화를 한 송이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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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해 보이지만…….’

겉모습만 보고 편견을 가지는 건 나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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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꽃이 아주 마음에 들어. 요한의 눈동자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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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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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가끔 이거보다 더 연해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진할 때도 좋아.”

그렇게 말하니, 정말 이 꽃이 더 예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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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슬프거나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게 요한의 진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우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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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떻게 그렇게.”

일순 울컥한 듯했던 요한이 금세 나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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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날 정도로 사랑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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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스러워?”

기대를 품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연구실 벽에 날 밀어붙여 벽과 자신 사이에 나를 가두었다.

내 이마에 그의 이마가 닿았다.

나직하고, 그윽한 눈빛이 날 내려다본다.

***

요한은 에스텔을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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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에스텔은 마력이 잘 통하지 않아.’

하지만 이 가제보는 그것까지 가정해서 만들어진 장치였다. 그래서 이곳으로 데려온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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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마력에 반발심이 크다고?’

그건 마력으로 에스텔을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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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쳐야 한다고, 너를?’

에스텔이 요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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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

그녀는 툭 하면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묻고, 사과했다. 점점 에스텔이 학대받은 것 같다는 추측이 점점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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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슬 색이 검어지고 있어.’

수정구슬은 현재 상태를 표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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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은 고통.’

차마 기계도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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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그때 수정구슬을 쥔 에스텔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마가 설핏 일그러지며, 힘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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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해드릴 테니까…….”

요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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