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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네 죽음마저도 내 거여야 해 (41/182)


41화 네 죽음마저도 내 거여야 해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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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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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여기서 더 피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아주 다행스럽게도 더는 피를 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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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해결할 수 있을…….’

요한이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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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것 같네.’

난 억울한 마음에 나무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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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지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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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갑자기 왜 애가 갑자기 화를 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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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주가 약해지면 너에겐 좋은 일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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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이었다고요. 지금 저 이상한 오해를 사게 생겼어요.

그러자 나무들은 스리슬쩍 발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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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는……. 널 낫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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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단 급한 거 같으니 우리는 이만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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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명은 알아서 잘하고. 우리는 아가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요한은 진찰실 의자에 앉은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무릎을 조금 굽혔다.

붉은 눈동자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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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픈 척을 하긴 했지만…….’

갑자기 저주가 약해져서 피를 토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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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참고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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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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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공작 부부에게 휘둘릴 때부터 아팠던 거야?”

요한이 손수건을 꺼내 내 입가를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요한은 왜 갑자기 내가 피를 토한 건지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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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계속 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알지 못해서.”

……아프지 않았으니까, 모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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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상태가 이런 줄 몰랐는데, 요한이 어떻게 알아차렸겠어. 자책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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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자책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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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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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능에 대한 반성이지.”

요한이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이를 아득 깨물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무척 화가 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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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걸 보여준답시고, 가장 중요한 걸 놓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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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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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요한의 눈매가 고통을 견디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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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아픈 표정을 지어?’

나는 멍하니 보석 같은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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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중요해?’

꿈틀, 외면하던 질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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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너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부인으로 두고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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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에스텔.’

어차피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들만 따졌다.

진짜 ‘에스텔’이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도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가짜가 되었다.

요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리베르탄의 입양아’인 나를 복수 대상으로 삼은 남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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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하면 너만 더 힘들어져.’

요한은 정말 대단했다.

이제 누구에게 기대하는 건 다 포기한 줄 알았는데. 왜 요한에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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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해줘.’

구두 속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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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언제부터 헤텔 백작가에 대해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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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요한이 의외로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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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용할 가치가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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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문서를 보냈다고 확신한 이유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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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내가 부인이라고 알게 된 이유는, 헤텔 백작가에 대해서 모두 파악해 두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딱 하나, 리베르탄의 문서만큼은 내가 모르던 것이었단 말이지.”

딱 하나, 유일한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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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당연히 그 문서의 출처가 부인일 수밖에 없었어. 내가 파악하지 못한 변수는 부인밖에 없으니까. 물론,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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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렇게 모든 귀족가를 다 파악해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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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좋겠지만, 당연히 그럴 순 없지. 이번에 헤텔 백작가를 파악해 둔 이유는 간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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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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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백작가의 몰락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나는 기이한 기시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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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가의 몰락도 정해져 있었는데.’

물론 거기에는 내 몰락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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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쓸모가 있어서 살려뒀지만, 쓸모가 없어질 때가 되어서 버렸어.”

요한은 감히 나를 음해하려 한 헤텔 백작가의 최후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헤텔 백작가의 이름은 지워지고, 재산은 몽땅 내 앞으로 회수되며, 헤텔 백작 부부는 죄만큼 감옥에 살 것이며, 그 딸들은 돈 한 푼 없이 평민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오히려 불안해졌다. 그들의 미래가, 곧 내 미래인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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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요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어.’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흑막.

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도구로 사용해 버리는 냉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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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도…… 복수 대상이 아니면 가치를 잃어버리겠지.’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행동은 나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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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가가 쓸모를 잃었다는 것도, 결국 나를 해하려 해서일 거고.’

지금도 나를 아껴주고 있다.

내게 순순히 모든 사정을 얘기해 주는 것만 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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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겠어.’

언젠가 이용가치가 떨어진 나를 잔인하게 죽이고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온전히 나를 위해서 제 패를 이용해 대신 복수해 준 고마움.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그때 요한이 흐트러진 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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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나한테 뭔가를 많이 숨기고 있다는 걸 잘 알아.”

발뺌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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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한테 말하기 싫어서 말하지 않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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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인도 부인의 사정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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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지만!”

흑막의 경계를 푸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박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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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건 솔직하게 다 대답할게.”

요한의 날카로운 눈이 나를 탐색하듯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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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럴 필요 없어. 몸도 안 좋은 부인을 몰아붙일 순 없지.”

이게 넘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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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탄의 문서에 변명을 쥐어짜느라 머리가 아팠는데……’

잘 되긴 했는데, 왜 더 꼬여버린 기분이 드는 걸까! 나도 이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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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싶다면 숨겨, 계속 감추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도 돼.”

머리를 다 정리해 준 요한이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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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도망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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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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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밀이 있어도 상관없으니, 영원히 내 곁에서 사라지지 마.”

요한은 나른한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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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죽음마저도 내 거여야 하니까.”

 

***

늦은 밤, 오르테카 재상이 불도 전부 끈 채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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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폐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헤텔 백작가에서 리베르탄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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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의 약점은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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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헤텔 백작가에 있던 징조는 허황된 것이었습니다.”

연락 마도구 속 황제가 침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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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헛걸음은 아니었습니다. 리베르탄의 문서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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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게 없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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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요하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르테카 재상은 저녁 만찬에서 있었던 소란을 되새겼다.

갑자기 기침 소리를 내며 안색이 안 좋아지던 블란쳇 공작 부인. 그때 누구보다 놀란 듯 보였던 블란쳇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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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부인뿐이야.’

본래의 블란쳇 공작이라면 완전히 헤텔 백작가를 망가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헤텔 백작가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얻어낸 뒤 황가로부터 무언가를 또 요구했을 거다.

반역자를 잡아 온 공로라는 이유로.

하지만 블란쳇 공작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그 자리에서 요구할 수 있었을 텐데, 블란쳇 공작은 아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 덕분에 헤텔 백작가의 일은 오르테카 재상이 황실의 이름을 빌려 해결한 것으로 되었다.

물론 오블란테를 걸었던 만큼, 헤텔 백작가의 재산이 전부 블란쳇 공작가로 몰수되기는 하겠지만, 잔혹한 블란쳇 공작답지 않은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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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엇이냐?

그늘 속에서 오르테카 재상의 남색 머리카락은 검은색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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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블란쳇 공작에게 약점이 생긴 모양입니다.”

오르테카 재상이 서늘한 녹색 눈동자를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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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텔 백작가는 오르테카 재상이 황실 기사단을 부르며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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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요 관련자라 남아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요한이 알아서 처리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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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란 건 참 대단하다니까.’

블란쳇 공작령으로 가장 빨리 가는 길에는 마물 숲이 있었다. 워낙 가파른 길이라 원래는 돌아서 갈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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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피를 보고 더 급해진 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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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물 숲이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여라!”

마물 숲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마차의 창문을 살짝 열며 바깥을 보았다.

다른 곳과 달리 나무들이 모두 검었고, 가지 역시 무시무시한 곡선으로 꼬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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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마물이 나오는 곳은 다른 건가?’

확실히 보기만 해도 느낌이 안 좋은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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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의 나무들에게 말을 걸어도 대화가 안 돼.’

그때 레이몬드가 곁으로 다가와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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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숲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님. 자주 오가는 길인 데다 매년 마물을 토벌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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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레이몬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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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말씀드리는 거지만, 마님께서 마물을 마주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정찰병을 보내서 확인도 다 해놓았고요.”

나를 보며 실실 웃던 레이몬드가 가볍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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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님, 왜 저를 레이몬드 경이라 부르십니까? 편하게 레이몬드라 부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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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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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주군에게 하는 것처럼 반말로 편하게 해주십시오. 전 마님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안 됩니까?”

쾌남형의 레이몬드가 씩 입꼬리를 올리자, 시원스러운 느낌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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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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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안 돼.”

앞에서 일행을 정렬하고 온 요한이 어느새 나타나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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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가급적 저놈은 조심해. 아주 안 될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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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너무하십니다! 그런 앞담을 하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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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도박과 여자로 터뜨린 사고는 다 잊었나 보군?”

레이몬드는 바로 쭈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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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놀 때 화끈하게 노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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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그렇게 노는 건 상관없지만, 내 부인의 곁에서 이상한 수작질을 부리면.”

요한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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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네 인생이 끝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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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도 기사단장과 안주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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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번만 더 섞어도 생을 마감시켜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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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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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 번 했긴 했군.”

요한이 허리춤에 찬 검을 만지작거리자, 레이몬드가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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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님! 주인님 좀 말려주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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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말 한 번 했다고 그러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레이몬드 경은 좋은 분이신 거 같고…….”

블란쳇 공작가에서 나를 적대하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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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봐야 리베르탄에 원한이 있는 사람이긴 하겠지만.’

그런 내 말에 레이몬드의 얼굴이 곧장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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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천사 같은 마님께서는 악랄한 주군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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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그리울 거예요. 경과 대화했던 우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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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님?”

레이몬드가 당황해서 눈동자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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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를 구해주시려던 거 아니었습니까? 주군. 그래도 제가 블란쳇 기사단장인데 용서를-”

막 레이몬드는 구불구불한 나무 아래를 지나치고 있었다.

퍼억-!

나무가 레이몬드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말에서 떨어질 뻔했던 레이몬드가 억울해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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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이건 아니지요!”

나는 놀란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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