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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부인. 입가에 피가…… (40/182)


40화 부인. 입가에 피가……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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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지켜보라는 듯 페뉼라 남작이 있는 곳을 향해 가볍게 눈짓했다.

나는 놀라서 요한의 소매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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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할 생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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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내 방식대로 처리하는 걸 보여줄 생각이지.”

붉은 눈동자가 소매를 붙잡은 내 손에 스치듯 닿았다가 다시 얼굴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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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리베르탄 문서, 부인이 넣어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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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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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도 좋았지만, 너무 물러.”

내가 그 문서를 넣어 뒀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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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아는 거야?’

만찬장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주변의 어지러운 소문 때문일까.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세상에 나와 요한, 두 사람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요한이 날카로운 눈매를 접으며 야릇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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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를 해도 알아먹지 못한 머저리들은 제대로 밟아줘야 해.”

요한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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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제 주제를 파악하고 알아서 기니까 .”

 

***

헤텔 백작 부인은 충격에 빠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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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왜 살아 있지?’

처음 헤텔 백작 부인은 페뉼라 남작이 불안했다.

사기에 성공한다 해도, 페뉼라 남작이 배신한다고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증거를 알아본다는 핑계로 감옥에 가둔 뒤 기사를 보내 페뉼라 남작을 죽여버렸다.

분명 페뉼라 남작은 죽었다.

남편인 헤텔 백작이 제대로 확인했다고 했다.

놀란 것은 그녀의 남편인 헤텔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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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 페뉼라 남작? 분명 내가 시체를 확인했는데…….”

당황한 나머지 그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주변의 귀족들이 더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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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러면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헤텔 백작 부인이 급하게 헤텔 백작의 말을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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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친분이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났다지만, 이제는 처지가 다른데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페뉼라 남작은 공식적으로 황실에 수배된 죄인.

반역죄 를 저지른 리베르탄 공작가에 협조한 극악무도한 죄인이다.

당연히 페뉼라 남작을 헤텔 백작성에 거두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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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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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백작? 그리고…… 헤텔 백작 부인?”

그때 오르테카 재상에게 매달리던 페뉼라 남작이 눈을 희번뜩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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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여기 있었군! 감히 날 이용하다가 죽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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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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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들한테 블란쳇 공작 부인을 모함할 수 있는 증거를 다 줬잖아!”

만찬장에 있는 모두가 헤텔 백작 부인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헤텔 백작 부인이 빠르게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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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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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잘못 봤다고?”

페뉼라 남작은 헤텔 백작 부인의 부정에 더 크게 자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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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한테 계약 마법을 조작할 수 있는 증거까지 다 줬잖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날 죽이려 해놓고 뻔뻔스럽게 발뺌하다니!”

이미 상황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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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러면 방금 전 눈물지으면서 했던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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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저렇게 뻔뻔하고 천박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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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일에 휘말린 블란쳇 공작 부인이 안타까워요.”

아무리 생각해도 죄를 은폐할 방법 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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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테카 재상이 막을 수 있는 선은 이미 끝났어.’

이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안타깝게도 블란쳇 공작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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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님. 저희 헤텔 백작가가 블란쳇 공작님께 너무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압니다.”

헤텔 백작 부인은 오르테카 재상을 지나쳐 요한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요한은 입꼬리만 올린 채 헤텔 백작 부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날렵한 턱끝이 오만하게 까딱였다.

무심한 반응에 헤텔 백작 부인은 긴장했지만, 침착하게 사죄의 말을 마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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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린테까지 걸었던 이상 달라질 게 없는 상황인 것도 잘 압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 백작가의 명맥만 유지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요한이 에스텔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헤텔 백작 부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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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용서를 비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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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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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지?”

하지만 요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헤텔 백작 부인이 예상 과 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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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죄하길 바라는 건가?’

헤텔 백작 부인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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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저희가 블란쳇 공작가에 큰 죄를 저질러 블란쳇 공작가의 명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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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요한이 헤텔 백작 부인의 말을 중간에 딱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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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지.”

고저 없이 흘러나온 우아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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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금 빌어야 할 건 그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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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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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야 할 대상이 잘못됐잖아. 이런 것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나?”

헤텔 백작 부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요한에게는 잘만 숙여졌던 고개가 이상하게, 에스텔을 향해서는 잘 숙여지지 않았다.

헤텔 백작 부인이 자존심에 몸을 부르르 떠는 사이, 불안했던 헤텔 백작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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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뭐 하고 있어. 빨리 사죄드려야지.”

헤텔 백작 부인은 숨도 멈추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분명 블라쳇 공작의 앞에서는 쉽게 숙여진 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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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한테 또 고개를 조아리라고?’

저 여자는 하찮은 평민인데.

땅을 짚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저히 숙여지지 않았다.

***

나는 요한이 보여주는 상황을 계속 주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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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요한이 짜둔 상황인가?’

잘못을 발뺌하는 헤텔 백작가, 그들을 향해 분노하는 페뉼라 남작.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하는 만찬장의 귀족들과 상황을 파악하고 눈살을 찌푸린 오르테카 재상.

모든 게 요한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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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인형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어쩌면 이것이 요한이 세상을 보는 시선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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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인형으로 보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요한에게 뻔뻔스럽게 사죄하던 헤텔 백작 부인이 나를 보고 머뭇거렸다.

그녀가 마지 못해 고개를 숙이자, 요한이 노골적으로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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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백작가는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가 보군.”

헤텔 백작이 하얗게 질려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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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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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백작가의 죄가 감히 이 정도 사죄로 될 거라 여겼던가.”

요한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흘러나와 헤텔 백작 부부를 압박했다.

헤텔 백작 부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조금 전의 망설임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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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블란쳇 공작 부인. 제가 욕심에 눈이 멀어 공작 부인을 음해하고 말았습니다. 이 죄를 어찌 갚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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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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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백작가의 모두가 공작 부인께 고개를 숙여도 갚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알지만…….”

헤텔 백작 부인은 머리를 박고 사죄하는 와중에도 연신 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요한은 한쪽 입매를 끌어 올리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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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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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면 어떤 식으로 사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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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빌어.”

비틀어진 그의 입매에서 피식- 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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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만은 붙이게 해달라고 구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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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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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자비든 뭐든 베풀 마음이 생기지 않겠나?”

헤텔 백작 부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굳어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요한이 우아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짧은 찰나, 요한이 내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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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 이제부터가 부인을 위해 준비한 클라이맥스니까.”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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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저렇게 말할수록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는데.’

요한은 엎드린 헤텔 백작 부부의 앞에 섰다.

상황을 방관하던 오르테카 재상이 요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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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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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주려 하지.”

요한은 오르테카 재상을 무시하고 헤텔 백작의 손등을 구두로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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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브, 블란쳇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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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 아내를 모함하려 했던 손인가.”

구둣발이 손등을 거칠게 으스러 밟았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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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발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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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벌일 땐 , 처분될 각오도 했어야지.”

헤텔 백작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백작 부인은 제 남편의 모습을 보고 더욱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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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 정돈가.”

요한은 더러운 걸 밟았다는 듯 가볍게 발을 털어내며 헤텔 백작 부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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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넌 그 천박한 혀로 내 아내를 모욕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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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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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그 주제도 모르는 혀를 뽑아버리려 했는데.”

헤텔 백작 부인은 제 구원줄인 마냥 오르테카 재상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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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르테카 재상님. 블란쳇 공작님을 말려주십시오! 정식 재판도 아니고 이렇게 귀족을 대할 수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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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린테를 거시지 않았습니까?”

오르테카 재상이 냉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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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이 행하는 이 모든 행동이 헤텔 백작가에 가져갈 대가인 모양인가 보지요. 그렇기에 저는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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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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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부인 본인이 맹세하신 오블린테이니 그대로 책임지시면 됩니다.”

헤텔 백작 부인이 절망했다.

요한은 나를 돌아보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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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눈알과 혀 중에 뭐부터 뽑아줄까?”

모르는 척하고 있던 나는 흠칫 놀랐다.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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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걸 골라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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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부인 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나는 어느 쪽도 고르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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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진짜 해버릴 남자라서 무섭단 말이지.’

나라고 날 매장하려던 헤텔 백작 부인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신체가 훼손되길 바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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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 어려우면, 둘 다 해줄게.”

요한의 붉은 눈동자에 흥미가 감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매우 기대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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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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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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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나는 일부러 기침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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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척하면서 도망가자!’

다행히 자주 아픈 덕분에 실감 나는 연기가 가능했다. 힘든 것처럼 숨소리를 떨자, 요한의 표정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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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 아픈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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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난 괜찮아.”

아닌 척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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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싶다고 들어갈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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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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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요한이 하려는 일을 내가 방해할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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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속였나?’

그런 생각을 하며, 요한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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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뜻밖에도 요한은 내 생각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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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의사한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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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 오르테카 재상님도 계시고 상황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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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건 하나도 안 중요해.”

요한이 턱을 꽉 깨문 채 나를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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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부인뿐이야.”

요한은 모든 상황을 외면하고 나를 안고 만찬장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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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

오르테카 재상이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요한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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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하시는 겁니-”

물론 요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만찬장에서 벗어나 의사를 향해 달렸다.

빠져나오는 동안 당황스러워하는 귀족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장담컨대, 나보다 더 놀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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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어쨌거나 내 목적은 성공했다.

당장 내 눈앞에서 헤텔 백작 부인이 죽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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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페뉼라 남작이 있는 이상 헤텔 백작과 백작 부인은 수도로 이송될 거야.’

심지어 오르테카 후작이 리베르탄 문서도 가지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은 절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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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충분해.’

솔직히 상대가 한 일 이상으로 잔인하게 벌을 받았으면, 마음이 좀 불편했을 거 같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의사인 헨리 씨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헨리 씨는 다급해 보이는 요한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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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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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인이 갑자기 무척 어지럽다는군.”

요한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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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상태가 심각하다. 급히 치료를 봐야 할 것 같다.”

헨리 씨는 내 얼굴을 보고 갸웃했다. 내 안색은 멀쩡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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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괜찮으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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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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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십니다. 당장 진료를 보겠습니다.”

헨리 씨가 나를 앉혀놓고 진찰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요한은 살벌한 시선으로 헨리 씨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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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증상은 다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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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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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리지 않은 증상이 있다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요한의 으르렁거리는 위협에 내가 괜히 다 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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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게 하지?’

갑자기 다 나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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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우리가 무슨 소식을 알아왔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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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가 들으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만큼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단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나무들이 말을 걸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나무들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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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은 상황이 급해서 그런데, 나중에 대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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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중에 말하면 의미가 없다니까! 꼭 지금 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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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안 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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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 그러면 본론만 말하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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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 있는 나무들과 접촉하며 네 저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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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네가 안 된다니 다른 건 나중에 얘기하고, 급한 것만 얘기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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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들의 기도로 네 요정의 힘이 더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더라. 그래서 모두 다른 나무들을 협박해서 기도를 하고 왔다.

요한이 내 얼굴을 쓸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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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거 아니야? 넌 지금 환자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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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야.”

그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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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은 뭐지?’

입에서 비릿한 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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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요정의 힘이 회복되었다는 게…….’

어쩐지 나를 바라보는 요한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요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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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입가에 피가…….”

나는 급하게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소매에서 검은 피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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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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