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부인을 울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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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부인을 울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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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부인을 울리고 싶어
2022.04.12.
만찬장에는 헤텔 백작가 인근의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만찬에 참석한 오르테카 재상과 우리를,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유심히 곁눈질했다.
‘많이들 궁금했겠지.’
남성 귀족들의 감탄이 귀에 꽂혔다.
“블란쳇 공작이 왜 결혼을 했나 했더니, 외모 하나는 정말…….”
“블란쳇 공작도 사내긴 했군요. 그것도 모르고 여자에 관심이 없는 줄…….”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수군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워.’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많은 귀족 사이에서 구경거리가 된 느낌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요한이 무릎에 올린 내 손을 잡아주었다.
“저 입들을 다 찢어버릴까?”
“……응?”
“하지만 부인이 옆에 있으니, 참아야겠지.”
뼈대가 단단한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마다 깍지를 껴 압박했다.
“그래도 부인.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무엇을요?”
“지금 존댓말 썼네.”
“하, 하루아침에 바로 고치긴 어려워요.”
내가 놀라서 변명하자, 요한이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입매를 슬쩍 올렸다.
“그러면 존대할 때마다 벌을 주는 게 나으려나.”
“……저번부터 왜 자꾸 벌을 주려는 거야. 요한은 나한테 벌주고 싶어?”
“글쎄.”
요한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주치기 부끄러워지는 시선이다.
“나도 모르게 자꾸 부인을 울리고 싶어.”
“…….”
“부인이 우는 얼굴, 아주 설레거든.”
흑막다운 아주 무시무시한 사고방식이다.
불만스럽게 요한이 잡은 손을 빼냈다.
“하지만 나 외의 사람들이 울리는 건 아주 불쾌할 것 같아.”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보던 그가 붉은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내며 속삭였다.
“그러니 무엇이든 나한테 말해. 다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어떤 걸?”
“무엇이든. 어차피 내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거든.”
요한의 목소리가 조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또 뭘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뎅- 9시를 울리는 종이 쳤다.
난 급히 문가를 살폈다. 고개를 빼꼼 내민 베티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걱정하던 일은 잘 해결한 모양이다.
헤텔 백작 부부가 일어섰다.
헤텔 백작이 샴페인이 든 잔을 들며 호기롭게 외쳤다.
“헤텔 백작성에 모여주신 귀빈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특히 귀한 손님들께서 자리를 빛내주셔서 아주 영광입니다.”
헤텔 백작 부인이 남편을 따라 잔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그러면 제국을 위-”
참석한 귀족들이 헤텔 백작 부인을 따라 잔을 들려던 순간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던 헤텔 백작 부인이 가냘프게 한줄기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
헤텔 백작 부인이 귀빈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다시 축사를 진행할게요.”
“마그리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헤텔 백작 부인과 유난히 친한 귀부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니에요. 차마 손님들 앞에서 말할 수는 없어요.”
“여보, 그래도 말하는 게 좋지 않겠소.”
헤텔 백작은 아내를 달래기 시작했다.
“차라리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을 꺼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주변의 귀족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편하게 말해봐요, 마그리타.”
“그래요. 무리하는 것 같은데 좀 쉬었다가 해도 괜찮아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 헤텔 백작 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들 그동안 우리 헤텔 백작가가 재정적으로 힘들었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계실 거예요. 남편의 사업 실패 때문이라 알고 계시겠죠.”
헤텔 백작 부인은 흰 손수건으로 눈물 고인 눈가를 찍었다.
“하지만 헤텔 백작가가 힘들어진 이유는, 백작가의 돈을 갚지 않은 분 때문이었어요.”
“돈을 갚지 않은 분이라고요?”
“그분은…….”
마지막에 헤텔 백작 부인의 시선이 한 곳에 닿았다.
에스텔이 있는 곳이었다.
헤텔 백작 부인과 시선이 마주친 에스텔이 놀란 듯 남색 눈을 깜빡였다.
“지금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블란쳇 공작 부인. 왜 헤텔 백작가의 돈을 갚지 않으신 건가요?”
에스텔이 당황했다.
헤텔 백작 부인은 그런 에스텔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히 나를 우습게 만들어?’
헤텔 백작가에서 그토록 바라던 오르테카 재상의 관심을 끈 것도 모자라, 딸의 혼삿길도 망친 악독한 여자.
“공작 부인에겐 그리 큰 금액이 아닐지 모르나, 저희 헤텔 백작가에는 무척 큰돈이에요. 이자는 주지 않으셔도 되니 부디 원금만이라도 돌려주세요.”
“죄송하지만, 전 헤텔 백작가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어요.”
모두가 에스텔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블란쳇 공작 부인은 집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지 않았나?”
에스텔이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단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했다.
‘어떻게 하면 리베르탄의 입양아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지? 애초에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이잖아?’
그래서 한 귀부인은 헤텔 백작 부인의 소매를 붙잡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블란쳇 공작 부인이 돈을 빌리신 건가요? 그리고 만났더라도 명확한 증거 없이는…….”
“그런 의문이 드실 수 있어요. 다행히 저희에겐 저희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있어요.”
헤텔 백작 부인은 하녀를 시켜 집무실에서 기밀이라 적힌 문서 봉투를 가져오게 했다.
하녀는 빠르게 봉투를 가지고 돌아왔다.
“결국 이 문서를 모두의 앞에 공개할 수밖에 없겠네요. 자, 여기 이 차용증과 보증서의 서명을 봐주세요.”
귀족들조차 차용증에 적힌 금액을 보고 기겁했다.
“세상에. 10만 골드라고?”
“10만 골드를 돌려받지 못했단 말입니까? 어찌 그리 큰 금액을…….”
10만 골드는 성 한 채는 살 수 있는 금액.
평범한 귀족 가문이 3-4년 정도의 수입 정도나 되는 큰돈이었다.
헤텔 백작 부인은 모두가 다 볼 수 있게 계약서와 보증서를 들어 올렸다.
[에스텔 리베르탄.]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에스텔의 하얀 얼굴이 창백해졌다.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 정말 아니에요.”
하지만 에스텔은 우아하게 등을 펴고 헤텔 백작 부인을 응시했다.
“전 그런 보증서를 쓴 적이 없어요. 애초에 대리인이라면…….”
“본인이 당시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완성되지 않는 게 계약 마법이지요. 그런데 계약 마법이 성립된 이 보증서의 서명은 누구의 것인가요?”
헤텔 백작 부인이 검지로 보증서의 이름을 툭툭 두드렸다.
“믿기지 않으시면 가져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부인의 이름이 맞는지.”
헤텔 백작 부인이 에스텔에게 보증서를 건네주었다. 에스텔이 보증서를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남색 눈동자가 뚫어져라 서명란을 살폈다.
“제 서명이 맞네요. 하지만 난 이런 내용에 서명한 적이…….”
헤텔 백작 부인이 속으로 히죽 웃었다.
‘완벽하게 성공했어!’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보람이 있었다.
‘이제 저 짜증 나는 평민이 버려지든, 공작이 이 돈을 배상해 주든 하겠지.’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헤텔 백작 부인은 슬픈 척 눈을 내리깔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렸다.
‘어떤 계약 마도구로 검증하든 조작된 증거를 찾지 못할 거야.’
조금 우스운 상황이기는 했다.
에스텔의 말처럼, 에스텔은 헤텔 백작가에 돈을 빌린 적이 없으니까. 물론 리베르탄 공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저 차용증은 가짜다.
‘하지만 보증서의 서명이 진짜거든.’
어떤 귀족도 이 함정을 간파하지 못할 것이다. 페뉼라 남작이 오기 전까지, 헤텔 백작 부인 역시 전혀 생각 못 한 방법이었으므로.
‘페뉼라 남작, 네놈의 희생은 기꺼이 감사히 받아주지.’
한밤중 다급하게 찾아왔던 페뉼라 남작. 그는 거래 조건이라며 웬 봉투를 내밀었다.
‘제가 급할 때 사용하기 위해 빼둔 겁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주인의 권한으로 손님들의 방을 전부 몰래 수색해 주십시오.’
봉투 안에는 에스텔의 이름이 적힌 보증서도 있었다.
‘이 빈 보증서 따위로 뭘 하라고?’
물론 계약 마도구로 검증해 보니, 확실하게 계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적당히 이름이나 받아놓은 이 보증서만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걸로 무엇에 쓰라고 자네의 부탁을 들어준단 말인가.’
‘이 보증서에, 조작한 차용증을 써서 블란쳇 공작 부인에게 돈을 받아내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지? 계약 마법으로 다 들킬 조작 아닌가!’
계약 마도구는 계약이 체결된 뒤 수정되는 모든 행위를 조작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귀족들은 계약 마법을 체결하기 전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다.
‘물론 정상적이라면 그렇지요. 하지만 딱 한 번, 조작할 수 있습니다.’
‘조작할 수 있다고?’
‘정확히는 이 보증서에 틈이 있다는 겁니다. 애초에 이 보증서는 리베르탄 공작이 보호자 권한으로 대신 보증해 놓은 겁니다. 당사자가 아닌 계약 마법에는 변수가 생기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계약 마법은 대리로 서명하거나 보증하지 않는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알아듣게 빨리 결론만 얘기해.’
‘당시 우연히 보호자 대리 문서가 절반 정도 사라진 채 계약 마법이 완성되고 말았습니다. 그 덕에 계약 마법이 완전히 꼬이게 되었어요.’
‘그러면…….’
‘예. 쉽게 말해 블란쳇 공작 부인이 보증서를 손으로 잡기 전까지 문서를 조작해서 끼워 넣으면, 당시 체결한 것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을 불러와 황궁에서 재판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에스텔은 다르다. 당시 계약을 대리로 체결한 그녀의 부모가 반역죄로 잡혀갔으니까.
‘그래서, 공작 부인이 어떻게 이 문서를 만지게 하지? 심지어 공작 부인이 이 내용을 전부 인지하고 있어야 성립되는 거 아닌가?’
‘그게 제 고민이긴 했습니다.’
‘거기다 자네의 말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야. 실제로 성립할지는 알 수 없어!’
페뉼라 남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믿기지 않으신다면 자녀분들을 데려와 몇 번 실험해 보신 뒤 하시면 됩니다. 여러 번 시도해 보니,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계약 마법은 민감한 마법이라 조그마한 변수에도 바뀌는데 확실히 성공한단 보장이…….’
‘그게 걱정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이건 합법적으로 블란쳇 공작에게 막대한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사기가 걸렸다간, 헤텔 백작가는 완전히 몰락한다.
감히 계약 마법을 조작해서 블란쳇 공작에게 사기를 치려 했으므로. 아마 황제조차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다.
‘좋다. 네 얘기를 들어주지.’
그래도 믿을 구석은 꽤 있었다. 여기엔 블란쳇 공작을 막아서고, 계약을 집행해 줄 오르테카 재상이 있으니까.
헤텔 백작 부인은 딸을 불러다 수차례 시도해 보았다.
페뉼라 남작의 말대로 정말 성공했다.
에스텔의 손에, 이 조작한 문서가 닿기만 한다면.
‘그게 가장 걱정이었는데…….’
멍청하게도 궁지에 몰려서 성급하게 문서를 만지는 꼴이라니.
이제 이 사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일한 증거라 할 만한 페뉼라 남작 역시 성의 감옥으로 보내 몰래 죽여버렸으니까.
헤텔 백작 부인의 성공을 말해주듯 주변 귀족들도 백작 부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물증까지 나왔는데 본인이 아니라고 우기기만 하시다니.”
“헤텔 백작 일가가 안타깝네요.”
그때 요한이 에스텔의 한쪽 어깨를 감싸 끌어안았다.
“내 부인이 거짓말을 할 리 없는데.”
“……요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계약 마도구로 증명한 뒤에 하지 그래?”
블란쳇 공작의 위협적인 발언에 수군거리는 이들이 모두 조용해져 공작의 눈치를 보았다.
헤텔 백작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저희는 결백하니까요. 대신 이 사건의 중재를 오르테카 재상님께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재상님께서 하시면 정확하실 테니까요.”
“맞아요. 재상님은 폐하의 행정 권한 대리라 누구보다 정확한 계약 마도구가 있다 들었어요.”
로테가 백작 부인의 편을 들 듯 말을 덧붙이자 조용히 있던 오르테카 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상황이 복잡한 듯하니 제가 바로 확인하지요.”
오르테카 재상은 블란쳇 공작가와 헤텔 백작가에게 반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 반지는 재상만이 사용할 수 있게 허락된 황가의 보물입니다. 계약 마법을 감별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있지요.”
영롱한 푸른 보석 주위로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반지였다.
“물론 기능 자체는 일반 계약 마도구와 비슷합니다. 보석이 붉은색으로 변한다면 조작된 정황이 있단 것이고, 색이 여전히 금색이면 계약 마법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단 뜻입니다.”
오르테카 후작의 녹색 눈이 뱀처럼 헤텔 백작 부인을 응시했다.
“물론 누가 진짜일지는 검사해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요.”
헤텔 백작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바짝 긴장했다.
‘황궁에서 내려져 오던 보물이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분명 오르테카 후작은 일반 계약 마도구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집무실에서 여러 번 검증했던 대로 나올 것이다.
“좋아요. 저희는 떳떳하니까요.”
“……그런데 헤텔 백작 부인.”
그동안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요한의 품에 안겨 있던 에스텔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가짜 문서로 판명 난다면, 백작 부인께서는 어떤 식으로 보상해 주실 건가요?”
“예?”
“물론 헤텔 백작 부인께서도 억울하실 수 있죠. 하지만 전 잘못했으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막대한 돈을 물어줄 뻔했는걸요.”
에스텔의 눈가는 울었던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엔 블란쳇 공작가의 명예도 걸린 문제잖아요. 그냥 넘어가실 건 아니시지요?”
누가 봐도 유순하고, 심성이 여린, 곱게 자란 티가 묻어나는 에스텔.
“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아, 정말 다행이에요.”
에스텔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요한. 이럴 때는 어느 정도로 보상을 받아?”
“글쎄. 보통은 사기 치려던 금액의 10배쯤은 갚아야 하지.”
사기라는 단어에 헤텔 백작 부인이 놀라 소리쳤다.
“사, 사기라니요!”
“왜 놀라지? 내 부인이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헤텔 백작가에서 사기 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그, 그건…….”
이런 상황은 헤텔 백작이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계획이 실패했어도 자신들 역시 당한 거라고 우기면서 빠져나가려 했는데…….
“그러면 잘 됐다! 저는 제 블란쳇 공작 부인의 작위를 걸고 맹세할게요. 저는 저 보증서에 서명한 적 없어요.”
에스텔이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헤텔 백작 부인께서도 가문을 걸고 맹세하시면 되겠네요.”
“…….”
“맹세해 주실 수 있는 거죠?”
“……그건.”
남색 눈동자가 말갛게 빛났다.
하지만 헤텔 백작 부인은 저 반짝이는 눈동자가 묘하게 두려워졌다.
‘왜 내가 덫에 걸린 것만 같지?’
그녀는 갑자기 모든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출 수도 없었다.
로테가 오르테카 재상을 보며 순진하게 외쳤다.
“재상님, 얼른 진행해 주세요. 시간 끌 필요 없는 일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