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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부인을 울리고 싶어 (38/182)


38화 부인을 울리고 싶어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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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장에는 헤텔 백작가 인근의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만찬에 참석한 오르테카 재상과 우리를,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유심히 곁눈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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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궁금했겠지.’

남성 귀족들의 감탄이 귀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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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이 왜 결혼을 했나 했더니, 외모 하나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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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도 사내긴 했군요. 그것도 모르고 여자에 관심이 없는 줄…….”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수군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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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어지러워.’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많은 귀족 사이에서 구경거리가 된 느낌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요한이 무릎에 올린 내 손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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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입들을 다 찢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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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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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인이 옆에 있으니, 참아야겠지.”

뼈대가 단단한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마다 깍지를 껴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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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인.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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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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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존댓말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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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루아침에 바로 고치긴 어려워요.”

내가 놀라서 변명하자, 요한이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입매를 슬쩍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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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존대할 때마다 벌을 주는 게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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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부터 왜 자꾸 벌을 주려는 거야. 요한은 나한테 벌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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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요한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주치기 부끄러워지는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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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자꾸 부인을 울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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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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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우는 얼굴, 아주 설레거든.”

흑막다운 아주 무시무시한 사고방식이다.

불만스럽게 요한이 잡은 손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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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 외의 사람들이 울리는 건 아주 불쾌할 것 같아.”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보던 그가 붉은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내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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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엇이든 나한테 말해. 다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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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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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어차피 내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거든.”

요한의 목소리가 조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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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뭘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뎅- 9시를 울리는 종이 쳤다.

난 급히 문가를 살폈다. 고개를 빼꼼 내민 베티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걱정하던 일은 잘 해결한 모양이다.

헤텔 백작 부부가 일어섰다.

헤텔 백작이 샴페인이 든 잔을 들며 호기롭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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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백작성에 모여주신 귀빈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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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귀한 손님들께서 자리를 빛내주셔서 아주 영광입니다.”

헤텔 백작 부인이 남편을 따라 잔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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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제국을 위-”

참석한 귀족들이 헤텔 백작 부인을 따라 잔을 들려던 순간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던 헤텔 백작 부인이 가냘프게 한줄기 눈물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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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러면 안 되는데.”

 

***

헤텔 백작 부인이 귀빈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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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다시 축사를 진행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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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헤텔 백작 부인과 유난히 친한 귀부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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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차마 손님들 앞에서 말할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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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래도 말하는 게 좋지 않겠소.”

헤텔 백작은 아내를 달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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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을 꺼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주변의 귀족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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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말해봐요, 마그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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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무리하는 것 같은데 좀 쉬었다가 해도 괜찮아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 헤텔 백작 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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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동안 우리 헤텔 백작가가 재정적으로 힘들었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계실 거예요. 남편의 사업 실패 때문이라 알고 계시겠죠.”

헤텔 백작 부인은 흰 손수건으로 눈물 고인 눈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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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헤텔 백작가가 힘들어진 이유는, 백작가의 돈을 갚지 않은 분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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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갚지 않은 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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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마지막에 헤텔 백작 부인의 시선이 한 곳에 닿았다.

에스텔이 있는 곳이었다.

헤텔 백작 부인과 시선이 마주친 에스텔이 놀란 듯 남색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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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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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블란쳇 공작 부인. 왜 헤텔 백작가의 돈을 갚지 않으신 건가요?”

에스텔이 당황했다.

헤텔 백작 부인은 그런 에스텔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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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를 우습게 만들어?’

헤텔 백작가에서 그토록 바라던 오르테카 재상의 관심을 끈 것도 모자라, 딸의 혼삿길도 망친 악독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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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에겐 그리 큰 금액이 아닐지 모르나, 저희 헤텔 백작가에는 무척 큰돈이에요. 이자는 주지 않으셔도 되니 부디 원금만이라도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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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전 헤텔 백작가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어요.”

모두가 에스텔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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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쳇 공작 부인은 집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지 않았나?”

에스텔이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단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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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리베르탄의 입양아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지? 애초에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이잖아?’

그래서 한 귀부인은 헤텔 백작 부인의 소매를 붙잡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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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블란쳇 공작 부인이 돈을 빌리신 건가요? 그리고 만났더라도 명확한 증거 없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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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문이 드실 수 있어요. 다행히 저희에겐 저희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있어요.”

헤텔 백작 부인은 하녀를 시켜 집무실에서 기밀이라 적힌 문서 봉투를 가져오게 했다.

하녀는 빠르게 봉투를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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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문서를 모두의 앞에 공개할 수밖에 없겠네요. 자, 여기 이 차용증과 보증서의 서명을 봐주세요.”

귀족들조차 차용증에 적힌 금액을 보고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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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10만 골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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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골드를 돌려받지 못했단 말입니까? 어찌 그리 큰 금액을…….”

10만 골드는 성 한 채는 살 수 있는 금액.

평범한 귀족 가문이 3-4년 정도의 수입 정도나 되는 큰돈이었다.

헤텔 백작 부인은 모두가 다 볼 수 있게 계약서와 보증서를 들어 올렸다.

[에스텔 리베르탄.]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에스텔의 하얀 얼굴이 창백해졌다.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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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말 아니에요.”

하지만 에스텔은 우아하게 등을 펴고 헤텔 백작 부인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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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런 보증서를 쓴 적이 없어요. 애초에 대리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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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당시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완성되지 않는 게 계약 마법이지요. 그런데 계약 마법이 성립된 이 보증서의 서명은 누구의 것인가요?”

헤텔 백작 부인이 검지로 보증서의 이름을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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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으시면 가져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부인의 이름이 맞는지.”

헤텔 백작 부인이 에스텔에게 보증서를 건네주었다. 에스텔이 보증서를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남색 눈동자가 뚫어져라 서명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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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서명이 맞네요. 하지만 난 이런 내용에 서명한 적이…….”

헤텔 백작 부인이 속으로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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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성공했어!’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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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 짜증 나는 평민이 버려지든, 공작이 이 돈을 배상해 주든 하겠지.’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헤텔 백작 부인은 슬픈 척 눈을 내리깔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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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약 마도구로 검증하든 조작된 증거를 찾지 못할 거야.’

조금 우스운 상황이기는 했다.

에스텔의 말처럼, 에스텔은 헤텔 백작가에 돈을 빌린 적이 없으니까. 물론 리베르탄 공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저 차용증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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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증서의 서명이 진짜거든.’

어떤 귀족도 이 함정을 간파하지 못할 것이다. 페뉼라 남작이 오기 전까지, 헤텔 백작 부인 역시 전혀 생각 못 한 방법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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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뉼라 남작, 네놈의 희생은 기꺼이 감사히 받아주지.’

한밤중 다급하게 찾아왔던 페뉼라 남작. 그는 거래 조건이라며 웬 봉투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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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급할 때 사용하기 위해 빼둔 겁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주인의 권한으로 손님들의 방을 전부 몰래 수색해 주십시오.’

봉투 안에는 에스텔의 이름이 적힌 보증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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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빈 보증서 따위로 뭘 하라고?’

물론 계약 마도구로 검증해 보니, 확실하게 계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적당히 이름이나 받아놓은 이 보증서만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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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무엇에 쓰라고 자네의 부탁을 들어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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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증서에, 조작한 차용증을 써서 블란쳇 공작 부인에게 돈을 받아내면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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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지? 계약 마법으로 다 들킬 조작 아닌가!’

계약 마도구는 계약이 체결된 뒤 수정되는 모든 행위를 조작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귀족들은 계약 마법을 체결하기 전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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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상적이라면 그렇지요. 하지만 딱 한 번, 조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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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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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이 보증서에 틈이 있다는 겁니다. 애초에 이 보증서는 리베르탄 공작이 보호자 권한으로 대신 보증해 놓은 겁니다. 당사자가 아닌 계약 마법에는 변수가 생기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계약 마법은 대리로 서명하거나 보증하지 않는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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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듣게 빨리 결론만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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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연히 보호자 대리 문서가 절반 정도 사라진 채 계약 마법이 완성되고 말았습니다. 그 덕에 계약 마법이 완전히 꼬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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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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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쉽게 말해 블란쳇 공작 부인이 보증서를 손으로 잡기 전까지 문서를 조작해서 끼워 넣으면, 당시 체결한 것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을 불러와 황궁에서 재판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에스텔은 다르다. 당시 계약을 대리로 체결한 그녀의 부모가 반역죄로 잡혀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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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작 부인이 어떻게 이 문서를 만지게 하지? 심지어 공작 부인이 이 내용을 전부 인지하고 있어야 성립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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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제 고민이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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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자네의 말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야. 실제로 성립할지는 알 수 없어!’

페뉼라 남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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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으신다면 자녀분들을 데려와 몇 번 실험해 보신 뒤 하시면 됩니다. 여러 번 시도해 보니,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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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마법은 민감한 마법이라 조그마한 변수에도 바뀌는데 확실히 성공한단 보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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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걱정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이건 합법적으로 블란쳇 공작에게 막대한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사기가 걸렸다간, 헤텔 백작가는 완전히 몰락한다.

감히 계약 마법을 조작해서 블란쳇 공작에게 사기를 치려 했으므로. 아마 황제조차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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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네 얘기를 들어주지.’

그래도 믿을 구석은 꽤 있었다. 여기엔 블란쳇 공작을 막아서고, 계약을 집행해 줄 오르테카 재상이 있으니까.

헤텔 백작 부인은 딸을 불러다 수차례 시도해 보았다.

페뉼라 남작의 말대로 정말 성공했다.

에스텔의 손에, 이 조작한 문서가 닿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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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가장 걱정이었는데…….’

멍청하게도 궁지에 몰려서 성급하게 문서를 만지는 꼴이라니.

이제 이 사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일한 증거라 할 만한 페뉼라 남작 역시 성의 감옥으로 보내 몰래 죽여버렸으니까.

헤텔 백작 부인의 성공을 말해주듯 주변 귀족들도 백작 부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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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증까지 나왔는데 본인이 아니라고 우기기만 하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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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텔 백작 일가가 안타깝네요.”

그때 요한이 에스텔의 한쪽 어깨를 감싸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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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인이 거짓말을 할 리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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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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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계약 마도구로 증명한 뒤에 하지 그래?”

블란쳇 공작의 위협적인 발언에 수군거리는 이들이 모두 조용해져 공작의 눈치를 보았다.

헤텔 백작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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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요. 저희는 결백하니까요. 대신 이 사건의 중재를 오르테카 재상님께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재상님께서 하시면 정확하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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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재상님은 폐하의 행정 권한 대리라 누구보다 정확한 계약 마도구가 있다 들었어요.”

로테가 백작 부인의 편을 들 듯 말을 덧붙이자 조용히 있던 오르테카 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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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상황이 복잡한 듯하니 제가 바로 확인하지요.”

오르테카 재상은 블란쳇 공작가와 헤텔 백작가에게 반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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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지는 재상만이 사용할 수 있게 허락된 황가의 보물입니다. 계약 마법을 감별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있지요.”

영롱한 푸른 보석 주위로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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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능 자체는 일반 계약 마도구와 비슷합니다. 보석이 붉은색으로 변한다면 조작된 정황이 있단 것이고, 색이 여전히 금색이면 계약 마법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단 뜻입니다.”

오르테카 후작의 녹색 눈이 뱀처럼 헤텔 백작 부인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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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가 진짜일지는 검사해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요.”

헤텔 백작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바짝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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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서 내려져 오던 보물이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분명 오르테카 후작은 일반 계약 마도구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집무실에서 여러 번 검증했던 대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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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저희는 떳떳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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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헤텔 백작 부인.”

그동안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요한의 품에 안겨 있던 에스텔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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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짜 문서로 판명 난다면, 백작 부인께서는 어떤 식으로 보상해 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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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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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헤텔 백작 부인께서도 억울하실 수 있죠. 하지만 전 잘못했으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막대한 돈을 물어줄 뻔했는걸요.”

에스텔의 눈가는 울었던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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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여기엔 블란쳇 공작가의 명예도 걸린 문제잖아요. 그냥 넘어가실 건 아니시지요?”

누가 봐도 유순하고, 심성이 여린, 곱게 자란 티가 묻어나는 에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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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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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다행이에요.”

에스텔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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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이럴 때는 어느 정도로 보상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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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보통은 사기 치려던 금액의 10배쯤은 갚아야 하지.”

사기라는 단어에 헤텔 백작 부인이 놀라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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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기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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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놀라지? 내 부인이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헤텔 백작가에서 사기 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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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이런 상황은 헤텔 백작이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계획이 실패했어도 자신들 역시 당한 거라고 우기면서 빠져나가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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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잘 됐다! 저는 제 블란쳇 공작 부인의 작위를 걸고 맹세할게요. 저는 저 보증서에 서명한 적 없어요.”

에스텔이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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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헤텔 백작 부인께서도 가문을 걸고 맹세하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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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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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해 주실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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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남색 눈동자가 말갛게 빛났다.

하지만 헤텔 백작 부인은 저 반짝이는 눈동자가 묘하게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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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덫에 걸린 것만 같지?’

그녀는 갑자기 모든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출 수도 없었다.

로테가 오르테카 재상을 보며 순진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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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님, 얼른 진행해 주세요. 시간 끌 필요 없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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