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원하는 만큼 만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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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원하는 만큼 만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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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원하는 만큼 만져봐
2022.04.01.
탄탄한 근육 아래 요한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내 귓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아니. 내 심장 소리인가?’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벗고 있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 벗은 것도 아닌데…….’
이불로 가려지긴 했지만 요한은 멀쩡히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황 때문인지 전혀 다르게 인식되었다.
‘마치 진짜 초야처럼…….’
요한이 은근한 목소리로 내 손바닥을 문질렀다.
“그래서, 우리 부인의 소감은?”
감히 움직일 엄두도 못 내던 손이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 근처로 움직였다.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그의 몸은 맹수를 연상시켰다.
여자인 나와는 확실히 다른 몸.
솔직히 남자 몸을 대놓고 보는 것도 모자라 만져보는 것은 아예 처음이었다. 낯설고 단단한 감촉을 따라 팔에서부터 소름이 올라왔다. 바싹 마른 입가로 침을 꿀꺽 삼켰다.
요한이 눈가를 접으며 달콤하게 웃었다.
“원하는 만큼 만져봐도 돼.”
“…….”
“내가 부인 남편인데, 뭐가 문제겠어.”
내 얼굴이 점점 더 벌게졌다. 누가 봐도 의식해서 삐걱거리는 나를 보며, 요한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래야 다들 진짜인 줄 알지. 응?”
요한은 내게 자유라도 주는 것처럼 잡았던 손을 풀어주었다. 붉은 눈동자가 집요하게 나를 살폈다.
‘나보고 직접 만지라고?’
밖에서는 여전히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안쪽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베티가 여기 손님방은 염탐하기 쉽다고 했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자, 방금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온몸이 예민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이렇게요?”
한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쌌다. 요한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 그러자 요한은 내 손길을 음미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 모습조차도 어쩐지 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달콤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천천히.”
“천천히…….”
“아니다.”
요한이 사냥 직전의 맹수처럼 목울대를 울렸다.
“이 정도는 해야 의심을 안 하려나.”
그가 나를 끌어안고 몸을 바짝 당겼다. 요한은 내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나직이 달큰한 숨소리를 뱉었다.
“이걸 어떻게 참지.”
“네?”
“이대로 잡아먹을까…….”
요한의 붉은 눈동자가 사납게 나를 훑어내렸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내 등허리를 쓸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번지듯 뜨거웠다.
나는 두 볼을 물들이며 물었다.
“자, 잡아먹는다니요?”
“농담이야. 부인이 잡아먹을 데가 어디 있어. 이렇게 말라서.”
그 말과 달리 요한은 점점 흉포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가볍게 깨물었다. 위험했다.
‘특히 저 눈빛.’
내 모든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는 듯 보는 요한의 눈빛이 두려웠다.
그의 뜨거운 시선 때문에 자꾸 착각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태연한 척 대꾸했다.
“그런데 왜 자꾸 깨물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못 참을 것 같아서.”
왜인지 요한과 마주 보고 있기가 겁나서 팔을 뻗어 요한의 목 언저리를 감쌌다.
‘실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대신 몸 전체로 요한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인은…… 정말.”
요한은 내 뒷목에서부터 등줄기까지 검지로 훑어내렸다.
“사람을 미치게 해. 알아?”
소름이 쫙 끼쳤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온몸이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가 천천히 내 윗옷을 잡아당겨 드러난 목에 입을 맞췄다.
요한을 붙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목 근처에 얼굴을 문지르던 요한이 고개를 들어 나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다시 마주친 붉은 눈동자가 소름 끼칠 정도로 빛났다.
“하아.”
너무나 가까운 거리. 나는 요한의 입술을 바라보며, 숨을 멈추었다. 느릿하게 다가온 요한이 천천히 내 코끝에 입을 맞추었다.
장난스럽게 코끝을 깨문 요한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아직은 아깝지.”
하지만 그 목소리엔 묘한 분노도 담겨 있었다.
“저딴 것들 구경거리로 삼게 둘 수도 없으니까.”
요한은 코를 시작으로, 다시 내 볼, 목 언저리에 입술을 맞췄다. 정말 짐승도 아니고. 하지만 요한이 인내하는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요.”
불쑥 나온 말에 요한의 시선에 의문이 떠올랐다. 말을 고르던 나는 뜸을 들이다가, 요한이 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첫 키스는 공작님과 단둘이 있는 곳에서 하고 싶었거든요.”
“……첫 키스라고?”
“네. 여태까지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내 수줍은 반응에 요한의 붉은 눈동자는 독점욕으로 가득 찼다. 내 허리춤에 가 있던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으음.”
잠깐 고민하던 요한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너무 빨라서 무섭지는 않아?”
“전……. 오히려 다른 게 걱정되어요. 제가 별로일까 봐요.”
‘여기서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이상해 보이겠지?’
사이 좋은 부부 사이를 연기하기 위해서 서로 익숙한 척해야 한다는 이 상황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평소라면 감히 하지 못했을 일도 시도할 수 있게.
“아무래도 그렇잖아요. 전 너무 아는 게 없고…….”
자꾸 요한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설렘과 두려움이 커져갔다. 과거 스치듯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 같은 애는 뭘 해도 사랑받지 못해!’
리베르탄에서 했던 악담이나.
‘혹시 알아? 내가 리베르탄의 바람대로 공녀와 약혼해 줄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는 가지고 놀기 번거롭지만…….’
나를 괴롭히던 황태자가 했던 소리들.
‘그런 나쁜 사람들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했던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방심할 때마다 불쑥 올라와 나를 잠식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저에게 실망하실지도 몰라서.”
요한의 튀어나온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차가운 눈매를 일그러뜨린 요한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으로 묻는 거 아니지?”
“…….”
“하.”
요한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나를 확 끌어당겼다. 그가 큰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었다. 이불을 틀어쥔 그의 손위로 성성한 핏줄이 불거졌다.
“혹시 화난 건 아니죠?”
“부인. 세상에 그런 걸 답답해하는 남편은 없어.”
요한은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제가 물었던 흔적을 입술로 덮었다. 달아오른 숨결이 내 몸을 자극했다.
“최소한 그딴 인간 중에 난 없어. 부인이 뭘 하든 내가 실망할 일은 없어. 알아들었어?”
그렇게 날 아껴주지 마.
어차피 날 사랑해 주지도 않을 거면서. 진짜로 날 사랑하지도 않을 거면서.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어쩐지 강렬한 정욕에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조급하게 내 턱과 코끝에 다시 입을 맞추며 경고했다.
“그러니 허튼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어떤, 허튼 생각이요?”
“무슨 생각이든. 앞에 있는 나만 보고, 나만 생각해.”
원작은 바뀌었지만, 나와 요한을 둘러싼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엇도 쉽게 기대할 수 없었다. 기대는 나를 더 아프게 하니까.
‘그런데 나는…….’
요한의 거짓말에 위로를 받고 있다.
헤텔 백작가를 속여넘기기 위한 연극, 나를 유혹하기 위한 장난질에 불과하단 걸 알아도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언젠가 날 죽이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난 요한의 거짓말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불현듯 바깥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성에 젖어있던 머리가 깨어나며 이성이 돌아왔다.
“……공작님. 지금 밖에 아무도 없나요?”
“응, 없어.”
요한이 곱게 눈웃음치며 대답했다.
“덕분에 나는 좋았지.”
“네?”
“내 부인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었으니까.”
겨우 용기 낸 건데 이미 없다니! 나는 요한의 몸에서 떨어지려 했다.
“그…… 없으니까 옷을 다시 입어도…….”
“혹시나 내일 아침에 또 올 수도 있잖아.”
그러자 요한은 꿈틀꿈틀 나가려는 나를 꽉 붙잡았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이미 부인이 보고 만진 건데.”
“그, 그만해요.”
그의 팔근육이 꿈틀거리며 내 몸을 감싸고 있으니, 신경을 안 쓸래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겠지.”
내가 부끄러워할수록 요한은 더 적극적으로 내 이마에 입을 맞춰가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우리 사이에 아무도 감히 끼어들 수 없다는 거.”
자상한 목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혔다.
‘피곤해.’
꾸벅꾸벅 눈꺼풀을 깜빡이던 나는 금세 잠에 빠졌다. 그래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잠든 줄 알았던 요한이 내 이마를 쓸어내리는 것도.
“널 보면 느껴지는 이 욕망은 뭘까.”
잠든 내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속삭이던 목소리도.
“왜 내 안에 어떤 빈 부분을 알게 되는 거 같지?”
***
늦은 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없어! 없다고!’
우비를 쓴 정원사가 정신없이 나무 아래를 파헤쳤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행동은 더 절박해졌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라진 물건이 생기진 않았다.
‘내가 어떻게 지켜낸 내 보물인데.’
정원사, 페뉼라 남작은 절망했다. 보물이 없으면, 열심히 도망쳐다녀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었다.
어둠에 물든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되찾아야 돼.”
페뉼라 남작의 시선이 천천히 헤텔 성을 훑었다. 그동안 잘 숨겨져 있던 보물이 갑자기 사라졌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외부인들.’
페뉼라 남작은 서둘러 헤텔 백작의 방을 찾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
“마님. 헤텔 백작 부인이 오늘 오후 티 파티에 마님을 초대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베티가 헤텔 백작 부인의 정식 초대장을 가지고 들어왔다.
“티 파티라고? 이렇게 밖에서 비가 내리는데?”
“예. 주변의 귀부인들도 끌어모은 듯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마님.”
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한 베티가 비장하게 속삭였다.
“마님께서 원하신다면 아무도 모르게 쓱싹 처리하겠어요. 거슬리는 백작가 모두 처리할까요?”
“……?”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나는 차분한 베티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쓱싹 한다고?”
“생각해 보니 마님께 들려드리기엔 너무 추잡한 말이었네요. 그냥 제 앞에서는 편하게 험담하셔도 좋다는 얘기였죠.”
베티는 살갑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은은한 광기는 없었다.
‘내 착각이겠지?’
하긴. 베티가 아무리 배신자 역할이라 해도 평범한 하녀였다. 가끔 이상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범주에 속했다.
‘나를 아끼니까 과격하게 말한 거겠지.’
내가 시선을 돌리는 사이, 베티의 갈색 안광이 번뜩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몰랐다. 베티가 블란쳇 공작가에서 첩자로 일하며 처리한 자가 수십을 넘어가는 엄청난 암살자였다는 사실을.
***
나는 연보라색 드레스에 장신구를 걸치고 티 파티에 참석했다. 원인은 바로 베티였다.
‘마님! 안 꾸미셔도 마님이 가장 아름다우시겠지만, 그래도 더 아름답게 가야만 해요! 꾸몄지만, 전혀 꾸미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날 위해주는데 마냥 거절하기도 그랬다.
‘이렇게까지 할 신경 쓸 필요가 있…….’
티 파티의 주인인 헤텔 백작 부인이 화사한 미소로 반겼다.
“어서 오세요, 블란쳇 공작 부인. 제 소중한 친구들에게 블란쳇 공작 부인 같은 귀한 분을 소개해 드릴 수 있어서 무척 기쁘네요.”
나는 가장 비싼 옷을 꺼낸 듯한 백작 부인,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그녀의 티파티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황실 무도회라도 가는 줄 알겠다.
‘……필요가 있었네.’
특히 헤텔 백작 부인의 눈빛은 철천지원수를 보는 것처럼 섬뜩했다. 아무래도 어젯밤 내가 요한과 밤을 보냈다고 생각해서 더 저러는 것 같았다.
‘노린 거긴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블란쳇 공작 부인. 기회가 없어 뵙지 못했는데, 평소에 보지 못한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맞아요. 소문이 과장된 줄 알았는데, 소문보다 더 아름다우세요.”
자리에 모인 귀부인들이 나비의 날개처럼 부채를 흔들며 화사하게 웃었다.
‘다들 날 미워하는군.’
기회가 없다는 건 사교계에 정식 데뷔하지 않은 내 처지를 비꼬는 거고, 평소에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란 평민 출신 입양아란 비꼼이었다. 소문을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날 공작 부인 대접해 줄 수 없다는 거구나.’
헤텔 백작 부인이 초대한 사람들 아니랄까 봐, 다들 하나같이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내가 겪은 게 오죽 많았어야지.’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적의를 품는 게 편하다. 행동을 예상하기 쉬우니까. 거기다 이렇게 대놓고 날 적대하는 걸 봐선, 어려운 사람들 같지도 않았다.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가워요. 저 그런데…….”
곤란한 듯 눈썹을 살짝 내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어느 가문분들이시라고요?”
그러자 건수를 잡았다는 듯 한 귀부인이 ‘세상에나!’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부인은 자랑하듯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부채를 흔들었다.
“부채에 있는 문장을 알아보지 못하시는 건가요? 사교계에 데뷔하지 않았다지만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요?”
“그래요. 사교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것인데. 블란쳇 공작 부인이 너무 걱정되네요.”
그때 헤텔 백작 부인이 부채를 탁, 접었다.
“블란쳇 공작 부인께 너무들 그러지 말아요. 공작 부인께서도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거예요. 티 파티의 주최자로서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헤텔 백작 부인의 어깨가 으쓱 올라간 찰나, 나는 그들을 보며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나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황금 가지 계보도에 오른 귀족 가문만 알고 있던 터라 계보에 없는 가문 이름은 익숙지 않네요.”
황금 가지 계보도.
제국 건국부터 진정한 귀족으로 인정받은 이들의 이름과 성이 올라가는 계보도다.
돈으로 귀족 가문을 살 수는 있어도, 황금 가지 계보도에는 이름을 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황실 계보도는 누구나 인정하는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이 자리에 황금 가지 계보도에 오른 가문은 아무도 없지.’
심지어 그나마 이름이 높다는 헤텔 백작가 역시 황금 가지 계보도에 오르지는 못했다.
“제가 아직 배움이 부족하네요.”
“…….”
“자, 그러니까 다시 한번 소개해 주시겠어요? 어느 가문이시라고요?”
방금 전까지 자랑스럽게 가문의 문장을 흔들어대던 귀부인들이 손을 떨었다. 주변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거들먹거리던 어깨를 낮춘 사람도 있었다.
아마 내가 움직여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때 헤텔 백작 영애 로테가 오르테카 재상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