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왜 사죄하시는 겁니까?2021.12.21.
어쩐지 베티의 보살핌이 더 극성맞아진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마쳤는데도 베티는 바로 내 간식을 챙겼다.
“마님. 마님께서 좋아하시는 디저트를 더 가져다 드릴까요?”
“저녁 먹고 디저트도 다 먹었는데.”
“그러면 간단한 쿠키 같은 게 좋을까요?”
“응. 부탁할게.”
생각해 보면 베티는 전부터 나한테 자꾸 뭘 먹이려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이것도 요한의 명령인가?
‘복수 대상이 굶어 죽으면 그것도 곤란할 테니까.’
그래도 맛있는 걸 계속 먹는 건 좋았다. 리베르탄 공작가에서 지낼 때, 나는 내가 먹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 식욕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제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서 그랬던 거였다.
‘음식이란 게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언제 또 이런 식사를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사는 끼니마다 꼬박꼬박 다 챙겨 먹었다.
‘오늘 저녁도 맛있었지.’
특히 요리사가 특별히 신경 쓴 관자 구이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미리 준비해 놨는지 베티가 금세 간식거리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생글생글 웃고 있던 베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베티. 무슨 일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님.”
그렇게 말한 베티는 나한테 물었다.
“그런데 오늘 주무시기 전에 서재에 가신다고 했던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응, 저택에서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들어서. 혹시 공작님께서 내가 서재에 출입하는 것을 불쾌해하셨니?”
일반적인 귀족 부인들과 달리 가짜부인인 나는 이 저택에서 할 일이 없었다. 실제 결혼한 사이도 아니란 걸 모두가 알다 보니 권한이 있을 리도 없다.
‘하지만 도망치려면 뭐든 해야 해.’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별관의 서재에 가는 것이다. 블란쳇 공작가는 흑막이 엄청 신경 써서 재건한 공작가답게 별관조차도 엄청 큰 서재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책을 읽고 싶어서 왔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고. 하지만 괜히 흑막의 허락을 안 받고 움직이는 건 그래서 그전에 한 번 물어본 차였다.
“만약 그런 거라면 솔직하게 말해줘도 괜찮아.”
생각해 보면 가짜로 들인 부인이 멋대로 돌아다니는 게 거슬릴 수도 있으니까.
“아. 그런 것은 아니에요. 주인님께서도 허락하셨어요.”
잠시 말을 멈칫한 베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나 서재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무시하셨으면 해서요.”
“왜, 그 사람이 누군데?”
“사용인들 사이에서도 성격이 더럽고 이상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 사람이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무시하세요.”
“얼마나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베티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거야.”
“기분 나쁘게 말하는 걸로는 저택에서 제일 잘할걸요.”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티의 친절한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작에서 본 인물인가?’
하지만 원작을 생각해 봐도 서재에서 등장한 인물은 없었던 것 같은데.
*** 하지만 베티의 말과 달리 나는 큰 위기감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서재에 가는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
‘요한은 흑마법사야.’
모든 것을 잃은 소년이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국에서 금기시되는 흑마법사가 되는 것. 그래서 요한은 은거하던 흑마법사 외조부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제물로 바쳐 흑마법사가 되었다. 그리고 흑마법으로 모습을 위장한 채 리베르탄 공작가를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망가뜨렸다.
‘정확히는 얼굴 인식을 방해하는 마법이랬나?’
리베르탄 공작이 요한의 등장부터 그를 알아본다면 복수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아마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서 걸어두었던 마법인 것 같았다.
‘지금은 마법을 다 풀었겠지.’
아무튼 요한의 복수에 흑마법은 굉장히 중요한 도구였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계속 나올 이 흑마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원작에서도 나랑 관련된 부분이 아니어서인지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잘 풀지 않았다.
‘내가 도망가려면 흑마법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어.’
흑마법사의 약점이라도 알아내면 일이 더 쉽게 풀릴 테니까.
‘서재에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한 오만한 흑막이라면, 내가 갈 수도 있는 서재에 흑마법에 대한 책을 놓았을 것 같았다. 요한의 서재는 한층 아래에 있는 가장 큰 방이었다. 워낙 문이 커서 쉽게 찾았다. 끼익- 문을 열려는 순간, 밖으로 나가려는 한 남자와 부딪칠 뻔했다.
“죄송합니다.”
포니테일로 묶은 남색 장발에 청회색 눈동자를 가진 장신의 미남자였다. 남자는 먼저 사과하며 문을 비켜주려다 내 얼굴을 보며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혹시 이번에 오신 주인마님이십니까?”
“네. 맞아요.”
그가 오른손을 차분히 가슴에 올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주인님의 보좌관인 에리히 블로뉴 남작이라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예민하게 생긴 미인이었다.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게 생긴 남자. 하지만 눈매와 표정이 날카로워서인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에리히 블로뉴라면.’
그는 흑막인 요한의 그림자로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요한처럼 리베르탄 공작가를 증오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하녀장 페트리샤와 함께 나를 가장 미워하는 조연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블로뉴 남작.”
“저도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쁩니다.”
그 증거로 청회색 눈동자에서는 채 갈무리하지 못한 증오가 새어 나왔다.
“마님께서 주인님의 서재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아. 잠깐 시간을 보낼 책을 찾으러 왔어요.”
다행히 에리히는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서 과거사를 알고 있었다.
‘리베르탄 가신 가문 출신이지.’
블로뉴 남작가는 리베르탄 공작가를 오랫동안 모셔온 충신 가문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리베르탄 공작가의 행보에 충언하던 강직한 가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쓰레기인 리베르탄 공작은 그런 충신 가문인 블로뉴 남작가를 써먹고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확인 사살을 위해 블로뉴 가문을 멸문시켜 버리기도 했다.
‘아마 블란쳇 공작가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때 썼던 체스말이라 위험해서였지.’
정말 쓰레기 리베르탄 공작다운 행동이었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날 선 증오를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받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베티가 말하던 성격 더러운 사람이란 게 이 사람이겠지?’
“블란쳇 저택은 좀 어떠십니까? 지내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네.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다들 너무 친절하고 좋네요.”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군요.”
아무래도 에리히는 요한과 달리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도 없이 주인님의 서재나 드나드는 걸 보면 말입니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제가 여기에 오면 안 되는 거였나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저택의 중요 사용인들도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걸요.”
에리히가 적의 가득한 눈으로 나를 비웃었다.
“다만 아직 주인마님께서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이곳은 리베르탄이 아닙니다. 마님께서 웃으면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알아두셨으면 싶군요.”
그가 꼬집는 건 내 처지였다. 나와 요한의 결혼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나는 블란쳇 공작가에서 리베르탄 공작가의 거대한 빚을 갚아주고 데려온 신부였다. 그러니 다른 신부들처럼 지참금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 아마 이렇게 미움받는 처지가 아니었다고 해도, 정상적인 대우는 받지 못했을 거다.
“마님께서 믿고 계신 리베르탄 공작가가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 목소리에서는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특히 리베르탄 공작가를 언급할 때는 더 강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드디어 리베르탄 공작가가 반역죄로 몰락하는 날이 왔구나.’
정확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자신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원수 집안에 시집온 것도 모자라 집안이 반역죄로 몰락하기까지 한 거네.’
내가 생각해도 참 비정상적인 결혼이다. 하지만 나도 억울한 부분이 꽤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결혼한 건 아니잖아? 결혼한 척만 한 거지.’
제국에서 부부로 인정받으려면 쌍방이 동의한 혼인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가주의 허락을 대신 받아도 상관없다. 그런데 요한은 그 혼인 신고서를 받기만 하고 제출하진 않았다. 진짜 부부라고 믿고 있는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
“제 말이 이해는 가십니까?”
에리히가 오만하게 팔짱을 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새 주인마님의 수준을 알지 못하여 친절히 설명하긴 했습니다만, 그보다 더 수준 이하일 가능성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했어요.”
나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대로 서재에 와서 미안해요. 어쩌면, 너무 들뜨는 바람에 제 처지를 잊었던 것 같아요.”
에리히는 여전히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허락도 다 받았는데.’
베티에게 물어본 것도 모자라, 요한을 거쳐 2번이나 확인을 받았는데! 하지만 그걸 얘기해 봐야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날 증오하고 있는 상대가 알아줄 리 없으니까.
‘이런 상황은 진짜 익숙하지.’
리베르탄 공작가에선 이보다 더했다. 사랑받는 친딸 자리를 감히 넘본 천한 평민이라고 별짓을 다 당했다.
‘그거에 비하면…….’
말로만 하는 모욕은 별로 상처도 되지 않는다. 진짜 상처가 되는 건 다른 거니까. 순순한 내 대답에 에리히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면 이제 본인 처지를 잘 알았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블로뉴 남작이 원하는 정도가 아닐 수는 있지만요.”
“그렇다면 마님께서는 참 말을 쉽게 하시는 분이신가 봅니다.”
도대체 이렇게 시비를 거는 이유가 뭘까. 내가 우는 모습을 봐야 직성이라도 풀리려나. 눈물이라도 쥐어짜 줘야 하나. 하지만 울고 싶다고 눈물이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또 우는 거 하나는 진짜 잘하는데.
“마님께 염치라는 게 있다면, 이 저택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에리히가 원할 반응을 고민하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죄송해요.”
“무엇이 말입니까?”
“제가 남작의 기대에 맞지 않는 안주인이어서 이런 거잖아요. 그렇다면 제 잘못이겠죠.”
그러자 에리히의 청회색 눈동자에 기묘한 파문이 일었다.
“죄송하단, 말입니까?”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하고, 그의 눈을 마주하며 손을 꼭 모았다.
“아마 앞으로도 제가 남작의 마음에 들 만큼 훌륭한 안주인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폐는 끼치지 않게 더 노력할게요.”
그러자 청회색 눈동자에 퍼졌던 감정의 물결이 더욱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에리히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잘못 대답한 걸까?’
아무래도 리베르탄의 딸인 내가 순순히 사과하니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울면서 악이라도 쓰는 게 더 원하는 반응이었을 수도.
“……도대체.”
그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뭘 안다고 그렇게 사과하는 겁니까?”
결국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던 에리히는 그 예민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고통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죄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요.”
내 차분한 대답에 에리히는 결국 나를 두고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짓씹듯이 말 한마디를 남긴 채. *** 방해꾼이 다 사라졌지만, 리베르탄이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자 괜히 서재에 머물고 싶지 않아졌다.
‘아무런 빌미를 주지 말자.’
그래서 베티의 충고에 따라 바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 했다. 늦은 시각, 내 방문을 두드린 요한만 아니었다면.
“부인, 자고 있어?”
늦은 시간에도 요한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정장을 입고 있었다. 품속에는 화려한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여유롭게 꽃다발을 흔들어 보이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계획한 일 하나가 끝났거든. 그래서 축하할 겸 부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려 했지.”
역시 내 예상대로 오늘 리베르탄 공작가가 몰락한 모양이었다.
‘잘 됐다.’
그 악질적인 놈들은 제대로 망해봐야 한다. 내 인생이 조금 더 꼬이게 되었어도, 나는 리베르탄의 몰락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내 꽃이 부인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다가온 요한이 내 품에 장미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아무 향기가 안 나네.’
자세히 보니 이 꽃은 생화가 아니라 조화였다. 유난히 장미가 탐스럽게 빛난다 싶더니 꽃술이 보석으로 되어 있었다.
“진짜 예뻐요.”
생화가 아니라 보석으로 된 꽃이라니. 흑막은 돈 쓰는 스케일이 다르구나. 꽃잎도 어디 보석으로 된 건 아닌가 싶어서 만져봤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선물로는 조화가 생화보다 나은 거 같기도.’
불현듯 리베르탄에서 생일 축하로 선물 받았던 꽃이 생각났다. 꽃 가운데 벌레가 들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순간 이 꽃에도 벌레가 나올지 몰라 긴장한 채 확인했다.
‘다행히 벌레가 없어.’
요한이 묘하게 붉은 기가 도는 눈매로 물었다.
“다행히 내 꽃이 마음에 드나 봐.”
“네. 이건 공작님께서 처음 주신 선물이잖아요.”
제대로 된 선물을 받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것도 날 유혹하기 위함일까?’
어쩌면 엄청난 정보력을 지닌 흑막이라서 내가 벌레를 싫어한다는 정보를 알고 일부러 조화를 선물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히 간직할게요.”
내 품속에 있는 꽃다발에서 한 송이를 꺼내 든 요한이 달콤하게 웃으며 꽃을 귓가를 꽂아주었다.
“꽃이 부인이랑 참 잘 어울려. 선물한 보람이 있게.”
“그거 칭찬이죠?”
“당연히 칭찬이지. 내가 부인한테 가장 바라는 거니까.”
“그러면 저도 기뻐요.”
나는 요한의 얼굴을 보며 생긋 웃었다.
“어떤 식으로든 제가 당신이 바라는 걸 채워줬다면요.”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의 입가가 묘하게 굳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손끝이 살짝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배가 고픈가?’
리베르탄을 반역죄로 몰아넣고 왔다면, 그사이 밥을 챙겨 먹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흑막 성격상 이렇게 중요한 날에는 굶었을지도 모른다.
‘밥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때 베티가 챙겨준 쿠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밥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꽃다발을 옆에 치운 채 베티의 쿠키를 꺼내서 요한에게 내밀어주었다.
“별건 아니지만, 쿠키라도 조금 드실래요?”
“곰돌이 모양 쿠키?”
“사실 곰돌이만 있는 건 아니고 여기 토끼랑 병아리도 있어요.”
요한의 표정이 더 미묘하게 변했다. 요한은 내 방에서 바로 쿠키가 나온 게 좀 이상한 모양이다. 하긴, 원래 귀부인들이 이런 걸 곁에 두고 살진 않는다.
“오랫동안 계획한 일 하나를 끝냈다면서요.”
“그래서 나한테 주려고?”
“네. 제가 지금 공작님께 드릴 게 이거밖에 없네요.”
심지어 이 쿠키도 공작가의 주방에서 나온 쿠키라서 조금 부끄럽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축하드려요, 앞으로 공작님께서 하시는 일이 모두 잘되길 기도할게요.”
그러자 요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쿠키를 바라본 그는 잠시간 입을 열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이 돌았다.
‘하긴. 복수에 성공한 날에는 쿠키 같은 것보다 더 근사한 걸 먹어야 하는데.’
고작 쿠키 같은 걸 받아서 황당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