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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이사벨라의 새로운 꿈 (125/135)


125화. 이사벨라의 새로운 꿈
2023.06.09.



 
헨리가 힐로샤인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이 레니샤에게도 전해졌다.

그 소식은 레니샤와 카시우스도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군요.”

레니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렉서스로 인해 깊게 남은 상흔은 아직 회복 중에 있었지만, 히엔트리는 역사가 깊은 나라였다.

그 힘으로 조금씩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신관은 레니샤에게 완전히 굴복했다.

어떻게 해서든 레니샤의 영광을 입고 싶어서 힐로샤인으로 무리한 이관을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헬레나는 렉서스가 먹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들을 보내왔다.

황실 주치의가 그것을 분석했고 이지를 망가뜨리는 약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플랜스 백작이 렉서스를 버리기로 했나 봐요, 카시우스.”

레니샤가 웃음을 흘렸다.

카시우스가 레니샤의 목덜미에 키스했다.

대리석 같은 레니샤의 피부가 매끈하니 카시우스의 입술에 감겨들었다.

카시우스가 레니샤의 허리를 지분거렸다.

황성의 어둠이 깊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터이니 지금은 이 밤에 집중하고 싶었다.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머리를 헤집으며 말을 이어갔다.


“렉서스의 아이만 필요로 하는 거겠죠. 정말…… 어떻게 하나같이 생각하는 게 똑같을까.”

“레니샤…….”

카시우스가 레니샤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종일 당신을 일에 빼앗긴 기분입니다. 지금은 내게 집중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레니샤가 까르륵 웃었다.


“나는 항상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카시우스.”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뺨을 붙들었다.

볼록 튀어나온 입술에 입을 맞추곤 레니샤가 속삭였다.


“그래도 들어봐요, 카시우스. 내가 오늘은 기분이 좋거든요.”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얼굴 이곳저곳에 내키는 대로 입술을 눌렀다.

나른한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카시우스가 봉긋하게 부푼 살결을 만지작거렸다.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쓸었다.


“렉서스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인데 말이에요. 곧 렐라인이 임신을 하겠군요. 플랜스 백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일 거예요.”

레니샤는 그간 열매가 맛있게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가 오고 있었다.


“카시우스, 당신이 나설 차례로군요.”

카시우스가 레니샤의 입술을 덮었다.


“그만.”

“하나만 더요.”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등을 토닥였다.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나.”

카시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레니샤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카시우스가 레니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못 들었어요.”

“어머.”

레니샤가 카시우스의 귓불에 입술을 붙이곤 무릎을 세웠다.

카시우스의 다리 사이를 문지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나 임신했다고 했어요, 카시우스.”

“네?”

“주치의 말로는 절대로 안정을 취하라고 하더군요. 성관계는 한동안 해서는 안 된다고…….”

카시우스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아래로 쏠리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카시우스가 침대에 누운 레니샤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뭐라고…… 다시 한번만 말해봐, 레니샤.”

“임신했다고 했잖아.”

레니샤가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곤 커다란 카시우스의 손을 끌어다가 아랫배에 얹었다.


“여기에 네 아기가 있다니까?”

카시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 안을 서성거리는 카시우스를 레니샤가 턱을 괸 채로 응시했다.

피부 위에서 들썩거리는 붉은 비늘이 그의 불안정함을 나타내는 듯했다.

레니샤가 고개를 기울였다.

카시우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는데.

카시우스가 돌연 침실 문을 활짝 열었다.


“시녀장! 시녀장, 어디에 있나!”

“저, 저를 찾으셨습니까?”

늦은 시간이라 마지막으로 궁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려던 시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트러진 차림새의 카시우스를 놀란 얼굴로 응시했다.


“아기가…… 임신을…….”

“네?”

“레니샤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

카시우스가 목이 잔뜩 메여서는 말했다.


“아기를 가졌다는군!”

“예에?”

갑작스러운 소식에 시녀장도 깜짝 놀랐다.

레니샤는 오늘 하루 종일 어떤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전에 주치의를 만나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다였다.

그 외에는 평온한 얼굴로 일과를 마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레니샤가 가운을 여미곤 모습을 드러냈다.


“쌍둥이래요.”

레니샤가 카시우스에게 덧붙여주었다.

시녀장과 카시우스의 시선이 동시에 레니샤를 향했다.


“아주 건강히 자라고 있다고 하더군요. 두 달 조금 넘었다고.”

“폐하!!”

시녀장이 비틀거렸다.

그간 레니샤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도 황망하지만…… 이걸 기뻐해야 하는 게 맞는 거지?


“그런데 아직 태반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카시우스가 레니샤를 번쩍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서 있으면 안 돼, 레니샤. 이 얇은 몸으로 쌍둥이를…… 분명히 부러지고 말 거야.”

카시우스가 겁에 질린 채로 웅얼거렸다.

레니샤가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시녀장이 잠들어가던 궁을 일깨웠다.

레니샤의 임신 소식이 황성 전체에 퍼지는 건 고작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황제 폐하께서 임신하셨답니다.”

그 소식은 물론 헬레나에게도 닿았다.

헬레나가 의도적으로 렉서스에게 그 소식을 흘렸다.

그다음 번들거리는 눈으로 렉서스의 모든 반응을 담았다.

렉서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지, 지금 뭐라고……?”

“레니샤 황제께서 아이를 가지셨다고 하는군요. 쌍둥이라고 합니다.”

세 뱀 신은 세쌍둥이로 태어났다.

덕분에 쌍둥이는 제국에서 길한 징조로 꼽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히엔트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 대륙을 지배하게 될 거라고들 하더군요. 레니샤 황제께서 행운을 가지고 오셨다고.”

“그, 그럴 리가…….”

렉서스가 머리를 헤집었다.


“그 여자는 내 거야!!”

바닥을 기어온 렉서스가 게거품을 물었다.


“그깟 노예 놈이 무슨 수로 내 여자를 임신시킨다고 그래! 아하, 그 아이는 내 아이야!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렐라인과 플랜스 백작 부부는 더 이상 렉서스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날 약병이 사라진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생각을 들게 했는지, 렐라인의 방에는 낯선 사내가 줄기차게 드나들고 있었다.

금발을 가진 남자였다.

렉서스는 그 옆방에서 약에 취해 죽어가고 있었다.

헬레나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렉서스를 응시했다.

레니샤는 렉서스의 죽음을 결정했다.

이 짓을 하는 것도 그날까지만이다.

렉서스가 괴로워할수록 헬레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불행은 이 초라한 남자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황제께서는 카시우스 공의 아이를 가지셨어요.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날 거라고 하더군요. 아, 그래서 결혼식을 치르신대요. 사실 두 분이 제대로 된 결혼식도 못 치르셨잖습니까? 즉위식과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더군요.”

헬레나가 날아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렐라인은 그 금발 남자와 단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아름다우실 거예요. 그 모습을 직접 뵐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야!! 당장 레니샤를 데려와! 레니샤는 내 여자야, 그 노예 놈이 아니라!!”

렉서스가 헬레나에게 달려들려다가 떠밀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헬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귀를 이렇게 못 알아들으셔야. 아니라니까요. 레니샤 황제는 카시우스 공하고 결혼해요. 두 분 사이의 아이는 정말 귀여울 거예요.”

헬레나의 눈이 악의적으로 번뜩였다.

레니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수록 렉서스가 무너지는 게 보였다.


‘더 망가져, 더!!! 네놈이 망가뜨린 사람들보다 더 망가지란 말이야!!!’

헬레나가 이를 악물었다.


“카시우스 공의 붉은 머리와 레니샤 님의 분홍 눈을 닮아도 좋을 것 같네요. 아니면 레니샤 님의 예쁜 금발과 카시우스 공의 금안을 닮아도 좋을 것 같고.”

렉서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아무리 그가 난리를 쳐도 와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쓸모없는 렉서스는 방치되었고 버려졌다.

심지어 렐라인조차 그 남자와의 잠자리에 푹 빠져서 약쟁이에 관한 관심은 놓은 지 오래였다.

렉서스가 비명을 질러도 ‘저 미친놈 입 좀 다물게 해, 헬레나.’라는 반응만 돌아왔다.

렉서스에 대한 경계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분의 피를 이은 아이가 다음 대 황제가 되겠지요.”

렉서스가 발작을 일으켰다.

헬레나가 침착하게 물을 먹여 렉서스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다.

렉서스와 헬레나의 눈이 마주쳤다. 헬레나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직 돌아가시면 안 돼요. 좀 더 불행해주세요. 좀 더 고통스러워하다가 가셔야 한다구요.”

노래하듯 다정한 목소리였다.

***

제인이 이사벨라와 함께 레니샤의 궁을 찾았다.

이사벨라가 신기한 얼굴로 레니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고모, 정말로 아이를 가졌어요?”

“그랬다는구나.”

레니샤가 아랫배를 톡톡 쳤다.


“여기에 네 동생들이 있지.”

“우, 우와!”

이사벨라가 몸을 들썩였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힐로샤인과 제 부모에게서 떼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레니샤가 이사벨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레니샤에게도 축복이었다.

사실 레니샤는 그녀의 몸에도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사히 임신을 했다.

이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카시우스는 알까?

레니샤가 이사벨라의 작은 손을 끌어다가 아랫배에 얹을 수 있게 했다.


“안 움직여요, 고모.”

“자고 있나 보다.”

“우와…….”

이사벨라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동생들이 얼른 태어나면 좋겠어요. 저는 동생들이 좋아요. 이사벨라가 정말 많이 이뻐해줄 거야.”

레니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이 아이들이 이사벨라의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모두에게 행복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힐로샤인에서도 축하의 뜻을 전해왔다.

그리고 헨리는 힐로샤인에서 공개처형을 당했다.

그 남루한 인간은 사지가 찢기는 극형을 당했고 그 사체는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 누구도 기리지 않는 그런 죽음이었다.

레니샤가 이사벨라의 뺨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편지를 썼니?”

“네! 내일도 쓸 거예요.”

이사벨라는 아카데미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건 이사벨라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유년 시간을 보낸 이사벨라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고모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훌륭한 어른이 될 거예요.’

그래서 이사벨라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좋아. 이사벨라, 이 고모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네. 하늘만큼 땅만큼이요.”

이사벨라가 머리 위로 커다란 원을 그려 보였다.

화사하게 부서지는 웃음을 보며 레니샤도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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