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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샴디르의 왕자 (22/135)


22화. 샴디르의 왕자
2022.06.14.


연회장에 있었던 각국의 사신들이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카나리아는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하지만, 레니샤와 견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미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샴디르에서 온 것이 분명한 원단으로 옷을 지어 입은 카나리아는 보석처럼 반짝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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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단이 원래 황후 폐하께 갈 것이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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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께서 카나리아에게 보냈다더군요. 주제도 모르고 저것으로 옷을 지어 입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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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께서 저런 여자에게 빠져 있어서 큰일이로군요. 어휴. 저 여자가 여기까지 올 줄이야.”

렉서스의 재위 8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각국의 사신들은 물론이요, 지방에서 머물고 있었던 귀족들도 상경하여 연회에 참석한 참이었다.

카나리아는 그들의 시선을 스쳐 황제와 황후 앞에 섰다.

교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카나리아가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 과하게 파이긴 했지만, 그 위를 덮은 화려한 목걸이가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목걸이 아래의 은밀함에 대해서는 황제만 알아차리면 되었다.

렉서스가 생긋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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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아름답구나, 카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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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 예뻐 보였다니 카나리아가 들인 공이 아깝지 않네요.”

렉서스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카나리아와 렉서스가 가벼운 사담을 주고받았다.

그다음은 레니샤의 차례였다.

레니샤는 다른 의미로 웃음이 나왔다.

저 목걸이는 레니샤가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레니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도 카나리아의 능력이었다.

카나리아는 빤히 보이는 행동을 하곤 했다.

카나리아는 레니샤가 내놓은 귀물들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화려한 것을 걸치고 있었다.

레니샤에게 왔었어야 할 샴디르의 원단으로 지은 옷은 그 화려함을 북돋고 있었다.

카나리아는 마치 오늘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레니샤가 카나리아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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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말이 맞습니다. 오늘 카나리아는 정말 아름답군요.”

카나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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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이 모든 게 폐하의 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 또한 뼈가 있는 말이었다.

카나리아가 물러가고 다른 이들이 앞다투어 레니샤와 렉서스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레니샤가 시선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온 것은 보았는데 그다음은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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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카시우스는 발코니 인근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종종 다른 귀족들이 오가며 카시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카시우스는 무뚝뚝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레니샤가 입 안의 살을 살짝 씹었다.

웃음을 참기 위함이었다.

카시우스를 보자마자 당황하면서 얼굴을 붉혔던 것이 떠오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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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지 않은 카시우스 경.’

그 말을 할 때마다 더 붉어지던 얼굴이라니.

그날을 떠올리자 이 지루한 연회가 조금이나마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레니샤가 다시 시선을 돌려 눈앞에 선 자를 보았다.

샴디르에서 온 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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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제 고국의 왕께서 보내신 감사 인사는 잘 받으셨습니까?”

그것이 카나리아에게 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레니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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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네. 별것도 아닌 일을 왕께서 마음에 담아두셨나 보군. 이제는 잊으셔도 된다고 전해주게. 과한 선물도 받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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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디르는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폐하.”

샴디르의 사신이 부드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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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도움이 필요하실 때 샴디르는 폐하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황제 폐하, 그리하여도 되겠지요?”

렉서스가 눈을 굴려 샴디르의 사신을 보았다.

막내 왕녀가 국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다더니 그놈의 은혜 타령은 여전했다.

렉서스가 고개를 까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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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황후가 받는 그 마음은 내가 받는 것과도 같으니 뜻대로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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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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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디르의 사신이 레니샤의 손등에 키스하고 물러서는 것으로 그의 차례는 끝났다.

레니샤가 묘한 눈으로 샴디르 사신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전에 왔었던 자와는 다른 자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멋스럽게 다듬은 남자는 꽤나 잘생긴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레니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었던 눈동자는 묘한 올리브색이었다.

남자의 정체와 의도가 궁금해졌다.

레니샤의 궁금증을 알아차린 것인지 린데이가 고개를 숙여 레니샤의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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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디르의 제2왕자입니다. 왕세자 대신에 대외적인 일정을 대신 도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샴디르는 일부일처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였다.

게다가 지금 국왕과 왕비의 금슬이 좋아 슬하에 아이만 다섯이었다.

막내 왕녀를 제외하고는 다 왕자라고 했었다.

그중 2왕자는 왕세자만큼이나 사업적인 수완이 좋다고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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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제국에서 지낼 것으로 보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히엔트리에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더군요.”

레니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이라.

왕권에서 멀어진 제2왕자가 독자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레니샤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채굴권을 대륙 각지에서 사들이고 있었다.

본디 샴디르에는 광산이 거의 없었다.

2왕자는 대륙에서 채굴권을 사들여 채굴한 광석들을 샴디르로 보내고 거기에서 가공한 것을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샴디르인들이 손재주가 좋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채굴한 철광석 또한 샴디르 왕실에 팔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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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

레니샤가 눈을 빛냈다.

샴디르의 2왕자가 그녀를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레니샤가 눈길을 갈무리했다.

***

잘생긴 왕자다.

카시우스가 연회장에서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든 샴디르의 왕자를 쏘아보았다.

왜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왕자가 레니샤의 손등에 키스한 순간 카시우스의 반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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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나? 아, 저 왕자!”

카시우스의 곁에서 재잘거리고 있던 어떤 가문의 영식이 낄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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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지금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 이슈야. 저렇게 잘생긴 왕자가 왔으니 당연한 일이지, 뭐. 다들 왕자의 눈길을 한번 받아보겠다고 열심인걸. 사실 내 동생도 저기 틈바구니에 섞여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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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명예를 지켜야지, 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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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 명예는 지 스스로 내던졌는데, 뭐. 카시우스. 자네가 보기엔 어때? 저 왕자 말이야.”

카시우스가 친근하게 구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카시우스가 고개를 돌려 레니샤를 보았다.

레니샤는 아까까지만 해도 카시우스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샴디르의 왕자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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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잘생겼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카시우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분명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반대의 말이 튀어나온 이유는 그도 모르겠다.

카시우스가 혀로 입안을 훑었다.

이상하게 저 왕자가 못마땅하다. 여유로운 미소도, 우아한 몸짓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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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래? 하긴 카시우스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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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입니까?”

카시우스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남자와 친구들이 낄낄대며 서로의 어깨를 쳐댔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서 저 유난인지 모르겠다.

카시우스가 괜히 아는 척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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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긴. 카시우스가 잘생겼다는 이야기지! 지금 카시우스에게 작위가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나? 고고한 자존심에 작위도 없는 기사에게 말은 못 걸겠고. 그런데 시선은 가고. 모르겠나? 지금 자네를 보는 눈빛들이 얼마나 뜨거운지 말이야.”

카시우스가 남자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카시우스를 보는 눈이 많은 것 같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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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도 여기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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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들이랑 눈이라도 한 번 더 마주쳐야 손이라도 마주치지 않겠어?”

저속한 작자들이었다.

카시우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를 향해 시선을 주던 영애들이 카시우스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서도 힐끔거리는 것을 멈추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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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다라.’

카시우스가 제 볼을 쓸었다.

그런 종류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전쟁터에서는 제대로 씻지도 못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공작새처럼 꽁지깃을 한껏 펼쳐들고 유혹을 할 여자들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자각이 없었던 것이다.

카시우스가 홀린 듯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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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보다 제가 더 잘생겼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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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남자와 친구들이 와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그들이 카시우스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지들 딴에는 카시우스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단체로 몰려와 저들 소개를 중구난방으로 한 덕에 이름도 기억나질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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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단단한 것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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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네 물렁살이랑 같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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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살이라니! 네가 내 근육을 못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잡담을 주고받던 그들이 카시우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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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따라 다르겠지. 내 동생 말로는……. 카시우스 자네는 섹시하다고 하더군.”

섹시? 카시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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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속한 단어는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대. 꼭 제 침대에 눕히고 싶은 남자라나. 아버지가 들었으면 대경실색을 하셨을 텐데. 내 동생이지만 미쳤어. 아니지. 제국의 영애들이 미쳤지. 대부분의 영애들이 그렇게 떠들어 댄대. 아, 그리고 왕자는……. 절벽의 꽃 같다고 하던데.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남자들이 또다시 웃음을 쏟아냈다.

요즘 영애들의 발칙함에 대해서 논하는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카시우스가 힐끗 레니샤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레니샤가 생긋 미소 지었다.

침대에 눕히고 싶은 남자. 섹시한 남자.

방금 들은 말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데일은 제국의 영애들이 대부분 그런 평가를 내린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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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도 그렇게 생각할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카시우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카시우스가 렉서스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역시 이건 전부 렉서스 때문이다.

저놈에게 안 좋은 게 옮아서 카시우스가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카시우스가 이를 아득 물었다.

왜 모든 것을 황후와 연관 짓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망측한 생각을 감히 레니샤와……!

아니,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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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카시우스. 어차피 황후는 네 여자가 될 거야. 결혼할 거라잖아?’

무언가가 카시우스에게 속삭였다.

카시우스가 흠칫했다. 그건 카시우스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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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차피 한 침대를 쓰게 될 거라는 뜻이잖아, 카시우스.’

카시우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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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도 너를 침대에 눕히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

카시우스의 귓불이 은밀하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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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우스. 너는 황후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어디서 렉서스 같은 불경한 생각을!

카시우스가 제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제야 생각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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