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78화 (178/185)

지(地)의 종족 (3)

뿌드득….

나는 이를 질끈 악물고는, 혹여나 잘못 본 것일까 싶어 감각을 더더욱 끌어올렸다.

입천의 시야, 거기에 요족의 시야.

그리고 계위를 넘는 깨달음을 동원해 신분 패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신분 패를 또렷하게 들여다보았을까.

치지짓….

‘보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보였다.

신분패에 연결된 영력의 흐름이, 의식 파동과 같은 기운을 흘리며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곳의 종착지는,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영락없이 서휼.

‘제길.’

나는 한참을 관찰하고서야 이 위치 추적 패의 원리를 알아챘다.

지족들은 공법을 익히며, 공법의 흐름이 자신의 신체에 기록된다.

그러므로 공법이 기록된 신체 일부는 곧 떨어질지라도 수도공법의 영향을 받는다.

그 원리를 이용하여,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진 신분 패를 끊임없이 감시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나는 이를 질끈 악물며 신분 패를 더 조사했다.

다행히 영기의 흐름으로 봐서는 그저 내 위치 정도만 감시되는 모양.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특히나 이 해룡궁 안에서는 말이지.’

썩 인족의 처소와 비슷하게 꾸며진 해룡궁의 방 안.

서휼이 직접 지은 게 아니고, 해룡족 원로들을 통해 지은 곳이라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높은 확률로, 내가 들어온 이 방 역시 수작이 부려져 있어, 실시간으로 감시당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신분 패를 든 채, 편하게 침상에 누우며, 혹여나 들키지 않도록 억지로 표정을 펴고 드러누웠다.

‘일단 급선무는 수행을 찾는 거다.’

나는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서휼에게 달려들어 사생결단을 내려고 해도, 지금은 아예 진원진기를 모조리 태울 요량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최대한 빨리 수행을 찾고, 어느 정도의 힘은 갖춰야 서휼과 생활하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겠지.’

눈을 감고, 은은하게 기묘성심전의 구결을 운용해 의식을 실처럼 뻗어, 사방을 아무도 모르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방 곳곳을 의식 실로 조사한 결과.

곳곳에서 희미한 영맥들이 느껴지는 걸 알아챘다.

이러한 영맥들은, 방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하여 어딘가로 이송하고 있었다.

‘역시나 감시당하고 있었군.’

이 상태에서, 수행을 되찾겠다거나 할 수는 없다.

내가 익힌 공법도, 전부 서휼이나 해룡족 원로들의 눈 아래에서 수행하게 된다는 뜻이니….

‘그럼, 역시나 지금부터 행동해야지.’

아무래도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최소한의 진원진기는 태울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치이이이….

정순한 생명력이 기묘성심전의 의식 실을 타고 방 안 곳곳으로 뻗어 나간다.

의식 실 하나하나에 월수궁무록을 적용하였기에, 이 행위가 들킬 일은 없다.

그리고, 생명력을 머금은 기묘성심전은 내 방을 관음하는 방 안의 영맥들에 달라붙어, 내 의지대로 [회로]를 새기기 시작했다.

‘역으로 잠식해 주지.’

치이이이….

[회로]는 영맥 곳곳에 새겨지며, 내 의지에 따라 통제된다.

그리고 그러한 회로들은 이내 방 안의 상황을 ‘다르게’ 기록해서 송출시켰다.

아마 영력으로 정보를 받는 누군가는, 내가 방에서 얌전히 잠에 드는 장면을 볼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회로를 새겨 행동의 자유를 얻은 후에도 기묘성심전으로 방 곳곳을 한 번 더 뒤져본 후, 그제야 안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이 증명 패도 당장 괴군의 회로를 새겨 버리고 싶다만….’

서휼의 비늘로 만든 이 증명 패는, 서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농후하다.

이 방이야 재료 자체가 용족과는 무관한 재료였으니 상관없었지만, 비늘에 손대는 것은 아직 위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늘에는 위치 추적 기능만 붙어 있을 뿐, 실시간으로 뭘 하는지 감시하는 건 불가능해.’

나는 신분 패를 방 안의 적당한 곳에 올려 둔 후.

자리에 앉아 영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생명력은 좀 태웠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해룡궁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 그러니 걱정은 없어. 이제 수련을 시작해 볼까.’

츠츠츳!

입을 벌려, 체내에 있던 무색유리검들을 꺼냈다.

촤라락!

해룡궁에 배정된 내 방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기에, 삼천 개의 유리검이 방 안에 둥둥 떠 있어도 문제가 없었다.

나는 어검술로 유리검들을 띄워 놓은 채.

의식을 집중하며 입을 열었다.

“만상인연도.”

파아아앗!

그와 동시에, 유리검들이 빛을 발하더니 기령을 뿜어냈다.

삽시간에 방 안이 희뿌연 기령들로 가득 찼다.

아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기령들은 방 안에서 서로 겹쳐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자리가 없다 보니 서로 포개어져야 나타날 수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하다.

지금까지는 만상인연도에 수행을 저장해 놓기만 했던 입장.

그런 입장에서는 기령들이 전부 세세하게 나뉘어 있는 것이 편했다.

반면 만상인연도에 저장해 놓은 수행을 되찾으려면….

“합쳐져라.”

츠츠츠츳!

기령들이, 하나하나 빛무리가 되며 겹쳐졌다.

내 앞으로, 셀 수도 없을 만치 많은 기령들이 쭉 몰리며 ‘하나’의 인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인영의 얼굴은 수시로 바뀌었다.

나와 만났던 모든 인연들, 선연, 악연, 사랑했던 이, 증오했던 이, 믿었던 이, 존경했던 이….

어마어마한 인연들의 얼굴이 인영의 얼굴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모든 기령들이 합쳐지자, 인영은 마침내 제대로 된 형을 갖추었다.

그것은 나였다.

스스스….

새하얀 백의를 입고 있는 녀석.

나와 정확히 똑같은 형태를 한 그 기령이 눈을 떴다.

나는 내 기령과 눈을 마주쳤다.

시야가 이분된다.

기령의 시야와 내 시야.

삼령공과 군마용갱권을 합쳐 만든 만상인연도였기에, 삼령공의 경우처럼 이렇게 또 다른 분신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나에게 팔을 뻗었다.

두 명의 ‘내’가 서로에게 팔을 뻗어 양손을 맞대자, 얼마 후.

기령인 ‘나’의 시야가 다시 ‘나’의 시야 안쪽으로 흡수되었다.

정신을 차려 보자, 기령이 내 몸 안으로 흡수된 상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겹쳐진’ 상태였다.

우우우웅!

‘과연….’

나는 기령과 겹쳐진 상태에서, 기령 속에 넣어 두었던 힘을 체감했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앞으로 시간을 들여, 기령에게 깃든 힘을 차근히 내 몸으로 옮기면 나는 10년 안에 원영의 경지를 전부 찾으리라.

스스스스….

나는 눈을 감고, 밤을 새며 만상인연도를 통해 수행을 되찾는 과정을 이어 갔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서휼에게 불려갔다.

서휼이 해룡족의 근무를 보는 서휼의 방 안으로는 기묘한 영력의 흐름이 흐르고 있었다.

‘뭐지, 이 영기의 흐름은?’

영기의 흐름을 보고 있자니, 어째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상쾌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을 각성시키는 요술의 일종인 듯싶었다.

내가 잠시 영기를 쐬고 있을 때, 서휼이 웃는 낯으로 내게 물어왔다.

“해룡궁에서의 밤은 평안했나?”

“아, 서휼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에 평안한 밤을 보냈습니다.”

“다행이군. 앞으로도 신경 써 주겠네.”

그러나 서휼이 내뱉는 말과 달리, 그의 정신 속은 어제 이후로 불어난 의심으로 인해, 상당히 예민해 보였다.

그의 눈은 웃고 있는 듯했으나, 자세히 보니 내 곳곳을 관찰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6개월 후에 선수혈합이 열린다 하더군. 선수혈합에 출전하는 요족들은 대다수가 원영기 요족들이네만, 아무래도 자네에게 6개월 후에 바로 선수혈합에 나가는 것은 무리겠지?”

‘6개월 후라….’

듣자 하니, 선수혈합은 100년에 한 번씩 열린다고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100년 후에나 기회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중하기로 했다.

‘과연 그 선수혈합이라는 게, 정말로 내게 필요한 건가?’

선수 진혈이라는 게 있으면 요족 사회로 진입하기에 굉장히 편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서휼 놈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선수혈합에 내보내냐는 것이다.

‘십 할 확률로 꿍꿍이가 있다.’

거기에 원영기 급 요족들이 참여하는 경합에, 아무런 수행도 없는 인족 놈이 6개월 안에 수행을 쌓아 참여한다?

굉장히 수상쩍어 보이기 십상.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100년 안에 진선이 강림해서 금신천뢰문을 쓸어버린다.’

그 안에 금신천뢰문에서 천뢰번을 훔쳐, 서휼이나 현음, 혹은 꿍꿍이속이 있는 용족들의 저물도에 넣어 주는 게 내 목표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100년 안에 내가 용족 사회 깊숙이 흘러들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나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혹 선수혈합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합인지 알 수 있는지요?”

“간단하네. 봉명주의 최하층에 있는 비지에서, 엄선된 요족들과 생존 경쟁을 하면 된다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100명이 각기 선수 진혈을 하사받을 기회를 얻지.”

“간단하군요.”

“그렇게 간단하진 않을 걸세. 봉명주의 비지는 상당히 혹독할 터이니.”

나는 잠시 고민한 후, 서휼에게 말했다.

“참여하겠습니다.”

“호오…?”

서휼의 눈에 의심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는 감내하기로 했다.

‘어차피 서휼은 내가 숨만 쉬고 밥만 먹어도 계속 의심을 할 거다. 아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까지 보인 행동들을 제3 자 입장에서 보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의심스럽지.’

이왕 의심스러운 대상으로 찍힌 것.

어느 정도는 의심스러운 모습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하하, 좋군. 어쨌든 자네도 우리 해룡족 소속이니, 해룡족에서 나온 인재가 선수 진혈을 하사받으면 그 또한 영광이지.”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미소지었다.

“그런데 6개월 안에 원영기에 도달할 방법은 있나?”

“음, 혹시 원영기가 아닌 이들은 참가를 못 하는 겁니까?”

“꼭 그렇진 않네. 단지 원영기가 아닌 이들은, 비지의 혹독함에 선수혈합이 끝나기도 전에 죽어 나가는 경우가 상당해서 말이지.”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충분히 살아남을 자신은 있습니다.”

“흠, 그렇다면 알겠네.”

서휼은 싱긋 웃으며, 비단을 꺼내 그곳에 요족어로 추천장을 쓰고는 비단을 접어, 법술을 부려 어딘가로 날려 보냈다.

“추천장을 선수혈합 개최회로 보냈으니, 차후에 자네도 선수혈합에 참여할 수 있네.”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괜찮네. 자네야말로 지내는 데 불편하다든가, 그런 건 없나? 뭔가 더 필요한 거라거나….”

나는 잠시 고민하며 생각했다.

‘오혜서 대리가 어찌 되는지, 한 번은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뭐, 서휼 성품에 어련히 잘 대해 줬으려니마는….’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상당히 쉽게 말해 줄 가능성도 있었기에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그에게 질문을 하려 했다.

그때였다.

‘…잠깐.’

나는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려는 것을, 신체를 통제해서 빠르게 막아 냈다.

서휼의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정신이 맑아지는 기이한 영기의 흐름.

나는 막연히 ‘정신을 맑게’ 해주는 법술인 것 같다 생각하며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나는 기묘성심전을 속으로 운용하고, 답천의 경지에서 심상을 운용하며 의식을 관조하고 있었기에, 의식에 이상이 생기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자식, 나를 세뇌하고 있어!’

그랬다.

방에 들어오면서부터 느꼈던 기이한 정신 각성 효과는 사실 각성 효과가 아니다.

머리를 맑게 해 주는 효과도 아니었다.

서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휼을 향해 무한한 호감이 솟아나게 하는 세뇌 작업!

나는 방에 들어오면서부터 세뇌에 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놈이 이 요술의 핵이자 술자.’

서휼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그가 짓는 부드러운 표정 하나하나가 세뇌의 일종이다.

나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면서도, 신체 반응을 억눌렀다.

‘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서휼에게 세뇌당했겠어.’

원영기의 의식을 지니고, 답천에 달하는 심상의 깨달음에, 의식에 특화된 기묘성심전을 익힌 내가 이제야 세뇌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였다.

천인기 수사들조차 전심전력을 다해 서휼을 의심하고 처음부터 조사하지 않으면 그에게 세뇌당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리라.

“음, 필요한 건 뭔가 없나?”

그때, 서휼이 재차 내게 물어왔다.

나는 감정을 정리하고,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휼 님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본래 제 동료였던 오혜서라는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있을지요?”

이 세뇌의 용도는 ‘서휼에게 호감을 품게 하고 그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것.

내가 동료의 안위를 그에게 묻는 것 자체는 이상할 건 없다.

그리고 내 질문에 서휼은 따스하게 웃으며 답해 주었다.

“물론 아주 잘 지내고 있네. 다만 지난번 말했듯이, 그녀는 내 진혈을 받아들여 우리 해룡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지금은 해룡궁의 안쪽에서 내 진혈을 받아들이는 대법을 받는 중이지. 안정을 취해야 하는 대법이니만큼 만나고 싶더라도 조금 참아 주게나.”

“아, 그렇군요. 대답에 감사드립니다.”

‘거짓말하고 있군.’

원립 역시 서휼의 피를 받아 연화했던 녀석이었고.

놈을 고문해서 서휼의 피를 연화했던 법 역시 토설하게 했었다.

녀석의 자백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느니 하는 과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혹여 제가 선수혈합에 나가서 선수의 진혈을 받으면, 저 역시 오혜서처럼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겁니까?”

“하하, 물론이네. 자네가 선수혈합에서 선수진혈을 받을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게 되면, 내 친히 자네를 데려와 자네가 선수진혈을 연화하는 것을 도와주지. 이번에 그녀가 진혈을 연화하는 연화실 역시 자네에게 빌려주겠네.”

“은혜로운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서휼의 말을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서휼은 지금 거짓부렁을 토해 내고 있고, 오혜서는 지금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 그럼 더 궁금한 게 있는가?”

“….”

내가 여기서 오혜서를 보러 가려 한다고 하면, 서휼은 안정 핑계를 대며 절대 안 된다 할 터였다.

‘지금도 아마 내가 세뇌가 잘 걸리고 있는지 계속 관찰 중일 터.’

이 이상 녀석을 자극할 수 있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더 궁금한 건 없습니다. 허락하신다면 가서 선수혈합에 참가하기 위해 수행을 쌓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들어가 보도록 하게나. 아, 그리고 자네는 따로 익히고 있는 인족 수도공법이 있는가?”

“예,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제의를 지내는 일도 있을 테니, 제단을 만들고 싶다면 해룡족 원로 전률을 찾아가게나. 인족 제단에 관심이 많은 자이니, 친절하게 설치해 줄 걸세.”

“예, 감사드립니다.”

나는 서휼에게 인사를 한 후 그의 방을 나왔다.

그의 방을 나서면서도, 나는 한숨을 쉰다거나 긴장을 푸는 일 없이 그대로 쭉 내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해룡궁 전체에, 서휼의 방으로 통하는 영맥의 흐름이 보였다.

내 방에 설치되어 있던 것과 똑같은 흐름.

서휼은 해룡궁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중이었다.

‘저조차도 의념의 시야와 영기의 시야, 그리고 계위의 깨달음을 동시에 얻은 내가 아니라면, 해룡족들도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미리 회로를 설치해 놓은 내 방 안에 들어서고야 나는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도대체가, 이 해룡궁 안에서는 숨도 쉬기가 힘들겠어.’

서휼의 눈이 도처에 깔려 있는 만큼, 실시간으로 감시당한다고 생각해야 하리라.

그래,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야 했으리라.

‘앞으로 내 거처가 될 곳인데, 당하고만 살 수 있겠나.’

우우웅!

나는 어젯밤, 만상인연도를 통해 연기기 6성의 수행을 되찾았다.

하룻밤 안에 연기기 6성이 된 것이다.

7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7성은 제의를 치러야 하기에 그저 절차상으로 넘지 못했을 뿐.

‘법력은 충분하다.’

우우웅!

나는 서휼이 내 방에 깔아 놓은 감시용 영맥에 손을 대고, 영맥에 도리어 내 법력을 불어넣었다.

‘해룡궁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부 네 뜻대로 놀아난다고 생각했겠지, 이 뱀장어 놈.’

츠츳, 츠츠츳!

서휼의 영맥을 역류해서, 괴군의 회로를 깐다.

영맥 너머로, 미치광이의 회로가 깔려 가며 내 방에만 깔려 있던 회로들이 다른 곳으로 점차 침범하기 시작했다.

월수궁무록으로 정보를 차단하며 회로를 깔았기에, 서휼에게는 정보 자체가 전해지지 않을 터.

‘오늘부터, 해룡궁은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서휼은 아마 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를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되었다.

나는 독(毒)이었다.

이천 년 넘게 고이고, 오래 묵어, 완전히 썩어 버린 독.

그 독이 용족의 심처에 들어왔으니, 이제 곳곳을 중독시켜 버릴 것이다.

츠츠츠츳!

‘나한테 오혜서가 뭘 하고 있는지 보여 줄 생각은 없고, 나를 세뇌시킬 생각만 가득한 게 네 의지라면….’

나는 괴군의 회로로 해룡궁 전역을 덮으며 생각했다.

‘해룡궁을 손에 넣어 내가 직접 알아내 주지.’

음습하게 자기 성궁 전체에 이따위 법술을 깔아 두어서 고맙다.

이제부터 내가 잘 써 주마.

* * *

6개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축기 후기의 수행을 되찾았고, 1, 2년 후면 결단기의 수행 역시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힘을 쓰며 해룡궁 전역에 걸린 서휼의 눈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휼의 눈을 장악하여 해룡궁을 감시한 결과.

나는 아직도 오혜서를 찾지 못했다.

해룡궁 안쪽에 오혜서가 있다는 말부터가 거짓이었다는 뜻.

‘빌어먹을.’

나는 이를 짓씹으며 방 안에서 눈을 떴다.

어느새 선수혈합의 시일이 다가왔다.

나는 준비를 마치고, 해룡궁 밖으로 나갔다.

운심호 밑바닥에 자리한 해룡궁에서 나서니, 해룡궁을 감싼 결계와 그 너머로 펼쳐진 운심호의 호숫물이 보였다.

그리고 결계의 안팎으로, 해룡족들이 거닐거나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나가자 해룡족들은 수군거리며 조금 피하는 기색을 보였다.

대충 들어보자니 아무래도 대체적으로 인족인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 같았다.

“저 인족 놈, 이번에 선수혈합에 나선다며?”

“서휼 님께서 선수혈합 추천장을 써 주셨다는군.”

“도대체 왜 저런 녀석에게….”

“아무리 의식 크기가 뛰어나다지만, 저건 너무 큰 특혜가 아닌가….”

나는 담담히 그들의 말을 흘려넘기며 결계의 가장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후 서휼이 본체로 호수를 헤엄쳐 내려왔다.

“많이 기다렸나 보군.”

“아닙니다.”

“일단 내 목에 타고… 모두 듣게나. 이번에 선수혈합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은 모두 나를 따라 날아오게!”

서휼의 말에, 해룡족의 젊은 원영기, 혹은 결단기 해룡들이 서휼을 따라 날아왔다.

나는 서휼의 목에 매달려 호수를 날아, 그와 함께 봉명주로 날아갔다.

내가 그에게 매달려 있을 때.

서휼이 따스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 해룡족 사이에, 자네에 대한 험담이 많이 나돌더군. 아무래도 용족이 아닌 인족인 자네에게 특혜를 많이 주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자들이 많은 듯하네.”

“…그런 것 같더군요.”

“우선, 내가 해룡족을 대표하여 사죄하겠네. 자네를 해룡족에 받은 것은 분명 나인데 내가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하네. 그리고, 그들이 무어라 하든지 신경 쓰지 말게. 나는 이번에 진룡맹의 주요 인사가 되었으며, 비승 전에도 해룡족의 신임받는 왕이었다네. 이 내가 자네의 자질을 눈여겨보고 데려왔으니, 자네는 자네의 길을 걸어가면 될 걸세.”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아마 창호자가 이 말을 했으면 감동받아서 절이라도 올렸으리라.

하지만, 정작 이렇게 멋진 말을 내뱉는 서휼의 심상은 시커먼 악의로 꽉 차 있는 것이 보였다.

‘향화 때랑은 반대로 신선한 기분이군.’

자신을 잊으라고 일부러 험한 말을 내뱉으며 속으로는 내게 사랑을 전했던 그녀와, 겉으로는 상냥하고 믿음직한 말을 뱉으며 속으로는 나를 의심하고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하는 서휼.

굉장히 극단적이었지만, 오히려 너무 극단적이라 신선할 지경이었다.

‘아마, 서란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지금 수군대는 용족 놈들의 뒤에는 결국 이 녀석이 있겠지.’

해룡궁에 있는 서휼의 눈을 장악했다지만.

서휼과 함께 있던 날부터, 한시도 긴장을 푼 적은 없었다.

내 행동의 제약은 조금은 풀렸지만, 서휼은 법술이나 요술을 쓰지 않고도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아는 이였다.

세뇌되거나 감시당하지 않음에도, 나는 서휼이 내뱉는 의미심장한 말들 덕분에 해룡궁에서 그동안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것에 능한 녀석이다.’

서휼과 지내면 지낼수록.

나는 답답함에 목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방이 막혀 있고, 오직 서휼이 제시하는 길만이 그나마 뚫려 있는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나 서휼이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함정이다.

2,000년이나 된 나 같은 노괴쯤 되니 이렇게 숨 쉴 틈이라도 있는 것일 터.

‘그렇다면… 오혜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분명히 서휼과 함께 왔을 오혜서를 걱정하며, 봉명주 안쪽으로 진입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서휼에게 잡혀 세뇌당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번 생에 세운 목표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서휼을 따라 봉명주 최하층.

선수혈합이 치러지는 비지에 도달했다.

이제 선수혈합이 시작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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