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地)의 종족 (2)
휘오오오!
뜨거운 열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진룡맹 봉명주 내부의 요족 시장.
그곳에는 수많은 요족들이 모여 물건들을 교류하고 있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본모습으로 돌아다니며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기에 시장 인근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인간형으로 화형(化形)한 요족들은 찾기가 힘들군.’
하긴 천족이나 인족의 땅도 아닌데, 구태여 화형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간혹 덩치가 너무 큰 요족들이나 크기 때문에 화형을 하는 정도였다.
“자자, 천족 측에서 공수해 온 단약이오!”
“선수 진혈 등을 체내에 연화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혈련법(血鍊法)이 만들어졌습니까? 저희의 혈련법은 그동안 나온 혈련법과는 격이 다른 것으로….”
“지난번 오광족을 정벌하고 얻어 낸 오광족의 공간 법보요, 경매에 부치겠소!”
요족들의 음성은 커다랬고, 서로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요족어는 영기를 진동시켜서 말을 전하는 방식이기에, 지족의 감각을 가지지 못한 인족이 와서 듣는다면 영기가 조금 출렁일 뿐 상당히 시장은 조용한 편이었다.
‘요족들의 시장도 인족들과 크게 다를 건 없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인족들보다 훨씬 점잖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잠시 요족 시장을 구경하고는, 주변 요족들의 반응을 살피며 공법서를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얼마 후, 나는 요족 공법서를 판매하는 시장 거리에 들어설 수 있었다.
‘많군….’
요족 공법서를 판매하는 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요족 공법서는 어마어마하게 넘쳐났다.
그리고 책이나 옥간에 기록된 인족의 공법들과 달리, 요족의 공법들은 뼈나 가죽, 혹은 이빨 등에 기록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요족어의 특성 탓인가, 아예 기록 방법 자체가 다르군.’
요족 문자는 기본적으로 천지영기에 흐르는 음양의 흐름을 기록화하여 뜻을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그 언어 체계는 일반적인 인족의 언어 체계와는 판이했다.
그러므로 그를 기록하는 법 역시, 영성을 머금은 뼈나 암석 등에 자신의 뜻을 기록한 음양의 흐름을 새겨 차후에 뼈에 영력을 불어넣으면 새겨진 흐름에 따라 영기가 진동하며 내용을 알리는 식이었다.
때문인지 요족 중에는 아예 자신의 몸이나 뼈 같은 곳에 공법을 새기고 다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런 요족들 중 상당수가 요수공법서를 판매하는 거리에 와서, 공법의 내용이 수록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뜯어 내어 팔고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뿌드드득!
“끄아하! 여기 내 뿔에 담긴 건 우리 각우족의 각우흑원변이오! 얼마 쳐 주시겠소!”
“흠, 각우족은 내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아니! 지금 내 종족을 모욕하는 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에잇, 화내지 말고, 이 정도 쳐 주면 만족하겠나?”
“흠….”
눈앞에서 각우족이라는, 커다란 이족 보행의 검은 소가 콧김을 뿜으며 요족 상인에게 자신의 뿔을 뽑아 주고, 요족 상인에게서 영석을 받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상당히 문화 충격을 받았다.
각우족이라는 이족 보행 소는 영석을 받아 챙긴 후, 콧김을 뿜으며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가 몇 발자국을 딛자, 그의 뿔이 있던 자리에서 새 뿔이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결단기 이상의 요족인 만큼, 저 정도는 충분히 재생이 되는 모양.
그리고 망둥이를 닮은 요족 상인은 낄낄거리며 소의 뿔을 받아들고는 좋아하고 있었다.
“최근 용병 종족 중에서 각우족이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데, 그런 각우족의 공법이라니 비싸게 팔리겠군.”
나는 혈체피갑으로 내 몸을 덮은 원유를 조종해, 내 뺨에 비늘이 돋게 만들고, 이마에 붉은 사슴뿔이 돋아나게 만든 후 그의 앞에서 월수궁무록을 해제하였다.
“이보게, 내 이번에 비승하고 나서 지족 시장에 처음 오는 몸인지라 한 가지 묻겠네만….”
우우웅!
용형의 의식에, 내단의 기운을 바깥으로 흘려 주자 망둥이 상인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귀하신 용족 분께서 어찌 이런 시장에 오셨습니까?”
“말했듯이 내가 광한계에 비승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묻고 싶은 게 좀 있어 말이네.”
“예, 예, 하문하시지요.”
“우선 방금 전처럼 요수공법을 팔러 오는 요족들이 흔한 건가?”
“아무렴요. 뭐, 사실 저런 요족들이 팔아 주는 요수공법이야말로, 우리 지족의 주요 특산물입지요.”
망둥이 상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르신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 지족은 사실상 ‘시야’의 특성 때문에 한 가지로 묶여 불린다고는 하나, 전부 다른 종족입니다. 지족이 본래 대다수가 들이나 강산에서 나돌던 짐승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하지요. 그런 지족이기에, 그 분류는 가히 세는 게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지족 공법은 종류가 어마어마합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지?”
“예? 무슨 말이냐니요?”
내 질문에 망둥이 상인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왜 이런 간단한 말을 이해 못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험, 그러니까 내가 살던 하계에서와 광한계 환경이 너무 많이 달라서 말일세.”
나는 적당히 하계 핑계를 댔고, 망둥이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방금 비승하셨다 했지요. 하기야 하계는 수가 무수히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일단, 용족 어르신이 오신 하계의 상황은 잘 모르니 광한계 지족들의 상황을 잘 설명드리자면, 일단 저희 ‘지족 공법’이란 사실상 어르신이 속하신 용족이나 봉황족 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획일화된 것이 거의 없다는 건 아시지요?”
“…그렇지.”
나는 잘은 몰랐지만, 이것까지 모른다고 한다 하면 그가 더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 같았기에 일단 안다고 대답하였다.
‘뭐, 잘은 모르지만 대강 짐작은 되기도 하고.’
지족이란 곧 요족.
그런데 후대에게 공법을 계승해 주고, 점차 발전시켜 나가는 천족과 달리, 요족들은 대다수가 들에서 굴러다니던 들짐승이었기에 선대로부터 공법을 전승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힘을 쌓는 요족들은 사실상 자기 자신이 개별적으로 공법을 만들어 가며 성장해야 할 터였으니, 획일화된 공법이 없다는 말도 이런 식으로 대강 짐작은 됐다.
“예, 아시다시피 우리 요족들은 체내에 영성을 각성하고, 지성을 획득한 날부터, 끊임없이 본능에 기대서 자신에게 알맞은 공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각 종족마다, 각 개인마다 만들어내는 공법이 천차만별로 다르지요. 그리고 그런 요수공법들은 각기 수많은 요족들이 자신의 본능에, 몸에 기대서 만듭니다. 그렇기에 영기의 흐름이 본인들의 신체에 새겨지고, 그 새겨진 신체 일부를 잘라 내서 이렇게 파는 요족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지요.”
“음, 그렇군.”
아무래도 요족들이 자신의 뼈에 공법을 새기는 것은 그러한 이유도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천차만별의 요수공법이 열려서 활성화된 시장은, 이미 지성을 얻은 수많은 다른 요족들이 자신에게 맞는 공법이 있나 찾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파는 이들이 있다면 또 사는 이들도 많다는 얘기지요. 예를 들어, 본능대로 공법을 만들었는데 그 공법이 너무 구린 공법이라면 공법 시장에 와서 자신에게 맞는 공법을 사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한, 천족 측에서도 저희의 요수공법을 원하는 이들이 아주 많지요.”
망둥이 상인은 낄낄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저희 요수공법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천족 측에서는 늘 이렇게 쌓여있는 공법서들을 일정 기간마다 대량으로 구입해 갑니다. 그렇기에 이 요수공법 시장이 이렇게 활성화된 것이지요. 어르신이 오셨던 하계는 어떤 곳인지 모르나, 이런 제도가 없었나 봅니다?”
“음. 확실히, 광한계의 독특한 제도구려.”
나는 망둥이 상인에게서 지족에 대한 것들을 몇몇 개 더 물어본 후, 하계에서부터 가져온 영석들을 건네주었다.
‘지족 시장은 결국 지족의 특성 자체와 연관이 있는 거로군.’
공법을 익히면 공법의 특징에 따라, 신체 곳곳에 영기의 흐름이 족적처럼 남으니.
그 족적의 흐름이 남은 신체 일부를 떼어서 파는 요수공법 시장.
그것이 지족만의 독특한 특징인 것이었다.
나는 망둥이 상인의 가게에서 물건을 본 후, 다른 가게들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가게들을 돌아다니던 와중, 나는 몇몇 가게에서 공통적으로 파는 공법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보시오, 이 공법서는 다른 가게에서도 상당히 자주 보이던데 도대체 무슨 공법서요? 내 비승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것이니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소?”
다행히 내가 용족의 모습을 흉내 내며 상인들에게 묻자, 그들은 영광이라도 된다는 듯이 선선히 설명해 주었다.
“아, 비승하신 용족 어르신이셨군요. 이 공법들은 광한계 요수공법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공법입니다. 일종의 기초공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홍합처럼 생겼으나, 홍합 주제에 팔다리가 달린 요족 상인이, 작은 영석을 들어올리며 설명을 이었다.
영석에는 빼곡한 요족 문자가 적혀 구결을 이루고 있었다.
“무수한 요족들이 서로 다른 공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저희는 모두 요족이니만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겹치는 부분들을 모아 만든, 요족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공법인 셈이지요.”
“호오… 이름은 뭐지?”
“광한결(廣寒訣)이라 합니다.”
“광한결이라….”
나는 광한결을 구매해서 품에 넣었다.
요수공법의 기본 중 기본이라 불리는 공법과, 그 외에도 한두 가지 적정해 보이는 공법을 구매한 후, 나는 다시 서휼이 있던 석조 건물로 올라가 보았다.
‘아직 서휼은 나오지 않는 건가.’
아무래도 안에서 처리할 일이 많은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서휼을 기다리기를 몇 시진째.
천지영기가 회전하며, 저녁 시간을 알릴 때쯤.
서휼이 석조 건물에서 나왔다.
“오래 기다렸나 보군. 지루하진 않았는가?”
“예, 서휼님을 기다리는 것에 어찌 지루함이 있겠습니까. 또한 수도를 하려 함에 있어 기다림은 본래 미덕이지요.”
“좋은 말이군. 그동안 내가 준 호풍진혈변을 수련하고 있었는가?”
“그렇습니다.”
“하하… 그렇군.”
서휼은 눈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갑자기 서휼의 의심이 폭증하는 것을 느꼈다.
‘…? 아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갑자기 의심을 하는 거지.’
입천의 시야를 갖지도 못한 이 녀석이 내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서휼은 음험할지언정 이성적인 자였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갑자기 저따위로 의심할 리가 없다. 뭔가 근거가 있었다는 것일 텐데….’
월수궁무록을 써, 서휼이 석조 건물 안에서도 의식을 뻗어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하고 내려갔다 왔다.
거기에 강환 분신을 몰래 남겨 두고 가, 서휼이 가끔 의식을 뻗어 확인해도 알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일단 오늘 일은 대체로 만족스럽게 처리가 되었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지금쯤이면 운심호를 정복하진 못해도, 본족의 원로들이 해룡궁은 새로 하나 지어 놨을 터이니.”
“예, 알겠습니다.”
츠츠츠츳!
서휼은 다시 본체로 변하며, 그의 목에 나를 태웠다.
나는 서휼의 목에 매달려 날아가며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진원진기를 태워서라도 무형검을 꺼내, 이 녀석의 목을 쳐 버릴까.’
이 녀석이 나를 의심하는 정도가 어마어마하게 폭증했다.
그냥 지금 당장 이놈을 죽여 버리고 탈출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아, 그리고, 오늘 진룡맹 사무국에 들어가 일을 처리하며 한 가지 좋은 정보를 들었다네. 앞으로 지족 내에서 대대적으로 실행될 계획이지.”
“제가 들어도 되는 것입니까?”
“문제없네, 그리 큰 비밀은 아니니까. ‘전 지족 작명 과업’. 앞으로, 진룡맹에서, 현존하는 모든 지족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인족 총연맹에서 행하며 인족들의 생사를 총람하는 ‘명적’ 제도와 같이. 앞으로 진룡맹에서 모든 지족의 ‘이름’을 지어 주고, 그를 관리하기로 했네.”
“…이름 말입니까?”
나는 갑작스레 뜬금없는 말이 나오자 당황했다.
‘갑자기 여기서 이름 같은 게 왜 나오지?’
“이름(名)은 운명(命)을 일부 담고 있지. 우리 지족은 천족처럼 하늘의 운명을 읽는 느낌이 없어. 그러니 늘 천족들에게 정보전에서 뒤처져, 지족의 세력이 근래 많이 위축되었다 들었네. 그런 만큼, 앞으로는 진룡맹에서 전 지족의 이름을 관리하고, 이름이 없는 지족은 이름을 직접 작명해 줄 커다란 계획을 짜고 있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게 무슨 쓸모가 있는 건지….”
“아, 운명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조금 어려운 말일 수 있네만… 그렇게 모든 지족의 이름을 관리한다면, 지족의 이름에 담긴 운명의 힘을 간접적으로 읽어, 앞으로 지족의 전체적인 운명의 동향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진룡맹 최고회의 결정이라네.”
“그런 결정을 제게 일러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도 될지요?”
“간단하네. 앞으로 전 지족 작명 과업에 모든 지족에서 한두 명씩 자기 관리를 파견할 걸세. 내 생각에는, 우리 해룡족에서는 자네를 포함해서 몇몇을 파견할 생각이니 말일세.”
“…좋은 기회를 주시어 감사합니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나는 속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운심호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진 후였다.
나와 서휼은 호수 밑으로 들어가, 새로 지어진 해룡궁에 입성했다.
“그럼 자세한 얘기는 내일 나누지. 일단 오늘은 푹 쉬게.”
나는 내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
서휼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걸까.
그걸 고민하며, 무심코 서휼이 내게 준 그의 신분 패를 들어 보았을 때였다.
“…어?”
왜, 신분 패에 의념이 녹아 있지?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신분 패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는 오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미친.’
오늘 시장에 갔다 올 동안.
나는 줄곧 서휼에게 위치를 감시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