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75화 (175/185)

15회차의 첫날

스스슷….

의식이 돌아온다.

원영을 그대로 폭발시켰던 대가일까.

머리가 어질어질한 걸 넘어서 토할 것만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나는 의식을 차렸다.

그리고,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선택하시게. 우리는 이제 각자 광한계 선배분들의 인도에 따라… 아니, 무슨…!”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눈앞의 서휼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닌, 금벽호, 허곽… 그리고 창호자 역시 나를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괴군 역시 눈에 탐욕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어쩐지 너무 지끈거린다 했더니, 의식의 크기가 너무 커진 것 같았다.

원래부터 오기조원을 얻은 후부터는 동급 수사들보다 의식의 크기는 조금 더 컸고, 기묘성심전을 익히며 의식의 크기가 더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생애에 원영(元靈)의 경지에 이르렀다.

막 원영기에 이르렀던 내 의식의 크기는, 순수한 크기로만 볼 때 이제 원영 중기 최고봉 수사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의식의 크기가 너무 커진 탓일까.

수계에서 이미 환골탈태를 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기 시작했다.

한 번 몸의 조화를 맞춘 걸로도 이제 크기가 너무 커져서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다행히도, 조화가 깨졌다 하더라도 오기조원의 육신은 그럭저럭 버텨는 주는 것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뿐 당장 머리가 폭발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아, 아니! 원영기 수사의 의식이 아닌가!?”

“저 정도 의식 크기라면 혼의 계위에서 의식이 넘쳐서 기의 계위에도 영향을 미칠 터….”

“원영을 얻는 데에 굉장히 유리할 거란 말이지….”

“저 녀석 정도라면 당장 전력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한데?”

분명 결단기 급 의식을 지녔던 인족 녀석이, 서휼과 몇 마디 나누다가 갑자기 원영기 급으로 의식의 크기가 커졌다.

신기한 건 둘째치고, 원영기 이상의 의식 수준은 저들의 말대로 의식이 기의 계위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이기에, 잘만 하면 당장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봐, 우리 금신천뢰문에 들어오지 않겠느냐? 바로 외당 장로직을 주고, 경지를 높이면 내당 장로직까지 주겠다!”

“아니, 보아하니 혼(魂)이 죽음에 친숙한 듯한데, 흑색귀골곡에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 곡의 역사에 걸맞은 무궁무진한 공법들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내 볼 때 자네의 의식과 그 죽음의 기운으로 볼 때 흑색귀골곡에 들어오면….”

“원영기 급 의식이라니, 우리 창천개벽문의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인재구나! 만약 지금 창천개벽문에 들어오면 일운(一雲) 제자의 자리와 내 직전제자의 지위를 주마!”

금벽호와 허곽, 창호자가 너 나 할 것 없이 밝은 얼굴을 하고 내게 소리쳤다.

지난 생 초반, 결단기 급 의식을 지닌 걸 신기해하긴 했어도 신기할 뿐, 그렇게 열성적이진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기이할 정도의 열기였다.

그리고 그뿐이 아니었다.

“이거… 이렇게 보니 더더욱 욕심이 나는군. 자네 정도의 자질이면 진룡맹에 자리를 추천해 주고, 원한다면 내 피뿐이 아니라, 아예 선수혈합(仙獸血合)에도 참여할 수 있게 추천권을 써 주겠네.”

서휼 역시 내 의식을 보며 경이롭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리고 괴군은 내 의식 크기를 보며, 뭔가 또 광증이 도지려는지 눈알을 뒤룩거리며 손가락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경험상, 저건 광증이 도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저러다가 광증이 도지면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발광하는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괴군의 반응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 멍 때리고 있으면 괴군에게 납치당해 선택권 같은 건 사라진다.

‘물론, 지금 상태라면….’

나는 뱃속에 잠들어 있는 무색유리검을 느꼈다.

백홍주를 먹고서 지난 생에서 전승된 무색유리검들.

무색유리검들과 연동된 만상인연도.

만상인연도 속에, 지난 생의 수행이, 그때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잘만 하면 만상인연도를 등대로 삼아, 10, 20년 안에 원영의 경지를 전부 되찾을 수 있다는 게 느껴졌다.

더 줄이고 싶었지만 공법을 수련하면서 치러야 할 제의와 제례의 시운을 맞추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든 짧은 시간 안에 수행을 되찾는 게 가능해진 만큼, 괴군에게 납치되어도 얼마 안 있어 탈출하는 게 가능할 테지만, 솔직히 그렇게 한다면 별 의미가 없어진다.

‘지난 생애의 감상은 차후에 젖어 있기로 하고, 일단 선택부터 하자.’

나는 머리를 팽팽 굴렸다.

수도자는 경지가 높아지고 의식의 크기가 커질수록, 조금씩 비례해서 지능과 사고 속도, 기억력 등이 증가한다.

물론 비례의 정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의식의 크기에 따라 사고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실.

나는 원영기에 달한 의식을 팽팽히 돌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결단을 내렸다.

금벽호가, 허곽이, 창호자가… 괴군과 서휼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나는 망설임 없이 한 인물의 앞으로 걸어갔다.

“호오… 나를 선택해 준 건가.”

그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괴군의 표정이 나빠진다.

나 역시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으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예를 올렸다.

“아직 부족한 이 서 모가, 명성이 자자하신 서휼 님의 안배에 따라 수학해 보고자 합니다.”

“하하하, 좋은 선택이네. 내 부족함 없이 챙겨 주겠네. 비록 자네는 요족이 아닌 인족이지만, 요족들 사이에서 절대 겉돌거나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힘써 주지.”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서휼의 심상의 역겨움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다른 이들의 시선에 안타까움이 서렸고, 괴군은 혀를 차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괴군의 아래에 있는 연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난 생에는 애초에 창호자를 선택할 예정이었기에, 순수한 그의 특징을 생각해서 괴군의 앞으로 가서 김연을 안아 주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괴군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건 물론이고, 순수한 창호자와 달리 서휼의 앞에서 괴군과 친한 척을 한다면 훗날 어떻게 뒤통수를 맞을지 몰랐기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또다시 사축기 녹갑 목인과 괴군이 말싸움을 시작하더니, 괴군이 발광을 시작했다.

괴군의 눈이 돌아가는 걸 보는 서휼은, 황급히 서휼과 요족들을 데리러 온 사축기 요족 규련에게 말해 이곳을 뜨자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괴군이 발작하고 서휼이 뜰 채비를 하는 사이, 누구도 모르게 월수궁무록에 섞어 내 혼백을 떼어 내 분혼을 만들었다.

그런 후 월수궁무록과 함께, 누구도 모르도록 김연에게 던졌다.

내 분혼은 기괴고의 술이 되어 그녀의 의식 안쪽을 누구도 모르게 파고들었다.

이번 생 초반에는 달래 주지 못했지만, 기괴고의 술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며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괴고의 술을 전해 준 견신에게 속으로 감사를 전하며 서휼을 따라갔다.

규련은 내가 그녀의 머리에 올라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듯했으나, 서휼의 설득에 내가 목 위에 올라탈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다.

얼마 후, 그녀는 하늘로 날아올라 건곤성을 떠났다.

나는 규련의 위에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괴군이 발작하고 기묘성채를 꺼내는 걸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사이에 껴 있는 창호자를 바라보았다.

조금 여유가 생긴 틈을 타, 나는 창호자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그에게 절을 올렸다.

지난 생애의 스승이었을지라도, 이미 시간을 거스르며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미 그를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는 내 마음속의 굳건한 지지대이자 스승이었다.

‘당신의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서휼의 아래로 들어갈 것이다.

녀석의 아래가 얼마나 속 시커먼 마굴일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창호자의 정신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괴군에 의해 소란이 일어나는 건곤성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번 생의 목표는 정했다.’

본래는 금신천뢰문, 혹은 나한테 적성이 맞는다는 흑색귀골곡 쪽을 생각해 볼까 하였다.

하지만 비선대 위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이번 생의 목표를 정하고 결정했다.

‘첫째, 일단 서휼에게 잡혀 간 오혜서 대리는 도대체 무슨 상태가 되는 건지 알아본다.’

나는 규련의 머리 위에, 다른 요족들과 함께 앉아 사람 좋은 미소로 두런거리는 서휼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안쪽에 있는 시커먼 속내로, 도대체 오혜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둘째, 흑룡왕 현음부터 시작해서… 저 용족이란 놈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알아본다.’

혈음계 쇄성기 존자와 딱 봐도 관련이 있는 흑룡왕 현음.

그리고 수계에서부터 혈음계로 비승하려는 원립을 지지한, 속 시커먼 용가리 서휼.

도대체 이 용족 놈들은 뭘 원하길래, 그리고 정체가 뭐길래 혈음계와 엮여 있고, 이 녀석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광한계의 정세를 따라가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부에서부터 파고들어 가 녀석들의 목적과 정체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오혜서의 정황 확인과 용족들의 목적과 정체.

그리고, 그것들보다도 중요한 것.

어쩌면 가장 난이도가 높을지도 모르는 일.

‘지금부터, 서휼의 밑에서 수행하며, 요족의 핵심부에 도달한 후.’

미쳐 버린 전명훈과 금신천뢰문의 비극을 생각하며 결정한 일.

‘금신천뢰문에 침입해서, 진선에 의해 멸망하기 전, 금신천뢰문의 천뢰번을 훔쳐 낸다.’

그리고, 훔친 천뢰번을 요족 영역으로 가지고 와, 서휼이나 현음의 아가리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면 완벽한 이독제독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이 세 번째 목표야말로, 내가 서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이번 생에는 오혜서의 근황과 용족의 목적을 확인하고, 천뢰번을 훔쳐 내어 놈들의 근거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그것이 이번 생의 제일 큰 목표들이었다.

나는 규련이 눈치채지 못하게, 답천의 무형검을 체내에서 흩어 없앴다.

그런 후 단전 가운데에 바로 강환을 생성하여 내단을 형성하였다.

우우웅!

내단이 생성되며 육신의 중심을 잡아 주자, 자연히 지끈거리던 머리도 조금은 안정되었다,

그리고 내단의 기운을 느낀 것인지, 우리를 태우고 지족의 영역으로 나아가던 규련이 말했다.

[뭐야. 네놈, 요족이었나? 요력이 느껴지는데… 혹 인요 혼혈인 거냐?]

나는 헛기침을 한 후, 요족어를 사용해서 규련에게 대답하였다.

“혼혈은 아니고, 인족이 맞습니다만 하계에 있을 때 굉장히 특이한 공법을 익혔는지라 인간의 몸으로도 요단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한계에 오니, 지금껏 막혀 있던 성취가 뚫리며 요단이 바로 생겨나는군요. 하하하….”

“호오, 요족어까지? 하긴, 너희 천족들은 이론상 지족공법도 익힐 수 있으니….”

내가 요족어를 완벽히 구사하며 내단의 기운을 드러내자, 규련은 조금 호의가 생겼는지 마냥 불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서휼이, 규련의 머리에서 내려와, 목덜미에 앉아 있는 내게 걸어왔다.

휘이이이!

지족 구역으로 향하는 규련의 목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척하다, 서휼에게 예를 취했다.

“해룡왕께, 다시 한번 저를 받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왕이라 부르지 말게. 광한계에서 왕(王)이란 말은 합체기 태수 급 요왕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칭호이니…. 어쨌든 그리고, 자네 같은 인재를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눈알이 없는 머저리라는 뜻이지. 거기에 요단도 형성할 줄 알다니,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우리 요족에 친화적인 인재였군.”

“감사합니다.”

“거기에 요족어까지 배웠다니, 정말 호감이 들 수밖에 없어…. 이거 지족 영역까지 도착할 때까지 자네 같은 인재에게서 신경을 끌 순 없으니, 이 공법이라도 익히고 있게나. 내가 직접 만든 공법인데, 자네 같은 훌륭한 수재를 위한 공법이지.”

서휼은 웃으면서 품속에서 요수의 가죽으로 장정된 공법서를 꺼내 내게 건넸다.

“아….”

공법서의 이름은 호풍진혈변(呼風眞血變)이었다.

“….”

내가 공법서를 보며 침묵을 유지하자 서휼이 미안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조금 더 제대로 된 요공법을 구해주고 싶네만…. 아무래도 요족의 본부인 진룡맹에 도착하기 전에는 인족 출신인 자네에게는 이게 최선이겠군. 이해해 주게나.”

하지만 나는 서휼의 심상을 읽으며, 그가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하고 있지만, 점차 나를 향한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길.’

호풍진혈변을 받으면 저놈의 꼭두각시 겸 가축이 되고, 안 받으면 서휼이 나를 의심한다.

놈에게 제대로 신뢰를 받을 생각은 원래도 없었지만, 서휼을 선택한 지 반나절도 안 되어서 바로 의심을 받을 줄은 몰랐기에, 나는 극한의 양자택일 속에서, 호풍진혈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작가의 말:

15회차 메인퀘 목록: 1. 오혜서 근황 확인. 2. 용족 첩자. 3. 천뢰번 돗거질. 4. (New!)서휼 수작질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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