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8)
부우우웅!
벌떼가 우는 듯한 소리가 귓가로 울린다.
환청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기묘성채(奇妙城砦) 안쪽에서부터 무수한 벌들이 나와 날개를 휘젓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저 벌들 하나하나는 축기 급 전력이었지만, 나는 저 벌들의 무서운 점이 단순한 경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부우웅!
벌들이 결계 주변을 뒤덮으며, 땅을 갈아엎고, 공간을 넘어 다니며 기묘성채 안쪽에서 가져온 괴뢰들로 대지를 메웠다.
점차 근방 자체가 기묘성채를 중심으로 한 요새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쇄성기 존자의 왼손은 그러한 요새의 중앙에 갇혀 버린 형국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웅!
존자의 왼손이, 표피에 돋은 산호들을 꿈틀거리며 사방팔방으로 혈광을 쏘아 낸다.
하나하나가 상대의 정신을 박살 내는 무시무시한 저주!
그러나,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덜걱덜걱덜걱….
존자의 왼손이 쏘아 낸 정신 금제에, 일순간 괴뢰들이 움찔거렸으나, 다시 멀쩡히 작업을 이어 갔다.
당연했다.
괴뢰들이 지닌 가짜 혼은 결국에는 가짜.
고도의 심상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니, 심상을 봉인하거나 영향을 주는 혈음계 존자의 법술에 최악의 상성인 셈이었다.
혈음계 존자의 왼손은 정신계 법술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마기를 끌어모으며, 물리력을 동반하는 법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하늘이 다시 벌겋게 물들며, 천지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점령지 일대를 날려 버릴 셈인가!?’
필히 이번 공격은 존자조차도 상당히 힘을 소모하는 공격이다.
그 증거인지, 왼손에 돋아난 눈알들이 바싹 졸아들며 진중한 의념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상대를 잘못 만났다.
끼이이익….
기묘성채에 있는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안쪽에서 괴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요새화시키는 일꾼 괴뢰들이 아닌, 말 그대로 진정한 괴군의 전투 괴뢰들.
쿠구구구구!
‘…미쳤군, 나비 효과 때문인가. 지난 생보다도 훨씬 빨리 저 정도 괴뢰들을 제작하다니….’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괴군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
자칫하면, 이이제이의 전략으로 불러온 괴군에게 깡그리 잡혀가 존자의 왼손 옆에서 개조당하는 수가 있었다.
“아아… 저것이 과연 쇄성기의 신체 일부인가? 너무나도 감격스럽군. 합체기까지는 그대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쇄성기 이후부터는 도대체 뭘 어떻게 만들어야 그 정도 괴뢰를 제작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혔는데… 이렇게 훌륭한 자료가 내 앞에 나타났구나….”
오싹, 오싹….
오랜만에 들은 괴군의 목소리도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괴군이 끌고 나온 저 괴뢰들을 보며 더더욱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합체기 괴뢰 9기, 사축기 괴뢰 204기, 천인기 괴뢰… 1050기, 원영기 괴뢰… 후, 설명하기 귀찮군. 아무튼 전부 쇄성기 연구 자료를 잡아 와라! 흐히힉, 드디어….”
뒤룩, 뒤룩….
기묘성채의 상공으로 떠오른 괴군이, 양 눈을 다른 방향으로 뒤룩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의 눈이 나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드디어드디어드디어드디어… 아아! 자아, 꼬마야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그 괴뢰로 보내 준 서신에 분명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었지? 자아, 준비는 되었느냐? 걱정하지 마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모두 내가 더더욱 우월하게 진화시켜 제대로 준비를 시켜 줄 마음이 매우매우 깊단다!”
뿌드득, 우득, 우드득!
괴군은 미친 듯이 손가락을 마구 씹으며 사방으로 소리쳤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현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군사님, 사람들을 대피시키십시오….]
저 멀리서, [그녀]를 필두로 한 합체기 급 괴뢰 9기가 존자의 왼손을 포위하였다.
[진짜 괴물들의 싸움이 시작될 것입니다….]
사축기 괴뢰 204기가 합체기 괴뢰들의 아래에서 그들을 보좌하며 진을 짠다.
존자의 왼손이 눈알을 뒤룩거리며 전력을 재어 보는 것이 느껴졌다.
현운 역시 눈치가 없지는 않았는지, 황급히 인족들을 지휘해 피신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으로 도망가기는 힘든 상황이었기에, 인족군의 피난지는 자연히 한 곳으로 정해졌다.
8차 점령지 지하, 공령지가 있는 동굴.
쿠구구구구구!
빠르게 우리가 피신을 가는 사이, 존자의 왼손과 괴군의 군단이 부딪혔다.
혈광이 사방으로 뿜어지며 괴뢰들을 밀어냈다.
우리에게 걸어 놓은 의식 금제의 반동이 왔다고 해도.
썩어도 존자의 분체인지, 존자의 왼손은 합체기 괴뢰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무지막지한 힘으로 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나 지금에나 괴군의 전술은 늘 일관적이었다.
인해전술.
우우우웅!
200기가 넘는 사축기 괴뢰들이 일제히 진을 짜고 빛을 발하자, 진의 중심에 있는 존자의 왼손에 어마어마한 부담이 가해지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거기에 사축기 괴뢰들로 짠 진의 바깥에서 [그녀]와 8기의 합체기 괴뢰들이 합공을 하자, 존자의 왼손은 붉은 장막을 펼쳐 내고 수세에 몰리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쿠우웅!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그동안 존자의 공세를 막으며 누더기가 되어 버린 점령지 결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인족군은 피신을 가면서도 그 충격파에 짓눌려, 하나같이 피를 토해 내야 했다.
‘결계가 깨졌다….’
힐끗.
나는 결계의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쿠릉,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결계의 중심에서 뭔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인다.
‘전명훈… 놈의 봉인이 해제되었어.’
이제 저놈까지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대혼돈의 장.
‘이 혼란을 틈타, 하려던 일을 해 볼까.’
괴군을 불렀으니,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애당초 마족 합체기 태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에게 서신을 썼을 때부터 이번 일을 계획했다.
물론 미치광이 괴군이니만큼 상당한 변수를 생각해야 했고, 실제로 엄청난 변수들이 많이 생겼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오현석의 등에 업혀 피신을 가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괴군은 기묘성채의 위쪽에서 기묘성채를 통제하고 있었고, 기묘성채는 괴군의 지시에 의해 전장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묘성채의 안쪽에서 ‘서 장군’의 기척이 느껴졌다.
‘좋아.’
느껴지는 상태로 보아, 기묘성채에게 통제권을 뺏기고 괴군에 의해 추가로 더더욱 개조된 것이 느껴졌다.
애당초 서 장군을 괴군에게 보낼 때부터 이렇게 될 줄은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했기에 보낸 것이다.
‘괴군의 기묘성채 안에서 서 장군으로 천 년을 보냈다.’
기묘성채가 괴뢰들을 통솔하는 명령어는 물론이고, 기묘성채의 체계와 그 안쪽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서 장군의 회로 안쪽에, 기묘성채의 명령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명령어들을 몰래 입력해 놓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괴군은 그런 서 장군을 빼앗는답시고 아무 의심 없이 기묘성채에 박아 놓았으니, 내가 서 장군 안에 심어 놓은 독은 이미 기묘성채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본래 계획은 진마계 합체기 태수들과 괴군이 한판 붙는 상황에서, 내가 서 장군에게 입력한 명령어들을 사용하여 기묘성채의 명령 체계에 혼란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틈새를 이용하여 연이의 능력과 내 기묘성채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기묘성채 연의 연을 발동.
그렇게 괴군을 성불시켜 준 후, 기묘성채를 손에 넣은 후 김연과 함께 생존을 도모하려던 것이 본래의 계획.
하지만 진마계 합체기 태수들이 아닌 혈음계 쇄성기 존자의 왼손과 괴군이 일전을 붙게 되었고, 거기에 전명훈이라는 변수까지 끼어들었으며 연이는 존자의 왼손이 쓴 법술에 정신이 금제되어 있다.
처음에 상정한 계획과는 조금 동떨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괜찮다.
‘지금부터, 피신해 있는 연이에게 가서 그녀의 금제를 풀어 준다.’
본래부터 괴군의 기묘성채가 근처에 오면, 기묘성채의 광기를 이용해 연이의 금제를 부수려 했으나, 이제는 내 손으로 할 수 있다.
괜히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전명훈도 지금 미쳐 있는 상태이니 괴군을 상대로 조금은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거야.’
쿠릉, 쿠르르릉!
어느덧 전명훈은 몸을 다시 완전히 재생시킨 후, 번개를 흩뿌리며 괴군과 존자의 왼손 사이의 전투에 끼어든 상태였다.
괴군이 껄껄 웃으며 흥미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흐허허! 네 녀석은 또 무어냐? 오오, 그렇구나. 너도 슬픔을 겪었구나. 아아, 그래. 많은 사람을 잃는 그런 끔찍한 일을 겪은, 다 썩은 심상이야….”
괴군은 두 눈에서 눈물을 닦으며 미쳐 날뛰는 전명훈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려무나, 네가 더 이상 슬프지 않게, 우월한 이 세계에 받아들여 진화시켜 주겠다.”
[다… 죽어 버려라!]
“너를 기묘성채의 장군으로 받아들여 주마. 이름이 뭐냐?”
[이 더러운 세상 따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그래그래, 번개를 쓰니 적당히 전(電) 장군이 좋겠구나. 네 이름은 내일부터 전 장군이란다.”
[다 죽어, 다 죽어, 다 죽으란 말이야!]
“아아, 보고 있소, 당신? 오늘도 우리처럼 슬픈 사정을 지닌 이를 발견했소. 그리고 내일이면 이 젊은이를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둘은 서로 입을 열고 말을 하고는 있었으나, 놀랍게도 말을 하면서도 한 마디도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걱정 마시오.’
지금부터, 내 계획이 성공하면 모두가 안정을 찾을 것이다.
존자는 소멸할 것이고, 기묘성채는 연이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전명훈은, 다시금 봉인되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조금만 기다려라….’
나는 지하로 들어가며, 천공에서 벌어지는 벼락을 두른 뇌신과, 무수한 괴뢰들의 싸움을 뒤로하였다.
* * *
계획대로만 되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래, 내 계획은 완벽했고.
조금 상정한 상황들과 달라지기는 했으나 큰 틀은 변하지 않았으며, 결과도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진마계 합체기 태수들과 붙을 괴군이 존자의 왼손과 붙게 된 것은 조금 예상 외였지만 그래도 어쨌든 괴군의 시선을 끈다는 것 자체는 변한 것이 없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결과만이 전부가 아니다.
“….”
나는 눈앞의 광경에, 내가 내려는 결과가 중간에 비틀리며 생겨난 ‘과정’에 생긴.
이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며, 천천히 오현석의 등에서 내려왔다.
비틀, 비틀….
어지럽다.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아니, 나는 왜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거지?
혈음계 존자의 왼손이, 정신계 법술을 쓴다는 정보를 어떻게든 수집했다면, 어쩌면 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뿌드득….
8차 점령지 지하.
공령지가 있는 거대한 공동.
그곳에는 미리 전투원으로 쓰기 힘든 허약한 마족들의 부족을 피신시켜 놓았다.
그랬기에.
피신해 있기에 마냥 마음을 놓고 있었다.
존자의 왼손과 전투할 때에도 이들은 무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왜 이리도 멍청하단 말인가.
피바다!
사방이 피바다였다.
내가 지키려 했던 마족들은, 모조리 몸이 찢어져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몸이 찢어진 상태에서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으아, 아아아….”
전부 얼마 안 있으면 죽을 것 같은 상태에서도, 전부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도, 그들은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서로를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아…으…아….”
그랬다.
혈음계 존자의 왼손이 사용했던 정신계 법술.
그것은 단순히 최전선에서 싸우는 우리에게만 펼쳐진 것이 아니었다.
피신해 있던 마족들에게도 모조리 사용된 것이었고, 이 마족들은 모조리 존자가 쏟아부어 낸 악의에 영향을 받아 서로를 죽고 죽인 것이리라.
그렇게 죽고 죽인 상태에서도, 이들은 법술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살아남아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철퍽, 철퍽….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피바다를 헤치고 갔다.
그때, 저 멀리 맑은 의식 파동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직… 제정신인 이들이 있나?’
나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고,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견신, 그리고 수인과 홍연.
이 8차 점령지에 와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마족들이,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여자 마족인 수인의 눈은 뽑혀 있었고, 남자 마족인 홍연은 다리가 잘려 있었다.
그들의 위에서, 견신이 몸에 자라난 촉수가 전부 뽑힌 채 간신히 살아 있었다.
“이, 이게….”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달려갔다.
홍연과 견신이 나를 바라보았다.
견신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기괴고의… 비술을 통해, 최대한… 혈음계의… 법술을 막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그 존재가 쓴 법술의 영향에서, 이 둘 밖에 지킬 수 없었습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인과 홍연의 어깨를 잡았다.
“너희들….”
느껴진다.
견신이 있는 힘을 다해 둘의 정신을 지켜 주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주변 마족들은 전부 존자의 왼손이 쓴 법술에 당해 광란을 벌였고, 그 광란에 이들은 이렇게나 휘말린 것일 터였다.
그나마도 견신이 최대한 이들을 지킨 덕에 그나마 이만큼이나마 몸의 형체를 유지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단(丹)이….”
마족들에게도 요단, 혹은 마핵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존재했다.
인족 수사들의 금단 같은 이 마핵은, 마족들의 생명의 원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둘의 마핵은 방금의 광란에서 버티지 못했는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두 남녀의 목숨이, 줄줄 새는 것이 훤히 느껴진다.
“총독님… 오셨나요?”
수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이제 더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 여기 있다. 여기 있어.”
지난 18년간, 두 남녀를 보아 왔다.
두 마족이 커 가는 것을 보았기에, 둘에 대한 감정은 가족과도 같았다.
하지만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인가!?
내가 통탄하고 있을 때, 수인이 홍연의 손을 잡았다.
홍연이 입을 달싹거리며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의 상태는 수인보다도 더 심각해 보였다.
틀림없다.
이 둘은 존자의 왼손에게 잠식되지는 않았으나, 곧 죽는다.
내가 몸을 떨고 있을 때, 홍연이 입을 열었다.
“저희… 약혼을 맺어 주셨었죠?”
“…그래.”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되나요?”
“말해라.”
“오늘….”
수인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가 죽기 전에… 저희의 혼인을 허락해 주세요.”
“네, 총독님의 허락을 맡고 싶어요.”
나는 둘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총독님이, 저희를 축복해 주세요.”
“그러면…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둘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둘의 어깨를 움켜쥘 수밖에.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눈가에서 뭔가가 흐른다.
“…그래.”
백란축성문을 불러내며, 나는 둘을 축복해 주었다.
“앞으로, 너희는 서로 사랑할 것을 맹세하느냐.”
“…네, 앞으로 제가 연이의 발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수인의 눈이 되겠습니다.”
수인과 홍연, 두 마족은 내 앞에서 축복을 받고 인연을 맺었다.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하나가 되기로 맹세하였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진심으로 둘의 축복을 기도하며, 양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다음 생에도, 둘의 사랑이 이어지기를 부디 바라마.”
“예,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로….”
두 인연은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당신의 선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내가 지키고자 했던 두 마족은 웃으며 죽었다.
[이렇게… 가는가.]
“…잘 가시게.”
견신 역시, 촉수를 뒤척이며 점차 의식이 약해져갔다.
녀석도 이제 작별이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나 역시.”
나는, 세 마족.
아니, 세 친구의 마지막을 송별하였다.
촤라라라락!
사방으로 백란축성문이 퍼지며, 아직도 존자에게 사로잡힌 마족들의 정신을 해방시킨다.
그들은 모두 축복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다.
“…모두 평안해라.”
미안하다.
모두 내가 약하고, 어리석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지켜 주지 못했다.
대신….
“남아 있는 자들은.”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은.
“결코 죽지 않게 하겠다.”
위선이라 할지는 몰랐지만.
아직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은, 절대로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령지 한쪽.
존자의 왼손이 사용한 법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구석에서 금제 때문에 백치가 되어 있는 김연에게 다가갔다.
“연아, 이제 일어나자.”
모든 것을 끝낼 때가 되었다.
우우우웅!
나는 기수식을 잡으며, 다시 한번 방금 전, 의해은산의 식을 썼을 때를 상기하였다.
단악검법.
제25초.
“의해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