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62화 (162/185)

잃어버린 것 (1)

‘제길, 앞으로 상황이 급변할 거다.’

마족 합체기들이 나선다면,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는 것은 물론이다.

점령지를 전부 토해 내고, 최악의 경우에는 인족 영역이 마족에게 침범당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나는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총독부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계 역시 광한계와는 달랐으나, 천기는 이곳에도 존재했고, 앞으로의 상황에 천기가 크게 결정을 미칠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하늘을 확인할 때였다.

“음? 연 도우, 무슨 일인가?”

어느덧, 연진이 내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반백반흑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연 도우….”

나는 연진을 한 번 더 불러 보았다.

그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고 하늘을 보며 내 옆에서 천기를 읽어내렸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네놈, 누구냐.”

“…아?”

내가 살기를 쏘아 내자, 연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 미안하네. 천기가 급변해서 말이지. 갑자기 초대흉(超大凶)이 천기에 떡하니 떠오르면서, 필멸(必滅)이 고정되어 버렸거든. 이거 참, 금신천뢰문이 멸망했다 해서 좋아했는데, 좋아하기가 무섭게 바로 죽을 날이 확정되어 버렸어. 큭큭….”

“…누구냐고 물었다.”

금신천뢰문이 멸망했다는 건, 방금 인족 총연맹 전령이 총독인 내게 보고한 사건이었다.

그런 것을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결단기 수사인 연진이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놈, 연진이 아니다.’

누군가가, 연진의 몸을 뒤집어쓰고 나와 얘기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이함을 느꼈다.

연진을 아무리 노려보아도, 어째선지 그의 의념과 기질이 지금껏 내가 알던 그와 다른 점이 없었다.

“이거, 젊은 사람을 너무 놀려 댔나 보군. 미안하네, 본녀는 연위(淵瑋). 연진의 선조라네.”

우득, 우드득… 우드드득!

점차, 연진의 몸 이곳저곳이 비틀리며, 그의 체형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총독도 지금 얼굴이 급변해서 천기를 막 읽어 대는 걸 보니, 광한계 본토에서 뭔가 큰일이 보고돼서 천기를 읽어 보려는 것이겠지? 혹시 알려 줄 수 있겠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금신천뢰문이 망하고, 천뢰번(天雷幡)의 기운이 사라졌으며, 동시에 나와 연진의 운명에 횡액이 깃든 것인지.”

우드드득….

얼마 후, 연진은 완전히 체형과 골격이 변하고, 얼굴이 변화하여 완전한 여성의 몸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또한 본래 좌측은 백색, 우측은 흑색이었던 연진의 머리칼은, 좌측은 흑색, 우측은 백색으로 흑백의 방향이 전환되어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렇군요.”

나는 침을 삼키며, 이번에 점령한 8차 점령지의 절반 이상을 뒤덮는 장대한 의식 크기를 둘러보았다.

그 거대한 의식을 지닌 존재가, 숨김없이 자신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변의 행인들이, 총독부의 관리들이, 곳곳의 수도자들이 이 의식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느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찌릿, 찌릿….

“사축기 선배님께서, 도대체 왜 진혼(眞魂)을 조그마한 결단기 후배의 몸에 숨기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설명을 해 드리자면….”

사축기(四軸期) 수도자.

그것도 어중이떠중이 따위가 아니었다.

사축기 최고봉, 합체기의 영역에 도전할 자격이 있는 수도자의 혼백!

일전 만났던 송진처럼, 죽어 버린 혼백의 조각인 잔혼이 현세에 붙어 있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사축기 수도자가, 멀쩡한 자신의 혼백 전체를 결단기 수준인 자신의 후손의 몸 안에 욱여넣은 꼴!

나는 긴장을 돋우며 설명을 해 주었다.

“광한계 인족 영역 본토에, 진선이 힘을 드러내어 금신천뢰문과 뇌령도 전체를 증발시켜 버렸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합체기 태수분들도 치명상을 입으셨다 하더군요. 아마 제 예상입니다만, 그 진선이 금신천뢰문의 신물인 천뢰번을 가져간 것 같습니다.”

“아아, 그런 거군. 하긴, 내 세대까지만 해도 천뢰번에는 나쁜 전설이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전해져 왔는데. 정말로 횡액을 부르는 물건이었을 줄이야.”

연위라는 여인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를 경계하며 물어보았다.

“실례지만, 어떤 분이신지 여쭐 수 없겠습니까?”

“이름은 말해 주지 않았나?”

“어디서, 뭘 하던 분이신지, 그걸 여쭙는 겁니다.”

“아하하, 이거 결단기 주제에 총독을 단 놈 아니랄까 봐 썩 범상찮구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결단기의 몸으로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거지?”

싸아아아….

주변의 기운이 내려가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주위의 천지영기가 굳으며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내가 의식 파동을 보내자 내 그림자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밀려나오며 내가 숨을 쉬기 편하게 해 주었다.

쿠구구구구!

“음!?”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꼬마야, 그림자에 뭘 넣고 다니는 거지?”

“궁금하시다면, 우선 당신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해 주시면 말씀드리지요.”

“아하하, 나랑 정보 거래를 하자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와 진아의 죽음이 운명으로 고정되어 버려서 지금 별로 기분이 좋지 않군. 솔직히 그냥 돌아다니면서 지금껏 살면서 못했던 일 다 해 봐야 하나 그런 생각밖에 안 드는데….”

“연진 도우의 몸으로 도대체 뭘 하시겠다는 건지, 그의 상관이기 이전에 친구로서 물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연 선배님. 당신은 뭘 하던 분이시며, 어디에서 왔고, 왜 연진 수사의 몸에 숨어들어 있었으며, 목적은 뭔지를 알아야겠습니다.”

꾸우우웅!

내 그림자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지며 연위의 압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오며,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서 장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계에서 지내며, 서 장군을 다시 만드는 일도 꾸준히 해 왔다.

마계의 특별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서 장군을 보강한 결과.

나는 사축기 초기 수준의 진본 서 장군을 마침내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눈앞의 혼백이 사축기 끝자락에 도달했었던 존재라지만.

엄밀히 지금 저자의 수행은 결단기 중기 수준이었고, 의식만 사축기 최정상 수준.

물론, 명색이 사축기 최고봉에 도달했던 자이니만큼 온갖 기오막측한 신통을 알고 있겠지만, 사축기 서 장군이 있는 한 내가 그렇게 꿀릴 것은 없었다.

“흐음, 이거 재미없군. 남자는 자고로 와들와들 떠는 맛이 있어야 하건만. 진아는 그래서 귀여웠는데 말이지. 뭐, 일단, 본녀는 뇌운각(雷雲閣) 원로, 연위라고 하네.”

“뇌운각?”

“그래, 수계에서 비승한 후, 금신천뢰문을 배신하고 뇌운각에 금신천뢰문의 본명공법과 주요 신통을 싸그리 털어놓은 배신자이기도 하지. 그 덕에 금신천뢰문이 단체 비승을 한 후, 금신천뢰문의 천뢰번에 호되게 얻어맞고 죽기 직전까지 몰린 후, 진아의 육신에 숨어들어 가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놈이기도 하고.”

“….”

“적의 눈을 피하려면 적의 둥지 밑이 가장 안전할 거라 생각해서 진아를 금신천뢰문에 입문하게 했네. 그런데, 이번에 비승한 금벽호란 놈이 감이 좋은 놈 같아서 그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이번에 마계행 원정에 참여하기로 한 거였지.”

“…그래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 목적? 별거 없다네. 그냥 오래 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소박한 목적이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추하게 후손 몸에 들어가 빌붙지 않았는가. 아하하… 뭐,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그녀의 눈에 회한이 깃들었다.

“…천기를 읽던 중, 금신천뢰문이 멸문했다는 걸 알았네. 나와 인연이 많은 문파이니 문파의 흥망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네만… 그 후에 확인해 보니, 운명에 [죽음]이 고정되어 버렸어.”

“…죽음이 고정되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네, 나와 진아의 운명은, 앞으로 길어야 20년. 그 안에 [무조건] 죽을 걸세.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갑자기 운명이 극단적으로 단축되었어.”

“….”

그녀가 한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오래 살고 싶었는데, 하늘이 그걸 별로 허락하고 싶지 않았나 보군. 이렇게 죽어 버리게 되다니.”

“…연진 도우는 지금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안에서 대화를 듣고 있네.”

“잠시 연진 도우와 얘기하게 해 주십시오.”

“뭐, 그러지.”

우웅!

얼마 후, 잠시 의식이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거대한 의식이 사라지고 결단기 수준의 의식이 드러났다.

그리고, 연진이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악! 서, 선조님! 제, 제 아랫도리가 없어졌어요! 선조님! 제발 수련할 때 빼고는 제 몸 마음대로 좀 그만 바꾸세요!”

“….”

연위가 연진에게 의식을 통해서 뭐라 말을 하는 건지, 연진은 씩씩거리며 허공에다 대고 마구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 수련이고 뭐고, 저는 남자로 태어났잖아요! 매번 이렇게 선조님이 제 몸 뺏을 때마다 여성체로 바꾸는 거 좀 많이 짜증나거든요! 심지어 총독님한테 들켰어! 나 이제 어떻게 살라고요! 소문나면 책임질 거에요? 뭐? 어차피 살 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해 봤다고? 으아아!”

“…연 도우.”

“아! 죄송합니다 총독님. 저희 선조님께서, 후우. 여성분이셨던지라 후손인 제 몸을 차지할때마다 제 몸을 바꿔 대곤 하시거든요.”

“흐음….”

나는 그의 몸을 보며, 그의 몸 안쪽에서 흐르는 음양의 흐름을 관찰하였다.

“변화할 때 상당히 영력 흐름이 자연스럽더구려. 그건 특수한 공법이오?”

“아…! 그건… 아, 선조님이 이따가 설명해 주신다 하시네요. 차후에 선조님한테 들으시면 될 것 같아요.”

“…뭐, 알겠소. 일단….”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그에게 질문하였다.

“금신천뢰문의 현 상황은 대략 이럴 거요. 문파는 전멸했을 테고, 현재 생존자는 아마, 전명훈이라는 녀석 하나뿐. 그리고 아마 녀석도 현재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일 터… 연 수사는 수명이 현재 20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알고 있소. 앞으로 어찌할 작정이오?”

“전 사형이 살아 계시다고요?”

“그렇소.”

“하, 하면….”

잠시 고민하던 그는 표정을 굳혔다.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장에 있던 사형께 여쭤보겠어요!”

“…알겠소. 하면 보내드리지. 어차피 앞으로 마계 합체기 태수들이 힘을 쓰기 시작할 테니, 본인은 그에 따라 점령지를 점차 물려야 할 터. 나도 뒤따라갈 채비를 하겠소.”

어차피 마계에서 물러나고 나면 나 역시 전명훈에 대해 알아볼 참이었다.

“최대한 빨리 점령지를 정리하고, 총독직을 내려놓은 후 쫓아가겠소. 20년 안에는 최대한 해 볼 테니, 그 안에 살아 있으시기를 바라겠소.”

“하하, 아마 외압으로 죽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선조님이 계시니… 아, 그나저나 선조님이 자꾸 총독님과 얘기하고 싶다고 보채시는군요. 선조님과 대면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다시금 의식이 꿀렁였다.

“흠, 결단기 수준 총독에게, 금신천뢰문의 생존자 한 명까지도 다 보고가 올라오나? 요새 인족의 정보망 수준이 상당히 발달했는걸?”

“….”

“뭐, 말하시기 싫으면 하지 마시게. 나도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었으니. 그것보다도, 자네 사축기 괴뢰는 아니더라도, 천인기 괴뢰라도 없나? 보아하니 그 괴뢰, 혼(魂)이 들어가기에 상당히 용이한 구조인데.”

“선배님 육신으로 쓰시렵니까?”

“육신으로 쓰려는 건 아니고, 위급할 때 잠시 들어가서 본 실력을 발휘할 비장의 수단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예, 하나 드리도록 하지요.”

나는 선선히 품속에서 저물도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음? 이렇게 쉽게 준다고?”

그녀는 어쩐지 미심쩍은 눈으로 저물도를 꼼꼼히 관찰하였다.

“함정은 없습니다. 어차피 연진 도우와는 벗이니까요.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으니 대답만 조금 해 주시지요.”

“흠, 그래. 말해 보시게나.”

나는 살짝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제가 익힌 창령성광오채대법이라는 공법 구결에도, 연진 수사의 몸에 흐르는 그 음양의 흐름도, 무언가 음과 양의 흐름이 공존하는 듯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서 여쭈어도 됩니까?”

“흐음… 시시한 질문이군.”

우드득!

한순간, 그녀가 머리칼을 쓸자, 그녀의 몸이 우직거리는 듯하더니 다시금 남자 연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머리칼의 색 역시 좌우 반전되었다.

“일단, 이 성별이 반전되는 공법 자체는 뇌도공법의 기본에서 발전시켜 만든 정통 뇌도공법이네. 본디 ‘뇌전(雷電)은 음양(陰陽)이 기운을 주고받으며 일어난다.’ 모든 뇌도(雷道) 신통의 핵심이 되는 구결이지. 음양이 기운을 주고받음을 태극의 순환으로 해석하여, 신체의 음양을 반전시켜 체내에서 뇌력(雷力)을 키워 나가는 게 이 태극진뢰신(太極震雷身)의 공법이라네.”

“…혹시 금신천뢰문에서는 전부 그렇게… 성별을 바꾸는 공법을 익히는 겁니까?”

“음? 그건 딱히 아니라네. 이건 그냥 내 취향에 맞는 공법이라 익힌 게지. 아하하!”

사락!

연위가 한 바퀴를 빙글 돌았다.

그 한 바퀴 사이에, 연진의 몸은 몇 번이고 남녀의 성별을 오고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자네와 내 공법에 음양의 유사점이 있다고 했지? 그건 뭐, 본래 원영(元靈)의 경지에서는 음신(陰神)과 양신(陽神)을 단련하니, 원영기를 지나는 공법이면 너나할 것 없이 음양의 이치를 담고 있는 거겠지.”

“음, 그렇군요.”

“음양(陰陽)과 태극(太極)은 이 세상과 모든 수도공법의 근간 원리이니… 요수공법도 듣기로는 오히려 천족 공법보다 음양태극을 더 중요시한다지? 뭐, 궁금한 건 그게 다인가?”

“일단은 그 정도라고 해 두지요.”

“좋네, 그럼 우리는 근시일 내에 점령지를 떠나 광한계로 돌아가도록 하지.”

우웅!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연진의 의식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연진이 의식을 찾고서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선조님! 제 몸 좀 돌려놓고 가 주세요! 전 아직 조절하기 힘들단 말이에요! 아악, 정말….”

한숨을 쉰 연진은 나에게 얼마간 푸념을 늘어놓은 후.

작별 인사를 하고 숙소로 가 짐을 챙겨, 광한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배웅해 준 후 총독부로 되돌아왔다.

‘소동이 조금 있었지만, 천기는 확인했다.’

머지않았다.

약 7개월 뒤, 흉(凶)이 덮칠 것이다.

그 말인즉, 마족 합체기 태수들이 나선 이상 전선이 이곳까지 밀리기까지 7개월이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오늘부터 인족 총연맹과 연계해서 하루빨리 점령지의 인원들을 피난시켜야 해.’

피난이 완료되면 그제야 책임자들이 자리를 비킬 수 있을 터였다.

아마 총연맹 역시 그렇게 명령을 내릴 터였다.

그리고, 얼마 후 총연맹의 전령을 통해 전해진 내용 역시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가진 않았다.

한 가지만을 제외하고서.

“4차 점령지까지만 후퇴하라는 말인가?”

“예, 총연맹에서는 4차 점령지까지 후퇴하여 전선을 조금 축소시킨 후, 그곳에서 총력전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유가 있는가?”

“총연맹에서는 4차 점령진에 침계진(侵界陣)을 펼쳐, 이번에 점령한 점령지 중 최소 4차 점령지까지는 광한계의 영역으로 침식시키려 한다고 합니다.”

“으음….”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인족 총연맹에서는 침계진이라는 결계 진법으로, 진마계에서 점령한 점령지 중 4차 점령지까지를 광한계의 영역으로 ‘먹어 치워’ 버리려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4차 점령지까지의 영역에 진법으로 광한계의 차원 계면을 두르고, 진마계의 땅을 아예 광한계로 끌어들여 인족의 영역을 어떻게든 넓히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하면 궁금한 게 있는데, 8차 점령지에는 공령지가 있다. 공령지는 추후 비선대로 개발할 수도 있는 만큼, 차원이 다른 전략 자산인데 어째서 4차 점령지로 범위를 줄이는 거지?”

“아, 총독님. 이번에 발견한 공령지는 총 세 군데가 아닙니까?”

“맞지.”

그랬다.

이번 마계 침공으로 인해, 인족은 마계의 구역에서 총 세 군데의 공령지를 발견했고, 각 공령지의 총독들에 의해 공령지는 엄중히 보호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걸세. 공령지의 가치는 광한계에서도 수많은 종족들이 탐내는 것이고, 쉽게 얻지도 못하는 것이네. 이번 인족 대침공으로 인해 공령지가 3개나 발견되었을 때, 인족 총연맹이 뒤집어졌다고 들었네. 그리고… 모든 공령지는 전부 4차 점령지 밖에 있지.”

그랬다.

공령지는 말 그대로 광한계에서도 전 종족이 침을 흘리며 탐내는 것이었고, 이번 인마대전에서 공령지를 3개나 발견한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공령지는 각각 5차 점령지, 8차 점령지, 11차 점령지에 나뉘어 분포해 있었다.

“최소한 5차 점령지까지 후퇴한다고 했으면 이해를 했겠지만, 4차 점령지까지 전선을 물린다고…? 어째서지?”

그 말에, 총연맹의 전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을 주었다.

“인족 총연맹에서는, 인족이 진격하는 합체기 마족들을 막아서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여, 총연맹은 어차피 우리가 사용하지 못하는 공령지를 함정으로 삼고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뭐?”

“얼마 후, 총연맹에서 진법사를 보내 공령지에 계멸천공진(界滅天空陣)을 설치하여, 합체기 마족들이 올 때 공령지와 함께 폭파시킬 요령입니다. 마계의 마맥이 쑥대밭이 되고, 공령지는 사용 불가할 정도로 망가질 것이며, 합체기 태수들 역시 공간 폭풍에 휘말려 상당한 부상을 입을 것입니다.”

총연맹의 전령은 활짝 웃으며 해맑은 표정으로 총연맹의 의지를 전하였다.

“어차피 우리가 사용하지 못할 자원을, 적이 사용하게 해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 총연맹의 참모분들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군.”

“예, 말씀하십시오.”

“그 계멸천공진으로 공령지를 폭파시키면… 우리가 점령한 점령지 전체가 쑥대밭이 되겠지…?”

“그뿐이겠습니까? 공령지 너머의 공간 폭풍이 뿜어져 나올 테니, 근방 모든 지역이 공간 폭풍에 휩쓸려, 모조리 쓸려 나갈 겁니다. 합체기 태수들이 안정시키지 않고 자연 상태로 놔둔다면, 장장 1,000년간은 이 근처는 생명이 못 사는 불모지가 될 터! 장기적으로도 마계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만약 마계 합체기 태수가 안정시키는 것을 택한다면 합체기 태수의 진격을 늦출 수 있으니 굉장히 효율적인 전략이지요!”

“…그…렇군. 좋은 정보 정말 고맙네. 하면 일단… 오늘부터 피난을 시켜야겠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관리관이 냉정한 얼굴로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하면, 점령지 내 마계 부족들은… 전부 지금껏 미뤄 왔던 단약화를 진행하겠습니다.”

“…뭐?”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볼 일이 없을 테니,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마족들을 부피가 적은 단약으로 바꿔서 챙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애완 마수로 데리고 가도 쓸모가 있겠지만, 피난을 가는 와중에 너무 부피가 큰 물건들을 챙기면 곤란할 테니까요.”

“아니, 잠깐. 내 생각에는… 이곳에 남은 마족들은 그냥 멀리 쫓아 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그리고, 내 말에 총연맹의 전령과 관리관이 나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전령이 내게 물었다.

“총독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총연맹에서도 이번 피난 작전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마계 자원을 가져오며 피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지령을 내렸습니다만… 총독님께서 도대체 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건지 알 수 있을지요?”

“그게….”

나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내게 총연맹의 전령이 다가왔다.

“총독님, 총독님의 모든 행동은 주기적으로 총연맹에 보고되고 있습니다. 점령지에서 가장 온화한 정책을 펼치신 것도 총독님으로 기록되어 보고가 올라가고 있고요. 하여, 총연맹에서는 이런 걱정도 나돌고 있습니다.”

총연맹의 전령과 내 눈이 마주쳤다.

“혹여나 총독님이, 진마계 마족들에게 홀려… 마계의 첩자가 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말입니다. 총독님, 저는 총독님을 믿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 인족을 배신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관리관 역시 내게 다가와서 서류를 들이밀었다.

“총독님, 빨리 결단을 해 주십시오. 단약화 작업을 허가해 주십시오.”

“총독님, 옳은 결단을.”

“지금부터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총독님, 어서….”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재촉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폭포처럼 덮쳐 오는 갈등과 고민 속에서, 나는 겨우겨우 억지로 입장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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