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61화 (161/185)

격변(激變) (5)

1차 마계 침식은 성황리에 이뤄졌고, 나는 촉수 덩어리를 상부에 넘기고 공을 인정받았다.

마족 지휘관을 사로잡은 것은 상당한 공에 속했고, 또한 내가 원영기 마족을 이겼다는 부하들의 증언에 따라.

나는 백인대를 이끌 수 있는 백인장의 패를 받게 되었다.

우웅!

“우리 천인대에 마계 참전 이전에 멋대로 경지 상승을 하다가 심마에 빠져 목이 잘린 녀석이 있다 하던데…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경지 상승을 했던 거였군. 이제부터 잘 부탁하네, 백인장.”

내가 속한 천인대의 천인기 수사인 위률이라는 이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백인장들에게 모두 필수적으로 지급되는 영패와 법보, 그리고 광한옥을 바라보았다.

‘광한옥….’

앞으로는 나 역시 마계 침식 작전의 선봉에 서서, 광한옥으로 마계의 땅을 침식해야 하는 것일 터였다.

나는 상층부에 감사를 표한 후, 내게 배속된 자리로 갔다.

이미 사방에는 천지영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숨을 쉬는 데에도 부족함은 없었고, 축기기 이하의 수사들이 법술을 쓰는 데에도 아무 불편함도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

“어이, 제대로 법술을 써라!”

“벽을 올려!”

“지붕을 쌓아라!”

축기기 수사들만 있어도, 이역만리 마계의 땅에 광한계에 있던 것처럼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벌써부터 이 근방에는 흙과 나무로 지어진 수많은 집과, 대궐 같은 저택, 장원들이 한가득했다.

축기기 수사들이 작정하고 토목 공사에 달려드니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인 것이었다.

“아, 백인장님, 오셨군요!”

이전, 잠시나마 내 상관이었던 연진과, 그의 십인대원들이 한 장원에서 나와 나를 맞아 주었다.

“역시 서 수사… 아니, 백인장님. 저보다 실력이 좋으시길래, 언젠가 출세할 줄은 아셨지만 벌써 이렇게 출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장원은 백인장님께 배정된 장원입니다.”

“아, 고맙소, 연 수사. 그리고, 일단 다들 들어오시게.”

나는 십인대원들을 장원 안으로 데리고 갔다.

“자네들은 내 백인대에 배속되었고, 앞으로도 후발대가 오면 내 백인대에 인원이 충원될 텐데, 그때까지 잘 지내보도록 하지.”

“옛, 백인장님!”

“영광입니다!”

나는 연진과 십인대를 데리고 장원 안에서 잠시 약주를 나누었다.

얼마간 웃고 떠들던 우리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그들을 돌려보낸 후, 정적에 빠진 장원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

대지는 영기에 의해 밝아졌지만, 마계의 하늘은 아직도 마기 때문에 충충했다.

“…뭔가 이상하군.”

나는 뭔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

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금 침략군으로서의 시간은 흘러갔다.

* * *

마계 침공군의 직급은, 초창기에는 순수한 경지로 이뤄진 계급이었다.

하나, 침공이 이어지며 점차 직급은 전공에 따라 나누어졌다.

결단기인 나 역시, 동급 경지의 수사나, 혹은 원영기 수사들보다도 아득히 많은 전공을 세우며 어느덧 천인장의 영패를 수여 받았다.

듣자 하니, 천인장부터는 이후 진마계 식민지를 관리할 수 있는 총독의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했다.

‘총독이라….’

어느덧 1차 마계 침식 작전 이후.

마계 침식은 꾸준히 이뤄져, 어느덧 아홉 번째 침식 작전을 끝내게 되었다.

우우우웅!

마계에 영기가 차올랐다.

그리고, 아직 도망치지 못한 마족의 패잔병들과 그런 패잔병들을 말 그대로 ‘사냥’하는 인족 수사들이 보였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느덧 내 옆으로 오현석과 김연이 다가와 혀를 찼다.

그들 역시 수많은 전공을 세워 천인장의 패를 달았다.

그리고, 내 곁에 다가온 오현석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스승님 명으로 오긴 한 거다만…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계라길래, 무슨 악마들만 사는 곳인 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법보를 들고 마족들을 쫓아가 뼈와 살을 분리하고, 피를 빼 담고, 혼백마저 흡수해 보관하는 인족들이었다.

“…누가 마족이고 누가 인족인지 모르겠구나.”

“그러게요. 단순한 요마들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결단기 이상부터는 요마족들도 전부 지성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뭔가 가슴이 울렁이는 느낌이었다.

심정적으로는 뭔가 그들에게 공감이 갔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마족들을 사냥하는 인족 수사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왜지.’

최근 들어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성과 감성이 뭔가, 너무 괴리되었다.

‘이상하다….’

도대체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걸까.

나는 멍하니, 뭔가를 잊어버렸는지 떠올리지 못하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오현석과 김연과 함께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 * *

“점령지 임시 총독 말입니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그래, 서은현 자네가 여기 이번에 점령한 마련산맥에서 흑주강까지 이어지는 점령지를 관리할 임시 총독으로 임명되었네.”

나는 현운에게 되물었다.

“저는 공을 많이 세웠다곤 하나, 아직까지 결단기 수사입니다만… 다른 천인기 분들에게 맡기시는 게 낫지 않은지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자네에게 임시 총독을 맡기려 하는 걸세. 다른 천인기 수사들은 다다음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점령지를 관리할 천인기 수사가 한둘 빠지게 되면 곤란하단 말이지.”

“그렇군요.”

“거기에, 최근 보고서로 올라왔네만. 자네가 간혹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인다는 보고가 와서 말이네. 오랫동안 전쟁터에 불려 나온 병사들은 간혹 정신에 이상이 오기도 하지. 이번 기회에 임시 총독으로 근무하며 푹 쉬고, 원영을 얻어 마음의 근간을 단단하게 하는 게 좋지 않나. 지난번 출정 이전에도 마음대로 원영기 경지 상승을 하려 하던 자네인 만큼, 이만치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나?”

나는 현운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현운, 이 자가 가진 의념의 색상….’

뭔가, 그의 의념의 색상에서 최근 들어 점차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아무래도 본인 역시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여러 수도자들이 전쟁 중 겪는 정신병 중 하나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일단 넘기기로 했다.

‘내 알 바도 아니고 말이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임시 총독 자리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좋군, 그럼 오늘부터 자네는 8차 침식 구역의 임시 총독이네.”

나는 현운에게서 영패를 수여 받고 그가 머무는 장원에서 걸어 나왔다.

후발대가 선발대에 합류하며, 더더욱 많은 인족 수사들이 최전방으로 나왔고.

마족들을 패퇴시킨 이후의 점령지는 수많은 인족 수사들에 의해 순식간에 번화가로 변화하였다.

수많은 축기기 수사들이 모여, 순식간에 도시와 성을 지어내고는 했으니 말이었다.

나는 번화가를 거쳐, 내게 할당된 장원으로 갔다.

장원 안쪽에서는 내 휘하 천인대 백인장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 천인장님 오셨다!”

“천인장님, 이번에는 뭐 받으신 거 없으십니까?”

백인장들은 대다수가 원영기였으나, 그들 중 아무도 나를 무시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상 그들과 일대일로 싸워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최근 서 장군도 어느 정도 복원하며, 천인기 급은 되는 서 장군을 부렸기 때문에 딱히 내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인장들 중에서는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공을 더 세운 연진 역시 있었다.

그는 원영기 수사들 사이에서 술을 얻어먹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헤롱거리고 있었다.

“모두 들어라, 나는 다음번 10차 침식 작전에서는 빠진다.”

“예…?”

“아니, 어째서입니까?”

나는 임시 총독직을 부여받았음을 알렸다.

“아니! 천인장님만큼 유능하신 분이 어디 계시다고! 이게 맞습니까!”

“참모장 현운, 그 새끼 사실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 자식 머리통 박살 내 버리고 천인장님을 다시 뫼시겠습니다!”

“아이고~ 다른 천인장님들 중에 서 천인장님만큼 유능하신 분이 얼마나 계시겠습니까!”

“다들… 고맙네.”

그동안, 솔직히 내가 이끌어온 천인대는 쭉 승승장구를 했던 게 사실이긴 했다.

물론 매번 큰 전공을 세웠다는 게 아닌, 자잘한 전공들을 상당히 많이 챙기면서도 대다수의 병력이 무사 생환했다는 점이 휘하 천인대에서 호평받는 부분이었다.

큰 전공을 탐하기보다는 작은 전공들을 챙기면서 부하들의 안전에 신경을 쓴 내 성향 덕택이었다.

“아, 천인장님. 이제 최전선에는 더 안 서신단 겁니까?”

연진이 술에 취한 채로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그렇게 되었네.”

“아… 그럼 저도 천인장님 따라 8차 점령지 따라가겠습니다아… 천인장님을 향한 제 충심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으하하! 연진 이놈, 천인장님을 향한 충심이 아니라, 천인장님이 빠지면 생환율 낮은 다른 천인대에 배속되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거지?”

“웃기는 녀석일세! 야, 이놈들아! 연진 놈 잔에 더 퍼부어서 이 겁쟁이 놈 혼 좀 내 주자고!”

나는 원영기 수사들에게 둘러싸여 뻘뻘거리며 술을 잔뜩 받는 연진을 보며 피식 웃은 후.

장원 내 내 저택으로 들어왔다.

저택 안쪽에서는 커다란 촉수 다발이 굴러다니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가 최초로 포로로 잡았던 마족 지휘관, 견신(見新)이라는 마족이었다.

포로 심문이 다 끝난 이후, 바로 단약사에게 보내지려던 것을 내 요청으로 인해, 내 애완 요수의 신분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견 수사, 지낼 만하신가 보오?”

[아, 서 대인. 오셨습니까. 보시다시피 대인의 은혜 덕에 잘 지내고 있습지요.]

“대인이랄 것 없으시오. 그나저나, 이제 슬슬 견 수사를 풀어 드릴 날이 왔소이다.”

내 말에, 촉수 다발들이 움찔거리며 나를 향했다.

“이번에 8차 점령지의 임시 총독으로 가게 되었소이다. 한동안 그곳에서 쉬고 있으라더군. 그래서, 8차 점령지 인근에 도착하면 풀어 드리겠소.”

[…감사드립니다, 서 대인. 대인께서는, 제가 본 인족 중에서 가장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

처음 견신을 넘길 때, 나는 견신의 포로 대우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족의 ‘포로 대우’란, 머리에 침을 박아서 강제로 애완 요수로 만들거나, 혹은 내단을 뽑아서 단약으로 만드는 것이 ‘포로 대우’라고 했다.

때문에 견신이 단약방으로 들어가기 전, 겨우겨우 그를 구해 내서 내 애완 요수로 삼겠답시고 데려올 수 있었다.

물론 애완 요수를 부리려면 특수한 공법을 익히거나, 혹은 머리에 침을 박아야 했지만.

나는 견신을 데려온 후 견신의 머리에 박힌 침을 빼내 주어 금제를 없애 준 후.

제대로 된 포로 대우를 약속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 후, 차후에 풀어 주겠노라 약속한 적이 있었다.

“이보시오, 견 수사.”

[예, 말씀하시지요.]

“…내 마족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견 수사가 볼 때에… 마족은 인족에 비해 선한 종족인 것 같소?”

[선한 종족이라… 말씀하시는 ‘선’의 기준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흠?”

견신은 촉수를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타 종족을 마구잡이로 잡아 단약으로 먹는 것을 악이라 한다면 마족은 대체적으로 선합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유촉족 같은 경우, 타 생물의 정신을 제압하여 조종하고, 그 체내에 기생하여 양분과 영기를 빨아먹다가, 숙주가 늙으면 숙주의 생명을 전부 빼앗고 다른 숙주로 옮겨 다니는 종족이지요. 그 밖에도, 타 종족의 몸에 알을 낳는 마족, 타 종족을 착취하는 마족, 타 종족과 걸핏하면 전쟁을 벌이는 종족 등… 저희 마족 역시 어떤 면에서는 선하지 않습니다.]

“….”

[제가 속한 유촉족은 정신을 제압하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상대의 의식을 읽는 능력도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그래서,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대인의 정신을 읽어 보았을 때… 대인께서는 지금 자신이 하시는 일의 선악에 대해 고민하시는 듯하군요.]

“…맞소.”

견신은 촉수를 꿈틀거리며 말하였다.

[아마 대인이 아니라 다른 인족이 물어보았다면 저는 인족이야말로 가장 더럽고 악하다고 답했겠습니다. 수많은 종족이 있기는 하고, 마계의 종족들이 여간 엽기적인 종족이 많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솔직히 포로 대우를 원한다고 했을 때 다짜고짜 단약 방으로 데려가는 종족은 인족이 거의 유일한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대인이기에 인족에 대한 악감정이 아닌 어느 정도의 객관을 담아 말씀드린다면….]

견신이 촉수 하나를 들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약육강식. 그게 이 세상의 진리이자,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모든 생명들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숙명입니다. 저희 마족 역시 이번에 침공을 받은 일이 억울하고, 인족이 굉장히 밉지만… 솔직히 말해서 마족의 힘이 강성해졌다면 저희 역시 언제라도 인족을 침략해, 앞서 말했듯이 저처럼 인족의 몸을 숙주로 기생할 수도, 인족의 몸에 알을 낳을 수도, 인족을 착취할 수도 있었겠지요. 다만 지금은 인족이 저희보다 강성하니 마계를 침략해 마족을 한 줌 단약으로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군, 답변 고맙소.”

나는 견신을 뒤로한 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선악의 문제가 아닌 강약의 문제라….’

하지만, 뭔가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견신의 말은 명쾌하고 받아들이기 쉬웠으며, 내 안에서 피어나는 죄책감을 쓸어 버리기 좋았지만.

나는 뭔가 그것 말고도 다른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 가슴 속에서 내가 잊었던 뭔가가 더 있다.

분명히….

사흘 후.

나는 나를 따라가겠다는 이들과 함께 8차 점령지로 향하였다.

* * *

8차 점령지, 임시 총독 관저.

나는 총독 관저에서 나를 보좌하게 된 8차 점령지의 관리관에게서 점령지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해서, 현재 일곱 개의 마족 부족이 저희 점령지 내에 있습니다.”

“타 점령지보다 부족 수가 많지 않군.”

“예, 저희 점령지는 마련산맥에서 나는 마련금이란 금속이 많이 나기에 부족들을 착취해서 얻을 수 있는 자원보다는, 광맥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더 많기에 별 상관은 없습니다. 물론 임시 총독께서 원하신다면, 남아 있는 부족들로도 좋은 단약을….”

“됐네.”

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단약은 필요 없으니, 자원과 점령지 관리 얘기로 넘어가지. 내가 알기로 이곳 8차 점령지의 진짜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닐 텐데.”

“…예. 이곳 8차 점령지에는, 임시 총독께서도 아시겠지만 공령지(空靈池)가 있습니다.”

공령지(空靈池).

차원 계면의 장막이 약한 곳을 일컬었으며.

그 약한 차원의 장막은 마치 연못의 물처럼 투명하게 공간을 비춘다고 하여, 공령지라고 불렸다.

공령지의 근처에서는 저물도와 저물법기, 혹은 공간 법기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공령석이라고 하는 광석이 자주 돋아났기에 주요 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공령지의 진짜 가치는 그런 게 아니다.

“앞으로 점령지가 완전히 식민지화되면, 공령지를 정돈하여 인족이 많이 포진한 하계를 찾아 잘 알아보겠습니다.”

공령지는, 다른 말로 ‘끈 없는 비선대’라고도 불렸다.

공령지의 차원 장막을 정돈하고, 특정 하계와 연결하면 공령지는 그대로 비승하는 이들을 맞이할 수 있는 비선대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불안정한 공령지라, 최소 1, 2천 년은 있어야 하겠지만 다시 말해 그 정도 시간만 기다리면 공령지를 비선대로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니, 임시 총독께서 가장 신경 쓰셔야 할 것은 앞으로 이 공령지가 될 것입니다.”

“알겠네. 우선 이 공령지로 가 보도록 하지.”

“예.”

나는 관리관과 함께 공령지라는 곳으로 갔다.

“이곳이….”

공령지는 총독 관저의 지하.

그 아래쪽에 있는 암반 동굴을 통해 한참을 이동하면, 지하 동굴 안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우우우웅!

나는 관리관과 함께 공령지에 도착하고는, 공령지의 장엄함에 잠시 입을 벌렸다.

고대한 지하 공동.

그곳에는 공령석들이 녹빛을 내며 곳곳에서 번쩍이고 있었고, 공령석들의 아래로, 거대한 지하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아니, 호수가 아니었다.

나는 관리관에게 공령지 한쪽을 가리키고는, 반대 손으로는 한쪽을 향해 작게 손짓을 하였다.

“이게 마계의 바깥 차원과 통하는… 공령지로군.”

“맞습니다. 일반적인 호수와 달리 호수에 아무런 미동도 없잖습니까.”

나는 거울처럼 보이는 호수의 표면을 보며 그 풍광에 감탄하였다.

“아름다군….”

“아름답다고 해서, 호수의 표면에 손을 대시면 절대 아니 되십니다. 공간 폭풍을 거스를 수 있는 사축기 수사가 아니라면, 호수에 닿는 순간 호수 바깥에서 불어닥치는 공간 폭풍에 의해 갈가리 찢기거나… 천운이 닿아 살더라도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차원에 떨어지거나 할 테니까요.”

“조심하도록 하지.”

“예, 그리고 총독님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은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진법도 쳐 놓았습니다. 공령지가 이곳 점령지 말고 다른 점령지에서도 조금 많이 발견되긴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와서 망치지 못하게 주의하셔야 하니, 총독께서도 혹여나 누군가 공령지에 접근한다면 가차 없이 처벌하심이 옳습니다.”

“알겠네.”

그 후, 관리관은 나에게 공령지에 관해서 몇 개의 주의를 더 준 후 나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공령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관람하다 나갈 테니, 위에서 기다리고 있게나.”

“…예, 뭐 총독께서 그러신다면야….”

부웅!

결단기 수준인 관리관은 할 일이 많다는 듯, 비둔술을 사용해 빠르게 지상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얼마간 관리관이 간 곳을 바라보다가 공령지의 한 곳을 쳐다보았다.

“나오너라.”

우웅!

내가 공령지에 들어서자마자 관리관의 눈을 피해 펼쳤던 월수궁무록.

내 월수궁무록은 어느새 원래의 구결을 초월해서, 이제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내 월수궁무록의 범위 안쪽에서, 쫄랑거리며 자그마한 생물들이 기어 나왔다.

“어린 마족들이군.”

머리에 양 뿔이 돋아난 작은 꼬마와, 박쥐 날개를 가진 꼬마.

두 마족은 그런 이형의 신체를 제외하면 크게 인족과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너희는 이곳에서 뭘 하는 거냐.]

나는 마족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영언을 울리며 말했다.

내 말에, 마족 아이들은 꼼지락거리는 듯하더니 말했다.

“여기는, 저희가 탐험하다가 찾아낸 비밀 장소인데요.”

“네, 저희가 자주 놀던 곳이에요.”

[…앞으로는 이곳에 오면 안 된다. 여기는 인족들이 점령한 곳이라는 소리를 못 들었느냐.]

“하지만, 우리가 먼저 발견했는데에….”

“했는데에….”

박쥐 날개의 꼬마가 뿔 머리 꼬마의 말을 따라 하며 울상을 지었다.

[…일단,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냐. 너희는 인근 종족의 아이들이냐?]

“네, 저는 각주족에서 왔고, 얘는 기익족에서 왔어요,”

“네, 우리 두 종족은 영역이 붙어 있어서 자주 놀아요. 그리고 얘랑 놀다가 땅굴을 발견해서 탐험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후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가려무나. 여기서 놀면 사악한 인족이 너희를 잡아먹을 수도 있어.]

“네? 아저씨도 인족 아닌가요?”

“아저씨 사악한가요?”

[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니 어서 썩 나가려무나.]

“네? 저희가 왜요?”

“여기는 저희가 발견했다니까요?”

나는 이 꼬마 마족들을 어찌 쫓아낼까 고민했다.

‘어린 애들한테 너무 겁주기는 또 그렇고….’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녀석들을 잠시 숨겨 놓은 후, 총독 관저로 가서 얼른 견신을 데리고 다시 공령지로 돌아왔다.

“이보시오, 견 수사. 이 애들한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 좀 해 주시오.”

[…? 아니, 이 꼬맹이들! 도대체 여긴 왜 들어온 거야!]

견신은 두 마족 꼬마를 발견하자 촉수로 찰싹찰싹 때리며, 마계의 여러 교훈적인 일화를 들려주고는 빠르게 내쫓았다.

[휴우, 당황스럽군요. 일단 아이들을 무사히 돌려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큰 마족들이야 적대할 수 있으니 곱게는 안 돌려보냈겠지만, 어린 것들은 죄가 없으니 적대할 이유도 없겠지.”

[맞습니다. 마계에서도 무수한 종족이 엽기적인 짓을 벌이지만, 각 종족의 새끼들만큼은 불문율로 서로 건드리지 않지요. …인족은 새끼고 뭐고 다 잡아가지만, 그래도 서 대인 같은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나는 견신에게 윤리에 대한 칭찬을 들을 때마다, 가슴 속에서 뭔가 명동하는 기분을 느꼈다.

‘…안 되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일단 다시금 견신과 함께 총독 관저로 돌아왔다.

그런 후, 관리관에게 점령지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전해 듣고, 점령지에서 마족들로 단약을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포고하게 했다.

이유는 마련산맥의 자원 채굴을 위해 마족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나는 관리관에게 최대한 온건하게 점령지 정책을 펴라고 전하고서 다시금 조용한 공령지로 내려왔다.

견신도 적당한 날을 봐서 풀어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최근 점점 더 울렁이기 시작하는 가슴 속의 심마를 극복하기 위해, 빠르게 기억을 되찾고자 했다.

‘기억을 찾자….’

우우웅!

조용한 공령지에서, 몇 번이고 광한옥으로 정화한 주변의 영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계속해서 원영기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새로 만든 공법으로, 법보에 기령을 만들어, 원영기에 오를 때마다 응집시킨 영기를 흩어 끊임없이 보관하였다.

그렇게, 나는 공령지에서 수 년을 보냈다.

공령지 안쪽은 내가 오지 말라고 엄포를 놨음에도 계속해서 두 명의 마족 꼬마들이 놀러 왔다.

꼬마들은 몇 번이고 내가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계속 공령지를 찾아왔고, 나는 어느 순간 포기하고 공령지에 녀석들이 들어가지만 않게 봐 주었다.

꼬마 아이들의 이름도 차후에 알게 되었는데, 각각 수인(壽因)과 홍연(紅緣)이라고 하였다.

간혹 총독 관저에 큰일이 생길 때에는 관저로 올라가서 일을 보기도 했고, 고향이 보고 싶다고 엉엉 우는 연진을 달래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마계에서 수 년을 보내었다.

* * *

“…그래서, 뭐라고?”

나는 가부좌를 틀고 원영기를 오르다가 남은 잔재 기운을 기령들에게 불어넣으며, 눈앞의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저희, 약혼하기로 했거든요.”

“네!”

“….”

나는 눈 앞의 수인과 홍연을 쳐다보았다.

머리에 뿔이 달린 각주족의 수인과, 박쥐 날개를 단 기익족의 홍연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임시 총독에 오르고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마족 꼬마 아이들도 상당히 성숙했고, 이전에 남녀가 구분되지 않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뭐, 대충 알고 있긴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거야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머리 아픈 부분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런데, 나더러 너희 약혼의 증인이 되어 달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그랬다.

이 녀석들은 날더러 증인을 봐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인족이다. 너희 약혼 증인은… 저기 견 수사가 해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래, 이 녀석들. 그런 건 이 박식한 내가 봐 주는 게 훨씬 나을 게다!]

견신은 내가 풀어 준다고 했으나.

종족 특성상 혼자서는 아무 곳도 가지 못해, 마물을 제압해 기생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마련산맥은 마물들이 거의 분포하지 않았고, 견신은 자신을 탈출시켜 줄 마물을 구할 수가 없어, 그냥 동족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며 구조되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리고 18년째.

견신은 동족들로부터 구조 신호의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녀석은 아예 포기했는지 그냥 내 옆에서 간혹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놀 뿐이었다.

“그치만… 인족이라고 해도, 총독님처럼 좋은 인족은 없는걸요?”

“다른 마계 점령지에 비해서도, 굉장히 저희 점령지는 살기 좋은 편이라 하고, 또 총독님이랑 같이 있어 봐서 그런지, 총독님이 정말 편한걸요?”

“…그나저나, 너희들 각각 부족에 허락은 받은 거냐?”

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고는 말했다.

“네!”

“물론이죠!”

“…거짓말하지 말려무나.”

“어떻게… 에잇, 그보다 상관없잖아요?”

“결혼 증인도 아니고, 약혼 증인만 해 주세요!”

결국, 나는 녀석들의 투정에 못 이겨 증인을 서 주기로 했다.

두 마족은 공령지 안쪽, 공령석들이 가장 밝게 빛나는 장소에 서서 서로의 미래를 약속했다.

‘내가 왜 이런 걸 봐 주는 건지….’

나는 두 젊은 연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한 것 같았다.

아직 암흑 속으로 침잠하지 않은 기억.

먼 옛날, 내 첫사랑과 모과꽃과 백목련을 심었던 그 시절의 기억과, 꼭두각시의 성채에서 입을 맞췄던 사랑의 기억이 떠올라 나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뭉클….

‘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봐 온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을 보며 그동안 가슴 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심마가.

무언가 풀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뭔가, 알 것 같다….’

나는 두 마족을 축복해 주고, 총독 관저로 올라갔다.

깨달음을 정리하기 전, 우선 총독부에서 밀린 일들을 전부 해치워 놓고, 긴 시간 동안 폐관에 들기 위함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무언가, 몇 발자국만 더 디디면, 심마를 풀어내고 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나는 총독부에서 관리관과 함께 오랜만에 작업들을 처리할 때였다.

“초, 초, 총독님!!!”

“음? 무슨 일인가?”

총독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나와 관리관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바라보았다.

인족 총연맹에서 각 점령지에 파견한 총연맹의 전령이었다.

나는 총연맹 전령의 감정 상태를 보고, 무언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말해 보게. 무슨 일이지?”

“과, 광한계 본토로부터의 전령입니다. 그, 그, 그러니까….”

그는 덜덜 떨며, 품에서 옥간을 꺼내 천천히 옥간을 읽기 시작했다.

“지, 지, 진선(眞仙)이, 인족의 한 구역에 나타나 힘을 썼고, 인족의 천공도 중 뇌령도라는 천공도가 그대로 천뢰(天雷)에 불타 증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를 살피러 간, 광한계 여러 종족에서 오신 합체기 태수분들과, 인족의 합체기 태수분들 역시 죽거나 치명상을 입으셨다 하십니다.”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뇌령도는, 금신천뢰문이 자리를 잡은 천공도의 이름이었다.

‘이 시기였던가….’

그리고 전령의 말이 이어졌다.

“무, 문제는 인족의 합체기 태수분들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마계의 첩자들에 의해 마계의 심처(深處)에 닿았다는 첩보가 왔습니다.”

“…그 말은, 마계 합체기 마족들도 그걸 들었다는 거로군.”

지금까지, 커다란 전쟁은 대부분 아무리 경지가 높아도 사축기 수사들이 최대 전력이었다.

그야, 합체기 수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어느 쪽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테니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인마대전 역시 사축기 수사들이 참전을 했어도, 인족의 합체기 수사들은 물론이고 마계의 심처에 있는 합체기 수사들 역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참전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진선에 의해 광한계의 합체기 수사들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진마계 합체기 수사들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인즉.

‘인마대전에서, 진마계 합체기 태수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뜻!’

상황이, 격변(激變)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빌드업용의 이야기가 조금 길었습니다. 너무 끌리지 않게, 빌드업용 이야기는 한 편에 눌러 담았으니 이것으로 용서해 주시고, 그동안 장마 때문에 제 컨디션이 망가졌던지라 글의 긴장감도 조금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마 기간이 끝나 가니, 앞으로는 조금 더 퀄리티에 신경을 쓰도록 해 보겠습니다아….

모든 독자님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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