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58화 (158/185)

격변(激變) (2)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서 대리님, 저거 보이시나요? 세상에, 불덩이가 허공을 떠 다녀요!”

나는 뱃마루에 앉은 채로, 내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김연을 바라보았다.

창호자의 명을 받은 후.

나는 김연과 함께, 창한도에서 출발하여, 마계의 입구까지 향한다는 비선(飛船)을 타고 날아가는 중이었다.

‘마계라….’

들어는 보았다.

듣자 하니, 4만 년 전 벌어진 광한계와 진마계의 대전쟁 광마대전.

광마대전에서, 진마계는 광한계에 대패하였고 그 이후로 광한계의 여러 종족들에게 마계의 일부를 식민지로 헌납해야 했다고 들었다.

광한계의 여러 종족에서는 마계의 자원들을 식민지로부터 가져와 마공을 익히는 수사들을 위해 자원을 공급한다고 하였다.

특히나 인족에서는 마계의 마족들을 노예로 사들여, 마족들을 갈아서 단약으로 만드는 마원단(魔原丹)이라는 단약을 만들어 팔았고, 마원단은 원영기에 오를 때는 물론이오, 원영(元靈) 그 자체에 도움이 되는 단약인지 수많은 종족에서 찾는 단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단약을 만드는 인족들은 광마대전 때 후방 지원만 조금 했기에 식민지 분배 때에 숟가락을 얹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 인족 총연맹에서는 이번 일을 빌미로 마계를 칩략하여 식민지를 만들어 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 전쟁에 참여하는 게 맞는 건가.’

아무리 연이를 지키기 위한 명분이라지만, 나는 영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대리님, 대리님?”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김연이 내 앞으로 와서 물었다.

“아, 뭐라고 했었나?”

“아, 그냥 풍경이 신기하다고 했던 건데, 멍하니 있으시길래 어디 아프신가 해서….”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러시군요. 사실, 오 차장님한테 들었어요.”

김연이 씁쓸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기억… 잃으셨다면서요?”

“…그래, 어렴풋한 것만 기억이 나고, 사실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구나.”

“음….”

그녀는 내 옆에 앉아, 뒤쪽으로 흘러가는 광한계의 장대한 정경들을 함께 바라보았다.

“대리님, 아니, 은현 오빠.”

“응?”

“현석 차장님이랑도 얘기해 봤는데, 이건 어떨까요?”

김연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저희가 기억하는 은현 오빠의 모습들을 얘기해 드릴게요.”

“아….”

“은현 오빠에 대해서,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기억하는 오빠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전에.”

나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다.

“…우선,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왔는지부터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아….”

그리고,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 * *

‘아, 그렇군.’

나는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구나.

나는 김연이 쭉 설명해 준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세계사에 대한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지구. 나는 그런 별에서 온 거로군.’

“…사실, 지구에서 온 저희들이 보기에는 이 세계는 조금, 말이 안 되는 세계죠. 뭐, 세계가 평평하다나 뭐라나…. 그것도 그렇고 제대로 된 인권도 보장이 안 되고….”

“…우리 고향은, 인권이라는 게 있었던 곳이었나 보구나.”

“아… 음, 뭐. 지구 전체가 그런 건 아닌데, 우리가 살던 나라는 대충 그렇긴 했었죠. 적어도 그렇게 대놓고 사람을 개조하거나, 잡아먹는 괴물들이 있던 곳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팔을 어루만졌다.

괴뢰화시켰던 그녀의 팔은, 어느새 피와 살로 이뤄진 원래의 팔로 바뀌어 있었다.

괴뢰 팔을 떼어 내고 다시 돋아나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황당한 처사에 어이가 없어 했지만, 아무튼 팔은 며칠 전에 재생이 완료되었다.

“뭐… 대강 세계사랑 우리나라 역사는 대충 이래요. 기억나시나요?”

“음, 사실 잘 기억은 안 나는구나. 미안하다.”

“괜찮아요. 어쨌든, 은현 오빠에 대해서 설명해 드려도 되나요?”

“그래.”

그녀는 천천히 ‘나’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사수로서 그녀를 잘 도와주고, 힘든 일은 거의 무조건 도와주고, 그녀가 잘못 만든 문서를 전부 손봐 줘도 짜증 내는 기색도 없이 처리하는 사람.

간혹 상사에게 혼나기는 해도, 그 짜증을 결코 부하들에게 전가하지 않는 사람.

멍청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직하게 맡은 일은 다 해내는 사람.

꽃 중에서는 모과꽃을 좋아하고, 음식 중에서는 김밥을 좋아하는 사람.

이런 사람, 그런 사람, 저런 사람….

‘저게, 나였다고?’

그녀가 하는 말은 대부분 좋은 쪽의 인상에만 치우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좋아하는 바람에, 내게서 좋은 인상 말고 나쁜 인상들은 전부 날아가 버리기라도 한 듯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 덕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는 있었다.

‘회귀를 하기 전의 서은현이라는 사람은, 저런 사람이었구나.’

물론, 슬프게도 그 이상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기억의 조각 자체가 뜯겨 나가 버린 듯이.

그녀는 며칠 동안 내 옆에 붙어서 이 세계에 오기 전의 일들을 말해 주었고, 오현석 역시 중간부터 끼어들어서 자신이 기억하는 ‘나’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배를 타고 날아가며 며칠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 * *

[창한도에서 온 비선, 마계 입구에 도착하였소이다. 모두 하선하십시오.]

비선 선장의 음성이 배 전체에 울렸다.

“우와… 땅을 밟는 게 거의 한 달 만인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구나.”

오현석과 김연이 땅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밟는 흙의 감촉을 만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마계의 입구군요.”

휘이이이….

문자 그대로, 새카만 안개 같은 것이 바람에 섞여서 날아오고 있었다.

꿈틀, 꿈틀….

붉은빛으로 꿈틀거리는 촉수가, 허공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공간의 틈새를 만들어 유지시키고 있었다.

촉수 자체가 공간에 간섭하여 구멍을 내는 것 같았다.

촉수가 만든 구멍은 반경 오 리는 될 정도로 아득하게 넓었으며, 구멍 너머로 시커먼 안개 같은 것들이 진득하게 포진해 있었다.

“혈교족(血鮫族)에서 빌려준 탄공초(呑空草)라는 것일세. 허공에 구멍을 내어서 차원 간 구멍을 뚫을 수 있는 혈교족의 보물 중 하나지.”

그 거대한 촉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우리에게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가 걸어왔다.

“창한도에서 이렇게 마계 선발대에 지원을 보내 주어 고맙군.”

검은 두루마기 남자는 우리와, 우리의 뒤편에서 막 내린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창천개벽문에서 나와 오현석, 김연을 제외하고 202명의 제자를.

창한도의 다른 종문들에서 도합 1024명의 제자를 보내어, 창한도에서는 총합 1229명의 인원을 마계 선발대에 보냈다.

“창한도 대표 종문이… 서령문이었던가?”

“창천개벽문으로 바뀌었소.”

“아, 200년 전에 찾았을 때는 서령문이었는데 그새 또 바뀌었나 보군그래. 뭐, 어쨌든 와 줘서 반갑네. 나는 선발대 참모장 현운이라 하네. 흑린도의 현린어령문(玄鱗魚領門) 출신이지. 잘 부탁한다네.”

“반갑소, 창한도 대표, 창천개벽문 개파조사의 직전제자 오현석이라 하오.”

“마찬가지로 직전제자인 서은현이라 하외다.”

우리는 각자 현운에게 인사를 했고, 현운은 우리가 머물 곳을 알려 주었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 저 공간 균열 안쪽. 저 새카만 안개가 진마계의 차원 계면을 보호하고 있다네. 우리 임무는 진마계의 계면을 보호하는 저 장벽을 무너뜨린 후, 진마계의 안쪽으로 진입하여 진마계 안쪽 구역을 광한계의 영기로 침식시키는 것이라네.”

우우웅!

현운은 우리에게 밝게 빛나는 황금빛 수정 구슬을 보여 주었다.

“이 광한옥(廣寒玉)을 가지고 마계로 가, 마계의 마맥(魔脈)이 있는 곳에 광한옥을 심고 진법을 펼치면 점차 광한옥이 마계의 마맥을 오염시켜 영력으로 치환해 주지. 광한옥이 묻힌 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광한계처럼 천지영기가 흐르는 공간으로 치환될 거라네. 우리는 그렇게 점차 진마계를 차차 침식시켜 나가며 후발대가 활동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주 임무라 할 수 있네.”

“그렇군요….”

우우우웅!

나는 밝게 빛나는 황금빛 옥구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빛 옥구슬은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영기를 안정시키고, 체내의 수행을 느릿하게 올려 주는 것이 보였다.

‘어마어마한 보물이군.’

물론 수행 증진 효과는 결단기인 나 정도에게만 통하고, 원영기 이상에게는 그리 통하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일단, 다른 선발대들이 전부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두 차원 계면 앞에 있는 진법에 올라서서, 차원 계면을 뚫는 작업을 하고 있게나. 별 건 없고, 그냥 진법 위에 올라서서 법력만 공급하고 있으면 진법이 알아서 해 줄 걸세.”

“예, 설명 감사합니다.”

우리는 현운의 설명을 듣고, 각자 차원의 틈새 앞에 있는 진법의 각 부분으로 올라갔다.

‘뭐, 차원 계면이 뚫리고 선발대가 출발하기까지는 사실상 몇 달은 남았다 했으니, 그 기간에 결단 후기로 떨어진 수행이나 되찾아야겠군.’

지난번, 괴군에게서 탈출하던 도중 나는 수행을 태우며 비둔술을 썼던지라 수행이 한 층 떨어져 있었다.

결단기 대원만까지 도달했던 수행이 결단 후기까지 떨어져 있어, 이 기회에 되찾는 것이 좋을 터였다.

내가 진법 위에 올라가, 법력을 조금씩 공급하며 공법들을 운용해 주변 천지영기를 흡수할 때였다.

“아, 창천개벽문의 제자십니까?”

‘음?’

누군가 나를 아는 척해 왔다.

그는 금색 장포를 입은 젊은 소년이었는데, 왼쪽 머리는 하얀색이었고, 오른쪽 머리는 검은색인 기이한 머리칼을 지닌 이였다.

“본인을 아십니까?”

“아, 직접 아는 건 아니고… 저는 금신천뢰문의 제자입니다. 이번 마계 선발대에 지원하였지요. 그나저나 창천개벽문이면 같은 수계 출신 문파라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아하니, 그는 수계에서 직접 비승한 것은 아니고 그저 금신천뢰문이 자리 잡은 곳에서 새로 뽑힌 제자인 모양이었다.

“…그저, 같은 결단기 수사끼리 잘 지내 보자는 뜻에서 말을 걸었습니다만….”

“…뭐, 잘 지내서 나쁠 건 없겠지요. 저는 서은현이라 합니다.”

“서 수사셨군요, 저는 연진(淵震)이라 합니다. 그저 연 모라고 부르십시오.”

나는 연진과 말을 트며, 문득 한 가지가 생각이 났다.

“귀 문파에, 혹여 전명훈이라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아! 태상문주님의 직전제자님 말씀이십니까? 예, 전 사형은 본문에서 유명하시지요. 저희 시조님이 창시하신 공법을 전부 익히시고 벌써 원영기의 경지를 넘보시고 계십니다.

하하, 전 사형께서는 정말 대단하시지요, 문파의 모든 어른들께서 앞으로 100년에서 200년만 있으면, 어쩌면 금신천뢰문에도 합체기 수사가 한 명 더 나올 거라고 입을 모아 칭찬 중이십니다. 저 같은 녀석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인재시지요.”

연진이라는 소년은 전명훈을 동경이라도 하는 건지, 어째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실례지만, 연 수사의 나이가 어찌 되는지 여쭈어도 될지요?”

“아! 저는 올해로 벌써 아흔입니다.”

“아흔… 젊으시군요. 그 나이에 결단 중기를 도달하셨으면 연 수사도 상당히 재능이 있다는 뜻인데, 어찌 그리 낙담하십니까.”

“하하, 재능이라니요.”

연진은 씁쓸한 눈빛으로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광한계에서 축기기야 나이만 어느 정도 차면 누구나 도달하는 것이고, 결단기 역시 머리가 조금 깨친 이라면 누구든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원영기부터는 절대적인 재능의 영역이며, 재능이 없는 자는 결단기에서 얻은 수명을 전부 써도 도달하지 못하니까요.”

“….”

“저는 운이 좋아 금신천뢰문에 들어, 축기기에서 결단 중기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제 끝인 모양인지, 아무리 단약을 먹어도 아무리 폐관을 해도, 수행의 진척 속도가 느려, 이번 생 안에 결단 대원만에 도달할 수 있을지나 의심스럽습니다.”

씁쓸하게 웃던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 수사는 결단 후기 자미원에 수행이 달한 모양이니, 원영기도 이번 생에는 무리가 아니겠습니다. 정말 부럽군요….”

“…아니, 뭐….”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만도 2,000년이 넘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것은 말하지 않고 연진을 위로해 주었다.

“저는 보기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를 악물고 수행을 하면, 수련 시간은 배신하지 않더군요. 연진 수사, 90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100세 안에 결단 중기에 이르는 것도 사실 굉장히 축복받은 자질입니다. 너무 상심하시지 말고, 열심히 수행을 지속하시면 좋을 것 같군요.”

내 말에, 연진은 감동을 받은 의념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서 수사!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하,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쁘군요.”

나는 그와 어느 정도 덕담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공법들을 계속 운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한 달 안에 결단기 대원만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니, 서 수사… 한 달 만에 결단기 대원만에 오르시다니, 이게 대체….”

“아니 이건….”

물론, 연진의 오해를 푸느라 조금 애를 먹어야 했지만.

‘어쨌든, 결단기 최고봉에 도달했고,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깨달음도 충분히 얻었다.’

마계행 선발대는 아직 인원이 전부 모이지 않았고, 차원 계면 붕괴 진법 역시 완성되지 않았기에 출발하려면 시간은 남았다.

‘시간도 충분하고, 마계 계면 붕괴를 위한 진법 위쪽이니만큼 오히려 주변에서 경계를 해 주기에 안전하기도 하다.’

나는, 이번 기회에 원영기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00년을 살아왔고, 무형검으로 계위에 대해 조금씩 감을 잡아 왔다.’

깨달음도 마냥 뒤지지는 않는다.

‘그럼… 마계로 출발하기 이전에, 원영(元靈)을 얻어 볼까?’

나는 진법 위에 앉아, 기운을 정리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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