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54화 (154/185)

스승의 은혜 (5)

후우웅!

새하얀 구름이 낀 운해.

그 위를 한 무리의 수도자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비둔술에 휩싸여, 둔광을 뿜으며 저 멀리 날아가는 이들.

창천개벽문의 일운(一雲) 제자들과, 몇몇의 이운(二雲) 제자들이었다.

무리의 선두에는 일운 제자 둘이 앞서 나가고 있었고, 후위에는 이운 제자 다섯이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는 서은현과 오현석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언제쯤 도착하는 겁니까? 거의 꼬박 반나절을 날아온 것 같은데….”

오현석의 질문에, 선두에 선 일운 제자가 외쳤다.

“조금 참게, 이제 거의 다 도착했어.”

“흐음, 그나저나 궁금하긴 하군요. 사형들도 가 보신 적은 있는 겁니까?”

“뭐, 우리도 처음일세. 창한도 자체도 워낙 넓어서 익숙해지는 데에 오래 걸렸고, 다른 인족 천공도라 해 봤자, 바로 옆에 있는 섬이나 몇 번 가 본 게 끝이니까.”

“기대되는군요…. 인족 총연맹 본부, 말하자면 수도 같은 개념 아닙니까?”

“뭐, 그렇겠지, 아무래도.”

그들이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구름 사이를 날아가던 때.

화아아악!

“오오, 저기가….”

구름이 걷히며, 그들의 눈앞에 지금껏 그들이 거쳐 왔던 그 어떤 천공도보다도 거대한 천공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얼핏 보이는 것으로만 창한도의 스무 배 크기의 땅덩어리.

다른 천공도에 있는 것들보다도 압도적으로 두껍고 거대한 결계진이 둘러쳐져 있었고, 신령스러운 영기가 땅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다.

“인족 총연맹 본좌, 천인도(天人島)…!”

촤아아아!

창천개벽문의 제자들은 모두 천인도의 압도적인 크기에 입을 벌리며 눈 앞의 정경을 관찰했다.

“모, 모두 일단 들어가지.”

그 모습을 보던 일운 제자 중, 가장 배분이 높은 제자가 창한도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영패를 내밀고 천인도를 향해 날아갔다.

파아앗!

그들이 천인도의 결계진 앞에 도착하자, 영패가 빛나며 결계진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오현석은 천인도 내에 들어서자, 천인도 안쪽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영기에 놀랐다.

“창한도도 영기가 굉장히 짙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건 거의 창한도의 두, 세 배 정도 영기의 밀도가 높군요.”

“아니, 실제로는 대여섯 배다. 오 사제가 느꼈던 창한도의 영기라는 건, 창한도에서도 특히나 영기가 짙은 본문의 영맥의 영기니까.”

무리의 대표인 일운 제자, 청문규가 천인도의 영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광령지 인근 부족으로 향할 수 있는 전송진을 찾자고.”

“예!”

인족 총연맹 본좌, 천인도.

그곳에는 다른 천족 연맹의 부족과 연결될 수 있는 전송진법들이 있었다.

물론, 천족 연맹 중에서도 인족과 관계가 우호적인 종족들과의 전송진만이 활성화되어 있었으나, 광령지 인근에 사는 종족들은 대부분 인족과는 교역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광령지의 호숫물이네!”

“광령성수?”

“광령성수가 물품으로 들어왔다!”

오현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광령지라는 곳의 호숫물이 꽤 인기가 많은 모양이군요.”

“그렇군….”

일운 제자들 역시 뭐가 뭔지 몰라 얼떨떨해하며 천인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때, 서은현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광령지의 호숫물은 타 종족에서 광령성수라고도 불리며, 복용할 시 체내에 있는 생명력을 크게 늘려 주며, 광령성수를 통해 일순간 불사(不死) 신통을 펼치는 게 가능합니다. 때문에 다들 예비 목숨으로 광령성수를 복용하려 하는 것이지요. 괴뢰에 집어넣고 특수한 공정을 마치면, 괴뢰가 망가져도 저절로 회복되는 자가 수복 기능을 얻기에 괴뢰사들 사이에서도 눈이 뒤집힐 만한 보물이지요.”

“오, 서 사제, 그런 건 어찌 아는 건가?”

“…뭐, 그냥저냥 소문을 듣고 알아낸 겁니다. 그보다, 광령성수가 인근에 돈다는 건 광령지로 향하는 전송진법이 인근에 있다는 거겠지요.”

서은현은 담담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수많은 이들의 의념이 이동합니다. 저곳이 전송진일 듯하군요. 가 보지요.”

“어, 그, 그러지.”

서은현의 안내에 일행은 그를 따라가, 거대한 탑 앞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오 층으로 지어진 탑의 아래쪽에는 수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광령지 전송진이 맞다고 하는군. 그나저나 전송진을 찾았으니, 인족 총연맹 본좌로 가서, 괴군 정탐 임무 등록을 제대로 마친 후에 전송진을 이용하도록 하세.”

청문규의 인솔에 따라, 그들은 천인도의 중심에 있는 인족 총연맹 본좌를 찾아갔다.

오현석은 주위를 둘러보던 도중, 서은현 역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을 보았다.

“오, 은현아. 너도 여기는 신기한가 보구나?”

오랜만에 서은현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한 것이 신기했는지, 오현석은 서은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서은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예, 뭐. 아무래도 그렇군요. 아무래도 처음 오는 곳이니, 관찰해 두면 차후에 올 때도 편하겠지요.”

“하하, 꼼꼼하구만.”

껄껄 웃던 오차장은, 문득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기색이 들었다.

‘뭐지?’

흠칫!

오현석뿐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온 원정대도, 그리고 주변을 지나던 다른 천인도의 수도자들도, 모두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그들의 전신을 맴돌던 소름이 끼치는 기운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무, 무슨 일입니까?”

방금 느껴진 오싹한 기운에, 개벽문의 이운 제자 중 한 명이 주변인들에게 물었다.

그때, 서은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방금 것은 합체기 태수(太修)의 의식이 주는 느낌입니다. 합체기 태수는 의식의 크기가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크니,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하려면 얼마든지 그리 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런 배려를 해 줄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의식으로 이 일대를 잠시 관찰했던 것 같군요.”

서은현의 말에, 주변을 지나던 결단기 수도자 중 한 명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최근 몇십 년간, 인족 총연맹이 있는 천인도 인근으로 각 종족의 합체기 태수분들이 모두 몰려오셔서 뭘 찾으시겠답시고 주변을 둘러보신다오. 하도 자주 있는 일인지라, 이제는 모두 그러려니 합니다.”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은현은 결단기 수도자의 말에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거 참.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원….”

청문규는 찝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총연맹 본좌의 대궐로 들어가, 얼마 후 임무 확인 영패를 받아들고 나왔다.

“뭐 일단 됐네. 괴군 염탐 임무를 제대로 확인받았으니,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어.”

그렇게, 그들은 광령지 인근으로 전송하는 전송진에 올라탔다.

* * *

파아앗!

오현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 이곳이 광령지 인근입니까?”

주변의 영기가, 생명력을 자극하는 것이 굉장히 상쾌한 기분.

오현석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어쩐지 이곳에서 수련하면, 경지를 돌파하기가 조금 더 수월할 것 같군.’

청문규가 원정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맞다. 참고로, 광령지에 왔다고 해서 놀러 온 게 아니니 모두 유의하도록. 우리는 약 5년간 광령지 인근에서 최근 정복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괴군을 관찰해야 한다. 질문 있나?”

“질문 있습니다. 광령지 인근에 제 수행을 돌파하게 해 줄 영약들이 자라난다는데, 임무 중 위험을 줄여 주도록 그런 것들을 채취해 와도 됩니까?”

서은현의 물음에, 다른 이들 역시 눈을 빛냈다.

“상관없다. 단, 광령지 인근 종족들을 자극하지 말고, 최대한 거래를 통해 교류하도록 해라.”

“옛, 감사합니다!”

“이놈들, 다들 광령성수를 구할 생각에 신이 났군, 다들 다시 말하지만, 강탈하거나 협박해서 물건을 탈취하면 안 된다. 모두 알겠지?”

“예!”

“그럼 모두 하루 정도 시간을 줄 테니 광령지 인근을 다녀와라.”

그 말에, 순식간에 서은현을 비롯한 다른 원정대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다.

오현석은 의아해하며 생각했다.

‘광령성수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 * *

휘이이이이!

며칠이 지났다.

청문규를 비롯한 원정대는 광령지 인근을 벗어나, 어떤 곳에 도착했다.

“여기가….”

거대한 전투가 일어났던 흔적.

지반이 뒤집어지고, 거대한 계곡이 몇 개씩이나 생겨난 장소.

그리고, 곳곳에 괴뢰 조각으로 보이는 것이 흩어져 있는 폐허.

“한령족의 부족 한 개가 있던 곳입니다.”

서은현이, 미간을 작게 찌푸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괴군이 다녀갔군요.”

청문규는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괴군, 이 미치광이 놈 같으니. 하계에 있을 때보다 벌이는 미친 짓의 규모가 장대해졌어.”

“…일단, 괴군의 기묘성채가 보이는 곳까지는 이동하도록 하지요.”

“…그러지.”

그들은 파괴의 참상을 따라 이동했다.

얼마 후, 청문규가 허공에서 멈춰섰다.

광령지 인근 거대한 대수림!

그 대수림의 끝자락, 머나먼 산이 있는 곳 그 끝에,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저기 보이는군. 괴군의 기묘성채다.”

청문규의 말에, 오현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저, 점 같은 게 말입니까?”

“그래.”

“…너무 먼 것 아닙니까? 염탐을 하라고 했는데, 이 정도 거리라면… 염탐이라는 게 가능은 한 건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 염탐이고 뭐고, 저 미치광이의 능력을 낮잡아보면 안 되네. 이 정도가 딱 적정 거리야. 이 이상 미치광이에게 근접하면 잡혀서 개조당할 걸세.”

부르르!

괴군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인지, 청문규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하계에서 비승하기 전, 괴군에게 잡혔다가 아슬아슬하게 탈출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었나?’

오현석은 청문규가 괴군과 얽혔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5년 동안이나 여기서 괴군을 관찰해야 한다니,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뭐가 걱정인가, 수도자들에게 5년쯤이야 순식간이지. 아직 사제는 수도공법을 수련한지 얼마 안 되어서 수도자들의 시간 감각이 익숙지 않은 모양이군.”

청문규는 껄껄 웃으며 오현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오현석은 작게 한숨을 쉬며, 주변 수림의 나무 위쪽에 내려앉았다.

‘뭐, 여기서 고민해 봤자지. 일단, 계속 하던 대로 수련이나 계속해야겠군. 그리고 서은현과 얘기를 해서, 틈이 나면 김연 주임도 한번, 찾을 수 있으면 찾아봐야겠어.’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가부좌를 틀었을 때였다.

‘…?’

저 나무 아래로, 서은현이 땅에 손을 짚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봐, 은현아. 뭘 하는 거냐?”

오현석의 부름에 서은현은 담담하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땅 밑으로 기묘성채까지 통하는 회로를 그리려 합니다.”

“뭐?”

“제 회로가 기묘성채까지 가서 닿으면, 기묘성채와 괴군의 눈에 띄지 않고도 김연의 상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한번 믿어 주시지요.”

“아, 뭐… 믿는 거야 당연한 게 아니냐. 뭘 그런 걸 말하느냐.”

“…감사합니다. 혹여나 청문 사형님들은 못 믿으실 수 있으시니 그분들께는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뭐, 알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는 서은현을 믿었다.

근래에 들어, 아무리 이상하다고는 했지만 역시 그는 자신의 후임이었던 사람.

한때 자신을 따랐던 사람을 믿는 거야, 그에게는 큰일이 아니었다.

* * *

우우우웅!

5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우우웅!

오현석의 주변에서, 빛이 회오리치며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구구궁!

그의 기운이 절정으로 치솟았다.

‘결단 최고봉, 천상열차분야!’

마침내, 결단기의 끝자락에 도착하였다!

오현석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순히 최고봉이 아니다.’

뭔가 계기만 있다면 순식간에 원영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광령지 인근의 대지에는 늘 기묘한 생명력이 흘렀고, 그 생명력이 오현석의 연체공법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 탓에 수행 속도가 한참 빨라진 덕이었다.

“드디어….”

오현석은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드디어, 서은현과 경지 상으로는 같아졌다.”

그랬다.

서은현은 5년간 결단기 최고봉, 천상열차분야에 다다르긴 했지만, 원영기의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결단 대원만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오현석은 서은현과 경지 상으로 동급이 이른 것이었다.

‘뭐, 경지 상으로는 동급이라도 아직 전투는 성립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꾸구국….

오현석은 어쩐지, 지금이라면 서은현과 제대로 된 대련을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임무 기간도 끝나 가는데, 녀석과 대련을 해 보고, 김연은 어찌할 것인지 한번 물어봐야겠군.’

그는 비둔술을 써서 저 멀리, 땅을 짚고 눈을 감고 있는 서은현에게 다가갔다.

“서은현! 김연 주임하고 연락할 방도는 아직 못 찾은 거냐?”

“아닙니다. 기묘성채에 회로를 접촉시키고 나서, 기묘성채의 통제권 중 십만 분지 일을 탈취하느라 시간이 조금 많이 걸렸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김연 주임과 접촉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냐. 그럼 며칠 후에는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들이 거의 달성된다는 거로구나.”

“그런 셈이지요.”

“그럼, 얼마 후에는 돌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오현석의 말에, 서은현이 그를 보며 말했다.

“대련하시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죄송하지만, 김연의 상황을 하루빨리 알아보는 게 우선….”

그리고, 서은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오현석이 서은현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푸른 섬광이 서은현을 향해 쏘아졌다.

서은현이 빠르게 회피하며 오현석을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 아니, 후… 그런 각오로 오셨습니까?”

“하, 아주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듯이 말하는구나!”

“….”

“예전부터 그랬지. 뭔가 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건 제대로 말하지도 않고, 나와 얘기를 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네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느냐 하면, 가끔씩 보여 주는 인간적인 그 모습들은 내가 알던 서은현의 모습들이었다!”

쿠웅!

오현석이 발을 굴렀다.

주변의 대지가 진동했다.

“도대체 뭐냐! 뭐가 문제길래 이 세계에 오고, 수련을 받기 시작하며 나와 대화를 피하는 거냐!”

쿠구구구!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너는 누구냐! 내가 아는 서은현이냐, 아니면 다른 누군가냐!”

오현석은 서은현을 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서은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근처에서 대련하는 것은 위험하니, 자리를 뜨지요.”

타앗!

그와 함께, 서은현이 땅을 박차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오현석 역시 서은현을 따라 날아갔다.

얼마간 두 사람은 대수림 위를 날아, 한참을 날았다.

반나절을 날았을까, 마침내 대수림 너머, 거대한 황무지의 한복판에 도착한 서은현이 오현석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차장님께서 저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 차장이라….”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대리 달고 난 후부터는 사석에서는 쓴 적이 없는 호칭이었는데, 날 그렇게 부른다라…. 정말 내가 알던 서은현인지, 어디 한번 볼까?”

그와 동시에, 오현석이 기세를 폭발시켰다.

쿠웅!

그가 발을 구르자, 대지가 뒤집어졌다.

그와 함께, 일순간 오현석의 몸이 대지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하지만 서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부웅!

콰아앙!

그리고, 그곳에 숨어 있던 오현석이 모습을 드러내며 서은현을 향해 주먹을 뻗어 왔다.

부웅!

파아앙!

공기가 폭발하며, 서은현은 오현석의 주먹을 부드럽게 받아낸 후 그의 품으로 들어가 손바닥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오현석의 몸이 빛나더니, 그가 서은현의 위쪽으로 이동하였다.

쿠구구구!

그가 다리를 내리찍으며 서은현이 있던 곳에 내리꽂혔다.

대지가 폭발하며, 다음 순간 주변이 용암의 바다로 화하였다.

화르르르!

불길로 뒤덮힌 용암의 바다에서, 오현석이 서은현을 향해 쏘아져 갔다.

콰앙, 콰앙, 콰아앙!

오현석의 주먹 일격 일격이, 원영 중기 급의 힘과 속도!

서은현은 비둔술과 보법, 그리고 예리한 기운에 몸을 싣고서 전력을 다해 오현석의 공격들을 피했다.

그리고, 오현석이 몸에 힘을 더더욱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부웅, 부웅, 부웅!

오현석의 속도가 올라간다.

이제는 그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폭발하며, 파공음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리고, 점차 오현석의 주먹이 서은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기 시작하였다.

‘닿는다, 닿는다!’

그리고 마침내.

피이잇!

오현석의 몸이 오채색으로 밝게 빛나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서은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퍼어억!

그의 주먹이, 서은현에게 ‘닿았’다!

쿠구구구궁!

서은현이 뒤쪽으로 밀려나며 저 멀리 황무지의 한구석에 처박혔다.

“후우….”

오현석이 땅에 내려앉으며 씨익 웃었다.

“어떠냐, 이제 조금 나와 해 볼 만한 것 같으냐?”

쉬이이이….

서은현이 내리꽂힌 곳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고, 그 중심에서 서은현이 일어나고 있었다.

덜렁, 덜렁….

서은현은 무표정하게 먼지 구덩이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양팔은 부러져 있었다.

치이익….

물론, 그가 한 걸음을 걸어 나올 때마다 생명력이 팔로 몰리며 다시 치유되고는 있었지만.

“…뭐, 확실히 이제는 어느 정도 저를 따라오실 순 있으시군요.”

그리고, 그가 오현석을 쳐다보았다.

움찔!

오현석은 순간, 마치 거대한 범을 눈앞에 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무런 힘도 없이, 그저 일반인이었던 시절, 무기도 없이 호랑이 같은 맹수 앞에 던져진 기분.

등골이 싸하고, 감각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다.

꿀꺽!

‘녀석이….’

“그럼, 이제….”

‘진짜 힘을 쓰기 시작한다.’

“제대로 싸워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서은현이 손을 펼쳐 수도(手刀)의 형태로 만들고는,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수도를 가로로 휘둘렀다.

피잇!

“…!!!”

오현석은 생명의 위기를 느낌과 동시에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뒤쪽에서 그가 들어 올렸던 지반과, 그가 지반을 흔들어 솟아오른 산들이 가로로 잘려 나가는 것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기술을 써도 될 것 같군요.”

씨익….

서은현이, 웃는다.

하지만 오현석은 그것이 ‘웃는다’라는 감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맹수가 먹잇감을 찾고서, 입을 벌리는 듯한 느낌.

파아앗!

오현석이 황급히 의념의 세계로 진입하며 서은현의 공격을 보려 했다.

어느덧 의념에 대한 그의 이해도는 심화되어, 푸른 선과 붉은 선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오현석은 절망했다.

‘피할 수, 없다!’

서은현의 주변으로, 수천, 수억 개에 달하는 궤적들이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그를 향해 덮쳐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궤적’은 연체공법의 오채색의 기운에 덧입혀진 채 오현석에게 쏘아져 왔다.

쿠과과과광!

사방팔방으로 검의 궤적이 난무한다.

의념의 세계 안쪽에서, 오현석은 의념을 통해 서은현이 펼치는 절학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단악검법.

산수화!

쿠구구구구!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하지 않는다!

우드득!

오현석의 몸에 성광지력(星光之力)이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오현석의 피부로 별빛이 뿜어지며, 오현석의 체내가 반투명하게 비춰 보였다.

그러나 오현석의 체내로 비춰 보이는 것은 근섬유나 피, 뼈와 장기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별하늘!

마치 우주와 같은 성천(星天)이 오현석의 몸 안에서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운행되고 있었다.

일순간, 오현석은 마치 ‘밤’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이 변화하였다.

카앙, 캉, 캉!

무수한 궤적들이 오현석의 몸을 때렸으나, 궤적들은 오현석의 몸을 파고들지 못하였다.

“이게, 끝이냐?”

파앙!

오현석이 땅을 박차고 궤적들을 맞아 가며 서은현에게 달려들었다.

파츠츳!

그의 주먹에 창령격원결의 푸른빛이 맴돌았다.

오현석은 정신을 집중하며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궤적 하나하나가, 성광호체공의 구결을 발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맞으면 위험한 것들이다. 내 육체 강도는 성광호체의 구결을 발동하지 않은 맨몸 상태가 원영기 수사 급이니, 하나하나가 원영기 급에도 치명상이란 소리.’

우우우웅!

오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성광호체를 발동시킨 지금은 법력 소모가 너무 빠르다. 빨리 끝내야 해!’

파아앗!

오현석은 서은현의 앞에 도착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자, 이게 끝은 아니겠지? 서은현!”

그리고, 서은현이 미소지었다.

“좋군요. 그렇다면….”

그리고, 오현석은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서은현에게 주먹을 내리치려던 것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콰과과과!

그와 동시에, 서은현의 몸 주위로 시꺼먼 것들이 솟구쳤다.

치이이이….

주변의 땅이 썩어들어 간다.

수천 개의 저주문들이, 원독을 품고 서은현을 둘러싼다.

“수도공법도 한번 써 볼까요?”

“하하하… 빌어먹을 놈.”

오현석이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 썼던 건, 수도공법도 아니었다고?’

그리고, 수천 개의 저주문이 마치 촉수처럼 오현석을 노려 왔다.

“음혼귀주.”

촤아악!

오현석의 다리로, 몇 개의 저주문이 달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오현석은 그의 다리가 수 배는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크윽!’

파아앗!

그가 별빛을 집중시키자 저주문이 흩어지며 다시 다리가 돌아왔지만, 오현석은 방금 것으로 느꼈다.

‘저주문 하나로 그런 효과였는데, 저 수천 개의 저주문을 전부 맞는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패배한다!

“천린수해.”

쿠우우우우!

서은현의 주변에서 촉수처럼 넘실거리던 저주문의 강이, 진도를 그리더니 서은현의 주변으로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저주문으로 이뤄진 썩은 고목들의 숲이 주변을 메웠다.

그리고, 고목들이 일제히 몸을 떨며, 서은현의 저주문들을 증폭시켜 각각 하나하나가 수천 개의 저주문 법술들을 오현석에게 쏘아 내기 시작했다.

“하하, 성가시기만 하다!”

쿠구구구구!

오현석은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고, 허공을 마구 강타하였다.

그의 주먹에 깃든 푸른 기운이 폭사되며 저주문 법술들을 상쇄한다.

하지만, 서은현이 다시금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꾸구구국!

썩은 고목의 숲 안쪽에서, 서은현과 똑같이 생긴 나무인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츳, 파츠츠츳!

나무인형들을 향해, 서은현이 손을 올려놓자 나무인형들의 위쪽으로 기이한 회로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서은현이 다루는 괴뢰 회로!’

쿠구구구!

동시에, 괴뢰들 열다섯 기가 일시에 원영기 급 기세를 내뿜기 시작하였다.

철컥, 철컥, 철컥!

괴뢰들이 일시에 입을 벌렸다.

괴뢰들의 입쪽으로 저주가 섞인 기운이 몰렸다.

오현석은 느꼈다.

저건 못 피한다.

‘그렇다면, 맞받아치면 될 뿐!’

촤라라락!

성광호체를 발동시킨 상태에서 오현석은 양 주먹을 쥐었다.

파아아앗!

그의 등 뒤쪽으로 푸른 날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한 쌍, 두 쌍, 세 쌍….

그리고 네 쌍!

“제사익!”

총 여덟 장의 날개를 단 오현석이 서은현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자, 받아 봐라!”

쿠구구구구!

서은현의 표정이 달라졌다.

천지간의 기운이 일렁였다.

그리고, 서은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읊조렸다.

“천인기의 일격인가…?”

그와 함께, 빛이 폭발하며 섬광이 사방천지를 뒤덮었다.

서은현의 꼭두각시들과, 오현석의 창익천쇄가 부딪혔다!

* * *

치이이이….

오현석은 숨을 들이쉬며 몸을 일으켰다.

쿨럭!

그가, 피를 토했다.

“뭐… 냐.”

눈앞에는 서은현이 있었다.

그리고, 서은현은 다소 그을리고, 상처를 입기는 했다.

하지만, 오현석보다는 한참 멀쩡했다.

“왜, 내가 내 공격에, 상처를 입은, 거지?”

“오 차장님은, 저주술사와 싸우신 적이 없군요. 차장님과 싸우던 중 피를 채취하여, 아까 만들었던 서 장군들에게 먹였습니다. 저주인형을 자기 손으로 공격하셨으니, 그만큼 본인도 충격을 받으신 거겠지요.”

“…그런가.”

“그래도 오 차장님은 정말로 많이 성장하셨습니다. 이 정도로 몰린 것은, 스승님을 제외하고는 정말 오랜만….”

“시끄럽다!”

오현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 차장님이 아니었잖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숨을 몰아쉬었다.

“형이라고 불렀던 기억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거냐! 갑자기 재수 없게 사람을 모르는 척하는 건, 그만두란 말이다!”

그리고, 그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촤아아악!

그의 좌반신에서 네 장의 날개가 돋아났다.

“창익천쇄는, 두 번 몰아친다!”

그리고, 서은현은 씁쓸한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콰과과광!

천인기 급 일격이라고 서은현이 평했던, 창익천쇄의 일격이 다시금 서은현에게 쏘아진다.

그리고, 서은현의 뒤쪽에서 다시금 저주문으로 이뤄진 숲이 자라났다.

서은현이 기수식을 잡으며 읊조렸다.

“백란축성.”

파아아앗!

저주문들이 일제히 반전되며, 새하얀 백란(白蘭: 백목련)이 되어 피어났고, 서은현의 기운이 폭증하였다.

의념을 넘어, 서은현의 절학명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답천(踏天), 무형검!

슈칵!

그것이, 끝이었다.

“….”

오현석의 창익천쇄는 두 동강이 나서 서은현의 뒷편 양쪽에서 폭발했다.

서은현은 여전히, 피해가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인상깊었던 대련이었습니다. 이제….”

그리고.

오현석이 외쳤다.

“아직!”

쿠구구구구!

오현석의 몸에서, 기운이 끓어올랐다.

“안 끝났다!”

그리고, 오현석이 저물도를 열어, 저물도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물주머니였다.

그리고 물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령스러운 느낌의 액체.

“광령성수…!? 그만한 양이면 가격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와 동시에, 오현석이 눈을 빛냈다.

“이 생명의 힘… 굉장히 나와 잘 맞더구나. 그리고 말이다.”

쿠구구구!

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은현은 그것을 보며 몸을 흠칫 떨었다.

“잠깐, 무슨 짓을 하시려는 겁니까?”

“오늘!”

오현석이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너를, 이기기로 했다!”

쿠구구구구!

그의 기운이 증폭된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푸른 번개가 떨어졌다.

그리고 푸른 번개의 옆으로, 금색(金色)의 번개가 같이 떨어진다.

이색(二色)의 천뢰!

결단기 대원만에 이른 이가, 또다시 천뢰를 맞는다는 것.

그것은 곧, 그 자가 원영기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파지지지직!

오현석은 두 줄기의 벼락을 맞으며, 한 발 한 발 서은현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위험합니다! 오지 말고 앉아서 공법을 운용하십시오!”

하지만 오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서은현에게 걸어갔다.

쿠릉, 쿠르릉, 쿠르르릉!

천뢰에 대지가 패이고, 땅이 유리가 된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천벌 속에서, 오현석은 서은현에게 기어코 도착했다.

서은현은 이를 짓씹었다.

“…그런 각오입니까.”

그리고, 서은현이 자세를 잡았다.

“…다시 가겠습니다.”

오현석은 말이 없었다.

천뢰 속에서, 담담히 힘을 끌어올릴 뿐.

“백란축성.”

서은현의 몸 위로 괴군의 회로가 뻗쳐 왔다.

동시에 축성문의 힘이 그의 힘을 증폭시켰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무형검을 잡아들고, 최대치로 힘을 끌어올리며 기수식을 잡았다.

파아아아앗!

그리고, 서은현의 등 뒤에서도, 세 장의 날개가 돋아났다.

“저 역시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당연히 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굳이 펼치지 않았을 뿐.”

파츠츠츳!

서은현의 손에 몰린 푸른 기운이, 무형검과 뒤섞이며 더더욱 예리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천겁을 맞으며 오현석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서은현이 눈을 꿈틀거렸다.

‘보라색?’

오현석의 몸은, 보랏빛으로 들끓고 있었다.

서은현은 처음으로 순간 혼란을 느꼈다.

‘뭐지, 저건?’

벨 수 없다.

답천에 이른 후, 서은현은 절대적인 자신감을 얻었다.

그의 무형검은 무엇이든 벨 수 있다.

벨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서은현 개인의 출력이 부족해서였을 뿐.

이론상 그의 검은 벨 수 없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서은현은 처음으로 혼란을 느꼈다.

벨 수 없다!

눈앞의 저것은, 벨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득한 혼돈 같은 느낌.’

자신의 검은 혼돈을 벨 수 있는가?

서은현은 그의 검을 참오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오현석을 쳐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다룰지언정, 그걸 다루는 것은 오현석이라는 한 명의 인간. 그렇다면….’

서은현의 눈이 오현석과 그 사이에 수천 수억 개의 궤적을 예지하였다.

‘가장 약한 점을 어떻게든, 찾는다!’

우우우웅!

오현석의 등 뒤로, 다시금 날개가 돋아났다.

보랏빛의 날개였다.

다섯 쌍의 날개가, 오현석의 등 뒤에서 돋아났다.

“혼원(混元), 천쇄(天碎)!”

쿠구구구구!

오현석이 주먹을 뻗었다!

보랏빛의 기운이 서은현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동시에, 서은현이 무형검을 휘둘렀다.

“단악(斷岳)!”

촤좌좌좍!

수만 개의 참격이 오현석을 향해 뻗쳐 나간다.

새하얀 참격과, 보랏빛 권격이 부딪혔다.

쿠그그그극!

백색과 자색!

두 빛깔이, 천지를 순간 이분하는 듯했다.

쿠국, 쿠구구국!

그리고, 보랏빛이 새하얀 빛을 점차 짓누르기 시작했다.

점차 백색의 참격들이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보랏빛의 폭풍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

보랏빛의 폭풍이 백색의 참격들을 완전히 먹어치우려는 순간!

쿠르릉!

하늘에서 오현석을 향해 내리치던 천겁이, 마침내 그쳤다.

오현석이, 원영(元靈)을 얻었다!

파아아앗!

천지간의 서광이 일순간 오현석에게 비추는 듯하더니, 오현석의 기세가 강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현석이 두르고 있던 혼원의 기운 역시 스러져 버렸다.

“흐아아아아아!”

쿠구구구!

원영기!

마침내 원영기에 오른 오현석이, 주먹에 더욱더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백색의 빛은 보랏빛이 사라지자마자 다시금 오현석의 영역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오현석의 영역이, 점차 백색의 참격에 그대로 뭉텅이로 잘려 나가며 줄어들고 있었다.

“타아아아앗!”

그리고, 마침내!

콰아아앙!

두 영역이 일순간 폭발하며 섬광을 드리웠다.

치이이이….

오현석과 서은현이 있던 곳.

그곳에, 반경 삼십 리에 해당하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말 그대로 천재지변!

천재지변의 중심.

그곳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후후, 빌어먹을.”

“….”

“질기구나.”

오현석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서은현은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이번 일격에 많은 것을 쏟아부은 모양새!

두 남자는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오현석의 좌반신에는 아직 다섯 장의 날개가 남아 있었다.

“…창익천쇄는 두 발. 하지만 너는 두 발의 창익천쇄를 방금의 일격에 몽땅 몰아넣었군.”

“….”

“내가 이걸 네게 맞추면, 내 승리다.”

서은현은 피를 한 움큼 토하고는 말했다.

“…맞추면, 말이지요.”

“못 맞출 것 같으냐?”

서은현은 투명한 눈으로 오현석을 바라보았다.

오현석 역시 맑고 자신감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이 달려들었다.

슈릉!

서은현의 손에 투명한 허공이 잡혔다.

그가 눈을 빛냈다.

‘방금 전의 공방은, 내가 분명 유리했다.’

오현석이 더욱더 내상을 깊게 입었을 터!

‘산외산부진이 있으니만큼, 무형검은 내 상태에 상관없이 그 위력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다. 오현석 차장님이 맞추기 전에 산외산부진을 쓰면….’

파앗!

오현석의 주먹과 서은현의 절초가 다시금 부딪친다!

폭발은 방금처럼 거대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오현석 역시 창익천쇄가 한 발 남았다는 듯이 말했으나 그 역시 상당히 기운을 방금 전의 일격에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폭발은 작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작은 폭발 속에서 수많은 의념을 주고받으며 반격을 시도했다.

‘내가, 이긴다!’

서은현이 눈을 빛내며 오현석의 의념을 차단했다.

오기조원 이상의 고급 경지를 응용할 필요도 없이, 삼화취정 정도의 경지에서만 압박해도, 아직 두 개의 색밖에 볼 수 없는 오현석은 그의 아래였다!

오현석은 이를 악물었다.

‘밀리고 있다.’

이대로 지는가.

‘그렇군.’

오현석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서은현은 그가 원영기에 이르고도, 한참은 더 수련해야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심지어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정말로 그가 더럽고 치사한 방법을 쓰며, ‘대련’이 아닌 ‘전투’를 한다면 오현석은 몇 번이고 죽었을 터였다.

‘안타깝구나. 그저, 네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다음 순간, 오현석의 눈에 청색과 적색의 선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

두 색의 선은, 오현석이 의념의 세계에 진입한 후 처음 보는 색상을 만들어 냈다.

자색(紫色)!

보랏빛 선이, 오현석과 서은현 사이에 존재했다.

그리고 오현석은 보랏빛 선을 통해 서은현의 의도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서은현이 드러내 놓지 않았던 그의 고민 역시, 아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현석은 자줏빛 선을 따라, 있는 힘을 쥐어짜 내어 서은현의 사각을 향해, 반대쪽 손을 들어 내질렀다.

동시에!

콰아앙!

오현석의 주먹이, 처음으로 ‘무방비한’ 서은현의 얼굴에 맞았다!

“서은현!”

콰득, 콰드드드득!

오현석의 무(武)의 경지를 절정 수준으로 인지했던, 서은현의 미세한 방심!

그 단 한 번의 방심이, 오현석의 주먹을 허락해 버렸다!

“내가!”

콰드드드드득!

오현석의 주먹에 별빛과 푸른빛, 오채색의 빛이 몰렸다.

그와 동시에, 서은현의 얼굴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이겼다!!!”

콰아아아아앙!!!

서은현의 머리가, 폭발해 버렸다!

서은현은 머리가 박살 나 버린 채, 그대로 목이 없어져 버린 채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 세계에 온 지 수십 년.

그동안 오직 서은현과 대등해지기 위해 수련해 온 오현석의 주먹이, 서은현을 이긴 순간이었다.

* * *

치이이이….

꿈틀, 꿈틀….

결단기 대원만의 경지에 이른 서은현의 머리가, 점차 재생되기 시작했다.

철퍽!

서은현은 바닥에 큰 대 자로 쓰러졌다.

“후우… 빡세군.”

“…삼화취정에 오르신 걸, 축하드립니다.”

꿈틀, 꿈틀….

안면을 재생시켜 말하며 서은현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맙다. 그래, 마지막에 네 의념을 느끼며 조금 알 수 있었다. 아마 스승님도 모르고, 나 같은, 네 동료였던 사람들만 알 수 있었던 사실이겠지.”

오현석은 서은현을 보며, 착잡한 눈으로 물었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냐?”

“…하하.”

서은현이, 웃었다.

주륵….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알고, 있습니다. 오현석 차장님…. 아니, 오 사형(師兄)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친절하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서은현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좋은 사람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오 사형, 당신이, 누군지 기억나지가 않습니다. 예전의 있었던 대부분의 일들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납니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서은현이 쓰디쓰게 웃었다.

“…치매인가 봅니다.”

* * *

오현석 사형이 좋은 사람인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사람에게서, 먼 옛날 따뜻한 말을 들었고, 그 사람과 좋은 추억을 쌓았‘었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 있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오현석과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는 1회차 이전의 일들이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세상에서 왔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동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이, 점차 저 아래로 침잠해 가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껏, 무미건조하고 최대한 차가운 태도로 오현석이 나와 대화를 나누려는 것을 밀어낸 것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 그와 나누었던 좋은 추억들이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더더욱 실감하게 될 테니까.

그 뿌리가 없어진 듯한 공허한 기분이, 내 정신을 좀먹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오현석과 최대한 거리를 두었었다.

“…죄송합니다, 오 사형.”

쿵, 쿵, 쿵!

그리고, 쓰러져 있는 나를 향해, 오현석이 걸어왔다.

“뭐, 됐다.”

오현석은 나를 일으켜 주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

그가 친근하게 웃었다.

“오늘부터, 현석 형이라 불러라. 앞으로 기억을 찾을 수 있게, 어떻게든 같이 방법을 찾아 주마.”

“…예, 형님.”

나는, 어느새 스승님인 창호자와 똑같이 호탕한 미소를 짓는 오현석을 보며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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