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4)
기이하다.
하지만 오현석은 그 기묘한 위화감을 뒤쫓는 것보다는, 우선 다른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의 몸에서 사르는 서광이, 오현석의 몸 안쪽으로 들어간다.
결단 초기 천시원을 완공하고, 결단 중기 태미원의 영역에 진입하였다.
‘결단 중기.’
오현석은 그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본 후, 주먹을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궁!
그리고, 그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자.
파랗게 물든 하늘 전체가 일렁이는 듯했다.
“후우….”
파아아아앗!
오현석의 주위로 창령격원결의 푸른빛과, 성광호체공의 별빛, 그리고 오행장원전의 오채색이 빛났다.
그리고, 그가 집중하자 그의 몸 주변에 떠오른 모든 기운들이 하나로 혼재되며, 혼원(混元)의 힘으로 화하였다.
파츠츠츳!
얼마간 오현석의 몸 안쪽에서 뒤섞이던 혼원의 힘이 일순간 보랏빛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오현석의 몸을 덮은 보랏빛은 사라지고, 다시금 창령성광오채대법이 뿜는 빛살이 그의 몸을 덮었다.
‘일문성체라고 했나?’
오현석은 자신의 체내에서 방금 전 ‘혼원’의 힘을 끌어올렸던 능력을 떠올렸다.
일문성체에 대한 권능은 이미 창호자에게 전부 전해 들은 오현석이었다.
그리고, 그가 전해 들은 일문성체의 공능 중에는 방금 전처럼 혼원을 구현하는 공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지닌 힘은, 단순히 일문성체가 아니다.’
어쩐지 오현석은, 일문성체는 그저 ‘부가 기능’일 뿐.
그가 가진 진정한 힘은 따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일단 지금으로써는 그렇게밖에 알 수 없겠지만.’
오현석은 잠시 자신의 몸을 관조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혼원의 상태를 뭔가…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혼원을 끌어올리고 있으면 서은현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지….’
오현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든, 일문성체의 공능인지, 창령성광오채대법의 공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현석은 자신이 결단 중기에 오르며 어마어마한 힘의 상승폭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난, 결단 대원만은 넘어선 힘을 지녔다.”
원영기에는 미칠지 안 미칠지 잘 몰랐지만.
여하튼 일반적인 결단기는 넘어선 것이었다.
“기다려라, 서은현.”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그를 이기겠노라고.
오현석은 그리 생각하였다.
* * *
번쩍! 번쩍!
천지가 번뜩인다.
창호자의 수련장 위에서, 오현석이 발을 구르자 작은 산들이 수련장 위로 솟아올랐다.
반경 십 리를 가득 채웠던 창호자의 산과 비교하자면 굉장히 앙증맞은 크기의 산이었으나.
그래도 산은 산.
20장이 넘어가는 거대한 지반이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그리고, 그 지반들을 피해서 한 사내가 오현석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하하, 자아, 어떠냐! 내 힘은 이제 결단기는 확실히 넘어섰다! 이제 조금 상대해 줄 만 하느냐!?”
쿠구구구!
오현석이 서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구구구!
거대한 힘 그 자체로 화한 오현석이, 서은현에게 몸통박치기를 하였다.
서은현은 피했고, 오현석이 부딪친 곳에 있던 산 하나가 그대로 박살이 나 버리며 폭발하였다.
파아앗!
“제이익!”
폭발한 산의 한 가운데.
그곳의 중심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오현석의 등 뒤로 두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창령성광오채대법의 공격기, 창익천쇄(蒼翼天碎)는 한 쌍의 날개로 펼치는 일익부터 시작해.
아홉 쌍의 날개로 펼치는 구익까지가 존재했다.
열 번째 날개인 십익도 존재한다는 전설은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었다.
일익은 결단 중기 수도자가 결단 후기 급 일격을 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익은 결단 후기 수도자가 결단 대원만을 넘어선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오현석은 결단 중기 수준에서 벌써 두 번째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쩌어엉!
오현석의 주변으로 공간이 일렁였다.
창익천쇄를 펼치지 않아도, 이미 평타가 결단기 대원만을 넘어선 수준의 공격!
그런 오현석이 펼치는 두 쌍의 날개는, 엄연한 원영 초기 급의 위력을 자랑했다!
“긴장해라! 아무리 너라도, 이건 맞고 무사할 수 없을 거다!”
그는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서은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제 생각엔, 기운을 낭비하시지 말고 근접 박투로 승부를 보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하! 시끄럽다! 받아라!”
그리고, 오현석이 주먹을 내질렀다.
키이이이잉!
푸른 빛이 폭발하며, 와류(渦流)를 만든다.
소용돌이치는 빛살이 서은현을 집어삼킬 듯이 날아갔다.
하지만 서은현은 이번에도 직접 맞서지 않고 발을 놀려 피할 뿐이었다.
하지만 서은현이 막 자리를 피했을 때.
쿠구구구구!
서은현이 피한 자리를 향해 다시금 빛의 와류가 쏟아진다.
그는 눈에 이채를 띄며 미소를 지었다.
“제 의념을 읽었군요. 슬슬 이쪽의 시야에 진입하시려는 겁니까.”
그리고, 그가 다시금 오현석의 공격을 피했다.
‘또… 피했는가.’
오현석은 숨을 들이쉬며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이전만큼 침울해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냥 보법을 밟으며 여유롭게 내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에 그의 공격을 피할 때는, 여유가 없었다.
평소 펼치던 보법에 더해, 비둔술까지 합쳐서 나름 허겁지겁 피한 것이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아득한 산.
그것이 지금까지의 서은현이었다면.
오현석은 순간, 구름이 잠깐 걷히며 꼭대기가 잠시 보인 기분이었다.
“긴장해라, 서은현!”
오현석은 기분 좋은 듯이 소리쳤다.
“너와 내가, 제대로 대련을 할 수 있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파앗!
그렇게 소리치는 오현석의 눈 앞에.
서은현이 빠르게 나타났다.
서은현은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느리다, 그리고 부드럽다.
그러나 오현석은 어쩐지 서은현의 손을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쿠우웅!
서은현의 손이 오현석의 몸을 후려치자, 그는 피를 토하며 바로 나가떨어졌다.
‘놈, 오랜만에 웃는군.’
“…그거 좋군요. 빨리 성장해 주십시오.”
오현석은 뒤를 돌아 숙소로 돌아가는 서은현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제대로 대련할 수 있다는 기대에 웃은 거냐, 서은현?’
사람이, 어떤 것에도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며.
늘 심유한 눈빛으로 무표정하게, 한없이 바쁘다는 듯이 미친 듯이 수련만 한다.
그런 그가, 제대로 싸울 때.
혹은 제대로 싸울 상대가 생겼을 때에만 간혹 미소를 짓는다.
‘도대체 왜 그렇게, 또 얼마나 망가진 거냐.’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인간인가?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사람인가?
사람이 얼마나 망가지면 전투 외에 미소를 잃어버린다는 말인가.
지난 10년간.
오현석은 서은현의 곁에서 그와 수련하고, 대련하며 더더욱 확실히 느꼈다.
그랬다.
서은현은, 분명 확실하게 망가졌다!
‘도대체 네가 왜 그렇게 망가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현석은 불끈 주먹을 쥐었다.
‘더더욱 열심히 수련하여, 너와 대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물어보겠다!’
그는 굳은 결의를 하며, 바로 몸을 회복시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호자를 찾아갔다.
“스승님, 제자가 대련을 청합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흐하하! 최근 좋은 눈빛이 되었구나, 현석아. 자, 그럼 오늘도 계속해 볼까?”
오현석은 창호자에게 두들겨 맞을 준비를 하며 주먹을 쥐었다.
‘쇠가 되자.’
두들기고 두들겨져서, 더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 쇠가 되자.
그리하여, 한때 자신의 후임이었던 저 녀석이 더 망가지지 않게 지켜 줄 수 있는 방패가 되자.
그런, 어른이 되자.
그리고, 5년이 흘렀다.
* * *
파아아앗!
하늘과 땅의 영기가 통하며, 오현석은 결단 중기 태미원의 과정을 끝마치고 결단 후기 자미원에 진입하였다.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하늘을 잇는 제사장이자, 자기 자신의 육신을 나라로 삼은 왕이 되는 단계.
결단 후기.
자미원!
오현석은 눈을 반개하며 몸을 일으켰다.
지난 5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결단 중기에 이른 후부터는, 오현석 역시 창한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창천개벽문의 임무를 수행하고는 했다.
서은현 역시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오현석과 서은현이 나선 임무는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최근에, 녀석이 창한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뭘 모으고 있던데….’
근 5년간, 종문의 임무를 맡아 하며 서은현은 어떤 재료들을 모으고 있었다.
하나같이 상당히 값비싼 재료들이었는지라, 창천개벽문 곳곳에 꽤 소문이 난 일이었다.
듣자하니 창호자는 서은현에게 이유를 들어 뭘 모으는지 알고 있는 듯했지만, 오현석이 물어도 ‘직접 물어봐라’라며 알려 주지는 않았고.
오현석이 직접 서은현에게 물으면 ‘동료를 구하기 위한 걸 만들고 있다’며 제대로 답해 주지 않았다.
‘비밀이 많은 녀석이라니까….’
그동안 수련하는 것만도 바빴는데, 그 사이에 뭔가를 배워서 또 만들고 있다는 게 아닌가?
‘내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녀석이었어.’
잠시 서은현에 대해 생각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호자에게로 찾아갔다.
“스승님, 제자 자미원에 이르렀습니다.”
“흐하하, 역시 내 제자들이다! 은현이도, 너도 늘 내 기대를 충족시키다 못해 뚫고 나아가 버리는구나! 결단기에 오른 지 50년도 안 되어서 벌써 결단 후기라니….”
“예, 전부 스승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무슨 소리, 전부 네가 밤낮없이 노력한 덕에 이룩한 경지지.”
“하하, 진짜 밤낮없이 노력하는 것은, 서은현이지요.”
말 그대로.
서은현은 오현석에게 말을 걸지 않는 만큼 미친 듯이 수련했다.
무슨 강박증이라도 있는 것인지, 늘 어딘지 초조해하는 얼굴로 수련하고,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그 결과, 그는 현재 결단 후기, 자미원의 최고봉에 진입하였다.
아마 얼마 후면 결단 대원만.
천상열차분야의 단계에 오를 터였다.
“뭐, 확실히 서은현이 독종은 독종이긴 하지.”
“그렇지요. 어쨌든, 그건 그렇고 제자가 자미원에 이르렀는데 축하는 해 주셔야지요?”
오현석이 은근한 눈빛으로 묻자, 창호자가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닜다.
“맞다! 축하의 의미로 즐거운 대련을 해 보도록 하자꾸나!”
그리고, 두 사제는 수련장으로 가 자세를 잡았다.
쿠구구구구!
먼저 시작된 것은 창호자의 신통술이었다.
그가 발을 구르자, 수련장 전체가 숲으로 변하며 진한 목 속성 영기를 흘리는 진도가 되었다.
동시에 창호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오현석은 당황하지 않고, 그 역시 오행장원전을 운용하며 영기의 흐름을 역추적했다.
“거기입니까!”
콰아앙!
오현석의 권격이 숲의 어느 곳을 강타했다.
숲의 한 구석이 지반째로 날아가며, 잠시 몸을 숨겼던 창호자가 씨익 웃었다.
“이제는 몸을 숨기는 건 안 통하는구나.”
타앗!
근육으로 뒤덮인 두 사제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쾅, 콰앙!
그 다음부터는 여지없이 육탄전!
오현석과 창호자의 주먹이 서로를 노렸다.
“흐하, 이제는 확실한 원영기 급이구나!”
오현석의 주먹이 지나간 자리로, 공간이 일렁인다.
물론, 창호자의 주먹이 지나간 자리는 공간이고 뭐고 그대로 뜯겨 나가는 중이었다.
콰앙, 쾅, 콰앙!
몇 번이고 둘의 주먹이 부딪친다.
그리고 그때마다 오현석의 팔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창호자의 팔에서 치유의 힘이 흘러나와 얻어맞는 오현석을 치유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오현석은 두들겨 맞으면서 실시간으로 계속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웅!
오현석의 기세가 바뀌었다.
‘간다.’
콰앙, 콰앙, 콰앙!
사방으로 폭음이 울린다.
오현석의 주먹이 창호자를 때리면, 창호자의 뒷편에 있는 지반이 그 충격파에 못 이겨 그대로 함몰된다.
직접 강타하지 않고, 그 여파만으로 사방의 지형이 마구 변하고 있었다.
촤작, 촤작, 촤자자작!
계속해서 창호자의 공격에 얻어맞으며, 살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던 오현석은, 창호자를 쳐다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더욱더 거센 권격의 폭풍이 오현석을 덮쳐 왔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마침내.
오현석은 권격의 폭풍 속에서, 그의 눈앞에서 일렁이는 뭔가를 볼 수 있었다.
‘이제야, 확실히 보이는군.’
붉은 선.
저 선에 따라 상대가 공격을 한다.
파앗!
오현석은 창호자의 주먹을 피한 후.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푸른 선.
이 선을 따라가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그동안은 그저 얼핏얼핏만 보이던 선들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오현석은 마침내 제대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우우웅!
“제삼익.”
오현석의 뒤편에서, 세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오현석은 전신의 기운을 팔에 집중하며, 그대로 창호자를 향해 푸른 선을 따라 내질렀다.
창호자의 눈이 호승심으로 번들거리며, 그대로 맨주먹을 오현석의 주먹에 마주 뻗었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천지사방이 뒤집어졌다.
푸른빛이 대지를 집어삼켰다.
얼마 후.
빛이 잦아들었다.
슈우우우….
“놀랍군. 제삼익을 펼치는 거야 둘째치고, 제삼익의 위력이 어떻게 원영 후기 급인 게냐.”
“그냥, 되더군요.”
오현석은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를 보던 창호자가 갑작스럽게 오현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파앗!
오현석은 최소한의 동작만을 사용해 창호자의 주먹을 피했다.
마치 지금껏 서은현이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왔던 것과 같은 모습.
창호자는 그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너도 진입했구나! 그 시야에!”
“부끄럽지만 이제에야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흐하하하!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나는 의념을 제대로 볼 수 있기까지 80년이 걸렸는데. 너는 50년도 안 되어서 벌써 그 단계라니. 무공에도 나름 재능이 있었던 녀석이었군. 벌써 절정 무인의 시야를 얻었으니, 세 번째 색도 몇십 년이면 얻겠어.”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 스승은 80년에 걸쳐 의념의 세계에 진입하고, 다시 60년에 걸쳐 겨우 세 번째 색을 봤는데, 역시 너는 그쪽에도 재능이 있어. 뛰어난 제자들을 얻으니 입이 귀에 걸리는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스승님.”
오현석이 진중한 눈으로 창호자를 바라보았다.
“이 제자가 이룬 경지라면, 스승님께서 보시기에 서은현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보십니까?”
“흠….”
그 말에, 창호자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필패다. 하지만, 네가 더욱 더 정진하면 분명 가능하다. 은현이는 최근 성장이 더뎌지는 것 같은데 너는 여전히 꾸준하게 성장 속도가 오르고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까.”
‘단호하게 필패라. 나와 녀석의 차이가 그만큼 심대하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스승님께서, ‘필패’라고 말해 주셨다.’
이전까지는 그와 서은현의 격차를 물어보면 저렇게 결과를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더욱 더 정진하라는 말만 했을 뿐.
한 마디로, 이전까지는 그와 서은현의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 싸움이 성립은 된다는 뜻!’
그 말인즉슨.
‘녀석과, 어느 정도는 붙어 볼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오현석은 호승심이 어린 표정으로 서은현을 떠올렸다.
‘이제, 곧이다!’
* * *
쿠웅!
다시금, 서은현과 오현석이 서로를 마주했다.
‘녀석의 주변은….’
완전히 붉다.
그리고 틈새도 없었다.
오현석은 서은현의 의념을 읽어 내며, 왜 창호자가 자신의 필패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수백, 수천, 수억 개는 될까?
무수한 붉은 실선들이 오현석을 뒤덮고 있었다.
‘거기에, 저 하나하나가 즉사기 급.’
하나라도 제대로 맞으면 죽을 수 있다.
너무 경지가 낮았을 때에는 오히려 서은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가 오르고 나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군, 벌써부터 녀석을 이기고자 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버리자.
녀석을 이기겠다는 생각을 접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녀석에게 배울 것을, 배워 간다!’
타앗!
오현석과 서은현.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부딪쳤다.
오현석이 발을 구르며 주변의 오행을 장악하였다.
주변의 지형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오현석에게 알맞은 전장을 제공하였다.
쿠구구구!
오현석은 마치 폭풍처럼 서은현에게 쇄도하며 주먹을 날렸다.
쩌엉, 쩡, 쩌어엉!
오현석의 일격에, 지반이 뜯겨 나가며 지형이 변해 간다.
‘전부 피하는군.’
하지만 오현석은 한 번도 서은현을 맞추지 못했다.
서은현에게는 푸른 선도 통하지 않았다.
전부 서은현의 붉은 선이 푸른 선을 차단하며 무화된다.
‘하지만….’
붕, 붕, 부웅!
오현석은 더더욱 속도를 높였다.
육신의 속도와 더불어, 비둔술이 그의 몸에 겹쳐지며 오현석은 마치 빛살처럼 서은현에게 따라붙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속도가, 원영기 수도자의 비둔술과도 같은 속도에 도달하였다!
‘어떠냐! 과연 네가 이것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무리 의념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더라도, 결국 몸이 따라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현석이 속도를 높이자 점차 여유롭게 피하던 서은현이 아슬아슬하게 오현석의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된다.’
오현석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전에는 길어도 10초 안에 서은현과의 승부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비록 제대로 공격은 하지 못했지만, 서은현 역시 그의 틈새를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어느 정도 합이 맞고 있다!
싸운다는 구색이 갖춰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현석의 공격을 피하던 서은현이 옅게 미소지었다.
“훌륭히 성장하셨군요. 그럼 이제….”
동시에, 서은현의 몸에서 환한 빛이 떠올랐다.
“저도 조금 제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파아앗!
서은현의 움직임 위로, 비둔술의 둔광이 겹쳐졌다.
그와 함께, 서은현의 속도가 폭증하였다.
‘뭣!’
다음 순간.
서은현의 손이 오현석의 전신 곳곳 요혈을 점했다.
쿠웅!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들이 오현석의 요혈들로 파고들며 그의 체내에서 흐르는 기의 흐름을 헤집는다.
“크윽!”
그리고, 끝이었다.
오현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여태까지, 비둔술도 안 쓰고 그냥 육체의 빠르기와, 의념의 향방, 그리고 발놀림 약간만으로 내 공격을 전부 피해 왔다는 건가.’
실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내 힘으로 녀석이 비둔술을 꺼내게 만들었단 거로군.’
그는 좌절하지 않고 웃으며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너에게서 뭘 꺼내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럼 이제 제 승리….”
우득, 우드득!
요혈이 점해진 상태로, 오현석이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서은현이 불어넣은 기운들이 그의 요혈을 자극하며 오현석의 움직임을 방해했지만, 억지로 움직이자 피기 뿜어져 나올지언정 움직여지기는 했다.
그리고, 피가 뿜어진 곳의 상처는 이내 바로 재생되어 버렸다.
“이것마저 받아낸다면, 오늘은 네가 이겼다 해 주마!”
촤라락!
오현석의 등 뒤로 세 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그리고 서은현이 반응하기도 전.
오현석은 주먹을 내질렀다.
쿠구구구구!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어마어마한 권격의 폭풍!
위럭도, 속도도 다르다.
‘과연, 이번에도 피하겠느냐!?’
피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다음 순간.
서은현이 비둔술을 덮어쓰고, 몸의 기운을 폭발시키며, 동시에 마치 예리한 검 같은 기운을 몸에 둘렀다.
파아아앗!
서은현은 일순간 빛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오현석은 그것을 보며 웃었다.
‘이번에는, 여유가 없었군?’
어쩐지 느껴졌다.
방금 전의 일격은, 서은현이 상당한 힘을 쏟아내서 피한 것이다.
어쩌면, 전력을 다해 피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창익천쇄는 두 번 나간다.
콰과과광!
오현석의 다음 일격이 서은현을 향해 뻗쳐 나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처음으로 서은현이 허공에서 손을 마주 뻗었다.
슈캉!
그리고, 오현석의 공격이 잘려 나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소리소문없이 그의 일격을 베어 갈랐다.
인지조차 되지 않았다.
그냥, 그것이 끝이었다.
“…하, 하하하하!”
그는 기쁘게 웃었다.
‘즐겁군.’
즐겁다!
처음에는 망가져 버린 서은현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눠 보기 위해 강해져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냥 몸을 움직이며 강해지고, 서은현과 대련하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즐기면서 해 온 모든 것들이.
마침내, 서은현이 처음으로 그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마주 공격을 뻗어 온 것으로 보답 받았다.
“그래, 내가 졌다.”
오현석은 씨익 웃으며 선선하게 말했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네가 그 공격을 나와 제대로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지.”
서은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어쩐지 쓰게 웃었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창호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자, 그나저나 두 사람도 이제 다들 쓸 만한 수준까지 컸으니, 슬슬 새 임무를 내릴까 한다.”
오현석과 서은현은 창호자를 쳐다보았다.
“일단 너희에게 줄 임무는 두 가지가 있다. 원하는 걸 맡아서 하면 되겠지. 최근 들어, 괴군 조연이 뭇 종족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생체 괴뢰로 만든다는군. 그 때문에 천족 연맹회에서 괴군을 잡는 수배를 강화했다고 한다.”
창호자의 말에, 서은현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합체기 태수분들께서 가서 잡으면 괴군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어째서 태수분들은 움직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글쎄… 나도 그 이유는 모른다. 다만, 합체기 태수분들은 현재 우리 인족 구역 인근에 뭔가 찾을 것이 있다고 하며 인족 구역에 전부 몰려 계신 상태지. 해서 괴군을 상대할 이들이 부족한 모양이더구나.”
“….”
“해서, 천족 총연맹에서 임무를 내렸다더군. 일단 괴군의 기묘성채 인근에서 괴군을 감시하고, 염탐하며 그의 정보를 모으는 임무다.”
오현석은 창호자에게 물었다.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하셨는데, 나머지 하나는 무엇입니까?”
“나머지 하나는 진마계 관련 임무다. 진마계에서 광한계로 넘어온 마족이 하나가 있는데, 잡아 오는 임무지.”
“그럼 저희가 각각 그 임무들을 맡아 하면 되는 것입니까?”
오현석의 질문에 창호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임무는 하나하나가 극히 위험한 임무들이라 너희가 둘 다 가야 할 것이다. 너희 외에도 일운 제자 셋, 이운 제자 열 명이 함께 갈 것이다. 너희에게 물어본 것은, 너희 둘이 어디로 함께 가고 싶냐는 걸 물어본 거지.”
“흐음….”
오현석이 고민할 때, 창호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스승된 자로서 괴군 관련 임무는 맡지 않기를 바라마. 그 미치광이를 염탐해 정보를 수집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야. 더군다나 너무 위험하기도 하다. 물론 너희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너희가 진마계 임무를 맡았으면 한다.”
창호자의 말에, 오현석은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저렇게 말하시니 일단 나는 말씀하신 대로 하려 하는데, 넌 어떻게 할 거지?”
그 말에 서은현은 오현석과 눈을 마주쳤다.
흠칫!
오현석은 몸을 움찔했다.
‘감정’.
정말로 오랜만에, 서은현의 눈에서 ‘감정’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저는… 괴군에게 가 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창호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째서냐.”
“괴군의 밑에, 제 동료가 있으니까요.”
“흠, 그랬었지.”
서은현의 말에 오현석은 몸을 떨었다.
‘그랬군, 김연 주임이 있었어.’
괴군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미치광이.
그 미치광이에게 잡혀 있다는 김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도, 그는 여지껏 뭘 했는가.
‘그래, 그런 자 밑에서 있을 김 주임을 걱정했었던 거군.’
오현석은 정말 오랜만에, 서은현의 인간적인 면모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는 굳은 결의와 함께 창호자를 쳐다보았다.
“아시겠지만, 저와 서은현은 같은 곳 출신입니다. 괴군에게 잡혀 있다는 그녀 역시 제 동료이기도 하니, 저 역시 가겠습니다!”
“…휴우.”
창호자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희의 선택을 존중하마.”
그렇게, 운명이 비틀리며 본래 진마계의 마족을 잡는 임무를 맡았어야 했던 오현석은, 괴군의 기묘성채를 염탐하는 원정대에 참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