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3)
오현석이 서은현을 처음 본 건, 서은현의 입사 첫날이었다.
회사 건물에 들어와서, 첫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그를 도와준 것이 오현석이었었다.
어째서일까.
지금 그 순간이 생각이 났다.
환한 얼굴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던, 예의 바른 후임.
촤락, 촤락!
오현석의 팔에서 삐져나온 날개가, 그의 몸에서 떨어지더니 그의 등 뒤로 날아가 오현석의 등을 떠받쳤다.
창령성광오채대법.
첫 번째 날개.
쿠릉, 쿠르르릉!
오현석은 자신의 주먹에 담긴 거력을 보고는, 서은현을 쳐다보았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거다.”
“그래 보이는군요.”
“피하려 하지 말고, 너도 자신 있는 기술로 맞부딪치는 게 좋을 텐데?”
“자신 있는 기술이라….”
서은현은 옅게 웃으며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 제게서 그런 걸 끌어내기엔,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역시, 바뀌었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깃든 저 말투.
심유한 눈빛.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서은현의 행동 하나하나.
왜인지는 몰랐지만, 오현석은 서은현이 어느 순간 망가져 있다고 느꼈다.
정말로 왜인지는 몰랐다.
그는 예전부터 사람의 감정을 읽는 건 잘 했으니까.
“뭐, 한번 받아 봐라.”
오현석은 양팔에 담긴 기운을 더욱더 활성화시키며, 푸른빛으로 물든 주먹을 서은현에게 내질렀다.
쿠구구구구!
천지가 뒤집어지며 눈앞의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듯했다.
서은현을 향해 압도적인 권풍이 날아갔다.
타앗!
그러나, 서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보보를 디뎠다.
그리고, 오현석이 내지른 일격의 범위에서 빠르게 벗어난다.
스치기라도.
아니, 하다못해 그 범위에만 있어도 치명상은 피할 수 없는 일격.
하지만, 서은현이 허공을 향해 손을 몇 번 휘두르자 그는 권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베었군.’
오현석은 눈을 빛내며 서은현이 한 짓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치 한 자루의 검(劍)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손을 내저을 때마다, 허공을 흐르는 미약한 힘의 흐름들이 전부 베여 나가며, 서은현이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양손 중 한 손만 뻗은 공격이었다.
나머지 하나가 더 남아 있다!
쿠구구구구!
오현석의 손에서부터 푸른 청격이 다시 한번 서은현에게 뿜어졌다.
‘막 피한 직후다, 과연 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서은현은 보란 듯이 다시금 바로 오현석의 일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순식간의 그의 앞에 다가온 서은현이 손바닥을 뻗었다.
투웅!
그리 강하지는 않은 힘.
그러나, 그 일격에는 기이한 묘리가 섞여 있어 오현석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티잉!
오현석은 자신의 몸 안에서 검명(劍鳴)이 울린다고 생각했다.
푸확!
반응할 새도 없이, 오현석은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기절해 버렸다.
‘제, 길….’
너무 강하다.
서은현은, 그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 * *
“그러니까, 이건… 아니! 그건 회의용 파일이잖나! 부장님이 준 파일은 이쪽에다가 모아 두는 거네.”
“아, 감사합니다!”
‘아, 이건….’
오현석은 순간 눈을 꿈뻑였다.
그러나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꿈이군.’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회사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었다.
“아니, 이건 그게 아니고… 줘 보게. 보여 주지.”
“네, 죄송합니다!”
입사 초, 자신에게 일을 배우며 잔뜩 긴장한 서은현과, 그에게 일을 가르치는 오현석 자신의 모습이었다.
‘입사 초에는 실수를 많이 했지.’
심지어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자신의 자리에 놓인 커피를 툭 쳐서 오현석의 서류들을 커피로 물들였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조금 화가 많이 났었는데 말이지.’
오현석은 기억을 더듬었다.
‘저 서류를 보아하니, 아마 이 시점은 커피 사건 이후로군. 그때 내 안색이 한참 안 좋아졌어서 그 이후로 바싹 긴장한 모습이야.’
얼마간 실수를 하면서 혼난 서은현을 보며, 과거의 오현석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은현 씨, 잠시 와 보게.”
오현석은 제3의 시점에서 그 광경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이때… 그것도 생각나는군.’
“네, 오 과장님.”
그는 서은현을 대리고 흡연실로 갔다.
둘은 담배를 태우며 잠시 서 있었다.
“은현 씨, 회사 생활은 어떤가?”
“예, 만족스럽….”
“좆같지?”
“어….”
오현석은 피식 웃으며 서은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해하네. 상사란 놈은 뭘 하든 꼬치꼬치 달라붙어서 트집 잡지. 입사 동기인 전명훈 그 새끼는 씨발 전무님 이름 믿고 일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니지. 듣자 하니 민희 씨하고는 저번에 대판 싸웠다면서?”
“….”
너무 솔직하게 뒷담을 까는 오현석의 말에, 서은현은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일단 상사로서 자꾸 트집 잡는 건 조금 미안하네. 그래도 일을 완벽히 배울 때까지는 계속 꼬집어 주는 게 상사의 일이거든. 그리고 뭐… 솔직히 전명훈 그 새끼는 나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오르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그 새끼한테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리고 내가 볼 때 그런 놈들은, 십중팔구 문제 하나 터트려서 제 발로 회사 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 일단 감사합니다.”
“그래, 뭐. 솔직히 우리 부서에서 전명훈 그 녀석 일 안 하는 거 누가 모르겠나.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뭐랄까, 너무 좀 떠받들어지면서 사는 데에 익숙해진 놈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좀 있는 놈이야.”
오현석은 전명훈의 뒷담을 까며 서은현과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사람과 사람이 빠르게 친해지는 데에는 뒷담만 한 것이 없었다.
오현석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혼나던 서은현의 얼굴이 어느새 상당히 밝아졌다.
“그리고 뭐 민희 씨는, 자네랑 그냥 사고방식이 너무 상극이라서 그런 것 같으니까 자네가 좀 이해하게. 내가 볼 때는 민희 씨가 말하는 것도 맞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자네가 생각하는 방식이랑 너무 다른 게 문제인 것 같아.”
“예, 저도 이해는 합니다. 다만 조금, 업무가 겹칠 때는 다투는 일이 많으니까 그게 문제지요.”
“하하, 뭐 앞으로는 두 사람 업무가 안 겹치게 조금 신경 써 주겠네. 아, 그리고….”
치익….
오현석은 담뱃불을 끈 후 두 손을 털며 말했다.
“앞으로도 힘든 일 있으면 담배 타임 좀 가지자 말하게. 같이 나가서 얘기 좀 들어 주지.”
“…감사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흡연실을 나섰다.
* * *
“…역시.”
번뜩!
오현석은 눈을 떴다.
“다른 사람이야.”
아직도 전신이 욱신거렸다.
꿈 속에서 봤던 서은현의 얼굴과, 그를 향해 무표정하게 일격을 내지르던 서은현의 얼굴을 비교해 보았으나, 너무나도 다른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주변이 흔들리며, 그의 앞으로 창호자가 걸어왔다.
오현석이 주변을 둘러보자, 수련장이었다.
기절하고 나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괜찮으냐, 현석아? 오늘도 또 졌구나.”
“예, 괜찮습니다.”
오현석은 몸을 털고 일어났다.
“제일익을 펼칠 수 있게 되었구나. 결단 중기는 되어야 펼칠 수 있는 기술이건만. 막 결단에 오르고서 이제야 펼치다니….”
“스승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창호자 너머에서 투명한 눈동자로 담담하게 그들을 보는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이봐, 서은현!”
오현석은 창호자를 지나치며 서은현에게 말했다.
“역시, 오늘에서야 확실해졌다. 너 말이다, 예전이랑 너무 바뀐 게 아니냐?”
“뭐, 환경이 바뀌었으니 사람도 바뀐 게 아니겠습니까.”
“글쎄, 사람이 바뀐 정도가 너무 극심한 것 같아서 말이다. 정말로 나랑 얘기나 나눠 볼 생각은 없는 거냐?”
“…죄송하군요, 할 게 많아서 그럴 시간은 없을 듯 합니다.”
타앗!
말을 마친 서은현은 비둔술을 쳘쳐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오현석을 향해, 창호자가 다가와 호탕하게 웃었었다.
“녀석도 열심히 수련하려 하는 것이겠지. 너무 상심하진 말거라.”
그 위로에, 오현석은 문득 기이한 기분이 들어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내가 후임들을 위로해 주던 입장이었는데 말이지.’
어느새 그가 제자가 되어 스승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수련도 좋지만, 그래도 예전 동료였던 저와 최근 너무 대화를 안 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대화를 안 한다라….”
그 말에 창호자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껄껄 웃으며 오현석의 등짝을 두들겼다.
“우리 창천개벽문의 사람은 원래 주먹으로 하는 대화를 가장 신뢰한다. 앞으로 더욱더 강해져서, 저 녀석과 제대로 주먹의 대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정진하면 되잖느냐.”
“…하하, 그렇군요.”
너무 무식한 근육 이론.
하지만 어쩐지 오현석은 스승의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주먹의 대화라….’
주먹의 대화인지는 몰랐지만.
최근 창호자와 대련을 하며 간혹 느껴지는 게 있었다.
어떠한 선 같은 것들이 그와 창호자 사이에서 얼핏얼핏 보이고는 했다.
그 선을 따라가면 상대의 공격을 알 수도 있었고, 가장 좋은 경로를 알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간혹 상대의 감정 같은 것들이 느껴지고는 했다.
‘필시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거겠지.’
그는 그 선을 느꼈던 감각을 떠올렸다.
‘상대와 대련을 할 때에 느껴지는 선들. 하지만 분명… 대련이라는 건 상대와 대등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서은현과 그는, 너무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대련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강해져야지.’
서은현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그와 최소한 대등한 위치에서 말을 나눌 수 있을 때까지.
오현석은 하늘을 바라보며, 더욱더 강해지고자 마음먹었다.
* * *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 또 다시 10년이 지났다.
어느덧 오현석은 결단 초기를 완공하였다.
쿠구구구구!
전신의 기운이, 한 곳의 어색함도 없이 전신을 흘렀다.
어떤 것도 이상함이 없이, 한없이 자연스럽다.
우우웅!
오현석의 몸에서 빛이 흘렀다.
그는 감았던 눈을 반개하였고, 그러자 그의 눈에서 서광이 흘러나왔다.
“결단 초기. 천시원(天市垣).”
오현석의 금단 안쪽.
그곳에서 창령성광오채대법을 상징하는 영기의 별들이 일렁이며, 대법을 상징하는 별자리를 굳혔다.
우우우웅!
오현석은 하늘 저 너머.
거대한 궁창의 너머에서 전해지는 하늘의 천지영성을 내려받으며 읊조렸다.
“명(命)에는 꾸밈이 없으니.”
결단기(結丹期)에는 총 네 가지의 경지가 존재했다.
결단 초기, 천시원(天巿垣) 기형명야솔(其形也命率).
결단 중기, 태미원(太微垣) 기봉명야경(其奉也命敬).
결단 후기, 자미원(紫微垣) 기양명야혜(其養命也惠).
결단 대원만, 천상열차분야(天象列次分野) ― 기사명야의(其使命也義).
천시원은 자신의 몸을 흐르는 생명과,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운명이 막힘이 없게 몸 곳곳을 흐르는 흐름을 완벽하게 정돈한다.
자신의 몸을 흐르는 기(氣)를 자신의 백성으로 보고 백성들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숨김없는 순수한 생명력이 전신에 돌며,
숨김도 꾸밈도 없는 순수한 운명의 형태를 얻을 수 있다.
태미원은 전신의 기혈을 바깥과 통하게 해방시키고, 자신의 몸을 하늘과, 자기 자신의 운명과 통하게 하여, 스스로를 운명을 받드는 제단(祭壇)으로 삼는다.
자신의 몸을 흐르는 백성인 기(氣)를 장악한 후 기를 다스리기 위하여, 운명의 힘을 빌려 그의 몸을 제단이자, 하나의 나라로 삼아 대신(大臣)들을 소집하여 몸을 다스리는 단계였다.
자미원은 터를 다지고 제단을 만들어, 마침내 자신이 하늘과 땅을 잇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백성을 장악하고, 대신들을 소집한 후 스스로가 왕(王)이 되어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력을 극한으로 장악했기에, 이 단계에 이른다면 목이 잘려도, 전신이 발기발기 찢어져도 금단만 남아 있다면 몸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
천상열차분야의 단계는 천시원, 태미원, 자미원에 이어져, 제사장으로 화하여 운명에 제의를 치르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자신의 생명력은 물론 외물과 타인의 생명력에도 간섭이 가능하며, 원영기에 이르기 직전인 단계인 만큼 ‘계위’라는 것에 어느 정도 감을 잡기 시작한다.
결단기에 해당하는 이 네 가지 단계는,
명의 형태는 꾸밈이 없고(其形也命率).
명을 받듬에는 공경스러우며(其奉也命敬).
명을 살게 함에는 은혜로웠고(其養命也惠).
명을 부림에는 의로웠다(其使命也義).
라는 구절로 이해가 되었다.
‘이 결단기의 구결들이라는 건 마치, 인간이 운명을 받드는 과정 같아 보이는군.’
처음에는 명을 꾸밈없이 바라보고.
다음에는 명을 받들며, 그 다음에는 명과 하나가 되어 은혜로이 사는 듯했으나.
종래에는 명을 부리게 된다.
‘이래서 수도가 곧 역천이라는 것인가.’
하늘을 바라보고, 닮아 가며, 제의를 치러 하늘을 받들지만.
어느 순간 또 하나의 하늘이 되어, 하늘을 부려 버리는 역천(逆天).
하늘을 스승으로 삼다가, 종래에는 자신이 그보다도 위대해지겠노라는 오만함의 극치.
그것이, 수도자.
운명에 다가서는 천족(天族)인 셈이었다.
그리고, 오현석은 최근에 수도공법이라는 것을 수련하며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스승으로 삼고, 종래에는 부리는 것이 수도공법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수도공법을 수련하면 할수록….’
수도공법들은 모두, 하늘이란 것을 ‘살아 있는’ 객체로 대하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만약 하늘이란 게 살아있는 것이라면, 자신보다 높아지려 하는 패륜적인 이들을 가만히 놔 두는 게 맞는가? 천겁이라는, 신외지물의 힘을 빌려도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을 천겁으로만 내버려 두는 것이 정말… 끝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하늘이 살아있는 어떠한 존재라면.
그들이 과연 하늘마저 넘어설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하늘은 어찌 반응하는 것인가?
오현석은 체내에 자리 잡은 금단을 관조하며, 그러한 생각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