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51화 (151/185)

스승의 은혜 (2)

오현석은 번뜩 눈을 떴다.

“허억! 헉!”

너무 아파서, 순간 기절했던 것 같았다.

‘바, 방금 뭐였지?’

순간 그의 스승인 창호자가 앞에 나타나, 주먹을 들어 올렸던 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 그런가.’

오현석은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대련하다가 기절한 것이었다.

펑볌할 것도 없었다.

늘 평소에 하던 식의 대련이었으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군.’

하지만 그는 기묘한 기시감에 머리를 갸웃했다.

지금쯤이면 분명, 창호자가 다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앞에 나타나, 오현석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 놓고 있어야 했다.

콰과과과광!

그때, 저 멀리.

수련장 한쪽의 산봉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산 위로 푸른 빛살과 하얀 빛살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흰 빛살은 푸른 빛살을 피해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는 듯했다.

‘아, 그랬군.’

오현석은 다시금 방금 전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서은현이랑 함께 축기기에 오르고 난 직후였지?’

분명 그랬다.

서은현과 함께 축기에 막 오르고 난 직후.

그의 스승인 창호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축기기에 오른 기념으로 대련하자고 해서, 실컷 두들겨 맞고 기절했었다.

‘휴우, 정말 무시무시한 일격이었지.’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는 저 멀리 산봉우리를 무너뜨리고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두 빛 덩이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나저나 서은현이 저거, 어떻게 스승님 밑에서 저 정도로 버티고 있는 거지?”

이 세상은 이미 익숙해졌다.

언어도 완벽히 익혔고, 문화와 별자리.

그리고 수도공법이라는, 이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기이한 주술 같은 것들 역시 진즉 익숙해졌다.

연기기니, 축기기니 하는 경지들 역시 이해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해했기에 오현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녀석, 방금 나랑 같이 축기에 올랐던 게 아니었나?”

쿠구구구!

다시금 저 멀리 산봉우리 하나가 또 무너졌다.

쿠구구구!

하얀 빛살 속에 있던 인영이, 푸른 빛살을 향해 손을 뻗자.

거기에서 나온 하얀 권풍이 산을 함몰시킨 것이었다.

가히 말도 안 되는 힘!

‘나보다도 훨씬 재능 있는 녀석이군.’

오현석은 1년 만에 축기를 찍은 자신의 재능 역시,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던 스승님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진짜 재능 같은 건, 저런 녀석이지. 나 같은 게 무슨 재능이란 말이냐.’

1년도 안 되어서 축기기를 찍는 재능.

1년도 안 되어서 축기기의 몸으로 원영기 급 일격을 내지르고 다니는 재능.

뭐가 더 뛰어난지는 보기만 해도 알 것이리라.

“회사에서도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는데. 여기 오니까 그래도 재능을 찾았나 보구나.”

그는 회사에서의 서은현을 떠올렸다.

분명 말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하는 후배.

‘챙겨 주기만 했던 녀석이, 어느새 저 정도로….’

오현석이 회사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때.

콰아아앙!

푸른빛이 폭발하더니.

저 멀리서 흰색의 빛살이 산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의 앞으로 빛이 번쩍이더니 푸른 기운을 몸에 두른 창호자가 오현석의 앞에 나타났다.

“저런, 기다리고 있었구나. 서은현 녀석이 여간 흥미로운 재간을 많이 보여 주길래 잠시 흥이 돋아 녀석만 봐 주고 있었구나.”

“하하… 재능 있는 녀석 같으니 조금 더 봐 주셔도….”

“무슨 소리. 제자로 받았는데 편애하는 일 따위는 없다! 걱정하지 마라! 너 역시 내가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잠시….”

콰아아앙!

그리고,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

창호자의 주먹이 오현석의 배를 후려쳤다.

오현석은 단박에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훌륭한 제자들이로고. 걱정하지 말려무나. 너희가 지닌 재능은 둘 다 엄청난 것들이기도 하지만, 설령 너희가 천하의 둔재더라도, 인간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생물이니.

스승 된 자로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를 잘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 주마.”

창호자는 기절한 오현석의 한쪽 발을 잡아, 질질 끌고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

“1년쯤 됐으니, 이제 슬슬 수련장이 완성되었겠군. 이 녀석들 재능에, 축기기쯤 되었으면, 슬슬 인간의 몸으로 자연에 대적하는 훈련도 시킬 수 있겠어.”

창호자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저 멀리 떨어져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서은현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서은현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

창호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서은현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서은현은 다시 피를 토하며 기절했고, 창호자는 두 사람의 발을 질질 잡아끌며, ‘수련장’으로 향하였다.

* * *

“크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

거대한 물살이 사방을 휩쓴다.

오현석은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해일’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내뻗었다.

쿠구구구구!

창령성광오채대법을 익힌 그의 주먹에서, 푸른 빛살이 회오리치며 용권풍을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아!

오현석의 주먹에서 뻗어 나간 용권풍이, 해일을 뻥 뚫어 버렸다.

“하아아아압!”

쿠우우웅!

그가 기합을 주자, 그의 기세에 밀려 주변의 물살들이 사방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천지사방으로 창호자의 음성이 울렸다.

[오채(五彩) 치환(置換). 폐백(肺白), 금(金).]

키링, 키리리리링!

그와 동시에, 오현석의 주변을 뒤덮고 있던 ‘바다’가 일시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딱딱하게 굳은 ‘바다’가 사방으로 가시처럼 뻗쳐 왔다.

“크윽!”

오현석은 황급히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촤좌좌좌좍!

쇠!

쇠로 된 가시들이, 천지사방으로 뻗쳐 나가며 오현석을 쫓아왔다.

채챙, 챙!

저 멀리서, 흰빛이 불어닥치며 쇠로 된 가시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저쪽은 서은현인가. 일단 녀석과 합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오현석이 무언가 판단을 하기도 전.

다시금 사방에서 창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현아, 오행장원전을 운용해야 수련이 되지 않겠느냐. 네겐 너무 쉬운 듯하니, 조금 더 수련 중량을 올리겠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구!

하늘에서, 산만 한 쇳덩이가 서은현에게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주변이 울리며, 폭음이 터지고 광풍이 사방으로 불어닥쳤다.

오현석은 연체공법의 호체지력(護體之力)을 몸에 두르며, 쇳가루가 섞인 광풍 너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

그리고,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번쩍!

쇳덩이가 백색의 섬광과 함께 반으로 갈라지며, 안쪽에서 서은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미 사람의 범주는 넘어섰군.’

오현석이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던 모양.

카가가가각!

하지만 그가 서은현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할 틈새도 없이, 수십 수백 개의 쇠로 된 가시들이 그를 향해 덮쳐 왔다.

“크으으윽!”

얼마간 쇠의 영역에서 씨름했을까.

오현석이 익숙해졌을 때쯤, 다시 하늘에서 창호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채 치환. 비황(脾黃), 토(土).]

쿠구구구!

쇠로 된 천지사방의 속성이 변하더니, 땅에서 산들이 치솟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

끊임없이 지형이 변하며, 오현석을 압박했다.

‘사방 십 리라고 했던가.’

사방 십 리가, 창호자의 의지에 따라 오행(五行)의 성질이 변하는 수련장이었다.

얼마간 다시금 오현석과 서은현이 익숙해지면 다시금 성질이 변한다.

[적심(赤心), 화(火).]

쿠구구구구!

산이 녹으며 반경 십 리가 용암의 바다로 치환되었다.

오현석은 전신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기분을 느끼며, 공법을 운용하여 극한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높였다.

[청간(靑肝), 목(木).]

쿠구구구!

불길 속에서 갑자기 나무가 자라나더니, 사방이 다시금 수해(樹海)로 뒤덮였다.

[흑신(黑腎), 수(水).]

촤르르르!

얼마 후 나무의 바다는 창호자의 말에 따라 주르르 녹아내리며 다시금 푸른 바다가 되어 그를 덮쳤다.

창호자의 오행태응(五行太應)이라는 수련법.

제자들을 수시로 바뀌는 극한 환경에 던져 둔 후 살아남게 하며, 더 높은 경지의 수사를 상대로.

자연재해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수련법이었다.

[잘 들어라, 현석아. 네가 타고난 일문성체(一紊聖體)는, 혼원성체(混元聖體)라고도 불리우며 만상 만물의 경계를 흩어 버리는 게 가능한 자질이다.

일문성체에는 수많은 공능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공능은 역시나 오행혼원(五行混元)! 일문성체는 사실상 오영근에 대응되는 체질이지만, 그 수련 속도는 천영근보다 최소 일곱 배 이상 빠르다!

그렇기에 오행속성 모든 것을 전부 익힐 수 있으며, 음양지력 역시 다루는 게 가능하지. 서은현이 지닌 날카로운 힘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공능 하나만으로도 너는 사실상 서은현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쿠구구구!

사방의 오행이 변화하며 오현석의 몸을 압박했다.

[거기에 일문성체는 알려지지 않은 공능들 역시 잔뜩 타고난 신의 육신! 창령성광오채대법을 잘 수련하기만 하면, 너는 말 그대로 무적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법을 잘 운용하거라, 제자야! 너를 믿고 있다!]

쿠구구구!

‘그런 소리는, 이런 무지막지한 곳에서 조금 꺼내 준 후에 하십시오!’

오행이 그의 주변에서 변화하며 점차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현석은 무언가, 자신의 몸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퍼어어엉!

푸른빛이 폭발하며, 오현석의 몸에 난 자잘한 생채기들을 전부 치유했다.

“이, 이건….”

우우우웅!

오현석은 자신의 단전 안에서, 영기의 별이 하나가 더 생겨난 것을 확인했다.

[역시 놀랍구나! 축기기에 오른 지 하루 만에 각수, 항수 두 개의 별을 이루다니!]

창호자가 껄껄 웃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고, 얼마 후.

더욱더 심한 오행의 폭풍이 오현석과 서은현을 덮쳐 왔다.

[자, 그럼 계속 수련을 해 볼까?]

오현석은 이를 악물고 창호자가 내리는 수련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 * *

쿠구구구!

땅에서 산이 솟구쳐 오른다.

“하아아앗!”

오현석이 기합을 주자, 그의 눈앞에 솟구친 산 하나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쿠구구구!

산 위쪽에서 나무들이 자라나며, 오현석을 향해 달려들어 그를 묶었다.

“흐하하하!”

그러나 오현석은 가소롭다는 듯이 안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무들은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전혀 오현석을 막지 못하였다.

화르르륵!

나무에 불이 붙으며, 곧이어 주변이 화염 산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오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곳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산 하나가 그대로 뜯겨 나가며, 그 안쪽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푸른빛의 중심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창호자가 있었다.

창호자가 빙그레 웃었다.

“어느새 오행장원전의 구결을 역추적해서 나를 찾을 수 있게 되었구나.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쿠우웅!

오현석은 껄껄 웃으며 창호자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뻗었다.

창호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마주 주먹을 뻗쳐 왔다.

“훌륭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콰아아앙!

둘의 주먹이 부딪쳤고, 오현석의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오현석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으나, 오히려 창호자와 똑같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시금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팔에서 뿜어지는 피는 어느새 멎은 후였다.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 그의 몸을 치유한다.

그리고, 두 근육질의 거한이 미친 듯이 주먹을 치고받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한 번의 주먹이 오갈 때마다, 사방의 오행이 바뀐다.

화염산이 녹아내리며 대해로.

대해가 굳으며 쇠의 천국으로.

쇠가 물러지며 흙으로.

퍼엉, 퍼엉, 퍼엉!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창호자의 주먹이 오현석의 몸을 두들겼다.

그때마다 오현석의 몸이 뜯겨 나갔으나, 오현석이 힘을 주자 푸른빛이 맴돌며 그의 육신을 치유하였다.

쿠광, 쿠과과과광!

얼마간 폭음이 더더욱 빠르게 울리며, 두 사람이 주먹을 주고받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콰앙, 쾅, 콰앙!

오현석의 주먹이 절묘하게 창호자의 주먹을 빗겨 때리며, 더더욱 많은 부위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오현석의 타격 속도가 빨라지며 창호자가 한 대를 때릴 때, 오현석이 일곱 대를 때리는 교환비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격돌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콰아아앙!

창호자의 주먹이 오현석의 공격을 전부 밀어 버리며 오현석에게 내리꽂혔고.

오현석의 몸이 폭발해 버렸다.

쿠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푸른빛의 낙뢰가 내려와, 오현석의 몸에 내리꽂혔다.

“허, 허허허허! 흐하하하하!”

창호자는 그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쉬이이이….

연기 속에서 오현석이 걸어 나왔다.

“축하한다! 10년 만에 결단(結丹)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수련 속도구나. 광한계 토박이들도 결단기는 50년씩은 걸리는데.”

오현석은 멋쩍게 웃었다.

“아닙니다. 서은현보다야 느리지요.”

“뭐, 그 녀석 재능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니.”

창호자는 껄껄 웃었다.

오현석은 같이 웃으며, 서은현을 떠올렸다.

5년.

서은현은 5년 만에 진즉 결단기에 올랐으며, 오행장원전을 익힌 후.

성광호체공을 익히는 과정으로 넘어갔다.

“자, 그럼 결단기에 올랐으니….”

“또 대련입니까?”

오현석의 말에, 창호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서은현! 어디 있느냐!”

얼마 후.

저 멀리서 백색의 둔광을 타고 서은현이 날아왔다.

쿠웅!

수련장에 떨어진 서은현이, 둔광 속에서 걸어 나왔다.

오현석은 서은현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창호자의 아래에서, 두 사람은 창호자를 상대로 끊임없이 대련해 왔지만.

창호자는 두 사람끼리 대련을 시키기도 자주 시켰다.

그리고 결과는 오현석의 필패.

그는 한 번도 서은현을 이긴 적이 없었다.

‘녀석에게 악감정은 없긴 하다만.’

꾸우욱….

벌써 천 번도 넘게 지기만 했다.

이쯤 되자니,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늘 가르쳐 주기만 했던 녀석이었는데, 오히려 여기서는 내가 늘 배우는 입장이지.’

방금 전 창호자와 주먹을 주고받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은현이 만들었다는 투괴무흔권(鬪怪無痕拳)을 통해 창호자에게 맞섰었다.

서은현은 지난 10년간, 오현석에게 권법은 물론이고, ‘싸우는 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가르쳐 주었었다.

“결단기에 오르셨나 보군요.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그래, 고맙다. 결단기에 이르렀으니, 이제 다시 한번 겨뤄 보자꾸나.”

오현석은 두 주먹을 부딪치며 말했다.

그 말에, 서은현은 피식 웃었다.

“아직 제겐 안 되십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않겠느냐.”

그는 서은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10년.

10년 동안 서은현과 함께 창호자에게 두들겨 맞고, 함께 싸우고, 대련했다.

하지만 아직도 오현석은 서은현을 이길 수 없었고.

아직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창호자에게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날들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등을 맞대고, 때로는 주먹을 맞대 온 서은현.

사람은 붙어 있을 때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한 번도 서은현에게서 감정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녀석은 뭔가 바뀌었다.’

육체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무언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다.

회사에서 보여 주었던, 조금 어리바리하지만, 묵묵하고 노력하며.

때로는 잘 웃어 주었던 후배 서은현.

하지만, 이 세계에 온 뒤로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가끔 웃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웃음에서는 이전의 그 순진한 웃음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 외에 그의 눈을 들여다볼 때면 항상 끝없는 무저갱을 쳐다보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나서는.

한 번도 서은현은 오현석에게 따로 찾아온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같이 커피도 마시면서 잡담을 했던 녀석이었는데.’

주로 오현석이 서은현의 고민을 들어 주는 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상담을 하러 오거나, 잡담을 하지도 않았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늘 수련을 하거나, 공법서를 뒤적이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뀐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법이지.’

대련이 시작되었다.

타앗, 탓!

두 사람이 부딪친다.

세 번.

단 세 번의 공방이 지나갔고, 그 안에 오현석은 서은현에게 바로 제압되었다.

“제가 이겼습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오현석의 팔을 뒤로 젖힌 서은현이 말했다.

그러나.

쿠구구구구!

오현석의 전신에서 푸른빛이 뿜어졌다.

“아직 안 끝났다, 녀석아!”

오현석은 생각했다.

‘녀석은 강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파아앙!

어마어마한 거력을 쏟아내며, 힘 그 자체로 서은현에게서 벗어난 오현석이 서은현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물어도 당최 어쩌다가 저렇게 변했는지를 안 말해 주니, 어쩔 수 없겠지.’

꾸우우웅!

오현석의 양 팔에, 각각 한 마리의 푸른 용의 환영이 맴돌았다.

푸른 용들을 잠시 그의 팔 주변을 맴돌다가, 팔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파아아앗!

용들이 들어간 자리에서, 각각 한 장의 푸른 날개가 돋아났다.

‘무미건조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분명. 스승님과 싸울 때는 가끔 감정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창령성광, 제일익(第一翼)!”

‘녀석만큼 강해져서, 녀석과 제대로 겨룰 수 있게 된다면. 그 속내를 제대로 알 수 있을지도…!’

오현석은 그렇게.

이전까지는 자신의 후임이었던 서은현의 마음을 듣겠노라 다짐하며, 그를 향해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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