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4)
사방에서 뻗어 나온 붉은 선이 주변을 덮는다.
후방에서 일곱 개.
전방에서 세 개.
좌우에서 각각 두 개의 붉은 선.
빈 공간은 상공과 지반 밑.
하지만 지반 밑은 들어가면 내 스스로 지도체련관의 수련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상공 역시, 지금 당장은 의념이 향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다른 이들의 손이 향하기 쉬운 곳.
‘그렇다면….’
나는 후방에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사형에게 역으로 달려들었다.
일곱 개의 의념이 내 팔다리를 향한다.
의념 너머에서 뿜어지는 투기를 보아, 여차하면 내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지도체련관에 잡아 놓겠다는 투지가 흘러넘친다.
파아앗!
첫 손길이 내 어깨를 노렸다.
허용하면 어깨가 빠져 버릴 터.
너는 허리를 살짝 굽혀 손길을 피한 후, 사형의 팔 아래에 손을 가져다 댄 후 살짝 방향을 틀었다.
휘청!
“…!”
방향을 틀어 주자 그는 내게 내지르려던 힘 자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휘청였다.
그 사이로 의념이 마구 흔들린다.
타앗!
나는 그 흔들리는 의념의 틈새 사이를 넘어가, 사형들의 포위망을 일차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포위망은 벗어났지만, 지도체련관 바깥으로 나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한 번에 체련관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나는 눈알을 굴리며, 저 멀리 절벽을 쳐다보았다.
지도체련관 옆에 있는 절벽으로 떨어지면 더 쫓지는 않을 터.
‘절벽까지 스무 보.’
충분히 갈 수 있다!
타앗!
나는 황급히 걸음을 놀려 절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역시나 창천개벽문의 사형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를 지녔다.
파바밧!
순식간에 그들이 나를 뒤따라온다.
그냥 순수하게 신체 능력이 너무 높다 보니, 보법이나 경공조차 필요 없는 이들.
“게 섰거라!”
“어딜 도망치는 거냐!”
두두두두두두!
뒤쪽에서 소름 끼치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여섯 명의 근육질 거한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눈이 뒤집혀서 나를 잡기 위해 쫓고 있었다.
“놈이 절벽으로 간다! 잡아!”
전신이 근육으로 가득 찬 대머리 여수사가 나를 쫓아오며 소리쳤다.
촤악!
두 명의 사형들이 내 어깨를 향해 동시에 손을 뻗는다.
나는 의념을 읽으며 몸을 굽혀 손을 피했다.
파앗!
땅 밑에서 붉은 선이 올라와 내 다리를 향한다.
나는 몸을 굽힌 상태에서, 그대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내가 자리를 박찬 곳에서는 한 쌍의 손이 튀어나와 허공을 짚었다.
쿠구구구구!
하늘 위쪽에서, 마치 운석이 떨어져 내리듯, 머리의 반을 빡빡 민 근육질 여수사가 내게 떨어진다.
타앗, 탓!
나는 경쾌하게 보법을 밟으며 자리를 피했다.
콰아앙!
내가 있던 자리로 떨어져 내린 그녀가 내게 손가락을 뻗어 왔다.
통나무 같은 그녀의 손가락이 내가 있던 자리를 마구 할퀴고는, 반응이 없자 내가 피한 곳을 향해 그녀가 쏘아져 왔다.
투우웅!
나는 반 보를 비틀어 피한 후, 화경으로 그녀를 떨쳐 낸 후 다시금 절벽을 향해 달렸다.
이제 절벽까지 여덟 보!
“싱싱한 신입이 도망친다!”
“잡아라!”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더욱 빠르게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파바밧!
땅 밑에서, 수십 개의 붉은 선이 허공으로 뿜어진다.
‘제길….’
푸확, 푸확, 푸확!
그리고, 땅 밑에서 수 명의 사운, 삼운 제자들이 몸을 드러낸다.
“어딜 도망치느냐…!?”
“우리만 당할 순 없다…!”
총 16인의 사형들이 내 앞길을 막아섰다.
수만은 의념의 선들이 앞을 빽빽히 메운다.
도저히 나아갈 자리가 없을 지경.
하지만, 나는 의념의 세계에 진입한 상태에서 도리어 눈을 감았다.
수십, 수백의 의념이 눈 앞을 가린다.
이 모든 공세를 피할 순 없다.
그렇다고 무형검이나 강환도 없이 반격도 힘들다.
그렇다면.
‘역이용한다.’
타앗!
나는 나를 향해 뻗쳐 드는 손길 하나를 화경을 이용해, 그대로 흘리는 듯하며 공곡전성의 초식을 이용해 그대로 다른 사형에게 되쳤다.
“크억!”
부웅, 붕, 붕!
여러 개의 권각이 나를 향한다.
내 앞으로 밀려드는 다리의 힘을 받아 내, 그대로 뒤에서 달려드는 사형에게 던지고, 옆에서 뻗쳐 오는 주먹을 받아 내, 앞에서 다리를 뻗은 사형에게 흘린다.
수십 개의 의념을 읽고, 수백 합의 공격을 다른 대상에게 흘려내며, 나는 수많은 손길을 피해, 마침내 사헝과 사저들의 무리를 돌파하는 데에 성공했다.
파앗!
그리고, 나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드디어, 빠져나왔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할 때였다.
“…!”
쿠구구구구!
절벽에서, 흙으로 된 거대한 손이 빠져나와 나를 향해 뻗쳐 온다.
“이런 제길….”
너무 맨몸으로만 달려들길래, 순간 잊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원래는 수도자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당황한 것도 찰나.
나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한 후, 내게 뻗쳐 오는 흙으로 된 손을 보고 허공에서 몸을 틀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투욱!
손길이, 내 발에 막 닿을 때였다.
‘지금이다!’
나는 눈을 빛내며 손의 힘을 역이용해, 그 힘에 힘입어 더욱더 멀리 뛰어올랐다.
파아앙!
삽시간에 지도체련관의 산봉우리가 눈앞에서 멀어졌다.
지도체련관의 사형제들이, 입맛을 다시며 내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아쉬워한다.
순식간에 지도체련관의 봉우리, 목도관, 수도관, 금도관의 봉우리가 눈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어?”
나는, 뭔가 불길한 감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지도체련관에서 빠져나온 흙의 손의 힘을 역이용해 더욱더 먼 곳으로 뛰었다만, 어째 그것 때문에 내가 향하는 곳의 방향이….
‘화, 화도체련관!’
내가 황급히 사실을 알아낸 후, 필사적으로 방향을 바꾸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염룡(炎龍)이 입을 벌리며, 허공에서 날아가는 나를 집어삼켰다.
콰르르르!
나는 염룡의 입에 물린 채, 그대로 어딘가로 떨어졌고, 주변에서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빌어처먹을.’
호랑이를 피하려다, 곰 굴에 들어왔다.
“하하, 신입. 허공에서 날아다니며 우리 화도체련관으로 오고 있던데, 그건 화도장원전을 수련하겠다는 의지인 건가?”
“어이, 잠깐. 그 신입 영근 검사는 해 봤나? 화영근이 아니면 정중하게 다른 체련관에 넘기는 게 맞지!”
“흐하하, 내 염룡의 술법으로 물 때 바로 해 봤지. 이 녀석은 확실한 화영근자다!”
화르르륵!
나를 물었던 염룡이, 불꽃으로 된 포승줄로 바뀌어 나를 꽁꽁 묶었다.
쿵, 쿵, 쿵, 쿵!
내 주변으로, 몸이 시뻘겋게 달궈진 수 명의 화도체련관 사형들이 나를 둘러쌌다.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나가게 해 주시면 안 되는지요…?”
“하하. 자, 얘들아, 통나무 하나 더 올려라, 신입 왔다!”
내 말은 딱히 수용되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꽁꽁 묶여 화형대에 묶여 버렸다.
“자, 지금부터 화도장원전의 공법 구결을 알려 줄 테니 잘 듣거라.”
“아, 알고 있습니다.”
“아, 알고 있느냐? 그럼 잘 됐군. 얘들아, 신입을 구워라!”
그리고, 내 아래쪽에 쌓인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신입, 화도장원전을 잘 운용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잘해 보려무나.”
동시에, 나는 불길에 휩싸였다.
* * *
화르르르륵!
나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이를 악물며 화도장원전을 강제로 운용했다.
전신이 숯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지만, 화도장원전을 운용하니 어쨌든 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
‘아프다.’
미친 듯이 아팠다.
훈제 서은현이 되어 가는 느낌.
하지만, 나는 이 불길 속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아, 그렇군….’
지글지글지글….
지난 생.
천 년 동안 ‘서 장군’에 갇혀 있으면서, 느낄 일이 없었던 감각.
고통.
나는, 고통을 느끼며 뭔가를 깨달았다.
‘아프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그래, 나는….’
살아 있다!
번뜩!
“후우우….”
나는 화도장원전의 구결에 맞춰 불길을 흡수하며,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씨익 웃었다.
‘너무 오랫동안, 육체적인 고통을 느낀 적이 없어 엄살을 부렸었군.’
거기에다가 시각적인 효과도 굉장한지라, 지레 당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이 고통보다 괴로운 것이 없었는가?
‘아니, 그럴 리가.’
나는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음을, 불길 속에서 고통받으며 깨달았다.
죽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힘이 없는 상태로 무력하고 비참하게,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 괴로운 것이 아닌가?
지글지글지글….
치이이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는 도리어 냉정을 되찾았다.
‘어쨌든, 강해질 수 있겠어.’
이 정도 수련 방식이라면, 더 이상 무력하게 죽지 않을 만큼.
더 이상 한심하고 비참하게 스러지지 않을 만큼, 힘을 모을 수는 있으리라.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나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도 미치광이 괴군 밑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김연.
몇십 년 뒤 확정적으로 진선에 의해 몰살당하는 금신천뢰문과 전명훈.
서휼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오혜서.
흑색귀골곡에서 미쳐 버려, 흑색귀골곡 전체를 멸망시키는 강민희.
언젠가 죽을 창호자와, 그 이후 폐인이 되는 오현석.
모두를 구하려면.
아니, 최소한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인지 사정이라도 알아내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숭 떨며 멍청하게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단 말이다, 서은현!’
히죽.
나는 불길 속에서 지글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주변에서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형과 사저들을 마주 보며 웃었다.
“사형님들, 사저님들, 선배님들…!”
아프다.
하지만, 이제야 고통 속에서 할 일이 제대로 생각난 느낌이었다.
“이게 다입니까!? 화도체련관이 화끈한 곳이라 해서 조금 기대했습니다만, 이건 뭐 미적지근해서 불을 지핀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군요!”
내 말에, 불을 지피던 사형들의 얼굴에 힘줄이 돋았다.
“추워서 감기가 걸릴 지경입니다! 더 때 주십시오! 사제 감기 걸립니다!”
“…하, 하하하….”
내 말에, 얼굴에 힘줄이 돋은 선배 삼, 사운 제자들이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 오냐, 이거 아주 걸물이 들어왔구나! 그래, 신입! 네놈이 말하는 대로 해 주마! 우리 귀염둥이 신입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지! 이놈들아, 거기 용암 좀 퍼 와라!”
나는 숯덩이가 되어 가며 웃었다.
그래, 그동안 꼭두각시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던지라.
너무 엄살을 부렸던 것 같다.
오늘로써 정신을 되찾았다.
이제, 내숭 떨 시간은 지났다.
강해지자!
더욱더!
* * *
어느 날부터.
창천개벽문 오행체련관에는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어이, 그 소문 들었냐? 새벽 일찍 화도체련관에 가면 한 신입이 새벽부터 묶여서 타고 있거든.”
“아, 그래?”
“그런데 들어 봐. 무서운 게 뭐냐면, 아침을 먹고 금도체련관에 가면, 분명 새벽에 불에 타던 거하고 똑같이 생긴 신입이 금도체련관에서 뜯기고 있다는군.”
“오오, 열심히 하는 신입 아닌가?”
“아니,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이제 점심을 먹고 수도체련관을 지나던 중인데, 오전까지만 해도 금도체련관에 있던 놈이 수도체련관의 수심이 가장 깊은 곳으로 입수를 하고 있는 걸 봤단 말이지.”
“허어… 체련관을 세 개나…? 그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말이지. 그런데 또 무서운 게 뭐냐면, 저녁을 먹고 올라가던 중에, 그 녀석과 똑같이 생긴 신입이 목도체련관에서 피격 훈련을 받고 있는 걸 봤단 말이야.”
“허어…? 잘못 본 거겠지?”
“그럴 리가 있나? 그리고 이건 내가 잘못 본 건지는 모르지만, 한밤중에 지도체련관 옆을 지나던 사제 중 하나가, 내가 본 신입과 똑같이 생긴 신입이 지도체련관 땅 밑에서 올라오는 걸 봤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혹시 다섯 쌍둥이가 창천개벽문에 동시에 입문한 건가?”
“그랬으면 신기해서라도 소문이 났겠지. 그런데 그런 소문은 없어. 한 마디로….”
“그게 다 동일인이라고?”
얘기를 나누던 두 거한은 놀라운 듯이 입을 벌렸다.
“허어, 오행체련관에서 전부 훈련을 하고 있다고? 그게 무슨 괴담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말이지. 보통 오행장원전 다섯 공법 중 한 공법만 대성하고, 성광호체공으로 넘어가는 게 대다수인데 말이야….”
“그 말은 그러니까, 그 신입이 오영근자라는 말 아닌가?”
“그렇다는군. 오영근자라서, 오행장원전 다섯 가지를 전부 익히려 한다는 것 같아.”
“…미쳤군.”
“오행장원전 다섯 가지를 전부 익히면, 말 그대로 오행(五行) 그 자체에 대해 엄청난 내성을 가지게 되겠지…. 헛, 잠시만!”
거한 중 한 명이 한곳을 가리켰다.
“저, 저 신입이야!”
“호오, 저 신입이?”
두 사람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새벽부터 산길을 오르는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 * *
나는 나에 대해, 저 멀리서 떠드는 두 사형들을 흘긋 보고는 숨을 고르며 오행관을 올랐다.
오행관에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흘렀다.
회귀한 지는 9개월 차.
나는 오행관의 정신 나간 수련법과, 광한계의 막대한 천지영기.
거기에 광한계 내에서도 썩 영맥이 모이는 창한도의 좋은 영맥들에서 수련을 하며, 어느덧 연기기 극성에 도달한 상태였다.
‘오월입도경은 대성했다.’
후우….
숨을 내쉬자, 오색의 구름이 내 주변을 돌다, 내 체내로 흘러 들어왔다.
오월입도경을 대성한 후, 거기에 더해 오행장원전 역시 오행관에서 차근히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우드득, 우득….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지난 3개월 전에 비해, 내 육신은 비약적으로 단단해지고 강인해져 있었다.
육신 자체의 강도만 따졌을 때는, 연기기의 몸으로 체내에 강기가 흐르는 축기기 수사의 육신 강도와 비견될 정도였으니 말이었다.
‘선각후통으로 깨달은 연기기 기초법술들, 축기기 급의 육신, 거기에 오기조원의 경지까지 합하면….’
연기기 수준인 현재도 축기기 중기 수사와 한 판 겨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괴군의 회로로 상대의 법기를 무력화할 수 있으니….’
실질적인 전력은 괴뢰를 제하고서도 축기 후기 수준에 달할 터였다.
우득, 우드득….
나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생각을 정리했다.
‘모자라다.’
하지만 나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도 고작해야 축기기 급 전력이었다.
물론, 내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조화를 갖춘 오기조원의 육신은, 육신의 강화를 빠르게 소화해 냈다.
환골탈태한 내 육신과, 연체공법의 궁합 자체가 굉장히 잘 맞았다.
창천개벽문의 사형제들 역시 내 괄목상대할 성장에 놀라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부족하다!’
나는 더욱더 주먹을 거세게 쥐며 오행관을 올려다보았다.
“더 빨리… 더 높이 가야 해.”
이 정도로는, 아직 누구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오행관을 향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나는 그날 역시 수도체련관의 수심이 깊은 곳에서 숨을 참으며, 수압이 짙은 곳에서 검을 잡았다 치고 검술 연습을 했다.
기초를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몸에 각인시킨다!
꾸구구국!
수압이 전신을 짓이기는 것 같다.
‘부족하다.’
단악검법을 수련하며, 앞으로 익힐 축기기 공법들 역시 끊임없이 뇌리에서 분석하며, 선각후통의 예습을 다진다.
‘부족하다!’
우우웅!
나는 그 상태에서 괴군의 기묘성심전 역시 수련하였다.
보통 한 번에 여러 공법을 수련하면 주화입마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마(心魔)가 찾아오거나, 기혈이 꼬여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울컥!
문득 뇌리로 피가 쏠리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괜스레 화가 치밀어오르며, 눈앞에 있는 것들을 다 때려 부수고 싶은 폭력성이 꿈틀거렸다.
입마(入魔)의 증상.
하지만, 나는 아주 간단하게 입마를 해결했다.
퍼억!
주먹을 들어, 그대로 얼굴을 후려친다.
콰아앙!
머리에 피가 쏠리며, 폭발하려던 기혈이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내 폐에 가득 차 있던 공기가 그대로 전부 바깥으로 나가며 위로 올라간다.
꾸르륵, 꾸륵….
주화입마?
심마?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생각에 여유가 있으니 괜스레 생기는 잡것들일 뿐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자연스레 그런 어리석은 것들은 날아가기 마련이었다.
꾸르륵, 꾸륵….
나는 수압 속에서 공기를 내뱉으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촤아아악!
녹빛의 영기가 나를 향해 헤엄쳐 오더니, 내 몸을 부여잡고, 바로 물 위로 끌고 올라갔다.
얼마 후.
“푸학!”
나는 달달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우우웅!
목영근을 가진 사형 중 한 명이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중이었다.
“아, 사형. 감사합니다.”
“그래, 뭐… 열심히 하는 건 좋다만, 최근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 무지막지한 오행관의 사형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현재 나는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었다.
“뭐든지 너무 급하게 하려고 하면 탈이 난다. 적절히 조절해 가면서 해라.”
오운, 사운 제자들의 발에 돌을 매달아 물 밑으로 던져 버리는 사람이 하는 얘기치고는 참 따스한 얘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그에게 알겠다고 하였다.
“자, 치료가 다 끝났다.”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한 후, 바로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저 수면 위로, 살짝 질린 듯한 표정을 짓는 사형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그의 표정을 흘긋 본 후.
깊은 심연을 향해 내려갔다.
우웅!
나는 수월입도경을 운용하며, 일단 잠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영기를 운용했다.
“후우….”
물속에서 숨을 쉰다는 게 웃겨 보였지만, 의외로 수계공법을 익힌 이는 그런 짓도 가능하고는 했다.
폐활량 수련에는 도움이 안 됐기에 지양하고 있었지만, 나는 결인을 맺으며 입을 열었다.
“저물도(貯物圖), 개방.”
우웅!
내 허리춤에 매여져 있던 두루마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내 옆에서 펼쳐졌다.
지난번 서령문 장로에게서 얻었던, 이 두루마리 형태의 저물법기는 통칭 ‘저물도’라고 불리는 저물법기의 일종이었다.
나는 저물도에서 지난번 서령문 장로에게서 빼앗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옥패에는 광한계 언어로 공법 구결이 적혀져 있었다.
공법의 이름은 ‘삼령공’으로, 자신의 분신을 세 조각 만들어,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본체가 위험에 처해 수행을 전부 잃었을 시.
분신을 통해 수행을 되찾을 수 있는 공법이었다.
수시로 본인의 육신을 잃는 원영기 이상 수도자들이 쓸 만한 공법 같았다.
특이사항으로는, 분신을 만드는 것은 세 개가 최대고, 그 이상 분신을 만들면 점차 분신의 수행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후에 수행이 떨어지는 분신으로 수행을 되찾으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분신을 세 체 이상이 아닌 단 한 체만 만든다면 그 위력은 본체와 다를 바가 없이 강력하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분신을 만들어 목숨의 안전과 차후 수행을 잃을 때를 위한 보험을 둠과 동시에, 분신을 공격용으로도 쓰는 공법인 거군.’
썩 쓸 만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삼령공을 다시 한번 읽어 볼 때였다.
‘잠깐.’
나는 삼령공의 구결을 쳐다본 후, 영기를 이용해 물속에 ‘군마용갱권’의 구결을 적어 내렸다.
그리고 나는 황급히 둘의 구결을 비교해 보았다.
‘…잠깐, 이 공법들….’
나는 두 구결을 동시에 읽으며 뭔가를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