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46화 (146/185)

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2)

위이이잉!

파아앗!

서 장군의 눈에서 세 번째 광선이 나갔다.

“크으윽!”

서령문의 원영기 장로, 위탁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광선을 막아 냈다.

‘기껏해야 연기기도 안 되는 애송이가 원영기 괴뢰를 불러낼 줄이야…!’

그러나 위탁은 짜증이 난 표정을 지을 뿐.

그렇게 힘겹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원영 초기 극초반 괴뢰였다.

결단기 대원만에서 몇 발짝 더 나간 괴뢰일 뿐이었다.

아무리 법력이 떨어졌다곤 하나, 원영 중기 수사인 그가 질 리는 없었다.

‘법술도 거의 완성이 되었다. 이제….’

그가 막 법술을 완성해, 눈앞의 괴뢰를 없애 버리려 할 때였다.

퍼버벙!

안광에 광선을 모으던 ‘서 장군’이라는 괴뢰가, 갑작스레 제 혼자 폭발해 버렸디.

잠시 이해가 가지 않아 미간을 씰룩이던 위탁은 상황을 파악했다.

“아, 그렇군.”

과부하다.

원영기 급 공격을 쏟아 낼 순 있지만, 세 번이 한계.

네 번 이상 광선을 쏘려 하면 그대로 망가져 버리는, 웃기지도 않은 성능을 지닌 괴뢰였던 것이다.

“쯧쯧, 이래서야 원영기 급 공격을 세 번 쏘는 게 한계인 결단기 괴뢰라는 말이 적합하겠어.”

위탁의 입가에 비웃음이 서렸다.

“자, 재밌는 반항이었다만. 그럼 이제 순순히….”

그리고, 위탁이 서은현이 있는 곳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어?”

총 열일곱 기의 서 장군이, 서은현의 옆에서 기운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서은현이 혀를 차며 결인을 맺었다.

쿠구구국!

우드득!

그의 옆으로 막 18번째 괴뢰가 만들어졌다.

“한 기가 원영기 급 일격 3회를 쓰면 망가져 버리는군. 역시 재료가 너무 허접하니, 회로가 괴군의 것이어도 버티지를 못하는 건가….”

“뭐, 뭣…!?”

철컥, 철컥, 철컥!

그리고, 18기의 서 장군들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파아아앗!

“서 장군포, 발포.”

서 장군들의 입에서 동시에 18개의 백색 광선이 뿜어지며, 위탁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준비하던 법술을 날렸으나, 18개의 광선 앞에서 그가 준비하던 법술은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빛의 격류에 휩싸이며, 위탁은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 *

나는 온몸이 숯덩이가 되어서 떨어지는 서령문 장로를 바라보았다.

“크, 크헉…!?”

과연, 끔찍한 생명력을 가진 원영기 수도자답게.

전신이 숯이 되었어도 아직 죽지 않았다.

“흐, 흐어어걱! 흐어억!”

물론, 나를 보며 끔찍한 악몽이라도 되는 것처럼 도주하긴 했지만.

툭! 투둑….

서령문의 장로의 전신 의복이 찢어지며, 그의 품에서 몇 가지 물건들이 떨어졌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물건들을 주웠다.

몇 개의 부적.

그리고 은은한 공간 파동이 느껴지는 두루마리 법기였다.

“이건….”

나는 두루마리 법기를 열어 보려 했지만, 금제가 걸려 있는지 법기는 열리지 않았다.

‘금제라….’

나는 잠시 법기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파츠츠츠….

내 손끝으로 기운이 몰렸다.

그와 동시에 두루마리 법기의 표면에, 괴군의 회로가 깔리기 시작했다.

미치광이의 성채를 움직였던 장대한 회로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존재의 혼을 모방하는 회로가, 상대의 법기 위로 깔리며 법기를 장악해 나갔다.

위이이잉!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괴군의 회로가, 두루마리에 걸려 있던 금제를 뚫어 버렸다.

파앙!

두루마리 법기에서 미약한 빛이 터져 나오며, 금제를 이루던 주술문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우우웅!

내가 두루마리 법기에 영력을 넣자, 두루마리 법기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촤르르륵!

두루마리가 허공에서 펼쳐졌다.

“이건….”

두루마리 형태의 저물대!

두루마리의 안쪽에는 여러 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조심스레 그림을 향해 손을 뻗자, 내 손은 자연스레 그림 안쪽으로 쑤욱 들어갔다.

“허어….”

나는 그림 안쪽에 있는 물건 중 하나에 손을 뻗어 집었다.

우우웅!

강력한 빛을 뿜어내는, 썩 강해 보이는 법보였다.

“저물대보다도 편리하군….”

일반적인 저물법기는 안쪽이 보이지 않아, 가끔 뭘 넣어 두고도 다시 꺼낼 때 한참 찾아야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물론 저물법기 안으로 의식을 집어넣어 뒤지면 금방 찾아졌지만.

애초에 이렇게 육안으로 저물법기 안쪽에 뭐가 어디에 들었는지가 확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편리성을 제공하는 듯했다.

나는 서령문 장로의 두루마리 법기를 뒤적여, 그의 자산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한 쌍으로 이뤄진 비수 법보 하나. 그리고 이름 모를 독초(毒草)들 여럿. 그리고 영물, 영수, 영충에 대한 서적… 거기에 영석이…사백만 개?’

이 정도면 하계 수도가문의 수년 치 예산이었다.

‘…거기에 이름 모를 부적들 여섯 장. 하나같이 풍기는 영기가 범상치 않고, 마지막으로 이건….’

나는 두루마리 법기의 한구석에 있는, 새하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오, 서령문의 공법인가?’

옥패에는 빼곡하게 광한계 언어로 무언가 구결이 기록되어 있었다.

‘…흠, 또 광한계 언어를 배워야겠군.’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일단 옥패를 품속에 따로 꺼내 넣어 놓았다.

얼마 후.

창호자가 서령문의 최고 어르신이라는 자에게서 승리하고, 창천개벽문이 서령문을 상대로 승리를 점하였다.

[이제부터, 이곳은 우리 대창천개벽문의 땅이다! 모두 썩 나가라!]

창호자에게 패배한 서령문의 어르신은 이를 갈며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고, 그 뒤를 따라 서령문도들이 일제히 달아나 버렸다.

“흐하하. 자, 우리가 승리했다! 전 문도들은 이제, 이사 준비를 하자!”

쿠구구구구!

창호자가 품속에서 한 개의 족자를 꺼냈다.

족자에는 이전에 보았던 것처럼 산수화가 한 폭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산수화가 갑자기 빛을 뿜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동시에, 산수화에 그려져 있던 산이, 두루마리 바깥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작은 산맥 하나가, 서령문의 산봉우리 옆으로 떨어져, 그 옆에 작은 산봉우리를 하나 만들었다.

쿠우우웅!

어마어마한 폭음이 사방으로 울리며, 먼지구름이 일어 올랐다.

‘…다시 봐도 미쳤군.’

공간법기 안에 자기 문파를 그대로 가지고 비승했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쿠웅!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와, 비차 안에서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하는 오 차장의 앞에.

창호자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자, 이제 너희들 역시 창천개벽문의 제자니, 앞으로 기거할 곳을 알려 주겠다.”

그렇게, 그날 광한계 창한도.

그곳에서 창천개벽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 * *

창천개벽문은 서령문과의 서열 정리를 완료한 후.

주변 문파로 사람을 보내, 그날 창한제일종문이 창천개벽문이 되었음을 알렸으며.

동시에 창한도의 분쟁을 관리하는, 창한도 총령이라는 이를 불러 정식으로 문파의 자리를 등록한 후.

인족 총연맹의 도움을 받아 인족 총연맹 사람을 초청하여 대대적으로 광한계 언어, 그리고 광한계의 지리, 기후, 일상 문화, 거기에 천문 등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특히나 광한계 언어와, 광한계 천문에 대한 것들은 수련을 하는 데에 있어 필수 요소였기에 제대로 배워야 했다.

‘광한계에서는 저 별이 각수성인가.’

이전 생에는 기묘성채를 통해 주변 종족을 점령하고, 납치해 와서 강제로 정보를 뽑아냈다면.

이번 생에는 창천개벽문의 아래에서 체계적으로 정보를 체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현석 차장 역시 무슨 일인지 파악을 못 하면서도 일단 빠르게 광한계 언어를 체득해 갔다.

그리고, 창천개벽문이 창한도에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 * *

“후우….”

“이제 조금 나아지셨군요.”

“그래, 고맙네, 서 대리.”

지난 6개월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광한계 언어를 배우랴, 광한계 별자리들을 처음부터 다시 숙지하랴.

그런 것뿐이 아니라, 창한도에 정착해서 완전히 개편되는 창천개벽문 이곳저곳에 불려 가서 안면을 트는 등.

‘나야 괜찮았지만, 차장님은 어떨지 모르겠군.’

그 역시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곳에 떨어져, 이상한 언어를 익히고 이상한 이들과 안면을 트느라 굉장히 바빴을 터였다.

지난 6개월간은 서로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정말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다녔을 정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조금 문파가 안정되고,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겨 내가 오 차장의 몸을 단련시켜 주는 중이었다.

“몸을 움직이니 조금 나아지는군. 역시 잡생각을 날리는 데엔 운동만 한 게 없지. 그나저나 서 대리, 회사에서는 골골대는 모습밖에 못 봤었다만… 의외로 헬스 트레이너 같은 모습도 보이고, 이거 신기하구만.”

“하하, 감사합니다.”

‘헬스 트레이너가 무슨 단어지?’

어쨌든 대충 칭찬하는 말이 분명했기에, 나는 일단 웃으며 받아 주었다.

“차장님은 그래도 꽤 몸을 잘 다루시는군요.”

나는 오 차장의 움직임을 보며 평가해 주었다.

기초적인 권장각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분명 김영훈만큼 천부적인 자질로 바로 무공의 진의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몸을 잘 통제하는 것이 보였다.

“뭐, 회사에서도 늘 이랬잖나. 늘 영훈 부장님이랑 등산을 가도 항상 여직원들은 중간에 기절하고, 자네랑 전 과장은 녹초가 돼서 쓰러지고, 나랑 영훈 부장님만 늘 정상 등반에 성공했지. 흐하하!”

“아무래도 두 분은 몸은 늘 잘 쓰셨으니 말입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은근슬쩍 뇌리로 회사에서 있었던 기억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전명철 전무와 함께하는 등산 워크숍을 간 적이 있었다.

정작 전명철은 조금 올라가다가 중간에 약수터로 빠지고, 다른 사람들만 정상에 올라가서 인증을 해 오라고 해서, 김영훈과 오현석 차장만 먼저 정상으로 등반했었다.

여직원들은 중간에 전부 기절해서 벤치에 앉아 쓰러지고, 나와 전 과장만이 어찌어찌 올라가다가, 가파른 산길 앞에서 주저앉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김영훈은 체력을 낭비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체력을 잘 조정해서 등산했다면, 오현석 차장은 체력을 얼마나 낭비하든 끝까지 안 지치는 모습이었었다.

‘원래도 괴물 같은 몸뚱이를 지닌 분이셨지….’

나는 체력 단련을 마친 오현석 차장을 보며 아득한 과거를 잠시 떠올렸다.

그때였다.

쿠우웅!

저 멀리서, 푸른빛이 날아와 우리 앞에 떨어졌다.

푸른빛 덩이는 얼마 후 빛이 사그라들더니, 그 안쪽에서 한 명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약 팔 척(尺: 2.4미터) 정도는 되는 거구.

웃통을 다 벗고 다니며, 마치 칼로 조각한 듯이 선명한 복근.

창호자였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스, 스승님을 뵈엡습니다.”

아직은 이 세계의 언어와 예법이 어색한 오현석은 더듬거리며 예를 취했다.

그러나 창호자는 그런 것은 별 상관없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찮은 허례허식은 필요 없다. 내가 찾아온 건, 이제 슬슬 창천개벽문도 창한도에 자리를 잡고, 너희도 광한계 언어가 유창해진 듯하니…. 이제 슬슬 수도공법을 익힐 때가 된 듯하여 찾아왔다.”

“감사합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오현석 차장은 아직도 수도공법에 대해 감이 잘 안 잡히는 듯.

어리둥절하며 일단 나를 따라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일단 공법을 가르치기 전에, 너희들의 적성 검사를 조금 제대로 해 보도록 하지.”

창호자가 근육을 부담스럽게 씰룩이며 말했다.

처음 비승을 했던, 광한계에서의 첫날을 제외하고.

창호자는 거의 늘 항상 웃통을 벗고 다녔다.

그게 남자답다나?

“일단, 본 창천개벽문의 공법은 절대다수가 전투 특화 공법이다. 물론 이번에 서령문을 점령하면서 몇몇 다른 수도공법도 얻긴 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그닥 주류는 아니지.

오현석, 너는 일문성체라고 불리는 전설의 신체를 지녔으며, 서은현 너는…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혼자 비승할 수 있을 정도니. 둘 다 내 직전제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듣던 중.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너희는 내 직전제자이니만큼 서령문에서 얻은 공법들 따위는 필요 없고, 내 비전공법을 사사할 것이란 얘기인데. 우선 그 전에, 앞으로 뭘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어떤 식으로 가르침을 내릴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오늘 우선 간단한 시험을 해 보도록 하지.”

“…그 간단한 시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창호자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렸다.

어떻게 된 게 주먹 하나가 내 머리통만 하다.

“나와 오늘 하루 종일 무한 자유 대련이다. 자, 우선 둘 다 덤벼 보거라. 내 힘은 일단 연기기 급으로 맞춰 주고 싸우마.”

“그게 무슨….”

오현석 차장이 제대로 이해를 하기도 전.

콰앙!

창호자의 머리통만 한 주먹이, 오현석 차장의 배를 후려쳤다.

오현석 차장은 두 눈이 뒤집힌 채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피잇!

다음 순간.

붉은 선이 내 배를 향해 내리꽂힌다.

나는 황급히 그 의념을 보며 창호자의 주먹을 피했고.

다음 순간, 창호자의 주먹이 내가 서 있던 곳 뒤쪽.

이 장 크기의 거대한 바위에 내리꽂혔다.

콰르르릉!

그 일격에, 그대로 바위가 한 번에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창호자에게 말했다.

“…그, 연기기 급으로 맞춰 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음? 나는 연기기 때 이러고 다녔다만?”

“….”

누가 봐도 축기기 급 일격이다.

나는 새삼 창호자의 괴물스러움에 혀를 내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무공은 쓰면 안 되겠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심족이라 하는지 모르고.

또 인족의 어떤 고수가 어떤 방법으로 심족을 구별할 수 있는지도 몰랐으니.

일단 몸을 사리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몸을 움직이는’ 정도라면….’

무형검도, 강환도 쓰지 않고.

순수하게 의식 영역에 의지해서 상대의 공격을 읽고 피하는 정도는 괜찮을 터였다.

“하하, 어쨌든 내 일격을 피하다니. 과연 싹수가 있는 녀석 같군. 그럼… 어디 계속해 볼까?”

쿠웅!

창호자가 발을 구르자, 그의 발밑에서 청광이 돋아나며 저 멀리 피를 토하며 기절해 있는 오현석 차장에게 흘러 들어갔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전신이 박살 나도 계속 회복시키며 수련시킨다는 건가….’

이 무슨 정신 나간 수련법이란 말인가.

‘아니, 아직 수련도 아니지. 수련하기 전에 그냥 자질을 알아보는 것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창호자의 수련 방식은,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가혹할지도 몰랐다.

“자, 그럼. 쓸 만한 제자가 생겼으니, 어디 한번 즐겁게 놀아 보자꾸나!”

부웅!

창호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아직도 서 있는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나는 창호자의 의념을 보며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의념의 궤적이 바뀌더니, 순간 알아보기 힘들게 의념이 변화하였다.

그와 동시에.

피잇!

상호자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실수했어도 그대로 맞을 뻔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며 헛숨을 들이켰고, 창호자가 히죽 웃었다.

“의념을 변화… 이건, 삼화취정…!?”

“오호, 그걸 ‘보고’ 피하다니. 너 역시 삼화취정인 거냐?”

쿵! 쿠웅!

창호자가 즐겁다는 듯이 양 주먹을 마구 부딪쳤다.

그때마다 푸른 기운이 그 주변으로 일렁였다.

“…대창천개벽문의 조사이신 스승님께서, 범인들의 기술을 익히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공을… 익히신 겁니까?”

“흠, 딱히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다. 다만… 내 공법 자체가 육신을 단련하는 공법이다 보니, 자연스레 몸으로 싸울 일이 많고, 몸으로 자주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 전투 중에 상대의 의념이 시각화되어 눈에 보이더구나.”

창호자의 몸에서, 수천 개의 실들이 흘러나왔다.

하나하나가 최적화된 투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내 의념으로 그 투로들을 차단하고, 전부 피해 냈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부터, 전투를 하고, 하고, 또 하던 중. 상대의 의념과 내 의념이 뒤섞여 자색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날부터, 인간의 다른 감정의 색 역시 집중하면 볼 수 있게 되었다. 뭐, 물론 나는 전투에 관련된 의념이 아닌 것은 신경 쓰지 않았기에, 일반적인 감정의 의념은 더 파고들지 않았지만….”

부웅, 붕, 붕!

창호자의 주먹이 상, 하, 좌, 우를 메운다.

“범인들이 삼화취정이라고 부르는 이 경지 자체는, 상당히 전투에 쓸 만하다는 걸 알았다! 흐하하, 너 역시 삼화취정에는 도달했나 보구나! 좋아, 어디 한번 놀아 보자꾸나!”

창호자가 더욱 신난 듯한 얼굴로, 더욱더 주먹에 힘을 불어넣으며 나를 밀어붙였다.

‘하긴, 애초에 삼화취정은 극한의 실전 속에서 주로 꽃피곤 하니까….’

주로 육탄 전투를 많이 하는 창호자라면 삼화취정의 경지를 얻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나저나….’

나는 창호자의 주먹을 피하며, 정말 오랜만에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다.

‘얼마 만에, 의념을 주고받으며 간합을 재고 싸우는 거지?’

김영훈이 아니라면 시도하지도 못했던 일들.

그렇다고 일반 무림인은 체급이 너무 안 맞아서 상대가 안 되어 상대하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나와 간합도 그럭저럭 맞출 수 있으며 체급으로는 오히려 나보다 아득한 상대가 있었다.

‘오랜만에… 놀아 볼까?’

나는 씨익 웃으며 창호자와 의념을 주고받았다.

푸른 선과 붉은 선이 허공에서 얽히며, 자색의 선으로 변한다.

서로의 행동과 행동이 예측이 된다.

창호자에게서 뻗어 나온 선이 내 미간을 향한다.

내 골통을 박살 낼 수도 있는 일격.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어 창호자의 주먹을 피한 후.

그대로 창호자의 다리 쪽으로 의념을 쏘아 보냈다.

창호자는 도리어 나를 향해 발을 걷어차 왔지만, 내가 보낸 의념은 눈속임이었다.

나는 아직 주먹을 회수하지 못한 창호자의 팔을 잡은 후, 그대로 그의 주먹에 실린 힘을 역이용해 부드럽게 화경으로 튕겨 내어 버렸다.

파앙!

“…허?”

그의 주먹에 실린 힘 중, 일부를 자극하여 그 방향을 바꾸었다.

방향이 바뀐 창호자의 힘이, 그의 팔 안에서 충돌하며,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조금 충격을 먹었을 터였다.

“호오….”

창호자의 눈이, 어쩐지 번들거린다고 느껴졌다.

치이이이….

약간의 충격이 들어갔던 창호자의 팔이 푸른빛으로 뒤덮였다.

“…아주 좋군. 훌륭하다… 그럼, 계속해 볼까?”

타앗!

창호자가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다.

무릎을 내밀어 걷어차는 공격은 반 보를 비틀어 피하고, 늑골에 반격.

발을 찍으며 내 발을 밟으려는 움직임은 발만 반 발자국 뒤로 디뎌 피한 후, 골반을 걷어차 반격.

그의 주먹은 고개를 틀어 회피 후, 상완골을 세 번 타격해 반격.

팔꿈치로 내리찍는 공격은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가 쇄골을 내리쳐 반격.

팔을 끌어안아 나를 가두려는 움직임에는 명치를 타격 후 다시 아래로 빠진다.

직후 나를 향하는 일곱 개의 붉은 의념.

각기 하체를 노리며 내가 피하는 것을 노린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창호자의 급소를 향해 열네 개의 의념을 쏘았다.

부웅, 붕, 붕!

창호자는 급소를 딱히 보호하지 않고 내게 공격을 뻗어 온다.

하지만 나는 보보를 디디며 일곱 번의 공격을 모두 피한 후.

예정대로 창호자의 급소를 전부 타격했다.

하지만.

‘때린 건 난데, 왜 내가 다치는 거지….’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어느새 잔뜩 멍이 든 주먹을 바라보았다.

‘웃통을 벗고 있는데, 살을 때리는 느낌이 아니라 금강석을 타격하는 느낌이군….’

순수한 박투와 무(武)의 영역에서는, 내가 창호자를 압도한다.

하지만, 수도자와는 다른 의미로 나와 체급이 달랐다.

단단하다!

너무 무식하게 단단하다!

거기에, 저 주먹에 한 대를 맞으면 그대로 사지가 분해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한 대만 맞아도 죽지만, 상대는 수천 대를 때려도 멀쩡한 기묘한 불합리를 강요하는 전투 방식.

그것이 창호자의 전투 방식이었다.

‘무형검을 쓴다면, 그래도 충격을 줄 순 있을 텐데….’

내가 입맛을 다실 때, 창호자가 더욱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주먹에 힘을 더 주었다.

쿠구구구구!

“이거, 괜히 힘을 빼 주고 싸워서 미안하구나. 제자야….”

공기가 요동친다.

“네 실력은 알았으니….”

우우우웅!

대기의 기(氣)가 창호자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이제 축기기 급으로 싸워 주마!”

퍼엉!

결단기 수도자의 비둔술에 버금가는 속도로, 창호자가 내게 쏘아져 온다.

“이런…!”

나는 아슬아슬하게 창호자의 주먹을 피했다.

콰아아앙!

창호자의 주먹에, 뒤쪽에 있던 작은 산봉우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축기기입니까?”

“나는 축기기 때 이러고 다녔다. 금벽호나 허곽, 그 친구들도 말 들어 보면 다들 이러고 놀았다는데, 딱히 이상한 건 아니지 않으냐?”

“….”

“자, 그럼. 어디 이것도 받아 봐라.”

파아앗!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내 앞에 나타난 창호자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씹어 삼키며, 그 짧은 찰나 자세를 재정비하고 손끝으로 기(氣)를 모았다.

그리고.

나와 창호자가 부딪쳤다.

* * *

쉬이이이….

창호자는 두 손을 부딪쳐 털며, 눈앞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파악이 끝났다. 훌륭하군. 제자 역시 삼화취정이라니, 나중에 육신만 조금 단단하게 수련시키면 좋은 대련 상대가 되겠어.”

“….”

서은현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눈을 까뒤집은 채, 오른팔과 오른 어깨 전체가 터져 나간 상태였다.

“…쩝, 너무 심했나 보군.”

우우웅!

창호자가 푸른빛을 뿜어 서은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그의 오른팔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서은현의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를 치료해 주던 창호자는,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

서은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맨주먹으로 창호자와 대련했다.

아무리 창호자가 제자를 어떤 방향으로 가르칠지 알아보기 위한 일환으로 힘을 제약하고 대련했다고 할지언정.

본래는 창호자의 새끼발가락만으로도 눌러 죽일 수 있던 것이 서은현이었다.

‘흐음, 이 놈….’

창호자는 선 채로 기절한 서은현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뚝, 뚝….

창호자의 주먹 위로는, 실금 같은 상처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기이하군. 분명 맨주먹끼리 부딪쳤거늘….”

그는 실금 같은 상처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마치 검상(劍傷)이 아닌가?’

치이이….

비록 그 실금 같은 검상 역시 창호자가 힘을 주자 바로 치유되었으나, 창호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일문성체인 저 아이만을 신기하게 생각했거늘, 이 녀석도 굉장히 특이한 자질을 지닌 걸지도 모르겠어….’

씨익.

창호자가 서은현을 보며 웃었다.

“연체공법(練體功法)을 익히면 얼마나 괴물이 될지, 기대가 되는구나.”

히죽 웃은 창호자는 뒤를 돌아, 막 정신을 차리는 오현석을 향해 다가갔다.

“자, 그럼 너도 나머지 자질 파악을 계속해 보자꾸나.”

“자, 잠깐….”

콰아아앙!

얼마간 창천개벽문.

그 구석에 있는 서은현과 오현석의 처소 앞에서는, 푸른빛이 일렁였다.

* * *

“…헉!”

‘열다섯 번째 죽음인가?’

나는 몸을 떨며 서휼이 주변에 있나 둘러보았지만, 다행히도 없었다.

“…안 죽었군.”

“흐하하하, 사람은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흠칫!

나는 창호자를 보며 순간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나는 주변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약내가 풍기는 것이, 창천개벽문의 의약당이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아니다. 그나저나, 이제 너와 오현석의 자질 파악은 대충 알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러니, 오늘부터 공법 수련을 시작하자꾸나.”

우우웅!

창호자의 옆으로, 두루마리 저물법기가 떠올랐다.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드러났고, 창호자는 두루마리 안으로 손을 넣어, 웬 커다란 비석을 꺼냈다.

쿠웅!

비석에는 빼곡하게 벽라국어로 적힌 공법 구결들이 있었다.

“자, 이게 오늘부터 익힐 공법 구결이다.”

공법의 이름은 성광호체공(星光護體空)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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