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45화 (145/185)

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1)

잠시 말을 멈춘 허령은 미간을 찌푸리는 듯하며 말했다.

뭔가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

“…심족은, 지성체의 감정을 비롯해, 심상 그 자체를 읽는 게 가능한 종족을 통칭한다. 천, 지족에서 심도공법이라고 부르는 것을 익혀, 감정의 색채를 읽고, 더 나아가서는 마음 그 자체를 읽는 종족이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허령은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물론, 사실 이 심족이란 녀석들은 말이 삼 대 종족이고, 그냥 구분을 위해 묶어 놓은 녀석들이지. 천족, 지족에 비하면 찌꺼기나 다름없는 녀석들이다.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천, 지족에 비해 ‘제대로 된’ 심족 고수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은 만 명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지. 만 명이라니, 하! 내 후손만 해도 만 명이 넘겠거늘….”

‘심족은 경지가 높은 이들이 적은가?’

나는 허령이 뱉어 주는 광한계의 기본 정보들을 귀에 잘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허령의 말을 듣던 창호자가 질문을 했다.

“잠깐, 질문이 있습니다, 선배님. 감정의 색채를 본다거나, 육신을 단련하는 게 심족, 지족이라고 했는데…. 저나 괴군 조연이라는 자의 경우 의념의 색을 보는 게 가능하고, 저 같은 경우 육신을 단련하는 공법을 익혔는데… 익힌 공법으로 종족의 구분을 두면, 결국 차이가 없는 게 아닙니까?”

허령은 그 말에 입꼬리를 씨익 웃으며 답하였다.

“아니,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네 말대로, 우선 천족의 경우, 자신에게 맞는 제사법을 찾아낸 종족이기에 제사를 통해 천기를 읽는 눈을 얻어낼 수 있고. 육신 역시 따로 단련하여 지족의 눈도 이론상 얻을 수 있으며, 심족의 심도공법을 구하면, 이론상 심족의 눈도 얻을 수 있겠지. 이론상, 천족은 삼 대 종족의 모든 공법을 익히는 게 가능하다. 그렇기에 천족이 가장 고귀한 종족이라 불리는 것이며, 천족에 속한 인족이 광한계의 지배종인 이유 중 하나다.”

‘…그럼 나는 저번에 왜 죽었던 거지?’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허령의 말을 들었다.

“지족의 경우, 저들 특유의 지족 공법, 요수공법 등을 익히고, 심도공법을 따로 익힌다면 이론상 심족의 눈도 얻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심족은 천족공법도, 지족공법도 익히지 못하는 멍청한 것들이지. 그저 저들의 심도공법만 열심히 파야 하는 찌꺼기들이다. 천족만 해도 천족 전체에 쇄성기 수사가 세 분이나 계시고, 지족은 쇄성기 수사가 둘밖에 없으며, 심족은 쇄성기 급의 심족이라곤 최고지도자 한 명밖에 없는 한심한 종족이다. 최고지도자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냥 노예 종족이었던 놈들이지.”

한참을 심족을 씹어 대던 허령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심족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심도공법에 ‘특화된’ 종족인 줄 알았건만….’

심도공법 ‘밖에’ 익힐 수 없는 약한 종족인 것 같았다.

“만 명밖에 안 되는 제대로 된 심족 놈들이, 하나같이 기오막측한 심도공법을 익힌 게 아니라면, 진즉 모조리 잡혀서 씨몰살을 당했을 것들뿐이다! 천족이나 지족들도 의식공법을 익히거나 경험에 따라 감정의 색을 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해서도 안 되더군…. 그래서 천족과 지족, 양대 종족은 심족 놈들을 잡아서 심도공법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중이지.”

아무래도, 이론상 천족도 심도공법을 익히는 게 가능은 하나.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고, 천족 자체에서도 심도공법을 익힌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한 모양이었다.

허령은 옆구리를 자꾸 매만지며 심족을 욕하였다.

“…사실상 심족은 천, 지족에 의해 쫓겨 사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비선대에도 천족, 지족은 각기 하계에서 올라오는 후학들을 맞이하는 게 가능하지만, 심족에게는 그럴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지.”

‘저곳으로 푸른 선이 몰려 있군….’

나는 그의 의념을 읽으며 짐작했다.

그의 행동과 심리를 유추해 봤을 때.

예전 심족에게 옆구리를 뜯겨 나간 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얼마간 심족을 욕하던 허령은, 심족 말고 다른 종족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광한계 전체 종족들의 세력, 종류 등….

나는 이전에는 수배된 괴군에게 잡혀가 개조당했던 탓에,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정보들을 빨아들였다.

“광한계에는 한 분의 성반기 성사님, 다섯 분의 쇄성기 존자, 한 명의 쇄성기 급 심족 존자가 존재하며, 합체기 태수(太修)는 한 종족에 많으면 예닐곱, 적으면 한둘 존재할 정도로 희소하다. 또한….”

얼마간 허령에게 광한계의 기본적인 정보를 듣던 중.

우리는 마침내 인족의 영역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쿠구구구구!

‘저곳이, 인족 영역….’

나는 눈앞에 떠오른 장엄한 광경을 쳐다보며 작게 감탄하였다.

푸확!

새하얀 구름이 사방을 덮고 있는 지대.

구름을 뚫고 올라간 우리는, 사방 곳곳에 떠올라 있는 거대한 천공도(天空島)를 볼 수 있었다.

마치 등선향과도 비슷한 수십, 수백 개의 천공도들이, 새하얀 구름 위쪽으로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천공도들은 하나같이 희미한 원구형의 결계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곳이, 우리 인족이 터를 잡은 운도(雲島) 지대일세. 우선 자네들은 저기 있는 가장 작은 천공도, 시운도라는 곳으로 가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신분 패를 발급해 준 후 각자 흩어져야 할 걸세.”

“흠, 흩어져야 하는 겁니까?”

창호자가 주변의 정경을 둘러보며 아쉽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네. 자네들이 천인기 급이었다면 별말이 안 나왔을 테지만… 각 세력의 수장들이 하나같이 사축기 급이 아닌가?”

허령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인족 영역 규정상, 천공도 한 곳에 사축기 고수가 세 명 이상 머무는 것은 불가하네.”

“흠, 뭐. 좋군요. 오히려 세 종문끼리 한 곳에 눌러앉아서 자원 때문에 얼굴 붉힌다면 그건 그것대로 짜증 나지요.”

금벽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시운도로 가 보세.”

그렇게 우리는 시운도라는 천공도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 잠깐, 뭔가 이상한데.”

창호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 역시 저 멀리서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시운도라는 곳을 향해 눈을 찌푸렸다.

‘뭔가, 원근감이….’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물론이고 창호자, 금벽호, 허곽의 얼굴에 전부 경악이 어렸다.

‘저, 저게….’

각 천공도를 뒤덮고 있던 것으로 보이던, 얇은 장막들이.

어마어마한 거력을 품은 두터운 결계로 확대된다.

그리고 아무리 커봤자 등선향 급으로 커 보였던 천공도가, 점차 무지막지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쿠구구구구구!

“자, 시운도에 진입하겠네!”

가장 작은 섬으로 보였던 시운도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정신 나간 크기를 자랑하였다.

등선향?

그런 것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

저건 차라리….

‘답천사막…?’

벽라국, 연국, 성제국 삼국을 다 합친 크기를 자랑하는.

답천사막과도 같은 크기였다!

답천사막의 크기는, 수계의 대륙의 사분지 일을 차지하는 막대한 크기였다.

나는 시운도의 너머로 보이는, 또 다른 수십 개의 ‘섬’들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은, 멀리서 봤을 때는 시운도보다 최소 대여섯 배, 많게는 열 배는 더 컸는데….’

지난 생은 서 장군의 몸에 갇혀, 기묘성채 안쪽에서만 거의 지낸 탓에 광한계의 크기를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야 실감이 간다.

광한계.

천족 영역 중 인족 영역.

인족 영역에 있는 무수히 많은 저 천공도 하나하나가, 곧 내가 지냈던 수계의 크기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것이었다.

“열려라!”

촤아아아악!

마치 바다를 연상케 하는, 드넓은 결계를 향해 허령이 손짓을 하자, 눈앞의 결계가 쪼개지며 우리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들어가라.”

“….”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던 우리는 모두 군말 없이 천공도로 들어갔다.

쿠구구구!

시운도는 곳곳에 광풍이 불어닥치는 곳이었다.

거기에 이곳은 사람이 살기 좋은 것이라기보단, 돌과 바위, 모래가 넘쳐나는 황무지에 가까웠다.

“따라와라!”

우리는 허령을 따라 시운도의 한쪽으로 날아갔다.

시운도의 바위산 지대.

그곳에 도착한 허령이 수결을 맺자, 바위산 중 하나가 점차 투명해지더니, 바위산 안쪽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전각이 드러났다.

말 그대로 산 하나 크기의 거대한 전각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모두 들어가서 각자 신분 증명 패를 받으면 된다!”

허령은 수결을 맺으며, 소매에서 수천 마리의 귀신들을 꺼냈다.

그가 부리는 귀신들이 수백만 명이나 되는 세 종파의 제자들을 각기 다른 곳으로 인솔했고, 우리는 각기 귀신 무리들을 따라가, 전각 곳곳에서 신분 증명 패를 받았다.

얼마 후.

파츠츳!

나 역시 신분 패를 부여받았다.

신분 패의 뒷면에는 천족을 뜻하는 천(天) 자가 양각되어 있었으며.

앞면에는 ‘인족’이라는 글자와 ‘서은현’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는 작게 내 소속을 뜻하는 ‘창천개벽문 소속’이라는 글자가 음각된 것이 보였다.

수백만 명이 일시에 신분 패를 증명받는 거대한 작업이었지만, 의외로 신분 패 수여 작업은 빠르게 끝났다.

산 하나 크기의 전각 안에는 광한계 인족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서 사무를 보고 있었고, 자잘한 잡무들은 전부 법술로 처리하며 일을 하는 중이었기에 일 처리 자체는 느리지 않은 편이었다.

대략 반나절이 지나, 모두가 신분 패를 받고, 완전히 광한계 인족 소속이 되었다.

“자, 그럼 시운도에서 기초적인 신분 증빙이 끝났으니…. 이제 각각 들어갈 천공도를 골라라. 다른 계면에서 온 천인기들은 각자 자유자재로 골라서 들어가면 되고, 수계에서 온 세 종파는….”

허령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희는 미안하지만 선택권이 없다. 하필 사축기 지도자가 있는 집단인지라, 아무 천공도나 들어갈 수 있진 않아. 우선 우리 흑색귀골곡은 나를 따라오면 될 테고, 자네들, 금신천뢰문과 창천개벽문은 완전히 곳곳으로 흩어져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러지요.”

창호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금벽호는 떫은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문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금신천뢰문도 역사가 짧지는 않은데, 왜 아무도 금신천뢰문을 마중 나오거나 하지 않는 거지…?’

사축기만 되어도 수명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다.

때문에 몇만 년 전 비승했다는 고인들만 와도 충분히 금신천뢰문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얼마 후.

금벽호와 창호자는 전각 아래로 가, 천공도가 그려진 지도에서 적당한 천공도를 골라 흩어지기로 했다.

“자 그럼, 적혀 있는 천공도로 가면 된다. 앞으로 거기에서 생활은 우선, 각 천공도마다 인족 총령이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그럼 나는 이만….”

허령은 익숙하게 섭명함에 올라타며, 흑색귀골곡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천공도로 나아갔다.

“그럼, 앞으로 무운을 비네, 창호자.”

“나 역시.”

창호자와 금벽호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인사를 한 후.

각자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얼마나 금벽호와의 거리가 멀어졌을까.

나는 창호자에게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창호자 대인.”

“이제 스승님이라고 불러라.”

“아, 예, 스승님.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휘이이이이!

저 멀리, 창호자가 선택한 천공도가 보였다.

“어째서 흑색귀골곡은 선조가 나와서 맞아 주는데, 금신천뢰문은 역사가 긴 종문임에도 누구도 나와서 맞아 주지 않고, 금 태상 장문께선 표정이 안 좋으셨던 건지….”

내 말에, 창호자는 혀를 끌끌 찼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금신천뢰문은 4만 년 전, 수계 전체에 대혼란이 일어났을 때 이후로는 상계와 제대로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4만 년 전의 금신천뢰문과 관련된 대전쟁에, 광한계로 먼저 비승한 금신천뢰문의 선조들 역시 연루되어 뭔가 문제가 생겼단 뜻이겠지. 때문에, 금신천뢰문은 몇천 년 전에 비승한 선조 몇몇을 제외하고는 광한계와 연락할 수단이 마땅치 않으며, 최근 비승한 천뢰문의 선조들은 오히려 금벽호 녀석보다도 약한 이들이 태반이라 하더군.”

“…그렇군요.”

그렇다면 금신천뢰문의 선보에 대한 것을 경고해 줄 선조는 어디에도 없단 것이었다.

‘…금신천뢰문은 저대로 놔두는 게 맞는 것인가.’

몇 년 후, 확정적으로 진선에게 멸문을 당할 문파….

과연 어찌해야 저들을 막을 수 있을까.

‘…답은 하나지.’

일단, 강해져야 한다.

어쩌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저 포학한 종파의 사람들이 내 말을 듣게 하려면 힘을 키워야 할 터였다.

‘일단, 강해지자.’

나는 마음을 그렇게 굳게 먹으며 다짐했다.

“…으으으….”

“…괜찮으십니까, 오 차장…님?”

비차 옆쪽.

그곳에서 멀미로 고통스러워하며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오현석 차장을 보며.

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비차는 빠르게 하늘을 날았지만, 현대의 비행기 같은 편리성은 없었기에 흔들리기도 매우 흔들렸고.

거기에 문 틈새로 어마어마하게 찬 바람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오현석 차장은 비차에서 출발한 후부터 나와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비행 멀미에 겹쳐 찬바람을 쌩쌩 맞으며 죽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신음을 흘리는 그를 보며 혈 곳곳을 짚어 주었으나, 계속 비차가 흔들리니 계속 멀미가 심해지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휘오오오오!

저 멀리, 푸른 기운으로 둘러싸인 천공도가 보였다.

장대한 천공도.

시운도의 예닐곱 배 크기.

사실상 하늘에 떠 있는 대륙이나 다름없는 곳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모두들 들어라!”

창호자가 쩌렁쩌렁 목을 울리며 외쳤다.

“너희가 증명 패를 받을 동안, 허령 선배님께 듣기로. 각 천공도에 외부 세력이 자리를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한다!”

쿠구구구!

천공도를 감싼 두터운 결계가 가까워졌다.

파아아앗!

그리고, 창호자의 주먹에 시퍼런 휘광이 서리기 시작했다.

“천공도 내부 세력과 겨루어, 그들과 전쟁을 벌여 천공도에 있던 놈들의 영토를 빼앗는 것이 방법이다! 인족 총연맹 역시 이러한 적자생존식 경쟁이 인족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오히려 지지한다고 하더군! 모두 알겠는가? 하계나 광한계나, 본질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

쿠구구구구!

창호자의 육신에서 어마어마한 투지가 흘러나왔다.

“약육강식! 강한 이만이 살아남는다! 자아, 대창천개벽문의 제자들이여, 광한계 토박이들은 얼마나 쓸 만한 놈들인지 확인해 주자!”

쿠구구구구!

창호자의 뒤쪽을 따라오던 수많은 창천개벽문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투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청문세가는, 애들 장난이었군.’

투도를 숭앙한다는 험악한 가풍을 지닌 청문세가였다.

하지만, 그 본류라 할 수 있는 창천개벽문이 내뿜는 투기는 가히 비교도 아니 되는 수준.

“자아,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박살 낼 시간이다! 우리의 새 보금자리, 창한도(蒼寒島)로 들어가자!”

콰아아아아앙!

창호자가 가장 앞서 나가며,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하여 창한도라는 천공도의 결계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내어 버렸다.

* * *

우우우우웅!

창한도 전역에 전음이 울렸다.

창한도의 중앙, 거대한 옥빛 산봉우리의 정상.

그곳에 있는 푸른빛 누각에서, 여러 명의 천인기 수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운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막 하계에서 올라온, 창천개벽문이라는 종파가 창한도에 자리를 잡기 위해 쟁탈전을 하러 찾아왔다고 합니다!”

“하계에서 종파가 올라와? 그게 무슨 소리요?”

“이번에 건곤성에서 들려온 소식인데, 제 종파를 데리고 비승한 괴물딱지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문파의 최고 어른이란 자가 비승하자마자 사축기에 이르렀다 합니다.”

“사축기…? 이런 젠장. 창한도의 일반 문파들은 상대할 수 없겠구려. 그 정도 세력을 상대하려면….”

“서령문, 서령문이 나서야 하외다!”

수많은 천인기 수도자들이, 그 말에 누각의 한쪽에 앉은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위 장로, 서령문에는 사축기 어르신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동안 창한제일종문으로서 자리매김하셨으면, 이럴 때 나서서 위계를 보여 주심이….”

그 말에, 곤색 장포를 입은 사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웃긴 부탁 아니오?”

“뭐요…!?”

“고작 하계에서 막 비승한 떨거지들을 상대하러 본문의 어르신께서 나서신다니. 닭 잡는 데 용 잡는 칼을 쓰는 격이오. 막 하계에서 비승한 녀석들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소? 진정한 광한계의 수도공법은 견식해 본 적도 없는 이들일진대. 쟁탈전이야 그냥 구실 같은 거고, 적당히 창한도 구석에 자리나 내어 주면 될 터요.”

“하, 하지만 사축기 수도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흥, 당신들 종파에 있는 종파대진을 발동하면 막 사축기에 이른 수도자 한 명쯤은 막을 수 있잖소. 호들갑 떨지 마시오. 그리고 설마, 저 뭐시기 개벽문이란 문파가 진심으로 쟁탈전을 벌여 왔다고 생각하시오?”

그의 말에, 다른 천인기 수도자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새로운 세력이 타지에 자리를 잡으려면 방법이 무조건 쟁탈전뿐인데, 어쩌겠소?”

“아니외다. 그냥 다른 더욱더 강한 세력에게 복속당하는 것도 방법이지. 한 마디로, 저 창천 뭐시기 문은 이리 말하는 것이오. ‘우리는 사축기 급의 전력이 있고, 호승심도 있다.’ 그런 장점을 내세워 창한도 최고 세력에게 자신들의 전력을 비싸게 팔려는….”

“급보요!”

서령문 장로의 말을 끊고, 누군가가 전각으로 허둥지둥 날아왔다.

“서령문이 함락되었소!!!”

그 말에, 순간 뇌가 굳은 것인지.

서령문의 장로 위현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 * *

콰아아아앙!

“여기가 제일 좋은 영맥이 흐르는 곳이로구나! 오늘부터 이곳은 대창천개벽문의 자리다! 썩 자리를 내놓아라!”

창호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서령문의 가장 높은 전각.

그곳에 있는 사축기 수도자의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이와 같은 일은 현재 인족 영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 *

뇌령도.

뇌령제일종문, 뇌운각.

뇌운각이 있던 자리는, 말 그대로 뇌운각이 ‘있었던’ 자리로 변했다.

쿠릉, 쿠르릉!

파직, 파지지직!

뇌운의 힘을 휘감은 깃발을 들고, 금신천뢰문의 태상장문인 금벽호가 오연한 눈으로 뇌운각을 내려다보았다.

“이 뇌운각이란 곳에, 하계에서 비승한 금신천뢰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망령되게 출신을 잊고 천뢰문의 비전공법을 팔아먹으며 호의호식한 천뢰문의 배신자가 있다고 들었다. 열을 셀 동안 당장 튀어나오지 않으면 뇌령도 전체를 지져 버리겠다. 하나, 둘, 아홉, 열.”

콰르르릉, 콰르르릉!

금벽호는 상대가 대답할 틈도 없이 빠르게 열을 세고는, 깃발을 휘둘렀다.

동시에, 뇌령도 전역이 번개로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 * *

끼야아아아아.

키야아아!

흑연도.

귀기와 음기가 가득 서린 흑연도 위로, 두 척의 검은 배가 떠올랐다.

“드디어 섭명함이 올라왔군. 오늘에서야 흑색귀골곡이 다시 흑연제일종문의 자리를 얻겠구나….”

쿠구구구구구!

허령이 전신에서 귀기를 끌어올렸고, 그 뒤에서 허곽이 수십만의 귀신 무리를 끌어오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시커먼 섭명함 위로, 시퍼런 귀화가 어렸다.

흑연도에, 흑색귀골곡의 마수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 * *

그 밖에도 인족 구역인 운도 지대.

곳곳에서, 새로 올라온 수많은 수도 집단이 기존 집단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 * *

“커헉! 이 건방진 놈이…! 하계 놈 주제에…!”

콰과광!

곤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저 멀리서 창호자의 손에 잡혀 있던 사축기 수도자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흐하하! 제대로 해 보려느냐! 어림도 없지, 순순히 자리를 본문에게 넘기고 물러나는 게 좋을 것이다!]

쿠구구구!

창호자의 기세 역시 덩달아 커지기 시작했다.

두 사축기 수도자가, 하늘로 떠오르며 전투를 시작했다.

동시에 사축기 수도자들의 영언이 사방으로 울렸다.

[서령문도들은 들으라! 이 하계 땅개 놈들에게 광한계 본토 수사의 힘을 보여 주어라!]

[창천개벽문의 제자들은 들어라!]

콰과과광!

곤색 빛과 청색 빛이 하늘을 덮는다.

창호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우리가 이긴다!]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하지만, 그 하나면 충분했다.

쿠구구구구구!

창천개벽문은 압도적인 힘으로 창한도의 종파 하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비차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화라는 걸 시도할 생각이 없는 것일까….’

시운도의 여러 행정관 수사들이 창호자에게 말하기를.

쟁탈전이 새 지역에 편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는 것 같다.

방식 자체는 그렇다 쳤지만, 설마 그냥 별말도 없이 막무가내로 바로 쳐들어갈 줄은 몰랐다.

‘청문세가에 있을 때처럼, 얌전히 방안에서 수련하는 방식은 시도할 수 없겠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였다.

콰아아앙!

나와 오현석 차장이 탄 비차 앞으로, 웬 괴인이 떨어졌다.

대강 이 서령문이라는 종파의 장로인 것 같았다.

“커헉! 컥! 이런 빌어먹을… 뭐 이런 괴물딱지들이 비승했단 말인가…!”

잠시 이를 갈던 장로와, 내 눈이 마주쳤다.

장로가 나를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쿠구구구!

원영기 급의 기세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래, 종문의 귀한 제자들인가 보구나. 네놈들은 이제 내 포로다!”

잠시 그를 보던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비차에서 내렸다.

“흐하하, 그래. 빠른 항복은 현명한 생각이다. 무식한 하계 놈들 같으니…. 일단 네놈들을 포로로 잡고, 추후에 쟁탈전이 끝난 후에 네놈들의 목숨값으로….”

‘무형검은 안 되겠지.’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저 정도는 무형검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우우웅!

나는 아직도 내 몸을 덮고 있는, 혈체피갑에서 법력을 끌어모으며 법술을 맺었다.

“으응…?”

그가 의아해할 때.

쿠그그극!

땅에서 핏빛 나무가 자라나며, 내 옆에서 점차 뭉쳐지더니, 나무 인형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파삭, 파사사삭!

나는 나무 인형에 손을 얹고, 영력 회로를 빠르게 새겼다.

나무 인형이 점차 익숙한 얼굴로 변하였다.

우우웅!

잠시 후.

완성된 나무 인형의 영력 회로로, 주변의 천지영기가 빨려 들어가며 나무 인형이 엄청난 영기의 압력을 뿜기 시작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령문의 장로를 보며 말했다.

“이 친구는 서 장군이라는 친구인데, 생긴 건 이래도 마음씨는 착한 친구요. 이 친구와 잘 놀고 계시면 될 것 같구려.”

우우우웅!

지난 천 년 동안 내가 빼곡히 파악했던 육신과 회로들.

구조를 해박하게 알고 있으니, 이제는 언제라도 복제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진짜 서 장군의 육신은 굉장히 값비싼 재료들이 수두룩하게 들어갔기에 정말로 사축기 급의 괴뢰를 1초 안에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 고로, 방금 급조한 이 괴뢰의 힘은 대략….

콰아아아앙!

‘원영 초기 정도인가.’

나는 눈에서 광선을 뿜는, 양산형 서 장군을 보며 생각했다.

서령문의 장로는 허겁지겁 광선을 피하며 법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서령문의 장로를 보며, 서 장군을 한 기 더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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