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41화 (141/185)

광인(狂人) (5)

“몇 년 전이었더라…. 한령족을 점령하러 갈 때, 왜 합체기 수도자들이 괴군을 막아서지 않나, 그걸 궁금해했잖아요?”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듣자 하니, 인족 영역 부근에서, 광한계 전체를 뒤흔들 법한 거대한 운명의 파란이 일었다고 해요. 일설로는 선계(仙界)의 문이 열렸다는 풍문이 돌아, 모든 합체기 수도자들의 눈이 돌아가서 인족 영역으로 간 거였죠.”

김연은 내 어깨를 장난하듯이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선계에 대한 그 소문이 정리됐어요. 짐작이 가시나요?”

그녀가 숨을 들이쉬었다.

“전명훈 과장님이 가셨던 금신천뢰문이, 진선의 공격을 받아 씨몰살되었대요. 운명의 파란이니, 선계의 문이 열렸다니 하는 건 진선이 금신천뢰문을 찾기 전 전조 현상이었던 거예요. 큭큭…. 전 과장님만이 무시무시한 진선의 폭격에서 살아남아, 반쯤 맛이 가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기이한 건 그분이 가는 곳마다 번개가 떨어지는데, 그 덕분에 낙뢰자(落雷者)라는 별호도 얻으셨대요.”

어쩐지, 그녀의 얼굴에는 씁쓸한 기색이 맴돌았다.

“낙뢰자 전명훈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는데, 앞을 막아서는 이들은 개인이든 부족이든 가리지 않고 씨몰살시켜 버린다 하네요. 그 덕에 원한도 잔뜩 쌓여서 이곳저곳에 쫓기고, 그러다가 또 찾아가서 복수하고, 일족을 몰살시키고…. 몇 년째 그 짓을 반복하고 있다 해요. 덕분에 악명도 많이 쌓이셨다는데… 그래 봤자 우리보단 아니겠죠.”

철퍽!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괴뢰들이 움직이며 눈앞에 있는 종족의 시체들을 가져왔다.

쿠구구구구!

하늘 위에서는 [그녀]가 어느새 합체기 급의 기세를 흩뿌리며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령족을 정벌하고, 광령지에 있는 재료들로 한껏 강화를 한 후.

[그녀]는 물론이고 기묘성채에 있는 괴뢰들 역시 전체적으로 전력이 상승하였다.

“여하튼, 인족 영역으로 합체기 수도자란 수도자는 싹 다 몰렸던 탓에, 이렇게 기묘성채의 전력이 한층 강해져, 합체기급 괴뢰도 벌써 몇 개나 생겼으니… 우리가 괴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건 한참 요원해진 셈이네요.”

피가 흐르는 전장.

괴뢰들이 움직이며 전장을 정리 중이었고, 김연은 괴뢰들로 이뤄진 옥좌에 앉아, ‘나’를 옆에 세워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하튼, 나중에 전 과장님이랑도 한번 만나 보고 싶네요. 과장님이라면, 제 심정을 이해해 주실까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심정을? 아하하….”

그녀는 비실비실 웃으며 내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민희 언니는 현재 흑색귀골곡과 함께 광한계를 돌아다니며 실력을 쌓고 계시대요. 듣기로는, 수백만 마리의 귀신 떼를 한 손으로 부린다는데…. 그 덕에 지금 광한계 전체에서 민희 언니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네요. 우리가 악명으로 유명하다면, 언니는 엄청난 명성으로 유명하대요. 민희 언니를 노리려고 진마계와 혈음계, 명귀계의 첩자들이 습격했던 일도 있다네요. 후후….”

김연의 입을 통해, 동료들의 근황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오 차장님은, 창천개벽문에서 이름을 날리고 계세요. 개파사조인 창호자의 직전제자로서, 그를 따라 의협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네요. 그리고 어쩌면, 추후에 괴군을 상대할 연합에 참여할지도 몰라요. 후후… 동료들에 손에 의해 구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며 말했고, ‘서 장군’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괴군이 명령한 것을 지키며 계속 전장 정리 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혜서 언니는, 오혜서 언니는… 소식이 잘 안 들리네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해룡왕 서휼과 혼인하여, 용왕비가 되었다고 하는데…. 서휼은 진룡맹의 군사(軍師)로 활동을 하며 이름을 떨치지만, 혜서 언니는 정작 소식이 없어요. 정말 신기하죠? 진룡맹에 속한 용족들도 몇 놈이나 잡아서 물어봤는데, 그중에서 혜서 언니 소식을 아는 놈들은 하나도 없다는 게…. 마치 정보가 일부러 다 차단된 듯해요. 후후… 괴군이 그러던데, 서휼이 손을써 뒀을 거래요. 그자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음험하다나 뭐라나…. 미치광이 주제에 남을 험담할 자격은 되나 모르겠어요.”

꾸욱….

서 장군의 몸을 톡톡 두들기거나 쓰다듬던 그녀가, 서 장군의 몸을 움켜쥐었다.

“김 부장님은… 뭐 당연하지만 소식이 없어요. 하계에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 은현 오빠랑 같이 괴군이 어딘가로 날려 보내지 않았나요? 은현 오빠, 김 부장님은 어떻게 됐을 것 같나요?”

“….”

“…오빠?”

“….”

“…내가 묻잖아요.”

우드득….

김연의 의념이, 불안정해진다.

“내가 묻잖아, 대답하라고…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왜! 대답해! 대답해, 서은현! 대답하라고!!!”

쿠구구구구!

그녀가 진노하자, 하늘이 요동치며 대지가 진동한다.

천인기에 불과했지만, 거대한 의식으로 인해 증폭되는 그녀의 힘은, 사축기에 달하였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며, 천지사방이 요동쳤다.

“대체 왜! 나만 남겨 두고 간 거야! 왜!!! 제발! 제발 대답을 해 주세요! 은현 오빠, 동료들 얘기도 해 드렸잖아요? 뭔가 더 궁금한 건 없어요? 말해 드릴게요. 제발, 대답을 해 줘…. 그때처럼 나를 위로해 줘요….”

김연은 폭주하듯이 오열하며 서 장군의 어깨를 잡고, 마구 울부짖었다.

“흐아아아아!”

그리고, 나는 그 쓰라린 고통을 옆에서 느끼며, 속으로 이를 짓씹었다.

서 장군이 된 지도 80년째.

서 장군의 영력 회로를 장악하려 시도한 지도 80년째였다.

우우웅!

상단전 안쪽에 존재하는 회로는 어느 정도 장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상단전으로 올라오며, 내 영혼을 복제하는 영력 덩어리들은 상단전으로 올라오는 즉시즉시 분쇄해서 내 가용 자원으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겉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안면 부근이나, 목 부분의 회로는 아직 장악하지 못했으며, 회로를 장악해 가면 갈수록, 회로와 연결된 의식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의식들을 통해 더욱더 많은 곳에서 기묘성채의 ‘웅성임’이 전해져 왔다.

괴군은 80년간 광한계 온갖 곳곳을 쏘다니며 종족을 점령하고, 괴뢰들을 만들어 댔다.

10억.

약 10억에 달하는 괴뢰들이 기묘성채에 새로 들어앉았고, 그들의 ‘웅성임’은 더더욱 커졌다.

회로 하나를 장악할 때마다, 웅성임이 들어오는 창구가 하나 더 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웅성임의 크기는 커져만 간다.

그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당장이라도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제발 내게 대답을 해 줘! 대답을…!”

‘네 마음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내게, 계속해서 마음을 주고 있으니….’

이 마음을.

‘언젠가, 반드시 돌려주겠다.’

나를 위해 울어 주는 이에게, 보답하지 않는다면.

이 삶은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받을 생각이 없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언젠가 나를 위해 울어 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내 옆에서 오열하는 김연을 인식하며, 더욱더 회로의 장악에 힘을 썼다.

그리고.

다시, 500년이 흘렀다.

* * *

김연은 사축기에 이르렀다.

괴군의 기묘성채는 더더욱 성장하였고, 어느덧 합체기 급 괴뢰들 역시 열다섯 기가 넘게 되었다.

괴군은 광한계 전체에 이름이 알려졌고, 그의 직전제자인 김연 역시 모르는 이들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더욱더 빛이 사라졌고, 서 장군을 붙잡고 미친 듯이 오열하거나 광증에 젖어 ‘사랑해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은현 오빠, 동료들 소식이 또 들어왔어요. 들어 보시겠어요?”

“….”

“들어 주겠다니 고마워요. 역시 제겐 오빠밖에 없어요. 흐힛….”

그리고, 어느 순간.

김연은 나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 멋대로 상상하고 말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500년.

그 시간 동안, 나를 잃고 괴군의 기묘성채에서 괴뢰들과 생활하며.

기묘성채의 광증을 받아들이며, 그녀는 미쳐 있었다.

“낙뢰자 전명훈은 학살마로 유명해졌어요.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들은 그 종족 전체를 몰살시켜 버리는 광인으로 유명하죠. 뭐, 전명훈은 이전에도 어차피 이런 식으로 유명했으니 넘어가고….”

오득, 오드득….

김연은 괴군과 같이 입에 손가락을 넣고 마구 짓씹으며 얘기를 이어 갔다.

“민희 언니! 아아, 불쌍한 민희 언니. 귀도공법을 익히며 수십억에 달하는 귀신 떼를 부리는 경지까지 올라갔다고 해요. 그런데, 귀신 떼를 너무 많이 받아들이다 못해, 미쳐 버렸다고 하네요. 자기 사문인 흑색귀골곡을 집어삼켜 멸문시켜 버리고, 귀골곡 일대를 집어삼켰다고 해요. 섭명함 한 대만이 겨우 거기에서 탈출했고, 합체기 수도자들이 민희 언니를 토벌하기 위해 모인다고 해요. 킥킥… 기묘성채는 토벌할 엄두도 못 내면서, 애매한민희 언니만 괴롭히러 가는 꼴이란…. 수많은 귀신을 잡아먹고, 부리며, 강력한 귀물(鬼物)이 되어 버린 언니는 현재 삽풍역 가운데 있는 곳에 터를 잡고 뭔가 강력한 존재로 우화(羽化)한다고 하네요. 후후….”

잘근, 잘근….

손가락을 씹으며, 김연이 이야기를 이었다.

“창호자가 죽은 후론, 오 차장님 역시 정신이 많이 불안정해졌다나 봐요. 술과 여색, 약 등 쾌락에 빠져 지낸다고 하던데. 회사에서는 그렇게나 듬직하셨던 분이 그렇게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나요? 그래도 창호자 아래서 가장 행복해 보이셨던 분이었는데, 사람 하나가 죽으니 그렇게 망가질 줄이야…. 하긴,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누구든 망가지는 법이죠.”

우득, 우드득….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흐른다.

“김 부장님은 여전히 소식이 없어요. 뭐, 죽었겠죠. 큭킥… 그리고, 혜서 언니는….”

우득, 우드드득!

“아직도, 별 소식은! 없네요! 무소식이!”

우드득!

“희소식이라니까!”

우드득!

“좋은! 거겠죠? 그렇죠? 혜서 언니, 대답해 봐요. 김 부장님도 죽었을 테고, 나는 미쳤고, 전 과장도 미쳤고, 민희 언니도 미쳤고, 은현 오빠는 이렇게 됐는데! 혜서 언니, 혜서 언니만큼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죠? 그렇죠? 모두가 광인(狂人)이 되었어요. 혜서 언니만큼은!”

우드드득!

“이런 비참한 꼴이 없이, 해룡왕 옆에서,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지내고, 있겠죠? 그렇죠? 그렇다고 대답해 줘. 우리가 다 이렇게 됐는데, 한 사람쯤은 행복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렇지, 은현 오빠?”

우드드득….

어느새 그녀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쉬이이이이….

영기가 꿈틀거리며, 사축경에 달한 그녀의 육신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오빠… 제발, 대답 좀 해 줘요. 제발…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녀의 의식이 혼잡스럽게 사방으로 뻗쳤다.

그녀는, 기묘성심전을 대성하지 못했다.

대성했다면, 아직까지도 괴뢰에 들어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괴군의 앞에 설 때야, 월도답천에 달한 깨달음으로 그의 시선에서 내 심상을 가렸지만.

김연의 앞에서는 늘 심상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그녀가 기묘성심전을 대성했다면 그것을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묘성채의 괴뢰들을, 맨정신으로 조종하며 점차 기묘성채 괴뢰들의 ‘웅성임’에 의해 정신이 광증으로 물들고 있다….’

기묘성채의 광증과 별개로, 기묘성심전 자체는 훌륭한 의식공법이었다.

하지만, 대성하기 전에 저렇게 광증에 물든다면 마지막 한 발자국을 밟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괴군은 기묘성심전을 대성한 다음 미쳤던 거겠지.’

나는 광증에 물들어 눈이 혼탁하게 물든 그녀를 보며 감정을 정리했다.

지난 500년간.

서 장군의 회로를 장악하며 알아낸 것들이 있었다.

우선, 괴군이 만든 괴뢰들은 전부 인공 혼을 가지고 있다.

영혼을 복제할 틈도 없이 죽어 버린 시체로 만든 괴뢰도, 아니면 시체가 없이 그냥 나무나 돌, 쇠 등으로 만들어진 괴뢰도.

다른 괴뢰들의 인공 혼을 모방해 만들어진, 양산형 영력 덩어리라도 들어 있다.

그러한 인공 혼, 영력 덩어리는 괴뢰들이 괴뢰 주제에 제법 의념과 비슷한 영력 파장을 내뿜게 한다.

그리고, 괴군의 영력 회로는 다른 괴뢰들의 회로와 연동이 된다.

그 연동을 통해 괴뢰들은 의념을 흉내 낸 영력 파장을 서로와 주고받는다.

그 파장은 괴뢰들을 하나로 엮어 주는 역할을 하며, 김연만큼 의식이 거대하지 않은 괴군이 기묘성채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만든다.

그렇게 하나로 엮인 괴뢰들은, 기묘성채 안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의념을 흉내 낸 파장을 강화시킨다.

인공 혼이 즐거움의 감정을 뿜어내며, 아이 괴뢰가 다른 아이 괴뢰들과 뛰노는 행동을 하면, 그 영력의 파장은 미약하지만 조금 증폭된다.

그리고 그 행위를 수억에 달하는 괴뢰들이 한다면, 그 증폭률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그렇게 증폭된 영력의 기묘한 파장은, 기묘성채 전체를 엮어 내며, 기묘성채의 중심으로 점차 몰린다.

중심으로 갈수록 감정 파동은 점차 실제 의념과 비슷하게 압축되고, 증폭된다.

그리고, 기묘성채 중심부의 감정들은 수억의 괴뢰의 인공 혼을 합쳐서 만든 것일지언정 진짜 인간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의 소용돌이 중앙에는, [그녀]가 존재했다.

나는 괴군의 괴뢰 속에서, 그의 행적을 좇으며.

그의 목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괴군은, 진짜 의념을 모으고 모아, [그녀]의 영혼을 제작하려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녀]는 영혼이 없다.

아니, 500년간 괴군의 밑에서 생활하며 알아낸 바로는.

[그녀]는 사실 생체괴뢰조차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재료들에, 여러 가지 귀한 재료를 덧대 만들어진, 강력한 그냥 괴뢰.

그냥, 자신의 연인의 생전 모습을 최대한 반영해서 만든, 그냥 괴뢰일 뿐이었다.

괴군이 가진 최강의 괴뢰는 두 개였다.

하계에서부터 만들어 오며, 지금은 합체기 최정상까지 강화시킨 두 기의 사축기 괴뢰.

[그녀].

그리고 [기묘성채].

기묘성채를 통해 수많은 괴뢰들을 통솔하고, 기묘성채를 통해 괴뢰들의 인공 혼에서 감정을 엮어 진짜 의념으로 만들고.

기묘성채를 통해 의념을 공정해서 [그녀]의 영혼을 점차 완성시킨다.

‘그렇게 해서,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낸 연인이 과연 정말 자기 연인일지….’

나는 괴군의 정신 나간 목표를 추론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괴군의 목적은 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

인간의 영혼을 제작한다는 건 굉장한 금기였다만, 사실 그런 것보다는, 나는 그의 명령에서 벗어나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영력 회로를 장악하는 이유 역시 괴군의 명령을 더 이상 회로가 받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서 장군’의 영력 회로 중 상반신은 어느 정도 장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이라도 팔을 움직이면 김연을 토닥여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괴군이, 알아차린다.’

영력 회로는 다른 괴뢰들과 연동되어 있다.

그리고 연동된 회로를 통해 영력 파장이 서로 엮이며, 기묘성채 전체가 엮여 괴군의 손 안에서, [그녀]를 완성해 간다.

그렇기에, 아무리 홀로 떨어져 있을지라도, 아무리 서 장군의 영력 회로를 장악했을지라도.

내 멋대로 괴군의 명령에서 벗어나는 짓을 하면, 괴군이 바로 알아차릴 터였다.

‘그리고, 괴군은 이번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면 내 영혼을 완전히 이 괴뢰에서 뽑아 뜯어내 보려고 하겠지.’

그럴 순 없다.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지난 500년간, 나는 방법을 찾아냈다.

‘연동된 회로를 통해, 괴군의 다른 괴뢰들 역시 점차 장악해 나간다.’

기묘성심전을 통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장악해 나가며, 괴군이 내린 명령만 제대로 이행하면 사실 괴군에게 들킬 리 없어.’

기묘성채 전부를 장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서 장군 주변에 있는 괴뢰들.

그 괴뢰들이 생활하는 구역 정도만 장악하면 된다.

‘괴뢰들이 일사불란하게 괴군의 명을 따른다지만, 작은 오류 몇 개 정도는 어쩔 수 없고, 그런 오류들은 기묘성채가 자체적으로 수정을 하지, 괴군에게까지 정보가 올라가진 않는다.’

그리고, 구역 하나를 장악한 다음.

작은 오류를 쌓고 쌓아, 서 장군 하나에게로 오류를 몰아넣는다면.

그 짧은 틈새 동안은 괴군의 시야에서 벗어나서 장군의 육신을 조종할 수 있다.

‘분명, 가능하다.’

벌써 서 장군 말고도 팔천 기의 괴뢰들의 영력 회로를 장악한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내 의식이 아닌, 서 장군의 영력 파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괴뢰들을 장악해야 했기에 괴뢰들의 장악은 생각보다 느렸다.

거기에 의식을 바깥으로 뿜으면 기묘성채가 이상을 알아차릴 수 있기에, 김연에게 말조차 못 전하고 있었다.

“흐, 흐히….”

나는 잠시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팔천 기 정도면, 서 장군의 몸을 움직이진 못한다.’

나는 결심했다.

‘하지만… 팔 하나 정도는….’

철컥, 철컥, 철컥….

팔천 기의 괴뢰들이, 일시에 아주 약간씩 별것 아닌 오류를 낸다.

‘방법을 어느 정도 찾아냈으니….’

그리고 그런 작은 오류는 기묘성채가 자체적으로 수정을 한다.

철컥철컥철컥….

나는 괴뢰들의 연동을 통해, 그 오류를 서 장군의 한쪽 팔로 모조리 몰았다.

철컥, 철컥, 철컥!

서 장군의 팔이 비틀리는 듯했으나, 내 의식이 서 장군의 팔을 장악했다.

그리고.

‘오래 걸렸군.’

그래도 용서해 다오.

오늘을 시작으로, 다시, 지속적으로 네게 표현해 주마.

토닥, 토닥….

“…?”

서 장군의 팔이, 500년 만에 내 의지에 따라 김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류를 이용하면, 입도 조금 조종할 수 있다….’

아슬아슬하지만, 찰나 정도라면.

김연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

나는 서 장군의 입꼬리를 살짝 올려 주었다.

그리고, 오류는 금세 수정되어 내 행동들은 다시 돌아갔지만.

김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광증에 젖은 그녀의 눈이, 일순간 맑아진다.

어쩌면 정말로 믿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위안할 거리가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의 동아줄이라도 된다는 듯.

내가 보여 준 작은 행동을 보며, 덜덜 떨며 양손을 들어, 서 장군의 팔을 잡았다.

“거기… 있어요?”

괴군의 제자로 500년.

그녀도 이제 괴뢰 제작법과, 괴뢰로 만들어진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는 다 알고 있었다.

“인공 혼… 그 뒤에… 있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희망을 부여잡으며 나를 보며 물었다.

잠시동안 동원할 수 있는 오류를 다 사용한 나는 대답할 순 없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다.

여태까지 오열하며 뿜었던 탁한 눈물과는 다른 것이었다.

“아아, 있구나. 그렇죠? 은현 오빠, 드디어, 드디어 대답해 주신 거죠?”

뚝, 뚝뚝….

500년 만에 대답을 들은 그녀는, 이를 짓씹으며 서 장군의 몸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대답해 줘서… 남아 있어 줘서….”

아주 작은 신호였을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그것에 매달리며, 내게 끊임없이 감사 인사를 했다.

괴군의 기묘성채.

광인의 성에 있던 미치광이 중 한 명이.

다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파츠츠츠츠….

그녀의 의식이 맑아진다.

그리고, 그녀의 성취를 막고 있던 광증이 사라지며.

김연의 기묘성심전이 만개(滿開)하였다.

‘아아….’

그리고.

마침내.

나와 그녀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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