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狂人) (4)
나는 의식을 미친 듯이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을 움직여 봐도, 제대로 움직여지는 건 없었다.
무형검을 움직여 보려 해도, 정작 무형검은 펼쳐지지 않았다.
‘제길,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괴군에게 잡혀 오기 전에는 생체 괴뢰가 되면 천년만년 죽지도 살지도 못하며 사는 줄 알았다.
지난 생에 괴군에게 잡히기 전 자살한 이유기도 했고, 이번 생 초반에 김연을 죽이려 했던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껏 괴뢰들 중 살아 있었던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였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괴군의 밑에서 멍하니 숨만 쉬고 살아온 게 아니다.
나름대로 그의 괴뢰를 파헤쳐 보고, 그의 어깨너머로 그가 괴뢰를 만들고, 조작하는 걸 봐 온 상태였다.
‘전부 그냥 시체였다…. 거기다가 이렇게 의식이 남아 있지도 않았어!’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라앉히고, 우선 내 혼(魂)을 관조했다.
영혼이, 괴뢰의 상단전에 그대로 안착되어 있었다.
마치 생명체의 혈관과 신경처럼 다닥다닥 깔려 있는 괴군의 영력 회로가, 내 영혼을 붙들고 있었다.
‘이 회로들 자체는, 나뿐이 아닌 다른 괴뢰들에게도 깔려 있던 거였다…. 부숴진 괴뢰들을 봐 와서 알아. 그런데 왜 나만 영혼이 남아 있는 거지?’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철컥!
내 몸이 갑자기 외벽 순찰을 하던 중.
우뚝 멈추더니,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괴군의 부름이었다.
파아앗!
괴군의 부름에 이끌려 온 곳은.
김연이 지내던 기묘성채 안쪽의 장원.
나와 그녀가 자주 만나던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괴군과 김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 선물이란다! 어떠냐?”
“…예?”
괴군의 광소에, 김연의 안색이, 점차, 점차 굳어 간다.
“…아니죠? 스, 스승님. 아니죠? 그렇죠?”
“음? 아! 걱정하지 마라! 서 장군은 제대로 서은현을 가지고 만들었단다. 네가 좋아하던 녀석을 이제 네가 다룰 수 있게 된 거란다! 아! 괴뢰와 괴뢰사의 시간을 더 방해할 수 없지! 오늘 밤은 잘 보내거라!”
괴군은 미친 듯이 낄낄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김연의 눈에는 망연자실함이 깃들어있었다.
싸아아아―
그녀의 의념이 마구 뒤엉킨다.
분노, 슬픔, 절망, 고통, 공황….
모든 것이 섞여 버린 대혼돈.
“아, 아아….”
저벅, 저벅….
그녀가,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나를 어루만졌다.
“아아… 으아아아….”
덜, 덜덜덜덜….
아마 그녀가 음혼귀주문을 익혔다면.
그녀 역시 음혼귀주문의 창시자를 지금 넘어서지 않았을까.
“흐아아아아…!”
김연이, 비명을 질렀다.
“왜! 왜! 왜…!”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왜…!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다 기대했던 워크숍이 통째로 사라지고 이상한 세계에 끌려왔어! 미치광이 노인네에게 잡혀 와서 하루하루 공포 속에서 살아왔어! 그래도! 그래도 언젠간 은현 오빠와, 이곳에서 나가 제대로 함께할 수 있을 줄 알고, 그것만을 희망으로 버텨 왔는데!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드득, 드드드드드!
파스스스!
기묘성심전으로 인해, 안정적인 원구형으로 안착되어 있던 그녀의 의식이, 원래 형태대로.
마치 실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가기 시작한다.
실처럼 뻗쳐 나간 그녀의 의식은, 기묘성채 전역을 뒤덮었다.
“왜 내게서 다 빼앗아 가는 거야! 도대체 왜! 왜…!!!!!”
털썩!
김연은 내 앞에 쓰러지며, 내 몸체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공기가 진동한다.
공간 전체가 떨려 오는 듯했다.
그리고.
‘내’가 움직였다.
철컥!
“기묘성채 내에서 소동을 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계음이지만, 상당히 나와 닮은, 그러나 시릴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
그 목소리에, 김연이 뚝 그쳤다.
그녀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라고?”
“기묘성채 내에서 소동을 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흐, 흐히….”
김연이, 웃기 시작했다.
“그래, 알겠어… 가만히 있을게….”
싸아아아―
사방으로 뻗쳤던 그녀의 의식이, 다시 원구 형태로 압축된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이 검붉게 물들었다.
의념을 보는 내 눈에는, 삽시간에 그녀의 의식 영역이 덮고 있는 지역 전체가 어둠에 휩싸인 것 같았다.
스륵….
그녀가, 내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은현 오빠. 반드시… 괴군에게서 기묘성채를 빼앗아, 그의 눈앞에서 [그녀]를 산산조각 내어 박살 내고, 당신의 복수를 해 드릴게요….”
“성주님과 성주 부인에 대한 위해 행위는 성내에서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조금만 기다려 줘요….”
‘제길….’
괴뢰 바깥으로 의식을 뻗쳐 보려 했지만, 내 의식은 괴뢰 안쪽, 괴뢰의 상단전에 갇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의식만이라도 바깥으로 뻗칠 수 있다면, 어떻게 내 의식이라도 전할 수 있으련만…!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줘요! 내가! 내가 당신을! 구해 드릴게요!”
콰악!
김연의 양손이 내 머리통을 잡았다.
그녀의 눈에는, 괴군과 비슷한 광증이 자리 잡은 듯이 보였다.
그리고.
꿈틀, 꿈틀….
‘…?’
그녀가 ‘나’를 꽉 움켜쥐는 사이.
내 발밑으로, 뭔가가 기어 올라온다.
‘이 느낌은….’
지네였다.
꿈틀, 꿈틀….
녀석이, 괴뢰의 관절 사이로 들어와, 회로들이 즐비한 몸체 쪽으로 기어들어 왔다.
10년.
10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성채 안쪽에서 키워 왔던 녀석.
영기가 하계의 수백 배는 되는 환경인 탓인지, 녀석은 쉽게 죽지 않았고, 무럭무럭 컸다.
그리고 먹이를 주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 녀석은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녀석은 내가 이렇게 되었음에도 나를 알아보고 내 몸속에 기어 온 것 같았다.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렇게 남아 있다.
‘…제길.’
그리고, 나는 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우우웅!
내 가슴 속에서 감정의 격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
뭔가, 기이한 기운이 내 영혼체를 얽어매었다.
‘뭐지, 이건?’
굉장히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생겨남과 동시에….
물컹….
뭔가 물컹거리는 감각이, 내 영혼체 한구석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월도답천에 달한 나는, 내 영혼체를 관조하며, 영혼체 바로 옆에 생겨난 이 감각의 정체가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내 감정의 격류에 따라, 괴뢰의 안쪽에 있는 영력 회로들이 움직이며 내 영혼체를 ‘복사’하고 있다!
내 감정의 흐름을, 그 격통을 똑같이 모사한 영력 덩어리가, 내 영혼체 옆에 생겨났다.
내 영혼을 완전히 복제한 것은 아니고, 방금 생겨난 그 감정에 대한 것들만이 복제되었다.
그리고.
우우웅!
영혼체가 있던 자리에, 복제 영력 덩어리가 생겨난 만큼, 내 영혼체가 상단전에서 ‘밀려’ 나기 시작했다.
‘…미쳤군.’
나는, 그제야 괴군의 생체괴뢰가 된 이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깨달았다.
생체괴뢰로 개조당한 후.
얼마 동안은 괴뢰의 안쪽에 있는 영력 회로에 붙들려, 이승에 남아 있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력 회로들은 영혼체를 모방한 영력 덩어리를 영력 회로 안쪽에 복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원본의 영혼체를 복제하다가, 완전히 원본과 비슷한 영력 덩어리의 복제가 완료되었을 때.
원본의 영혼체는 바깥으로 방출되어 흩어지며 저승으로 가 버리고, 그 자리를 괴군의 영력 회로가 만든 영력 덩어리가 차지하는 것이었다.
‘아, 이제야 알겠군. 기묘성채의 괴뢰들을 조작하면 느껴지는 광증의 근원.’
기묘성채의 괴뢰들은, 괴군이 만든 ‘인공 영혼’이 들어가 있다.
인공 혼들은 진짜 영혼과 비교하면 조잡한 영력 덩어리일지언정, 그래도 원본을 최대한 복제한 영력 덩어리이다.
원본의 기억, 경험, 감정 등 모든 것을 복제하지는 못하지만, 원본이 느낀 강렬한 감정 몇 개 정도는 그럭저럭 비슷하게 ‘표현’ 되는 영력 덩어리.
그리고 그 영력 덩어리가 들어간 괴뢰들은, 기묘성채의 안에서 전부 연동되며 연결되어 있었다.
수많은 감정이, 어찌어찌 연결되어 휘몰아치는 세계.
그것이, 기묘성채(奇妙城砦)인 것이었다.
‘어떻게 괴뢰들에서, 칠정과 똑같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비슷한 영력의 흐름이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겠군….’
인간의 혼을 복제한 영력 덩어리가 들어차, 인간의 의념을 흉내 내는 영력 파장을 내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눈앞에서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오열하는 김연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나는 완전히 죽고, 회귀하는 건가.’
내 감정을 복제한 영력 덩어리가, 내 영혼의 크기만큼 커져 내 혼을 완전히 밀어내면, 나는 완전히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내 회귀는, 그때에서야 이뤄질 터였다.
김연이, 괴뢰의 몸에 달린 장식들을 부여잡고, 매달린다.
“오빠,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네? 이전에는 위로해 줬잖아요.”
“은현 오빠, 예?”
“…왜, 말이 없어요? 왜? 왜?”
“…대답 좀 해 봐요. 대답을 하란 말이에요! 대답을 하세요! 제발! 제에발! 흐아아아아아!”
그리고, 나는 나를 부여잡는 그녀를 보며 깨달았다.
‘…죽을 수, 없다.’
우우웅!
나는 바깥으로 방출된, 약간의 혼을 다시 억지로 구겨 넣듯이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천년만년 이 괴뢰에 갇힐 일은 없었다.
내가 이전에 본 대로, 이 괴뢰에는 영혼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나는 편하게 회귀하면 된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이미 실패하여, 아무것도 못 하고.
괴뢰에 갇혀 비참한 꼴이 되었을지라도.
이것은.
‘내 삶이다!’
썩 유쾌하고 밝지는 못했을지언정.
김연과 나누었던 마음 역시 마음.
그녀와 마음을 나누었기에, 이 삶은 곧 축복.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으냐?’
우우웅!
나는 내 정신력으로, 도리어 복제된 영력 덩어리를 밀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퍼엉!
급조된 영력 덩어리는, 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렸고, 영력 덩어리를 이루던 영기들이 괴뢰의 상단전에서 떠다녔다.
‘이용할 수 있겠어.’
우우웅!
나는 터트린 인공 혼의 영력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괴뢰 바깥으로 의식을 뻗지는 못하지만, 인공 혼의 영력은 내 의식으로 다룰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웅성웅성웅성….
나는, 인공 혼의 영력에 의식을 뻗쳤을 때.
수백, 수억에 달하는 인간들의 음성이 한 번에 내 뇌리에 꽂히는 기분을 느꼈다.
기묘성채에 있을 수억에 달하는 괴뢰들.
그들이 발하는 감정.
하나.
‘나 역시, 너희들에게 뒤질 만한 마음을 가진 게 아니다…!’
꾸우우웅!
나는 그 무수한 웅성거림에, 내가 겪어 온 고통으로 화답하며 그 웅성거림을 무시했다.
우우웅!
내 영혼을 속박했던 영력 회로.
그 일부가, 아주 미세한 일부가, 내 의식에 잠식되었다.
쿠구구구국!
내 영혼이 영력 회로를 장악하자, 영력 회로들이 저항한다.
허락되지 않은 일이라는 듯.
강력한 압력이 내 영혼에 내리꽂힌다.
그때였다.
꿈틀, 꿈틀….
내 몸 안쪽으로 기어들어 온 지네가, 현재 영력 회로들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머리 부분으로 기어들어 왔다.
그리고.
사각, 사각….
알고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본능이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녀석은 나를 가장 압박하는 회로 중 하나를 갉아먹었다.
꾸웅!
철퍽!
그와 동시에, 체내에 이물질이 날뛰는 것을 느낀 ‘내’ 몸이 움직이며, 체내에서 영기의 압박을 높여 지네의 몸을 터트려 죽였다.
지네는 그대로 터져 죽었다.
재생시켜 줄 원립의 혈체 역시 떨어져 있으니, 이제 녀석은 완전히 죽어 버린 것이었다.
‘…고맙다.’
나는 아직 이름도 안 지어 준 녀석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하며, 녀석이 갉아먹은 회로를 향해 영력을 뻗쳤다.
즈우우웅!
‘내’ 몸은 영력 회로에 이상이 생긴 것을 간파하고, 수리 공장을 향해 움직이려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파아아앗!
지네가 갉아먹어 준 회로를, 내가 방금 모았던 인공혼의 영력으로 이었다.
회로는 문제없이 작동한다.
겉보기에는.
‘내’ 몸은 다시 그 자리에서 대기를 했고, 나는 겉보기에 이상이 없는, 지네가 갉아 준 회로를 통해 더욱더 ‘서 장군’의 몸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느리군….’
인공혼을 터트려 얻은 영력은 미약했고, 영력 자체가 기묘성채에 있는 다른 수억에 달하는 인공혼과 연결되어 있기에 다루면 광증도 치솟는다.
물론 광증은 정신력으로 극복이 가능했지만, 이런저런 것을 다 감안해도 ‘서 장군’의 영력 회로를 장악하는 데엔 굉장히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연아.’
나는 울다가 지쳐서 기절해 버린 김연을 보며 다짐했다.
‘반드시, 내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것을… 네게 말해 주겠다.’
몇백 년이 걸리든.
아직,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네게 알리겠다.
‘이 생에 너와 인연이 닿았으니… 이 축복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살아남아… 네게 마음을 돌려주마.’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다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렀다.
* * *
“은현 오빠… 그거 알아요?”
김연이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령족에 이어, 규루족, 팔허족, 각치족, 소령족, 공작족을 점령하고… 최근, 우리 동료들 소식들을 들었어요.”
천인기에 이른 그녀가, 수많은 괴뢰들을 손끝으로 부리며 내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전명훈 과장님 얘기부터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