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狂人) (2)
철컥철컥철컥….
사방의 기관 장치가 울린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빠져나갈 구석을 생각해 보았다.
‘저 미치광이에게 더 뭔가 말을 거는 건 포기하자.’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개조나 되라 식이다.
‘자살할까?’
하지만….
나는 막 벌 괴뢰에게 잡혀간 김연을 생각했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김 주임은 저 미치광이에게 홀로 잡혀 살며 똑같이 개조를 당해야 하는 건가….’
미치광이의 일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을 때는 몰랐지만, 마주하고 나니,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김연을 괴군과 혼자만 함께하게 두어선 안 된다.
‘일단 자살은…생각하지 말자.’
그렇다면 탈출은 가능한가.
‘무형검으로 주변 괴뢰들의 회로만 끊고 도망치면….’
그것도 될 리가 없다.
원영기였던 원립에게는 어느 정도 통했다지만, 천인기 대원만의 노괴.
그리고 사축기 급의 괴뢰.
이것들이 당장 눈앞에 있으며, 이곳은 괴군의 아가리 속이다.
‘제기랄.’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콰과과과!
내가 있던 자리로, 천장에서 수많은 괴뢰 팔들이 내려와 나를 향해 손을 뻗친다.
나는 식겁해서 산군월악비를 펼치며 괴뢰 팔들을 피했다.
[음? 피해?]
그리고, 내가 피하자 괴군의 눈알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씨발….’
답이 없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면 팔 하나로만 끝날 걸 전신이 강제로 개조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나는 괴군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제 발로, 가겠습니다.”
[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누워 보려무나. 내가 예쁜 걸로 하나 새로 달아 주지.]
“….”
나는 이를 악물고 작업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이 미치광이가 마취는 해 주려나.’
인권도 없는 이 시대에 사실 기대도 안 했다.
사실 나야 마취 정도 없어도 팔이 뜯겨 나가는 고통은 익숙했지만, 김연이 걱정일 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개조받으면, 내가 마취약이라도 만들어서 먹여야겠군.’
아니나 다를까.
괴군이 내 옆으로 걸어오며 그대로 천장의 괴뢰 팔들이 내려온다.
[어디 보자, 입을 벌려 보려무나.]
괴군은 그렇게 말하며, 대뜸 내 입으로 손을 집어넣어 입을 벌린 후.
내 입안을 갑자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호오, 호오, 호오…. 좋아, 좋아. 몸놀림을 보고 예상이야 했지만, 역시 무림인이었군. 그렇지?]
“으으, 어으.”
[그래그래. 알았다. 소문은 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무림인에게 잘 대해 주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다. 치열을 보니 오기조원까지 도달한 대단한 녀석이구나. 아주 좋아. 재능이 풍부한 녀석이니, 부족함 없이 대해 주겠다. 그럼 조금 찌릿찌릿할 테니, 잠시만 참거라.]
“…?”
파지지지직!
갑자기 엄청난 뇌전이 나를 뒤덮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뇌전을 참았다.
‘갑자기 번개로 지진다고?’
그리고 얼마 후.
내가 나를 덮은 뇌전 속에서 기절하지 않고 버텼을까.
뇌전이 사라지고, 괴군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뭐야, 기절 안 했느냐? 마취해 주려고 번개까지 쏴 줬는데. 정신력이 대단한 놈이로구나!]
‘…보통은 번개로 상대를 지지는 걸 마취라고 하든가?’
내가 어이없어할 때, 괴군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정도로 정신력이 뛰어나니, 그냥 멀쩡한 상태로 개조해도 버틸 수 있겠구나?]
철컥!
그와 동시에, 내 입에 강제로 재갈 같은 게 물리고, 사지가 결박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마취가 안 됐으면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할 게 아니라 한 번 더 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 왼팔을 향해 괴뢰 팔들과 기관 장치들이 몰려들었다.
* * *
쉬이이이….
“….”
[완벽하군! 아주 훌륭하게 되었어. 장하구나! 개조가 되는 동안 꿈틀거리지조차 않다니, 역시 훌륭한 자질을 가졌어!]
나는 한숨을 쉬며 작업대에서 일어났다.
‘김연 주임이 걱정이군.’
나 정도 되니 미동도 안 하고 이 정신 나간 개조를 견딘 것이다.
일반 사람은, 아니, 일반적인 결단기, 원영기 수도자도 방금 개조에서 느껴진 고통은 쉽게 무시할 고통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나는 왼팔을 들어 보았다.
이 미치광이가 나를 갑자기 개조한 것치고, 사실 새로 생긴 이 왼팔 자체는 꽤 쓸 만해 보였다.
한쪽 팔 안쪽에는 수많은 회로들이 잔뜩 들어차 있었으며, 내 의지에 따라 팔이 매우 부드럽게 움직였다.
거기다가 의식을 불어넣자, 팔에서 감각도 썩 잘 느껴졌다.
이것만 해도 의수로써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거기에 팔 안쪽에 내장된 기능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 느껴진다.
[자, 자. 우선 기본적인 동력은 기묘성채 안에서는 기묘성채의 힘을 흡수하여 돌아가게 만들어졌고. 바깥으로 나가면 네 기력을 빨아먹으며 그걸 동력으로 삼도록 설계되었다. 한번 성능을 실험해 보거라.]
철컥, 철컥, 철컥!
괴군의 작업실 한쪽으로, 웬 과녁 같은 것들이 잔뜩 솟아났다.
괴군이 달아 준 괴뢰 팔은 의식을 불어넣자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의식으로 전해졌다.
철컥!
왼손을 펴고 의식을 집중하자, 손바닥으로 기운이 몰린다.
그리고.
퍼어엉!
새하얀 광선이 뿜어지며 과녁 세 개를 동시에 재로 만들어 버린다.
‘…팔자에도 없이 손에서 광선이 나가게 되었군.’
우우웅!
손가락을 살짝 굽히자, 다섯 손가락 끝으로 영력이 뭉치며 정순지력으로 이뤄진 새하얀 손톱이 튀어나왔다.
붕, 부웅!
내가 손을 휘두르자, 손톱의 길이가 자유자재로 늘어나며 과녁을 썰어 버린다.
키잉, 철컥 철컥!
그리고 주먹을 쥐자, 팔 곳곳이 열리며 그곳에서 분사구가 사출된다.
콰과과과!
분사구에서 영력이 분출되며, 나는 주먹과 함께 날아가 과녁 하나를 그대로 박살 내어 버렸다.
주먹을 날릴 때 위력을 더하는 용도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당장 이 정도만 봐도, 평범한 일류 무림인이 이 팔 하나만 있으면 연기기 10, 11성 수도자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전부 무형검으로도 다 할 수 있는 기능들이군.’
오히려 경지가 너무 높은 내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러운 능력들이었다.
이런 능력들이야 부가 능력으로 봐야 할 것 같았고, 아무래도 괴뢰 팔의 진짜 능력은 다른 것일 터였다.
‘조화력… 오기조원으로 신체의 균형을 완벽히 맞춘 이 몸과 완벽히 조화된다. 아무런 어긋남이 없고, 기혈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진짜 팔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느낌, 그리고 균형.
그게 이 팔의 진짜 장점일 터였다.
그리고, 괴군이 이 팔을 만들어 준 진짜 이유는 역시….
[뭘 하느냐? 그거 한번 뽑아 보라니까?]
부우웅!
무형검이 왼팔을 통해서 뿜어진다.
[호오! 그 팔로도 나오는구나!]
그는 심상인 무형검이 괴뢰 팔로도 뿜어지는지가 궁금했던 듯싶었다.
‘몸에 붙어 있다는 걸 제외하면, 그냥 법보나 다름없으니 아무래도 당연하겠지.’
당장 법보에 씌워서 사용하는 기능도 있던 게 무형검이었다.
그냥 유리검에 무형검을 덧씌웠던 것과 아무 차이도 없었다.
하지만 괴군은 뭔가 영감이 떠오르는지 입술을 핥으며 내 팔을 보고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번들거리던 눈으로 중얼거리던 괴군이, 어느 순간 머리를 부르르 떨었다.
[흠, 흠…. 그래, 됐다. 이만 가 봐라.]
부우웅!
장내에 이송용 벌 괴뢰가 다시 나타났다.
[이 녀석이 네가 앞으로 지낼 숙소로 안내해 줄 게다. 그럼 일단 가르침은 내일부터 주도록 하지. 우선 오늘은 쉬고 있으려무나.]
괴군은 내 대답은 딱히 듣지 않고, 사축기 목인의 육신으로 다가가 미친 듯이 무슨 짓을 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나는 벌 괴뢰와 함께 어딘가로 날아갔다.
* * *
파아앗!
공간을 넘어 날아온 곳은, 기묘성채 안쪽에 자리한 어떤 커다란 장원이었다.
장원 안은 마치 진짜 현실의 장원처럼 꾸며져 있었으며, 풀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짐승과 곤충들이 무성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시비들이 움직이며 장원을 닦고 청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장원의 형태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살아 있는 게 단 하나도 없군.’
풀과 나무조차도 정교하게 만든 괴뢰였으며, 곤충과 작은 짐승들.
그리고 시비들 역시 인간인 척을 하는 괴뢰들이었다.
철컥, 철컥….
내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시비 괴뢰들이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나를 안내하겠단 건가?”
철컥, 철컥….
시비 괴뢰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괴뢰들을 따라 장원 내부로 들어갔다.
시비 괴뢰는 내가 지낼 숙소와 장원 곳곳의 장소를 안내해 주었다.
‘삭막하군.’
괴뢰들은 친절했지만, 아무것도 살아 있지 않은 이 장소는 왠지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음?’
저 멀리, 자그마한 생기(生氣)가 느껴진다.
‘이 기운은….’
나는 땅을 박차고 생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곳은 내가 있는 곳의 옆 장원이었다.
장원의 한구석, 그곳에 김연 주임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멍하니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연분홍빛 경장을 입은 그녀는 혼란과 공포가 가득한 얼굴로 괴뢰 시비들이 일하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타앗!
나는 그녀의 옆에 내려앉았다.
“아, 서 대리님?”
내가 그녀의 옆에 내려앉자, 그녀의 얼굴에 희색이 맴돌았다.
“다행이에요! 도대체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여기는 너무 공포스러워요. 그리고 저 풀, 저 나무! 저것들조차도 전부 로봇 같은 거인 거 아세요? 여기는 정말이지, 살아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어요! 저희, 앞으로 어떻게 하죠?”
“….”
나는 공포에 질린 김연의 얼굴을 쳐다보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 주임님, 제 말 잘 들으십시오.”
그녀를 위로라도 해 줄까 싶었지만, 한쪽 팔을 개조당하고 오니 마음이 굳어졌다.
“이제, 우리가 살았던 현대 사회는 잊으셔야 합니다. 이 세계에는 인권 같은 게 없으며. 우리를 납치해 온 저 미치광이 노괴는 틈만 나면 광증이 도져서 우리를 개조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철컥….
나는 내 왼팔을 김연에게 보여 주었다.
잠시 이해를 못 하는 듯하던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뭐예요? 서 대리님, 장난하시는… 거죠?”
“김 주임님.”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두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제 말을 잘 들으시지요.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우선 이 세계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이 세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무림인, 요괴, 수도자….
무공, 법술, 상계와 하계.
괴군 조연, 그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
김연이 각성한 거대한 의식이 뭘 의미하는지 등.
“…이런 세상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아직도 잘….”
“보여 드리는 게 빠르겠군요.”
나는 수결을 맺었다.
괴뢰가 된 왼팔 역시 정순지력을 돌리는 데엔 문제가 없었고, 도리어 원본 팔보다 훨씬 튼튼했기에 법술을 쓰는 데엔 더욱 문제가 없었다.
“해(解)!”
촤라라락!
그와 동시에, 내 몸 곳곳에 스며들어 그동안 재생력을 높여 줬던 혈체피갑의 술법이 풀렸다.
촤르르르!
그리고 내 몸에 스며들어 있던 핏물이 옆으로 떨어지더니, 츄르륵거리며 다시 원립의 혈체로 돌아갔다.
촤륵, 촤르르륵….
혈체는 내게 그동안 계속 재생력을 부여해 주었던 탓에, 결단기 후기였던 수행이 연기기 초기 정도까지 한참 떨어져 있었다.
“이, 이게 대체….”
김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혈체를 바라보았고, 나는 혈체의 손을 통해 결인을 맺었다.
화르르륵!
혈체의 손 위에서 불꽃이 튀어나오고, 온갖 신이한 법술들이 나타났다.
“이제 좀 믿으시겠습니까? 이 세상은 이런 기이한 것들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믿기는 믿었어요. 이게 꿈인지 아닌지… 헷갈렸을 뿐이에요. 누가, 지독한 악몽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
잠시 김연은 지친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때였다.
꿈틀, 꿈틀….
촤락!
혈체의 혈관이 꿈틀거리더니, 안쪽에서 새끼 지네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아, 이 녀석을 잊고 있었군.’
그동안 혈체를 통해 내 체내에 넣어 놓고, 혈체의 재생력을 몰아주며 공간 압력에서 버티게 했다.
물론 공간 압력이 압력이니만큼 수십 번은 더 터졌겠지만, 그래도 재생력도 재생력이니만큼 터졌다가 계속 재생되긴 했을 터였다.
‘조금 미안해지는걸….’
혈체를 통해서 고통을 차단시켜 두긴 했지만, 그래도 멀쩡한 녀석의 몸을 몇 번이고 터트렸던 거니까.
‘일단 계속 들어가 있거라.’
나는 혈체를 조종해, 지네를 다시 혈체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혈체의 살로 지네를 뒤덮어 혈체의 몸속으로 녀석을 밀어 넣었다.
괴군이 지내는 이 기묘성채에서, 함부로 녀석을 꺼내 놓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조금 진정이 됐는지, 김연은 혈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서 대리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시나요? 그리고 이 여자…? 아니, 남잔가? 어쨌든 이 사람은 또 뭐죠?”
“김 주임님,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주임님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들 모두 기이한 능력을 각성했다는 걸 알고 계시지요?”
“네.”
“저 역시 비슷합니다. 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 역시 제가 각성한 능력의 일환이고, 이 정보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런가요? 참, 제 능력 말인데….”
“그리고!”
나는 김연의 말을 끊었다.
“무슨 능력을 얻었는지는, 절대로 발설하지 마십시오.”
“예? 여긴 저희 둘밖에 없는데….”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꼬옥….
나는 김연의 두 손을 잡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의념은 물론이고 얼굴 역시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네, 네! 약속할게요. 나중에… 말해 주실 거죠?”
“추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의념을 보며 쓰게 웃었다.
“그러니 약속해 주십시오. 주임님의 비밀은, 죽을 때가 되더라도 발설하지 말아 주시기를.”
“네, 네….”
그녀의 의념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래서야, 앞으로 버리고 가기도 힘들겠군.’
김영훈이야 나와 헤어지면 조금 안타까워할지언정, 신나게 혼자서 잘 다녔다.
하지만, 이 상태의 그녀라면 나와 헤어졌을 때 어떻게 될지 몰랐다.
나는 김연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주고, 이 세상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알려 주었다.
그렇게, 기묘성채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 * *
다음 날부터, 우리는 괴군에게서 각각 공법을 전해받았다.
연기기 기초공법서들과, 동시에 기묘심전(奇妙心典)이라는 공법서였다.
“기묘심전은 의식공법의 일종으로서, 의식을 단련하고 더더욱 키워 나가는 것에 주력한 공법이니라. 동시에, 기묘성채에 사는 주민들을 부리기 위해 꼭 필요한 공법이기도 하지. 연기기 때까지는 기묘심전을 익히고, 의식이 본격적으로 안정되는 축기기부터는 내 본명의식공법인 기묘성심전(奇妙性心典)을 알려 주마.”
기묘성채의 주민들이라는 말로 보아, 아무래도 괴뢰를 조종하는 데에 최적화된 의식공법인 듯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김연을 도와 의식공법을 수련하고, 그녀가 기초공법을 더 잘 익히도록 도왔다.
반년이 지났다.
* * *
기묘성채가 자리 잡은 계곡의 위쪽.
쿠구구구구!
나는 반년 만에 내 주변을 두르며 회전하는 영기의 구름 다섯 갈래를 보았다.
‘미친 속도군.’
여우의 요단이 없었음에도, 그냥 대기 중의 영기를 흡입하며 선각후통에 의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년 만에 오월입도경의 극성에 달했다.
이 상태라면 한 달 정도만 더 있으면 그대로 축기에 도달할 것 같았다.
그리고, 김연은 현재….
쿠릉, 쿠르릉….
계곡의 다른 쪽에서 칠성제의에 실패하여 조급한 얼굴로 입술을 쥐어뜯고 있었다.
천거(天拒) 현상.
김영훈 때는 몰랐지만.
아니나 다를까, 현대에서 넘어온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임이 틀림없었다.
“또… 실패했어요. 어떡하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흠칫 떨며 뒤로 물러났다.
지난 반년.
괴군은 내 왼팔뿐이 아닌, 내 양팔을 전부 괴뢰 팔로 개조했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팔 역시, 인간과 같은 질감이 아닌, 단단한 나무의 그것이었다.
나 역시 광한계에서도 천거 현상을 겪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괴군이 달아 준 괴뢰 팔에서 나가는 광선으로, 강환을 쏠 것도 없이 구름을 찢어발겨 천거 현상을 극복했다.
그리고 이 말인즉.
“서 대리님… 저 어떡해요? 괴군이, 제, 제 팔도 이제….”
천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김연 역시 괴군에 의해 개조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다음 시운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 다시 도전해 보시지요. 그리고 괴군 역시….”
나는 그녀의 의식 영역을 바라보았다.
실처럼 이리저리 마구 흐트러졌던 반년 전과 달리, 괴군의 의식공법을 익힌 그녀의 의식은 이제는 차분히 원구형으로 천지를 덮고 있었다.
“김 주임님은 저처럼 함부로 개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아래쪽의 기묘성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반년.
괴군은 우리에게 의식공법과 기초공법을 전수해 준 후.
또다시 사축기 급 괴뢰를 만들겠답시고, 몇 개월째 지금 기묘성채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 틀어박혀, 사축기 목인의 사체를 개조 중이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괴군이 공방에서 두 달 뒤면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 날까지 칠성제의를 아직도 끝내지 못하면….”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내 팔을 바라보았다.
‘천거 현상….’
나는 하늘에서 흩어지는 구름을 보며 생각했다.
“김 주임님. 현재 기묘심전은 몇 성까지 익히셨죠?”
“11성이요.”
기묘심전은 총 12성으로 되어 있으니, 대성을 한 발 앞두고 있었다.
“어쩌면, 천거 현상을 극복하실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어, 어떻게요?”
나는 괴뢰 팔을 들어 보였다.
“괴뢰의 힘 역시 ‘내’ 힘으로 취급된다면, 어쩌면 김 주임님도 괴뢰들을 부리신다면….”
“시, 싫어요!”
그러나 김연은 고개를 저으며 울상을 지었다.
“서 대리님도 아시잖아요! 그 괴뢰들, 조종하려 하면….”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편하게 기묘성채의 괴뢰들을 동원할 수 있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기묘성채의 괴뢰들에는, 문제가 있었다.
“제, 제 정신이 이상해진다고요.”
벌 괴뢰의 회로를 북향화가 연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묘성채의 괴뢰들에는 칠정에 대응되는 회로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회로들은 기묘성채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괴뢰들과 연동이 되어 있다.
지자난 삶. 홀로 떨어진 벌 괴뢰는 조작할 때에 문제가 없었었다.
하지만 기묘성채 전체와 연동된, 괴뢰들의 회로를 조작하려 하니, 마치 회로가 살아 있는 것처럼 조종자의 의식을 잠식하며, 기묘성채의 괴뢰를 조작하는 이는 정신에 어떻게든 이상이 오게 되어 있었다.
괴군의 광증에 맞게 설계되었기에, 괴군이 아닌 이가 조작하려면 괴군과 동화되어 정신이 분열되어 버리는 기묘성채의 괴뢰들.
그것이 김연이 현재 난항을 겪는 부분이었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천거 현상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있군….’
나는 걱정에 빠진 그녀를 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직접 하늘을 뚫는 걸 도와드릴 순 없습니다.”
“…그럼….”
“하지만, 도움은 어떻게든 드려 보겠습니다.”
“아…!”
나는 괴뢰가 된 양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맨정신으로 개조 수술을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수술 전에 전기로 지져서 기절시킨다고 해도 말이다.
괴군은 사축기 괴뢰를 완성하고 나왔는데, 그녀가 천거 현상 때문에 아직도 연기기 7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녀의 팔 역시 개조해 버릴 터였다.
‘그 미치광이가 개조하는 걸 아예 막지는 못할지라도,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나는 공포에 떠는 김연을 보며 다짐했다.
한 달이 지났다.
쿠구구구구!
나는 축기기에 도달했다.
체내에 익숙한 정순지력이 흐른다.
쿠르르릉!
나를 향해 떨어지는 천뢰를 갈라 버리고, 먹장구름을 흩어 버린 후.
나는 계속해서 천지영기를 흡수하며 공법을 운용했다.
오월입도경 다음으로 운용하는 구결.
음혼귀주문.
파츠스스스….
음혼귀주문은 ‘고통을 느끼면’ 경지가 오르는 공법이 아니라, ‘고통을 이해하면’ 경지가 오르는 공법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해도’였기에, 나는 축기기에 오르고 하루 만에 축기 초기의 극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시커먼 저주문이 전신을 맴돈다.
그리고, 이 정도만 되어도 김연을 도와줄 수 있을 터다.
‘내일모레, 김연의 칠성제 시운이 잡힌다.’
그리고, 나는 음혼귀주문을 통해 그녀의 칠성제를 도울 요량이었다.
* * *
“괴뢰들을, 조작해 보라고요?”
“예.”
나는 괴뢰들을 보며 말했다.
“광증이 느껴지실 테지만, 한번 의식을 불어넣어 보십시오.”
“…알겠어요.”
김연은 내 단단한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괴뢰들을 향해 의식을 뻗었다.
우우웅!
기묘성채의 주민들.
그곳에 있는 수많은 연기기, 축기기 급의 괴뢰들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으, 으으윽….”
김연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다는 듯이 괴군의 광증을 견뎌 냈다.
나는 김연의 어깨를 잡고, 내 심상을 최대한 김연의 심상과 맞닿게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김 주임님, 주임님의 의식에 제 의식을 덧대겠습니다. 기묘심전의 구결에 맞춰 의식 파장을 최대한 맞춰 주십시오.”
“네, 네…!”
우우우웅!
김연 주임의 의식과 내 의식이 일순간 맞춰졌다.
그 순간, 그녀의 의식을 통해, 그녀가 조작하는 기묘성채와 연결된 괴뢰들의 광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끈적한 광기.
이 광기가 기분이 나쁜 것은, 단순히 정신 분열을 일으키는 것 때문이 아니다.
꿈틀, 꿈틀….
광기가 원주인의 인격을 밀어내며, 점차 육신을 장악하고 광기가 조종자의 의식을 장악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우드득!
나는 김연이 겪고 있는 고통을, 저주문을 통해 나를 저주인형으로 삼아 모조리 내게 떠넘겼다.
피싯, 피싯!
머리 곳곳의 혈관이 터져 나가며, 코피가 흘렀다.
‘이 정도의 고통은….’
꾸욱!
나는 주먹을 쥐며, 내 정신을 집어삼키려는 광증을 도리어 압도했다.
‘어림없다!’
쿠그극!
그 상태에서, 나는 김연을 보며 말했다.
아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우리의 의식이 연결된 상태였으니까.
[이제 괴뢰들을 조작할 수 있으십니까?]
[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는 듯하더니, 두 손을 뻗쳤다.
쿠구구구구!
괴뢰들이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의지대로 사방팔방으로 도열했다.
수백 마리의 축기경 괴뢰가 김연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아직 그 정도군요.]
[네, 아직 익숙지가 않아요.]
[여하튼, 이걸로 시도는 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김연과 심어를 주고받으며 말했다.
[이제, 칠성제의를 지내 볼까요?]
철컥, 철컥, 철컥….
계곡 위쪽.
칠성제의를 지내는 제단.
그 주변으로, 수많은 괴뢰 군단이 자세를 잡고, 하늘을 향해 저마다의 법술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광한계에서의 칠성제의는 이전 세계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다른 것은, 이전 세계의 이십팔수와는 완전히 다른 별을 향해 제의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작 제의를 지낼 때 부르는 명칭은 똑같았다.
괴군이 몇 개월 전 납치해 온 인근 종족의 말에 의하면, 수도계에서 제의를 지내는 이십팔수의 별자리 명칭은 어느 차원을 가도 고정되었다고 한다.
진짜 별을 보고 그 별에 맞춰 제를 지내는 것이 아닌.
그 별이 가진 ‘기운’에 맞춰 제를 지내기에, 어떤 세계든지 비슷한 ‘기운’을 가진 별이 있다면 그 별을 이전 세계의 별과 똑같이 부른다는 것이었다.
쿠릉, 쿠르릉….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김연은 제례를 끝마치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에 의해 조작당하는 수백 기의 축기경 괴뢰들이, 일제히 빛을 뿜었다.
콰광, 콰과과과광!
축기경 괴뢰 수백의 공격에, 하늘의 구름이 그대로 찢어졌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그녀 자신의 손으로 괴뢰들을 움직여 하늘을 찢은 것이기에.
하늘 역시 그녀의 행동을 인정해 준 듯했다.
파아아앗!
김연이, 연기기 7성에 무사히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은현 오빠.]
그녀의 의념을 통해, 짙은 안도감과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고마워요….]
연기기의 고비를 넘긴 김연은, 눈매를 훔치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의식의 연결을 끊었다.
“축하합니다. 김 주임님.”
그녀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이제 경지 정체 때문에 개조당할 일은 없으시겠군요.”
“네, 다 은현 오빠 덕분이에요. 그나저나 저희, 언제까지 주임님, 대리님하고 부를 거예요? 하핫.”
김연이 천천히 제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여기 회사도 아닌데.”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아니, 그것보다 은현 오빠, 회사에 있을 때는 반말하셨으면서, 왜 계속 존댓말하시는 거예요?”
“….”
‘그랬던가?’
그것도 900년 전이다.
잘 생각도 안 났다.
“반말하세요. 칠성제의를 지내면서 느낀 건데….”
그녀가 깊은 안도의 의념과 함께 말했다.
“남은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죠.”
하지만 나는 그녀가 말하는 것이, 단순히 친하게 지내자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저 의념은, 내가 모를 리 없는 의념이니까.
“사실 저는….”
그때였다.
[오, 잘 지내고 있었느냐?]
불쑥!
공간을 뚫고, 괴군이 갑자기 머리를 들이밀었다.
번뜩!
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김연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나는 그 시선을 눈치채고 전신에 오한이 드는 기분이었다.
괴군은 김연의 의념의 색을 보고 있었다.
[오오, 오오오… 오오!]
김연의 의념을 보는 괴군이, 수상쩍은 탄성을 질렀다.
미치광이의 뜻은 읽기가 힘드니, 언제나 긴장이 된다.
나는 침을 삼키며 괴군에게 물었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스승, 님…. 한 달은 더 있으셔야 오실 줄 알았습니다만….”
[아하! 예상외로 사축기 괴뢰가 빨리 만들어져서 말이다!]
촤아악!
공간을 찢고 나온 괴군이 손을 까딱였다.
쿠우우우우!
저 아래쪽에 있는 기묘성채가, 천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첩보를 보냈던 첩보 괴뢰가 [그녀]의 몸에 주입할 재료가 한가득인 광령지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하더구나. 한데, 광령지를 점령한 광한계의 부족이 상당히 고강한 종족이라 하더군. 한령족(寒靈族)이라는 종족인데, 한령족의 합체기 수도자도 광령지에 거한다 하는 만큼 굉장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종족 같더구나.]
“…어찌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까?”
괴군이 핏발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양팔을 펼치며 외쳤다.
[어쩌긴 뭘 어쩌느냐! 전쟁이다! 한령족이고 뭐고 다 정복해 버리고, 내 앞을 막아서는 것들을 다 정복해 버리고! 세계가 나를 막아선다면 세계를 정복해 버리겠다! 히히히히! 세계 정복이다! 세계 정복! 자, 가자꾸나. 사축기 괴뢰를 만드는 방법 역시 안정화가 되었으니, 지금부터, 한령족과 전쟁을 하러 가겠다!]
쿠구구구구!
기묘성채에서, 명실상부한 사축기 급의 힘이 세 채가 뿜어져 나왔으며.
동시에 지난 반년 새, 승급 천겁을 겪고 사축기에 오른 괴군의 기세가 천지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