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36화 (136/185)

백회(百會) (5)

‘내가 본 설화집이, 없는 내용이라고?’

흔한 동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동화였다고?

‘아니, 그러면… 왜 ‘지난 회귀’에서는 분명히 있었던 책이, 지금은 없다는 거지?’

기이하다.

너무나도 기이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어느덧 금신자 양수진이 남겨 놓은 운명의 잔영으로 향했다.

‘그래, 분명 그 잔영은 쇄천봉 인근에 운명의 인력을 설치해 놓았고, 그 잔영을 보려면 말도 안 되는 확률의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쩌면, 그 동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역시 양수진.

혹은 다른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운명의 인력으로 끌려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내용의 동화이며.

그것을 보려면 무언가 말도 안 되는 확률의 기적을 구현해야 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최소 진선급 이상의 존재인 양수진이 남긴 것과 같다면.

어쩌면 그 기이한 내용의 설화는, 말도 안 되는 확률의 기적을 거쳐야만 다시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머리를 굴리며,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하면 언젠가 그런 책을 발견하거든 꼭 내게 말해 주시오.”

나는 옆에서 인형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를 보며 말했다.

“너도 그런 내용의 책을 보거나, 혹은 그런 내용이 떠오르면 꼭 말해다오. 내게 아주 필요한 거란다.”

“네!”

여자아이는 가지고 놀던 일곱 개의 인형을 껴안으며 해맑게 대답했다.

“음, 그런데 언니는 어디에 있니?”

“언니? 무슨 언니. 내 애는 외동딸이외만.”

학사가 은근히 불편한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뭐지?’

나는 거기에서 또다시 기묘한 점을 느꼈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어딘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든다.

‘음, 하긴. 그랬지. 이 꼬마아이는 지난 삶에 자기 부모님을 기다린다고 했으니….’

왜 나는 갑자기 언니라는 말을 내뱉었을까.

“어쨌든 감사드리오.”

어쨌든 나는 감사 인사를 한 후.

일단 예정대로 지네 요괴를 해결해 주기로 했다.

타아앗!

단박에 자리를 박차고 고개를 넘자.

지네 요괴가 사는 지네굴이 보였다.

그리고.

카앙, 캉, 캉!

지네굴 앞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무림인들이 보였다.

‘아, 저 자들이 그 자들인가 보군.’

촌장이 고용했다는 무림 고수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검기를 뿜으며 지네 요수를 향해 병장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검기는 지네 요수의 갑피에 흠집도 내지 못했고, 도리어 지네 요수가 내뿜는 독기에 하나둘 피를 토하는 것이 보였다.

“죽어라, 죽어라, 이 괴물아!”

한 무림인이 피를 토하면서도 지네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지네 요괴는 입을 쩌억 벌리고 녀석을 맞이하였다.

곧바로 머리통을 뜯어 버릴 모양.

찰나.

나는 찰나의 틈새를 찢고,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부웅!

손바닥에서 나간 격공장이 무림인 사내를 휘감아 부드럽게 동굴 바깥까지 내보냈고, 반대쪽 손에서 나간 무형검이 지네 요수를 강하게 밀쳐 냈다.

콰아아앙!

지네 요수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아, 아니….”

“저게 무슨….”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토하는 무림 고수들에게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내 무형검이 그들의 요혈을 짚었고, 점차 그들의 경락에 스며들어, 곳곳의 기를 강제로 운용시킨다.

그리고.

파앗!

“크억, 쿨럭!”

“크웨에에엑!”

무형검이 기를 인도해 주자, 그들의 몸에 고여 있던 지네의 독기가 그들의 입을 통해 전부 빠져나왔다.

“기본적인 독기를 빼내 주었소만, 의원을 찾아가서 다시 치료받으시오.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독기는 나도 어쩔 수 없으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지네 요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키륵, 키르륵!”

“놈.”

나는 요족어를 통해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흘긋 보니, 지네 요수는 나를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더욱 깊은 굴속으로 도망치진 않았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아래쪽에 녀석의 알로 보이는, 손톱보다도 작은 쌀알 같은 것이 그득그득하게 있었다.

녀석은 제 알들을 지키려고 잔뜩 독기를 뿜으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것이었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단박에 쪼개 버리려던 무형검을 잠시 거두었다.

“…물러가라. 다시는 인간을 잡아먹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풀어 주마.”

“키륵, 크륵….”

잠시 몸을 움찔대던 지네가, 내게 말했다.

“자식, 들을… 나와 같게, 만들지 못하면… 어찌… 어찌….”

녀석은 절망스러운 의념을 토해 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어찌 살아가겠, 습니까. 외롭… 습니다. 위대하신, 분… 차라리, 지금 여기서 저를, 죽여, 주십시오.”

지네가 축 늘어진 기색으로 말했다.

“제 피와 살을, 뜯어먹고, 남은 자식들이, 그나마 저와 같아질 수, 있도록… 저를… 죽여 주십, 시오….”

“….”

뜨거운 모성애였다.

내가 이 녀석을 죽일까 말까 고민할 때였다.

뒤쪽에서, 독기를 어느 정도 억누른 모양인지.

아까 전 피를 토하면서도 지네에게 달려들었던 무림인 검객이, 이쪽으로 달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존자께 인사드립니다! 이 쇤네가 감히 존자께 한 가지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뭔가.”

나는 녀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부디! 놈을 찢어 죽여 주십시오! 최대한 고통스레 죽여 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지네는 요족어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녀석은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놈이, 제 연인을 잡아먹었습니다! 놈을 죽여 주십시오! 반드시! 부탁드립니다!”

“….”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시 지네를 돌아보았다.

‘그래, 뭘 고민하고 있나.’

모성애는 분명 숭고하나, 그럼에도 이 녀석은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더군다나.

나는 연인이 잡아먹혔다는 무림인의 말에 내 가슴 안쪽이 욱신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래도 넌 죽어야 할 것 같구나. 뭔가 남길 말이 있느냐?”

나는 지네를 보며,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지네는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자식, 들이… 저 같은… 아니, 당신, 같은…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지네는, 자신이 죽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고개를 몇 번이고 조아렸다.

“자식들만, 은… 부디….”

“…그래. 힘써 보지.”

나는 지네에게 다가가,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푸콱!

무형검이 녀석의 전신을 통과하며, 단숨에 모든 신경을 끊고 놈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아마 고통은 없었으리라.

“…됐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지네가 죽자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올리는 무림인을 보고, 지네가 깔고 있던 곳을 들춰 보았다.

그곳에는 수천 개의 지네 알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요수 지네의 알보다는, 그냥 평범한 지네의 알 같았다.

아니, 사실 느껴지는 영기는 한 올도 없었으니.

지네의 요력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 한 그냥 알일 터였다.

나는 저물대에 지네의 쌀알만 한 알들을 전부 옮겨 담았다.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힘써 보마.”

나는 지네를 잠시 쳐다본 후.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무림인들을 지나쳐 다시 마을로 갔다.

“이걸로 지네는 처리되었소.”

“가, 감사합니다…! 부, 부디 이거라도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선인님!”

나는 촌장이 내미는 것을 보았다.

깨끗한 백의 도복이었다.

이 마을에서 쌍선무를 출 때에 입는 옷.

“…고맙게 받겠소.”

나는 그에게서 백의 도복을 받아 갈아입었다. 옷을 입고 있으니, 문득 지난 삶이 떠오르는 듯했다.

‘…좋군.’

나는 그때의 추억을 잠시 음미하고는 말했다.

“최고의 선물이오. 고맙소.”

타앗!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섭명함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이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선배님.”

[놈, 어딜 이렇게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거냐. 그래, 일단… 다음 목적지는 또 어디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봉명성입니다.”

쿠구구구구!

송진은 섭명함을 잡고, 봉명성에 들어갔다.

촤아악!

나는 봉명성의 외벽 금제를 파훼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전하군.’

그리고, 나는 봉명성 안쪽을 뒤져 필요한 물건들을 획득했다.

여러 가지 선주들.

특히 백홍주.

그리고….

‘그러고 보니, 이건….’

나는 곰방대 하나를 발견했다.

기다란 장죽 형태의 곰방대.

‘일반 짐승에게 영성을 불어넣어 준다는 법기였었나…?’

나는 가만히 법기의 설명을 자세히 보았다.

―법기 요선죽(妖仙竹).

―불을 붙여 피운 후, 짐승에게 그 영기를 쐬게 하면 짐승이 영성을 가지게 될 확률이 1모(毛: 만분의 일)만큼 올라간다.

―한 짐승에게 쐬어 주면 최소 5년 동안은 같은 연기를 쐬게 하면 안 된다. 독한 기운을 가졌기에 쉬이 죽을 수 있다.

―짐승이 아닌 요수 역시 축기경 요수라 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연기를 쐬면 죽을 수 있고, 결단경 요수는 칠 주야에 한 번, 원영경 요수는 하루에 한 번이 연기의 정량이다.

“….”

순간 지네의 자식들에게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아지는 확률이었다.

‘무슨 방사능 폐기물도 아니고….’

이 정도면 요수를 기르는 데에 쓰는 게 아닌, 그냥 독연으로 요수를 죽이는 수준의 곰방대가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혹시 몰라서 일단 장죽을 저물대에 넣었다.

그런 후 주변을 뒤지던 중.

또 한 가지 유용한 것을 발견했다.

“봉천부, 두 장.”

천인기급 방어력을 가지게 해 준다는 봉천부였다.

‘이 부적 때문에….’

나는 슬쩍 원립의 혈체를 쳐다보았다.

이 녀석 때문에 한순간 어마어마한 절망에 빠졌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일단 챙겨 두지.’

나는 봉천부 역시 저물대에 넣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봉명성에서 구할 것도 없었다.

“그럼 이제, 봉명인을 얻어 볼까….”

쿠구구구구!

나는 품에서 원립이 준 붉은 진법 깃발 법기들을 꺼냈다.

쿠우우웅!

원립의 혈체가 결인을 맺자, 법기들이 빛을 발하며 봉명성 내부에 흐르는 힘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

봉명성 내부의 힘을 자체적으로 충돌시켜서, 법기들이 봉명성의 층을 하나둘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장생과 나무의 위쪽에서 떨어지는 잔해 조각들을 전부 쳐 냈다.

쿠우우우우….

얼마 후.

봉명성의 모든 층이 무너져 버렸고, 허공에서 빛이 번뜩이기 시작한다.

파아아앗!

‘봉명인….’

내가 봉명인을 바라볼 때.

송진과 서란이 봉명성 안쪽으로 들어왔다.

송진이 봉명인을 보며 눈을 빛냈다.

[봉명인이라, 오랜만이군.]

그가 내게 물었다.

[봉명인은 그런데 왜 얻으려는 건가? 자네도 그 원립 놈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비승하려고?]

“아, 봉명인은 천운을 끌어당겨 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봉명인을 잡고서 말했다.

[천운? 천운이야 좋긴 하지. 하지만 봉명인의 축복을 받으려면 받지만, 그걸 품속에 넣고 다니지는 말게. 봉명인의 소지자는, 이 세계와 인력으로 연결된 봉명인에 이끌려 비승이 힘들어지거든. 결국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게 되니까.]

“하하….”

나는 씨익 웃었다.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이번에 승천문을 조사하며, 봉명인을 품에 넣고 조사한다.’

그렇게 한다면, 혹시나 공간 폭풍에 휘말릴지라도 결국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는 게 아닌가?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비승이 아닌 승천문 조사였기에, 상관이 없었다.

내가 봉명인을 바라볼 때였다.

파아아아앗!

봉명인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주변에 있던 내게 찬란한 빛을 흩뿌렸다.

어쩐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봉명인의 축복이군. 보통은 접촉해야 받을 수 있는 축복이건만… 자네도 어지간히 강한 운명을 타고났나 보군.]

“예…?”

[몰랐나? 봉명인은 운명에 반응하며, 강한 운명을 타고난 이에게 더욱더 강하게 반응하지. 그 축복도 마찬가지며. 자네가 접촉도 하지 않았는데 봉명인이 미리 축복을 자네에게만 쐈다는 건, 자네가 타고난 운명이 어마어마하단 소리일세.]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이었다.

‘내 운명이라….’

확실히, 조금 강하기는 했다.

운명의 틀을 벗어나려고만 하면 미친 듯이 하늘에서 번개를 떨어뜨릴 정도로.

나는 봉명인을 거머쥐며 말했다.

“그나저나, 선배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또 뭔가?]

나는 송진에게 한 진법의 구조도와, 진법 법기의 구조도를 건넸다.

“이 진법 법기를 봉명성 1층에 설치하고, 발동시키면… 5년 뒤, 봉명성에 장생과가 열릴 겁니다. 서 도우에게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허어…!]

송진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꾸 뭘 주기만 하는군. 이래서는 소원권이 없어지지 않겠는데….]

“하하, 제 부탁도 하나 들어주시면 족합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장생과가 열리면, 그 열매를 연국의 김영훈이라는 사내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왜 자네가 직접 전달치 않고?]

“그건… 사정이 있습니다.”

승천문을 조사하러 가서, 괜스레 공간 폭풍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고.

공간의 미아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이 세계 바깥에서 이곳을 관찰하는 대경계 존재에게 찍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만큼, 이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이게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흐음….]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자네, 설마 지금 수준으로 상계에 비승하려는 건가?]

“….”

송진은 내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인지, 흠칫 놀라며 물었다.

[…너무 갑작스럽군. 왜 그리 급하게 움직이는 거지? 우리 같은 수도자들에겐 몇백 년이고 시간이 있어. 물론 지금 아직 승천문이 안 닫히기는 했지만, 천 년 뒤에도 또 기회가 있네.

자네는 분명 재능이 뛰어나니, 천 년 정도면 충분히 천인기 대원만을 찍고 비승 준비를 할 수 있을 걸세….]

“천 년이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천 년이 지나도 이 수준일 수도 있지요.”

[…?]

송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내 재능은 내가 잘 알았다.

천 년이 지나도 간신히 수도공법으로 원영기에 도달하면 다행이고.

무공 역시 김영훈이 몇 단계는 더 뛰어넘는다 한들.

나는 정작 김영훈이 아니었다.

‘천 년은 너무 길다.’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은 조사해 봐야 하는 과정이다.

오히려 인연을 그리 많이 쌓지 않은 이번 생이야말로 승천문을 조사하기 가장 적당한 시기일 수도 있었다.

북향화에게 노리개를 전달하며, 그 생각은 굳어졌다.

‘천 년이나 살며, 다시 이번 생의 그녀를 만나진 말자.’

다시 한번 이번 삶의 그녀를 만나면.

왠지 나는 참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여하튼… 제 선택입니다. 존중해 주십시오.”

[…뭐, 마음대로 하시게. 여하튼 내 제자가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자네가 부탁한 것들은 다 해 주지. 어려운 것들도 아니니.]

송진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봉명성에서 나와, 다시 등선향으로 향했다.

* * *

휘이이이이!

시커먼 유령선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허공간에서 나온 섭명함이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왜 굳이 허공간을 통한 공간 이동을 하지 않으냐 물으니, 허공간을 너무 자주 들락거리면 섭명함에 무리가 간다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송진 선배님께서는 상계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당연히 있지. 일단 기본적으로 그 원가 놈이 말한 것쯤은 대형 세력의 고위층쯤 되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네.]

송진이 섭명함의 조타륜을 잡으며 설명을 이었다.

[특히나 금신천뢰문, 흑색귀골곡, 거호, 성붕, 해룡족 같은 역사가 깊은 집단은 더더욱 알고 있는 게 많지. 긴 역사 동안 승천문을 통해 비승한 선조분들이, 우리와 간혹 연락을 하기 때문일세.]

“…호오, 혹시 상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시면 여쭤봐도 됩니까?”

[나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닐세. 정말로, 몇천 년에 한 번씩만 가끔씩 연락이 닿을 뿐이니… 일단 사천 년 전에 흑색귀골곡과 연락이 닿았던 상계의 선조 중 한 분이 전한 바로는, 상계의 영력은 기본적으로 등선향의 영력보다 수백 배 이상 풍부하며, 상계의 인족들은 범인이 없다 하더군.]

“범인이 없단 말씀입니까?”

[그래, 나도 처음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상계에서는 막대한 천지영력 덕에, 아기가 체내에서 수정될 때부터 영력의 영향을 받아 단수기 수도자가 된다고 하더군. 태어나자마자 수도자인 셈이야. 조금 자질이 있는 녀석들은 태내에서부터 연기기 1, 2성을 달고 나오는 이들도 있고…. 정말 말이 안 되지 않는가?]

“….”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다.

‘아예 범인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도대체 영력 밀도가 얼마나 높으면 그딴 일이 가능한 걸까.

송진이 내 표정을 보고 놀랐는지 낄낄거렸다.

[또한 상계에서는 빠르면 20대 초. 늦으면 4, 50대면 전부 축기기에 도달한다 하더군. 200세를 넘은 이들은 대다수가 결단기 수도자라 하고. 그나마 원영기 수도자부터는 상당한 깨달음이 필요하기에, 거기서도 수가 확 줄어드는 모양이네만…. 정말 불공평하지 않나? 누구는 축기기에 오르려고 사람을 갈아먹어야 하는데, 누구는 태어나서 숨만 쉬어도 축기기라니. 크흐흐….]

“정말… 말도 안 되는군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곳에는, 막리세가 같은 가문이 없을 터였다.

[거기다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상계에서 인족은 나름 지배 종족에 해당되며, 상당히 높은 위격을 누리는 종족인 모양일세. 말 그대로 상계는 극락인 셈이지. 끌끌…. 이 정도가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정보고, 나머지 더 기밀 정보들은 금제가 걸린 중요 정보라서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쿠우우우우!

저 멀리, 등선향을 덮고 있는 결계가 보였다.

나는 송진의 옆에 있다, 문득 한 가지가 더 생각이 나 물어보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상계 중에는 명귀계라는 게 있는데, 흑색귀골곡과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이름입니다만. 혹시 뭔가 연관이 없습니까?”

뭔가 딱 봐도 대놓고 흑색귀골곡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었다.

원립은 고력, 명귀, 자금계에 대해서는 모른다 했지만.

어쩌면 송진은 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송진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긴 하지. 애초에 승천문이 생기기 전에는 흑색귀골곡에서 주로 비승하는 계가 명귀계였으니.]

“이건 순수한 호기심입니다만. 왜 그럼 굳이 흑색귀골곡에서는 명귀계가 아닌, 승천문과 연결된 광한계로 비승하는 겁니까?”

[흠, 그거야 승천문을 이용한 비승이 훨씬 안전하고 확실한 것도 있고, 또….]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이 이후부터는 금제가 걸린 정보라 직접 누설은 못 하겠다만….]

그가 클클거렸다.

[왜 마도 종문들도 굳이 진마계가 아니라 그와 전쟁 중이라는 광한계로 비승했겠느냐? 원가 놈은 전쟁 중이라고 말했지만, 너무 옛날의 정보만을 알고 있어. 어쩌면, 뭔가 다들 광한계로 비승하려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뭔가, 진마계와 광한계가 벌이는 전쟁의 판도가… 광한계에 유리한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등선향의 결계를 향해 무형검을 내리쳤다.

쿠과과광!

무형검에, 결계가 쪼개지며 섭명함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입구를 만들었다.

쿠우우우!

섭명함은 그대로 멈추지 않고 등선향의 중심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쿠릉, 쿠르르릉….

뇌운이 몰아치고.

뇌운의 아래에서, 천뢰들을 흡수하며 떠 있는 반으로 쪼개진 비석.

그리고, 비석 너머에 있는 사람 몸통만 한 빛나는 공간문.

승천문(昇天門)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섭명함은 공간 균열들이 즐비한 지역 이전에 그 거체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럼, 일단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오냐, 알아서 잘해 봐라.]

“…선배님, 정말 지금 비승하셔야 하겠습니까?”

“하하, 서 도우는 내 걱정은 마시고, 부탁했던 대로 김영훈이란 분께 장생과나 후에 전달해주시길 바라겠소.”

송진과 서란.

둘은 표정은 달랐으나, 나를 걱정하는 의념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둘과 인사를 한 다음.

저물대에서 지네 알들을 꺼냈다.

“자, 내가 뭔가를 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등선향의 영기를 먹고 계속 크면 어쩌면 네 어미의 바람대로 요수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 후, 나는 요선죽에 불을 붙이고 그 연기를 지네 알들에게 쐬어 주었다.

요족이 될 확률이 만분지 일만큼이라도 올라가고, 그래도 등선향의 농밀한 영기가 있으니 이 영기를 먹으면 요족이 될 확률이 조금이나마 더 올라갈 터였다.

그때였다.

파삭, 파사사삭….

애초에 때가 됐던 건지.

아니면 요선죽이나 등선향의 영기에 영향을 받은 건지.

순간 꽤 많은 새끼 지네들이 알을 깨고 나왔다.

녀석들은 그대로 등선향 곳곳으로 흩어졌다.

‘잘들 살려무나.’

내가 요선죽을 저물대에 집어넣었을 때였다.

“음?”

작은 새끼 지네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내 발 위로 올라왔다.

“흐음….”

나는 이 녀석을 들어 다른 곳에 놓아주었으나, 어째 이 녀석은 계속해서 내게로 돌아와 내게 달라붙었다.

‘뭐지….’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그냥 붙여 둬라. 네놈 지금 봉명인을 가지고 있지 않으냐? 봉명인이 네놈에게 어울리는 천운을 부여한 거다. 천운이 데리고 와 준 인연이니 그냥 함께하는 게 더 득이 될 게다.]

“…그렇군요.”

나는 잠시 지네를 보다, 녀석을 들어 올려 내 어깨에 붙여놓았다.

“나는 지금 이 세계를 벗어날 거다. 괜찮으냐?”

새끼 지네는 말이 없었다.

나는 잠시 녀석을 쳐다본 후, 송진과 서란에게 인사를 한 후.

승천문을 향해 나아갔다.

“자, 그럼….”

쿠구구구!

회귀 약 보름째.

나는 닫히기 직전의 승천문을 보며, 원립의 혈체를 앞세웠다.

“승천문을, 조사해 볼까.”

승천문의 앞에 다가간 내가, 봉천부 두 장을 꺼내, 한 장을 발동시키고 혈체의 몸에 부여했다.

“자, 가라. 어디 한번….”

그때였다.

파직, 파지지직….

“…?”

문득, 저 위쪽에 있는 비석이 번갯불을 심하게 튀기기 시작했다.

‘뭐지?’

그때였다.

번쩍!

쿠르르릉!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러운 낙뢰가 나를 때린다.

“…!”

쿠구구구구!

승급 천겁 급의 번개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강력한 힘이었다.

무형검을 전신에 두르는 경지가 아니었다면 필히 서은현 구이가 되어 버렸을 위력!

내가 이를 악물고 낙뢰를 버틸 때였다.

파아아앗!

“…!?”

익숙한 잔영이, 눈앞에 나타난다.

피눈물을 흘리는, 시뻘건 번개를 몸에 감고 있는 그림자.

‘양수진…!?’

나는 쇄천봉에서 봤던 그림자를 떠올리며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그때.

양수진의 잔영이 입을 열었다.

[종명자여, 이 잔영을 봤다는 것은, 그대가 쇄천봉에 남겨 둔 내 진언을 들었다는 뜻.

긴말은 하지 않겠네. 만약 상계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흉측한 세계에서 빨리 나가기를 바라지. 특히나 이 세계는 종명자에게 특히 위협적인 곳. 그대가 이 세계에 오래 있어 좋을 일 따위는 어떤 것도 없다네…. 어서 떠나게, 이 흉측한 머리 안에서….]

파아아앗!

낙뢰가 그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쩌어어어억!

양수진이 만들었다는 승천문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내 품 안쪽에 있던 봉명인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으나,

투쾅!

어떠한 강력한 척력(斥力)에 의해 봉명인은 그대로 내 품속에서 빠져나가 튕겨져 나가 버렸다.

“뭣…!?”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

나는 승천문에 의해 삼켜져 버렸다.

* * *

“저, 저게 무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고, 송진이 당황하며 귀화를 불태웠다.

피시싯….

서은현을 잡아먹은 승천문은, 그대로 바로 닫혀 버렸다.

[이런 현상은… 들어 본 적이 없거늘….]

본래 한 번 열렸다가, 수일에 걸쳐 천천히 작아지고, 종래에는 먼지만 하게 작아진 상태에서 스러지는 것이 승천문이었다.

저런 식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을 잡아먹고, 갑작스럽게 닫혀 버리는 현상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투웅, 퉁, 퉁….

서은현의 품에서 튕겨 나온 봉명인이, 그들의 앞으로 굴러왔다.

슈르르륵….

주인을 잃은 봉명인은, 잠시 그들의 앞에 떨어져 있다, 근처에 있던 다른 공간 균열로 딸려 가 버렸다.

봉명인은 자신이 가진 운명의 인력을 통해 봉명성으로 다시금 돌아갈 터였다.

그리고, 해방성 안에서 해방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허공간을 떠돌아다닐 터였다.

송진과 서란은, 느닷없이 승천문에 잡아먹힌 서은현을 보며, 입을 다물고 한참 동안이나 묵념하였다.

승천(昇天)

쿠구구구구구!

수많은 소리와 빛살이 나를 스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전신에 무형검을 집중했다.

‘전신이, 짜부라질 것 같다…!’

아마 답천의 경지로 인해 전신에 무형검이 깃들어, 몸이 어마어마한 강도를 띄지 않았다면 촌각에 바로 짜부라져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을 터.

‘봉천부를…!’

나는 잇몸에서 피가 나올 듯이 이를 악물며, 봉천부를 꺼내 들었다.

“봉천부, 발동!”

쿠구구구구구!

부적으로 어마어마한 기세가 몰리며, 봉천부의 힘이 내 몸을 뒤덮었다.

공간 통로에도 천지영기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천지영기들이 내 몸을 두르며 전신의 영기가 단 한 올도 새어 나가지 않을 만큼 빽빽한 결계를 내 몸에 둘렀다.

“커헉! 헉!”

나는 피를 토하며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런 젠장, 이게 무슨 꼴이냐!’

나는 승천문의 공간 통로 안쪽에서, 어딘가 [위]를 향해서 끌려 올라가는 중이었다.

키이이잉!

몸에 깃든 봉명인의 축복이 나를 저 멀리로 이끌고 있었다.

승천문에 들어서자, 봉명인의 축복은 확실한 인력이 되어 나를 끌고 가고 있었고, 나는 그 인력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쿠구구구구!

‘아마 얼마 후면 결국 상계에 도착하겠군. 하지만….’

나는 전신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는 봉천부의 결계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생각보다 봉천부가 빨리 효력을 다할 것 같다. 아마 상계에 도착하기 전에 봉천부가 깨질 가능성도 있어…!’

나는 이를 악물고 봉명인을 떠올렸다.

‘본래는 승천문에 들어가도, 봉명인의 힘으로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려 했건만….’

설마 기이한 척력에 봉명인 자체가 튕겨 나가 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쿠구구구!

나는 당장이라도 무너지려 하는 봉천부를 지켜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위쪽으로 올라가는 원립의 혈체를 바라보았다.

나는 혈체를 이용하는 방법 중 한 가지를 떠올렸다.

원립 놈에게서 전해 받은 법술.

나는 혈체와 동시에 결인을 맺었다.

“혈체피갑(血體皮鉀)의 술! 개(開)!”

그와 동시에, 혈체의 몸이 활짝 ‘열렸’다.

쫘아아악!

녀석의 내부 장기와 근육, 몸의 안쪽이 훤히 보인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있던 장기와 근육들이 전부 핏물이 되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내가 결인을 맺자, 혈체는 내 몸으로 날아와 나를 감싸 안았다.

전신을 혈체가 뒤덮고, 곧이어 혈체의 몸이 내 몸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꾸구국!

전신의 근섬유에 혈체가 스며들며 전신이 더더욱 강화되었다.

육신의 강도와 재생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으며, 일순간 혈체가 사용하던 법술들을 전부 사용 가능해진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즈우우웅!

혈체의 몸에 깃들었던 봉천부의 기운이, 내 봉천부의 기운과 합쳐지며, 봉천부의 유지 시간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었다.

파아아앗!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던 봉천부의 막이 다시 굳건해졌고, 나는 일단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좋아, 언제쯤 상계란 곳에 도착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당장 목숨에 여유가 생기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빛살과 소리들이 주변을 스치고 있다.

솔직히 뭐가 뭔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승천문 안쪽… 이곳에 우리가 이 세상에 떨어진 이유가 있을지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승천문 안쪽.

상계로 통하는 공간 통로를 둘러보았다.

피이이이이잇!

수많은 빛살들 사이로, 간혹 마치 우주(宇宙) 같아 보이는 성천(星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수한 공간과 차원으로 보이는 것들이 얼핏 얼핏 눈을 스쳤고, 나는 문득 저 아래쪽.

‘내가 나온’ 세계의 형태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세계’는….

마치….

“…어?”

* * *

나는그것을보았다그것도나를보았다우리는눈이마주쳤다그것은거대한옥….

* * *

“…허억!”

뭐지?

방금 뭐였더라?

피이이잇!

나는 아직도 내가 상계로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주변으로는 수많은 빛살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빛살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풍경들로 보아, 나는 내가 상당히 많이 올라왔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순간 의식이 끊겼었는데….’

나는 두통이 이는 머리를 붙잡았다.

왜 의식을 잃었더라?

‘공간 압력 때문에 잠깐 기절했었나?’

봉천부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 너머로 상당한 압력이 전해져 왔다.

물론 그 정도야 참을 만은 했지만, 간혹 압력이 심해지는 구간이 있었기에, 순간 심한 압력이 있었다면 내가 정신을 잃었을 가능성도 있긴 했다.

‘그런데 의식을 잃기 직전에, 내가 뭔가를 봤던 것 같은데…’

나는 지끈거리리리리리리는 관자놀놀놀이를 붙붙잡고 의식을 다스려렸다.

‘제제젠장. 머리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다행히 안정되고는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지끈거리는 두통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한….

쿠구구구구!

내가 의식을 잃었던 순간이 꽤 길었는지, 벌써 봉천부가 무너지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제길, 봉천부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안 그래도 처음보다 압력이 더더욱 심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공간 통로 안의 천지영기도 더욱 짙어졌지만, 그만큼 봉천부를 두드리는 저항력이 거세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봉천부의 효력이 다하는 순간 나는 잘 짓이겨진 서은현 주물럭이 될 터였다.

‘그렇게 될 수는 없지!’

나는 [위]를 향해 끌려가는 와중, 자세를 잡았다.

‘압을, 흘려 낸다!’

나는 나를 내리누르는 압박을 향해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김영훈은 그때 분명, ‘혼자서’ 우공이산을 펼쳤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자멸기.

그런 우공이산을, 허공을 향해 펼쳤다는 말은 곧.

‘세계 그 자체가 무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

허공(虛空) 그 자체를 베어 내며, 그 허공과 합을 주고받아 우공이산을 완성한 것이다.

물론 나는 우공이산을 펼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산외산부진 정도라면….’

슈웅, 슝, 슈웅!

허공을 향해 무형검을 휘두른다.

원영기 이상의 수사들은 계위라고 부르는 것.

내 검이 차원의 너머를 스치는 게 느껴진다.

부웅, 붕, 붕!

차원 너머.

세계를 이루는 기(氣) 그 자체와 검이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벤다.’

나는 기(氣)를 베어 내며, 그를 시작으로 나를 덮쳐 오는 어마어마한 ‘압력’ 그 자체를 향해 검무를 추었다.

피이잇!

쩌어억!

검무가 공간의 압력을 베어 가른다.

그와 동시에 봉천부에 가해지던 압력이 줄어들었다.

‘우공이산은 펼칠 수 없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초식을 쏟아붓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가로 베기, 하단세, 올려 베기, 찌르기, 변초, 공방일체….

무수한 초식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오며 하나의 형으로 화한다.

단악!

촤아아악!

위쪽의 압력이 쪼개진다.

빠득, 빠드드득!

물론 그랬음에도 여전히 무수한 압력이 나를 조여 오고 있었고, 봉천부는 점차 그 힘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아아앗!

파캉!

마침내, 봉천부가 그 힘을 다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나는 전신을 쥐어짜는 듯한 압력에 저항하며, 무형검으로 사방의 압력을 더욱더 빨리 베어 냈다.

하지만, 점차 압력이 강해진다.

우득, 우드득!

베어 내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잔여 압력만으로도 무형검을 덧씌운 전신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꿈틀!

나는 무언가, 공간 통로 저편에서 꿈틀거리며, 공간 사이를 헤엄치는 것을 발견했다.

‘저건 또 뭐지?’

공간의 틈새에 사는 생물인 듯한 그 기괴한 것은, 다행히 내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그 기세는 천인기에 못지않았다.

나는 등골이 시린 것을 느끼며, 일단 계속해서 압력을 베어 냈다.

우득, 우드드득!

혈체를 몸에 깃들여서 내구성과 재생력을 높였음에도, 전신이 공간 압력에 박살 날 것만 같다!

그리고, 내 칠공에서 마침내 피가 터져 나왔을 무렵!

파아아아앗!

콰아아아아앙!

나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막’ 같은 것에 부딪히며 피를 토했다.

촤아아악!

무형검이 자연스레 ‘막’을 베어 냈고, 나는 여기까지 끌려오던 관성에 의해, 막을 뚫고 마침내 ‘위’로 진입할 수 있었다.

파아아앗!

“크웨에엑! 커헉, 거헉!”

나는 입에서 피를 한 됫박은 쏟아 냈다.

그리고.

“이건….”

[바닥]이 손에 닿는다.

그리고, 그 지독한 공간 압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으며.

안정적이고, 이전 세계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압도적인 밀도의 천지영기가 느껴진다.

등선향보다도 수십 배는 많은 영기.

이전 세계의 일반적인 지역에 비하면 수백 배는 되는 수준.

“허억… 헉…?”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상계(上界)…?”

내가 주변을 둘러보려 할 때.

쿠웅!

[이건 또 뭐냐.]

내 앞으로, 녹색 갑옷을 입은 거한이 나타났다.

그는 기이하게도 인간이나 요족처럼 피와 살로 된 몸이 아닌, 나무와 흙으로 이뤄진 몸체를 가진 족속이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크억! 크어어억!”

‘숨이, 안 쉬어진다!’

사축기(四軸期)!

천인기를 아득히 뛰어넘은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단순히, 그를 의식 영역에 담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내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았다.

나는 황급히 그를 알아보려던 생각을 접고, 의식 영역을 회수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려다가, 황급히 시선을 깔아 그의 그림자에만 시선을 두었다.

그를 직시하고 있자면, 어쩐지 두 눈이 세게 아려 왔기 때문이었다.

천인기 미만은 직시하지도 못할 존재.

사축기의 수도자!

[뒤늦게 얇아질 대로 얇아진 공간 장막을 뚫고 나오다니, 거기다가 기운은 고작해야 축기 수준… 수상하군. 허공간의 괴이한 생물체가 인족 흉내를 내며 침입한 건가?]

쿠구구구구!

사축기의 수도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건…!’

[그녀]의 한 손바닥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세!

‘터, 터져 죽는다!’

긴장과 공포에 눈동자가 바싹 졸아들었다.

나는 피를 토하며 억지로 말을 하려 했다.

그때였다.

“잠깐!”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으음?]

사축기 수도자가 한 곳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목소리가 울린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익숙한 청갑 거한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차, 창호자…!?’

“내 아는 얼굴이군. 허공간의 괴생명체는 아닌 듯합니다.”

[흐음….]

푸쉬이이이….

사축기 수도자의 손에 맺혔던 기운이 스러졌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호자의 뒤편에는, 그와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수 명의 천인기 수도자들과, 원영기 수도자들.

그리고 하나같이 심상찮은 기세를 풍기는 거한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저 뒤편, 오현석 차장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호자의 양옆.

그곳에, 각각 금포를 입은 중년인과 흑색 마의를 입은 중성적인 얼굴의 존재가 있었다.

파직, 파지지직!

금포 중년인, 금신천뢰문의 태상 장문인 금벽호.

그의 뒤쪽으로는 뇌기를 뿜어내는 천인기 수도자 여러 명과, 원영기 수도자들 상당수.

그리고 수많은 금신천뢰문의 문도들이 보였다.

끼야아아아!

키야아!

그리고 흑색 마의인, 흑색귀골곡의 원로원주 백골귀마 허곽.

그의 뒤편으로는 두 대의 섭명함이 공중에 떠 있었고,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주변에서 울리는 중이었다.

또한….

“호오, 이건 예상치 못한 방문인데….”

청포를 입고, 비췻빛 사슴뿔이 이마에 돋아난 청발의 미청년.

서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휼의 뒤쪽으로는, 천인기급 기세를 풍기는 거대한 해룡(海龍)들이 수 마리 이상 본체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 뒤쪽으로 그보다 기세가 작은 어린 해룡들 수십 마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서휼의 양옆으로는 거호족과 성붕족의 대표들, 그리고 그들의 족원 역시 자리를 잡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흐히히, 기이한 일이로다. 어찌 저놈이 여기까지 온 거지?]

괴군 조연.

그는 다른 세력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뒷짐을 지고 나를 쳐다보며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김연 주임이 왠지 모르게 엎어져 입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괴군이 무슨 짓을 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괴군이 보호해 줬더라도 공간 압력에서 버티느라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등선향에서 만났던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 앞에 있던 사축기의 존재가 말했다.

[설명해라. 이 녀석이 아는 놈이라고?]

“맞습니다. 그 녀석은 분명… 하계에 있을 때, 승천문을 통과하기 이전에 봤던 녀석입니다. 그때 저희 셋이 모여 검사도 해 봤으니, 분명 인족입니다. 수상한 괴생물체가 아니었습니다.”

[흐음, 하면 이 축기급 정도로 보이는 인족이, 대체 어떻게 스스로 광한계(光寒界)에 비승했다는 말이냐?]

사축기 목인(木人)의 말에, 창호자는 그 역시는 짐작이 아니 되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때였다.

서휼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어쩌면, 그 역시 특이한 자질을 지녔을 수도 있겠군요. 저희는 등선향에서 비승하기 전, 일단의 인족 무리들을 만났고, 그 인족 무리들이 저마다 한 가지씩 재미있는 자질을 가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여 비승 전에 각 세력에서 자질이 없다 생각된 이들은 내버리고 각기 한 명씩 인재들을 나눠 가졌습니다만…. 알고 보니 모두 특이한 재능을 지녔나 봅니다. 스스로 우리를 따라 비승을 하다니, 남은 인족 한 명도 어떤 재능을 지녔는지 조금궁금해지는군요.”

서휼의 설명에 녹갑의 목인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특이한 재능? 도대체 무슨 특이한 재능들을 지녔단 말이지?]

“하하….”

그 말에, 서휼은 씨익 웃으며 세 천인은 물론이고 괴군과도 시선을 교환했다.

괴군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팔짱을 끼고 입을 닫았다.

“그냥 특이한 자질들입니다. 뭐, 아무리 특이해 봤자, 광한계의 고명한 혈통들과 공법을 익힌 수사 분들께 비할 수 있겠습니까?”

세 천인들 역시 각자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정말 별 것 없는 자질이지요.”

“그냥 각 문파의 공법에 딱 맞는 인재들이라 데려온 것뿐입니다.”

[흐음….]

그리고, 녹갑 목인이 눈을 빛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군. 제대로 말하라. 이제 막 광한계에 올라온 것들 주제에, 어찌 이리 숨기는 게 많으냐?]

쿠구구구구!

녹갑 목인의 기세가 좌중을 뒤덮었다.

나 역시도 숨쉬기가 힘들어, 바닥에 엎어진 채로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아니, 사실상 심장이 당장이라도 마비될 것 같았기에, 무형검으로 억지로 심장을 뛰게 해야 할 수준이었다.

‘처, 천인기 수도자들은, 어떻지?’

그때였다.

순간 녹갑 목인의 기세에 눌리는 듯하던 천인기 수도자들이, 일순간 눈을 빛냈다.

그리고, 서휼이 뒷짐을 지고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놈이…?]

그때였다.

“…!?”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쿠구구구구!

서휼의 기세가, 올라간다.

그리고, 이전 세계보다 수백 배는 농밀한 인근의 천지영기가, 서휼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쿠드드드득!

서휼의 기세가, 점차 녹갑 목인의 기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그의 기세가 커지고 있었다.

“…광한계의 선배님께서, 혹여나 오해하실까 말씀 올리겠습니다.”

[뭣…!?]

저벅, 저벅, 저벅….

서휼뿐이 아닌, 금벽호, 허곽, 청문선우 역시 점차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휼과 마찬가지로 수백 배는 농밀한 광한계의 천지영기를 빨아들이며, 그들의 기세가 더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저희는 단순히 수명 때문에 도망치듯 상계로 비승해 온 이들과는 다릅니다. 도리어 천인기 대원만에 도달하고, 사축기로 향하는 깨달음도 진즉 얻어 정립했으나, 단순하게 자원이 부족하여 경지를 높이지 못해 상계로 비승했을 뿐….”

쿠구구구구!

찌릿, 찌릿….

나는 갑자기, 서휼 역시 직시하기가 어려워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세 천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쩌어어엉!

다음 순간.

빛이 폭발하듯이 서휼과 금벽호, 허곽, 청문선우에게서 휘광이 뿜어지더니, 그들의 기세가 달라졌다.

동시에.

파아아앗!

녹갑 목인의 기세가 완전히 중화되며, 나는 그제야 조금 숨을 쉬기가 편해짐을 깨달았다.

“혹여나 하계에서 올라온 부족한 후배들이 조금 마음에 안 드실지라도, 저희 나름대로 잔뜩 노력해 온 몸이니, 후배들을 조금은 존중해 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서휼의 말이 끝났고, 나는 다시금 그들을, 아니, 그들의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계의 천지영기를 잔뜩 흡수한 그들은, 사축기 수도자가 되어 있었다.

녹갑 목인은 순식간에 사축기 수도자 네 명에게 둘러싸인 형국이 되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천겁도 받지 않고 어찌 경지를…?]

“하하, 비승 전에 금 태상장문께서 문파의 신물을 써서, 사축기 천겁을 미리 분산시켜 맞게 해 주셨지요. 우리는 사축기에 바로 도달해도, 천겁을 미리 당겨 맞고 왔는지라 천겁이 내리치지 않습니다.”

창호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은근슬쩍 녹갑 목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들이 녹갑 목인을 둘러싸고 압박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하늘에서,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며, 몇 명의 사축기 수도자들이 더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번 기수 비승자들은… 다들 특별하군.]

[공간 압력이 추가되는 걸 감내하고서, 자기 문파와 함께 비승한 녀석들이라니… 그것만으로도 괴물들이라 생각했건만….]

[도달하자마자 사축기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재능들을 지녔다니….]

그들은 감탄스럽다는 듯이 금벽호, 허곽, 청문선우, 서휼 등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구!

금신천뢰문, 흑색귀골곡, 창천개벽문, 거호, 성붕, 해룡족 등.

여러 세력의 천인기, 원영기 수도자들 중에서, 농밀한 천지영기를 흡입하여 바로 정체된 경지를 높이는 이들이 생겨났다.

쿠구구구!

그들 역시 전부 금신천뢰문 신물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

전원이 딱히 천겁을 내리받지는 않았다.

물론, 앞의 넷처럼 한 번에 사축기에 도달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었다.

쿠구구구!

그리고, 저 옆에서 입을 닫고 있던 괴군은 뭔가 정체된 경지를 뚫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사축기에 이르지는 않았다.

천인기의 극한에 도달하긴 한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저 성격에, 금신천뢰문의 도움을 받진 않았을 테고, 천겁을 당겨 맞지 않아서 지금 당장 승급 천겁을 극복하고 사축기에 오르진 못하나 보군.’

내가 혼란스러운 주변 상황을 둘러볼 때였다.

[어쨌든 다들 기세를 거두시게, 후배님들. 자네들이 아무리 대단한 기수라 해도, 이 비선대(飛仙垈) 근처에는 합체기 선배님도 계시니 자중해 주시게나. 흑색귀골곡, 금신천뢰문 등의 문파를 보니, 수계(首界)에서 비승한 이들인 모양이네만. 각자 인족(人族)의 영역으로 안내해 주겠네. 그리고 자네들, 요족들은….]

쿠구구구구!

수도자들이 말을 잇기 전.

저 멀리서 천둥 번개가 치더니,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일었다.

곧이어, 먹장구름을 몰고 온 존재가 아래로 내려왔다.

쿠구구구구!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용(龍)이었다.

서휼 본체보다도 더더욱 거대한 거체를 가진, 사축기 정상의 힘을 가진 용이 해룡족 측에 착지하였다.

[지족(地族) 진룡맹(眞龍盟) 장로 규련이라고 함세. 이거, 이번 기수 수계(首界) 비승자들이 물건이라더니. 벌써 사축기에 이르렀을 줄이야. 자네들 요족들은 나를 따라 요족 영역으로 가도록 하지.]

“하하, 하계에서도 고명은 전해 들었습니다, 규련 선배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휼은 부드럽게 웃으며 규련에게 인사를 올렸고, 규련은 서휼의 얼굴을 보고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듯하며 콧김을 뿜었다.

[자, 어쨌든 빨리 출발함세. 저 족속들과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지 않으니.]

규련은 녹갑 목인을 포함한, 인족 사축기 수도자들을 잠시 노려보며 요족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서휼은 그녀에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 이 후배에 대한 처분이 잠시 필요해서 말입니다.”

서휼은 그렇게 말하며 쓰러져 있는 내게 부드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하하, 이것 참… 진룡 싸움에 개미허리 터지게 해서 미안하군. 괴롭게 한 것은 사과하네. 어떤 독특한 재능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까지 비승하느라 힘들었지 않는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서휼의 손을 잡지 않고, 내 다리로 일어나며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나저나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우리를 쫓아온 게냐?”

창호자가 녹갑 목인을 지나쳐 내게 오며 물었다.

“안 그래도 우리가 며칠은 더 먼저 출발했는데, 우리가 비승하자마자 바로 쫓아온 건 또 어찌한 거고?”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정상적이라면, 나는 지금 이들과 얘기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들은 나보다 며칠은 먼저 비승했고, 한참은 늦게 출발한 내가 이들과 같은 시기에 상계에 도착하는 건 기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괴군이 웃으며 말했다.

[상계와 특출난 인연이나 운명이 있었나 보지. 당장 봉명인의 축복만 해도, 운명의 인력이 더 강한 이들은 더욱더 빨리 상계에 도달하게 해 주지 않느냐? 우리가 며칠에 걸쳐 겨우 비승한 상계를, 저놈은 특출난 운명을 지녀 반나절 만에 비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크흐흐….]

‘봉명인 때문인가….’

아무래도 이들이 며칠에 걸쳐 힘겹게 공간 압력을 뚫고 비승하는 동안, 나는 봉명인의 축복을 받아 순식간에 비승한 게 원인인 듯했다.

파츠츠츠….

그때였다.

내 아래에 있던 바닥이, 갑자기 빛을 뿜더니 표면이 기묘한 결계로 뒤덮였다.

“이건…?”

“비선대라는 것이라 하더군. 하계에서 올라오는 모든 수사는 이 비선대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 이제 올라올 수사가 없으니, 비선대가 닫히고 우리가 뚫고 온 차원 장막을 회복시키는 것이라네.”

서휼이 우리가 밟고 있는 바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우웅!

비선대가 결계로 뒤덮이자, 동시에 왠지 일렁이던 주변의 공간이 안정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서휼이 말했다.

“그래서, 어찌할 텐가?”

“…?”

그는 인자한 표정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자네 동료들의 재능은 진즉 확인했네. 자네 역시 스스로 비승함으로써, 특출난 재능을 입증했고…. 모두가 이미 비승도 했으니만큼, 자네만큼의 재능이라면 가리지 않고 데려가려 할 걸세. 나 역시 자네가 꽤 욕심이 나고 있으니….”

서휼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흥미가 돋았다.

“선택하시게. 우리는 이제 각자 광한계 선배분들의 인도에 따라 흩어질 것이니. 자네는 어떤 세력과 함께 가겠는가?”

그 말에, 나는 우선 전신의 힘을 풀었다.

파츠츳….

그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무형검이 허공으로 풀려난다.

‘일단, 좋다. 생각을 해 볼까.’

그리고 그때였다.

[이놈…!]

녹갑 목인을 비롯해, 허공에 떠 있던 다른 사축기 수도자들.

그리고 진룡맹이라는 곳을 대표해서 온 저 용족 장로라는 자 역시.

모두가 진노한 의념을 드러내었다.

‘뭐지?’

내가 당황할 때, 그들이 내 무형검을 보며 외쳤다.

[가만 보니, 심도공법을 익힌 심족의 첩자가 아니냐!? 안 그래도 수상하다 여겼거늘!]

“예…?”

[죽어라, 이 첩자 놈! 자세한 건 죽이고 혼을 뽑아 물어보겠다!]

“잠ㄲ….”

그리고.

푸콱!

나는 무엇에 당하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터져 죽었다.

그렇게, 나는 비승에 성공하자마자 그대로 전신이 터져 죽어 버렸다.

그것이, 나의 열세 번째 회귀(回歸)였다.

* * *

깜빡.

나는 눈을 떴다.

‘제길, 비승하자마자 죽다니, 뭐 이런….’

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

“…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숲속이 아니다.

이곳은….

“선택하시게. 우리는 이제 각자 광한계 선배분들의 인도에 따라 흩어질 것이니. 자네는 어떤 세력과 함께 가겠는가?”

“…뭐?”

나는 눈앞의 서휼을 보며, 두 눈이 휘둥그레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비선대 위.

내가 방금 죽었던 곳.

“잠깐, 잠깐….”

그리고, 이 사실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내 회귀 시점이, 이곳으로 고정되었다.

“…이보게?”

“…아!”

나는 서휼의 물음에 흠칫했다.

그리고 나는 목인의 눈치를 보며, 무형검을 함부로 흩어버리지 않고, 체내 속에 기운을 최대한 숨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뜬금없이 회귀 시점이 고정된 지금.

금신천뢰문(金神天雷門).

흑색귀골곡(黑色鬼骨谷).

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요족들이 가는 진룡맹(眞龍盟).

그리고 정, 마 선파연맹 등 기타….

나는 이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13회차의 첫날

‘선택?’

나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연 누구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

‘당장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되지 않는데….’

일단 회귀 시점이 갑작스레 고정되었다.

그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시점이 고정되었다는 말은 곧.

‘내가 회귀를 시작하고 해 왔던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모든 일들이… 전부 고정되었다는 뜻….’

향화에게 준 노리개가.

송진과 서란의 관계가.

김영훈에게 준 장생과가.

죽은 원립과 없어진 막리세가가….

잘했든 못했든.

내가 해 온 행위들 자체가 고정되었다는 뜻이며.

그 말인즉….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은….’

문득,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과 함께 가슴 속에서 뭔가가 북받쳐 왔다.

‘무의미하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를지언정, 최선을 다해 온 일들이.

그 삶이 무의미할지라도, 내가 하는 행동에 최선을 다한 그 결과가.

이번에 시간이 고정되며, 비로소 유의미하게 변화했다.

나는 하계에서 해 왔던 일들을 떠올렸다.

‘아아,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흐음, 고민이 긴가 보군.”

서휼이 턱을 쓰다듬으며 걸음을 물렸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만 가 봐야겠어. 솔직한 마음으로는 자네가 탐이 나네만….”

서휼뿐이 아니었다.

다른 요족의 요왕들, 성붕왕, 거호왕 등도 나를 향해 입맛을 다시는 것이, 내가 썩 쓸 만한 인재로 보였단 뜻이리라.

하지만, 그들의 뒤쪽에서 나를 쳐다보는 용의 눈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딴 잡것이 뭐 그리 중하다는 거냐. 건곤중역 근처에서 벗어나 지족의 영지까지 가려면 한세월이다. 빨리 출발해야 하노라.]

“장로께서 급하신 듯하니. 우리는 이만 가 보지.”

“…예, 살펴 가십시오, 용왕이시여.”

“하, 용왕이라. 말은 고맙지만 이제부터는 왕(王)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게나. 진짜 중경계 요왕(妖王)들께서 노하실 수 있으시니.”

그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뒤를 돌아 규련 쪽으로 갔다.

나는 서휼에게 겉으로나마 인사를 하며 그를 배웅했다.

일단 지금으로선 서휼과는 같이 갈 생각은 없다.

몇 번의 생을 통해 정보를 조금 모은 후라면 몰랐지만….

‘물론, 요족 연합 같은 진룡맹이 아니라, 아예 해룡족에 들어오라 했다면 지금이든 추후든 무조건 거절했겠지만.’

내가 떠날 채비를 하는 서휼을 바라볼 때였다.

[그럼 너는 인족이니 우리 쪽으로 와라. 어느 세력을 따라가든 일단 지내기 어렵지는 않겠지.]

상황을 보던 녹갑 목인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너, 아무도 선택할 생각이 없지 않느냐?]

멀리 떨어져 있던 괴군이, 번뜩 눈을 뜨며 말했다.

쿠구구구구!

그는 광한계의 천지영력을 흡입하며 어느새 천인기 대원만, 그 극성까지 도달해 있었고, 사축기에 한 발을 디딘 듯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세 천인과 서휼처럼 바로 사축기에 들지 않은 것은, 단순히 천뢰번의 힘으로 천겁을 당겨 맞지 않아서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사축기에 준하는 기세를 풍겨 대며 내게 말했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나와 함께 가자꾸나. 너, 도대체 뭐지? 뭐지? 뭐지? 너무 궁금해 죽겠군. 어떻게 사람이 그런 심상을 가지지? 아아, 너무 궁금하다. 내 가제자로 받아 줄 테니, 날 따라와라. 날 따라와라. 날 따라와라. 날 따라와라. 나와 함께 광령지로 떠나자꾸나.]

그는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난 그 눈빛에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때, 녹갑 목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놈도 대단한 인재라는 건 안다만. 우선 너희들은 인족이 거하는 인족 영역으로 가 신분 증빙 패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가기는 어딜 간다는 거냐. 너희 둘 다 우선 따라오기나 하거라.]

그때였다.

괴군이,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싫다. 난 [그녀]를 완성시킬 재료들을 찾아야 해. 그러기 위해 상계로 비승한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광한계의 광령지(光靈池)를 찾아 [그녀]의 몸에 피를 돌게 할 것이다.]

[이놈이… 알아듣지 못한 거냐? 네가 뭘 하러 상계에 왔는지는 관심이 없다. 일단 네놈은 인족 영역으로 가서….]

그리고, 괴군이 갑자기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싫다!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명령하지 마라! 나는 당장 광령지로 향할 거다! 광령지를 찾아가 [그녀]를 완성시켜야 해! 막지 마! 막지 마!]

괴군의 행동에, 떠나려던 서휼은 물론이고, 막 사축기에 든 세 명의 안색이 점차 굳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세력을 한 팔로 보호하며, 한 걸음씩을 물러서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괴군의 그런 행동에, 뒷골이 싸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 인간이, 미친 짓을 하기 전에는 항상 저러던데….’

―왜피하지왜피하지왜피하지왜피하지왜피하지.

―더우월한존재로진화시켜주겠다는데?

―네놈네놈네놈네놈네놈네놈….

그때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자, 절로 몸에 오한이 돋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괴군의 태도에 노한 표정을 짓던 녹갑 목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미치광이를 보았나? 하계에서야 네놈이 지랄을 해도 천인기라 전부 떠받들었겠지만, 이곳은 광한계다. 감히 이놈이 어느 안전에서 발광을 하느냐?]

쿠구구구구구!

녹갑 목인의 손으로 천지영기가 몰린다.

[제대로 교육을 시켜 주마. 어디 계속 미친 척해 봐라. 아예 터트려 없애 버려 주마.]

그리고.

뚝.

괴군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녹갑 목인을 번들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를… 없애?]

괴군이, 양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득, 우드득, 빠드드득!

[나를 없애?없애없애없애없애없애?아니아니아니아니….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아아, [그녀]가 말한다! 모두 조용! 조용! 아, 그래! 들리느냐? [그녀]가 내게 의견을 냈다!]]

괴군이, 광기로 가득 찬 눈으로, 손가락을 피가 흘릴 정도로 씹어 대며 말을 이었다.

[광한계에 비승한 기념으로, 사축기급 재료는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알아보자꾸나!]

[이… 미치광이 놈…!]

녹갑 목인이 손을 쓴다.

그리고, 서휼이 그를 데리러 온 진룡맹의 장로를 독촉하며 빠르게 도망쳤다.

세 천인이 자신들의 세력을 각기 보호막을 쳐 보호하였다.

나는 아직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누구도 딱히 나를 돕지 않았다.

그리고, 사축기 수도자와 괴군이 부딪혔다.

번쩍!

찌이이이잉!

둘의 격돌에, 천지영기가 요동치며 인근의 공간이 흔들렸다.

쿠구구구구!

“크헉!”

‘제길, 혈체피갑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다!’

혈체피갑이 제공하는 재생력 덕에, 나는 겨우겨우 살 수 있었다.

둘의 압력에 깔려, 바닥에 짜부라져 있는 나는,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둘이 격돌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최초로 괴군의 [전력]을 볼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

괴군이, 상자를 연다.

쿠과과과과과!

상자의 안쪽에서, 거대한 하나의 성채(城砦)가 빠져나왔다.

성은 마치 봉명성 세 개를 합쳐서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원통형 기둥 셋이 삼각형을 그리며 붙어 있는 괴군의 성채.

그리고, 성채의 위쪽에서 괴군의 목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기묘성채(奇妙城砦)여, 입을 열어라!]

쿠구구구구!

괴군의 성채의 성문이 열리며, 하늘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그리고 경악한 것은 나뿐이 아니라, 광한계의 다른 사축기 수도자들마저도 마찬가지였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괴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우우우우웅!

벌 괴뢰, 거미 괴뢰, 사마귀 괴뢰… 동물 괴뢰, 인간 괴뢰….

온갖 괴뢰들.

그 괴뢰들이, 하늘을 메운다.

그 너머로 괴군의 음성이 울린다.

[축기경 괴뢰, 일억 구천만 기. 결단경 괴뢰, 십육만 오천육백 기. 원영경 괴뢰, 사천이백삼 기. 천인경 괴뢰, 육십삼 기. 사축경 괴뢰, 두 기.]

명실상부한 사축기 둘 급의 힘.

그리고 나머지 하늘을 뒤덮은 괴뢰들의 힘을 다 합친 괴뢰들의 힘.

그 힘의 크기를 총합하면….

‘사, 사축기….’

네 명분의 힘 크기…!

나는 아연실색해서 입을 벌리고, 아래쪽에서 익숙하단 표정으로 얌전히 결계를 펼치는 중인 세 천인, 아니, 이제는 사축기 수도자가 된 그들을 쳐다보았다.

쿠구구구구!

괴군이 괴뢰들을 일사불란하게 조작하며 미친 듯이 녹갑 목인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멍하게 쳐다보던 다른 사축기 수도자들도 얼른 녹갑 목인을 도와주러 허공을 날았다.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아래쪽에 있는 흑색귀골곡을 쳐다보았다.

나는 오늘에서야 흑색귀골곡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 종파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저 정신 나간 괴물 딱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고작해야 문파의 삼분지 일만을 희생시켜 살아남다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종파가 아닐 수 없었다.

쿠광, 쿠과과광!

얼마간 수많은 축기경 괴뢰들 사이에서 번뜩이며 일전을 벌이던 사축기 수도자들.

그리고.

쿠과과과광!

괴뢰들 사이가 번쩍 뚫리며 원형으로 괴뢰들이 밀려 나간다.

그리고 그 틈새로 녹갑 목인이 전신에서 피 같은 액체를 흘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푸확!

괴군의 기묘성채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녹갑 목인을 포획했다.

그리고, 괴군의 괴뢰들이 일순간 다시 그의 성채로 빨려 들어갔고, 성채는 그의 상자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아아앗!

괴군의 뒤쪽에는, 새하얗게 빛나는 [뭔가]가 괴군을 붙잡고 있었다.

‘저게, [그녀]…!?’

나는 흠칫 놀라며 그 [뭔가]를 바라보았다.

뭔가 사람의 형상인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빛살과, 자세히 인식하려 하면 눈이 아릿거리는 현상 때문에 관찰하기가 어려웠다.

그때였다.

[요 녀석!]

괴군이, [그녀]와 함께 내게 날아온다.

파앗!

아니, 날아온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그냥, 공간을 뛰어넘어 삽시간에 내 앞에 도달했으니까.

콰아악!

[그녀]가 허공을 움켜쥐자, 천지영기가 움직이며 나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한쪽에서 거품을 흘리고 기절해 있던 김연 주임 역시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자, 가자! 사축기급 재료도 손에 넣었다!]

‘이런, 제길!’

부웅, 부웅!

나는 무형검을 꺼내서 미친 듯이 저항하려 했지만, 사축기 급의 [그녀]의 힘에는 요지부동이었다.

[신나는구나! 히히! 쓸 만한 제자도 둘, 사축기 급 재료도 하나, 상계 비승도 성공했으니, 당신과 함께 춤출 날이 머지않았소! 아아아아!]

파아아앗!

괴군은, [그녀]와 함께 날아갔고, [그녀]에게 붙잡힌 나 역시 그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뒤쪽이 삽시간에 멀어지며, 사축기 수도자들이 분노하여 미친 듯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구구!

그들의 노성(怒聲)에 곳곳의 대지가 뒤흔들리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존재 자체로 자연재해를 뛰어넘어 천재지변인 이들.

사축기 수도자들이, 괴군 한 명에게 농락당하고 분노에 떠는 것이었다.

[저 미치광이를 쫓아라…!]

[전 광한계에 저놈을 수배해라!]

[이 광인 녀석! 전 천족이 네놈을 쫓아갈 것이야!]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괴군에게 잡혀가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처먹을!’

빨리 세력을 선택하지 않아, 괴군에게 잡혀가게 생겨 버렸다!

파아아아앗!

나는 괴군과, [그녀], 그리고 김 주임과 함께 빠르게 어딘가로 날아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