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회(百會) (2)
툭툭….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쉬이이….
내가 뚫고 나온 땅에서, 흙먼지가 올라온다.
우드득!
나는 무형검을 움직여, 흙을 조금 더 덮어 주었다.
공동은 잔뜩 회쳐 놓긴 했지만, 정작 주요 결계들은 안 건드렸으니 갑자기 서경성이 무너진다거나 하지는 않을 터였다.
막리세가가 사라졌다.
본가에 있는 축기기 대다수와 결단기 원로원, 가주를 전부 없애 버렸으니, 남은 영지의 막리세가 인원들은 서서히 진씨세가에 의해 말라죽을 터였다.
나는 막리세가에서 챙긴 저물대 꾸러미들을 바라보았다.
막리세가에 있는 것들 중, 단약을 제외하고 영석이란 영석은 싹 챙겼다.
이것으로.
연국에서의 문제는 전부 해결했다.
‘그럼 이제….’
나는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송진과 서란을 만나러 가야겠군.’
* * *
촤아아악!
새파란 바다.
나는 바다 위를 날아, 하루만에 연국에서 서란의 거처까지 도착했다.
촤르르르륵!
나는 무형검으로 물길을 열며 서란의 거처까지 바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사는 수중 동굴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촤아아악!
수중 동굴 안쪽에서, 서란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요족어로 서란에게 말했다.
“당신이 서란이오?”
그는 내 무형검의 기세를 느끼더니,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선배님은… 요족… 이십니까?”
“그냥 특이한 인족이오. 그리고….”
아마 이번 삶의 초기에는 별다른 이변 없이 서란에게 왔으니, 그가 서휼에게 예정대로 파공주를 전달해 받았을 터였다.
‘뭐라고 설명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나는 해룡족 장로, 전횡이라는 자의 부탁을 받고 당신을 찾아왔소.”
“저, 전 장로님을 아십니까?”
서란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휼에게 파공주를 받고, 섭명함을 폭파시키라는 명을 받았을 터요. 그렇지 않소?”
“…그렇, 습니다.”
“우선 그 파공주는 날 주시오.”
“예? 예. 여기 있습니다.”
서란은 수상쩍어하면서도, 내게 파공주를 건냈다.
나는 파공주를 건네받은 후 그에게 말했다.
“섭명함에 쳐진 귀골곡의 결계를 파훼하지 못해서 진입하지 못했겠지? 같이 가서 내가 결계를 파훼해 드리지.”
“가, 감사합니다.”
서란은 감사하다는 듯 내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반인반룡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 본모습으로 변해도 된다오.”
“…! 전 장로님이… 그런 것까지 말씀해 주셨습니까?”
“그렇다고 해 두지. 일단 따라오시오. 섭명함으로 가지.”
“…예.”
서란은 수상쩍어하면서도, 나를 따라 섭명함을 향해 갔다.
나는 섭명함이 있는 해역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전방에 자리했다.
이 결계를 넘어서면 귀신들의 구역이 나온다.
“선배님, 우선 이 결계는….”
“됐소, 거기 계시오.”
나는 서란을 뒤로 물린 다음, 그대로 손을 들어올렸다.
단악검법, 입산!
올려 베기.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허공이 쪼개지며, 결계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결계 너머에 있던, 수만 마리의 귀신들로 형성된 귀무 역시 반으로 쩍 갈라져 길을 텄다.
쩌억….
서란의 입이 벌어졌고, 나는 멍한 서란을 끌고, 빠르게 섭명함이 있는 결계의 중심부로 향했다.
결계의 중심부.
단단한 마지막 결계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웅!
콰가강!
내가 날린 무형검에, 이번에 결계는 한 번에 터져 나가 버렸다.
“허, 허억…! 결단기 수준으로도 한참을 두들겨야 깨지는 결계인데….”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서란은, 나를 공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수상쩍은 녀석이 원영기급 실력을 가지고 있단 것이니, 공포스러울 만도 했다.
“빨리 오시오. 만날 자가 있소.”
“만날… 자 말입니까?”
“설마, 흑색귀골곡이 아무리 폐함이 됐더라도, 저들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섭명함에 아무도 안 남겨 뒀으리라 생각하시오?”
나는 서란을 이끌고 섭명함의 최하층까지 바로 내려갔다.
그리고, 섭명함의 최하층에서 긴장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송진을 만날 수 있었다.
[…자네는 누구신가.]
송진은 내가 결계를 한 번에 터트려 버린 사실을 알고 있는 듯, 기세를 응축시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뒤따라온 서란에게 말했다.
“인사하시오, 서 도우. 저분은 송진 선배님이라는 분으로 괴군 조연에게 살해당하신 이후, 이 섭명함을 지키고 계신 천인기 잔혼이시지.”
“어, 안녕…하십니까?”
[…넌, 설마.]
서란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며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송진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 애의 자식인가. 이곳에는 왜 왔느냐?]
그 말에, 서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 어머니의 유품을 찾으러 왔습니다.”
[네 어미의 유품을 찾으러 와?]
화르륵!
송진의 눈에서 귀화가 타올랐다.
하지만 그는 내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목소리를 누그러뜨려 진노를 드러내지 않고서 말하였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것 중 그 어떤 것도, 전부 본 곡의 재산이다. 외인인 네놈에겐 줄 수 없다.]
나는 무형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찾을 기회나 주시지 그러십니까? 선배님.”
내 무형검을 본 송진의 눈에서 귀화가 거세게 타올랐다.
노한 기색이었지만, 원영기급 전력으로 보이는 내가 칼을 들고 위협하자 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이번 비승에 안 끌려간 건가? 전 계위에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는 그 흉물(凶物)은 또 뭐고…? 제길….]
그는 이를 악무는 듯하더니, 두 주먹을 꽉 쥐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반나절, 반나절의 시간을 주마. 그 시간 안에 네 어미의 방을 찾아내서, 거기서 유품을 찾아봐라. 만약 그 시간 안에 나가지 않는다면, 내 혼백을 불태워서라도 천인기의 진노를 한 번은 보여 주겠다…!]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서란은 송진에게 절을 올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서란은 내 안내에 의해, 그의 어머니의 방에 도착하였다.
[자네…!]
송진은 진노하는 듯했지만, 입을 다물고 담담히 우리를 지켜보았다.
얼마 후 서란이 어머니가 남긴 옥간을 찾았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송진 역시 은근슬쩍 들어와 그와 함께 옥간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방에서 나왔다.
얼마 후, 송진과 서란이,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나는 섭명함 바깥으로 나와,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흘이 지났다.
[…자네, 무슨 꿍꿍이지?]
송진이 섭명함의 갑판에서 얌전히 기다리던 나를 찾아와 물었다.
[왜 저 아이를 내게 데려온 건가? 그것도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저 아이의 편을 드는 거지?]
나는 잠시 침묵하다 변명을 댔다.
“전횡이란 해룡족 장로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전횡…? 해룡족의 수석 천문관을 말하는 건가 보군. 흠….]
“그런데 그런 건 왜 묻는 겁니까?”
[…저 아이를, 제자로 받기로 했다.]
다시금, 송진과 서란 사이의 사제의 연이 이어졌다.
서란과 송진은 섭명함의 갑판에서 내게 인사를 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자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 하네.]
“저 역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선배님이 원하신다면 무엇이든 세 가지는 들어드리겠습니다.”
[제자가 이러는데 나 역시 맨입으로만 있을 수는 없지.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는 송진을 보며 말했다.
“우선, 섭명함을 사용하게 해 주시지요.”
[뭐…?]
쿠웅!
나는 막리세가의 본가에서 가져온 영석 더미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 정도면 섭명함을 띄우는 데에 썩 부족하지는 않겠지요?”
그럴 리는 없을 터였다.
막리세가의 모든 영석을 가져왔으니까.
[음…!]
영석을 본 송진의 눈이 빛났다.
[충분하고 넘치는군. 그래, 어딜 가고 싶지?]
“우선… 해룡족의 해룡궁으로 가 보지요.”
나는 그들과 함께, 해룡궁을 향해 움직였다.
* * *
쿠구구구!
귀무와 함께, 섭명함이 공간을 넘었다.
우리는 바로 해룡궁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혹시 섭명함의 주포로 해룡궁에 있는 봉인을 뚫을 수는 없습니까?”
[불가능하다. 섭명함에 남은 주포들은 전부 다 망가졌으니까.]
“그렇군요….”
나는 만리민랍이 쏴재꼈던 주포의 위력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힘을 써야겠군.’
나는 섭명함에서 내려, 수압에 견디며 무형검을 휘둘렀다.
지난 삶에서 서란이 진법을 설치했던 곳.
서휼의 봉인이 가장 약한 곳을 뚫으면 될 터.
쿠우웅!
무형검이 봉인의 안쪽.
가장 연약한 금제들부터 투과해서 짓이긴다.
금제들이 옅어지며, 얼마 후.
퍼엉!
봉인의 한쪽에 그대로 작은 구멍이 나 버렸다.
“서 도우, 따라오시오. 그리고 송진 선배님도 잠시 가능하시면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네가 이곳에 함정을 파지 않았다는 것을 어찌 믿지?]
송진은 수상하다는 기색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섭명함에 대고 맹세하지요. 맹세코 전 이곳에 함정 같은 건 파 놓지 않았습니다.”
[흐음… 알겠다.]
송진은 결인을 맺으며, 섭명함의 귀기를 끌어와 자신에게 이어붙였다.
쉬이이이!
섭명함에서 귀기를 이어붙인 채 뛰어내린 송진, 그리고 서란과 내가 해룡궁으로 진입하였다.
[해룡궁… 서 용왕의 초대를 받았을 적 이후로 처음 와 보는군.]
“저 역시 오랜만에 와 봅니다.”
우리는 해룡궁의 내궁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왜 이곳으로 부른 거지?]
“따라오시지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전횡이 죽은 전각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촤아악!
그리고, 전각에 들어갔을 때였다.
“핫!”
서란에게 끈적한 저주가 날아와 들러붙는 것이 보였다.
송진이 흠칫 놀라며 서란에게 들러붙은 저주를 떼어 내려 할 때였다.
파스스….
서란에게 들러붙은 저주는 그대로 녹아내렸다.
아무래도 전횡의 음성을 들은 듯, 서란의 눈이 떨렸다.
“전… 장로님…? 저, 저 옥판을 들어 봐야 합니다…!”
나는 담담하게 나아가 옥판을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서책이 있었다.
나는 무형검으로 서책을 끌어온 다음 옥판을 내려놓았다.
그런 후, 송진에게 서책을 건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봐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니… 이건 그냥….]
그 때였다.
[뭣…! 젠장, 눈이 마주쳤군!]
책을 들여다보던 송진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꿈틀, 꿈틀….
책을 다 읽고 덮지도 않았건만.
갑자기 서휼이 남겨 놓은 서책이, 미친 듯이 꿈틀거린다.
촤아아악!
송진의 손에서 뻗어 나온 귀무가 책을 뒤덮었고, 송진은 다급하게 말했다.
[젠장, 잠시 봉인을 걸어 놓았다. 일단 빨리 섭명함으로 가자!]
턱!
나는 송진의 어꺠를 잡고, 그대로 송진과 함께 무형검으로 섭명함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섭명함에 도착했을 때.
파아아앗!
귀무가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서책의 안쪽에서 푸른 빛살이 터져 나온다.
해룡왕 서휼의 의식!
그리고, 서휼의 의식이 내가 지난 생에 들었던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란의 눈이 휘둥그레질 때, 송진이 결인을 맺으며 외쳤다.
[먹어치워라, 섭명함!]
그와 동시에.
끼야야야야―
섭명함의 갑판에서 귀수들이 뻗어 나오며, 서휼의 잔념을 꽁꽁 묶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휼의 잔념은 그대로 섭명함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쉬이이이….
그렇게 서휼의 잔념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서 용왕이 남겨 놓은 의식이군. 왜 이런 것을 남겨 둔 거지?]
송진은 의아해했고, 서란은 서휼의 말에서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떨고 있었다.
나는 서책을 집어들고, 서란에게 건냈다.
“이 안에, 전횡 장로의 일지가 적혀 있소. 서휼이 부려 놓은 꿍꿍이는 더 없으니, 한번 천천히 읽어 보시오.”
“…알겠, 습니다.”
서란은 진실을 알기가 두려운 듯,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잠시 덜덜 떨다 서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얼마 후.
뚝, 뚝뚝….
서란은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왕께서… 왕께서… 내게 보여 주셨던 모든 것들이, 다 거짓이었다고…?”
충격을 받은 듯.
서란은 그렇게, 한참을 서책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몇 시진 후.
“조금 진정되셨소, 서 도우?”
“….”
“나는 전횡 장로가 일지의 마지막 부분을 쓰기 전 그에게 부탁을 받았소. 당신을 잘 인도해 달라고. 그의 의지를 이어받아 여기까지 당신을 안내해 드렸으니, 앞으로의 판단은 알아서 잘 하시길 바라겠소.”
서란은 이를 악무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그는 무언가 결의를 다진 표정이었다.
잠시 우리를 지켜보던 송진은 나를 보며 말했다.
[방금 섭명함을 가동시킨 건, 소원으로 치지 않겠다. 이것으로 인해 내 제자가 해룡왕의 음험함을 알았고, 앞으로 해룡궁에 남은 수많은 해룡족의 보물 역시 획득할 테니까.]
“감사드리지요. 하면, 섭명함을 타고 몇 군데를 더 들러도 되겠습니까?”
[음…?]
* * *
늦은 저녁.
사막의 열기가 식고, 밤이 되가는 시각.
쿠구구구!
섭명함이, 사막 한 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흑색의 성이 보였다.
“송진 선배님, 저 성 밑에 어마어마한 원혼이 잠들어 있다는 건 느껴지십니까?”
[허어… 막대하군.]
“저것들을 이용해서, 저 흑색의 성을 덮은 결계를 깨 주실 수 있으신지요?”
내 말에, 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다.]
쿠구구구!
얼마 후.
섭명함이 사막에 내려앉았고.
송진이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마침 태양도 뜨지 않은 한밤인지라, 원혼들의 음기가 더욱 더 강하게 끓어오른다.
끼야아아아아!
끼아아아아!
까아아아!
부글부글부글….
흑색의 성 밑에 깔려 있던, 수십 수백만의 원혼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을 느낀 것인지 흑색의 성 안쪽에서 피 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냐, 누구냐? 어떤 놈이….]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립이었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얌전히 처박혀 있을 것이지, 괜히 나와서 목숨을 버리려 하느냐?”
[뭣…? 자, 잠깐! 섭명함? 흑색귀골곡?]
그리고, 송진이 법술을 완성하였다.
끼야아아아아!
귀신 떼가 울부짖으며, 송진의 귀체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뭐, 뭐요! 갑자기 내게 왜 이러시는 거요!]
원립은 송진의 기세가 커져 가는 것을 보며 그의 정체를 짐작했는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발악하였다.
하지만 송진은 딱히 놈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귀도법술을 완성하였다.
[이런 젠장!]
슈르륵!
기이이잉!
원립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흑색의 성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흑색의 성을 뒤덮은 고대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이이이이!
동시에, 핏빛의 진홍빛 강물이 흑색의 성 안쪽에서 흘러나오며 결계를 강화시켰다.
장원진력.
원립 놈의 예비 목숨이었다.
키이잉!
파직, 파지지직!
결계가 강화되며 기이한 뇌전을 내뿜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
하늘이 음기로 충천한다.
일순간, 천인기의 실력을 회복한 송진이 뒷짐을 지고 허공으로 떠올라 흑색의 성을 내려다보았다.
[…운명의 인력을 가진 선보로군.]
“그렇다 하더군요.”
괴군 역시 분명히 그런 말을 했다.
그 이전에도 간혹 저 성에 대해 그런 말을 들어 왔고.
송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저놈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만. 저 성 자체는 별 것 아닐지라도, 성에 운명의 인력을 공급하는 핵심(核深)이 성가시군. 그리고 놈은 지금 그 핵심의 바로 아래에 숨어 있다. 일격에 성을 박살 내 버릴 순 있겠지만, 핵심과 핵심의 뒤에 숨은 저 녀석은 못 잡을 수도 있다.]
“아, 상관은 없습니다. 그 정도만 해 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잡지요.”
[그래, 그렇다면….]
쿠구구구!
송진의 두 눈에서 푸른 귀화가 타올랐다.
[대청색귀골곡 원로의 힘을 보여 주마….]
끼야아아아아!
쿠릉, 쿠르릉….
하늘에 먹장구름이 맺혔다.
곧이어, 먹장구름이 뭉치며 거대한 귀신 머리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천귀골진(舛鬼骨陣)! 개(開)!]
[끼야아아아아아아!]
천지간에 귀곡성이 울린다.
그리고, 먹장구름이 뭉친 귀신의 머리가 마구 어그러지더니, 그대로 흑색의 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괴군이 던졌던 석상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위력!
그리고.
쩌어어엉!
장원진력을 잔뜩 머금은 흑색의 성의 고대 결계.
고대 결계는 잠시 버티는 듯했으나, 이내 시뻘게지더니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콰아아앙!
그리고, 고대 결계에 밑에 있던 흑색의 성이, 무너진다.
콰과과과광!
천지간에 음풍이 휘몰아쳤다.
얼마 후.
[허… 놀랍군. 조금 살살 치긴 했는데…. 그래도 성의 형태가 남아 있을 줄이야.]
송진이 놀랍다는 듯이 흑색의 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 그대로였다.
방금 전의 무지막지한 일격을 맞고도, 흑색의 성은 완전히 가루가 되지 않고, 그래도 상층의 지붕 정도만 날아간 채로 어느 정도 형체는 유지한 상태였다.
물론.
[크아아악! 크헉, 크악!]
원립은 그 안쪽에서 반쯤 고깃덩이가 된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촤르륵, 촤륵!
놈은 장원진력을 있는 대로 끌어다가 몸을 재생시키는 중이었고.
그리고….
놈의 위쪽으로, 서휼의 형상이 아른거리다가 사라졌다.
송진은 서휼의 형상을 보며 잠시 귀화를 일그러뜨리다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휼의 잔념과, 저 성의 핵심이 내 일격을 막아 주었구나.]
“저건….”
나는 지난 삶의 일을 기억했다.
분명 괴군이 원립을 처리하고 난 후.
흑색의 성을 뜯어냈을 때, 그곳에 있었던 돌 조각이었다.
그때는 돌 조각보다는, 몰래 괴군에게서 도망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기에 돌 조각을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돌조각을 제대로 보게 된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직, 파지지지직!
끊임없이 황금빛 뇌전을 뿜고 있는 그 돌조각.
그것은, 등선향의 중심부.
승천문의 바로 앞에 떠 있던 그 비석의 윗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