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32화 (132/185)

백회(百會) (1)

김영훈에게서 멀어진 후.

나는 우선 인근 야산에서 내단부터 형성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내단이 형성된다.

나는 백회로부터 전신의 기를 모아 집중하였다.

백회혈은 백 가지의 기혈이 모인다는 뜻으로 백회(百會)라고 불린다.

동시에 천지간과 통하는 인체의 최중요 부위이기도 했다.

백회로 기운이 모이며, 내단이 점차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녹아든 내단은 전신의 기혈로 흩어지며, 손아귀에 쥔 무형검과 이어진다.

무형검은 전신으로 깃들며 전신의 맥에 흘렀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전신에 흐르는 무형검을 백회로 모아, 상단전에서 통합(通合)시켰다.

온전히 무형검이 전신에 자리 잡고, 나 자신이 곧 검이 된다.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의 힘을 무형검을 통해 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이 느껴졌다.

또한 역으로 내 육신과 세포를 이용해 무형검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어낸 무형검의 극한이 바로.

피이잇!

내가 검을 휘두르자, 인근 산맥에 흐르는 천지영기 그 자체가 일순간 뚝 끊기는 것이 느껴졌다.

원하는 걸 벨 수 있는 힘.

‘원립은 계위라고 했던가?’

녀석이 말한 계위라는 것은 정확히 몰랐지만, 내 무형검이 극한으로 벼려지자, 뭔가.

차원 비슷한 것을 넘는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다.

나는 내가 능광도를 흉내 내서 공간을 베어 냈던 것 역시.

무형검과 능광도의 능력이, 둘 다 차원에 관련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 보았다.

‘뭐, 계속 답천의 경지에서 무형검을 사용하며 확인해 봐야겠고….’

나는 다시 자리를 박차며 생각을 이었다.

파아아아앗!

무형검과 하나된 상태로 자리를 박차자, 나는 무형검 그 자체가 되어 비둔술보다도 훨씬 빠르게 날아갈 수 있었다.

‘우선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볼까.’

연국에 왔으면 해야 할 것.

첫 번째는.

‘녀석들의 얼굴을 봐야지.’

매 회차마다 잊지 않고 찾아왔었다.

이번 회차 역시 빼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빠르게 진씨세가로 날아갔다.

* * *

‘자고 있군.’

나는 숙소에서 훈련을 받고 잠든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미안하다.”

나는 녀석들을 둘러보며, 과거의 내 제자들에게 입을 열었다.

“살아 보니, 사람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달려들어야 할 때가 있더구나.”

이것은 그 아이들에 대한 사과였다.

“내 짧은 견식과 아집으로, 그것을 모르고 너희에게 내 뜻을 강요했다.”

물론, 그때는 나 역시 내 입장이 있었다.

가 봤자 개죽음당할 것이 당연한 암살 시도.

친지의 원혼을 이용한 법술로, 잔뜩 이상으로 부풀려진 증오.

녀석들의 의념을 보며, 녀석들이 서로를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증오 속에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이 아이들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힘 없는 자의 입장이었다.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으면,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황제를 미리 암살해 왔으면 됐을 것을.’

이것저것 변명할 것은 많았지만.

할 말은 한 가지였다.

“그때에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으나, 지금에라도 힘을 써 주마. 잘 살아다오.”

숙소에서 나와, 스승이었던 입장으로서 숙소를 향해 절을 한 번 올렸다.

절을 올리는 것에는,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뿐이 아닌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의도 역시 담겨있다.

나는, 내 인연이었던 아이들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진씨세가의 혼백 보관소로 갔다.

수많은 수정 구슬들이 보관된 창고.

나는 그들을 보며, 무형검을 휘둘렀다.

슈칵!

내 무형검이, 수정 구슬과 영혼들을 연결한 법술을 잘라 냈다.

그리고 법술은 그대로 베여 나가며, 원혼들이 구슬 바깥으로 나와,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의 아이들은, 살아남은 이들은, 진씨세가에서 여생을 평안히 마치며. 대대손손 행복하게 지낼 것입니다. 부디 사후에나마 편안히 성불하소서.”

아아아….

아아….

원혼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얼마간 몸을 떠는 듯하더니,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

얼마 후, 혼백 보관 창고에서, 경보 법술이 울리려 했으나 나는 그 법술마저 베어 버린 후.

유유히 진씨세가를 나왔다.

이제 연국에서 남은 일은.

“막리세가.”

지난 생에 연합을 배신했던, 이 배신자 놈들을 모조리 숙청해 버리는 것 뿐.

“네놈들이 이 세상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단 하나도 찾지 못하겠구나.”

파아아앙!

나는 지난 생에 연합의 주축으로서 알아 놓았던 막리세가의 본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막리세가의 본가는, 내게 아주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연국 수도 서경성!

파아앙!

나는 공기를 찢어 가르며, 서경성의 위쪽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그대로 서경성의 한복판을 향해 몸을 내리꽂았다.

쿠과과과광!

내 몸이 그대로 무형검이 되어, 서경성의 한복판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다.

쿠구구구구!

얼마간 땅을 뚫고 내려간 나는, 마침내 텅 빈 공동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푸확!

커다란 공동에는, 막리세가에서 걸어 놓은 공간 압축이 걸려 있었는지, 안쪽의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대략 어느 정도였냐면, 작은 산맥 하나가 들어앉아 있었다.

쿠구구구!

그리고, 그 산맥 위쪽으로 거대한 궁전이 하나 서 있었고, 그곳에서는 진득한 시체 냄새와 함께 짙은 마기(魔氣)가 뿜어지고 있었다.

일전에 듣기로, 원래부터 이곳이 막리세가의 본거지는 아니었다 한다.

마도선파 연맹의 본거지였던 곳으로, 막리세가도 분명 이곳에 있기는 했으나, 지금 같은 저 궁전이 아닌, 저 궁전의 밑자락에 있는 작은 땅에 세 들어 살던 세입자 신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연맹 전체가 상계로 비승한 지금, 막리세가가 주인 없는 동굴을 차지한 것이었다.

파아아앗!

나는 허공을 가르며 막리세가의 본가를 향해 날아갔다.

공동의 천장에는 어마어마한 야명주들이 박혀 빛을 내고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고, 오히려 대낮처럼 밝았다.

그렇게, 나는 궁전에 도착했다.

궁전의 앞을 막고 있던 막리세가의 축기기 수도자 두 명이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인. 혹 결단기 선배분이신지요?”

내가 비행법기 없이 그냥 날아오는 것을 보고, 비둔술을 썼거니 한 모양이었다.

비행법술은 아니었지만, 그의 판단은 나쁘진 않았다.

어쨌든 난 이놈들보다는 선배가 맞았으니까.

하지만.

“정정할 게 세 가지가 있군. 우선 첫째, 나는 결단기가 아니다.”

“아, 그럼 특이한 공법을 익힌 도우셨나 보오?”

“둘째, 나는 네놈들의 도우도 아니고, 대인도 아니다.”

내 딱딱한 말투에,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건지.

문지기 둘의 안색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셋째, 나는 네놈들에게 인사 같은 걸 받고 싶지 않으니, 인사는 돌려 두마.”

그들은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어쩐 일로 방문하셨소?”

“너희에게 몇 가지 요구를 하러 왔다. 이 요구만 들어주면 다시 돌아가겠다.”

나는 이 녀석들에게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 우선 너희는 더 이상 단약 제조를 위해 애꿎은 인명을 희생시키지 마라. 둘, 연국에서 쌓아 온 더러운 기반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라. 셋, 너희들이 단약을 위해 죽여 온 이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라.”

내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녀석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정도만 지키면 너희들 가문은 보전시켜 주는 것으로 하지. 어떠한가?”

“이… 미친 놈이…!”

축기기 초기 수준의 둘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내게 손을 뻗쳤다.

“죽어라! 이 미치광이 놈!”

촤아아악!

시체 냄새가 풍기며, 강한 척력이 나를 밀어냈다.

하지만, 나는 콧방귀를 뀌며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부웅, 콰아앙!

내 손길에, 녀석의 손에서 나오는 척력과 함께 놈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죽었고, 그놈의 너머에 있는 궁전의 문 역시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어….”

내 무위를 본 나머지 한 명의 축기 초기 수도자가, 입을 쩍 벌리고 내게서 뒷걸음질을 쳤다.

“으, 으아아! 겨, 결단기 수도자…!”

녀석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도망쳤다.

하지만, 녀석이 다섯 걸음을 내디뎠을 때.

놈은 그대로 세 조각으로 나뉘어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나는 놈들을 무시하고 갈라진 문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시커먼 궁전 안쪽.

한때 마도선파 연맹이 썼다는, 마도의 총본산.

그 안쪽에서, 수백 명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여덟 개의 강력한 기운이 나를 압박해 들어왔다.

쿠구구구구!

가주인 막리황천.

그리고 7인의 결단기 원로원.

“웬 미치광이 놈이 감히… 막리세가를 습격해? 천인기 선배분들이 비승하자마자 날뛰다니, 예의도 모르는 놈이로구나.”

원로 중 한 명이 나를 보며 으르렁거린다.

“경맥에 흐르는 힘을 보면 기껏해야 결단기… 아니, 단(丹)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축기기? 이놈이 지금 정신이 나가서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야?”

“너는 감히 멀쩡히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네 몸을 푹 고아 만든 단은 어떨지 한번 실험해 달라는 거로구나.”

개떼들이, 시끄럽게 짖는다.

그리고 들개 떼의 우두머리인 막리황천은, 가좌에 앉아 나를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시끄럽게 개처럼 짖어 대고 있지만, 다들 긴장하고 있군. 그렇지? 정말로 미친놈이 아니라면, 믿고 있는 구석이 있으니 쳐들어온 것일 테니 말이야….”

금단의 힘을 느끼지 못했고, 축기기들처럼 경맥에 강력한 힘만이 흐르고 있으니.

나를 축기기로 착각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이룬 힘은 수도공법과는 완전히 다른 힘.

“모두 시끄러우니, 한꺼번에 덤벼라.”

보여 주마.

답천(踏天)에 도달한 힘을.

쿠구구구구!

내가, 나 자신과 완전히 하나 된 무형검의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

막리세가 가주, 막리황천이 가좌에서 일어섰다.

동시에 막리세가 원로원 7인 역시 원로석에서 일어섰다.

막리세가의 축기기 장로들 삼백오십여 명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쿠구구구!

막리황천의 주변으로, 용오름이 치솟아 오른다.

“감히, 막리세가에 도전한 미치광이에게, 막리세가의 힘을 보여 주마.”

그리고, 서은현과 막리세가가 부딪혔다.

쿠과과광!

수백 명의 막리세가 인원들과, 서은현의 일 수가 부딪혔다.

그리고.

“…!?”

“…?”

“???”

막리황천을 비롯한 원로원.

그리고 장로회 전원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정체불명의 침입자에게 합격을 퍼부은 것은 그들이었는데.

도리어 궁전 바깥으로 튕겨 나온 것이 그들이었다.

“뭐지? 이 무슨….”

그리고.

저벅, 저벅….

궁전 바깥으로, 서은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내 요구는 다시 말하지만, 간단하다. 하나, 인간 단약을 그만 만들 것. 둘, 연국을 떠날 것. 셋, 인간 단약을 만드는 데에 쓴 인간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 줄 것.”

그가 서슬 퍼런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본다.

“마지막 자비이자, 요구다.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

막리황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괴이한 공법을 익힌 수도자다! 모두 태세를 단단히 방비해라!”

“…후우.”

서은현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분명, 너희에게마저도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나를 원망치 말거라.”

그리고, 그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무형검은 강환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강환과 내단은 생명력이 연결된 것을 제하면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그런 발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김영훈의 체외 내단.

체외의 월도입천에 자신의 생명력을 연결해서, 월도입천을 강화시키는 방식.

그리고, 월도답천에 오르며 체내의 내단뿐이 아닌, 신체 자체와 완전히 합일한 월도입천은, 그 자체로 실시간으로 체외 내단을 유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사실상 체외 내단보다도 압도적으로 좋은 효율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강기의 경맥이 아닌, 진정으로 생명과 연결된 셈이니까.

그렇기에, 답천에 이른 존재의 무형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월도입천 때와 강화 폭 자체가 달랐다.

서은현이,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과 연결된 무언가가 휘둘러진다.

부앙!

막리황천은 섬찟한 예감에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그가 있던 자리의 천지영기들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오싹!

‘위험하다.’

막리황천은 이를 악물며, 결인을 맺었다.

“시천하(屍川河)!”

쿠구구구!

시체 썩은 냄새가 나는 녹빛의 강물이, 궁전에서부터 쏟아지며 서은현을 덮친다.

그와 함께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도 각각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운룡요귀결!”

“호풍마룡변!”

“음수취화!”

속성의 차이는 조금씩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음(陰)한 속성의 법술들이 서은현을 향해 내리꽂힌다.

그리고, 서은현이 손을 휘둘렀다.

월악!

퍼엉, 퍼벙, 퍼버버벙!

반월형으로 휘둘러진 투명한 무언가에 그들의 법술들이 일거에 터져 나간다.

그리고, 서은현이 다시 손을 휘둘렀다.

괴암.

그를 주변으로, 무형의 폭풍이 일기 시작한다.

무색의 궤적들이 회오리치며, 점차 커진다.

콰가가가가!

궤적의 힘에,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막리세가의 궁전이 가장 먼저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궤적의 회오리는 점차 커지며 막리세가 전체를 덮쳐 갔다.

“막아!”

“제길!”

몇몇 결단기 원로들이 무색의 궤적을 막으려 법보를 꺼내 후려쳤지만, 법보들은 궤적의 폭풍을 뚫지 못하고 스러질 뿐이었다.

산수화.

쿠구구구구!

몰아치던 폭풍이 일변하며, 궤적이 변화한다.

파아아앗!

다음 순간.

사방팔방으로 무색의 궤적이 휘몰아치며 공동 전체를 난도질했다.

산맥이 갈려 나가고, 공동의 곳곳이 쩍쩍 갈라진다.

그리고 그제야, 막리황천은 안색을 딱딱히 굳혔다.

“워, 원영기 수도자…?”

최소한, 저건 분명 결단기 수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막리황천은 마지막까지도 서은현의 궤적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결단기는 분명 넘어섰지만, 원영기라 보기에는… 약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판단은 빨랐다.

‘원영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의 준하는 전력이다. 잘못 판단했어.’

“모두 들으라! 저자는 원영기 노괴다! 천인기 선배분들의 손을 피해 숨어 있던 원영기 노괴가, 막리세가를 치려 하고 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막리세가의 본거지이자, 마도선파연맹의 본성이 있던 곳! 우리는 마도선파연맹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들로서, 결코 원영기 노괴에게 물러나지 않는다!”

막리황천은 생각했다.

‘위력이 분명히 결단기는 넘어섰지만, 원영기라 하기에는 분명히 약하다. 천인기 선배분들이 비승하자마자, 빠르게 원영기에 오른 놈이겠지. 사막의 그자처럼…. 하지만 사막의 그자가 숨겨 둔 힘에 비해, 놈의 공격은 단순하고 약하다. 이놈 정도라면….’

막리황천의 눈가에, 탐욕이 스쳐 지나갔다.

‘막리세가의 힘을 총동원하면, 잡을 수 있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원영기 수도자의 시체로 만든 강시는, 어떤 위력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구나! 원영기 노괴를 잡고, 막리세가는 다시 한번 위대한 도약을 할 것이다!”

그의 선언에, 원로원들이 진중한 표정으로 법보를 전부 꺼내 들었다.

축기기 장로들도 역시 동시에 같은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총공격을 퍼부어라! 원영기 노괴를 막아!”

쿠구구구구!

그리고, 수많은 법술들과 법보들, 법기들이 서은현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광!

음기가 폭발하며, 마기로 이뤄진 법술들이 서은현을 몰아친다.

축기기 장로들이 가문의 창고에서 전쟁용 병기를 꺼내와 발동시켜 서은현에게 날렸다.

공성용 병기가 서은현에게 날아갔고, 수많은 귀화와 강시 군단이 그를 파도처럼 덮쳐 갔다.

막리세가의 궁전에 설치된 수많은 진법 결계가 작동하며 서은현의 힘을 제약했다.

그리고.

서은현이, 검(劍)을 휘둘렀다.

“흐아아아악!”

“빨려 들어간다!”

“막아! 막아!”

단악검법, 첩첩산중!

쿠과과과과!

무색의 궤적이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가며 동공 전체를 메운다.

수십의 축기기 수도자들의 몸이 갈라졌고, 결단기 원로들의 신체 몇몇 군데가 뜯겨 나갔다.

그리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무색의 궤적이, 마치 촉수처럼 마구 꿈틀거린다.

단악검법, 산명곡응.

티이잉!

꿈틀거리던 궤적은, 파장의 형태가 되어 공동 전체를 울렸고, 공동 안에 있던, 서은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일시에 피를 토했다.

단악검법, 유릉!

쿠르르릉!

무색의 궤적이 굽이치며 한 곳에 몰린 축기기 수도자들과, 그들을 이끌던 결단기 원로 셋을 그대로 쓸어버린다.

쿠구구구!

그리고.

무형검과 일체화된 서은현의 기세가 더더욱 강건해지기 시작했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진법을 짜라!”

“원영기 노괴가, 힘을 쓴다!”

“노괴를 막아!!!”

“흐아아아아아!”

단악검법, 기산심천!

무색의 궤적을 몸에 입은 그가, 보보(步步)를 디딘다.

마치, 산군이 산을 넘어 날듯이.

산군월악비(山君越岳飛)의 보법은, 무형검과 하나 된 서은현에 맞춰져, 그 자체로 흉악한 무기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무색의 범이 날뛴다.

8인의 결단기 수도자들을 필두로, 수백 명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범의 움직임에 마구 쓸려 나갔다.

“시간을 벌어라! 진이 거의 완성되었다!”

막리황천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이곳은 막리세가의 본거지이자, 마도선파연맹이 그들에게 줘 버린, 마도의 총본산.

그곳에 펼쳐진 진법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을 맺어라!”

“음신!”

“마화!”

세 명의 결단기 수도자, 백오십 명의 축기기 수도자.

각각 그렇게 구성된 두 무리가, 각기 다른 결인을 맺는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막리황천과 원로원주가 동시에 결인을 맺으며, 진법을 완성시킨다.

“음신마화시귀진! 발동!”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구!

막리세가의 궁전에서 시커먼 마화(魔火)가 솟구치며 서은현을 집어삼켰다.

마화에서 뿜어진 음기가 결계를 이뤘고, 결계에서는 수많은 귀곡성이 뿜어지며 주술문이 나타나 결계를 완성했다.

여덟 명의 결단기 수도자가, 팔 방위에서 일제히 결인을 맺는다.

“봉(封)!”

쿠구구구구!

얼마 후.

검녹빛의 결계가, 날뛰던 서은현을 봉인해 버렸다.

“마화 속에서 날뛰다가, 점차 의식이 제압당하고, 강시로 제련될 거다. 흐흐… 흐하하하하!”

막리황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보아라! 막리세가가, 원영기 노괴를 잡아 제련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가 주먹을 쥐며 원로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막리세가의 영지에 전음부로 연락하라! 정혈이 더더욱 필요하다! 수많은 정혈을 더 사용해서 강시를 제련하면, 정말로….”

그리고.

쩌어어엉!

막리황천은, 그의 뒤쪽에서 난 거대한 소리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금이 잔뜩 간 결계가 보였다.

“…뭐?”

쩌어어엉!

그리고, 다시 한번.

거대한 소리가 울린다.

파캉!

동시에.

푸확!

마화가 이글거리는 결계 안쪽에서, 서은현의 손이 튀어나왔다.

콰드득, 콰득….

서은현의 한쪽 손은, 그대로 결계를 천천히 잡아 뜯었다.

그의 손에 서린 무색의 궤적에, 결계가 으스러지며 점차 균열이 넓어진다.

그리고.

푸확!

그의 다른 쪽 손 역시 결계 바깥으로 튀어나와, 그가 양손으로 균열을 넓히기 시작하였다.

마화(魔火) 속에서, 서은현의 안광이 마치 귀화처럼 번뜩였다.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만… 한 가지가 틀렸다.”

푸확!

서은현은 마화 속에서 튀어나오며, 새하얀 미소를 지었다.

“나를 봉인해 놓고, 떠들고 있을 게 아니라… 도망쳤어야지….”

“어, 어찌… 원영기 중기는 되어야 깰 수 있는 결계거늘!”

막리황천이 완전히 평정을 잃고 소리쳤다.

그리고, 서은현의 안광이 폭사되었다.

“내가 일반적인 원영기보다 체급은 약해도, 특화된 분야가 조금 강점이라서 말이다. 초기니 중기니 후기니 하는 건, 내 앞에서 별 의미가 없거든….”

싸아아아아!

마침내, 마화 속에서 완전히 튀어나온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자비를 베풀었을 때 알아서 받아들였어야지. 자, 아직도 안 도망친 건 용기 있게 망문(亡門)을 받아들이겠다는 거지?”

쿠구구구구!

그의 전신에서 무색의 궤적이 끓어오른다.

“지금부터, 막리세가를 끝내겠다.”

다음 순간.

동공이 새하얗게 끓어오른다.

단악검법.

오의.

단악!

쿠구구구구구!

무색의 폭풍이, 그 누구도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공동을 메웠다.

궁전이 서 있던 산맥이 그대로 수천 갈래로 쪼개졌다.

막리세가의 궁전은 그대로 갈려 나가 모래 먼지가 되어 버렸다.

“후우….”

그렇게.

연국의 쌍가로 불리며, 수백 년간 연국의 황조를 지배해 왔던 막리세가는, 그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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