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24화 (124/185)

네가 밟아온 것 (12)

선염옥의 선주로 인해, 처음 다루는 법보일지언정 어떻게 다루는지가 한 손에 잡혔다.

우우웅!

공방이 시작되었다.

무색유리검들이 움직인다.

콰앙, 콰앙, 콰앙!

무색유리검이 바닥으로 직격하며 주변의 땅을 마구 파헤쳐 놓는다.

비록 유리로 된 연약한 법보인지라, 그 강도는 형편없었으나.

무형검을 덧씌우자, 무형검과 똑같은 강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크윽…!]

원립은 무색유리검들을 피하며 나를 노려보고, 또다시 저 멀리서 섭명함의 주포에 기운을 모으는 중인 만리민랍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부적에 기운을 모으며 일격을 준비중인 벽천기 역시 쳐다보았다.

“…?”

나는 순간 의아해했으나, 정신을 집중해서 무색유리검들을 움직였다.

촤라라라락!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내 의지에 의해 움직였다.

유리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원립은 열일곱 자루의 단검 법보, 수정 해골 지팡이, 핏빛 파초선, 핏빛의 창 법보를 체내에서 꺼내 내게 대적하였다.

핏빛의 창에서 귀왕이 한 마리 튀어나와 창을 잡고 휘둘렀으며.

열일곱 자루의 단검 법보는 마치 의지가 있는 듯 그의 주변에서 참격을 흩뿌렸고, 그가 파초선으로 혈풍을 흩뿌릴 때마다 사방이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콰과과과과!

삼천여 자루에 달하는 유리의 폭풍은, 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원립에게 다가갔다.

쉴 새 없이 무작위로 몰아치고 있는 듯했으나, 단 한 자루의 유리검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질서 있게 움직였다.

법보 무색유리검은 삼천 자루가 곧 한 벌인 법보였다.

삼천여 개가 곧 하나였기에, 삼천 자루를 무형검에 덧씌워서 조종하면 수많은 궤적과 궤도를 조작하는 무형검의 자유를 10할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색유리검, 제일형(形).”

무색유리검에는 총 세 개의 형(形)이 있었으며, 그 형태에 따라 능력이 달라졌다.

“색(色).”

무색유리검, 제일형, 색(色)은 삼천 개의 유리검에 새겨진 각각의 영력 회로를 연동(聯動)시키는 것이었다.

촤라라락!

삼천 개의 유리검이 산개한다.

그리고, 유리검들에 새겨진 영력 회로들이 각각 연동되기 시작했다.

재밌게도, 무색유리검의 영력 회로들은 각각 한 개씩이었지만, 북향화가 정한 규칙에 따라 영력 회로들의 위치는 각각이 미묘하게 달랐다.

때문에, 그 미묘한 차이로 각각의 유리검은 연동될 때 각기 다른 색채(色彩)를 내뿜는다.

파아아앗!

사방에 떠오른 무색유리검들이, 각각 저마다 다른 색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온 누리가 저마다 다른 색으로 덮인 듯했다.

단순히 색이 변한 것뿐이 아닌, 각각의 유리검들이 내뿜는 기질(氣質) 그 자체가 달라졌다.

삼천 자루가 각각이 다른 기질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 기질들이 삼천 개의 유리 폭풍 속에서 변해 가는 변화 폭은.

무형검의 자유에 맞먹는, 무한(無恨)이었다.

한 기질도 다른 위치에 있으면 완전히 다른 용도가 된다.

한 자루의 유리검은 내 조작에 따라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며 몰아친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하는 유리검은, 삼천 자루였다.

[크윽, 이놈…!]

원립이 핏빛 파초선을 부치자 혈풍이 몰아닥치며 유리검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나는 더욱더 정밀하게 유리검들을 조작하였다.

무한의 변화가 내 손 안에 있다.

무형검은 궤적의 자유만을 얻었을 뿐, 기질의 자유까지는 얻지 못했었다.

하지만, 무색유리검을 얻음으로써, 무형검은 더욱 더 완전한 자유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촤라라라락!

날카로운 기질, 부드러운 기질, 그 중간의 기질, 딱딱한 기질, 흘러내리는 기질….

그 셀 수 없이 많은 기운의 속성들이 전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다채로운 색으로 사방을 물들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원립의 혈풍을 잡아먹으며 놈을 집어삼켜 갔다.

[흥, 웃기지 마라!]

원립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단검 법보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열일곱 개의 단검 법보는 미친 듯이 그의 주변을 회전하며, 시뻘건 참격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시뻘건 참격이 마치 그를 전부 뒤덮은 듯한 모양새.

하지만 나는 오히려 씨익 웃었다.

우습다.

슈릉!

수많은 변화들 사이에서, 내 시야가 정확한 틈새를 찾아낸다.

제아무리 참격들이 빈틈없이 놈을 둘러싼다고 할지라도, 파고들어 갈 틈은 충분하다.

다채로운 색의 유리검들이 놈을 향해 쇄도해 갔다.

쿠과과과광!

참격은 유리검들을 튕겨 내었다.

하지만.

[크으윽…!]

파앙!

어느새 참격이 풀리고, 안쪽의 원립이 드러났다.

놈의 몸에는 벌써 열댓 개에 달하는 유리검이 꽂혀 있었다.

유리검의 색(色)은 처음 발동할 때는 다채로운 색이 켜지지만, 그 이후에는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그냥 무색(無色)으로 되돌려도 유리검의 색을 띄웠을 때 만들어 낸 기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즉, 투명한 유리검을 날려 상대의 시야를 교란하고 검을 꽂아넣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나는 유리검에 깃든 무형검을 원립의 체내에 흘려 넣었다.

단악검법, 첩첩산중, 기산심천!

촤좌좌좍!

놈의 체내에 흘러들어간 무형검이, 가시처럼 뻗어나오며 거대하게 증폭되었다.

[크윽…!]

원립이 일순간 비명을 지르며, 다시 몸을 재생하려 했다.

하지만 놈의 체내에는 내가 유리검에 실어 보낸 저주문들이 잔뜩 섞여 들어갔고, 놈의 몸은 제대로 재생이 안 되며 썩어 들어갔다.

“죽어라.”

촤르르륵!

삼천 개의 유리검이, 무방비 상태가 된 놈을 향해 다시금 몰아친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쿠구구구!

아까 천뢰 앞에서 도망쳤던 혈운의 귀왕 둘, 그리고 일곱 요혼이 합쳐진 괴이의 요혼.

세 명의 전력이, 원립의 주변으로 다시 날아와 그를 엄호하였다.

비록 봉명성의 진법 때문에 수행이 한 단계 낮아졌지만, 그들 역시 결단기 수준이었고, 놈들은 각각 전력을 다하며 유리의 폭풍을 막아섰다.

촤르르륵!

원립이 다시 그 순간에 몸을 재생하였다.

[그래, 꽤 훌륭하군.]

놈이 비릿하게 웃는다.

[이 정도로 나를 몰아붙인 네놈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 역시 조금 제대로 싸워 주마.]

그리고, 녀석이 저물대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꿈틀.

나는, 그것을 보자 절로 미간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뿌드득….

이마에서 혈관이 도드라지고, 이가 갈린다.

나는, 저 익숙한 기운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김영훈의 내단(內丹)이었다.

김영훈의 유해에서 찾지 못한 그의 내단은, 아니나 다를까.

놈이 가져간 것이었다.

[이 요단의 주인은 정말, 인상 깊던 녀석이었지. 왜 천인기 선배분들이 이 정도 성장 폭을 지닌 괴물을 안 데려갔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싸우는 도중에 실시간으로 성장하며, 죽기 직전에는… 나도 순간 심장이 철렁할 정도였다.]

기이이잉!

김영훈의 내단에는, 원립이 새겨 놓은 것인지 기이한 주술문이 새겨져 있었다.

주술문이 새빨간 빛을 내며, 기이한 인력을 뿜기 시작했다.

[그 재능의 원천을 알아보고자, 몸 곳곳을 잘라서 확인해 보았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더군. 특이한 영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결국 인격의 문제인가 하고 혼백을 뽑아 제련해 보려 했지만, 결국 영혼은 찾을 수가 없어서 제련치 못했고.

아쉬운 마음에 놈의 요단을 뽑아 와 제련했다만… 썩 재밌는 걸 발견했다.]

꿈틀, 꿈틀….

괴이의 요혼.

혈운의 귀왕들.

세 마리의 요귀들이, 김영훈의 내단의 인력에 이끌리며, 내단을 중심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조화력(調和力)! 이 요단은 완전히 다른 힘 역시 그 주변에서 섞이며 순환하게 할 수 있다. 압도적인 조화의 힘을 가지고 있어, 무슨 기운을 집어넣어도 조화가 되더군. 그래서….]

김영훈의 내단을 중심으로, 괴이와 귀왕이 합쳐져,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수라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원립이 결인을 맺자, 그의 창, 파초선, 수정 지팡이가 수라의 여섯 팔로 날아가 쥐어졌다.

쿠구구구구!

각각 원영 초기에서 결단 초기로 내려간 수행을 보이던 귀왕과 괴이의 요혼.

그것들은 서로 겹쳐지자, 힘이 폭증하며 결단 중기, 결단 후기까지 수행이 폭증하였다.

그리고.

푸콱, 푸콱, 푸콱!

열일곱 개의 단검 법보.

원립은 그 법보들 중 열여섯 개의 단검을 수라의 각 부위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단검.

원립은 단검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세 개 잘라, 수라의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원립이 직접 자른 손가락은 재생이 되지 않았고, 수라는 손가락을 먹자 더더욱 수행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결단 대원만!

수라의 힘은, 원영기 직전까지 도달하였다.

[놈의 요단으로, 이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너 역시 놈의 친구에다, 생긴 건 다르지만 비슷한 괴이한 공법을 익혔으니. 너도 비슷한 요단이 있겠지? 그렇지? 네 요단도 뽑아 잘 써 주도록 하마…!]

원립은 수라의 뒤쪽에서 수라를 조작하며 외쳤다.

[덤벼라!]

“무색유리검, 제이형. 연(然).”

나는 놈을 보며 무색유리검, 두 번째 형태를 개방하였다.

무색유리검, 제이형, 연(然)은 아주 간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무색유리검들이 서로 더더욱 강하게 연동되며, 서로의 기운이 완벽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삼천 자루의 유리검들은 연결된 상태에서 서로 기운이 순환하기 시작했다.

유리검들은 서로 기운을 순환하며, 내 무형검 역시 자연스레 순환하는 기운에 녹여 내어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서로 조금 더 잘 연동되고, 서로 연결되어 기운을 순환시키는 것.

그것이 무색유리검 두 번째 형태, 연이었다.

그리고, 연의 최대 장점은 역시 무형검 역시 순환하는 기운에 맞춰, 원하는 곳으로 순식간에 무형검을 순환시켜, 무형검의 힘을 집중시키거나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무색유리검이 일렬로 늘어선다.

그리고, 유리검들에 깃든 무형검은 연의 순환에 의해 일렬로 늘어선 검의 끝에 기운을 집중하였다.

쩌어엉!

어검술에 의해 유리검은 그대로 수라에게 가서 박혔다.

수라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별 표정을 짓지 않고서 그대로 창을 잡고 휘두른다.

하지만 유리검들은 다시 바로 산개하며 자리를 잡았고, 다시금 내 조종에 의해 수라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놈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수라는 한쪽에서는 핏빛 파초선을, 한쪽에서는 핏빛 창을, 한쪽에서는 수정 해골 지팡이를 휘두르며 갖은 법술들을 흩뿌려 댔다.

폭광이 울리며 사방팔방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나는 유리의 폭풍을 조종하며 수라를 압박해 갔다.

“무색유리검, 일, 이형. 합식(合式).”

그리고, 무색유리검의 진가(眞價)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일형, 색(色).

제이형, 연(然).

두 개의 형이 동시에 발동될 때.

무색유리검은 비로소 그 무시무시함이 드러났다.

무색유리검이 서로 연동되며, 영력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무색유리검의 기운이 순환하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무색유리검 각각에 깃든 서로 다른 기질들이, 순환하며 다른 유리검과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검은빛이었던 유리검의 빛이 백색으로 변한다.

각자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던 무색유리검들은, 서로의 색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만색(萬色)이 춤추며 빛의 폭풍이 되어 수라를 휘감는다.

무형검의 무한한 궤적과, 무색유리검의 무한한 기질의 변화가 합쳐지며.

말 그대로 형언할 수 없는 변화의 폭을 선보였다.

핏빛의 수라는 폭풍 속에 갇힌 작은 부나방 같을 뿐이었다.

스팟, 스팟!

점차, 수라의 표면에 상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유리의 폭풍은 마구 몰아치는 것 같았으나, 하나하나가 검의 무리를 따르고 있었다.

피시시식!

수라의 몸에 생기는 상처는 점차 많아지며, 수라의 전신이 상처로 뒤덮인다.

단악검법.

이십이초.

오의.

삼천 개의 무색유리검이, 수라를 회전하며 하나의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단악(斷岳)!”

단악검법의 모든 초식을 쏟아붓는 오의가, 삼천 개의 무색유리검을 통해 한 존재에게 쏟아진다.

무색유리검이 단악을 쏟아붓고, 거기에 깃든 무형검이 단악에 깃든 변화의 폭을 다시 넓히며 놈을 사방에서 갈아 버리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앗!

빛이 터져 나가며 수라가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

나는 달려가, 수라의 중심에 있던 김영훈의 내단을 낚아챈 다음, 무색유리검들을 조정했다.

“산개!”

촤르르륵!

유리검들이 사방으로 산개하며 길을 텄고, 길의 끝에 원립이 서 있었다.

“쏘시오!”

그리고, 지금까지 기운을 모으고 있던 만리민랍이 섭명함의 주포를 발사했다.

원립은 피하려 하는 듯했으나, 내가 결인을 맺었다.

촤라라락!

다른 이들의 정신이 팔린 사이, 내가 놈의 뒤쪽에 은근슬쩍 가져다 놓은 저주문 덩어리들.

저주문들은 마치 촉수처럼 놈의 몸을 뒤덮으며,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게 묶었다.

나뿐이 아니었다.

축기기 수준으로 떨어진 무수한 결단기 수도자들.

그들이, 청문중진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각기 법술을 사용해 원립을 얽어매었다.

저주문뿐이 아닌 수십, 수백의 법술들이, 녀석의 몸을 꽁꽁 묶는다.

청문중진이 외쳤다.

“벽 가주, 지금이오! 당신도 쓰시오!”

벽천기 역시 법력을 불어넣던 부적을 원립을 향해 던졌다.

부적이 빛을 뿜으며 원립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원립은 결단 초기 수준의 몸 상태로, 섭명함의 주포를 그대로 얻어맞았다.

번쩍!!!

섬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우리는 모두 섬광의 중심을 쳐다보았다.

만리민랍 역시 이번에는 해치웠네 뭐네 같은 소리도 하지 않고, 중심을 향해 집중하였다.

그리고.

쉬이이이이….

섬광이 잦아들었다.

우리는 말 없이 원립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먼지가 잦아든다.

빛과 먼지가 잦아든 자리에 있는 것은, 아직도 서 있는 원립이었다.

하지만 장내에 있던 모든 수도자들의 얼굴에, 희색이 맴돌았다.

원립에게서, 더 이상 영기의 압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단 한 점의 영기도.

“드디어….”

청문중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끼이이이이익.

봉명성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음? 누구요? 작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봉명성의 문을 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청문중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봉명성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봉명성의 입구를 열고 있는 자는, 동방의 군주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의념의 색이, 이상하다.

그리고.

[훌륭하다.]

원립이, 양 팔을 들어올렸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너무나도 훌륭하다. 너희는 정말, 너무나도 훌륭하게 싸웠다. 너희의 결의에, 감동이 들 정도였으니. 이 일전(一戰)에 경의를 표하노라. 이 원립이, 혈목자 원립이 너희를 인정해 주마.]

봉명성의 문이 열리자, 결단기 수도자들은 무심코 성문 바깥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먹장구름은 사라져 있었고, 천기는 대흉(大凶)이었다.

“닫으시오! 봉명성의 문을 닫아!”

청문중진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문을 연 다섯 명의 군주들은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쿠르르릉!

북방 대초원의 부족장들이 모여 짠, 창경천라의 진이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의 주축을 맡았던, 네 명의 부족장이 갑자기 영력의 연결을 끊고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그들의 의념을 읽어 냈다.

지금까지는 원립과의 전투를 하느라 자세한 의념을 읽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저 치들의 의념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황금빛의, 기쁨의 의념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배신을 하는 건가!?”

청문중진이 대노한 표정으로 전신에서 푸른 빛을 끌어올렸다.

“대초원과 동방의 분들께서는 배신자들을 제압해 주시오! 서방 삼국은 서 수사와 함께 노괴를….”

그리고.

촤르르르륵!

검록빛의 강시들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검은 빛의 쇠사슬이 나와 청문중진을 비롯해, 성제, 연, 벽라국의 수도자들을 휘감았다.

진루연천이 쇠사슬에 묶인 청문중진에게 다가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아아, 오라버니. 결국 계획대로 되었어요. 혈목자께서 승리하셨네요.”

막리황천은 강시들을 조종하며, 쇠사슬에 묶인 진씨세가 가주에게 다가가, 그를 걷어차 넘어뜨리고 짓밟았다.

그리고, 벽천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원립의 옆으로 가서 섰다.

“벼, 벼, 벽 가주…!!!?”

청문중진은, 원립 사냥의 최중요 삼인 중 하나인 벽천기가 원립의 옆에 서는 것을 보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벽천기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떠십니까, 혈목자시여. 봉천부(封天附)의 효과가, 썩 쓸모가 있지 않으십니까?”

[좋군. 이게 천인기급의 방어력인가. 전신의 영기가 한 올도 새어 나가지 않는 것이, 썩 재밌는 기분이군.]

그랬다.

벽천기가 혈목자에게 마지막 순간 던진 것은, 천인기급의 일격을 내는 격천부가 아닌, 천인기급의 방어력을 가지게 해 주는 봉천부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촤르르르르!

봉명성 바깥.

원립의 흑색의 성에서, 아까와 같은 진홍빛의 강이 봉명성의 문으로 들어왔다.

촤르르르륵!

원립이 진홍빛의 강을 빨아먹자, 녀석의 법력이 다시 차오른다.

원립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손을 움직였다.

[내 아까운 장원지력을 이만큼이나 쓰게 하다니…. 수백 년간 모아온 정순한 생명의 힘이…. 뭐, 상관은 없겠지. 오늘만큼 결단기 수도자들의 생명력을 잔뜩 뽑을 기회도 많지 않을 터이니.]

“하하, 혈목자시여. 이제 봉명성의 진법이 풀리기까지 일각 정도 남았습니다.”

벽천기는 아첨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천인기급의 방어력과, 공격력을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도록 하마.]

우득, 우드드득!

나는 무형검으로 검은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놈에게 무형검과 무색유리검을 쏟아 내었다.

콰과과과광!

하지만.

티잉, 티잉!

유리검들과 무형검은, 원립을 뒤덮은, 영기가 한 올도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는 기이한 기운에 막혀 전부 튕겨 나가 버렸다.

원립은 클클 웃으며 말했다.

[네놈 역시, 잊지 않고 기억해 주마. 정말 전의가 끊이지 않는 녀석이군. 하지만 소용없다. 봉천부를 발동한 이상, 원영기의 실력이 돌아오기까지 충분히 천인기의 방어력을 사용이 가능하지. 그리고….]

그가 벽천기에게 말했다.

[격천부(擊天附)를 내놓아라. 오늘 이곳에서, 천인기의 힘을 재현해 보이마.]

“예, 혈목자시여.”

나는 이를 악물었다.

뿌드드득!

너무 세게 악물어서, 잇몸에서 피가 날 것 같다.

―답천사막 서쪽의 세 수도가문이 내게 충성을 맹세했고, 북쪽 초원의 네 부족이 내 앞에 조아렸으며, 동쪽 국가의 다섯 군주들이 나를 따르겠노라 천명하였다.

지난 생의 원립이 말했던 것.

전쟁 이후, 원립이 녀석들에게 오행혈주번을 박아 넣어 복종시킨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원립은, 전쟁 이전에.

200년보다도 전에, 답천사막 서쪽의 세 수도가문.

북쪽의 네 부족.

동쪽의 다섯 군주.

이들을, 진즉에 수하로 두고 있던 것이었다.

진루연천은,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인해, 진루세가의 비전법기에 꽁꽁 묶인 청문중진의 몸을 쓰다듬었다.

“아아, 오라버니. 드디어 이날이 왔어요. 제가 오라버니를 차지할 날이 왔어요. 너무나도 기다려 왔답니다. 대청문세가, 창호자의 혈통을 손에 넣을 수 있어. 드디어, 두 가문이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벽라국은 벽씨세가에게 넘겨주고, 성제국으로 가문을 옮겨요. 나머지 육가의 떨거지들은 혈목자께서 잡수실 것이니, 육가의 땅을 전부 오라버니에게 드릴게요.

지금껏 진루세가가 저 떨거지들 연합과 경쟁을 하며,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 아시지요? 오라버니. 이제 성제국은 우리 것이에요. 함께 성제국의 자원을 독식하고, 함께 쌍수하여 원영기에 이르러요.”

청문중진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진루연천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내 가족을 죽인 원수의 밑에 기어들어 갔구나. 진루연천!”

“음, 음….”

진루연첨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 빨고는 청문중진을 껴안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해 드릴게요. 몇 달 정도만 저희 가문 지하에서 생활하시면, 저밖에 생각이 나지 않으실 거랍니다.”

“이….”

진루연천이 청문중진을 껴안았고, 막리황천은 진여운의 머리를 짓밟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진씨세가와의 기나긴 경쟁에서, 드디어 내 대에 승리하였다.”

막리황천은 진여운의 머리를 잘근잘근 짓밟으며 기쁨에 찬 표정을 지었다.

“선조들이시여, 이 막리황천이, 제 대에 진씨세가를 고꾸라뜨렸습니다. 연국을 다시 찬탈하고, 막리세가의 최전성기를 이 막리황천이 이끌겠습니다…!”

“이, 놈…! 커, 커억…!”

진여운은 이를 갈며 막리황천을 올려다보았으나, 막리황천은 오히려 진여운의 입에 신발을 집어넣으며 조롱했다.

“이제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데에 익숙해져야 할 거다.”

“으, 으읍…!”

그 밖에도 벽천기는 혈목자에게 붙어, 벽라국의 통치를 맡아 그에게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둥 아첨을 떨고 있었고.

동방의 배신자들.

북방의 배신자들 역시, 진루세가의 쇠사슬에 제압된 다른 자신의 경쟁자들을 마구 짓밟는 것이 보였다.

“이, 놈…!”

함께 싸웠던 만리민랍은, 다른 동방의 군주 중 한 명에게 섭명함의 주포를 빼앗겼다.

만리민랍과 정반대로 전신을 흑색의 붕대로 가린 군주는 섭명함의 주포를 가져다 원립에게 들어 바쳤다.

[논공행상은 추후에 하고, 빨리 격천부를 가져오지. 이 녀석들을 쓸어버리고, 봉명성의 전층을 붕괴시켜 봉명인을 얻어야 하니….]

원립이 벽천기를 재촉하자, 벽천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벽씨세가의 결단기 수도자들을 향해 외쳤다.

“격천부를 가져오너라!”

격천부는, 벽씨세가의 결단기 수도자들 중.

이번에 결단기에 오른 수도자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벽문성 역시 있었다.

나는 그들이 격천부를 전달하지 못하게 무형검을 날리려 했으나,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격천부가 봉해져 있던 함을 열어젖힌 벽문성이, 그 안에 든 격천부를 꺼내 들었다.

우우웅!

그가, 격천부를 활성화시킨다.

“음?”

[뭘 하는 거냐. 활성화시킬 필요 없다. 축기 급으로 떨어진 너희들이 얼마나….]

그리고.

벽문성이 외쳤다.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가주님!”

그 말과 함께.

벽문성을 중심으로, 벽씨세가의 젊은 결단기 수도자들이 방진을 짰다.

“1000년 전에는 조씨세가의 하위 가문으로, 200년 전에는 정도선파 연합의 하부 세력으로, 지금에 와서는 원영기 노괴의 하부 세력으로 들어가자는 것입니까? 그냥, 청문세가와 공묘세가와 벽라국을 나눠 먹을지언정, 벽씨세가 그 자체로 존립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무, 뭣?”

[흐음….]

그가 외쳤다.

“보십시오, 가주님! 가주님이 배신만 하지 않으셨으면, 방금 그 원영기 노괴는 죽어 나자빠졌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가문으로, 누구의 밑에 들어가지 않고, 한 세력으로 당당하게 명예와 승리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 이놈이 미쳤느냐?”

“아니오, 미치지 않았습니다. 저뿐이 아닌 다른 자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노괴가 사냥이 끝난 후에, 사냥개를 삶아 먹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가주님은 노괴의 승리에 손을 들어 주시는 겁니까!”

벽천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벽문성이 외쳤다.

“우리는, 가문의 미래를 위해,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노괴가 죽기 직전까지 작전이 진행됐습니다. 저 빌어먹을 봉천부의 방어만 없으면 다시 노괴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가주님이야말로 정신 차리십시오!”

“이, 이놈! 안 된다! 정신 차려라! 지금이라면 네 일탈로 넘어갈 수 있어! 혈목자께서 숨기고 있는 힘은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다!”

벽천기가 말했다.

“그, 그래. 최근 진가, 공묘가의 선자들과 친하게 지내며 다니지 않았느냐? 두 가문은 이제 패배자의 가문이니, 네가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진정하고….”

“제가 좋아한 이는.”

벽문성이, 씹어뱉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격천부를 발동시켰다.

“그들이 아닙니다.”

파아아아앗!

격천부.

천인기의 일격을 발한다는 일격이, 봉천부를 두른 원립에게 쏘아졌다.

쿠과과과광!

봉명성의 한쪽 면이 뜯겨 나간다.

광풍이 몰아치며, 원립을 향해 천지간의 빛이 몰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천지간의 빛 속에서, 원립이 두른 봉천부가 벗겨지는 것을 보았다.

타닷!

무색유리검이 한데 모인다.

나는 벽문성을 스쳐 지나가며 그와 시선을 교환하였다.

이번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무색유리검, 최종형(最終形).”

무색유리검의 마지막 형태.

연과 색을 넘어.

마침내 도달하는 마지막.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한 자루로 합쳐졌다.

그리고, 각각 한 자루에 새겨진 영력 회로들이, 한 자루에 겹쳐지며, 무색유리검의 안쪽에는 무수한 영력 회로가 생겨났다.

회로가 많을수록, 질이 나쁜 재료를 사용해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무색유리검.

제삼형.

“총천(總天).”

무색유리검이, 총천연색(總天然色)으로 빛나며 원립의 단전을 찔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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