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밟아온 것 (11)
피이이이잇!
소리가 사라졌다.
오로지 하늘에서 강림한 푸른 기둥만이, 사막을 밝혔다.
거대한 청색의 빛줄기만이 사막의 빛으로 화하였고, 태양빛마저 그 앞에 빛을 잃었다.
만리민랍이 쏘았던 섭명함의 주포도,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이 일시에 퍼부었던 합동 공격도.
그 어떤 것도 저 빛에 비할 수 없었다.
한낱 인간의 조잡한 손으로 만들어 낸 법술과 기관의 빛이, 하늘이 직접 만들어 낸 순수한 빛에 비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연합군 모두가, 침을 삼키며 기둥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벽천기는 입술을 마구 쥐어뜯으며 손을 떨었다.
막리황천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숨을 들이쉬며 푸른 기둥을 노려보았다.
진루연천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막리황천이 청문중진에게 말했다.
“이, 이보시오, 청문 가주. 서 수사의 저주 작전까지는 들었지만… 이런 건 사전에 듣지 못했잖소.”
“아… 이건 서 수사가 본인에게 찾아와 개별적으로 제안한 작전이었소.”
청문중진이 말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본인 또한 믿기지 않았소…. 승급 천겁(天怯)은 고작 결단기 승급에 내리는 게 아니라, 최소 원영기부터 내리치는 천기 현상이니….”
말 그대로였다.
본래 천겁이란, 고작 축기기 대원만 수도자가 결단기가 된다고 내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필멸자가 세계의 근원을 목도하기 시작하는, 원영(元靈)의 경지.
그때부터 하늘이 필멸자를 벌하는 것.
그것이 천겁이었다.
“천거(天拒) 현상이라니, 다들 누가 믿겠소?”
하지만, 꼭 그런 법칙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서를 뒤적여 보면, 고래적의 수도자들 중에는, 결단기 승급이 아닌, 고작해야 연기기에서 축기기로 승급할 때에 천뢰가 내리치는 이들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연기기 7성부터 칠성제의가 막히는, 천거 현상이라는 괴악한 현상을 달고 다닌 이들이라 하였다.
약한 자임에도 하늘의 거절을 받는 이들.
그리고, 서은현은 그런 천거 현상을 지닌 천거자 중 하나였던 것이었다.
“나 역시 반신반의했던 일이었고, 서 수사가 간절하게 부탁하기에 받아 줬던 거요. 개별 작전으로 한 것은, 그런 허황된 전설을 연합군 전체의 작전으로 쓸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막리황천은 굳은 표정으로 청뢰의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벽천기가 다가와 말했다.
“하하, 그래도, 작전의 최중요 요인 셋 중 하나인 제게는 미리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갑작스러워 가슴이 떨리는군요.”
“아, 벽 가주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외다.”
청문중진은 순순히 사과를 했다.
진루연천이 그에게 다가왔다.
“역시나 오라버니세요, 이런 멋진 작전이라니.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내 작전이 아니오, 진루 가주. 서 수사의 작전이지. 그것보다 다들 왜 이쪽에 와서 잡담을 나누고 계시오? 다들 제 자리로 돌아가시오!”
“어머, 너무 그러지 마세요. 천겁이라니. 다들 저런… 무시무시한 천기 현상은 볼 일이 없었던지라, 당황해서 몰린 것일 뿐이에요.”
진루연천은 손 끝으로 청문중진의 가슴을 살짝 쓸며 눈을 찡긋했다.
청문중진은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모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대열을 유지하시오! 노괴의 생명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나, 노괴가 만약 살아 있다면 다시 총공격을 가해서, 원영째로 증발시켜야 하오!”
그 말에, 연합군은 다시 태세를 갖추었다.
* * *
―――――!
소리가 사라진, 푸른빛의 세상.
그곳에는, 오직 두 존재만이 남아있었다.
나, 그리고 원립.
키이이이잉!
나는 원립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 팔에 진득한 저주문을 잔뜩 띄워 올려, 저주문을 띄운 손을 원립의 몸체와 이어 붙였다.
녀석은 이를 갈면서도 내게서 떨어질 수 없었고, 놈은 붉은 방어막을 펼쳐 혼신의 힘을 다해 나와 천뢰를 같이 맞았다.
아니, 같이 맞았다란 말은 적합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원립이 전부 막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던 푸른빛의 세례는, 어느덧 끝나 버렸다.
치이이이―
청뢰가 지나갔고, 원립은 숨을 몰아쉬며 혈광을 뿜어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 쓰레기… 놈이…!]
그리고.
쿠릉, 쿠르릉!
하늘이, 다시금 진노하기 시작했다.
감히 타인(他人)의 도움을 받아 천뢰를 편법으로 넘기려 하느냐는 듯.
하늘은, 나에 대한 분노를 다시 푸른빛을 통하여 떨어뜨렸다.
푸른빛은 아까보다 더더욱 굵고 거대해져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원립과 나는 다시 한번 푸른 기둥 속에 갇혀 버렸다.
원립은 나를 노려볼 틈도 없이, 다시금 이를 악물고 방어막을 펼쳤다.
천뢰(天雷), 혹은 천겁(天劫), 천벌(天罰)이라고 불리는 이 천기 현상은, 전해지는 바로는 본디 원영기에 이를 때부터 내리치는 현상이라 하였다.
그리고 문헌의 기록으로 볼 때, 그러한 천겁은 천겁을 치르는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하늘이 더더욱 진노하여 더더욱 강한 천뢰를 떨어뜨린다고 전해져 왔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든.
나는 원립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모양새였다.
쿠구구구구구!
키이이잉!
원립의 법보인 네 개의 보탑이 우리를 둘러쌌다.
보탑이 적빛을 뿜어내며 우리를 감싼 결계를 이룬다.
하지만.
빠직, 빠지지직….
결계는 천겁 속에서 조금 버티는 듯하더니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원립이 이를 질끈 악무는 것이 보였다.
기이이잉!
적색의 보탑이 더더욱 적광을 뿜었다.
균열이 사라지는 듯했으나, 보탑은 무리하게 가동되는 것인지, 상태가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보탑의 상태가 한계에 달할 때 즈음.
키이잉!
파앗!
다시금 천겁이 그쳤다.
원립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죽…여…버….]
그리고, 하늘은 세 번째 천겁을 준비하였다.
번쩍!
놈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세 번째 일격이 우리에게 내리꽂혔다.
콰장창!
원립의 보탑 법보.
그 결계가 유릿장처럼 조각나 산산이 흩어졌고, 결국 보탑 법보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는지 법보의 중간 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버렸다.
콰과광!
펑, 퍼벙!
결국 원립의 방어를 담당했던 보탑 법보들은, 그렇게 영구히 빛을 잃고 천뢰 속에서 갈려 나가 버렸다.
기이이잉!
원립은 하늘을 향해 혈광을 폭사했다.
그리고 저물대에서 피 구름과 두 명의 귀왕을 꺼냈다.
열일곱 개의 뼈 단검을 금단에서 뽑아, 하늘을 향해 참격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혈광은 청광에 먹히고.
두 명의 귀왕은 천뢰 앞에 서자마자 혼비백산하며 도망쳐 버렸다.
단검 법보로 만든 참격은 얼마간 버티는 듯했으나 그대로 스러져 버렸다.
[그아아아아아아…!!!]
원립은 괴성을 지르며, 온 힘을 끌어모아 방어막을 펼쳤다.
원구형의 방어막이 우리를 둘러싼다.
원영 중기 수도자가 펼치는 핏빛의 방어막이 천뢰를 막아 낸다.
하지만.
피싯, 피시싯!
그의 방어막 역시 실금이 잔뜩 가기 시작하며, 천뢰가 안쪽으로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칭!
원립의 방어막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천뢰가 우리 둘을 향해 직격으로 내리꽂혔다.
원립과 나는 동시에 천겁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우리는 서로 끔찍한 고통에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몇 번 맞아 본 적이 있는 데다, 고통에 익숙한 나는 그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버티며 원립을 잡고 있는 손으로 금나수를 펼쳤다.
촤라락!!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원립의 몸을 제압하여, 그대로 내 위쪽으로 치켜들어 원립을 내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과연 원영기 수도자의 육신은 천뢰 역시 썩 잘 막아 냈다.
녀석의 육신 너머로도 간혹 천겁이 흘러들어 왔으나, 그 정도는 무형검으로 쳐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촤작, 촤자자작!
원립의 몸이, 천겁에 의해 곳곳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구멍이 뚫린 곳으로 천겁이 새어 들어온다.
점차 원립의 몸에 구멍이 많이 뚫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무형검으로 천겁들을 쳐 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파아아아앗!
영원할 것 같았던 우레의 폭풍이,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내가 원립을 들어서 천뢰를 막은 것이나, 무형검으로 천뢰를 튕겨 냈던 것 덕택인지.
하늘은 내가 천겁을 막아 냈다고 판단한 듯, 천뢰를 구름 속에서 흩뿌리며 으르렁거릴 뿐, 다음 천겁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먹장구름이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지…금이오…!]
나는 영언을 터트리며 연합군에게 외쳤다.
피이이잉!
섭명함의 주포를 충전하고 있던 만리민랍이, 함포를 발사한다.
번쩍!
시퍼런 광선이 나와 원립을 향해 날아왔다.
나는 아직도 반쯤 정신을 잃은 원립을 광선에 가져다 대었고, 우리는 광선에 밀려, 그대로 봉명성의 안쪽으로 튕겨져 들어왔다.
‘작전대로다…!’
나는 원립을 걷어차서 봉명성에 내던졌다.
쿠구구구구!
봉명성에 다시 들어오니, 익숙한 기운이 나를 반겼다.
“규토장성.”
쿠구구구구!
봉명성의 영맥들이 내게 이끌려 오며, 자연스레 내 단전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결단기 승급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키이이잉!
천겁을 이겨 내자, 완전히 천기가 깃든 28수의 별자리들이, 그 자리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쩍!
내 단전.
그곳에, 금단(金丹)이 맺혔다.
금단의 크기는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조금 컸고, 금단의 표면에는 28수의 별자리가 새겨져, 천구도(天球圖)를 그리고 있었다.
본래 단전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던,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내단(內丹)은 이젠 주먹 두 개 크기의 금단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지구와 지구 주변을 둘러싼 천구(天球)를 표시한 천구의(天球儀)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금단에서 뿜어진 광령(光靈)이 일순간 봉명성 일대를 물들였고, 나는 광령 속에서 눈을 반개하였다.
쿵, 쿵, 쿵, 쿵!
봉명성 바깥에 머무르던 결단기 수도자들이, 하나둘 봉명성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싹 타서 숯덩이가 된 원립을 향해, 다시금 총공격을 가했다.
나는 그들이 시간을 벌어 주는 틈을 타, 아까 저주인형이 내게 건넸던 저물대를 꺼냈다.
저주인형과 나는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있었다.
지네 굴에서, 나와 북향화가 구해 주었던 마을을 200년 동안 저주인형을 통해 지켜보았다.
다시 굴에서 나와 천색성으로 가, 다른 이들의 부장품으로 바쳤던 유리검들을 뽑아, 영력 회로를 새기고 무색유리검으로 제련한 것 역시 저주인형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주인형의 저물대를 통해, 비로소 전달받았다.
촤르르륵!
저물대를 열어, 어검술을 통해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을 꺼내 허공에 띄웠다.
화르륵!
연기기 14성.
무극영운의 단계에서부터, 축기기 수도자까지는 영운(靈雲)을 체내에서 뱉어 그것으로 법술을 부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금단(金丹)을 맺으며, 수도자들이 그동안 부려 왔던 영기의 구름은 질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화르르르….
영기의 구름이 더더욱 활발해지고, 뜨겁게 달아올라.
불꽃으로 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단기 수도자들은 그것을 금단에서 뿜어지는 불이라 하여, 단화(丹火)라고 불렀다.
나는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영기의 불을, 입을 통해 내뿜었다.
단화는 내 주변으로 뻗쳐 나가며, 그대로 삼천 벌의 무색유리검을 뒤덮었다.
무색유리검들에 각각이 새겨진, 하나하나의 영력 회로에 내 단화가 흐르며, 무색유리검의 주인을 확실히 나로 각인시킨다.
단화로 법기를 제련하는 과정을 통해, 법기는 결단기 수도자의 법보(法寶)로 거듭난다.
이렇게 법보화된 법기는, 결단기 수도자의 의지에 따라 수도자의 금단에 보관하여, 금단에서 타오르는 단화를 통해 세월이 흐를수록, 수도자의 수행이 증가할수록 함께 성장해 갔다.
세월이 흐르며 단전에서 단화로 배양될수록, 점차 단단해지고, 강해지며, 그 위력이 증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수도자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법보를 수도자의 본명법보(本名法寶)라고 불렀다.
‘물론, 고작 방금 제련한 법보를 본명법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위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무색유리검은 특별한 재료를 쓴 게 아닌, 그저 사막의 모래를 퍼서 만든 법보였기에, 단화로 제련하는 데에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슈르륵….
나는 단화로 제련한 무색유리검 삼천 개를, 그대로 빨아들였다.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그대로 내 금단 안쪽에 안착하였다.
나는 눈을 감으며, 북향화가 설계해 준, 그녀의 흔적을 느꼈다.
‘내게 힘을 주십시오.’
북향화뿐이 아닌.
무색유리검을 제련하는 데에 썼던, 천색성의 수많은 이웃들의 부장품.
나는 원립에게 학살당한, 내 인연들에게 작게 기도하였다.
쿠구구구구!
저 멀리서, 결단기 수도자들의 공격을 두들겨 맞으면서, 점차 혈광을 뿜기 시작하는 숯덩이가 보였다.
촤르르르!
봉명성 바깥.
흑색의 성에서, 진홍색의 광채가 마치 강처럼 넘실거리며 이곳을 향해 날아온다.
어설픈 핏빛이 아니었고, 원립이 모아 온 그 어떤 생명력보다 더더욱 진하고 강맹해 보였다.
촤르르륵!
기어코, 핏빛의 강은 숯덩이가 된 원립에게 내리꽂혔다.
쿠그그그극!
그리고, 원립의 몸이 재생되며,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그 검은 가면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었기에 제대로 된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원립이 극대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인기에 오를 때 쓰려고, 수백 년 동안 각지에서 암약하며 성에 축적해 온 장원진력(長源眞力)을 소모하게 해…!!! 이 벌레 같은 놈들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쿨럭, 쿨럭!
하지만 완전히 몸이 재생됐음에도, 녀석은 여전히 피를 토해 냈다.
여전히 저주의 여파와, 천겁의 여파는 상당히 남아 있는 듯했다.
‘천겁을 거의 맞지 않은 나만 해도 뇌기(雷氣)가 남아 체내에서 날뛰고 있는데, 천겁의 대부분을 저 몸으로 직접 맞은 저놈이 무사할 리가 없지.’
쿨럭, 쿨럭….
나 역시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겁으로 인해 확실히 나도 조금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휘익!
봉명성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저주인형은, 65개.
그 중 4개는 결단기 승급 의식에 썼고, 나머지 61개는 연기기 1, 2성 정도의 힘만이 깃든 저급 저주인형들이었다.
하지만.
“저주, 역전(逆轉).”
키이이잉!
내가 결인을 맺으며 음혼귀주문을 사용하자, 내 몸에 남아 있던 천겁의 부상과 약간의 뇌기들이, 60개의 저주인형들에게 그대로 분산되어 흩어져 버렸다.
저주인형은 상대를 저주하는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했지만, 이런 식으로 미리 준비해 둔 저주인형에 내 부상을 모조리 떠넘기는 식의 사용도 가능했다.
파삭, 파삭, 파사삭….
물론, 체내에 남은 뇌기를 분산해서 받은 60개의 저주인형들은 모조리 뇌기를 견디지 못하고 바로 재가 되어 박살이 나 버렸지만.
‘그래도 뇌기와 부상은 거의 다 떠넘겼다.’
나는 저물대에서 미리 지급받았던 선주들을 꺼내 마셨다.
육체의 재생력을 단기간 강화시키는 선주, 계령액.
법보를 다루는 능력이 단기간 향상되는 선주, 선염옥.
두 선주를 단숨에 마셨다.
쿠구구구!
저주인형들에게 분산시키고 남은 자잘한 부상과 뇌기가 그대로 재생력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다.
선주를 마셨다고 해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부상의 치유 속도가 빨랐다.
‘이게, 결단기인가.’
결단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은 힘들겠지만, 50년에서 100년 정도만 수련하면 목이 잘려도 몇 달 요양하면 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건해질 터였다.
[이… 놈들, 다 죽여 버리겠다…!]
입가에서 피를 토해 내면서도,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는 원립을 보며, 봉명성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문중진이 외친다.
“모두 작전대로!”
“폐문(閉門)!”
원립이 도망치거나, 더 이상 흑색의 성에 숨겨놓은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결단기 수도자들이 결인을 맺자, 봉명성의 문이 닫혀 갔다.
끼이이익, 쿵!
북쪽 대초원의 부족장들이 앞으로 나섰다.
척, 척, 척, 척!
네 명의 부족장이 원립의 주변, 사방을 점한다.
네 명의 부족장 뒤쪽으로, 각각 세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자리를 점했다.
세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 뒤로, 일곱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자리를 잡는다.
북방 대초원의 비술.
“창경천라(蒼景天羅)의 진(陣), 개(開)!”
쿠구구구구!
진을 이룬 수도자들의 법력이 연결되었다.
청색의 빛이 원립을 가두었다.
진의 주축이 되는 이들은 하얀 구름이, 진의 중심에 있는 원립은 창명한 하늘의 중앙에 갇히게 되었다.
[이건….]
그리고, 원영 중기의 수행이었던 원립이, 원영 초기로 떨어졌다.
물론, 그 대가로 창경천라진을 펼친 북방 대초원의 부족장들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온 힘을 다해 그 자리에 붙박여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원립의 수행을 한 걸음 묶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한 기의 저주인형.
녀석이, 내 의지에 따라, 봉명성의 진법을 건드렸다.
키이이잉!
쿠구구구구구!
기이한 압력이 전원의 수행을 내리눌렀다.
결단기 수도자들의 수준이 축기기 수준으로, 원영기인 원립의 수준이 결단 초기 수준으로.
그렇게 내려간다.
나, 만리민랍, 벽천기가 창경천라진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만리민랍이 함포를 꺼내 원립을 겨눴고, 벽천기가 중얼거리며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주문을 외우며 부적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촤르르륵!
결단기 수행이 축기기 급까지 내려갔다지만, 금단의 고유 속성인 법보의 보관과 개방은 마음대로 하는 게 가능했다.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내 어검술에 의해 주변으로 떠올랐다.
우우웅!
그리고, 유리로 만들어진 연약한 비검들에, 무형검이 덧씌워졌다.
봉명성 진법의 유지 시간은, 200년 동안 진법사들이 달라붙어 연구한 결과.
반 각에서 반 시진까지 늘릴 수 있었다.
반 시진(半時辰: 60분) 안에, 결판이 나야만 할 것이었다.
나는 원립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그리고, 우리의 결전(決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