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22화 (122/185)

네가 밟아온 것 (10)

“벽악진(壁岳陣)을 펼쳐라!”

청문중진의 고함에, 결단기 수도자들이 미리 지급받았던 진법 깃발을 손에 들고 대열을 갖추었다.

진법 깃발이 일정한 배열을 갖추자, 푸른 빛을 뿜으며 오채색의 빛을 뿜는다.

쿠구구구!

오채색의 빛은 결단기 수도자들을 지켜 주는 산악이자, 거대한 장벽이 되어 혈풍을 막아섰다.

200년 전, 다급하게 기초 진법인 호신의 진법으로 원립의 공격을 막았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정밀함.

[꽤 단단하군.]

원립의 혈풍은 산악의 벽을 뚫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청문중진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모두! 준비해 온 병기를 꺼내시오!”

그리고, 수많은 가문에서 가져온 병기들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거대한 전함에 올라탄 축기기 수도자들이 일시에 결인을 맺었다.

전함에 달린 수십 개의 함포가 원립에게 겨눠지며 빛을 뿜었다.

충차형의 법보, 함포형의 법보 역시 일제히 빛을 뿜는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결단기 수도자들 역시 각기 법보들을 꺼내 들었다.

200년 전에 비해, 각 가문에서 원립과의 결전을 준비키 위해 사력을 다해 키워 낸 새로운 결단기 수도자 200여 명.

총 400여 명에 달하는 결단기 수도자들의 법보와 법술이 한 사람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파아아앗!

수많은 폭광과 먼지구름 속에서, 혈광이 일어난다.

키륵, 키르르르륵!

동시에, 혈광의 안쪽.

핏빛의 광채로 일대를 보호하는 원립의 옆에서, 수천의 흑적색 강시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괴의 강시 군단이다!”

키에에에엑!

기운이 강한 강시 서넛이 모여 결단기 수도자 한 명의 법보를 맞상대했다.

크웨에엑!

강시들이 비명을 지르자, 그 충격파가 결단기들의 법술을 밀어낸다.

“서, 서넛이 모이면 결단기 급이다!”

한 수도자가 안색이 창백해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였다.

군영의 뒤쪽, 동방의 군주 열여섯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아래쪽에는 시커먼 붕대로 전신을 감싸고, 기이한 독기(毒氣)를 뿜어내는 괴인들이 있었다.

북쪽의 대초원에서, 세 명의 부족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저물법기를 열자, 각각 수많은 살덩이가 겹쳐진 괴이한 괴물이 쏟아졌다.

서방의 삼국에서, 막리세가, 오리세가, 준씨세가의 가주들이 앞으로 나섰다.

막리세가가 저물법기에서 원립처럼 강시 군단을 쏟아 냈고,

오리세가에서 해골병을 쏟아 냈으며, 준씨세가에서 원혼들로 제련한 귀혼들을 쏟아 냈다.

마도 대 마도!

막리세가의 검록빛 강시들이 흑적색 강시들에게 달라붙었다.

개개의 개체는 원립의 강시에 비해 한참 뒤처졌으나, 막리세가는 세가 차원에서 학살한 인명들로 어마어마한 강시 떼로 물량 공격을 퍼부었다.

촤아아아아!

뒤이어 막리세가의 원로 한 명이 저물대를 열자,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물이 강이 되어 쏟아졌다.

막리세가의 강시 떼들은 녹빛의 물에 닿자, 더더욱 기운과 재생력이 강해지며 원립의 강시 떼에게 달려들었다.

삽시간에 원립이 풀어놓은 강시 떼의 기세가 꺾였다.

“화혼염열(火魂染悅).”

화르르륵!

진씨세가의 결단기 원로 세 명이 앞으로 나서며 결인을 맺는다.

불꽃의 령(靈)이 허공에 떠오른다.

화령(火靈)은 진씨세가 원로들이 결인을 한 번 맺을 때마다 그 원신(原神)을 부르르 떨며 쾌락에 떨어 대었다.

그리고, 화령이 한 번 쾌락에 물들 때마다 그 염혼의 빛이 점차 바뀌었다.

적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황금색으로, 황금색에서 청백색으로.

그리고, 염혼의 빛이 완전한 청화(靑火)가 되었다.

“가라!”

쿠구구구구!

진씨세가 원로원의 결인에, 염혼(炎魂)은 잔뜩 몸을 떨며, 원립이 소환한 강시 떼에게로 떨어졌다.

마도 가문인 막리세가와 수백 년 동안 경쟁을 벌여온 진씨세가는, 그만큼 마도를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가문이었다.

그들이 던진 푸른 불꽃은 삽시간에 강시 떼에게로 번지며 원립의 강시 군단을 불태웠다.

유난히 시체에게만 잘 통하는 불길이 사방으로 번진다.

더군다나 불길에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 도망치려는 강시 떼에게로 쫓아가 들러붙기까지 했다.

진씨세가의 불꽃을 떼어 내려는 원립의 강시들에게는 막리세가의 강시들이 달라붙어 물고 늘어진다.

화르르르르!

삽시간에 사막에 불바다가 피어올랐다.

서방, 북방, 동방의 마도 수도가문, 그리고 진씨세가의 합공에 원립의 강시 떼들은 전멸(全滅)하였다.

그런 줄 알았다.

콰아앙!

핏빛의 둔광이 산악의 벽을 향해 쏘아진다.

원립은 그대로 오채색의 산악을 뚫고, 그 너머로 넘어와 파초선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

혈풍이 불어닥치며, 그 주변에 있던 결단기 수도자들 7명, 뒤쪽에 있던 축기기 수도자 400여명이 그대로 갈려 죽었다.

[혈운(血雲), 적해(赤海).]

원립이 결인을 맺는다.

동시에, 결단기와 축기기 수도자들의 사체에서 생명력과 핏물들이 혈운(血雲)이 되어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거대한 피 구름이 움직이며, 숯덩이가 된 그의 강시 떼에게로 몰려간다.

직후, 숯덩이가 되었던 원립의 강시 떼에게 피 구름이 흡수되었다.

꿈틀, 꿈틀….

숯덩이가, 피 구름을 흡수하며 꿈틀거린다.

직후, 피 구름을 먹은 숯덩이들이 혈육을 재생시켰다.

쿠구구구!

그리고, 숯덩이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히 재생되었다.

전멸했던 강시 군단이 다시 완전히 재생한다.

[이게 끝이냐?]

원립이 비웃으며 다시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다시 진법을 펼쳐라!”

쿠구구구!

원립이 쳐들어온 부분의 보호법진이 무너지고, 다시금 원립을 둘러싼 형태로 법진이 바뀐다.

그리고 그 바깥에서 수도자들은 다시금 원립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진씨세가와 막리세가의 원로들은 피식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웃기는 노괴로군. 이게 끝이냐니. 한 번 부활시켰으면, 두 번 죽여 주면 될 뿐이지.”

다시금 막리세가의 강시들이 원립의 강시들에게 달려들었고, 진씨세가의 원로들이 청화를 만들어내, 원립의 강시 떼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흑적색의 강시들은, 더 이상 불에 타지 않았다.

“뭐, 뭣…!?”

진씨세가 원로들이 대경하며 눈을 부릅떴다.

흑적색의 강시들은 불에 타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불꽃을 흡수하며 더더욱 생기발랄하게 막리세가의 강시들을 쳐 죽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흑적색의 강시들이 막리세가의 강시들을 상대하며, 막리세가의 강시들에게 손을 대자 막리세가의 강시들이 원립의 강시들에게 그대로 빨려들어 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막리세가 원로들도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키에에에엑!

동방의 마도들과 북방의 마도 수도자들 역시 각각이 가져온 마도 생명체들을 흑적색의 강시 떼에게 흩뿌렸으나, 강시 떼는 오히려 그들의 법술을 흡수하며 더더욱 기운을 찾을 뿐이었다.

[썩 훌륭하지 않으냐? 혈목귀시(血木鬼屍)는 한 번 당한 법술에는 강력한 내성을 갖게 되고, 내성이 있는 법술은 흡수해서 제 기력을 충전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쿠구구구구!

원립이 입을 벌리자, 그의 입에서 피 구름이 뿜어지며 그를 휘감는다.

동시에 그를 뒤덮은 피 구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결단기 수도자들의 보호법진을 으스러트렸다.

“노괴가 힘을 쓴다!”

“산개하라!”

[네놈들이 패거리로 몰려온다고 해도, 감히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쿠오오오!

피 구름이 회전한다.

촤라락!

동시에, 원립의 저물대에서 혈수들이 솟구치며, 낫을 든 귀왕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귀왕들은 원립의 피 구름과 합쳐지더니, 피 구름으로 형성된 거대한 두 명의 귀왕의 형상이 된다.

끼아아아아아!

피 구름으로 된 두 귀왕이, 낫을 들고 양옆으로 휘둘렀다.

콰아아앙!

원영기 급의 쌍격!

그 공격에, 다시금 결단기 수도자들이 모여 펼친 수호법진이 으스러졌다.

[시시한 놈들. 전부….]

그리고, 그때였다.

파아아앗!

푸른 빛의 섬광이, 천지를 어둡게 만들며 다시금 원립에게 쏘아졌다.

[…!]

원립이 움찔거리며 결인을 맺었고, 피 구름으로 화한 두 귀왕이 낫을 교차해 들며 원립의 앞을 막아선다.

쿠과과광!

푸른 섬광이 폭발한다.

그리고, 빛이 잦아든 후.

피 구름의 귀왕은 각각 반신이 찢겨 나가 있었고, 피 구름의 가운데에 있던 원립은 보탑 법보를 꺼내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보탑 법보마저도 빛이 상당히 희미해진 것이, 방금의 공격이 꽤 충격이었던 모양새.

원립이 흑색의 반투명한 무면탈 너머에서 눈을 찌푸렸다.

[…아까는 이 위력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원립의 시선이, 저 멀리에서 그에게 함포를 겨누고 있는, 백색의 붕대로 전신을 덮은 동방의 군주, 만리민랍에게 향해 있었다.

위이이잉!

만리민랍은 한 팔로 함포를 들고, 한 팔로 결인을 맺었다.

함포의 끝이 빛나며, 다시금 푸른 섬광이 맺히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도 더더욱 강력한 기세가 푸른 섬광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오… 그렇군. 방금 죽었던 결단기, 축기기 수도자들의 귀혼(鬼魂)을 빨아들여, 그 혼력(魂力)으로 위력이 더 강화되는 건가…? 사상자가 많아질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대포….]

원립의 두 눈에서 혈광(血光)이 폭사된다.

[그렇군. 들은 적 있다. 흑색귀골곡 섭명함의 주포(主砲). 괴군과의 일전에서 박살 난 섭명함의 주포 중 하나가, 동방의 해안에 흘러 들어갔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저것이었나 보군.]

위이이잉!

만리민랍은 말 없이 함포를 한 손으로 든 채, 포신에 영력을 불어넣을 뿐이었다.

끼야아아….

끼아아….

함포의 안쪽에서는 은은한 귀곡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콰아아앙!

다시금 푸른 빛살이 원립에게 쏘아졌다.

방금 전보다도 더욱더 흉맹한 위력!

쿠과과광!

빛살이 폭발한다.

푸른 섬광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폭풍이 몰아쳤고, 뒤쪽에 포진하고 있던 축기기 수도자들은 폭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

폭광이 잦아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촤아아악!

핏빛 둔광이 푸른 폭발을 뚫고, 만리민랍에게 쇄도하였다.

원립이 수정 해골 지팡이를 들고서 그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섭명함의 잔해라면 나도 썩 욕심이 나는군. 내놓거라…!]

만리민랍이 두 눈을 찌푸리며 다시금 함포를 발동시키려 했으나, 원립이 더욱더 빨랐다.

촤아악!

삽시간에 만리민랍의 앞에 도달한 원립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촤아아아!

그의 손 위로 거대한 혈광이 고인다.

[잘 가라.]

“….”

다음 순간.

촤라라락…!

검은 빛의 촉수가, 원립을 휘감았다.

[…!]

촉수는 생명체의 것이 아닌, 시커먼 안개로 되어 있었다.

촤아아아.

그리고 안개가 닿은 곳은 점차 어마어마한 통증을 야기하며 썩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저주문…?]

원립은 시커먼 안개를 바라보았다.

안개는 깨알 같은 수천 개의 저주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촤락, 촤라라락!

저주문의 파도가 원립을 휘감았다.

그리고, 원립이 잠시 저주문에 묶인 찰나.

만리민랍이 서둘러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갈의를 입은 방립의 노인, 월량이 만리민랍의 자리로 내려와 갈색 바퀴 법보를 꺼내 들었다.

“죽어라, 괴물아!”

촤르르르르!

갈색의 바퀴가 회전한다.

월량이 결인을 맺자, 바퀴는 원립을 향해 미친 듯이 쇄도하였다.

[귀찮은 것들이….]

하지만, 원립이 손을 뻗어 피 구름을 불러모으자, 바퀴 법보는 피 구름에 막혀버렸다.

원립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혈광을 뿜어내며 말했다.

[썩 뛰어난 저주술사인가 보다만, 한참은 부족하다. 그래도 썩 귀찮았단 점은….]

촤아아아!

핏빛이 저주문을 밀어낸다.

[인정을 해 주도록….]

그리고.

콰아아아앙!

혼자서 떠들고 있는 원립을 향해, 만리민랍의 주포가 푸른 섬광과 함께 쏘아졌다.

푸른 섬광에 휩싸인 원립을 향해, 그동안 기력을 끌어모으던 결단기 수도자들, 축기기 수도자들의 공성 병기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

지축이 뒤흔들리고, 사막에 유리 구덩이가 생겨났다.

순간 피어난 섬광이 사막을 물들이며, 사막의 빛을 빨아먹듯 어둠이 되었다.

폭광의 중심에서, 원립은 결인을 맺으며 혈광을 자신의 주변으로 둥글게 말아 사방의 공격을 방어하였다.

[나름 200년 동안 성장했군. 원영 초기였으면 위험했겠어….]

그의 방어막은 위태롭게 흔들릴지언정, 결코 뚫릴 기미는 없었다.

[버티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때였다.

[음…?]

원립의 눈에, 한 법보가 보였다.

월량이 던졌던 바퀴 형태의 법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그의 앞에서 돌던 그 법보가, 점차 회전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경 쓸 수준이 아니었으나, 점차 회전력과 위력이 올라갔다.

그리고, 원립이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그놈이….]

쿠구구구구!

갈색의 바퀴는 점차 핏빛으로 시뻘겋게 물들며, 새빨간 증기를 뿜으며 강력한 힘으로 그의 보호막을 압박했다.

[이놈, 진원진기를 끌어다 퍼붓고 있다는 거냐…!]

말 그대로, 월량은 피눈물을 흘리며, 입에서 피를 토해 내면서도 자신의 법보를 향해 자신의 생명력까지 불어넣고 있었다.

“죽어라, 노괴 놈아…! 내 생명력을 모조리 짜 넣어 태워 버릴지언정, 네놈에게 작은 상처라도 남기고 가겠다!”

키이이잉!

바퀴가 더더욱 빠르게 회전한다.

우극, 우그그극…!

원립은,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의 보호막으로, 점차 바퀴가 파고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이놈이, 네깟 놈에게 뚫릴 것 같으냐! 어림없는 소리!]

원립은 두 눈에서 혈광을 뿜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때, 원립의 뒤쪽에 있던 작은 문자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서은현의 저주문.

원립은 혈광으로 완전히 떨쳐 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질척질척한 악의는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꿈틀, 꿈틀….

서은현의 저주문이, 원립의 몸을 타고 올라, 그의 심장 어림에 자리를 잡았다.

* * *

원립의 폭격 바깥.

봉명성 아래에 서 있는 서은현은 그를 돕기 위해 붙은 청문세가의 축기기 수도자에게 말했다.

[만들어 주시오.]

“알겠습니다.”

청문세가의 축기기 수도자가 사막에 씨앗을 뿌리고, 결인을 맺었다.

쿠구구구!

축기기 수도자의 목 속성 영력이 흘러 들어가자, 씨앗은 빠르게 자라나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축기기 수도자가 결인을 맺자, 나무는 기이한 형상으로 자라났다.

그것은, 마치 사람 같은 형상이었다.

양팔을 벌린 사람과 같은 형상.

시커먼 저주문 속에 잠긴 그림자.

서은현이 목인(木人)을 향해 손을 뻗자, 저주문 한 자락이 목인의 심장 어림에 흘러 들어갔다.

[이 그릇에, 고통이 깃들지니.]

키이잉!

목인의 심장에 흘러 들어간 저주문이 빛을 발한다.

* * *

[음?]

원립은 그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시커먼 악의에 몸을 흠칫하였다.

하지만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악의가 폭발하였다.

서은현의 옆에 있던 청문세가의 축기기 수도자가, 목인의 심장을 주먹으로 후려쳐 구멍을 내었다.

저주인형이 발동한다.

[크아아아악!]

욱씬!

원립이 이를 악물며 갑작스레 그의 심장에 느껴지는 고통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틈새.

콰과과과과!

시뻘건 증기를 뿜어내는 월량의 법보가, 원립의 보호막을 찢어 버리고 원립에게 달려들었다.

촤라라락!

원립의 상반신의 한쪽이, 그대로 뜯겨 나간다.

월량의 바퀴는 월량에게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원립의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찢긴 원립의 상반신을 향해, 수많은 법보와 법술들이 날아든다.

원립은 정순지력을 짜내어 임시로 팔을 만들고, 결인을 맺었다.

[해(解).]

그리고, 폭발이 원립을 휩쓴다.

쿠구구구….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이 숨을 죽이며, 폭광이 잦아든 곳을 바라보았다.

커헉, 커허헉!

월량은 평소 쓰고 다니던 방립을 떨어뜨린 채, 피를 토하며 안쪽을 노려보았다.

수많은 결단기와 축기기 수도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법술을 총동원한 공격!

모두가, 안쪽의 결과를 기대감 서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먼지구름 안쪽에서, 괴이(怪異)한 핏빛의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은….”

청문중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원립의 주변으로는, 어느새 일곱 개의 족자가 떠올라 있었다.

족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였으며, 일곱 요혼의 기운이 괴이한 핏빛의 짐승에게서 느껴질 뿐이었다.

괴이의 요혼이, 원립을 둘러싸고 지키는 중이었다.

[하하, 짜릿하구나.]

자리에 모인 연합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이게 정말 끝이냐?]

원립은 상반신의 반절이 날아간 상태에서 몸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 수정 해골 지팡이가, 한 손에 파초선이 들렸다.

[조금 더 열심히 해 보거라. 아직 흥도 안 돋는구나…!]

쿠구구구구!

원립이 꺼낸 혈목귀시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빨아먹었던 법술, 다른 강시들, 다른 마도 생명체들의 기운을 짜내기 시작했다.

혈목귀시들의 몸에서 나온 기운은 핏빛으로 뭉치더니, 모두 원립을 향해 날아갔다.

촤라라라락!

원립이 수정 해골 지팡이를 들자, 수정 해골이 입을 벌리며 핏빛 기운을 빨아먹는다.

동시에, 원립이 소모했던 기력이 다시 차올랐다.

치이이이―

어느새 원립은, 그가 처음 봉인에서 나왔을 때와 완전히 같은 상태를 회복한 채였다.

[쯧쯧, 이건 뭐, 싱거워서 돋았던 흥도 식으려 하는군. 뭔가 더 보여 줄 게 정말 없느냐?]

촤라라락!

시커먼 저주문 덩어리가 원립의 밑에서 그를 삼켜 갔다.

[쯧….]

콰앙!

그러나, 이번의 저주문은 원립에게 닿지도 못하고 그의 보호막에 튕겨 나갔을 뿐이었다.

원립의 시선이, 멀리서 저주문을 조작하는 그림자에게 닿았다.

[아까부터 찔끔찔끔 저주나 섞어 보내는 게 누군가 했더니, 네놈이었나. 흐하하, 이제 보니 결단기도 아니고 축기기였나 보군.]

그가, 핏빛 파초선을 들어 올렸다.

[축기기 주제에 결단기급 저주를 성가시게 쏘아 보내는 점은 인정해 주지. 썩 훌륭했다. 그리고….]

원립은 다시 뒤를 돌려, 숨을 몰아쉬는 월량을 보았다.

[목숨을 걸어서까지 내게 한 방을 먹인 건 인상 깊더구나. 뭐…. 결국 법보를 회수할 기운도 다 떨어진 것 같다만.]

원립은 진득하게 월량을 비웃으며 조롱했다.

월량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가 웃었다.

“법보를…. 회수할 기운이…. 없는 게 아니다, 이 괴물아.”

[음?]

“전달한…. 거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자 그럼. 모두 고생했으니, 잘 가거라.]

총공격을 쏘아 보내, 한 차례 힘이 빠진 모든 수도자들을 향해.

원립은 핏빛 부채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

혈풍이 연합군을 뒤덮었다.

“버텨라…!”

“이제 시간이 됐다!”

“조금 있으면….”

청문중진과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이 피를 토하며 다시금 수호진법을 펼친다.

하지만 최초로 펼쳤던 진법과 달리, 이번에 펼친 진법은 기력이 상당히 소모된 채였고, 결국 진법 곳곳에 금이 가며 혈풍이 그 사이로 밀어닥쳤다.

“크아아아악!”

“가주님, 살려 주십시오!”

결단기 수도자들은 버텨 냈으나, 축기기 수도자들 중 상당수는 틈새로 새어 들어온 혈풍에 휩쓸리며 한 줌 핏물이 되었다.

수많은 결단기 수도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끝없을 것 같던 혈풍도 곧이어 잦아들었다.

수호법진의 뒤쪽에서 버티던 만리민랍이, 다시금 섭명함의 주포를 들어 올렸다.

키이이잉!

죽은 축기기 수도자들의 원혼을 빨아들여, 섭명함의 주포는 더더욱 강력한 푸른 빛을 번뜩였다.

그러나 원립은 만리민랍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웃습군. 섭명함의 주포가 충전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미 파악했다. 원혼을 잔뜩 먹었어도 정작 발사되는 데엔 시간이 걸리지 않느냐.]

그가 천천히, 만리민랍에게 다가갔다.

[자아, 얌전히 섭명함의 잔해를 내놓으려무나.]

촤좌좌좍!

다시금 실지렁이 같은 저주문들이, 원립에게 날아와 그의 발을 묶었다.

원립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저주문을 날리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너 자신이 부끄럽지도 않더냐? 통하지도 않을 저주나….]

[시간이.]

그리고, 그림자는 원립의 말을 끊고 청문중진을 보며 말했다.

[시간이 되었다.]

“모두! 준비하라!”

청문중진이 고함을 쳤고, 연합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음?]

그리고, 몇몇 축기기 수도자들이 저주문으로 몸을 감싼 그림자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자의 주변 사방에 자리를 잡고, 결인을 맺자, 땅에서 제단이 솟아났다.

각각이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원립은 이해가 되지 않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결단(結丹) 승급의 제단…?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거냐?]

하지만 원립은 이내 그것보다는, 다른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끼이이이익….

봉명성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래, 됐다. 너희 버러지들을 더 상대해서 뭘 하겠느냐. 난 볼 일이 있으니, 이만 다 죽어라.]

원립의 몸에서, 혈광이 폭사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형의 검이 원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과과광!

[…!]

원립은 흠칫 몸을 떨며 터트리려던 혈광을 무형의 그것을 향해 내쏘았다.

쿠구구구!

사방이 떨려온다.

[허, 이건 또 뭐야….]

원립의 시선이, 봉명성의 문을 향하였다.

활짝 열린 봉명성의 문 안쪽에서, 시커먼 저주문 덩어리가, 마치 강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커먼 강의 중심에는 백의를 입고, 새카만 눈물을 흘리는 사내가 서 있었다.

[저주술사가 둘…?]

원립이 다른 한쪽에 서 있던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원립은 몸을 흠칫 떨었다.

슈우우우욱!

그림자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저주문들이, 그림자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림자의 전신이 드러났다.

그것은, 사람과 똑같은 크기의 유리 공예품이었다.

수천 개의 저주문을 넣어, 사람과 똑같이 움직이던 유리 인형(人形)!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리 공예품은, 원립과 똑같은 형상으로 되어 있었다.

저주문을 흡입한 유리 공예품이 손을 들자, 그의 손에 갈색의 바퀴가 날아들었다.

―법보를…. 회수할 기운이…. 없는 게 아니다, 이 괴물아.

―전달한…. 거다.

원립과 똑같이 생긴 유리 인형은, 갈색의 바퀴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원립의 상반신에서 터져 나왔던 핏물과 살점들을 빨아들였다.

[저주인형(詛呪人形)!]

오싹!

원립은 망설이지 않고 파초선을 들어 올렸다.

‘위험하다. 축기기 대원만급의 저주인형이 내 피를 머금고, 초일류의 저주술사가 저주를 내린다면….’

콰아앙!

하지만, 여지없이 무형의 궤적이 그에게 날아와 그의 행동을 방해하였다.

그리고, 봉명성에서 나온, 검은 눈물을 흘리는 저주술사.

서은현이 저주문의 강물 위에서 한 손을 치켜들었다.

“음혼귀주(陰魂鬼呪).”

시커먼 저주문들이 그의 주변에서 널뛴다.

“천린수해(千璘樹海).”

저주문의 강에서, 시커먼 저주문으로 이뤄진 검녹빛 숲이 일어났다.

“규토장성(珪土長城).”

검녹빛 숲의 사이사이로, 봉명성에 흐르던 영맥(靈脈)이 서은현의 의지에 따라 그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서은현의 주변으로 잔뜩 몰린 기운들은, 그의 단전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서은현의 전신에서 정순지력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

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

규루위묘필자참(奎婁胃昴畢觜參).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

이십팔수(二十八宿), 축기기(築氣期) 극성(極成)!

척, 척, 척, 척!

그리고, 서은현의 주변으로 네 명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그들 역시 시커먼 저주문으로 몸을 감싼 그림자, 서은현의 저주인형이었다.

그리고, 저주인형들은 하나같이 축기기 대원만의 수행을 가지고 있었다.

“200년 전의 고통으로 진즉 결단기에 도달할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을 위해 결단을 참고, 계속해서 고통으로 늘어나는 법력을 저주인형 다섯에게 나눠 담았더니, 전부 축기기 대원만까지 올라가더군….”

뚝, 뚝….

서은현은 검은 눈물을 흘리며 봉명성에서 떨어져 내렸다.

치이이이….

저주문이 섞인 그의 검은 눈물이 떨어지는 곳의 땅이, 그대로 썩어 간다.

“이 고통을…. 돌려주러 왔다, 원립.”

촤아아아악!

서은현의 옆에 도열했던 네 채의 축기기 저주인형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는 네 개의 제단으로 달려가, 사방을 점하고 그곳에 올라섰다.

[큭큭, 폼은 잔뜩 잡으면서 왔다만…. 지금 고작 결단기 승급 의식을 내 앞에서 위엄 잡으며 하는 것이냐?]

키이이잉!

원립이 손에 쥔 파초선이 빛나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다들 단체로 정신이 나가 버리기라도 한 건….]

“가라, 서은현!”

콰아악!

그리고, 부채를 부치려는 원립을 향해 월량이 피눈물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내가 잡고 있겠다! 놈을 죽여라!”

[쯧, 이 벌레 놈이….]

원립은 혀를 차며 그를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월량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촤아아아!

그의 피가 증발하며, 월량의 전신이 불타올랐다.

갈색빛으로 타오르던 귀화(鬼火)는 어느새 사막의 황금빛 모래와 같이 밝게 빛났다.

[내 생명을! 전부 태우더라도, 네놈을 죽인다!]

콰아악!

금단(金丹)을 불태우는 월량의 몸이 원립의 방어막을 깨고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콰드드득!

[이… 쓰레기가!]

[가라, 서은현! 이 시간은 벌겠다! 놈을 저주해라!]

타앗!

저주문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펼쳐진 제단의 안쪽에 들어간 서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뭣…!]

원립의 모습을 한 유리 저주인형이, 서은현의 앞에 얌전히 누웠다.

[이, 이놈이…!]

서은현은 검은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월량의 갈색 바퀴 법보를 쳐다보았다.

그가, 바퀴 법보를 들어 올린다.

유리 인형은 그가 가지고 있던 저물대를 서은현에게 건냈고, 서은현은 저물대를 받은 후 월량과 시선을 교환했다.

두 복수자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놈…!]

콰아앙!

서은현이 들어 올린 바퀴가, 원립의 피가 들어 있는, 축기기 대원만 수준의 저주인형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장창창!

유리로 된 저주인형은 산산이 박살이 나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축기기 대원만 수준의 저주인형 하나를 그대로 소모한 저주는, 그대로 원립에게 틀어박혔다.

[크웨에엑!]

원립의 칠공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여태껏 코웃음과 혀를 차던 소리만이 나오던 그의 입에서, 진심 어린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이… 망할 쓰레기 놈이…!]

원립이 진노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하나, 서은현은 원립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결단기로의 승급을, 시작한다.”

척, 척, 척, 척!

그의 사방에 놓인 제단.

제단 위쪽에 올라간 네 기의 축기기 대원만 수준 저주인형.

저주인형들이 각기 결인을 맺었다.

연기기 7성에서 칠성제의를 거행해 칠수에게서 축복을 받아, 운명을 보는 눈을 개안한다.

그리고 축기기의 각 경지에서 연기기 때에 받은 축복의 도움을 받아 더욱더 빠르게 경지를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결단기에 이르려면 축기기 대원만에 이른 수도자가, 28수에 해당하는 체내의 영기의 별에 각각에 맞는 제의를 다시 한번 지내야 했다.

각각의 영기의 별에 천기(天氣)를 깃들이는 것이었다.

그러한 제사 의식은 대다수의 수도자들이 겪는 의식이었지만.

세세한 제사 의식은 그들이 익히는 공법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서은현이 익힌 음혼귀주문의 공법은, 사방의 제단에 저주인형을 놓고, 저주인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저주함으로써 별에 천기를 깃들인다.

우우웅!

서은현의 제의가 시작되었다.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 청존칠수께 인도(人道) 서은현이 제(祭)를 지내오니, 받아 주소사!]

동쪽에 있던 제단의 저주인형이, 저주문을 엮어 저주의 끈을 만든 후.

그 끈으로 스스로의 목을 졸랐다.

우드득!

동쪽 제단의 저주인형의 목이 꺾였고, 저주인형이 제단에 픽 쓰러졌다.

[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 음존칠수께 인도(人道) 서은현이 제(祭)를 지내오니, 받아 주소사!]

북쪽 제단의 저주인형이, 저주문으로 흑색의 검을 만들어, 스스로의 목을 베었다.

북쪽 제단의 저주인형의 목이 제단 위를 굴렀고, 저주인형은 제단 위에 쓰러졌다.

[규루위묘필자참(奎婁胃昴畢觜參), 백존칠수께 인도(人道) 서은현이 제(祭)를 지내오니, 받아 주소사!]

서쪽 제단의 저주인형이, 저주문으로 흑색의 단검을 만들어, 스스로의 배를 갈랐다.

서쪽 제단의 저주인형의 배에서 시커먼 저주문들이 잔뜩 쏟아졌고, 저주인형은 제단 위에 쓰러졌다.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 양존칠수께 인도(人道) 서은현이 제(祭)를 지내오니, 받아 주소사!]

남쪽 제단의 저주인형이, 저주문을 엮자, 저주문은 음화(陰火)가 되어 저주인형을 둘러쌌다.

남쪽 제단의 저주인형은 음화 속에서 불타다가 그대로 제단 위에 쓰러졌다.

사방의 제단 가운데에 있던, 서은현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저주문을 끌어모았다.

결단기 승급 의식에는 시운은 맞출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익힌 공법으로 천기를 끌어들여 이십팔수에 대응하는 영기의 별에 깃들이면 될 뿐.

파아아앗!

사방에서 몰려오는 시커먼 저주문이 그의 전신에 파고든다.

서은현은 검은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의 단전에 있는 스물여덟 별자리에, 천기가 깃들며 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별자리들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각항저방심미기는 동(東)을,

두우여허위실벽은 북(北)을,

규루위묘필자참은 서(西)를,

정귀유성장익진은 남(南)을 상징한다.

사방을 상징하는 영기의 별들이, 서은현의 단전에서 회전하며, 그의 단전 안에 [영역]을 만들기 시작했다.

천역(天域), 혹은 천구도(天球圖)라고도 불리는 것이 그의 단전에 새겨졌다.

그리고, 천구도가 새겨진 단전의 영역들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득….

단전의 영역은 체내에 흐르는 정순지력을 끌어모아, 영역으로 가두었다.

정순지력이 더욱더 응축되고 응축되며, 단단하게 형(形)을 잡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

서은현의 육신으로, 사방의 천지영기가 마구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쿨럭, 쿨럭….]

원립은 칠공에서 피를 털어 냈다.

콰아앙!

그는 진원진기를 불태우며 그를 붙들던 월량을 멀리 던져 버린 후,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아직 축기기 대원만 수준의 저주인형을 희생시켜 맞은 저주를 전부 치유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미친놈 같으니…. 다들 우습고 우습구나. 아직 숨겨 놓은 걸 꺼낼 필요도 없겠어. 고작 결단기 하나 더 생겨난다고 전세에 무슨 변화가 생길 것 같으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그래. 결단기에 올라서 그 저주로 나와 동귀어진 하려느냐? 해 보거라! 원영기 수도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냐! 그 수준에 이르러 저주를 걸어도, 나는 몇 놈만 잡아먹으면 금세 회복이 가능하다!]

원립이 하늘을 가리켰다.

[눈이 있다면 천기를 읽어 보아라! 네놈들이 이길 수 있을 성싶으냐! 너희에게 대흉(大凶)의 운명이 드리우지 않았더냐! 하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원립의 영언이 사막 전체를 진동시켰다.

[오늘 승리하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하늘이 그것을 증언….]

그리고.

쿠릉, 쿠르릉….

티없이 맑던 사막의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콰아앙!

결단기로 승급하던 서은현이, 원립에게 날아들어 무형검으로 그의 방어막을 깨고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그 좋은 하늘, 실컷 봐라.”

쿠릉, 쿠르르릉….

삽시간에 나타난 먹장구름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어놓는다.

천거(天拒) 현상.

종명자의 수명이 새로 새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늘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서은현은 원립의 품속으로 들어가, 그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번뜩, 번뜩…!

먹장구름 안쪽.

푸른 빛살들이 꿈틀거렸다.

서은현이 축기에 이를 때보다 더욱더 거대한 빛살들이었다.

서은현이 새하얗게 웃었다.

“조금 짜릿할 거다.”

하늘이, 천거자(天拒者)를 향해 청뢰(靑雷)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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