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밟아온 것 (9)
“제길, 날씨는 오라지게 좋군.”
공묘세가의 가주, 공묘령은 얼굴을 찌푸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천기가 훤히 보일 정도로, 하늘은 새파랗게 맑았다.
그리고, 그녀가 보는 천기는 대흉(大凶)이었다.
“빌어먹을, 결단기 수도자가, 아무리 새파랗게 어린 놈들이라고 해도 200명이나 더 늘었고, 각 가문과 세력에서 축적한 힘을 다 끌고 와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함정도 준비해 놨는데… 아직도 천기가 대흉이라니.”
“어쩔 수 없지. 그게 원영기 수도자가 아니겠소?”
벽천기가 혀를 차며 말했다.
답천사막 가운데.
그곳에 있는 원립의 봉인지, 흑색의 성.
그 주변으로, 수백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곽에는 각 가문에서 엄선해서 뽑아 온 축기기 수도자들 역시 빼곡히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위쪽으로는 각 세력들이 준비한 전함(戰艦), 혹은 여러 명이 조종해야 하는 거대 법보, 포탑(砲塔), 충차(衝車) 등.
전쟁용 법보들 역시 잔뜩 세워져 있었다.
“축기기들은 음도호풍(陰導呼風)을 준비해라!”
막리세가 가주 막리황천의 지시에, 막리세가의 축기기 수도자들은 뒤쪽에서 진법 깃발을 들고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그들의 진법 가운데로, 가공할 음기가 모이기 시작하며, 흉맹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진씨세가도 질 수 없지! 막리 놈들한테 지지 않게 백륭장익진(白融張翼軫), 양융적색화(陽融赤色火)를 준비해라!”
진씨세가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모여 진을 짠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피처럼 붉은 시뻘건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뜨거운 답천사막의 열기를 잡아먹으며 커진 진씨세가의 불꽃은 막리세가에서 모은 음풍보다도 더더욱 거대해졌다.
그 모습을 본 막리황천의 눈가가 꿈틀거리자, 옆에 있던 막리세가의 원로가 그를 알아차렸다.
막리세가의 원로는 옆에 있던, 서열이 낮은 원로에게 인상을 썼고, 인상을 받은 원로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뒤를 돌아 외쳤다.
“진가 놈들보다 더욱 크게 음풍을 키워라! 제대로 음풍을 키우면 전원 생령단(生靈丹)을 세 알씩 내리겠다! 하지만 놈들에게 뒤처지면, 아주 재밌는 일이 일어날 줄 알거라!”
쿠구구구구!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리세가의 음풍이 사막의 열기를 떨치고 더더욱 거대해졌다.
그에 진씨세가 역시 불꽃을 더욱더 키웠고, 두 가문은 서로 경쟁하며 각 가문의 비전진법을 더더욱 크게 키웠다.
그 모습을 보며, 청문중진이 피식 웃었다.
“저 두 가문은 붙여 놓으면 늘 심심할 일은 없단 말이지.”
“어머나, 청문 오라버니도 맞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희 두 가문도 합쳐지면 정말로 심심할 일이 없을 텐데….”
“…진루세가 가주께선 공사를 가려 주시오.”
“흥, 아직 봉명성이 나타나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그 전까진 긴장도 풀 겸 잡담도 아니 되나요?”
진루세가의 가주, 진루연천은 새카만 색깔의 장포를 입고, 푸른 빛이 도는 눈화장을 한 풍만한 미녀였다.
“그리고, 가문의 합방이 어찌 사적인 일이 되는 것인지요? 나름 공적인 일이 아닌가요? 오라버니?”
“끄음, 연천아. 지금 성제국 6가의 가주들이 이쪽을 눈을 부라리면서 쳐다보고 있다. 전쟁 전에 내분이라도 일어나면 어쩔 거냐.”
“흥, 하씨, 거씨, 준씨, 열전씨, 오리씨, 전씨. 이 버러지들이 다 합쳐도 진루세가에 못 미치는데 알 바인가요? 그런 시시한 이야기 말고, 오라버니. 예전처럼 대해 주시면 아니 되나요?”
청문중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진루세가 가주께선 제자리로 돌아가 주시오.”
“잘 생각해 보셔요, 오라버니. 창호자의 피를 이은 대청문세가의 혈통과, 성 제국의 개국 시조인 진루세가가 합쳐지면….”
“그만! 더 이상의 사담은 허용치 않겠소. 총사령관의 이름으로 명하니, 진루세가 가주는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이 이상은 군령(軍領)으로 다스리겠소!”
“…흥. 그러지요, 총사령관님. 잘 생각하시길 바랄게요.”
진루연천은 청문중진에게 한쪽 눈을 깜빡거린 후 배시시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청문중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나저나, 서 수사는 왜 안 오는 건지….”
그는 공묘령의 옆에서 은근슬쩍 그녀에게 계속 달라붙고 있는 벽천기에게 물었다.
“벽 가주, 벽씨세가의 결단기 수사가 서 수사를 데리러 갔다 하지 않았소?”
“아… 그게 말입니다.”
벽천기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공묘령은 그 사이에 벽천기에게서 멀어져 버렸고, 벽천기는 안타깝다는 듯이 공묘령을 바라보다가 안색을 찌푸렸다.
“벽 가주, 연락은 되고 있는 거요.”
“하하, 그것이….”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답천사막 동쪽에서, 시커먼 그림자 덩어리가, 원립의 봉인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쿠과과과과!
시커먼 저주문이 사방으로 튄다.
그리고 그 저주문의 중앙에 있는 그림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늦진 않은 것 같군.]
파아아앗!
뒤이어 그림자를 따라온 벽문성은 곧바로 벽천기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임무 완수하였습니다.”
“오, 그래. 장하구나. 하하, 총사령관님. 이제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것 같군요.”
“그렇구려….”
시커먼 저주문 덩어리로 전신을 감싼 그림자, 서은현.
흰 붕대로 전신을 감싼 동방의 군주, 만리민랍.
자신만만한 표정의 청백색 장포를 입은 벽씨세가 가주, 벽천기.
세 사람이 청문중진의 앞으로 나섰다.
“계획은 세 분 모두 숙지하고 계실 테니, 딱히 알려드릴 것은 없겠소만. 그래도 세 분 모두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기를 권하겠소.”
“알겠소.”
벽천기는 대답을 했으나, 서은현과 만리민랍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면 봉명성이 나타날 터이니, 미리 받아 두시구려.”
청문중진은 벽천기와 만리민랍에게 저물법기를 건넸다.
“법기 안에 주류를 넣어 놓았소.”
“하, 과연 선주(仙酒)로군. 마시는 것만으로도 단발성이나마 온갖 능력이 올라간다니.”
벽천기는 저물법기를 들여다보며 감탄을 표했고, 만리민랍은 별말 없이 바로 저물법기에서 술을 꺼냈다.
그런 후 그는 그 자리에서 선주들을 전부 꺼내 바로 마셔 버렸다.
쿠구구구!
고명이 자자한 선주들을 전부 마셔 버린 만리민랍의 기세가 일변했다.
쿠구구구구!
그의 수행이 일순간 폭증하는 듯했고,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좋군, 짧은 시간이겠지만….”
“벽 가주는….”
“아, 나는 격천부를 발동시키기 전에 마셔 두겠소.”
“그리하시고.”
청문중진의 시선이 서은현에게 닿았다.
“서 수사는… 현재 마시고 계시는 거요?”
서은현은 저주문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며 마시고 있소.]
“그렇군, 계획이 잘 진행될 수 있기를 빌지….”
청문중진은 말을 마치고, 진중한 표정으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장내에 있는 모든 결단기, 축기기 수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은현은 하늘이 아닌 원립의 성을 노려보았고,
만리민랍은 저물법기에서 커다란 함포(艦砲)를 꺼내 함포의 뒤쪽 홈에 영석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벽천기는 격천부를 꺼내 영력을 불어넣었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기와 천시를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시간이다!”
공묘령이 크게 외쳤다.
“해방성이….”
동방의 군주 중 한 명이 낮게 읊조렸다.
“봉명성이, 나타난다.”
대초원의 부족장 중 한 명이 얼굴을 굳혔다.
쿠구구구구!
허공이 이지러지며, 허차원을 유영하던 원통형의 거대한 성이, 현실의 공간에 진입한다.
쿠구구구구!
동시에, 자리에 있는 수많은 수도자들은 인근의 천지영기가 변화한 것을 느꼈다.
해방(解放)의 기운.
막혀 있던 것이 뚫리고.
봉해져 있던 것이 풀려나고.
갇혀 있던 존재가 풀려나며.
자고 있던 이가 눈을 뜬다.
긱, 기긱, 기기기기긱!
공묘세가의 비전.
인근의 용맥을 모아 연결하여 봉인하는 팔괘흡령봉진.
진의 안쪽에서, 시뻘건 기운들이 줄기줄기 뿜어지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구!
동시에 수많은 수도자들이 영력의 압박을 느끼며 안색을 굳혔다.
안쪽에 있는 존재가, 바깥으로 나오려 한다.
해방성이 현세에 진입하여, 완전히 안착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인근의 천지영기 역시 더욱더 활발하게 해방의 기운을 머금기 시작했다.
쿠극, 쿠그그극!
혈광이, 진법의 곳곳에 균열을 내고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메마른 사막 전역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스아아아….
균열 사이사이로, 피 안개가 흘러나온다.
빠직, 빠지직, 빠지지직!
점차 봉인진이 깨져 나가기 시작한다.
한 결단기 수도자가 침을 삼켰다.
쿠구구구구!
진법이 조각조각 나며, 진을 이루던 천지영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화아아악!
봉인진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시뻘건 핏빛이 온누리에 퍼지며, 사막 전체가 피비린내에 물드는 것 같았다.
쏴아아아!
흑색의 성이 피 안개에 휩싸였다.
그리고, 성의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핏빛 장포.
회백색의 머리칼.
자글자글한 주름이 진 손.
그리고, 여전히 검은 안개와도 같은 기이한 반투명한 무면탈을 쓴 얼굴.
혈목자 원립이었다.
[잘 지냈느냐?]
쿠구구구구!
장내에 모인, 400에 달하는 결단기 수사, 축기기 수도자들이, 그 한 마디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원영….”
청문중진이 그의 경지를 가늠하며 입술을 떨었다.
“중기…!”
벽천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음신(陰神)에 이어 양신(陽神)까지 형성해 낸 건가? 음양신을 자유자재로 합치고 분리한다는 원영 중기에….”
[두려워할 것 없소.]
서은현이 벽천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싸아아아―
시꺼먼 저주문이 그의 주변으로 퍼진다.
피 안개는 저주문으로 형성된 검은 안개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놈은 원영 후기에 도달해 오겠다고 큰소리를 쳐 놓고는, 기껏해야 원영 중기를 달고 나오는군. 원영기 수사씩이나 되어서, 제 말도 못 지킨 게 부끄럽지도 않나?]
쿠오오오.
시꺼먼 저주문이 부글거리며, 피 안개에 닿자 피 안개는 그대로 썩어서 사막으로 떨어져 버렸다.
[덤벼라, 원립. 오늘 네놈은 죽는다.]
[이건 또 뭐야…. 마기는 안 느껴지는데, 영락없이 마공 같아 보이는군. 마공의 보조공법으로 만들어진 공법을 대성한 건가?]
원립은 서은현의 말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서은현을 관찰할 뿐이었다.
[그래, 재밌구나. 맹랑한 녀석이야. 하지만 한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만리민랍에게 말했다.
[공격을 시작하시오.]
만리민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뭐라 뭐라 떠들려는 원립을 향해, 그가 꺼낸 함포를 겨눴다.
그가 함포의 홈에 박아 넣은 수백 개의 영석이 일시에 빛난다.
그리고.
번쩍!!!
새파란 광선이 원립에게 날아간다.
푸른 광선에, 순간 천지가 밤이 된 듯, 광선으로 온 빛이 쏠린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쿠과과과!
소리가 뒤늦게 따라오며 사방이 진동했다.
쉬이이이….
먼지구름이 비산한다.
만리민랍이 혹시나 하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해치웠….”
[그럴 리가 없지. 막리세가와 진씨세가, 그 밖의 모든 세가들에서 공격을 퍼부어 주시오!]
청문중진이 내 말을 받아 사방으로 전달하였다.
그리고, 막리세가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준비해 오던 음도호풍의 법술을 원립에게 날린다.
진씨세가 역시 양융적색화의 법술을 일제히 원립에게 날렸다.
수 명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진법의 힘을 빌어 한데 펼치는 광역 신통이, 한 존재에게 쏘아진다.
“해치….”
[안 해치웠소. 이제부터가 시작일 터이니, 모두들 준비하시오.]
나는 저주문을 더욱더 쏟아내며 먼지구름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구름 안쪽으로 핏빛이 뻗어 나온다.
청문중진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울렸다.
“산개!!!”
콰과과광!
시뻘건 핏빛 광선이, 우리가 있던 곳으로 내쏘아졌다.
그리고, 먼지구름이 잦아들어 갔다.
쿠구구구―
흑색의 성 위쪽.
그곳에는 오연히 서 있는 원립과, 그의 아래에 도열해 있는 수천 마리의 흑적색 강시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와 있는 그의 모든 법보와 기물들.
거기에.
원립은 한 손에는 못 보던 핏빛의 파초선 역시 하나를 들고 있었다.
[200년은 나에게도 너희에게도 적은 시간은 아니었겠지. 어디 놀아 보자꾸나….]
휘잉!
그가 핏빛 파초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바람을 부치자, 피 안개가 섞인 혈풍(血風)이 천지사방으로 뻗치며 결단기 연합 전체를 밀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