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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수선전-118화 (118/185)

네가 밟아온 것 (6)

콰앙!

나는 바로 전각을 박차고 나섰다.

파츠츠츳!

나를 붙잡고 있던, 책에서 튀어나온 새파란 팔은, 어느덧 빛무리에 감싸지더니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해룡궁 전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전혀 멈추지 않았다.

‘해룡왕의 잔념(殘念)…!’

격으로만 따지면 잔혼인 송진보다도 한참 낮은, 해룡왕의 의식 찌꺼기.

그러나, 그런 하찮은 것이, 해룡궁 전체로 퍼져 나가며, 곳곳의 천지영력을 일깨운다.

그리고.

쿠웅, 쿠웅, 쿵!

해룡궁의 전각들이, 하나하나 전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각 안쪽에서 수많은 기물(奇物)과 법보들이 튀어나와 허공에서 빛난다.

파아아앗!

삽시간에 온 사방이, 해룡궁의 수많은 기물들이 뿜어내는 빛살에 새파랗게 물드는 듯했다.

‘이게….’

“선배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서란이 용형으로 변해 이쪽으로 날아들어 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았다.

“서 도우….”

“예, 선배님.”

“도망칩시다.”

쿠구구구구!

푸른 빛의 수 속성 법보들이, 한데 뭉치더니 서휼의 잔념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법보들에서 뿜어지는 빛들이 일렁이며, 거대한 한 마리 청룡의 형상을 취하였다.

마치, 서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쿠과과광!

법보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쿠구구구구!

삽시간에 해룡궁이 용의 몸부림에 쓸려 나간다.

법보가 없었던 송진과도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해룡족이 여태껏 모아 온 수많은 법보들을 한데 모아 천인기의 잔념으로 엮어 부리는 것이니….

그 위력은, 원영기에 한없이 가까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선배님! 옵니다!”

피이잉!

용이 우리를 향해 꼬리를 내리친다.

쿠과과과!

어마어마한 파괴흔이 남았다. 하지만, 진짜는 그다음부터였다.

달각!

용의 꼬리에서, 비늘을 이루고 있던 작은 법보 하나가, 용이 꼬리를 치운 후에도 남아 있었다.

“제길!”

파아아앗!

그리고, 그 법보가 푸른 빛에 휩싸이며 주변으로 빛을 흩뿌린다.

콰아아아앙!

법보가 자폭한다!

나는 서란의 앞에서 자폭의 여파를 막아 내며 폭발을 걷어 내었다.

손이 찌릿거렸다.

‘안 그래도 봉인을 뚫을 때 산외산부진을 펼쳐서 몸이 안 좋은데….’

거기에 자폭을 한 번 막아 낼 때마다 팔이 떨린다.

도망쳐야 하건만….

‘사방이 막혀 있다….’

사방이 봉명성의 봉인으로 막혀 있었고, 우리가 들어온 구멍조차 저 법보 더미의 용이 막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법보들까지 하나하나 소멸시키고 있군….’

거기에 우리가 피해가 눈에 띄게 보이지 않자, 법보의 용은 점차 많이 법보를 자폭시키고 있었다.

“저 자폭, 어떻게 할 수 없나?”

“…무리입니다. 게다가….”

서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저 요술의 용이 점차 법보의 힘을 끌어내며 밝아지는 게 보이실 겁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와 싸울수록 법보의 용은 몸체를 구성하는 법보 더미는 점차 푸른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저게 완전히 환해지면, 용 전체가 자폭할 것입니다.”

뿌드득….

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를 갈았다.

‘서휼…!’

그가 노린 것이 서란이었든 아니었든.

어쨌든 결국 이곳에서 그를 상대할 법보들을 얻어 원립을 밀어붙이려던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파아아앗!

청룡의 형상이 계속해서 달아오른다.

이대로 가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

그리고 그때였다.

콰과과광!

봉인진의 한쪽 면이 흔들리더니, 진의 면 너머로 시커먼 폐함의 뱃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섭명함이었다.

[타라!]

송진이 외쳤고, 우리는 청룡의 몸부림을 피해, 겨우겨우 섭명함으로 날아가 올라탔다.

고오오오오!

청룡이 울부짖었고, 청룡의 몸체가 완전히 백열하였다.

저 거대한 거체가, 자폭한다!

그리고 동시에, 송진이 조타륜을 잡으며 공간 전송을 시도하였다.

섭명함이 귀무에 휩싸이며 허공간으로 이동했고, 우리는 해룡궁 전체가 푸른 빛에 휩싸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룡궁에서 탈출하였다.

* * *

[…그래서, 제자가 구조 신호를 보냈길래 가 봤다만… 결국 해룡궁에 있는 법보들이 그 청룡 형태로 변해서 싹 다 자폭했다는 게냐?]

송진은 두개골을 집게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아무 수확이 없다는 거로군….]

서란도 송진도 울적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에게, 전횡의 일기장을 보여 주었다.

“난리 통에 챙겨 온 거요. 이 일기장을 덮었을 때, 서휼이 일기장에 남겨 둔 잔념이 발동하여 그 난리를 쳤던 것이지.”

[흠, 확실히, 서휼의 의식이 깃들었던 것이 느껴지는구나.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놈의 의식이 발동하며, 정해진 정보를 전달하게 하는 구조야.]

정말, 주도면밀한 자였다.

혹여나 서란이 우연하게 섭명함을 부수고도 살아남는 데에 성공하여, 해룡궁에 도달했을 때.

그때에도 반드시 죽여 버리는 방식이었으니까.

‘이렇게까지 해서 서란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그럼, 이제 이 책에 더 깃든 뭔가는 없소?”

난 혹여나 또 다른 해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송진에게 건네며 물었다.

[그렇다, 내 안목으로 볼 때 더 뭔가가 있지는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란에게 이것을 건넸다.

‘다음부터는, 함부로 일기를 펼치지 말고 송진을 데려와 먼저 이걸 보여 주는 게 낫겠어.’

서휼의 의식이고 뭐고, 송진에게 건네준 다음 남은 그 잔념을 섭명함에 먹여 버리면 알 게 뭐란 말인가.

“해룡족의 천문관, 전횡이라는 자의 일지요. 한번 읽어 보시오, 그자가 서 도우가 읽으라고 남겨 둔 듯싶으니.”

“아, 전 장로님의…!”

서란은 흠칫 놀라며 얼른 일지를 받아들었다. 그가 일지를 읽는 사이, 섭명함은 다시 흑풍해의 그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 수확은 이 정도이려나….’

아마 그 정도 폭발이면, 다른 전각들은 물론이고 해룡궁에 남아 있을 영약들도 모조리 한 줌 가루가 되었을 것이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나는 송진에게 해룡궁의 구조, 그리고 내가 본 주술진에 대해 물었다.

“하여, 혹시 해룡궁의 구조가 말하는 주술진에 대해 혹시 아는 바 있소?”

[음, 네가 말하는 주술진이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군.]

송진은 턱뼈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의문에, 정신없이 일지를 읽던 서란이 잠시 고개를 들고 결인을 맺었다.

우우웅!

우리의 눈앞에 영력이 맺히더니, 내가 알고 있는 그 주술진의 형상이 되었다.

서란이 요력을 불어넣자, 주술진이 작동하며, 잠이 깨고 내 의식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주술진을 말하는 겁니다. 스승님.”

[아, 이거 말이군! 흑색귀골곡이랑 표현 방법이 달라서 뭔가 했더니….]

송진이 알아챈 듯하자, 서란은 다시 일지를 읽는 데에 집중했고, 송진은 눈앞의 법술을 보며 말했다.

[상단전을 각성시키는 법술을 요족의 요술진으로 표현한 것이, 이 진이네.]

“상단전… 각성…?”

[청색귀골곡과 해룡족은, 수만 년 동안 대해의 패권을 두고 다퉈 왔던 세력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법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도 했지. 그리고 그중 하나가….]

우웅!

송진의 손끝에서 뿜어진 귀력이, 그 자신의 백회혈 쪽으로 향했다.

[이 ‘각성의 술’이야.]

백회혈로 들어간 귀력이, 송진의 두개골 안쪽을 회전하는 듯하더니 얼마 후 송진의 미간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건…?”

나는 저 법술을 본 적이 있었다.

일전, 백골귀마 허곽이 김 주임의 의식을 강제로 각성시킬 때 사용했던 술법.

그리고, 진씨세가에서 상단전에 귀혼을 불어넣어 재능을 증폭시켰던 술법과 굉장히 흡사했다.

‘당장 영훈 형님이 사용하는, 상단전 격발 역시 백회에서 시작해 미간으로 정순지력의 흐름을 인도하며 불태우는 것이니까….’

완전히 흐름이 똑같았다.

[나는 서휼의 진면목을 모른다만, 어쨌든 그자는 대외적으로는 부드러운 성군이었고, 늘 해룡족들이 정갈한 마음을 가지기를 원했다. 때문에 정신을 맑게 유지시키는 각성의 술을 해룡궁 자체의 구조를 이용해서 펼쳤다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지.]

“….”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그 ‘정신 각성의 술’을 봉명성의 숨겨진 층에 펼쳐 놓았단 건가?

나는 서휼이 한 짓을 송진에게도 말했다.

혹시 그라면 뭔가를 떠올릴지도 몰랐으니.

하지만 송진은 내 말을 듣고도 생각나는 것이 없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군, 왜 봉명성의 조정실에 그런 걸…?]

“조정실?”

[그렇다. 너희들이 들어갔던 숨겨진 층은 봉명성의 조정실이야. 네가 보았던, 봉명인을 놓을 만한 대 위로 봉명인을 올리면 그를 통하여 봉명성의 조정이 가능하지.]

이건 나름 새로운 정보였다.

‘조정실에 굳이 정신 각성의 술을 펼쳐 놓았다…?’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놈이 바라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를 고민할 때.

드디어 전횡의 일지를 다 읽었는지, 안색이 극히 어두워진 서란이 쓴웃음을 지으며 일지를 덮었다.

다행히 아까의 것으로 서휼이 부려 놓은 수작은 끝난 것인지, 또다시 일지에서 푸른 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저는, 정말로 모든 분께 버림받고 커 왔던 것이었군요. 그나마 마지막에 마음을 트신 전 장로님을 제하면….”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고통이 섞여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파공주로 자살하기 이전의 표정인가….’

“제가… 살아 있는 의미는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를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전 같았으면, 그를 위로해 주기 위해, 혹은 그가 상처를 덜 받게 하기 위해 조금 배려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나마 그가 고통스러운 의념을 흘리자, 그에 조금 동병상련이 일 뿐이었다.

‘위로라는 걸,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따스한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전에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했던 거려나.’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서란까지 자살하면, 더더욱 우울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겨우겨우 기억을 떠올려, 그를 위로해 주었다.

“걱정 말게, 서 도우. 자네는… 이제 진정으로 사제의 연을 맺고, 그 안에 있잖은가. 자네를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니, 그에게서 의미를 찾으면 될 터….”

“…그렇, 습니까….”

내 말에 그나마 서란의 얼굴에 있던 그림자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서 감사를 받고, 퀭한 눈으로 송진을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든, 사실 이리되면 원점이었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소만, 마지막 소원권을 써서 정말로 도와주시면 아니 되외까?”

[…휴….]

송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제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200년이라면… 그 안에 제자 녀석을 결단기로 만들어서, 너를 돕게 해 줄 테니까. 물론 나 역시 도울 것이고.]

“…고맙소.”

그렇게, 해룡궁에서는 현실적으로 큰 수확은 얻지 못했으나, 어떤 것보다 귀중한 정보를 상당히 많이 알아냈고, 송진에게서 나를 돕겠다는 약조 역시 확실하게 받아 내었다.

나는 그에게서 약조를 받은 후, 흑풍해를 나갔다.

* * *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청문세가에서는 그사이에 나와 함께 진법과 장생과를 회수했고, 이제 전 대륙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모이는 대회의가 열릴 날이 다가왔다.

휘이이이!

나는 북쪽의 대초원을 빠르게 박차며 날아갔다.

‘이 근방일 텐데….’

나는 초대권으로 받았던 부적을 들고 주변의 영기를 감응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우웅!

나는 저 멀리, 진법에 가려져 있던 어떤 장소를 감응할 수 있었다.

타닷!

환영진으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던 장소였다.

그러나 그 장소에 부적을 가져다 대자, 진법이 빛나더니 내가 지나갈 길을 터 주었다.

나는 진법에 난 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북쪽의 대초원답게, 진법 안쪽에는 수많은 하얀 천막들이 잔뜩 쳐져 있었다.

그 천막들에는 수도자들의 천막답게 수많은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있었고, 그 안쪽으로 결단기 수도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 왔소, 서 수사?”

저 멀리서 청문중진이 내게 다가오며 반가운 얼굴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어 대답을 했다.

“여전하시구려.”

“….”

그는 내 표정을 보며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웃는 법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퀭한 눈빛은 바뀌지가 않았으니.

지금의 이, 퀭한 표정 외에 다른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때 진법 너머로 또 다른 사람이 넘어왔다.

갈의 방립 노인.

월량이라는 자였다.

그 역시, 나와는 다르지만 10년 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잔뜩 노한 표정.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간단하게 서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회의장이라는 가장 큰 천막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였다.

“잠깐, 너….”

월량이라는 노인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허리춤에 찬 그거, 왜 네가 그걸 차고 있지…?”

“…?”

난 허리춤에 찬, 향화의 유품.

옥빛 노리개를 바라보았다.

“내 정인의 유품이외만.”

“뭐…? 그건… 내 고손자가 차고 다녔던 물건인데…?”

“아….”

나는, 어이없게 북향화의 운명의 상대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운명의 상대는,

내가 회귀를 한 시점에서 이미 진즉 원립에게 잡아먹힌, 월량의 고손자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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