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14화 (114/185)

네가 밟아온 것 (2)

[프흐흐, 어디 한번 해 보거라. 기다리고 있겠다. 200년 후에 날 최대한 재미있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니….]

결계 안쪽에서, 원립은 우리를 비웃으며 기척을 죽였다.

“우선 노괴가 듣는 앞에서 계획 등을 회의할 수는 없으니. 우선 각 세력의 장들께서는 세력으로 돌아가시어, 답천사막 대학살과, 200년 후의 대전쟁에 대비할 준비를 시작해 주시기 바라외다!”

청문중진이 그리 말하였고, 동방의 군주 중 하나라는, 전신에 새하얀 붕대 같은 것을 두른 수도자가 우리에게 외쳤다.

“그리고 전 대륙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다음 번에 모여 회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오. 언제쯤 다시 만나 회의를 열 것인지 결정하고 갑시다.”

그의 말에 잠시 두런거리는 것 같던 결단기 수도자들이, 점차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해, 친지를 잃은 결단기 수도자들 몇몇.

그리고 나와 같은 산수라는 갈의 방립 노인은 텅 빈 표정으로 원립의 성 옆에 서 있었다.

얼마 후.

결단기 수도회의의 시기와 장소가 정해졌다.

시기는 지금부터 10년 후.

동방의 부족 국가들과, 서방의 성제, 연, 벽라 삼국의 수도자들이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는 북방 대초원.

대초원에서도 원립에게 첫 번째로 학살당한 초원 부족의 마을이었다.

각 가문의 가주들에게 회의의 초대장으로 쓰일 부적들이 주어졌고, 세력이 없는 나와 결단기 산수 3명에게도 따로 초대장이 주어졌다.

그렇게, 결단기 수도자들은 시기와 장소, 그리고 초대장을 받고는 각자 비둔술을 사용하여 그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친지를 잃은 북쪽 대초원의 결단경 부족장 두 명.

청문령을 잃은 청문중진.

그리고 산수 세 명과 나.

우리는 모든 결단기 수도자들이 돌아간 후에도 잠시 남아 흑색의 성을 노려보았다.

그 중 산수 두 명은 얼마 후 분노를 삭이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듯했으나, 방립을 쓴 갈의 노인과 나, 청문중진은 그대로 해가 져 버릴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다.

한참을 눈이 빠져라 흑색의 성을 노려보던 우리는, 달이 중천에 뜰 때가 되어서야 하나 둘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제 가겠다. 령이의 유해를 수습해야 하니.”

“…저도 같이 가지요.”

‘유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벽라국 방향을 바라 보았다.

청문중진은 갈의 방립 노인에게 말했다.

“월량 노사께서도 수습하실 사람의 유해가 있지 않으십니까? 노괴를 아무리 노려보셔 보았자 의미가 없으니, 후일을 기약하고 물러나지요.”

“…상관없다.”

갈의 방립 노인, 월량은 이를 갈며 말했다.

“내 고손자 내외는, 이번 대학살 때 죽은 게 아니니라. 대략 10여 년 전에 살해당한 녀석이었고, 지금껏 흉수를 찾지 못해 전 대륙을 떠돌아다녔다만…. 이번 대학살 때 저 노괴 놈이 학살극에 남긴 법술을 보고, 놈이 내 고손자 내외를 죽인 놈이라는 걸 확신했다. 고손자의 유해는 십 년 전에 진즉 수습하였으니 신경 쓰지 말고 가라.”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후손은 답천사막 대학살 때에 죽은 것이 아닌 대략 10여 년 전에 원립에게 살해당했고, 그는 이번 대학살 때에 자신의 후손을 죽인 범인이 원립이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뿜어지는 의념을 읽어내며 물었다.

“후손을 많이 아끼셨나 보오.”

그가,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내게 뭐라 하려던 모양이었으나, 내 텅 빈 눈을 들여다보고는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너는 누구를 잃었지?”

“정인, 스승, 친구. 그리고 이웃들.”

“…그런가. 내 후손 녀석은… 내가 가장 아끼던 녀석이었다. 나도 네 기분을, 너도 내 기분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아마 우리 서로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겠지.”

뚝, 뚝….

그는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몇백 년이 걸리든, 놈을 쥐어뜯어 그 육신으로 젓갈을 담가 먹고 싶은 기분이니라….”

그는 다시 원립이 갇힌 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먼저 가서 이번에 가 버린 소중한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 주어라. 나는 내일쯤 출발하지. 이 분노를 삭이고, 훗날에 놈을 함께 죽일 날을 고대하겠다.”

나와 청문중진은 잠시 그를 보았다.

우리는 말없이 그를 내버려 두고 벽라국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 * *

천색성에 다시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휘이이이―

사막의 모래 폭풍을 뚫고 도착한 천색성은, 엉망이었다.

“….”

“….”

성 곳곳에는 피가 낭자해 있었으며, 성벽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성문은 무너져 있었으며, 그나마 성벽만이 그럭저럭 형태만 남아, 한때 이곳이 성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성 안쪽은, 여전히 처참했다.

수많은 민간인들, 수도자들의 유골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나와 청문중진은 다른 이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덟 조각으로 나뉘어 가지런히 놓인 김영훈.

목이 사라지고 단전에 구멍이 뚫린 북중호.

혈목이 전신에 돋아나 있는 청문령.

하반신이 사라진 북향화.

그들은 유해는 지난 며칠 동안.

사막의 건조한 공기에 노출된 채로 있었던 터인지, 전부 반쯤 썩었다가 말라붙어 보존되어 있었다.

청문중진은 말없이 청문령의 유해로 다가가, 그의 육신 안쪽에서부터 뻗어 나온 혈목을 차츰차츰 제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김영훈에게 다가가, 여덟 조각으로 나뉜 유해를 수습해 주었다.

‘내단이… 없군.’

그의 사체를 다시 합치자, 김영훈의 단전 역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내단이 사라진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후 주변을 돌아다니며 북중호의 목과 북향화의 하반신을 찾아보았다.

북중호의 목으로 보이는 고기 조각은 찾을 수 있었으나, 북향화의 하반신은 어디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북중호의 목만을 가지고 가 그의 시신 위에 다시 놓아 주었다.

나는 쭉 다른 이들의 시신들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김영훈의 경우엔 뭔가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북중호와 북향화.

그리고 청문령은 할 것을 다 했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나는, 이만 가 보지.”

청문중진은 어느새 청문령의 유해에서 혈목을 전부 제거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한 후 안아 들고 내게 말했다.

“령이의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면, 한 달 후 본가에 찾아오게나. 자네가 령이의 벗이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맞아 주겠네.”

“…알겠소.”

청문중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청문령의 유해를 안아 든 후, 둔광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백골들과 시체들.

이미 말라붙어 버린 핏자국들.

그리고.

비쩍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는 이들의 시신들.

마지막으로, 하반신이 아예 사라져 찾을 수도 없는 북향화의 시신.

덜, 덜덜….

나는 이를 악물며, 손을 떨었다.

주변으로 의식을 뻗어, 이 자리에 남아 있는 혼(魂)들이라도 있는지 찾아보았다.

모두가 이 자리에서 원통한 죽음을 당했으니, 원귀라도 되어 있진 않을까 해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민간인들은 물론이고, 영력이 강한 수도자들조차 단 한 명도 원혼으로 남아 있는 이는 없었다.

한이 없을 리는 없었고, 아마….

쨍―

나는 뜨겁게 내리쬐는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사막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천색성 특유의 그 강렬한 양기(陽氣)를 버티지 못하고, 있던 원혼들마저 햇빛에 의해 전부 강제로 승천한 게 아닌지 싶었다.

나는 한참을, 한참을 멍하니, 북향화의 시신 앞에 멍청하게 서 있었다.

아직도 조금 현실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지독한 악몽이라고, 누군가가 말해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멍청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북향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뜩 말라 비틀어져 죽어 버린 북향화의 얼굴이, 내 눈동자에 비취어 왔다.

“아….”

그리고, 그제야.

나는 현실감이 조금 들어왔다.

“아, 아아… 아아아….”

이것은 현실이었다.

나는, 이 끔찍한 현실에 서 있었다.

“아아아아…!”

나는, 털썩 주저앉아, 기어가듯이 상반신만 남은 그녀의 시체에게로 다가갔다.

부들부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사체에 손을 가져가, 혹시라도 망가질까, 나는 조심스레 시체를 들어, 껴안았다.

그녀의 시체는 가벼웠다.

원래도 가벼웠지만, 하반신이 사라지고, 며칠 동안 말라붙어 있던 탓인지.

정말로. 깃털만큼 가벼웠다.

꼬옥….

나는, 그녀의 남은 몸을 껴안고, 한 손을 들어 그녀의 뒤통수를 받친 후, 내 머리를 그녀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둘의 이마가 부딪혔다.

삼류 소설도 이리 우습진 않으리라.

서로 사랑한다고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아니, 그 말을 하기 직전에 모든 것이 산산이 조각난다?

마치 삼류 작가가 억지 신파를 위해 쓴 작위적인 설정처럼.

모든 게 억지 같고 작위적인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운명이란 뭐란 말이냐…!”

도대체 왜 나에게서 앗아가는 것이냔 말이다!

“왜 도대체 내게!”

왜! 왜! 왜!!!

끄읍, 끄읍….

나는 북향화의 시신에서 잠시 떨어져, 가슴을 두들겼다.

카학, 카하학!

쾅! 쾅!

가슴을 두들기자, 입에서 저주문 덩어리가 다시금 튀어나왔다.

뚝, 뚝뚝….

쉬이이이―

몇 개일까.

나는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저주문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대략, 삼천 개 정도인 듯싶었다.

108개를 다뤘다는 창시자의 수준을 진즉 뛰어넘었다.

무공에는 어떤 무공이든, 그 무공을 만든 이의 의(意)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의를 깨달으면 그 무공의 극의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는 무공이 아닌 수도선술에도 있었다.

나는 이제야 음혼귀주문의 창시자가 음혼귀주문을 만들며 새긴 깨달음.

음혼귀주문의 의(意)를 깨달았다.

인간의 운명은 곧 고통(苦痛).

사람의 삶은 곧 저주(詛呪).

이 세상은, 고통으로 이뤄져 있다.

나는 이를 갈았다.

여러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분노와 고통.

절망과 슬픔.

다음에 든 감정은 미안함과 수치심.

나 자신에 대한 자학심이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전 내 아집과 미련함. 그리고 나약함으로 인해 갇혀 있었던 제자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에게 심어진 ‘분노’는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것도 있겠으나, 진씨세가에서 친지의 원혼을 심어, 법술로 증폭시킨 것 역시 있었다.

그렇기에 그 아이들을 막아섰다.

그때의 나는 아무 힘도 없었고, 어리석었으며 할 수 있는 것 역시 없었기에.

그 멍청한 아집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내가 키운 녀석들이 개죽음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했던 짓이 얼마나 멍청한 아집 덩어리였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하다….’

어쩌면, 어떤 인간은 개죽음을 당하더라도 복수를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너희들을 막아서 놓고, 지금 너희와 똑같은 맹세를 하려 하는구나….’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아니, 늘 한심스러웠다.

매번 죽을 때마다.

매번 시간이 되돌아갈 때마다.

한심스럽고, 고통스러웠다.

단순히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북향화로 인해 봉합되었던, 잠시 잊고 있었던.

그동안의 삶에서 얻었던 그 모든 고통과 상처를, 그녀를 잃고 나서야 다시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시신을 유리 공예품처럼 조심스레 끌어안으며 뇌까렸다.

“맹세… 하겠습니다.”

주변에 흩뿌려진 핏물은 말라붙어 검게 변했고.

피 냄새도 모래바람에 흩어져 희미해졌지만.

내 주변은 나를 뒤덮은 의식 영역으로 인해,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 코끝에 아스라이 혈향(血香)이 풍겨오는 듯했다.

“그 녀석을 잡아… 금단(金丹)을 잡아뽑아 으스러뜨리고, 원영(元靈)을 뽑아 찢어 흩어 버린 후….”

칠공에서 시커먼 저주문을 뿜어내며, 나는 핏빛의 의념과, 검은빛의 저주문 속에서, 백의를 입은 채 죽은 북향화의 시신을 꼬옥 끌어안았다.

“놈의 사지(四肢)를 뜯어 뽑아… 동서남북 사방에 던져 뿌려 놓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그 구멍에, 고통이 가득 차올라서,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도 않을만치 먹먹하다.

“남은 육신을 발기발기 찢어… 개 떼에게 흩어 던져 준 다음….”

저녁놀이 천색성에 드리우고 있었다.

천색성 인근은 어느새 새빨간 저녁놀에 잠겨 온 사방이 붉어져 있었다.

나와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답천사막 방향으로 늘어져 있었다.

“흉수의 수급(首級)만을 남겨… 당신의….”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다시 주변을 바라보았다.

북중호, 김영훈.

이 자리에는 없는 청문령.

그리고, 천색성에서 학살당한, 모든 이웃들.

종이 가게의 노파, 묘목 가게의 주인, 천색성의 경비병, 연인들, 아이들, 여인들, 청년들….

“그리고… 그 놈이 짓밟아온 이들의… 영전(靈前)에 바쳐, 향을 피우겠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부르짖는건지.

그 자신도 모른 채, 하늘을 향해 거친 목소리로 맹세하였다.

“반드시… 그리하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나는 피눈물과 검은 눈물이 섞여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복수를 맹세하였다.

나는, 비틀비틀 일어나, 천천히 다른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 천색성에 묻어 주기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 천색성은 그렇게 거대한 공동묘지가 되어 갔다.

나는 북향화의 유언대로, 북중호는 그의 아내 연의 묘소 옆에 무덤을 만들어 안장해 주었고, 북향화의 상반신은 그녀의 공방 아래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북향화의 공방에 들어가, 내 볼품없는 제련 실력으로 유리 공예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괜히 어설프게, 불가사리를 닮았다는 인형이나 꽃 같은 것은 만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장 잘 만드는 것.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만들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검 형태의 공에품.

나는 사막의 모래를 녹여, 유리 비검 공예품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

그리고, 나는 유리 검들을, 묻어 준 천색성 사람들의 무덤 앞에 부장품으로 꽂아 주었다.

벽라국에선 죽은 이들에게 유리 부장품을 놓아 주니, 그에 맞는 장례 형식이기도 하였다.

며칠 후.

천색성은 수천 개의 유리 검들이 무덤에 꽂혔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김영훈의 앞에, 유리 도(刀)를 꽂아 도묘(刀墓)를 만들어 주었다.

털썩!

이제 내일이면 청문세가에서 청문령의 장례가 치러진다 한다.

나는 청문령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전, 북향화의 무덤 앞에 앉았다.

아직 그녀의 무덤에는 유리 공예품을 바치지 않았다.

내 뒤로는 이미 수천 자루의 유리 검들이 꽂혀 있었건만.

나는 아직,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그래, 나중에.

그녀에게 바칠 부장품은, 원립의 목을 이들의 영전에 바친 그 후에 만들어, 그녀의 무덤에 놓아두자.

나는, 그녀가 남긴 옥색 노리개를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뚝, 뚜둑….

시커먼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얼마간 이 앞에서 묵념한 나는, 북향화가 남겨 둔 목함을 꺼냈다.

목함에 안에 담긴 것은 법보는 아니었다.

그저, 법보를 만들 수 있는 법보의 설계도.

나는 법보의 설명을 읽어내려 갔다.

북향화는, 내가 말한 모든 조건을 지킨 법보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법보의 이름은 무색유리검(無色琉璃劍).

법보의 재료는 사막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모래였고.

회로는 간결했으며.

그녀가 지금껏 내게 제일 많이 연습시켜 온, 유리 비검 형태의 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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