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10화 (110/185)

연 (18)

“네?”

내 말에, 그제야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북향화도 눈을 떴다.

“공기 중에, 비린내가 갑자기 진동하는군요.”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건….’

운수가 흉(凶)하게 물들었다.

요족의 지각으로 주변의 영력을 바라보자, 주변의 영기들 역시 불길하게 진동하는 중이었다.

“향화 선자, 어쩐지 천기가 흉합니다. 들어가 계십시오.”

“오라버니….”

잠시 나와 같이 천기를 읽던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저도 무슨 일인지는 파악을 하겠어요.”

나는 그녀를 뜯어말리기보단, 더더욱 의식을 집중하며 냄새의 발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냄새가 성 자체에서 풍겨오고 있단 걸 깨달았다.

‘뭐지? 성 전체가….’

내가 당황스러워할 때였다.

휘이이이이!

갑작스레, 동쪽.

답천사막 방향으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답천사막 동쪽.

저 먼 곳에서, 뭔가 붉은 구름 같은 것이, 지평선 너머에서 기어올라 오고 있었다.

오싹, 오싹!

갑자기 피부 곳곳이 아리기 시작했다.

진득한 악의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성벽 위쪽으로 다른 이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청문령, 김영훈, 북중호 등.

“저건, 뭐지?”

“그보다 성에서 갑자기 영력이 기이하게 꿈틀거리고 있네!”

“혹시 청문 수사는 청문세가에 연락이 닿으십니까?”

김영훈은 경계가 서린 표정으로 도를 뽑아 들었고, 청문령은 전음부를 꺼내들고 청문세가에 연락을 넣었다.

북중호는 성관부 전체에 전음을 보내며 명령을 하는 모습이었다.

쿠구구구!

그리고, 저 멀리서 넘어오는 핏빛 구름을 보며, 나는 한 존재를 떠올렸다.

‘혈목자, 원립!’

저 자가, 왜 이곳으로?

의문이 들었으나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북중호에게 물었다.

“저기서 오는 존재는 혈목자 원립이란 자로, 결단 대원만을 넘어선 마도 수도자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일상처럼 여기는 자이니, 이곳으로 오는 것 또한 그런 연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성내 주민들을 피신시킬 방도는 없습니까?”

“일단 그래도 천색성에는 수도자들이 많으니, 그들의 비행법기에 민간인들을 태우면….”

그 때였다.

취이이이익!

성 자체에서 나던 피 냄새가, 짙어지다 못해 사방으로 피 안개를 뿜어냈다.

“뭣…!”

그리고, 피 안개들이 뭉치며, 핏빛 기둥으로 변했다.

총 여섯 개의 핏빛 기둥이 생겨나 성을 둘러쌌고, 핏빛 기둥들 사이로 붉은 빛의 장막이 나타나 성 전체를 둘러쌌다.

쿠구구구구!

동시에, 성 아래쪽의 용맥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건…!”

동시에, 성 아래쪽에서 들끓는 용맥의 기운에 맞춰, 내 체내의 기혈도 조금씩 움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아아악!”

“모,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으아아악!”

“사, 살려 줘…!”

성내 주민들.

그 중 범인인 이들은 전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엎어져 버둥거렸다.

그나마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은 사정이 조금 나아 보였으나, 그들 역시 들끓는 기혈을 진정시키느라 가부좌를 틀고 끊임없이 운공을 해야 했다.

김영훈 역시 기혈이 들끓는 듯했으나, 그는 내단 덕택인지 기혈을 금세 잠재우고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이건, 혈제(血祭)의 진이다!”

청문령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혈제?”

“인신공양 말일세! 마도 수도자들이 생명을 대량으로 공양하여 생명력과 수행을 끌어올리는 방법 말이야!”

“…!”

내 안색이 일그러질 때, 김영훈은 능광도를 뽑아 핏빛 벽을 바로 후려쳤다.

콰아아앙!

황금빛 도광이 핏빛 벽을 후려쳤으나, 핏빛 벽은 성의 용맥과 연결된 탓인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제길, 꿈쩍도 안하는군.”

“서 도우. 혈목자 원립이란 이는 어떤 자인가? 혹시 아는가?”

“그 자는….”

문득, 나는 그제야 지난 삶.

지지난 삶, 지지지난 삶들에서도 들었던, 한 사건을 떠올렸다.

답천사막 대학살.

답천사막 인근에 있는 부족과 성들에, 잔인한 학살극이 일어난 사건.

그리고 그 학살극으로 인해 수많은 수도세가 결단기 가주들과 원로들의 심기가 곤두섰고, 그는 200년 후의 대전쟁의 원인까지 되었다.

‘아니, 뭔가가 이상한데?’

이전 생.

내가 북향화를 만났을 때는 회귀 후 40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10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왜, 사건이 몇십 년이나 앞당겨진 거지?’

나는 이를 악물고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문 도우, 혹시 이 혈제진을 해체하실 수 있으십니까?”

“…용맥과 연결된 진일세. 시도는 해 보겠지만, 시간이 걸려.”

“그럼 시간은 저희가 벌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 사이에 최대한 빨리 진을 해체해 주십시오.”

“…알겠네.”

청문령은 굳은 얼굴로 성 아래로 내려가, 진법의 축들을 붙잡고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김영훈과 북중호를 보며 말했다.

“지금 오는 자는 혈목자 원립이라는 마도 수도자로서, 그의 경지는 결단 대원만, 혹은 그를 조금 넘어섰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전 생보다 학살극이 빨리 일어났다.

‘아무리 그래도 원영기의 실력을 이 시간에 바로 얻지는 못했을 거야.’

그가 가진 경지를 한 단계 뛰어넘게 해 준다는 법보 역시, 내가 봤던 흑색의 성 형태 법보로, 그는 그 ‘안쪽’에서만 경지가 높아졌다.

‘지금은 대놓고 바깥으로 나왔다. 하니 어쩌면….’

나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결단기급 무인인 나와 김영훈의 합공이라면, 어쩌면 원립을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와 김 형은 결단기급의 실력을 지녔으니, 저 자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니 저와 김 형이 시간을 끌 동안, 북 어르신과 향화 선자는 전투의 여파가 천색성 사람들을 덮치지 않게 천색성을 보호해 주십시오.”

북중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북향화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으시겠어요, 오라버니?”

난 벌 괴뢰를 흘긋 보며 말했다.

“향화 선자, 혹여 괴뢰를 통해 나갈 수 있다면 선자는 지금 바로 나가 주시지요.”

“하지만, 천색성은 제가 자라 온….”

“향화 선자.”

턱.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부디, 시도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잠시 후, 북향화는 괴뢰의 몸에 새겨진 공간 법진을 발동시키고, 괴뢰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벌 괴뢰는 허공을 빠르게 쇄도하다 공간 전이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혈제의 진에 한번 부딪히고 튕겨져 나올 뿐이었다.

“…저 진이 공간 전이 역시 방해하고 있어요. 최소한 진이 조금은 약해져야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향화 선자. 혹시라도 청문 도우가 진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킨다면, 바로 벌 괴뢰로 도망치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오라버니, 하지만….”

“약조해 주십시오.”

나는 그녀에게 눈높이를 맞춰 주며 말했다.

“저는 죽어도 되니, 당신은 살아 주셔야 합니다.”

“향화야, 그렇게 하거라.”

북중호 역시 진중한 얼굴로 북향화에게 말했다.

그녀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알겠어요.”

“그럼, 무운을 빌지.”

북중호는 북향화를 데리고 성벽 밑으로 데려가, 성내의 수도자들을 모아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보호법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와 김영훈은 각각 무형검과 능광도를 빼들고, 혈제의 진 너머, 이쪽으로 날아드는 핏빛 구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쿠우우우!

핏빛 구름이 혈제의 진 전체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구름 속에서 핏빛 장포를 입은 한 인영이 점차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는 핏빛의 장막을 손쉽게 투과하여 안으로 들어왔다.

이전과 똑같은 핏빛 장포.

그리고, 반투명한 흑색의 무면탈.

혈목자 원립이었다.

‘지금, 잡아야 한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기껏해야 결단 대원만 수준의 기운.

기껏해야 송진 정도였다.

그리고 송진이라면, 충분히 잡을 자신이 있었다.

‘음?’

그때, 나는 문득 그가 지난 삶과 뭔가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주름?’

그랬다.

지난 삶의 원립은 가면을 쓰고 있을지언정 그의 피부는 매끈했고, 체격 역시 젊은이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원립은 어쩐지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체격 역시 상당히 작았으며, 머리카락은 윤기넘치는 흑발이 아닌, 잿빛을 풍기는 백발이었다.

나는 무형검의 기세를 드러내며 원립에게 외쳤다.

“혈목자 원립! 천색성에는 어쩐 일로 오셨소?”

내 말에,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제길….’

나는 그의 시선 너머, 그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역겨운 심상에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똑같았다.

외면에 조금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의 내면의 심상은 이전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호오, 본좌의 명호를 알고 있느냐?”

원립은 거친 목소리로 가면 안쪽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이한 일이로고. 어찌 내 명호를 아느냐. 그 명호를 아는 분들은 전부 비승했고, 그 외에 알 만한 놈들은 내가 찾아내 다 죽였는데….”

“그런 것은 알 것이 없소. 다만 천인기 선배님들이 비승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찌 벌써부터 성 하나를 둘러싸고 이런 폭거를 부리시외까?”

“하하, 축기기 따위가 그걸 알아서 무얼 하느냐. 시끄러우니 그냥 죽어라.”

쿠구구구!

원립이 결인을 맺자, 그가 끌고 온 피구름이 혈제의 진 안쪽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안쪽에서는 소름끼치는 귀곡성과 피비린내가 잔뜩 풍겼다.

나는 김영훈과 눈짓을 교환하고, 각기 능광도와 무형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과광!

황금빛과 무색의 빛이 사방을 흝으며, 피구름을 흩어 버렸다.

우리의 기세에 놀란 것인지, 원립은 살짝 놀란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았다.

“호오, 축기기가 아니라 정체를 숨긴 결단기 놈들이었나.”

“대답하시오! 아무리 당신이라도 우리 둘을 상대로 무사할 수 있을 성 싶소?”

나와 김영훈은 둘 다 결단기급의 월도입천에 다다랐고, 나 같은 경우에는 축기기의 경지와 월도입천의 경지가 상승 작용을 하며 결단기 최정상급의 힘을 내는 게 가능했다.

거기에 월도입천의 경지 역시 200년을 넘게 참오해 오며 무형검을 숙련했다.

결코 쉬이 지지 않는 것은 물론, 원립이 아직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를 사냥하는 것 역시 불가능만은 아니었다.

“흐음… 좋다. 축기기 벌레급은 아니니 대답을 들을 자격은 있겠지.”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촤아악!

그리고, 그가 턱을 쓰다듬던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쓸었다.

우우웅!

그의 목덜미에서 푸른 빛이 터져 나오며, 어떠한 ‘손자국’을 드러내었다.

‘저건…?’

“10여년 전. 승천문이 열려 있을 시기, 아직 모든 천인기 선배분들이 비승하기 전. 본좌는 한 천인기 수도자의 습격을 받아, 죽기 직전까지 갔다. 천인기 수도자가 갑자기 기분이 풀린 탓인지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가 남긴 이 저주는 사라지지 않고 내 몸을 좀먹었다.”

“….”

‘괴군이 한 짓의 나비 효과…!’

괴군 조연이 뿌린 저주문의 여파가 커지고 커져, 혈목자 원립의 행보를 몇십 년이나 앞당긴 것이었다.

“…결국 본좌는 저주를 풀려면 원영기의 실력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본좌의 혈영(血靈)을 예정보다 조금 일찍 회수하기로 한 거다.”

“혈영?”

“내 명호는 알아도, 그건 모르나 보군.”

원립은 큭큭 웃는 듯하더니 양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그의 양손에서 핏빛이 뿜어지더니, 혈제의 진에 흡수되었다.

동시에, 혈제의 진이 떨려 오며, 내 기혈이 전보다 조금 더 날뛰기 시작했다.

김영훈의 안색이 조금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퍼엉, 펑, 퍼벙!

성 안쪽에서 몸을 비틀던 민간인 중, 몸이 허약한 자부터 시작해서, 그 몸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퍼벙, 퍼버벙, 퍼엉!

그들의 육신이 터지고, 그 안쪽에서 정혈과 생명력이 빠져나와 혈제진의 중심부로 떠올랐다.

“그만둬라!”

나는 대노하며 무형검을 들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김영훈 역시 그 광경을 보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능광도를 펼치며 원립을 노렸다.

그러나.

“쯧쯧. 어리석기는. 네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군그래.”

끼야아아아!

그의 핏빛 장포 안쪽에서, 소름끼치는 귀곡성이 울렸다.

“분명 현 시점에서 내 수행은 결단 대원만이 맞기야 하다만….”

그가 저물대에서 한 지팡이를 꺼냈다.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지팡이는, 수정으로 된 두개골 장식이 위쪽에 박혀 있었고, 나무로 된 몸체에는 사람의 손 같아 보이는 자그마한 나뭇가지들이 빼곡히 자라나 있었다.

슈우우우―

그의 주변으로 다섯 개의 반투명한 핏빛 깃발이 늘어섰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자 적색의 보탑(寶塔) 형태의 법보 네 점이 나와 주변으로 떠올라 그를 호위하듯 도열했으며, 그가 저물대에서 뭔가를 뒤적이자 시뻘건 혈수(血水)가 솟구쳤다.

혈수들은 그의 양 옆으로 떠오르더니 각각 낫을 들고 있는 거대한 귀왕(鬼王)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본래는 원영기 수사였다. 비승할 시점에 들켜서 잡혀가지 않기 위해, 내 원영을 혈영(血靈)으로 흩어 답천사막 인근 곳곳에 뿌려 두어 수행이 잠시 내려갔을 뿐.”

촤악, 촤악, 촤악!

그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저물대와 몸 곳곳에서 뭔가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일곱 개의 족자가 그의 양옆, 귀왕들의 앞쪽으로 펼쳐졌다.

족자에는 피로 그려진 해마, 룡, 팔초어, 청새치, 범고래, 산호초, 조개 등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원영기에 이르면서 모아 온 법보와 기물들, 그리고 원영에 이르며 대성한 신통들 역시 전부 멀쩡하다. 법력만 결단 대원만일 뿐일진대, 네깟 놈들이 감히 내게 대적할 수 있을 성싶으냐?”

촤아아아!

그는 마지막으로 열일곱 개의 뼈로 된 단검 법보들을 입에서 뱉어 내었다.

단검들의 손잡이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해골이 조각되어 있었다.

“덤벼 봐라, 결단기 쓰레기들아. 너희의 금단(金丹)도 함께 잘게 짓이겨 내 혈영에 첨가해 주마. 아하하하…!”

나와 김영훈은 말없이 기수식을 잡았다.

퍼엉, 퍼벙, 퍼버버벙!

저 아래쪽.

북향화와 북중호, 수도자들이 막고는 있었지만 민간인들의 몸이 터져 나가며 그들의 정혈과 생명력이 점차 천색성 중앙의 허공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뿌득….

싸움의 시작은 말이 필요 없었다.

단악검법, 제일초, 월악!

개전(開戰)을 알리는 초식이 가로로 상대를 베어 간다.

키이이잉!

그의 사방을 둘러싼 적색의 보탑들이, 서로 연결되며 적색의 장막을 쳤다.

내 무형검은 장막에 가로막혔고, 그 안쪽에서 원립이 결인을 맺는 것이 보였다.

“거(去)!”

끼아아아아!

혈수로 이뤄진 두 명의 귀왕이 나와 김영훈에게 낫을 휘둘렀다.

“막아라, 내가 뚫겠다.”

“예.”

김영훈이 기운을 모았고, 나는 앞으로 나서 무형검을 펼쳤다.

단악검법, 요산요악!

수백 자락의 궤적이 종횡무진하며 귀왕들의 낫을 막고, 도리어 귀왕들의 몸집을 집어삼켜 갔다.

파아아아앗!

뒤쪽에서 황금빛이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를 피했고, 눈부신 빛살이 앞으로 쏘아져 갔다.

단맥도 산바람의 초식이 앞으로 나아가며 원립을 둘러싼 결계에 충돌했다.

꽈아아아앙!

녀석의 결계가 마구 흔들리는 것 같더니, 결계의 장막이 결국 뚫려 버렸다.

하지만, 장막의 안쪽에선 원립이 여유롭게 결인을 완성한 상태였다.

“해(解)!”

촤아아악!

그의 양옆으로 도열한 족자.

피로 그려진 바다 생물들이 족자에서 튀어나왔다.

“내 혈마진해광(血魔鎭海光)으로 제련한 요혼(妖魂)들이다. 어디 받아 보거라…!”

‘한 마리 한 마리가 결단기급이다…!’

나는 김영훈의 옆에 서며 무형검을 잡았다.

“저 요혼들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폭발적이나, 소모가 빠릅니다. 제가 버틸 테니 형님이 놈에게 접근하십시오. 주변에 있는 핏빛 깃발에 머리가 닿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래.”

단악검법, 산수화!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무형검을 흩뿌렸다.

결단기급 요혼들은 핏빛의 광채를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팔초어의 촉수가 나를 가두고, 청새치가 뾰족한 부리로 나를 노린다.

산호초가 안쪽에서 가시처럼 뻗어 나가며 나를 압박한다.

단악검법, 기석, 괴암!

무형검이 수많은 기이한 변화와 함께 덩어리져 내 주변으로 몰아쳐 공방일체가 된다.

무형검의 회전에 청새치는 튕겨 나가고, 팔초어의 촉수와 산호초의 가지들이 전부 잘려 나간다.

꾸오오오오!

핏빛의 범고래가 그런 나를 향해 달려들며 입을 쩍 벌렸다.

단악검법, 용맥, 유릉.

무형검이 일순간 내 손에서 더더욱 기의 회전을 빠르게 하며 강화되고, 부드러운 찌르기와 함께 범고래의 입 안쪽으로 찔러 들어갔다.

단악검법, 기산심천!

범고래의 안쪽에 들어간 상태에서, 무형검이 크게 증폭되며 범고래의 몸체를 폭발시켜 버렸다.

사방으로 범고래 요혼의 잔혼들이 휘몰아쳤고, 그 틈새로 핏빛의 해마가 달려들며 내게 핏빛의 거품을 뿜었다.

부글부글부글…!

수많은 거품을 보며, 나는 무형검으로 피거품을 전부 쳐 냈다.

하지만 미처 쳐 내지 못한 세 개의 거품이 내게 날아오며 점차 커졌고, 결국 세 개의 거품은 서로 겹치며 하나가 되더니 나를 그대로 가둬 버렸다.

‘크윽…!’

쿠구구구구!

전신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움직이기가 힘들다.

하지만.

단악검법, 산명곡응!

티이잉!

무형검이 진동하며 검명(劍鳴)을 떨어내었다.

자체적으로 예기를 지닌 진동이 거품 안쪽에서 마구 휘몰아친다.

단악검법의 궤적이 내 손 안에 있었기에 내 몸은 한 올의 상처도 없었고, 점차 거품이 떨리며 마침내 터져 버렸다.

퍼어엉!

단악검법, 심산!

나는 빠르게 다시 거품을 쏟아 내려는 해마의 품으로 파고들어, 무형검을 올려 베었다.

그러나, 그 한 순간.

촤아아악!

핏빛의 조개가 나와 해마의 사이로 빠르게 끼어들었다.

티이잉!

내 무형검은 조개의 껍질을 뚫지 못했고, 조개가 입을 벌려 나를 집어삼키려 하였다.

단악검법, 구산팔해.

나는 그 자리에서 무형검을 90번 이상 회전시킨 후, 눈앞의 조개를 팔방으로 베어 갔다.

촤아아악!

회전력이 실린 베기에 조개는 물론 그 뒤쪽에 있던 해마까지 16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렸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나는 해마와 조개 뒤쪽에서, 입에 기운을 모으고 있던 혈룡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나는 서란이 용형으로 발사했던 용의 숨결을 떠올리며 무형검을 들었다.

직격하면 결단기 최정상이고 뭐고 치명상일 터.

번쩍!

핏빛의 기운이 내게 쇄도한다.

단악검법, 공곡전성!

나는 무형검을 들어 핏빛의 광선을 무형검에 담아낸 후,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하여 저 멀리서 부딪치고 있는 황금빛과 핏빛의 전장으로 던졌다.

혈룡이 쏜 핏빛의 기운이 원립에게 날아갔고, 원립의 주변에서 움직이던 네 개의 보탑이 또다시 결계를 만들어 냈다.

콰아아앙!

그러나 혈룡의 광선에 결계는 한 번에 박살이 났으며, 네 개의 보탑은 일순간 빛을 잃어버렸다.

쿠과과과광!

광선은 결계에 막혀 한 번 힘이 분산된 채로 김영훈과 원립에게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다시금 힘을 모으려는 혈룡에게 달려들어 무형검을 들어올렸다.

혈룡은 나를 향해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날아와 뿔을 내밀어 나를 후려쳤다.

단악검법, 유곡.

나는 그 힘을 흘려 비틀어 무화시킨 후, 무형검을 올려 베었다.

단악검법, 입산!

촤아아악!

무형검은 혈룡을 그대로 반으로 쪼개 버렸고, 녀석은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슈우우우!

일곱 요혼을 전부 흩어 버렸지만, 놈들은 재생 기능이 있는 듯 허공에서 느릿하게 다시 뭉치고 있었다.

‘그나마 재생하는 속도가 느린게 다행이군.’

단악검법, 첩첩산중.

촤아아아아!

무형검이 사방팔방으로 가시처럼 뻗어 나가며, 다시 응결되는 요혼들을 한 번 더 흩어 버렸다.

나는 그런 후 저쪽에서 열심히 부딪치고 있는 핏빛과 금빛을 향해 허공을 박찼다.

쿠구구구!

핏빛의 폭풍이 금빛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원립은 비둔술을 쓴 상태로 김영훈의 속도에 반응하며, 열일곱 개의 단검 법보들을 그에게 퍼붓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오행혈주번이 간혹 김영훈에게 날아들며 그의 신경을 분산시킨다.

거기에 혈수로 된 귀왕 둘도 다시 재생했는지 김영훈을 양옆에서 압박하는 중이었고, 원립 역시 그를 향해 지팡이를 쥐고 수많은 법술 폭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김영훈은 원군으로 온 나를 보며 외쳤다.

“저 지팡이로 쓰는 법술을 조심해라! 지팡이에서 나오는 법술들에 닿을 때마다 기혈이 흡수되고, 저놈은 기력을 회복한다!”

그는 원립에게 한두 번 원기를 빨린 것인지, 안색이 아까보다 창백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김 형은 귀왕들과 단검 법보들을 맡아 주시지요. 놈의 본체는 제가 공략하겠습니다.”

내가 김영훈의 앞에 서고, 그는 내 뒤쪽에 서서 단검 법보들을 향해 산바람 17연격을 날린 후 귀왕들을 잡아끌어 놈들을 압박했다.

“꽤 하는 놈들이구나. 내 특제 강시들을 끌고 왔으면 더 볼만했겠어.”

원립은 껄껄 웃으며 결인을 맺었다.

그의 수정 해골 지팡이의 수정 해골이 입을 벌렸다.

핏빛 구름으로 이뤄진 혈수(血手)들이 수백 수천 개씩 수정 해골의 입에서 뿜어지며 내게 쇄도했다.

‘닿으면 정혈이 빨리며 원립은 기력을 회복한다라….’

그럼 하나도 안 닿으면 된다.

콰앙!

단악검법, 괴암!

무형검이 내 주변을 회전하며 공방일체가 된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나는 무형검을 회전시키며 혈수들을 모조리 쳐 내고 원립에게 돌진했다.

“흥!”

쿠우우우!

하늘에서 적색의 보탑이 나를 향해 내리찍어 온다.

방어결계용 법보였으나,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는 듯했다.

투웅!

나는 유곡의 초식으로 보탑을 내 옆으로 흘린 후 계속해서 놈에게 돌진했다.

원립은 정말 쉼 없이 법술들을 뿜어내 폭격을 해 왔다.

핏빛의 해일이 나를 덮쳐 왔고, 피로 이뤄진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뻗친다.

그 안쪽에서 여러 개의 핏빛 광선들이 나를 노렸으며, 핏물로 이뤄진 나방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그 법술들 중 한 올이라도 내 몸에 닿지 않도록 모조리 쳐 내며 원립에게 점차 다가갔다.

‘송진보다 강하다…!’

천인기의 잔혼이라곤 했지만, 육신도 법보도 없이 그저 섭명함의 귀기에 의지해 겨우겨우 명계의 인력을 버티고만 있는 잔혼 송진과 비교하면, 숨김없이 결단기 최정상의 전력을 드러내며 법보를 잔뜩 사용하는 원립은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김영훈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퍼엉, 퍼벙!

뒷쪽에서 김영훈이 혈수로 이뤄진 귀왕을 터트려 버렸고, 원립의 법보를 떨쳐 낸 후, 내게 합세하러 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원립의 품에 파고들었고,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잘 가라…!’

그리고.

콰악!

원립의 손에, 반투명한 핏빛 깃발이 들렸다.

“걸렸구나.”

콰아악!

놈이 내 머리에 핏빛 깃발을 박아 넣었다.

움찔!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내 오행혈주번의 금제술은, 딱히 다섯 개만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김영훈을 쫓아다니던 다섯 개의 핏빛 깃발.

그리고, 원립이 결인을 맺자 그의 주변으로 수 개의 핏빛 깃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단전에 오행혈주번의 근원이 제대로만 자리잡혀 있다면, 얼마든지 소환할 수 있지. 하하하, 내 앞에서 이만큼이나 선전했으니, 너희 둘은 내 혈노로 쓰는 것도….”

그리고.

촤아아악!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원립을 향해 무형검을 휘둘렀다.

“어…?”

원립은 상반신이 잘려 나간 상태에서 얼떨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 오행혈주번이라는 거 말인데….”

나는 씨익 웃으며 무형검을 들어올렸다.

“같은 법술을 익힌 사람한테는 안 먹히는 모양이외다.”

“뭣…?”

촤아아악!

나는 놈의 상반신을 수천 갈래로 조각내어 버리고, 남아 있는 놈의 하반신을 걷어차 버렸다.

‘놈이 꽂은 오행혈주번이, 내가 일정법으로 연화한 오행혈주번에 그대로 흡수되어 버렸다….’

때문인지 9할 9푼 이상 연화했던 오행혈주번의 연화율이 9할5푼 정도로 떨어지긴 했으나, 그 정도야 상관은 없었다.

“이런, 벌써 끝낸 거냐?”

“놈이 방금 그 오행혈주번이 아니라 다른 법술을 썼다면 위험했겠지만, 어쨌든 끝냈습니다.”

“다행이구나. 그럼….”

[흐음, 전투 경험이 굉장히 많은 노련한 놈들 같았는데, 결단기 수도자와는 전투 경험이 없는 게냐?]

오싹!

나는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원립의 하반신이, 상반신이 사라졌음에도 그대로 허공에 떠 있었다.

촤락, 촤라라락!

원립의 하반신에서 핏줄기가 솟구치며, 점차 상반신의 형상을 되찾기 시작한다.

“저, 저게 무슨…!”

김영훈이 경악할 때, 원립의 영언이 울렸다.

[축기기 이상은 경맥에 흐르는 정순지력 때문에 장기가 몇 개 뜯겨도 며칠은 생존이 가능하며, 몇 달 잘 요양하면 재생이 된다. 하지만 그것뿐, 축기기들이야 목이 잘리면 죽지.]

나는 놈이 떠들면서 완전히 부활하기 전에, 놈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그러나, 어느새 핏빛 조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촤아아아!

아까 흩어 놓았던 일곱 마리의 요혼들이 다시 완전히 재생해 버렸다.

[하지만 결단기부터는 목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걸 알지 않느냐. 정도공법을 익히는 정도선파의 결단기들이야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뽑히면 몇 달은 요양해야 하지만, 나처럼 혈도(血道) 공법을 익힌 마도선파 수도자들은 금단(金丹)을 부수지 않는 이상 즉시 재생한다는 걸 몰랐던….]

“영훈 형님!”

단악검법, 오의, 단악!

나는 일곱 요혼을 향해 총력을 쏟아부으며 길을 뚫었다.

놈들은 발악하며 제 주인을 지키려 들었으나, 나는 산외산부진을 발동시키며 다시금 놈들에게 단악의 초식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김영훈은 놈이 떠벌거리는 사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놈에게 날아갔다.

촤르르륵!

그리고, 원립의 상방신이 9할 이상 재생된 상태.

그 상태에서 김영훈은 능광도를 사용해 단맥도법 오의, 도묘의 초식을 쏟아부었다.

빛살이 번뜩이며, 9할 이상 재생되었던 원립은 그대로 다시 갈갈이 찢겨 나갔다.

상하반신이 전부 흩어진 상태의 원립.

그가 있던 자리에는, 핏빛의 주먹만 한 금단(金丹)만이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김영훈이 원립의 금단을 박살 내기 위해 도를 치켜들었을 때였다.

[…내 법보가 딱히 이게 끝이라고는….]

촤아아악!

원립의 금단 안쪽에서, 핏빛의 창이 튀어 나왔다.

창은 김영훈의 심장을 바로 노렸고, 김영훈은 흠칫 놀라며 뒤쪽으로 빠졌다.

[말한 적이 없다만…?]

치이이이익!

핏빛의 창에서 피 안개가 뿜어지며, 또 다른 핏빛 귀왕의 형상을 취하였다.

“제길…! 저게 사람이냐!”

“축기기부터 이미 인간이 아니었는데, 뭘 그러십니까!”

나는 요혼들을 떨쳐 내며 금단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갔고, 김영훈 역시 창을 든 귀왕을 상대하며 금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원립의 잔해들이 금단 주변으로 뭉치며 점차 다시 놈이 몸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젠장!’

막아야 한다!

막아야….

그때였다.

푸콱!

부우우웅!

[어…?]

벌 형태 괴뢰가, 어느새 장내에 등장하여 정순지력으로 이뤄진 침을, 무방비한 원립의 금단에 박아 넣었다.

북향화였다.

[이, 이놈…!]

부우웅!

촤아아아악!

벌 괴뢰는 수 번의 침을 금단에 더 꽂아넣었고, 금단에서 뿜어진 법술에 벌 괴뢰가 뒤로 밀리는 듯했으나, 금단은 이미 수많은 균열이 생겨 빛을 잃은 상태였다.

[이…놈…!]

원립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그리고, 금단은 그대로 저 아래쪽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향화 선자!”

나는 아래쪽에서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이곳을 보며 괴뢰를 조작하는 북향화를 보았다.

그녀 역시 해냈다는 표정과 함께 뿌듯함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촤아아아!

그리고, 청문령이 뭔가 해낸 것인지, 혈제의 진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까보다 확연히 옅어진 상태였다.

“하하….”

나는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렇게 우리는, 괴군의 작은 나비 효과가 만들어 내, 몇십 년은 일찍 일어난 이 갑작스러운 답천사막 대학살을, 막아 낸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경탄이 나오는구나.]

“…뭐?”

꿈틀, 꿈틀….

원립의 금단이 아니었다.

천색성 중앙.

혈제진의 영향으로 원립에게 정혈이 뽑혀 죽은 이들의 생명력.

그것이 모인 허공에서, 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님!!!”

“안다!”

김영훈이 놈에게 달려 나가려 했을 때였다.

촤아아아아!

원립이 이곳에 몰고 왔던 피 구름.

혈제의 진 바깥을 덮고 있던 핏빛 기운들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촤아아아악!

피 구름이 우리에게 달려들며 우리를 방해했다.

‘이건…!’

나는 피 구름 안쪽에서, 수만 명 이상의 생명력과 정혈, 그리고 그들의 원한 섞인 귀기와 고통이 흘러나오는 것을 읽었다.

‘이, 이건…!’

사람.

이 피 구름의 핏방울 하나하나가, 전부 사람의 생명력이었다.

쿠구구구!

놈의 피 구름이, 쪼개진 채 떨어지던 금단에 흡수되었고, 금단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떨어지던 금단이 다시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천색성의 중앙에 있던 빛무리, 그 중앙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기였다.

영체(靈體)로 된 아기는, 수십 개의 눈알과 입, 그리고 손을 전신에 달고 있는 기괴한 형태의 아기였다.

그것의 입에서 원립의 영언이 튀어나왔다.

[축기기 수도자는 재생력이 조금 강한 정도고, 결단기 수도자는 금단이 깨지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안 죽는다면….]

기괴한 아기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떨어지던 원립의 금단이 그 아기에게로 날아갔다.

나와 김영훈은 그를 막으려 움직였으나, 피 구름이 우리를 둘러싸고 막아섰다.

[원영기 이상부터는, 원영만 멀쩡하면 금단이 박살 나도 안 죽는단다. 뭐, 일반적인 경우는 금단이 박살 나면 수행을 다 잃기야 하지만, 나는 준비성이 철저해서 그럴 일은 없지….

그리고, 말했잖느냐. 일찍이 진즉에 원영기에 오른 상태에서, 천인기들의 눈을 피하려 혈영을 나눠 답천사막 주변 성들에 흩뿌렸다고.]

쿠구구구구!

피 구름들이 그의 금단으로 끌려들어 간다.

다시 한순간에, 원립이 육체를 재생하고 피구름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쿠구구구구구.

그가 혈제진 바깥에 흩어놓았던 피 구름들이, 모조리 원립의 몸 안쪽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의 기운이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한다.

결단기 대원만을, 뛰어넘는다.

김영훈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원립을 바라보았다.

[잘 놀았다. 거기 금빛, 너는 내 혈시로 제련하고… 거기 너는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행혈주의 술법을 익혔으니, 정신 금제가 안 먹힐 테니까 그냥 죽어 줘야겠구나.]

피 구름을 전부 흡수한 원립은, 원영 초기의 힘을 내뿜고 있었다.

[애초에, 네놈들 성에 먼저 들른 게 아니라, 북쪽 대초원에 남겨 둔 내 혈영들부터 전부 다시 회수하고, 그곳에 있는 양식들을 흡수한 후 이곳에 와서 잠시 놀아 줬더니, 그래 신이 났나 보구나. 어쨌든 인상 깊었다. 잘 가거라.]

파아아아앗!

다음 순간, 원립이 핏빛 광채를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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