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08화 (108/185)

연(16)

콰과과광!

빛이 폭발하며, 김영훈은 내 무형검을 맞고 튕겨나가 모래사막 한복판에 쳐박혔다.

"쿨럭, 커억! 컥!"

먼지구름 속에서 김영훈이 컥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퉷, 퉷! 이런 젠장, 서은현 이 비겁한 놈 같으니! 이 순간에 그런 걸 말해?"

"하하, 죄송합니다."

그는 모래를 뱉고는, 도를 쥐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런 젠장, 후우..."

잠시 모래를 털던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됐다. 어차피 내 공격은 네 공격에 못 미쳤을 테니까... 그나저나..."

그는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이제야 고백하기로 한 거냐! 으아아! 답답해서 피 토하는 줄 알았다!"

"......"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만..."

"거 참, 답답한 놈 같기는. 도대체 뭐가 쉽지 않다는 거냐?"

"그냥... 말씀드리기 어려운 그런 게 있습니다. 이해하십시오."

능광도에 오른 김영훈과 대련을 하며, 확실히 느꼈다.

무형검을 잡는 와중에도, 초식을 쓰는 와중에도, 최선의 집중을 하는 중에도.

연분홍빛 연심이 내 가슴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武)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지금껏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녀에 대한 연심 역시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단 것을 깨달았다.

'뿌리치는 게 불가능할 바에는, 받아들이자.'

도저히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떠날 수도 없었다.

북향화와 얘기하고 있으면 편안했다.

그녀에게서 공예품을 배울 때엔 회귀의 고통이 잠시나마 잊혀졌다.

그 무수한 상실들에 대한 아픔이 찰나나마 잦아든다.

그 편안함은 너무도 강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내 마음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언제 고백할 게냐? 내가 도와줄 게 있냐?"

"아, 고백은 할 겁니다만..."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 제가 유리로 꽃을 만드는 것을 연습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꽃을 만들었더니 불가사리라고 하더군요. 해서 꽃 형태는 잡힐 때까지 잠시 기다릴 예정입니다."

내 말을 들은 김영훈이 또 다시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제기랄, 또 기다린다는 거냐! 보는 사람들 주화입마 오겠구나!"

"흠, 흠..."

"이 답답한 놈이...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고백하란 말이다!"

"거 참, 김 형 진정하시지요."

나는 짜증을 내며 가슴을 치는 김영훈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앗, 잠시만요 김 형."

나는 문득 품에서 울리는 전음부를 꺼냈다.

"앗...!"

"또 뭐냐?"

"아, 죄송합니다 김 형. 얼른 성으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려라, 이 놈아!"

나는 전음부를 핑계로 천색성으로 날아갔다.

물론 김영훈이 껄끄러워 그를 버려두고 빨리 간 것도 있었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 때문이기도 했다.

청문령이, 돌아왔다.

* * *

"잘 지내셨는가, 서 도우, 북 선자."

"오랜만입니다, 청문 도우."

나는 청문령을 맞이하며 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청문령은 껄껄 웃으며 비행 법기에서 내려와 북향화의 법기점에 들어왔다.

나와 북향화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북향화가 차를 타왔고, 우리는 차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청문령이 본론을 꺼냈다.

"진법이 9할 9푼 완성되었네."

"아...!"

"그리고 나머지 1푼은 북 선자가 법기를 최종적으로 조정한 후, 다시 봉명성에 가서 그 진법을 설치한 후 다시 조금 조정하면 끝이지."

청문령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정말 수고해 주었네. 가주님 역시 무사히 장생과가 열리면, 자네들에게도 상으로 내린 후, 청문세가에서 상응하는 보상을 한두개 더 내리기로 했다네."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특히 서 도우는 섭명함 등 봉명성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만큼, 원한다면 아예 바로 청문세가의 객경 장로 위를 줄 수도 있다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보상들 역시 자네에게 돌아갈 것이고."

"감사히 받지요."

나는 부풀어 오른 기대를 안고 청문령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제, 김영훈의 수명도 조금은 늘어날지 모르겠군.'

장생과를, 피워내기만 한다면!

그때였다.

"서은현 이 놈!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딜 간 거냐!"

김영훈이 마침 법기점 안으로 들어왔다.

"흐음?"

청문령은 김영훈을 바라보았고, 김영훈 역시 청문령과 눈이 마주쳤다.

내 무공 스승이었던 자와, 수도 스승이었던 자들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나는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얼른 청문령과 김영훈에게 서로를 소개시켜 주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청문 도우, 저기 김 형은 저와 같은 특이한 공법...을 익혀, 법력이 감지되지 않아도 축기기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신 분이시니 잘 대해주십시오."

"알겠네."

"김 형도 여기 계신 청문 도우는 축기기 수도자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학식을 지니신 분이시니 그 학식에 맞는 대우를 부탁드립니다."

"음, 알겠다."

나는 서로를 인사시킨 후, 청문령과 약간의 토론을 나눈 후 회의장에서 나왔다.

청문령 역시 북향화와 조금 더 토론을 나눈 후 회의장에서 나왔다.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나름 즐거웠네. 그나저나..."

청문령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서 도우, 북 선자와 혼인은 했는가?"

"...예?"

"몇 년 전에는 그래도 다른 건물에서 묵는 것 같았는데, 방금 회의실에 들어가니 아예 곳곳에 서 도우의 생활 흔적이 보인 것 같아서 말일세.

아예 이곳에서 사는 것 같아서 혼인했느냐 물은 것일세."

"아, 그건..."

내가 무어라 하려 했을 때, 김영훈이 답답하다는 듯 나와 청문령의 사이에 끼어들어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서은현 이 놈은 지금껏 저기 북 소저와 제대로 사귀고 있지조차 않습니다."

"음?"

"글쎄 들어보십시오. 저 놈이 말입니다..."

청문령은 어느덧 나와 북향화의 관계를 주제로, 김영훈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 모두 답답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서 도우, 정말 답답해서 못 봐주겠군. 10년 전부터 언제 둘이 가약을 맺을까 궁금했는데, 아직도 정식으로 사귀지조차 않았단 건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청문 형. 저 답답한 놈은 말입니다, 제 고향에서도 저 놈을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리 그 사람이 티를 내도..."

"험험...! 그만좀 하십시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도망치듯 북향화가 남아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흠, 북 선자."

"아, 서 도우, 생각해보니 이제 오늘도 연습하실 시간이네요."

"그렇습니다. 빨리 시작하시지요."

나는 그녀와 함께 바로 공방으로 들어가 유리 공예품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그녀가 법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 역시 가르쳐주는 터라 그것들 역시 배우는 중이었다.

"제가 알려드리는 용어들을 숙지하신 후, 제가 법기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한 이 '기련총람(器鍊總攬)'을 읽어보시면 법기에 대해 확실히 아실 수 있으실 거에요."

"알겠습니다, 추후에 읽어보지요."

나는 그녀를 따라 몇몇 유리 공예품을 만들었다.

잠시 나를 봐주던 그녀는 공방의 다른 쪽으로 가서 청문령이 가져온 진법 법기들을 다시 조정하기 시작했다.

잠시 공방에는 공예품을 만드는 나와 진법 법기들을 조정하는 북향화의 작업소리만이 울렸다.

비검 공예품을 만들어 본 후, 북향화가 좋아한다는 백목련 공예품을 만들어본 나는 유리로 된 백목련을 들어보였다.

'불가사리...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나름 꽃 같지 않나.

"...북 선자."

"네, 무슨 일이신가요?"

"제 실력이 변변치 않아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서 도우. 도우가 만든 작품들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걸요?"

"작품이라니요, 북 선자가 만드시는 법기들에 비하면, 제가 만드는 건 그냥... 유리 덩어리들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흠..."

법기를 조정하던 그녀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서 도우, 유리를 뭘로 만드시는지는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근처 모래로 만드는 게 아닙니까?"

"맞아요. 잠시 줘보실래요?"

그녀는 내가 들고 있던 불가사리를 닮은 유리 꽃을 받아,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 시작했다.

"모래는 그냥 흔히 있는 돌 조각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모래들이, 알맞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 유리 공예품이 되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죠? 세상에 쓰레기는 없다고, 그저 운명과 인연이 닿지 못한 것들이 있을 뿐이라고."

점차 그녀의 손 안에서, 내가 만들었던 유리 불가사리가 제대로 된 꽃의 형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 말은, 제대로 된 운명이 닿기만 한다면, 어떤 것도 아름다운 공예품이 될 수 있단 거죠. 안 그런가요?"

파아앗!

그녀는 유리로 된 모과꽃을 내게 건내며 말했다.

"어떤 꽃을 만들고 싶어하셨는지는 몰라, 서 도우와 잘 어울리는 모과꽃으로 만들어 봤답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나는 잠시 모과꽃을 받아들어 쳐다보았다.

"벽라국 사람들은 유리를 좋아해요. 사막에서 모래로 쉽게 만들 수 있기도 하고, 어두울 때는 진가가 드러나지 않지만 빛을 받으면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향화 선자."

나는 모과꽃을 바라보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꽃을 제대로 만들 실력이 되면 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이 사람이 좋다.

"네?"

"저는..."

두근, 두근...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도 내 분위기를 알아챈 건지, 점차 얼굴이 붉어졌다.

무수한 말이 입속에 떠돌았다.

무슨 말을 해야하지?

뭐라고 말하는 게 가장...

그때였다.

"자, 잠깐!"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저도, 서 오라버니한테 드릴 게 있어요! 내, 내일까지 드릴 테니까 내일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향화 선자."

"아, 그리고 제가 잠시 공방에서 집중할 게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공방에서 나갔다.

"음?"

그리고, 나는 공방 밖에서 헛기침을 하고 있는 청문령과 김영훈, 북중호를 바라보았다.

인기척이야 애저녁부터 느끼곤 있었다.

북중호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보게."

툭툭

그는 내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웃으며 법기점을 나갔고, 청문령과 김영훈은 서로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저 둔한 놈이..."

"북 선자도 보아하니 거절할 것 같진 않군."

둘은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흠,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모르긴! 눈이 달려 있으면 의념을 읽었을 텐데, 정말 모르는 거냐! 아주 이 악물고 모르는 척을 하거라!"

나는 김영훈의 잔소리와 청문령의 조언을 들으며 법기점을 잠시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을 자기는 글른 것 같았다.

* * *

북향화는 공방 안쪽에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향화 선자...'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이제야 이름으로 불러주시네, 오라버니도.'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던 그녀는 진법 법기를 전부 조정해서 보관한 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공방 한 구석.

작은 목함.

북향화는 목함을 열어, 그곳에 담겨있는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한 법보의 구조도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10년간 끊임없이 궁리하고, 서은현의 무형검을 관찰하고 구상한 결과.

그렇게 거의 완성된 법보의 구조도였다.

'이제, 완성시키자.'

서은현에게 딱 맞는 법보였다.

처음에 그녀가 서은현에게 법보의 조건을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미친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런 말도 안되는 조건의 법기라니!

하지만, 그녀는 한 번 해 보자는 식으로 도전욕을 불태웠다.

처음에는 그냥 도전욕에 불과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진심이 되었다.

진심으로 서은현을 위한 무구를 만들고 싶었다.

오늘 서은현이 그녀에게 하려고 했던 말.

분위기로 보아,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내일 그 말을 듣고 싶었다.

내일이면 완성이 될 테니까.

사락, 사락...

그녀가 붓을 놀리자, 구조도에 획이 추가되었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서은현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메웠다.

어느새 북향화의 얼굴에는 사색의 문양이 떠올랐다.

치이이이!

그리고, 사색의 문양이 밝게 빛났다.

흑색과 자색의 얽혀있던 두 문양이, 점차 얽히며 하나로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문법재는 강한 감정을 느낄 때 자질이 성장한다고 하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들 역시 있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감정이 그녀의 자질을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북향화는 홀린 듯이 구조도의 획을 그어갔다.

자신의 사문(四紋)이 삼문(三紋)으로 변화하는 것도 모른 채.

세 개의 문양이 나타나자, 그녀의 손이 빨라졌다.

어떻게 해야 더욱 더 이상적인 법보를 완성할지가 한 손에 잡힐 듯 했다.

10년 동안 고민하며 완성해온 법보가, 그녀에 의해 더욱 더 완벽하고 새롭게 그 구조를 완성했다.

그녀는 자색, 금색, 연분홍색.

세 개의 색을 지닌 문양을 얼굴에 띄운 채 쉼없이 서은현의 법보의 구조도를 세세하게 짜내려 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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