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05화 (105/185)

연(13)

모래 먼지가 비산한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쿵, 쿵, 쿵!

전방의 세 개의 계곡이 생겨나고, 끝에 있던 바위 산맥 같아 보이는 것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그리고 녀석이 혼비백산하는 사이, 나와 녀석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뒤를 쫓는 수백 개의 비검 중 하나를 잡았다.

우우웅!

그냥 허공에 씌워도 끔찍한 위력이며, 검에 씌우면 더욱더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이 무형검이었다.

법기에 무형검을 덧씌우자, 법기가 발동하며 영력을 내뿜었다.

파아아앗!

화 속성 비검인지, 비검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왔고, 무형검에 불길이 번지며 거대한 불의 검을 만들어 내었다.

부웅!

콰아아앙!

법기에 무형검을 씌워 휘두르자, 거대한 불의 참격이 날아갔고, 눈앞의 모래사막이 녹아 유리사막으로 변한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벽문성은 공포 때문에 법력 조절이 안 되는 것인지 나와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나는 다른 비검을 잡고 다시 휘둘렀다.

수 속성 비검.

촤아아아아!

전방의 사막이 늪지대로 변한다.

목 속성 비검, 진괘(震卦)에 대응해 뢰(雷) 속성을 머금은 비검을 휘두르자, 벼락이 사방팔방으로 떨어지며 사막 곳곳을 유리로 녹여 버렸다.

“크아아아악!”

벼락의 영향에 휘말려, 벽문성은 비명을 지르며 결국 비검의 조작에 실패하고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푸확!

녀석은 모래 언덕에 떨어져 버렸고, 놈의 몸에서 꿈틀거리다가 기어이 탈출한 북향화는 근처에 있던 자신의 법기들을 불러들여 안전하게 법기 위에 착지했다.

“음, 무사하셨군요.”

“기다리고 계셨으면 이 녀석을 잡고 돌아갔을 텐데, 귀찮게 나오셨네요.”

“흠, 아무리 법기가 많으셔도 축기기의 힘을 얕보면 안 됩니다.”

나는 모래 언덕에서 막 빠져나온 녀석을 가리켰다.

스아아아아!

“음혼귀주(陰魂鬼呪).”

촤아아악!

몇 개의 저주문이 녀석에게 날아가, 그대로 놈의 머리에 박혔다.

“끄아아아아악!”

“제(制)!”

키이이잉!

저주문이 녀석의 상단전으로 파고들며, 정신 금제가 되었다.

녀석은 두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수결을 맺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왜 이런 짓을 한 거냐.”

“흐끄하아악···! 아, 아악!”

“대답하면 고통이 잦아들 거다. 답해라.”

“나, 나···.”

녀석은 침을 질질 흘리며 재밌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만이··· 그녀를 제대로, 알아, 보았다···!”

“흠?”

“나만이··· 그녀를, 성장, 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납치한 거냐?”

“그···렇다···!”

어느덧 북향화도 곁으로 다가와 냉랭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당신이 저를 성장시킬 방법을 안다느니 하시던데. 그게 무슨 의미죠?”

“답해라.”

우웅!

나는 저주문을 촉발시켰고, 벽문성은 눈을 까뒤집으며 대답했다.

“벼, 벽씨···세가에서, 얼마 전. 사막 가운데에서··· 그걸··· 찾았다···!”

“그거라니요?”

“조, 조씨··· 세가의··· 유적···.”

나는 호기심이 들어 되물었다.

“조씨세가(早氏勢家)?”

그건 또 무슨 세가인가?

그때, 나는 옆에 있는 북향화의 얼굴이 심각해진 것을 보았다.

“조씨세가의··· 유적을 찾았다고요?”

“조씨세가가··· 유명한 세가입니까?”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고, 북향화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벽라국 동부에서 오래 지낸 분이 아니라면 모를 수 있겠죠. 조씨세가는 천 년 전 멸문한 세가로, 온갖 장막에 싸인 집안입니다.

천 년 전. 법기, 괴뢰, 부적, 단약 등, 온갖 제작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곳이지요.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설명하기 쉬운 위명은···.”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나는 흠칫 놀랐다.

“괴군(怪君) 조연의 집안이라는 거죠.”

‘괴군의 집안···!’

나는 놀라며 벽문성을 바라보았다.

“천 년 전 벽라국 전체를 그 가문이 지배하며, 어마어마한 위세를 자랑하던 가문이라 들었는데,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했었지요.

일설로는 괴군이 광증이 도져 직접 멸문시켰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금수조차 아닌데 제 가문을 제 손으로 멸문시켰을 리는 없어 신빙성 있는 소문은 아닙니다.”

나는 괴군이 흐느끼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를 죽인 내 가문은 내 손으로 직접 몰살시켰다.

“···.”

나는 잠시 침묵했고, 북향화는 정신을 못 차리는 벽문성의 심문을 이어 갔다.

“그래서, 조씨세가에서 뭘 발견하셨단 거죠?”

“조, 조씨세가의 유적···에서. 괴군 조연을 비롯해, 기문법재의 자질을 지닌, 자손들의 자질을 성장시킨, 특단의··· 비약을··· 제조하는, 법을··· 발견, 했다.”

“특단의 비약? 그게 뭐죠?”

“크···으으윽!”

녀석은 저항하려는 듯했으나, 내가 정신 금제를 다시 자극하자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추, 축기단의 제련법에, 축기단에 쓰인 재료들의, 귀혼을 집어넣어, 법력뿐이 아닌, ‘감정’ 역시 크게 증폭시키는, 비약이다. 기문법재, 는. ‘감정’이, 일정 이상으로, 요동치거나··· 혹은 오랜 세월의 노력으로, 경험을 축적하면··· ‘자질의 성장’이 가능한, 자질이···다. 칠문이, 육문으로. 사문이, 삼문으로. 이문이, 일문으로. 그리고, 북향화는, 사문법재, 중에서도, 노력이 어느 정도 쌓여··· 삼문법재에 도달할 가능성이 생긴, 기문법재, 이다!”

‘그때 봤던, 반쯤 섞인 문양이 그런 것이었나···.’

나는 그녀에게서 드러났던, 서로 얽혀 있던 검은빛과 보랏빛 문양들을 기억했다.

“내, 내가, 도와만 주면. 삼문법재가 될 수 있는데. 내가, 나만이, 그녀를 성장시켜, 재능을 개화시킬 수 있는···.”

“더 물어볼 게 있으십니까?”

“···없네요.”

“알겠습니다.”

나는 법결을 맺으며 녀석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떻게 하실 거죠?”

“원하신다면 백치로 만들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어쨌든 그자에게 받았던 호의도 있었으니, 그걸로 퉁치도록 하죠.”

북향화는 벽문성을 냉랭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것뿐이에요, 벽 공자. 이제 당신과 나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니, 다음 기회는 없습니다.”

“들었나? 저 말을 똑똑히 잘 기억해라.”

우우웅!

나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저주문을 약하게 촉발시켰다.

파아아앗!

“크아아아악!”

놈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아마 심문당했다는 기억이나 나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고, 마지막에 북향화가 한 말 정도만 기억에 남았으리라.

“이만 가지요.”

“네.”

북향화는 비검 법기들을 챙긴 후, 비행법기 위에 올라타 나와 다시 천색성으로 돌아갔다.

나는 사막 바람을 맞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비약의 약방문은 안 물으십니까? 어쨌든 선자에게 도움은 될 만한 약방문일 텐데.”

“음···.”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반적인 수사분들은 잘 모르시던데, 서 도우는 혹시 축기단의 주재료가 뭔지 아시나요?”

나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압니다만.”

“아···! 그럼 말이 편해지겠네요. 저도 아버님이 알려 주셔서 알게 된 사실인데, 축기단에는, 인간의 생명력과 정혈이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약방문은 축기단을 기초로 한다 하니,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요.”

“대부분의 수사들은 그냥 먹고, 알고도 먹는 수사들도 많은데 선자는 왜 안 드십니까?”

“혹시 서 도우는 축기단을 몇 알 드시고 축기에 드신 거죠?”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 먹었습니다만.”

“아, 그럼 서 도우도 아시겠지만··· 그걸, 별로 먹고 싶진 않아서 말이에요.”

“그렇군요.”

“그리고, 생각을 해 봤는데.”

북향화는 자신의 문양이 드러나는 곳의 피부를 매만지며 말했다.

“경험을 쌓고, 노력을 해서 자질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 전 역시 그쪽으로 성장시키고 싶네요.”

“그렇습니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우리는 천색성에 돌아가며 자질에 대한 몇 가지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

천색성에 돌아가자 그녀는 북중호의 품에 안겼고, 북중호는 그제야 안색을 풀며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납치범이 누구인지를 물었으나, 북향화는 딱히 벽문성을 말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방의 금제나 호신법기의 수를 더 늘릴 뿐이었다.

그렇게, 북향화 납치 사건은 짧게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금 진법에 대한 회의가 재개되었다.

남은 부분은 이제 봉명성에서 구상한 외진법과 내진법, 그리고 진법 법기들간의 연계였다.

우리는 몇 달에 걸쳐 진법을 다시 짰다.

그리고, 진법의 완성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제, 남은 부분은 가장 구차하고 오래 걸리는 부분이네. 더 이상은 이제 머리 싸매고 궁리할 영역보다는, 시행착오를 거쳐 진법을 완성시키는 부분에 주안점을 둬야겠지.”

이제 남은 것은 북향화가 진법 법기를 만들고, 진법 법기로 주변의 용맥을 끌어와 장생과를 대신해 다른 식물을 생장시켜 보고, 진법을 장생과에 맞게 미세 조종하는 과정이었다.

그 점은 용맥을 끌어모으는 점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일이었다.

진법 법기는 금세 완성되었다.

북향화는 일흔두 개의 진법 깃발과 서른여섯 개의 진법 원반을 만들었고, 나와 청문령은 진법 법기들을 받아 진법에 알맞게 북향화와 조정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진법을 설치한 후 용맥이 모이기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

“일단 임상 시험을 할 장소가 필요한데···.”

청문령의 말에, 진법 법기를 조정시켜 주던 북향화가 말했다.

“그럼 영맥이 진한 곳이면 되는 건가요?”

“그런 곳이 좋겠지. 어디 없는가?”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천색성 인근에 한 곳이 있긴 한데···.”

“오, 그럼 그곳으로 가지.”

“거기에다가 진법을 설치하려면, 우선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셔야 해요.”

“아, 북 수사의 사유지인가?”

북향화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어머니의 무덤이에요.”

“···험험. 미안하군.”

청문령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자네 어머니의 무덤에 진법 실험을 할 수는 없지. 그럼 조금 멀더라도 다른 곳을 찾아서···.”

“아마 아버지는 허락하실 거에요.”

북향화는 진법 깃발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 진법의 목적은 영맥을 모아 풀과 나무들을 생장시키는 게 아닌가요? 어머님의 묘소는 영맥이 진해 조금 풀들이 자라지만, 그래도 사막인지라 휑하답니다. 진법의 힘으로 어머님의 묘소를 화사하게 만들어 주신다면, 아버님도 허락지 않으실 리는 없을 거예요. 제가 허락을 맡고 오죠.”

그 말에 청문령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부탁하겠다.”

북향화는 북중호를 찾아갔고, 얼마 후 북중호가 우리가 진법을 만들던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청문령에게 진법의 효과를 다시 한번 전해 들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좋아할 거요. 부탁드리오, 청문 수사.”

“···정 그렇다면야.”

그렇게, 진법의 임상 실험 장소는 북향화의 어머니, 북중호의 아내의 묘소로 정해졌다.

***

쪼르륵···.

위패에는 연(蓮)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북향화의 어머니, 북중호의 아내.

그녀의 이름은 연(蓮)이었다.

북중호는 연의 묘소에 술을 따라 준 후 잠시 그 앞에서 눈을 감았다.

연의 묘소는 천색성에서 조금 떨어진 사암 동굴 안쪽이었다.

‘아니, 평범한 사암은 아닌가.’

영맥이 활발한 곳이라 그런지, 영력이 깃들어 있어 특별한 광석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북중호가 뚫어 놓은 것인지, 동굴의 천장은 하늘이 보이도록 뚫려 있어 빛이 들어왔다.

빛살 덕인지, 동굴 곳곳에는 이름 모를 꽃과 풀이 드문드문 올라와 있었다.

‘이 위치는···.’

나는 연의 묘소의 위치를 보며, 옛 삶에서 북향화가 내게 처음으로 물을 주었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 동굴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녀는 그때도 이 동굴에 찾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진법을 설치해 주십시오, 청문 수사.”

“알겠소.”

나와 청문령은 진법 깃발과 원반을 가지고 묘소 주변, 그리고 묘소 바깥, 묘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 곳곳에다가 설치했다.

진법 깃발들이 주변의 영기와 영맥을 끌어들였고,

진법 원반들이 영맥을 끌어모았다.

곧이어 묘소의 중앙에 영력이 가득 모이며, 주변의 영성이 차오른다.

드문드문 나 있던 풀과 꽃들의 생기가 더욱 활발해지는 것이 보였다.

나와 청문령은 바깥의 진법을 전부 설치하고, 안으로 들어와 진법을 조정하였다.

“생전에 수행 자질조차 없던 범인(凡人) 아내였소. 사후에야 영기 속에서 보내니, 다행이구려.”

북중호는 묘소를 보며 말했다.

청문령은 위패를 보며 그에게 물었다.

“연이라, 예쁜 이름이로구려. 아름다운 아내분이셨겠구려.”

“···맞소. 내 아내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소. 좋은 어머니였고.”

“성은 어찌 되시오?”

북중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내는 성이 없소. 집안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좋아서 없었지.”

그는 아내의 묘소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북향화 역시 씁쓸한 표정으로 북중호의 등을 보고 있었다.

“공묘세가의 축기 위인이신 공묘천색 장로님. 아내는 장로님의 사생아였소.”

뿌득···.

청문령의 이마에 한 줄기 힘줄이 돋아났다.

“그 발정난 놈이··· 또 사고를 쳤구려···.”

“원망하진 않소. 그분은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시고, 또 아내는 영근도 타고나지 못한 범인··· 공묘세가에서 사생아 범인에게 성을 줄 이유는 없었겠지···.”

“···친우의 실수니, 내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소.”

“아니오, 오히려 공묘천색 장로님 덕에 천색성이 있었던 것이고, 아내와 내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던 거겠지···.”

잠시 묘를 바라보던 그는 저물법기에서 작은 묘목 하나를 꺼냈다.

“연이가 좋아하던 목련(木蓮)이오. 목련을 피워 내 주시구려.”

“알겠소.”

청문령은 목련의 묘목을 받아, 묘소 뒤쪽에 심은 후 진법의 영맥을 목련과 연결했다.

“앞으로 5년간 영맥이 영기를 축적한 후, 5년 뒤 목련의 묘목을 급속 생장시킬 것이오. 추후에 다시 와서 영맥을 확인해 보면 되겠지.”

그는 옅게 한숨을 쉬며 나와 북향화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다들 수고하셨소. 남은 것은 5년 동안 기다리며 진법을 관찰하고, 자잘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시행착오를 해 보는 것밖에 없지.”

“5년이라···.”

청문령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늘그막에 본가에서 편히 쉬어야 할 판에, 진법 시험이나 하고 있다니···.”

“하하, 죄송할 따름이군요.”

“아니오, 서 도우가 죄송할 게 뭐 있소. 우리 가주님이 시킨 건데 뭐···.”

청문령은 등을 치며 나갔고, 나는 북씨 부녀를 잠시 본 후, 그들과 함께 묘소에서 나왔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

북향화의 공방 지하.

그곳의 밀실.

“힘내십시오, 북 선자.”

“흐으읏!”

나는 북향화의 등에 손을 대고 토 속성 법력을 불어넣어 주며 그녀를 독려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와 청문 수사가 말한 구결들과 함께···.”

파아아앗!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서 정광이 일더니, 그녀의 입에서 영기의 구름들이 뿜어졌다.

후우우―

토, 목, 금의 삼영근을 지닌 북향화는 황색, 청색, 백색의 영기의 구름을 내뱉었다가 다시 흡수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르릉!

그녀의 아랫배 쪽에서 우렛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그녀의 체내에서 정순지력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약 5년.

5년의 시간 동안, 북향화는 아버지인 북중호가 가져다주는 영약들, 그리고 선각후통의 최고 권위자인 청문령, 그리고 나의 가르침을 받으며 연기기 극성에 다다랐다.

그리고 내 조언에 따라 영근 개수에 맞게 기초공법을 추가로 익혀, 전부 극성에 도달하게 한 후.

그 힘과 내 도움을 바탕으로 축기기에 이른 것이었다.

“아···! 정순지력이다···.”

그녀는 손 위로 정순지력을 피워 올리며 작게 탄성을 질렀다.

“정말 고마워요, 서 도우.”

“아닙니다. 벗의 부탁이었으니 이 정도야.”

“하하, 청문 선배님도 저랑은 이제 나름 벗인데. 청문 선배님은 안 도와주시겠다 했는데요?”

“그야··· 청문 수사는 청문세가의 일원이시니 청문세가가 아닌 선자의 축기를 돕는 건 가문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녀는 잠시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밀실의 문을 열고 걸어 나가며 웃었다.

“뭐, 그런 걸로 치죠. 그럼 일단, 시간도 됐으니 묘소에 들려요.”

“···그러지요.”

나와 청문령, 그리고 북향화는 지난 5년 동안 더욱더 사이가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

북향화는 축기기에 올라 300년의 수명을 부여받았고, 5년 동안 축적된 용맥의 영기가 진법을 발동시키며, 진법은 목련목을 급속하게 생장시켰다.

“아아···.”

우리는 연의 묘소 안쪽에 핀, 보랏빛 목련화를 보며 탄성을 지었다.

특히 북중호는 흐드러지게 핀 목련화를 보며 울 듯한 표정이었다.

“···고맙소, 청문 수사. 서 수사. 그리고, 고맙다. 향화야.”

“오히려 영맥이 있는 땅을 내어 주셔서 우리가 고맙소.”

청문령은 북중호의 감사를 담담히 받았다.

5년 전과 달리, 묘소는 훨씬 농밀해진 대기의 영기를 받아 훨씬 안쪽의 풀과 잡초들이 많이 자라나 있었다.

드문드문 풀과 들꽃들이 널려있던 과거와 비하면, 묘소 안은 훨씬 생기가 있고 활발하게 느껴졌다.

“이미 펼친 진법 법기를 거둘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이 진법이 확실하다는 건 확인했으니, 또 법기를 만들면 될 뿐이고.”

“맞습니다.”

“···고맙소.”

이제 청문령과 내가 만든 진법에 의해, 연의 묘소는 계속 이렇게 생기가 넘치는 상태로 변할 터였다.

북중호는 다시금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고, 우리는 그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약간의 인사치레가 끝난 후.

청문령은 진법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나는 청문세가로 돌아가, 청문세가 근처에서 봉명성 1층과 최대한 비슷한 영맥과 장소를 만든 후, 그곳에서 5년을 더 기다려 진법을 시험해 볼 계획이네. 그렇게 시험해서 이번에도 진법이 제대로 작동하면, 이번에는 정말로 봉명성이 있는 곳으로 가 진법을 설치하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부탁드리지요.”

어차피 남은 과정에는 나나 북향화의 도움은 필요가 없었다.

진법 법기도 완성이 되었고, 진법도 완전히 조정되었으며, 남은 것은 청문령의 임상 실험뿐.

“그러면 5년 후에 보도록 하지. 서 도우, 그리고··· 이제는 같은 경지가 되었으니 북 선자.”

“네!”

“알겠습니다.”

청문령은 진법 법기와 짐을 챙긴 후 다시 청문세가로 돌아갔다.

“서 도우는 안 가시나요?”

“어차피 진법도 더 조정할 건 없으니 저는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음, 그럼 청문 선배님만 없어진 거고 서 도우는 계속 남아 계신 거군요.”

“그런 셈이지요.”

“다른 곳에 가셔도 되는데, 왜 굳이 이곳에 남기로 하신 건가요?”

“그건···.”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그녀는 내 반응을 보곤 배시시 웃으며 나를 잡아끌었다.

“알겠어요. 그럼··· 어쨌든 최소한 남은 5년 동안은 천색성에 계시는 거죠?”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 어머니 앞에 새 묘목이나 심어 볼까요?”

“음? 갑자기 말입니까?”

“서 도우가 남는다 하셨으니, 그를 기념해서요.”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이끌려, 시장에 가서 얼떨결에 묘목을 한 그루 샀다.

“서 도우는 어떤 묘목을 사셨나요?”

“아··· 모과나무입니다.”

나는 모과나무 묘목을 쓰다듬었다.

옛 삶의 스승님은 나를 보며 늘 모과나무를 닮았다 했으니, 그를 떠올려 산 묘목이었다.

우리는 각자 묘목을 품에 안고 연의 묘소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서 도우는 제 묘목은 뭔지 안 물어보시나요?”

“아, 죄송합니다.”

“아하하, 괜찮아요. 제 묘목은···.”

그녀는 꽃을 피운 목련화를 매만지며 말했다.

“백목련(白木蓮)이에요.”

“백목련···.”

“어머니가 목련을 좋아하셨듯이, 전 백목련을 좋아해요.”

나는 어쩐지, 백의를 즐겨 입는 그녀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각자 모과 묘목과 백목련 묘목을 목련꽃의 양옆에 심었다.

진법의 대상은 목련이었는지라, 우리가 심은 묘목은 급속한 생장은 않겠지만, 그 옆에서 천천히 자연스레 커 갈 터였다.

“그나저나 북 선자, 왜 갑자기 묘목을 심자고 하신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내게 말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차마 그 이유를 먼저 말하지는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 다시 돌아갈까요?”

“···그러지요.”

우리는 천색성으로 돌아왔다.

휘이이이―

그날 저녁.

나는 사막 바람을 맞으며, 천색성의 성벽 위에 걸터앉았다.

“사색에 빠지는 걸 좋아하는 친구로군.”

북중호가 또다시 내 뒤로 날아오며 말을 걸었다.

어쩐지, 5년 전 그날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북중호의 질문도 비슷했다.

“어떤가, 최근 딸애와 사이가 가까워졌던데.”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직도 내 딸에게 벗 이상의 감정이 없나?”

5년전 그날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달라졌다.

“···저는, 선자를 좋아하고 있군요.”

“하하하,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그는 껄껄 웃으며 내 옆에 걸터앉았다.

“사실 5년 전에 물었을 때도 자네는 내 딸을 좋아하고 있었어.”

“···.”

“그저 그때는 자네가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연정이 작았다면, 이제는 숨기지도 못할 정도로 연심이 불어난 거겠지. 안 그런가?”

그는 정확하게 내 속내를 맞추었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린 손을 치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 사람에게 연심(戀心)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5년 전에는 그저 내 속을 숨겼을 뿐이지만, 이제는 너무 명백해졌다.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더는 못 속일 정도로.

“그래서, 딸한테 고백은 언제 할 건가? 내가 볼 때 자네가 고백하면 딸도 내치진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어르신···.”

이게, 끝이었다.

“저는, 북 선자에게 고백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이상은 정말로 위험하다.

이 사랑은 그저 한때 가졌던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야 한다.

좋은 추억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을 나누게 된다면.

그 사랑의 대상이, 영원히 시간의 너머로 사라졌을 때.

나는 정말로 미쳐 버리게 될 테니까.

“흐음···.”

내 대답에, 북중호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자네, 남녀를 만나면 안 되는 특정한 종교가 있는가?”

“없습니다.”

“혹시 기벽을 가지고 있어 남색을 즐기나?”

“···아닙니다.”

“혹시 특수한 공법을 익혀 아랫도리를 못 쓴다든가···.”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왜?”

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왜 내 딸과 안 맺어지려고 그렇게, 5년 전부터 노력하는 겐가?”

“···.”

“자네는 지금 자기모순에 빠져 있어. 자네가 정말로 확고하게 내 딸이 싫었으면, 이번에 청문 수사가 갈 때 같이 천색성을 떠났어야 했네. 하지만 자네는 스스로의 마음을 알며 천색성을 떠나지 않았지. 그런데도 굳이 딸애와 맺어지지 않겠다고?”

그는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시선을 견디다 못해 얄팍한 거짓말을 했다.

“···제가 수련하는 특이한 의식공법이 있습니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일정법이라는 의식공법이지요. 하나의 감정에 집중해서 특수한 법술을 연화시키는 공법입니다만, 저는 지금 북 선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이용해 제 감정을 북돋아 공법을 더 빠르게 수련하는 중이지요. 이번에 성에 남은 이유도 그저 공법을 더 빠르게 수련하기 위해서···.”

“자네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군.”

“일정법을 수련하는 건 사실입니다만.”

“아니, 아니야.”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감정을 이용하는 공법을 수련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 딸과 맺어진다면 오히려 더더욱 감정이 깊어질 걸 알면서 왜 그러지 않았지?”

“···.”

“오히려 그게 자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나?”

그랬다.

나는 일정법을 수련하며 오행혈주번을 연화시키고 있었으나, 일정법에 사용된 감정은 연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정심(平靜心).

북향화를 생각할 때마다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제어하기 위해, 일부러 나는 평정심의 감정을 일정법을 통해 수련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정법의 수련이 불가능할 정도로 연심이 평정심보다 커져,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흠···.”

나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고, 북중호는 탐탁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알겠네.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일평생을 어머니의 유언을 핑계로 성 안에 자신을 가둔 아이일세.

그 아이의 운명은 내가 보건대 자네이고, 자네가 없다면 그 아이는 운명의 짝을 만나지 못하고 또다시 스스로를 더욱더 좁은 곳에 가두려 하겠지. 빠르게 결정해 주기를 바라겠네.”

북중호는 성벽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눈을 감았다.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서쪽에서, 내 평정심을 뒤흔들 또 다른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잘 지냈냐, 은현아?”

김영훈이었다.

“한 판 붙자.”

파아아앗!

그가 황금빛에 물든 도신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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