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11)
종명자 이야기...?
내가 떨리는 눈으로 설화집을 노려볼 때였다.
"선인님...?"
"...아, 미안하다. 읽어주마."
나는 설화집을 읽어주었다.
설화집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옛날 옛적,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상제(上帝)가 있었다.
-상제에게는 일곱 명의 아끼는 제자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상제와 제자들은 크게 다투었다고 한다.
-제자들은 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를 떠나,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상제는 일곱 제자들이 자신의 명(命)을 듣지 않는다 하여, 그들을 종명자(終命者)라 불렀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혹독했고, 종명자가 된 일곱 제자들은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하늘 나라를 그리워했다.
-상제는 그 모습을 보며 일곱 제자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늘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만들었고, 일곱 제자가 길을 걸어 다시 하늘에 도달하게 하였다.
-일곱 종명자는 다시 상제가 깐 하늘길을 걸어, 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에 돌아와, 상제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며 행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것이 이 설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였다.
그리고.
오싹, 오싹!
나는, 왠지 모르게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솟아오르는 듯한 역겨움과 공포심이 몸을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진다.
왜일까?
이 설화 자체는 동화의 일종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집을 함부로 나가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담은 동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왜지?'
이 문장 하나하나에, 흉(凶)함이 느껴진다.
특히 설화의 결말, 종명자들이 상제의 곁에서 행복하게 지냈다는 것은 읽자마자 오한이 전신을 덮치는 것 같았다.
"선인님, 괜찮으세요?"
아이는 내가 걱정스러운 듯 내 팔을 잡아당겼다.
"아...!"
나는 문득, 내가 잔뜩 움츠러든 자세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괜찮단다. 그냥...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러니 걱정 마려무나."
'뭐지, 이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장과 내용에, 영혼보다 깊숙한 곳에서 이런 감정이 치솟는다.
뭔가가 이상했다.
대체 이 내용이 뭐길래?
'뭔가 책이나 종이에 다른 게 숨겨져 있는 건가?'
나는 <종명자 이야기>를 다 읽어주고, 다음 설화로 넘어갔다.
'아, 이건 나도 아는 설화군.'
다행히 제이장의 설화부터는 예전에 봤던 평범한 설화였다.
한겨울날 어머니가 먹을 잉어를 구하기 위해 얼음장에 몸을 던진 사내라든가.
운명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탑을 쌓은 노인의 이야기라든가.
예전에도 똑같이 보았던 '지성이면 감천'의 교훈을 전하는 설화들이었고, 나는 이번에는 기묘한 기분이 들지 않고 편안하게 아이에게 설화들을 읽어주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음? 이것도 처음보는 설화인데...'
제십삼장, <둥근 땅 사람들 이야기>라는 설화는 나 역시 처음 보는 이야기였다.
'아, 이건...'
북향화가 흘리듯 해 주었던 내용의 설화였다.
성계(星界)라는 곳에도 사람들이 사는데, 그들은 둥글게 생긴 땅에 붙어서 산다는 것이었다.
"와아, 어떻게 사람들이 땅에 붙어서 살죠? 이 둥그란 부분 밑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로 떨어지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설화집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설화집의 마지막 장은, 내가 저번에 보고 왔던 '세상의 끝'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상의 동서남북으로 가면 세상의 끝이 나오고, 세계순력이니 뭐니 하는 것이 세계를 감싸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략적으로 표시한 지도가 있었다.
'이건...'
지도의 중심에는 커다란 사막이 있었고, 사막의 중심에는 작은 섬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사막의 왼편에는 벽라국, 연국, 성제국으로 보이는 나라들이.
오른편에는 여러 부족국가들이.
윗편에는 커다란 초원이.
아래편에는 끝없는 바다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동서남북의 끝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었고, 이 경계선 너머로는 해, 달, 별 등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이 세상의 전부... 인건가...음?'
나는 문득 지도 바깥에 아주 작게 그려진, 원통형의 작은 뭔가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봉명성...? 이것도 나와있다고? 허...'
단순한 시골의 설화집이라기엔, 지나치게 내용이 자세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설화집에서 또 다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선인님, 근데 이것 좀 보세요. 여기 해랑 달이요~"
꼬마아이는 지도 바깥에 표시된 해와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꼭 눈알 같아요!"
"......"
지도는 마치 해와 달을, 눈알처럼 그려놓았다.
금빛의 해 속에는 실핏줄 같은 것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기 힘든 동공이 그려져 있었고, 은빛의 달 역시 해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해와 달의 동공은 둘 다 지도 속 대륙을 향하고 있었다.
오싹, 오싹!
나는 이것이 '눈알'임을 인식하자 또 다시 전신에 오한이 돋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지, 이 세계는...?'
문득, 저 멀리서 지는 해와, 저 멀리서 뜨는 달이, 너무도 두렵게 느껴졌다.
'...아니, 아닐 거야. 그냥 시골의 어린애가 가지고 있는 책일 뿐이야. 서책을 만든 사람이 그냥 장난삼아 그려놓은 거겠지...'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머릿속으로 드는 무시무시한 생각들을 내몰아 버렸다.
'그런데, 왜 시골의 꼬마아이가 가지고 있는 서책에 담긴 지도에, 봉명성은 물론이고, 답천사막 중앙의 등선향까지... 정확히 그려진 거지...?'
뿌득...
책을 덮어도 해와 달에 그려진 희미한 동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 책을 만든 사람은 뭘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뭔가 이 책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 걸까?
"저기... 이 책 내게 주지 않겠니?"
"네? 안 돼요! 그건 제 언니가 오면 같이 읽으려고 한 책이란 말예요!"
"흠..."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으려나...'
상당히 고집이 센 아이 같았다.
그때, 저 멀리서 해가 져가는 것이 보였다.
'이제 곧 밤이 되겠군.'
독물들이 몰려들 때였다.
"그나저나 얘야, 이제 들어가지 않겠니? 밤에 바깥에서 돌아다니면 위험하단다."
"음... 언니 기다려야 하는데..."
"오늘 마을에서 축제도 하잖니? 축제 보고 싶지 않니?"
"음..."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선인님도 같이 가면 갈게요!"
"음...? 나는..."
"선인님 안 가면 저도 안 갈거에요!"
나는 결국 한숨을 쉬며, 법술로 만들었던 흙 의자를 다시 무너뜨렸다.
"알겠다. 알겠어, 나도 가면 될 거 아니니."
직후, 나는 다시금 법결을 맺어 흙 인형을 하나 만들었다.
웅얼웅얼...
그리고, 음혼귀주문의 공법을 운용해, 작은 저주문을 하나 만들어 흙 인형에 불어넣었다.
"우와, 선인님. 그 인형은 뭔가요?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저주인형이란다."
음혼귀주문에는 저주인형을 만들어, 저주문을 통해 원격으로 조작하는 법술이 들어있었다.
저주인형을 통해 저주를 내릴 수도 있었고, 이렇게 저주문 한두개를 불어넣어 행동을 입력시킬 수도 있었다.
108개의 저주문을 동시에 다뤘다는 음혼귀주문의 창시자는, 사람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어 108개의 저주문을 곳곳에 불어넣은 다음 진짜 사람과 똑같이 조작했다고도 한다.
우웅!
저주문이 들어간 저주인형은 꿈틀거리며 어색하게 움직이더니, 나 대신 마을 어귀에 섰다.
"나 대신 저게 경계를 서줄 거란다."
뭔가가 마을의 경계를 넘으면 저주인형이 신호를 보내고, 나는 그걸 감지해서 멀리서 날려버리기만 해도 충분했다.
"우와... 역시 선인님은 신기하네요."
"하하, 이제 신기한 걸 봤으니 얼른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있자꾸나."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수결을 맺으며, 세 개의 흙 인형을 더 만들어, 저주문을 날려넣은 다음 마을의 사방위로 나누어 보내버렸다.
이걸로 방위는 문제 없다.
* * *
"어머, 서 수사도 축제에 참여하실 건가요?"
축제의 전통 복장이라는, 새하얀 백의의 궁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북향화가 아이와 함께 걸어오는 나를 보았다.
축제의 규칙에 따라, 그녀는 머리장식 역시 마을의 다른 여인들과 같이 수수한 비녀를 한 개만 꽂은 상태로 있었다.
"네, 이 아이 덕분에 말이죠."
"와아, 선녀님이시다!"
아이는 북향화에게 다가가 마을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외모는 그리 특출나지 않을지언정, 백의를 입고 단정하게 있으니 썩 아름다워 보였다.
"아, 선인님도 축제에 참여하시렵니까?"
촌장과 마을 장정 몇몇이 다가와 물었다.
"그렇소만... 혹시 뭐가 문제가 되오?"
"아! 아닙니다. 다만 혹시 산간지대의 축제들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알고 있소. 위뢰제, 경술제, 쌍선무. 세 개의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지?"
"예. 이번 축제는 그 중에서도 쌍선무(雙扇舞)의 축제입니다. 해수(害獸)에게 사람들이 잡혀간 후에는 늘 쌍선무의 제를 벌여 심신을 위로합지요."
성제국 산간지방에는, 일 년에 한 번씩 번개가 산간지역 전체를 덮는 날에 벌이는 위뢰제,
그리고 경전과 학문의 나라인 성제국에서 주최하는, 경문 등을 읊는 서생들의 축제인 경술제.
그리고 산간지방에서 해수나 요괴에게 사람들이 잡혀가면 다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고 비는 쌍선무의 축제가 가장 유명했다.
"나도 알고 있소. 아, 그런데 쌍선무는 참여하려면 참여자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벌이는 축제라 했던가..."
생각해보니 급하게 참여하겠다고 하면 남는 옷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건 괜찮습니다. 선인님의 몸에 맞는 옷이야 체격 맞는 청년들에게 받아오면 되니..."
"음, 됐소. 그럴 바에야 그냥 참여를 안 하고 말지."
말이 받아오는 거지, 사실상 축제에서 빠지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때, 북향화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인 건가요?"
"아, 그게 축제에 참여할 옷이 없어서 저는 그냥 역시 빠지기로 했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문제였나요? 촌장님께 전해주세요, 서 수사의 옷은 제가 만들겠다고요."
"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 빨리 전해 드리세요."
나는 당황했으나 일단 촌장에게 그 말을 통역했고, 촌장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물러갔다.
"아니, 북 소저. 이제 곧 축제가 시작인데..."
"됐고, 팔 벌려 보세요."
그녀는 어느새 저물법기에서 줄자 비슷한 도구를 꺼내, 내 몸 곳곳을 재 보고는 다시 저물법기에서 뭔가를 꺼냈다.
퍼엉!
쿠웅!
그녀의 저물법기에서, 작은 모형 집 같은 것이 튀어나온다 싶더니, 펑 소리와 함께 눈 앞에 떨어졌다.
"이, 이건..."
"제 휴대용 공방이에요.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만들어 올 테니까."
얼마 후, 그녀의 공방 안쪽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는 백색의 도복을 꺼내서 가지고 왔다.
"...혹시 그냥 그 공방 안에 원래 들어있던 옷은 아닙니까?"
나는 상식을 벗어난 제작 속도에 공방 안쪽을 슬쩍 보며 물었다.
"공방 안에 왜 이 지역 전통 복식이 들어있나요? 잔말 말고 입어 보시죠."
"허..."
'이게 기문법재인가...'
뭔가를 '만드는'것에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다는 이들.
일반적인 법기라면 몰라도, 일반 옷 한 벌 정도는 그냥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잠시 그 속도에 감탄하며, 옷을 받아 그녀의 공방 안쪽에서 갈아입었다.
내가 받은 것은 치렁치렁한 백색 장포였다. 신발까지 깔맞춤이라 내 몸은 제3자가 보기에 백로 같아 보였다.
"음, 서 수사한테도 꽤 어울리는걸요?"
"험, 고맙습니다. 북 소저도 꽤나 잘 어울리십니다."
"어머, 고마워요."
퍼엉!
그녀는 휴대용 공방을 다시 작게 만들어 저물법기에 집어넣었다.
나는 곧 열린다는 축제의 터로 갔다.
그곳에선 촌장이 한창 축제 준비를 감독하고 있었다.
"아, 선인님. 오셨군요. 하하, 잘 어울리십니다. 쌍선무의 제는 몇 번째 해 보시는지요?"
"아, 사실 이번이 처음이요. 그전까지는 서책으로만 본 축제인지라..."
촌장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마을에서 선인님께 최초의 쌍선무의 제를 보여드릴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나 역시 오랜 전통을 견식할 수 있어 영광이외다."
"성제국 산간 지역에 천육백년동안 내려져 전해지는 전통 깊은 축제이니, 즐겁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작게 놀라며 되물었다.
"천육백년... 상당히 역사가 깊은 축제외다?"
"예, 전설로 전해지기를, 먼 옛날, 이 산간지역에 유명한 악귀를 두 신선들께서 처치하시고, 두 신선들께서 함께 추셨던 춤사위에서 시작된 것이 쌍선무의 제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신선님들이 악귀를 처치하고 춤사위를 추셨듯이, 요수나 해수에 사람들이 잡혀가면 두 신선들의 영험함을 빌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말라고 축제를 지내는 것이지요."
촌장은 문득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지네 요괴가 너무 가까이 살고 있어, 사람들이 잡혀가도 유해 수습은 꿈도 못 꾸고 축제를 지낼 엄두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전설의 두 신선과 같이, 선인 두 분이 나타나시어 저희 마을을 구해주시니, 이 노인네는 얼마나 감동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촌장의 말을 들으며 축제의 현장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구경했다.
얼마 후, 해가 지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마을의 아낙들과 어른들이 북과 징, 집에 있는 비파를 퉁겼다.
음악은 어찌되었든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성격이 뒤섞인 축제답게, 너무 경박하지 않았고 은은한 선율이 있는 곡이었다.
그리고 마을의 중심으로 청년과 처녀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모두 똑같은 백의를 입고 있었으며, 마을 아낙이 청년과 처녀들에게 다가와 각각에게 종이부채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각각의 집에서 쓰던 부채들인지, 종이부채는 전부 다 형태가 달랐으며 하나같이 낡아 있었다.
심지어 갯수가 몇개 부족하자, 아예 그냥 종이를 접어 대강 손에 쥐는 경우도 있었다.
펄럭, 펄럭!
공터의 양쪽으로, 먼 옛날의 두 신선에 대한 그림을 담은 족자가 펼쳐졌다.
그리고 촌장이 공터 앞에서 죽은 이들에 대한 명복을 빌고, 두 신선의 영험함을 빌어 다시는 이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축문을 외웠다.
그리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쌍선무(雙扇舞)는 말 그대로 부채를 쥔 남녀 한쌍이 모여 춤사위를 추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축제 초기엔 여자 쪽은 백색의 무명천으로 면사포마냥 얼굴을 가리고 있어, 서로 얼굴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음, 북 소저는 의식영역을 아예 거뒀군.'
아무래도 의식영역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단박에 서로를 알아차릴 테니, 재미가 없어 그런 듯 싶었다.
나 역시 두 눈을 감고 의식영역을 무형검으로 바꾸었다.
공터에서 남녀들이 한 쌍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공터의 끝자락에서 짝을 잡지 않고 겉돌며, 무형검을 저 멀리 날렸다.
슈웅!
저주인형의 감지에 걸려, 마을로 진입하려던 독물 한 마리가 그대로 무형검에 맞고 터져 버렸다.
퍼엉, 퍼엉!
나는 대강대강 춤을 추며, 마을의 중심에서 마을의 방위에 힘을 더 썼다.
북향화가 며칠 후에 법기를 만들때까지는, 그 동안은 내가 마을을 지켜주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하는 게 맞을 터다.
'끝자락에서 보법 연습이나 하는 게 좋겠군.'
나는 쌍선무의 춤과 비슷하게 보법을 연습하며 겉을 돌고 있었다.
그때였다.
'음?'
저 멀리, 반대방향에서 나와 같이 겉돌며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보였다.
'아니, 당신은 또 왜 겉도는 겁니까?'
열정적으로 축제에 참여하겠다더니.
나는 어색하게 춤을 연습하며 이쪽으로 오는 북향화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도 어떻게 나를 알아본 건지 나를 쳐다보았다.
"서 수사?"
"역시 북 소저였군요. 여기서 왜 겉돌고 계시는 겁니까? 축제에 열심히 참여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더니."
"아, 그게... 춤이 어렵네요."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나저나, 무명천으로 앞이 안 보일 텐데 어떻게 절 알아본 겁니까?"
그녀는 나름 축제를 즐기기 위함인지, 의식영역을 범인들과 같이 머리 안쪽으로 숨겨두었다.
때문에 의식을 쓰지도 못할텐데, 그녀는 나를 바로 알아본 것이었다.
'무명천에 앞이 가려져 있어, 양옆과 상대의 발밖에 안 보일 텐데...'
"어떻게 알아보기는요, 서 수사가 입은 옷, 신발, 다 제가 만든 건데 왜 못 알아보나요?"
그녀는 도리어 내게 되물어왔다.
"그건 그렇고 서 수사는 어떻게 절 알아본 거죠? 서 수사야말로 제가 얼굴을 가리고 있고, 의식이 흝는 느낌도 없었는데?"
"아, 그거야..."
나는 간단하게 그녀와 춤의 합을 맞추기 시작하며 대답해 주었다.
"소저의 숨 소리, 심장 박동 소리, 체형, 냄새, 손의 모양 등은 전부 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가렸어도 그런 것들은 안 변하죠."
내 말에, 그녀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 아니 도대체 그런 걸 왜 외우고 다니시는 거죠?"
"아, 그건 말입니다..."
나는 순간 '절정에 이를 때의 버릇입니다'라고 말을 하려다, 뭔가 어감이 이상하다는 걸 생각해냈다.
절정 고수나 절정경이라고 해도, 그녀는 아마 무림인의 경지는 별 관심도 없을 터였다.
'절정에 이를 때의 습관이라는 건 뭔가 변태같은데...'
그럼 그냥 평소의 버릇이라고 할까?
'저는 평소에 사람들의 숨소리, 심장소리, 체형, 냄새 등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라...'
어쩐지 이것도 굉장히 변태 같이 느껴졌다.
'제길, 생각해보니 내가 이런 걸 왜 걱정하는 거지.'
딱히 사람들뿐이 아닌 주변 환경에도 다 적용하고 다니는 감각이었기에 이상함을 못 느꼈었다.
'그래, 그냥 적당하게...'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정상적으로 보일만한 대답을 말했다.
"그냥, 소저가 유난히 기억에 남더군요."
'그래, 이 정도면 정상적으로 보이겠지.'
우리는 점차 춤사위의 합을 맞춰 가며 공터 끝자락에서 안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나는 그녀를 흘끔 보았다.
북향화는 내 대답을 듣고 아무 말도 없었다.
'음? 어디 아픈건가?'
그리고 왠지 그녀의 목 위쪽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소저, 괜찮으십니까?"
"......"
"소저?"
"그만 말 거세요. 서 도우. 안 그래도 춤사위가 어려운데 서 도우 때문에 헷갈리네요."
"하하, 미안하군요."
나와 그녀의 손에 들린 부채의 끝이 스쳤다.
동시에 내 무형검은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마을로 달려드는 독물들을 쫓아냈다.
나는 왼쪽으로 세 번의 보법을 밟으며 한 바퀴를 돌았다.
그녀 역시 나와 똑같이 움직이며 한 바퀴를 돌았고, 다시 한 번 서로의 부채 끝이 스쳤다.
어느덧 우리는 공터의 중심부에 들어와 있었고, 축제의 2막이 시작되었다.
사락, 사락, 사라락...
마을의 청년들이, 눈 앞에서 춤추던 상대의 얼굴에 씌인 무명천을 벗겼다.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을 따라 북향화의 얼굴에 씌인 무명천을 벗겨냈다.
"하아... 이제야 앞이 보이네요."
그녀는 무명천이 더웠던 건지,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시금 서로의 부채 끝이 스쳤다.
우리는 다시금 오른쪽으로 세 번 보법을 밟으며 한 바퀴를 돌았다.
내 무형검 역시 마을을 회전하며 원을 그렸다.
몇 겹의 원이 그려지며, 겹쳐지고 수많은 변화와 함께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독물들을 뿌리쳤다.
마을의 중심에서는 수많은 횃불들과 북소리, 비파소리, 현 소리들이 울리며, 젊은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북 선자는 어째 앞을 보셔도 춤을 못 추니, 그냥 몸을 못 쓰시는 것 같습니다만."
"몸치라고 놀리시는 건가요? 서 도우도 옷을 제대로 못 입은 걸 봐선 남말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서로의 부채 끝이 스쳤고, 우리는 이색적인 산간지방의 축제 속에서 서로를 놀리며 피식거렸다.
사람들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으며, 몇몇은 북을 두드리고 있었고,
몇몇은 두 신선이 그려진 족자를 보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족자에는 창을 든 신선과, 곱사등이 신선이 악귀를 물리친 후.
두 신선이 무기를 내려놓고 부채를 쥔 채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에 천을 두른 신선과, 곱사등이 신선은 입만이 그려져 있었는데, 둘은 서로를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