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00화 (100/185)

연(8)

나는 무형검을 휘둘러 석상들을 쓸어버리려 했으나, 문득 뒤쪽에서 회로를 수리하는 북향화가 신경이 쓰였다.

'쓸어버릴 순 있지만, 괜히 청문령이나 청문중진에게 말하게 되면...'

문득 청문중진의 입에서 '도우'라는 말이.

청문령의 입에서 '선배님'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상상되었다.

'그럴 순 없지.'

나는 무형검을 꺼내려던 것을 멈추고, 그냥 평범하게 허공에 강기를 덧씌웠다.

우우웅!

'오기조원 경지로도, 연기기급 괴뢰들쯤은 충분하다.'

콰과광!

나는 허공에 강기를 씌운 채, 눈 앞의 석상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석상들은 저항하려하는 듯 했으나, 아직 수복이 완전히 되지 않은 탓인지 붕강기에 휩쓸려 모두 갈려나가 버렸다.

우우웅!

그러나 석상들을 부순 후에도 석상들은 다시 파르스름한 빛에 휩싸여서 자동으로 수복되고 있었다.

'청문중진이나 청문령은 괜찮으려나...'

한 단계씩 경지를 떨어뜨리는 금제를 보아, 청문세가 가주인 청문중진은 경지가 제약당했어도 축기기급일 터였으니 걱정할 건 없었다.

하지만 청문령은 연기기급으로 떨어졌을 터.

"북 소저. 금제 해제는 멀었습니까?"

"거의 다 끝나 가요. 이제..."

파아아앗!

"이것만 다시 수복하면!"

그녀가 꼬챙이 같은 장비로 회로를 만지자, 회로가 빛나며,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동시에 저절로 수복되던 봉명성의 수호석상들은 다시 잔해가 되어 쓰러져 버렸다.

"휴우, 겨우 끝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소저. 역시 대단하시군요."

"아니에요, 어차피 일시적으로 촉발된 금제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해제될 금제였고, 전 그저 그걸 앞당긴 것 뿐인걸요."

북향화는 땀을 닦으며 다시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북 소저, 잠시 기다리고 계십시오. 저는 청문령 수사가 무사한지 보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녀는 선선히 수긍했고, 나는 청문령이 있을 1층 수목원으로 날아갔다.

수목원의 중심부, 그곳에선 청문령이 수목 속성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거대한 진도(陣圖)를 그린 채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진도의 외곽에는 수호석상으로 보이는 석상들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청문 수사,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소. 주변에 널린 게 목 속성의 영기인데다가, 이 주변의 영맥은 이미 조사가 끝나 내 진도에 끌어들여 법술을 구사할 수 있었기에 위협적이진 않았소만..."

아무래도 청문령에게 그 정도 금제는 큰 위협은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방금 그건 도대체 뭐요?"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방금 것은..."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수목원 한쪽에서 파공성이 울리더니, 비둔술과 함께 청문중진이 날아왔다.

"방금 그건 또 뭐냐!"

"아, 가주님."

청문령이 청문중진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사문법재 연기사가 봉명성의 회로를 건드려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예, 그렇습니다."

내 설명에, 청문중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되더니 말했다.

"지금 그녀는 어디 있지?"

"현재 봉명성 외곽에 있습니다."

"안내해라. 확인할 것이 있다."

나는 청문중진을 데리고 북향화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 가주님. 어쩐 일이신지요?"

"할 얘기가 있다. 방금 네가 금제를 촉발시켜 봉명성에 이현상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다."

"예, 맞습니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이현상이 일어났을때, 봉명성 상층부를 둘러보던 나는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기이한 것이요?"

"그래, 봉명성 최상층, 그곳에 숨겨져 있던 어떤 기이한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아무래도, 봉명성에는 특별한 금제를 촉발시키면 드러날 수 있는 뭔가가 남아있던 듯 했다.

그는 북향화에게 말했다.

"한 번 더 그 이현상을 촉발시킬 수 있겠나?"

"가능은 합니다."

"흠... 하면 내가 딱 신호를 내릴 때에 맞춰서 현상을 촉발시켜야 하는데..."

"아, 그거라면 문제 없을 듯 합니다."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건드린 금제는, 보아하니 봉명성의 축을 이루던 금제 중 하나로 보입니다.

금제의 상태로 보아, 이에 대응되는 또 다른 금제가 셋은 더 있어 보이고요.

즉, 이러한 축이 봉명성에 사방에 존재하며, 그 축을 따라 봉명성의 각 층들이 형성된 것이니, 봉명성 최상층에 저와 가주님이 함께 올라가, 또 다시 축을 찾아서 이 금제를 촉발시키면 될 듯 합니다."

"흠, 알겠다. 그리고..."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따라와라. 령이는 가장 중요한 내부진법을 구상해야 하지만, 네가 맡은 외부 진법의 중요도는 높지 않으니.

금제가 촉발될 동안 네가 이 법기사를 지키고 있어라. 금제가 발동하면 봉명성의 수호석상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듯 하니..."

"알겠습니다."

나 역시 청문중진이 발견했다는 결계가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군말없이 그를 따라 나섰다.

나는 청문중진과 북향화와 함께, 봉명성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북향화는 봉명성 최상층의 축으로 가 그곳의 벽면을 뜯고 해체했다.

최상층은 공간압축이 되었다고 해도 다른 층보다 조금 좁은 편이었기에, 나는 저 멀리서 청문중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봉명성 최상층의 중심부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몰랐던 뭔가가 있었나보군.'

[시작해라!]

그리고, 청문중진이 법력을 담아 사자후를 터트렸고, 그 말을 들은 북향화가 작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기이잉!

그녀가 뭔가 회로를 만지작거리자, 다시금 기이한 압력이 돌며 법력을 압박했다.

그리고 그 때였다.

파아아아앗!

청문중진이 있던 봉명성 최상층 중심부.

그 위쪽으로, 새하얀 빛이 터져나오며 숨겨져 있던 결계가 나타났다.

'저건 뭐지?'

나는 살짝 놀라서 그 결계를 자세히 관찰했다.

요족의 지각으로도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결계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내 지각이 약한 탓인지, 그도 아니면 봉명성을 만들었다는 장인이 그만치 위대한 존재였던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번에 나타난 저 결계는 분명 어마어마한 결계라는 것이었다.

'진한 공간파동... 저 결계 안에 또 다시 공간이 압축되어 있다. 저 안쪽으로 가면 뭔가 또 다른 장소가 나타난다는 거야...'

내가 그쪽을 바라볼 때였다.

결계를 관찰하던 청문중진이, 결계의 약한 지점을 향해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그러나 결계는 우릉거리며 진동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들리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입모양을 보아하니 대략 '축기기 수준의 힘으론 뚫리지 않는다'라는 말인 듯싶었다.

청문중진은 계속해서 결계를 관찰했고, 나는 북향화의 주변에서 우리에게 달려드는 수호석상들을 박살냈다.

그리고 약 일 각의 시간이 흐르자, 금제는 저절로 사그라들었다.

금제가 사라지자 결계 역시 사라졌고, 청문중진이 다시 우리에게로 날아왔다.

"협조해주어 고맙다. 일단 너희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거라. 남은 시간동안 하던 것을 하며 진법과 법기를 구상하도록 하여라."

그는 결계가 나타났던 곳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나는 이곳에서 남은 며칠간 기력을 모아보도록 하지. 축기기급의 힘으로는 못 뚫지만, 며칠을 모아, 청문세가의 비술로 한 번에 내지른다면 일순간 결단기급 일격은 될 테니..."

"알겠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원래의 목적대로 봉명성 곳곳을 조사하고, 진법의 구조도를 짰다.

동시에 셋이서 모여 얼마간 진법에 대한 회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 * *

"일단 오늘로서 인근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와 내부진법의 구상도는 끝이 났네."

"외부진법 역시 구상이 끝났습니다, 청문 수사의 내부진법을 완벽히 보조할 수 있을 겁니다."

"진법 법기 역시 봉명성과 연결해서 진법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법기를 구상했어요."

어찌어찌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할 일을 전부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천색성으로 가서 진법을 다시 보고, 고치고, 진법 법기와 외진법, 내진법간의 연계를 다시 한번 맞춰봐야겠지. 그리고..."

청문령이 위층을 올려다 보았다.

"그래, 가주님께서 최상층의 결계를 깨려 하신다고?"

"예."

"흠, 성의 금제와 직결된 결계는 함부로 깨면 뭐가 작동할지 모르는데... 특히 봉명성 같은 고대 유적은 말이야..."

그는 살짝 걱정을 표했다.

"내게 결계의 분석을 맡겼으면 빨리 분석할 수 있었다만... 아무래도 내게는 장생과 생장 진법의 구상을 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나 보군."

"아무래도, 장생과는 가주님께도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요."

나는 청문령과 함께 위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얼마 후, 청문령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역시 올라가 봐야겠어. 남은 시간은 하루도 채 안 되지만, 일단 결계를 분석해 봐야겠다. 괜히 가주님이 뭔가를 잘못 건드려 성의 금제가 더 촉발될 수도 있으니까."

그는 그 말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고, 나와 북향화 역시 그를 따라 같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최상층.

그곳에선 청문중진이 오른 주먹에 영기를 불어넣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 주먹은 시퍼렇게 빛나며 주변 공간을 진동하게 하고 있었다.

'저게 청문세가의 비술인 건가...'

저 안에 담긴 기운이 폭발한다면, 한순간 원영기에 필적할 일격을 낼 수 있을 듯 했다.

"가주님, 진법의 구상은 기본적인 틀은 전부 잡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돌아가 세세한 틀을 잡는 것이고... 가주님께서 금제와 연결된 결계를 깨시려 한다는 말씀에 얘까지 왔습니다."

그가 진중한 표정으로 청문중진에게 말을 올렸다.

"하지만 금제와 연결된 진법은, 함부로 건드리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다, 청문령. 하지만 모처럼 가주가 봉명성까지 왔는데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야 면이 서겠는가?

천인기 선배들께서 말 그대로 싹 긁어갔더군. 몇몇 부적류, 주류(酒流), 쓸데없는 장식 법기류 등만 남아있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끄음..."

청문령은 옅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하면 결계를 분석할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시간을 주시면 최대한 문제가 안 생기는 쪽을 타격하실 수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연기사! 너는 다시 금제를 촉발시켜서 결계를 드러나게 하라!"

"네."

북향화는 청문중진의 명령을 받고 다시 벽면을 뜯어 금제를 촉발시켰다.

쿠르르릉!

다시금 금제가 촉발됐고, 결계가 나타났다.

청문령은 결계를 자세히 뜯어보았고, 금제가 촉발되는 시간이 다할 때마다 북향화는 다시 금제를 촉발시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가주님, 이 부분을 타격하시면 됩니다."

"그래, 이제 슬슬 섭명함도 출발할 시간이 됐으니 얼른 결계 안쪽만 확인해보고 나가도록 하지."

쿠구구구!

청문중진의 오른주먹에 모인 힘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 그럼 다시 금제를 촉발시켜라!"

북향화는 다시금 금제를 촉발시켰다.

지난 며칠간 봉명성 이곳저곳을 뜯어보고, 네 군데의 축이라는 곳을 다 돌아가며 금제를 촉발시킨 결과, 북향화는 어느덧 금제를 자유자재로 껐다켰다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파아아앗!

금제가 촉발되고, 결계가 나타난다.

청문령이 결계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이 부분입니다."

그리고, 금제에 의해 한 단계 낮아졌어도, 청문중진의 주먹에 담긴 힘은 원영기에서 결단기 수준으로 낮아졌기에 여전히 거대한 힘이었다.

꾸구구구궁!

청문중진이 주먹을 휘두르자, 결계가 뒤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청문중진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고, 청문령과 나, 그리고 북향화 역시 기대가 어린 얼굴로 결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청문령의 안색이 변했다.

"자, 잠깐, 가주님! 잠시 멈추십시오!"

기이이잉!

결계로부터 붉은 빛이 번져나온다.

그리고, 번져나온 붉은 빛은 이내 봉명성 전체를 물들였다.

째애앵!

결계가 마침내 깨져나갔다.

하지만, 결계에서 나온 붉은 빛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청문령?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지 않았나?"

청문중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청문령을 바라보았고, 청문령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문제가 없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결계 안쪽에서 결계를 비틀어 놨었군요. 이 경우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흠... 일단 퇴로부터 확보해 놓지."

청문중진은 결계에서 물러나 바로 봉명성의 외벽을 후려쳤다.

콰아앙!

외벽이 무너지고, 이제 저 바깥쪽의 외벽 금제만 다시 뚫으면 나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외벽의 금제가... 달라졌습니다."

나는 안색을 일그러뜨렸다.

외벽의 금제 역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내가 가져온 금제 파훼 족자 역시 변이된 금제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청문중진의 안색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섭명함이 출발할 시간이 다 됐건만! 전음부는 안 통하나!"

그러나 나도 청문령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청문중진은 잔뜩 굳은 얼굴로, 자신이 깨부순 결계를 돌아보았다.

"일단, 안쪽에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군."

* * *

봉명성 바깥, 허공간.

그 옆쪽에 섭명함을 정박시킨 송진이 봉명성을 올려다 보았다.

봉명성 전체가 시뻘건 빛에 휩싸여 있었다.

[이 금제 반응은... 그 놈들, 봉명성의 조정실을 건드렸나보군. 큭큭... 이제 약속 시간도 다 됐는데, 그놈들 실력에 이 금제를 깨고 나올 리도 없으니... 자비를 베풀어 조금 더 기다려 줄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던 송진은, 망설임 없이 조타륜을 잡았다.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조정실을 건드린 놈들이니, 내 알 바는 아니지. 제자 놈 수행이나 보러 가야겠어.

그리고 어차피, 조정실에 진입했으면 탈출로도 있을테니 못 나올 것도 걱정할 필요 없겠지...]

쿠구구구!

섭명함이 귀무에 휩싸이며 허공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문득, 조타륜을 잡고 있던 송진이 봉명성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봉명성에 들어간 것도 800년 전인데... 탈출로... 제대로 남아 있겠지...?]

* * *

'이곳은...'

청문중진과 함께 들어간 결계 안쪽은, 거대한 서고(書庫)였다.

아니, 정확히는 서고 '였었던' 곳이었다.

"하, 여기까지, 아주 싹싹 긁어갔군."

청문중진은 허탈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고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책장은 책 한 권 없이 휑했고, 곳곳에 먼지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주술진이 결계 내부에서 결계를 비틀었던 주술진인 듯 합니다. 이 주술진 때문에 제가 분석을 잘못한 듯 하군요..."

서고의 바닥과 벽면, 천장에는 피로 그려진 기이한 주술진이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보아하니, 요족(妖族)들이 사용하는 요술진인 듯 한데, 요족어는 아예 할 줄 몰라 정체를 읽기가 어렵습니다."

청문령은 주술진을 분석하며 혀를 찼다.

청문중진 역시 진중한 눈빛으로 주술진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나는 주술진에 적힌 언어들, 그리고 주술진에 그려진 문양을 읽으며 몸을 흠칫 떨었다.

'이건, 해룡족의 문양인데?'

난 왠지 바로 이 곳에 이런 짓을 해놓은 자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또 당신인가, 서휼?'

도대체 그는 뭘 목표로 하는 것일까.

내가 주술진들을 관찰할 때였다.

"그런데 저 대는 뭐지?"

청문중진이 서고의 중심, 한 작은 대를 가리켰다.

'저 대는...'

나는 그 대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 대 위에는 작은 홈 같은 것이 패여져 있었는데, 그 홈은 내가 지난 생에 봤었던 봉명인이 들어갈 크기와 딱 맞는 크기였다.

'봉명인을 저기다가 집어넣으면 뭔가가 작동되는 구조인가...'

"일단 저 곳을 조사해 보지요."

청문령을 필두로, 나와 북향화 등 진법사와 연기사들이 대 주변을 관찰해 보았다.

청문중진은 진중한 표정으로 우리가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나는 문득, 대 주변에 있는 책장 중 하나로 시선을 돌렸다가 작은 글씨를 발견하였다.

'고어(古語)인가?'

나는 성제국 황실 서고에서 서책들을 읽던 당시, 고어들 역시 공부한 적이 있었기에 무리없이 글귀를 읽어내렸다.

글귀의 내용은 대략 이해했다.

-구더기들을 위해 굳이 비승의 축복까지 준비할 이유가 무엇일까. 질 좋은 시체를 더 열심히 파먹으라고?

"....?"

'이걸 구더기라고 해석하는 게 맞나?'

대략 '시체 파먹는 벌레'란 의미의 고어였기에 구더기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가리키는 시체 파먹는 벌레... 구더기들은, 비승을 준비하는 이들을 일컫는 건가? 누가, 왜, 무슨 심정으로 이런 글귀를 남긴 거지?'

난 글귀를 바라보고, 그 주변에 무슨 장치나 진법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살폈으나,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는 일단 그 글귀에서 신경을 껐다.

그렇게 주변을 조사할 때였다.

"찾았다!"

"찾았어요!"

청문령과 북향화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청문령은 천장에서, 북향화는 대 아래쪽의 바닥을 뜯어 회로를 건드리며 말했다.

우우웅!

동시에, 천장과 바닥, 두 부근에서 두 개의 새하얀 진법이 나타났다.

"이건..."

"전송진(餞送陣)..?"

청문중진과 나는 진법을 보며 읊조렸다.

"타, 탈출구가 있었군!"

청문중진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으나, 청문령은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어디로 통하는 전송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

그러나 청문령은 굳은 얼굴로 잠시 전송진을 보다 말했다.

"이 전송진을 통하더라도, 전송진을 이용하려면 공간 압력을 견뎌야 하는 건 아시지 않습니까? 공간 압력을 견디게 해줄 전송부나, 전송영패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본디 공간을 넘어선다는 것은, 공간 외곽의 압력을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승천문에 도전하는 것이 천인기 수도자뿐인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상계와 통하는 승천문 안쪽의 공간 압력은 천인기 수도자들이나 견딜 수 있는 압력이었으니까.

"...육신을 단련하는 청문세가의 공법을 익힌 나라면, 공간 압력에 견딜 수 있다."

청문령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나 축기기급이라면 공간 압력에 저항하는 건 시도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난 한 명 정도라면 내 실력으로 함께 보호하며 전송진을 이용하는 게 가능하다."

청문중진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쨌든 내 실책으로 이리 되었으니, 본 가주가 책임을 지고 전부를 바깥으로 데리고 가는 게 맞겠지. 내가 전송진을 이용해, 한 명씩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마.

그렇게 한 사람씩 왔다갔다 하며 빼낸다면, 모두가 탈출할 수 있을 것이야."

그 말에 청문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나 가주님, 그렇게 되면 가주님이 부상을 입으실 수도 있을진데..."

"괜찮다, 괜한 욕심을 부려 결계에 들어오고자 했던 내 잘못이니, 내가 책임을 지는 게 맞겠지. 우선 청문령 너부터 함께 데리고 나가겠다."

그는 차례로 나와 북향화를 가리켰다.

"청문령을 데려다놓은 후, 너희도 차례로 데리러 오마.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네."

아무래도 같은 혈족인 탓인지, 청문중진은 청문령을 우선 데려다 놓겠다고 하였다.

납득할만한 이유였고,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선선히 수긍했다.

"그럼,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한 번 가 볼까!"

청문중진은 청문령을 결단기의 힘을 사용해 보호한 후, 그대로 아래쪽의 전송진으로 뛰어들었다.

파아아앗!

전송진이 빛을 내며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전송이... 잘 된 것 같군요."

"그러게요. 도착한 곳이 이상한 곳은 아니었으면... 아앗!"

그리고 그때였다.

피시식...

청문중진이 사용한 전송진이, 빛을 잃고 꺼져 버렸다.

북향화는 당황한 채로 전송진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이, 이게 어찌된 거죠?"

"잠시 보지요."

나는 전송진을 보며,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를 알아챘다.

'제길, 충전식 전송진이다..!'

평소에는 봉명성의 힘을 끌어 유지를 하지만, 한 번 사용하면 봉명성으로부터 힘이 충전이 될 때까지 시간이 걸려, 다음번 사용에 시간이 걸리는 식의 전송진이었다.

아무래도 청문령 역시 다급했던지라 미쳐 알아채지 못했던 사실 같았다.

내가 알아낸 사실을 북향화에게 설명해주자, 그녀는 불안한 기색으로 결계 바깥을 바라보았다.

"충전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가요?"

결계 바깥에 만연해 있는 붉은 기운들이, 어느새 결계 안쪽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향화는 안색이 새하얘진 채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 붉은 기운이 봉명성 전역에 가득 차면, 뭔가 더 강력한 금제가 가득찰 것 같은데... 보통 저런 류의 금제는 살상금제인 경우가 많아요."

"......"

"저,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이를 악물고, 천장에 있는 전송진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청문령과 청문중진이 전송된 전송진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있을 것이 뻔한 전송진.

하지만, 이제 방법이 없었다.

"북 소저,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그게 뭐죠?"

"대신, 이 방법을 청문세간에 알리지 않겠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예...? 아, 비밀이 있으신 거군요. 알겠어요. 비밀을 알리지 않겠다고 맹세할게요."

"그렇다면..."

우우웅!

나는 무형검을 손에 쥐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고, 무형검으로 나와 그녀를 동시에 감쌌다.

공간의 압력은 무형검으로 막는다!

결계 바깥에서 붉은 기운이 점차 이쪽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나는 바깥쪽을 흘긋 본후, 다시 천장의 전송진을 올려다 보았다.

"그럼 가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너무 가깝..!"

파아아앗!

두 사람의 몸에 무형검을 두른 채, 나는 그렇게 전송진의 빛살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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