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6)
휘이이이!
답천사막과 붙어 있는 천색성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청문령과 청문단은 커다란 보자기를 하나 챙겨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내 기억으로 그 여자가 살았던 곳이···.”
그리고, 청문령의 시선이 어느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 안쪽에는 일전 보았던 ‘백색법련’ 법기점이 있었다.
“저기군.”
‘그 여인이었었나.’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어찌 해야 하나를 마음속으로 고민했다.
“그나저나 령 형, 골목에 다른 세가의 자제들이 있는 거 아니오?”
“음, 그렇군.”
말 그대로였다.
골목 주변에는 의식 영역을 가지고 있는 수도자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심지어 축기기 급으로 보이는 수도자조차 있었다.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한심한 것들이다. 청문세가에서 저 여인을 데려간 걸 알게 최대한 화려하게 납치하자꾸나.”
“그럽시다.”
그리고, 청문령과 청문단은 모래바람을 뚫고 배 형태의 비행법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사문법재는 본가에서 발주할 물건이 있어 청문세가에서 데려가겠다!”
“뭣···.”
“그게 무슨···.”
청문단의 우렁찬 외침에, 주변의 수도자들이 움찔거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축기기 중기경의 청문단의 기세 앞에 나서는 이는 없었다.
축기기 초기 수준의 의식을 지닌 수도자 역시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청문단이 가져온 보자기를 펼쳤을 때였다.
“내 딸에게 무슨 볼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좀 곤란한 일이외다.”
쿠구구구!
새하얀 영기가 불어닥친다.
청문단은 움찔거리며 양 팔을 교차해 영기의 파도를 막았고, 영기는 꿈틀거리며 거대한 범의 형상으로 변해 청문단과 청문령을 막아섰다.
두 사람은 다시 건물들의 위로 올라가 범을 내려다보았다.
쿠구구구!
‘이건, 축기 후기!?’
영기로 이뤄진 새하얀 범 역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영기의 범이 흩어지며 그 중심에서 백의를 입은 한 장년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새하얀 백의를 입고, 목에는 푸른 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있었으며, 손목에는 유리 팔찌를 비롯해서 전신 곳곳에 유리로 된 법기를 잔뜩 차고 있었다.
“본인은 공묘세가의 객경 장로, 북중호(北中虎)라 하외다. 청문세가 분들이 내 딸애한테 뭘 바라고 찾아오신 건지는 모르나, 주문하실 게 있으시다면 그런 과격한 행위가 아닌 정중한 주문 신청을 부탁드리오.”
“음, 공묘세가의 객경 장로인가.”
“해당 천색성을 관할하는 인물인가 보군.”
청문령과 청문단은 한 발 물러서는 기색이었고, 나는 그를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이전에 나를 공묘세가에 영입하려 했던 그 축기기 수도자···!’
그가 그녀의 아버지였던 모양이었다.
“본 가문에서 찾아온 이유는···.”
청문령은 찬찬히 북중호에게 찾아온 목적을 얘기했다.
얼마간 청문령의 말을 듣던 북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유로 딸애를 납치하려 했던 것이군. 조금 화가 나긴 하지만, 청문세가의 면을 보아 참겠소. 또한 어쨌든 지금 딸애가 삼가의 자제들 때문에 곤경을 겪는 것도 맞으니···.”
잠시 얼굴을 찌푸리던 북중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청문세가에 딸애가 가라고 허락을 해 주고 싶어도, 딸애는 가지 않을 거요.”
“음? 그게 무슨 소리요?”
청문령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북중호는 골치 아프다는 듯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저 애 어미의 유언 때문이오. 언젠가 천색성에 딸애와 혼약을 약속해 놓은 혼약자가 증표를 들고 찾아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었소. 때문에 딸애는 어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천색성을 안 떠나려 하지.”
“음···.”
청문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떻게 안 되겠소? 나름 가주님이 명한 일인지라 중요한 일인데···.”
“딸애 성격이라면, 며칠 정도라면 몰라도 그런 중요한 일로 몇 달이나 천색성에서 떨어지는 일은 맡지 않을 거요. 그리고 딸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납치한다면 본인과 한판 붙어야 할 것이고.”
잠시 고민하던 청문령과 청문단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소. 아예 본인이 천색성에서 진법을 연구하기로 하지. 서 도우는 어떻소?”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청문령은 아래쪽 골목에 모여 있는 삼가의 자제들을 보며 호령을 했다.
“이놈들! 너희들이 둘러싼 그 사문법재 법기 장인에게는 청문세가가 가문의 이름을 써 정식으로 주문을 넣어야 하는 물품이 있다! 몇 년은 걸리는 물품이니, 앞으로 법기 장인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청문세가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고 청문세가의 이름으로 벌할 것이니, 썩 물럿거라!”
그 말에, 후기지수들 대다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후기지수 중, 내 육체 나이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한 수도자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청문령에게 공손히 예를 취했다.
“축기 3대 위인 청문령 수사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나도 벽씨세가의 최고 후기지수 벽문성 수사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군. 아슬아슬하게 정도선파 연합의 단체비승전에 떨어졌다지?”
“하하, 부끄럽습니다.”
갈색 장포를 입은 벽문성은 그 특유의 긴 꽁지머리를 쓸며 말을 이었다.
“다만 청문령 수사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청문세가의 일일지라도, 지금 저와 타 가문의 여러 후기지수들, 그리고 그녀가 지금 내기 중에 있습니다. 청문세가의 일도 중하지만, 내기는 잠시면 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기? 무슨 내기?”
청문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고, 벽문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만드는 법기를, 우리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길고 긴 천색성에서의 칩거를 끝내고 법기를 제대로 다룬 후기지수와 타국 여행이라도 가기로 했지요.”
“허, 지금 그러니까 청문세가의 일이 급한데 법기 장인을 데리고 여행을 가겠다고?”
청문단이 벽문성을 보며 눈에서 불을 뿜었다.
아직 축기기 초기의 기세를 가진 벽문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말이 아닙니다. 어쨌든 약조만 받으려는 것이고, 청문세가의 일이 끝난 후에 여행을 떠나도 상관없습니다.”
“흠··· 북 수사께선 따님이 웬 젊은 놈들과 여행을 떠난다는데 안 말리셨습니까?”
청문단의 말에, 북중호는 선선히 말했다.
“내가 허락한 거요. 딸애가 어미의 유언에 사로잡혀 너무 천색성 안에만 박혀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리 하라 했지. 그리고 당연히 내가 따라갈 거요.”
청문단과 청문령은 나를 돌아보았다.
“서 도우께서는 괜찮소?”
나는 벽문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내기라는 것이 대략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요?”
“아, 그것이···.”
그때였다.
파아아앗!
백색법련 안쪽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아! 마침 법기들이 완성이 된 모양입니다. 한 한나절만 기다려 주시면 내기가 끝이 날 요량입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 정도야 뭐···.”
청문단과 청문령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한나절 동안 내기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나 구경하기로 했다.
얼마 후, 백색법련이 있는 법기점 안쪽의 공간에서 공간 파동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저물법기와 같은 느낌···. 밖보다 안이 큰 법술이 사용되었나 보군.’
이전 연국 황제를 죽이러 갔을 때도, 연기기 수준의 황제가 밖보다 안이 큰 누각에 몸을 피했던 것이 생각났다.
‘저 법기점 자체도 하나의 그런 누각 같은 법기인 건가?’
얼마 후 법기점의 문이 열렸고, 골목에 모인 후기지수들과 벽문성이 법기점으로 들어갔다.
청문령과 청문단 역시 북중호를 보며 허락을 구한 후, 법기점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북중호에게 허락을 구한 후 법기점으로 함께 들어갔다.
화아아악!
우우웅!
법기점 자체에 걸린 공간법술이 발동되며, 나는 법기점의 모습이 지난번에 들어왔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단 걸 느꼈다.
거대한 대 위로, 깃발, 도검, 거울, 방울, 족자, 바퀴 등.
수많은 형태의 법기들이 올라가 있었고, 예상대로 백의를 입은 그녀가 대 위에 올라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하, 역시 북 소저의 법기들은 뿜어내는 기질부터가 다르구려.”
벽문성은 법기들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약조대로 이 법기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북 선자는 그 수사와 유람을 약조하셔야 하오.”
“걱정 마시죠, 벽 수사. 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제대로 다루는 것’의 기준은 제가 정합니다.”
“알겠소, 기준을 들어 보겠소이다.”
그녀는 방울 형태의 법기를 들어 올리며 법력을 불어넣었다.
파아아앗!
방울에서 새파란 빛이 뿜어지며 주변을 물들이고, 그녀의 주변으로 반투명한 수막(水幕)을 드리웠다.
그 수막 위로는 총 열 개의 줄무늬가 떠올랐다.
“제가 이번에 만든 법기들은, 10할의 위력을 내게 되면 법기들 위로 각각 1할마다 1개의 줄무늬가 떠오르도록 설정되었습니다. 즉 여러분이, 제가 만든 법기 중 어떤 것이든 골라, 단 하나라도 법기의 성능을 6할 이상만 끌어올리면 기준을 채웠다 인정하겠습니다.”
“하하하, 6할이라고?”
벽문성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습구려, 아무리 북 선자가 만든 법기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여기 모인 쟁쟁한 가문의 자제들이 법기의 6할도 못 끌어낼 것 같소?”
벽문성은 물론이고 여기저기서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누구나 6할은 다 끌어낼 테니, 누가 가장 법기의 성능을 잘 끌어올렸는지로 내기의 승자를 가려야겠군.”
공묘세가의 복식을 입은 한 후기지수가 낄낄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그 후기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요, 솔직히 6할도 너무 높게 잡아 욕을 먹는 게 아닌지 걱정했습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 중 법기의 힘을 2할이나 제대로 끌어내실 분이 몇이나 되실까요?”
“뭐, 뭣···!”
그 말을 들은 공묘세가 후기지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나를 무시하는 거요!?”
“아니, 무시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먼저 하지 않았습니까?”
흠칫!
일순간, 그녀의 기세가 변했다.
부드럽고 상냥해 보이던 모습이 사라지고, 노기를 띤 그녀의 눈빛이 좌중을 압도했다.
“감히 내 법기를 앞에 두고, 누구나 6할이나 힘을 끌어낼 것이라고요? 내 법기가 그리 쉬워 보였나 봅니다?
지금까지 백색법련에 전시된 실패작들을 보고 제 법기가 만만하다 생각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 자리를 떠 주시지요. 저는 유람이고 뭐고 제 법기의 진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분과는 말조차 섞기 싫군요.”
그녀의 서슬 퍼런 기세에, 공묘세가의 자제는 움찔 거리는 듯싶더니, 가슴을 탕탕 치며 앞으로 나섰다.
“좋소, 그러면 내가 가장 먼저 법기를 만져 보지! 법기가 그래 봤자 법기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공묘세가의 자제는 대 위로 올라가더니, 그 위에 있던 깃발 형태의 법기를 잡았다.
우우웅!
그리고 얼마 후.
피시식···.
법기는 불이 들어오는 듯하더니, 그대로 불이 꺼져 축 늘어져 버렸다.
“어, 어?”
“자신만만하시더니, 법기를 발동조차 못 시키시는군요.”
“아, 아니··· 이익! 깃발 형태의 법기는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오!”
공묘세가의 후기지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다른 법기들도 마구 만지며 법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역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법기들은 빛조차 발하지 못하고 피식 꺼질 뿐이었다.
그나마 빛이 들어왔던 것은, 그가 가장 익숙하다고 호언장담을 한 거울 형태의 법기였으나, 거울 법기조차 1할의 힘을 뜻하는 1개의 줄무늬조차 떠오르지 못했다.
“이, 이건 사기요! 뭐 이런 법기가 다 있소! 사용하라고 만든 법기가 아니잖소!”
그가 그녀를 향해 고함을 쳤으나,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실력이 없다면 예의라도 있으면 좋겠군요. 이만 내려가시지요. 당신이 다룰 수 있는 법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이익···!”
공묘세가 자제의 주변으로 토 속성의 영기가 빠져나왔다.
나는 북중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북중호는 혀를 차며 팔짱을 낄 뿐이었다.
“필요 없소. 딸애의 법기는 하나같이 힘을 끌어내기가 난해하지만···.”
콰아앙!
공묘세가의 자제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법술을 사용했다.
쿠르르···.
그러나, 그의 법술을 그녀가 보여 준 법기에서 나온 수막에 의해 막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수막에는 열 개의 줄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제대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상당한 성능을 자랑하니까···. 사실 아비인 나도 딸애의 법기에서 8할의 힘을 끌어내는 게 최대라오.”
북중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예의도 실력도 인품도 없는 쓰레기였군. 썩 꺼지시지요.”
우우웅!
그녀의 손짓에, 주변에 있던 네댓 개의 법기가 허공으로 떠올라 열 개의 줄무늬를 발하며, 공묘세가의 자제를 가리켰다.
공묘세가의 자제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듯 했으나, 이내 다른 세가 자제들의 야유에 의해 대를 내려왔다.
“큭큭, 저 놈, 저럴 줄 알았네.”
“제 놈이 무슨 법기를 다루겠다고.”
“법기가 유명한 세가인 공묘세가에서도 법기를 못 다루기로 유명한 놈이잖나.”
다시 법기를 정리한 그녀는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음 분 계신가요?”
그리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녀의 법기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법기 장인이군.”
청문령이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믿고 맡겨도 되겠어.”
“저 정도면 나름 법기의 천재 아닙니까? 아무도 법기의 힘을 제대로 못 끌어올리는 것 같습니다만.”
그랬다.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도전했지만, 가장 많이 법기의 힘을 끌어낸 이가 2할까지 끌어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청문령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뛰어나긴 하지만, 저 정도 법기는 상급 제련사라면 누구나 다 제련할 수 있소. 그리고 공묘천색, 그 발정난 놈에 비하면 아직 그 발끝만큼도 쫓아가기 힘든 게 보이는군. 공묘천색 놈이 가끔 본인에게 제놈이 만든 법기를 자랑하러 찾아왔소만, 그 법기와 비교하면 저 사문법재의 법기 장인은 아직 한참 모자라오.”
청문령은 냉정하게 그녀를 평가했다.
“보아하니 일부러 법기의 회로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 같은데, 공묘천색의 법기들은 회로가 간결하고도 아름다웠지.”
그는 법기에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듯, 멀리서 법기들을 뜯어보며 평가했다.
“영력 회로가 복잡하면 평범한 재료를 가지고도 성능이 좋은 법기를 만들 수야 있으나, 글쎄. 과연 저게 좋은 법기인지는 모르겠구려.”
북중호는 청문령의 말에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아직 제 딸은 공묘천색 장로님과 비교해서 한참 모자라지요. 하지만 회로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나름 이유가 있어서이니 이해해 주시지요.”
“뭐, 알겠소. 본가의 일을 맡을 때만 제대로 맡아 주면 된다오.”
청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기점 안에 모인 수많은 수사들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깃들었다.
그 많은 이들 중 뛰어난 몇몇 사람조차 법기의 6할은 커녕, 2할에나 간신히 미치는 이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몇몇은 아예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해 버리기도 하였다.
“이건 사기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점차 군중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듯했으나, 뒤쪽에서 지켜보는 북중호와 청문령, 청문단, 그리고 나의 기세에 눌려 함부로 폭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좌중을 뚫고 한 사람이 나섰다.
“벽 수사가 나섰소!”
“그, 그래. 축기기라면 어쩌면···.”
후기지수들을 끌어모았다는, 벽문성이었다.
“과연 명불허전이더구려. 북 선자의 법기들은 잘 보았소. 하지만, 역시 법기의 힘을 6할밖에 안 끌어내는 건 너무 쉽다고 생각되지 않소?”
그는 피식피식 웃으며 대 위로 올라서 법기들을 둘러보았다.
“축기기쯤 되면 법기를 어찌 다뤄야 하는지가 전부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소, 선자. 6할이 아니라 9할을 조건으로 내걸었어도 부족했을진대···.”
그리고, 벽문성이 한 비검(飛劍) 법기를 들어 올렸다.
“보여드리겠소, 축기기 수도자의 실력을!”
우우우웅!
그의 정순지력이 비검에 빨려들어 갔다.
비검이 빛을 발하며 줄무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줄무늬 하나, 둘···.
그리고 셋!
“오오··· 줄무늬 세 개!”
“저게 축기기 수도자인가!”
“아무도 못 끌어냈던 3할까지 힘을 끌어냈어!”
그러나 줄무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줄무늬··· 네 개!”
“벌써 4할이야!”
그러나, 점차 벽문성의 안색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저거, 어디까지 가려나···.’
파아아앗!
벽문성이 정순지력을 쏟아붓자, 법기에 다섯 번째 줄무늬가 떠올랐다.
“5할!”
“이런, 벽 수사께서 바로 기준에 닿으시겠는걸?”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청문령과 청문단.
북중호는 코웃음을 치거나 혀를 찼다.
벌써 벽문성이 힘들어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쯧쯧, 아무 이해 없이 힘만 쏟아 넣고 있군. 내가 해도 7할은 끌어낼 수 있겠는데···.”
청문령은 혀를 차며 뇌까렸고, 그 말은 주변으로 울려 퍼져 수많은 이들의 눈총을 샀다.
축기 3대 위인이라는 청문령을 대다수가 알아봤는지, 많은 이들이 다시 험험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빡, 깜빡···!
벽문성의 얼굴이 시뻘개졌을 때쯤, 여섯 번째 줄무늬가 희미하게 깜빡이며 떠올랐다.
그리고.
피시싯!
비검의 불이 꺼졌다.
“되, 되었소! 보시오 북 선자. 비검의 힘을 6할이나 이끌어 내었소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싸늘했다.
“6할? 벽 수사께서 보여 주신 게 정말로 6할이 맞습니까?”
“줄무늬가 보였지 않소!”
“흠···.”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고, 좌중이 그녀의 결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검(劍)을··· 왜 저렇게 다루지?”
솨아아악!
움찔!
나는 말을 뱉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시선이 내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시선은, 청문령을 향했던 시선들과 달리 빠르게 사라지지 않았다.
벽문성 역시 내 말을 들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축기기인 내게 함부로 말을 하는 이들은 없었지만, 다들 불만이 가득 찬 기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나를 바라보던 벽문성이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하하, 보아하니 수사께서는 저와 나이도 비슷한 듯한데, 어찌 그리 함부로 장담을 하시는지요?”
“아, 불쾌하게 들렸다면 미안합니다. 다만 제가 본디 검을 주로 만졌던 사람인지라 무심결에 한 소리를 했습니다.”
“아, 검수(劍修)셨나 보군. 한데 이 벽 모 역시 나름 검수(劍修)라고 자부해 온 사람이외다. 그런데 어찌 처음 보는 형장께서 벽 모의 방식을 폄하하시는지?”
“검수(劍修)?”
아무래도 비검술 등을 수련하는 수도자를 말하는 듯 했다.
“그러니까, 벽 형은 지금 비검술을 주로 익혀 온 검수란 말이십니까?”
“그렇소, 벽씨세가의 검도 천재라고도 불리며 축기기에 진입한 것이 본인이오. 보아하니 형장은 축기기 각수의 단계인 듯한데, 같은 축기 초기라도 방수의 단계인 본인이 형장보단 검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겠소이까?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외다.”
“···.”
움찔
가만히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 앞에서, 검의 이해를 논해?’
감히 내 앞에서?
나는 굳은 표정으로 대를 향해 올라갔다.
“무슨···.”
나는 대 위쪽에 있는 법기 중, 검 형태의 법기를 하나 골라잡아, 법력을 불어넣었다.
“잘 보시오. 검(劍)은···.”
우우웅!
“이렇게 쓰는 거요.”
법력이 불어넣어지자, 검이 빛을 뿜었다.
줄무늬가 하나, 둘씩 떠오른다.
그리고 줄무늬는 셋, 넷을 넘어, 다섯 개가 나타났다.
“하, 하하··· 그 정도가 끝이면···.”
그리고, 여섯 번째 줄무늬가 나타났다.
“···!”
벽문성은 물론이고, 좌중에 모인 수많은 가문의 후기지수들이 눈을 부릅떴다.
명확한 여섯 번째 줄무늬!
그러나 나는 계속 법력을 불어넣었다.
정순지력은 벽문성보다 한참 달렸으나, 검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검 법기의 힘을 끌어오는 건 부족함이 없다.
쿠우우우!
일곱 번째 줄무늬가 떠올랐다.
벽문성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 내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고, 그녀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덟 번째 줄무늬.
청문령과 청문단도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고, 벽문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김이 빠진 웃음을 내보였다.
아홉 번째 줄무늬.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북중호도 흠칫 놀라며 더더욱 내 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쿠구구구!
검 법기로 영기가 몰려들며, 마지막 열 번째 줄무늬를 형성했다.
법기의 힘을 10할 완벽히 끌어냈다!
“하, 하하···.”
벽문성은 허탈한 표정으로 몇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엔 패색이 짙어 있었고, 분노와 수치심이 뒤섞인 의념을 뿜고 있었다.
짝짝짝짝···.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놀랍군요. 여태껏 제작자인 저 말고는 법기의 힘을 전부 끌어내셨던 분은 없으셨···.”
우우웅!
나는 그녀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더욱 더 법력을 불어넣었다.
‘감히 내 앞에서 검에 대한 이해를 논해?’
보여 주겠다.
무엇이 검수(劍修)인지를!
눈앞의 검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잊어라!
쿠구구구구!
검이 마구 진동하며, 열 개의 줄무늬 위로, 한 개의 줄무늬가 더 떠올랐다.
열한 개의 줄무늬!
“뭣···!”
그리고, 그동안 잔잔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어, 어떻게···?”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검을 관조했다.
검 안쪽으로 수백 개에 달하는 영력 회로들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회로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검의 본질.
베고 찌르고 휘두르는 무기.
그 도구의 힘을 어떻게 극한까지 끌어올리는가.
그것은, 도구가 내 팔과 하나가 될 때까지 휘두르는 것이다.
단악검법, 제일초, 월악!
파아악!
내가 기수식을 잡고 검 법기를 한 번 휘두르자, 검 위에는 총 열두 개의 줄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평정을 잃고 내 앞에 와서 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이런 출력은 설정한 적이 없는데, 12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13개, 14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우우웅···.
나는 정순지력을 빼내며 말했다.
“그러면 검이 망가질 것 같군요. 검이 망가지지 않는 한에선 12할이 이 법기의 최대치인 듯합니다. 좋은 법기군요.”
나는 다시 검을 건네고 물러났다.
옆자리의 벽문성은 허탈하고 분한 기색으로 나와 눈을 피했다.
저 멀리 청문령과 청문단은 내 기예에 놀랐는지 감탄한 기색이었으며, 북중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단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자는 정해진 듯하군요. 수사께선 성함이 어찌 되시지요?”
그녀는 잠시 내가 건넨 검을 바라보다가 내게 말했다.
“제 이름은 서은현으로, 서 수사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만··· 애초에 저는 원래 내기에 참여자가 아닙니다만.”
“참여자가 아니시기는요. 법기점에 들어온 순간부터 수사께서도 참여자셨습니다. 다른 분들 중에서, 서 수사 급으로 법기의 힘을 끌어내실 분이 계십니까?”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없는 것 같군요. 하면 벽 수사의 말씀대로, 여기 계신 수사께 선택할 권리를 드려야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오.”
벽문성은 씹어뱉듯이 말한 후, 그대로 법기점을 나가 버렸다.
수많은 연기기 후기지수들 역시 벽문성을 따라나섰고, 그 중 청문세가 자제들은 같이 따라나서려다가 청문단에게 잡혀 법기점 한 구석에서 기합을 받기 시작했다.
“어쨌든 수사께서 제 법기들을 제대로 다뤄 주실 분이란 걸 증명해 주셨으니, 이 법기들은 전부 수사께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대 위의 법기들을 가리켰고, 나는 잠시 법기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필요 없소.”
“···예?”
“나는 법기를 안 쓰는 사람인지라···.”
무형검이라는 압도적인 상위 호환이 있는데, 왜 법기 같은 걸 쓴단 말인가.
“그나저나 선자께서는 저를 기억하시는지··· 예전에 물과 옷을 주셨던···.”
“지금 제 법기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내 말에, 그녀의 의념이 달라졌다.
그녀는 지금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검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 법기를 사용치 않겠다는 것은, 제 법기가 시원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뭐지···? 괴군과 같은 자질을 지녔다더니, 광증도 비슷한 건가?’
나는 당혹감을 느끼며 해명하려 했으나, 그녀는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이 비검들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더 좋은 것으로 드리지요. 제 성공작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휙!
법기점의 안쪽으로 그녀가 뛰어 들어갔고, 북중호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딸애는 평소에는 친절하고 상냥한 아이인데, 법기에 관련되면 성격이 조금 바뀐다네. 스스로 만든 법기에 대한 긍지가 넘치는 아이이니, 이해하게나.”
“아니···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닙니까···?”
“그게··· 자기 법기의 힘을 12할이나 끌어올린 수사가 서 수사밖에 없었거든. 생전 처음 보는 자이니만큼, 그런 자가 자기 법기를 사용 안 하겠다 한 것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과민 반응한 것이겠지.”
그리고, 법기점 안쪽에서 다시 그녀가 품에 검 법기들을 한 아름 안고 와서 내 앞에 늘어놓았다.
하나같이 준수한 영기를 뿜고 있었으며, 보기만 해도 넋이 나갈 정도의 명검들이었다.
“제가 가장 잘 만들었다고 자부할 만한 검 법기들입니다. 한번 잡아 보시고 결정해 보시지요!”
그녀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기색이 깃들었다.
나는 그 기색을 못 이겨, 검 하나를 잡아들었다.
우우웅!
검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오색찬란한 영기가 법기점 안을 뒤덮었다.
아까처럼 줄무늬가 나타나진 않았으나, 나는 이번에도 법기가 가진 힘을 초과해서 힘을 끌어냈다는 걸 느꼈다.
그녀도 그것을 느꼈는지, 황홀한 눈으로 내가 쥔 검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만, 소저. 저는 법기가 딱히 필요가 없습니다.”
“···예?”
움찔!
나는 그녀의 눈을 스친 섬뜩한 기운에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자신만만했던 미소가 바로 금이 가며, 이마 위로 혈관이 꿈틀대는 게 보였다.
“허허허, 법기 장인의 자부심은 그쯤 깔아뭉개는 게 어떤가, 서 도우.”
청문령이 대 위로 날아오며 말했다.
축기기 수도자가 둘이가 앞에 서자, 그녀는 섬뜩한 기색을 지우며 표정을 돌렸다.
“서 도우와 나는 백색법련 법기점의 주인, 사문법재의 자질을 지닌 자네에게 의뢰를 맡기려 하오만.”
“···무슨 의뢰이지요?”
“나와 서 도우는 어떤 진법을 개발하려 하는데, 그 진법에 쓰일 진법 법기들을 제작하려 하네. 도와줄 수 있는가?”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한데 진법 개발이라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분야가 아닌지요?”
“맞네. 해서 나와 서 도우가 천색성에 머무르며 자네와 함께 진법 개발을 시도할 것이야. 몇 년은 족히 걸리겠지.”
그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나를 쳐다보았다.
“하면, 진법 법기를 개발함과 동시에, 서 수사께서 만족하실 만한 법기 역시 동시에 개발해보도록 하지요.”
“아니, 정말 필요 없는···.”
청문령은 내 허리를 쿡 찔러 내 말을 막았다.
귓가로 청문령의 전음이 들려왔다.
―어디까지 법기 장인의 자존심을 깔아뭉갤 생각이신가, 서 도우. 법기가 있으면 나쁠 건 없으니 그만 받아들이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만. 전 소저가 주는 법기를 살 여력은 없습니다.”
“이번 내기의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니, 이건 그 상품을 대신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제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하고, 서 수사께서 제 법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셨으니 무상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나는 할 말이 없어져 법기점의 한 곳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북향화(北向花)라 합니다.”
“···서은현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힘내십시오, 벽 형.”
“저희 가문의 어른들이 그러시는데, 북 선자의 자질은 기문법재 중에서도 사문법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문법재는 일문법재부터 삼문법재는 되어야 정말 악마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합니다. 사문법재는 그냥 뛰어난 수재 정도의 자질이라 하는데, 너무 아쉬워할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벽문성은 연기기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위로를 받고 있었다.
“···하하, 위로 고맙소. 도우들..”
“그럼 이번엔 안타깝게 됐지만, 나중에 또 재밌는 일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벽 도우.”
“나중에 뵙겠소!”
어느 정도 벽문성의 얼굴이 밝아진 듯하자, 연기기 후기지수들은 각자 비행법기를 타고 본가로 돌아가 버렸다.
얼마 후.
벽문성의 안색이 와락 일그러졌다.
“멍청한 것들··· 그녀는 단순한 사문법재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왜 네놈들을 끌고 다니면서 그녀를 귀찮게 굴고 짜증나게 만들었는데···!”
콰앙!
벽문성은 성이 난 듯 발을 한 번 구르며 이를 짓씹었다.
“웬 처음 보는 놈팡이한테 그녀를 빼앗길 수 없지···. 괴군과 같이 악마적인 자질을 가질 그녀를 내 것으로만 만들면, 가주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건만···!”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어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유람을 떠날 때를 노리자. 아직 내게 기회가 없는 건 아니야···!”
***
“봉명성···?”
법기점의 안쪽 회의실.
그곳에서 진법의 구조도를 받은 북향화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전설의 장인이 만들었다는···.”
“맞습니다. 그 안쪽에 있는 장생과의 생장을 촉진시킬 진법을 만들어야 하고, 그 진법에 맞는 진법 법기를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나와 청문령, 그리고 북향화는 탁자에 앉아 구조도를 뜯어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잠시 우리와 얘기를 나누던 그녀는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혹여 그 봉명성에 제가 들어가 볼 수는 없는 건가요? 만약 그곳의 영맥과 기질을 제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 곳에 알맞은 법기를 만들기가 더욱 쉬울 것 같습니다만.”
“흐음···.”
“거기에다가 봉명성 역시 하나의 법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법보의 힘을 제 진법 법기들의 힘으로 빌린다면 더더욱 효과가 뛰어난 법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문령은 고개를 저었다.
“봉명성은 400년에 한 번씩만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은 있어야···.”
“아, 제가 몰래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긴 합니다만.”
“···!”
내 말에 청문령은 상당히 놀라는 눈빛이었고, 북향화는 희색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어떤 방법이오?”
“아, 제 벗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나는 서란에게 통하는 전음부를 하나 꺼내들었다.
***
날이 저물었다.
서란에게 연락을 돌렸고, 나는 청문령과 함께 진법에 대해 토론하고, 구조도를 계속해서 짰다.
북향화는 진법 법기의 기초를 만들어 오겠다 하며 자신의 공방으로 들어갔다.
“후우···.”
나는 청문령과의 토론을 마치고, 잠시 회의실에서 나왔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질문량이시군.’
청문령은 굉장히 질문이 많았다.
늘 ‘왜 그렇게 생각하나?’ 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며, 진법에 대해 토론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예리한 질문에 찔린 부분이 아플 때도 있었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하기도 했다.
‘이미 다시 볼 수 없는 예전이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회귀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우울한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까앙, 까앙!
문득 법기점 안쪽, 북향화의 공방에서 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 소저도 대단하군.’
여인의 몸으로 법기를 만들기 위해 저 뜨거운 불 곁에서 망치질을 한다.
나는 은근슬쩍 그녀의 공방 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작업 모습을 엿보았다.
끼릭, 끼리리릭···.
그녀는 진법 깃발 법기에 뭔가를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뭔가를 두들기고 만들어간다.
문득, 나는 그녀의 얼굴에 뭔가가 피어난 것을 보았다.
파츠츠···.
그것은 사색(四色)의 문양이었다.
마치 나뭇가지 같아 보이는 그 문양은 금빛, 보랏빛, 연분홍빛, 검은빛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검은빛과 보랏빛의 문양은 서로 엮여 있어, 반쯤 섞인 듯한 모양새였다.
‘저게 사문법재···.’
불티들 사이에서, 네 가지 색을 몸에 지닌 채 법기를 주조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계속해서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서 수사. 오셨나요? 마침 부탁드릴 게 있었는데.”
“부탁하실 거라니요?”
“여기.”
쿠웅!
그녀가 공방 안쪽으로 가더니,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끼익···.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미완성으로 보이는 검 법기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까 서 수사를 보고 영검이 떠올라 만든 법기들입니다.”
‘한나절 사이에, 이 많은 걸 다 만들었다고?’
북향화는 다시 한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특별히 서 수사를 위해 만든 법기들입니다. 아직 완성품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쉽게 위력을 끌어내지 못할 걸요? 한번 힘을 불어넣어 보시지요.”
나는 피식 웃으며 검을 하나 잡았다.
그리고, 다시금 검의 힘을 끌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여전히 12할 이상의 출력을 뿜으며 빛을 내었다.
‘실망하려나···. 기대를 깨게 되서 미안하게 되었군.’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음?’
북향화는 어쩐지 멍한 기색으로, 한도를 넘어선 채 출력을 뿜어내는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은 계속해서 달싹이며 법기에 대한 것들을 읊조리고 있었고, 그녀의 눈은 법기에 빠져 있었다.
‘뭔가 영감을 얻은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우우웅!
그녀의 피부 위로 네 가지 색의 문양이 다시 떠올랐다.
‘사문법재는 그냥 수재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일반 법기 장인들보다는 뛰어난 자질인 것 같은···.’
흠칫!
문득, 나는 멍한 상태의 그녀를 보며 몸을 떨었다.
보랏빛과 검은빛의 문양.
서로 얽혀 있던 두 가지 문양이, 점차 합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